터미네이터 : 미래전쟁의 시작 - Terminator Salvati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마더를 보고 나서 점심을 먹고, 그냥 집으로 갈까 하다가 나온 김에 영화를 한 편 더 보았다. 급하게 예매를 한 터라 아무 할인을 받지 못해서, 7,000원 다 주고 보기에 아깝지 않을까 쫌! 걱정이 되긴 했다. 게다가 시리즈 영화가 으레 그랬듯 이 작품 역시 후속편의 운명을 헤어나지 못한 책 혹평에 시달리는 듯해서 기대치가 전혀 없었다. 그냥, 스트레스나 좀 날려주면 좋겠지 뭐... 이 정도 기대치! 




그래서, 나로서는 꽤 즐겁게 보았다. '마더'가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영화 끄트머리에 가서야 재미를 제대로 느꼈던 것에 비해 터미네이터4는 초반부터 흥미진진했다.  

1편은 아마 TV에서 해주는 것을 슬쩍 본 것 같고, 2편은 친구 집에 가서 비디오로 빌려보았고, 3편은 극장에서 보았는데 무척 실망했었던 기억이 난다. 2편의 영광을 재현하기엔 너무 수준 차이가 났었다. 그저 4편을 불러오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 정도? 다만, 미래 전쟁의 지도자 '존 코너'가 처음부터 그렇게 훌륭한 리더였던 것이 아니라, 도망치고 싶어했고, 오래오래 방황했던, 또 찌질하기까지 했던 평범한 인간과 똑같았다는 것 하나만 그럴싸 했다. 

그런데 미래로 시간을 점프 업~한 4편에서 존 코너는 찌질했던 청년기 시절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미 여러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미래의 중요 인물로 인식되어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리더 중의 리더였다. (비록 사령관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배트맨 시리즈에서 고뇌하던 그 영웅의 모습은 좀 덜 보인 셈이다. 그런데도 목소리는 배트맨 시절을 그대로 가져와서 대사 듣기가 무척 갑갑했다. 원래 발성이 그런 편인가? 상당히 아쉬운 대목! 




영화에서 가장 뜻밖의 수확은 마커스 역할을 맡은 이 배우 샘 워싱턴이었다.  뭐랄까. 주인공보다 더 안정적인 연기와 작품 해석과 몰입도? 

영화는 사형수로서 죽어가고 있던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미래 사회로 보내졌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진 않는다. 대강 기계 군단의 트로이 목마가 되었던 상황을 이해할 뿐이다. 그래서 그가 전혀 관계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던 미래 지도자를 위해서 희생하려고 할 때는 그 개연성이 약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또 미뤄 짐작해 보면, 그는 이미 죽음을 만났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한 대가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사람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자신처럼 '두 번의 기회'를 주는 게 마땅하다고 여긴다면, 그의 선택은 이해가 될 수 있다. 더군다나 인간으로 남고 싶었던 그가, 인간으로 인정받고 또 인간답게 행동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으니까. 

다만 그의 희생을 존 코너를 비롯한 저항군 세력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좀 불편했다. 빈 말이라도 말리지도 않더라...;;;; 



비중이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섹시 여전사의 역할을 잘 소화한 문 블러드 굿. 동양계인가 보다 했더니만 한국계였다. 쇠사슬 타고 내려가는 장면은 초절정 섹시 멋스러움 그 자체! 

그리고 중요한 키워드였던 존 코너의 아버지 카일 리스. 실제로 배우는 89년생이란다. 아, 어리디 어리구나! 아들은 자신보다 어리고 어린 아버지를 만났고, 그 아버지는 자신이 흠모하던 지도자가 사실은 아들이었다는 것! 

시리즈를 보는 재미가 솔솔했던 것은 전작에서 나왔던 명대사들이 재차 언급되어지고, 전작에서 인기를 끌었던 명장면들이 오마쥬처럼 다시 재활용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아놀드의 모습을 보여준 영상(그래픽이겠지?)이나 트럭 추격씬, 오토바이 추격씬, 총 장전할 때 돌리는 모습, 용광로 씬 등등 말이다.  

그리고 귀여웠던 이 소녀가, 마지막에 기계 손가락이 다 드러난 마커스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던 장면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터미네이터 2에서 나를 울렸던 명장면이, 아놀드가 용광로 속으로 사라지면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드는 거였는데, 이 소녀가 보여준 온정이 그 장면과 이어진 듯 보였다.  

형님이 좋아했다던 그 노래가 참 좋았는데 제목까지는 모르겠다. 영화 끝나고 노래를 더 듣고 나오고 싶었는데 직원은 나오라 소리치고, 청소하시는 분은 바로 앞까지 빗자루 들고 돌아다니시고, 모두 나가고 나밖에 없고... 결국, 나도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아쉬워라... 

초반에는 CG가 좀 성에 안 찼다. 그래서 이거 오락 장면이야? 이러고 보기도. 그런데 보다 보니 완전히 몰입하게 되어서 정말 내 얼굴에 쇳덩이가 날아와 부딪힐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아찔한 장면들이 몇 컷 있었다.  

초반 심드렁하게 보았던 나는 제법 재밌고 즐겁게 영화를 보았고, 그래서 내가 별점 다섯 개를 주었던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떠올리면서, 이 영화도 당당히 별점 다섯 개를 주기로 결정했다.(뭐 아무도 관심 없지만~) 

영화의 엔딩이 유출되어서 다시 찍었다는 얘기가 있던데 사실일까? 영화의 엔딩 씬은 처음 컨셉의 장면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남긴 듯하다. 아무튼 영화는 다음 편을 다시 예고하게 되었고, 관객은 시리즈의 다음을 즐겁게 기다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괜찮은 선택이다.  

영화의 원제는 한국 제목처럼 '미래 전쟁의 시작'이 아니라 'salvation'이다. 지구, 인류 멸망의 순간에 진정 '구원'이 되어줄 것은 단 한 명의 뛰어난 지도자이기 보다, 그가 지키려고 한 사람의 숭고한 생명과 정신일 것이다. 지극히 교과서적인 해답이지만, 그게 또 모범 답안이기에 우리는 줄기차게 그러한 구조의 이야기들을 답습한다. 사실, 인류 멸망의 시나리오는 이제 너무 흔하긴 하다. 시간을 뛰어넘어 여행을 하는 설정도 흔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이야기들에 관심을 갖고 기대치를 갖게 된다. 많고 많은 영웅이지만, 여전히 영웅은 멋있고(게다가 섹시하고!) 여름에는 이런 블록버스터 영화가 좀 땡기는 것도 사실이고, 복잡한 머리를 식혀 주기엔 이런 액션 영화가 효도 상품이라고도 생각한다.  

자잘한 아쉬움들이 남음에도, 오늘 이 영화는 내게 꽤 큰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땡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9-06-09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09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9-06-09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노아님.
저도 어제 이 영화보고 방금 리뷰썼는데 쓰고나서 지금 마노아님의 이 리뷰를 읽어보니 겹치는 감상이 많아요. 이를테면 섹시한 영웅이라든가. 하핫. ;;

저도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그래서 별 다섯개를 줬는데, 그마저도 마노아님과 같아요. 아잉 좋아 >.<

마노아 2009-06-09 11:17   좋아요 0 | URL
섹시한 영웅은 우리의 레이더를 피해갈 수가 없어요.^^
영화 평을 너무 박하게 받는 것 같아서 더 적극적으로 별 다섯 개를 줬답니다. 오호홋, 우린 언제 같이 영화를 보러 가지요? 꼭 섹시한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보기로 해요.^^

후애(厚愛) 2009-06-09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우들이 모두 낯설네요.
별 다섯개라고 해서 DVD로 구입 하기로 했습니다.
훌륭한 리뷰덕분에 망설임없이 구입할 수 있겠어요. 고마워요~

마노아 2009-06-09 19:16   좋아요 0 | URL
다크나이트의 크리스천 베일 모르세요? 저도 뭐 그 작품으로 알게 되긴 했지만요.^^;;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모든 영광은 제임스 카메론에게 바쳐야 할 것 같아요. 전설이 되어주었잖아요.^^

후애(厚愛) 2009-06-10 05:22   좋아요 0 | URL
다크나이트의 크리스천 베일 알아요.
보고도 기억을 못하는 접니다.^^

마노아 2009-06-10 10:22   좋아요 0 | URL
하하핫, 저도 그럴 때가 무척 많답니다. 앞으로는 더 심해질지도 몰라요..;;;;

같은하늘 2009-06-09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에 두편씩이나 극장에서 영화를 봐주시는 센스~~~
부럽습니다... 저는 극장에서 영화 본게 언제이던지...ㅜㅜ
첫아이를 임신하기 전이니 2000년쯤이 아닐까...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첫아이 좀 커서 극장한번 가보려했더니 큰 소리만 나면 울어서 못가고...
그러다 둘째 생겨서 키우다 보니 어느새 2009년이군요...
영화는 맨날 비디오 빌려다 봤는데 요즘은 그나마도 못하니...
이것들 어여 키워놓구 내 세상을 살아야지...
아래 주루~~룩 보니 좋은영화 많네요... >.<

마노아 2009-06-09 23:17   좋아요 0 | URL
하핫, 미쓰일 때의 특권(?)을 누려보았습니다.
제 친구는 신랑이랑 같이 애둘을 극장에 데리고 가서 무릎 위에 재우고 영화를 보던데,
그것도 아이들이 도와줘야 가능하지요.
울 조카들도 극장에 데리고 가긴 힘들거든요.
어여 같은하늘님 세상이 오기를 저도 고대합니다. 자유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