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근 전에, 대통령 타살설에 대한 누군가의 글을 읽었다. 전체 윤곽 중 극히 일부였지만 읽으면서 소름이 끼쳤고, 무서웠다.  

2. 그래서, 정신이 없었다. 자꾸 머리 속을 맴도는 생각들이 꼭 저승사자처럼 느껴져서. 

지하철에서 밖으로 나왔는데, 어딘지 모르겠는거다. 출구를 잘못 나왔다.  

인지 능력이 얼마나 떨어지던지 진짜, 당황했다. 자세히 둘러보니 반대방향으로 나왔다. 되돌아갈 수밖에. 

3. 출근 3일째인 이 학교는 건물 구조가 'H'형이다. 'ㄷ'자 형이나 'ㅁ'자 형도 아니고 'H'라니. 

안 그래도 머리가 뱅뱅 돌던 오늘은 교실 찾아 삼만리였다.  

4. 퇴근할 때까지, 더 많은 기사들을 보았다. 마음이 참담했다.  

많은 의혹들을 내가 다 소화를 못하겠는데, 적어도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건 아닌 듯했다. 

45m에서 뛰어내리면 800t의 충격을 머리에 받았다는 셈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그 정도 상처만 남기고, 게다가 몇 시간 동안 살아계실 수 있을까.  

타살이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계속 남아 있자 공포가 엄습했다.  

5. 퇴근길, 어질어질한 상태로 지하철 역으로 갔는데 화장실을 잘못 들어갔다. 남자 화장실로ㅠ.ㅠ 

화들짝 놀라 뛰쳐나왔고, 그리고 지하철을 탔는데, 반대 방향 지하철을 탔다. 

6. 되돌아 와서 지하철을 타고, 이번엔 환승을 해야 하는데, 정신 차려보니 낯선 곳에 와 있는 거다. 

환승 통로를 못 찾아서 헤맸다. 노원 역이 환승 구간이 겁나 멀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정표를 못 찾을 정도는 아닌데, 내 정신이 확실히 아니었다.  

7.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그게 분향소 가는 길일 거라고 어찌 생각할 수 있었을까.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 갈증이 날라치면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시원한 물을 나눠주고 갔다. 감사감사... 

8. 두시간, 걸렸다. 예상보다는 줄이 빨리 줄어든 셈이다.
원래는 고인의 명복을, 유가족의 슬픔을 달래달라는 기도가 하고 싶었는데, 그게 무엇이든 진실을 밝혀달라고 기도했다.  

우리의 모든 의혹이 다 밝혀졌으면...... 

9. 덕수궁을 끼고 양쪽으로 조문 행렬이 있었다. 내가 있는 쪽만 있는 줄 알았더니 반대 방향도 줄이 저만치다. 

사람들에 가려 전경차가 안 보였는데 광화문을 가득 채웠구나.  

전경들의 표정은 그냥 시니컬해 보였다. 껌을 짝짝 씹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우리처럼 안타깝거나 슬픔을 느낄까. 아님...... 

10. 집에 오니 기진맥진이다.
그분이 자살을 했다고 해도 아프고 서러운데, 정말 타살이 맞다면 그건 더 기가 막힌 일이고, 이미 이 정도로 의혹이 불거져 나올 만큼 수상하고 수상쩍고 게다가 석연치 않은 이 시국도 갑갑스럽다. 대한민국이 무섭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법천자문 2009-05-28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살설은 황당무계한 얘기니까 낚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노아 2009-05-28 07:18   좋아요 0 | URL
타살설이 아니길 정말정말 간절히 바라는데, 왜 황당무계한지도 얘기해 주세요. 그 이유를 알고 싶어요.

후애(厚愛) 2009-05-28 0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사읽고 어찌나 놀랐던지요.
정말 타살이라면... 제발 아니길 바랄뿐입니다..

마노아 2009-05-28 07:18   좋아요 0 | URL
예, 꼭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무서워요... ㅠ.ㅠ

Kitty 2009-05-28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시절이 하 수상해도 우리 정줄 놓지 말고 살아요 ㅠㅠ 화이팅 ㅠㅠ

마노아 2009-05-28 07:43   좋아요 0 | URL
네, 우리 정신줄 놓치지 말고 두 눈 똑바로 뜨고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요!!!

다락방 2009-05-28 09:10   좋아요 0 | URL
Kitty님 댓글에 동감.

우리 정신줄 놓지 말고 살자구요 ㅠㅠ

마노아 2009-05-28 09:24   좋아요 0 | URL
네, 우리 꼭 그렇게 하기로 해요.ㅠㅠ

또치 2009-05-28 09:28   좋아요 0 | URL
냉정하고 침착하게 살아가던 알라딘 주민들이 이렇게 헤매고 있다니 정말...
마노아님, 기운 내시고요, 이 악물고 똑바로 잘 살아가요 우리!

마노아 2009-05-28 09:50   좋아요 0 | URL
평소에도 심각한 길치였던 제가 정신줄 잠시 놓치면 저렇게 망가지더라구요ㅠ.ㅠ
이 험한 세상에서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지요.
또치님도 기운 내셔요. (>_<)

개인주의 2009-05-28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경들이야 피곤하겠죠 그냥..
자기 생각에 이게 아닌데 싶지만 어쩔 수 없기도 하고..
땡볕에 목적없이? 대기하려니 열받을 수도 있고..
전경..아이스께끼도 사먹고 담배도 피고 우르르 교보에도 가고
그렇게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있는 듯..ㅡㅡㅋ

마노아 2009-05-28 12:14   좋아요 0 | URL
군대라는 곳 자체가 생각이 많아지면 오히려 본인이 견디기 힘든 것 같기도 해요.
어제는 전경들이 지나가면서 괜히 고함을 지르고 기합을 넣는데, 한꺼번에 소리 지르니까 무섭더라구요.
시민들은 안 그래도 이래저래 눈치가 보이죠. 아마 서로 눈치볼 것 같기도 해요. 에효...

2009-05-28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29 0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alei 2009-05-28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추천한 글은 모두 대문에 걸린다는 징크스가 있어요.

마노아 2009-05-29 06:31   좋아요 0 | URL
앗, 어쩌다보니 대문에 걸렸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