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름값으로 이미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박찬욱 감독에 송강호 주연이라니. 그런데, 그 이름 값 때문에 좀처럼 관객의 눈높이와 만족도를 맞추기는 힘들다. 더 센 것, 더 새로운 것, 더 자극적인 것, 더 대단한 무언가를 모두들 기대하고 오기 때문이다. 그 욕망을 알면서도 감독은 얼마나 자신의 의도대로, 원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엔 뚝심과 자존심, 배짱 등등, 온갖 것들이 필요할 것이다.(물론 자본도!) 그리고 박찬욱 감독은 으레 그랬듯이 이번에도 이게 내 스타일이야~라는 식으로 밀고 나간다. 관객은 원하는 것을 보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보여주길 원했던 것만 보고 나간다. 어쩌라구? 감독 스타일이 그렇다는데......
송강호가 신부 역할을 맡는다고 하길래 그림이 잘 연상이 안 됐다.
그런데 이럴 수가! 10kg 감량만으로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영화 속에서 송강호는 절대로 배불뚝이 아저씨가 아니다. 슬림 그 자체이고, 수사복을 입었을 때도, 신부복을 입었을 때도 모두 신부로 보인다. 카메라를 잘 잡아주셔서 뒷모습만 잡으면 키도 엄청 커보인다.
뱀파이어가 되기 전 기도하고 고뇌하고 아픈 환우들을 대하는 그의 모습에선 그 자체로 성자가 떠오른다.
병원에서 주로 봉사하는 그는, 해외에서 개발 중인 백신 프로젝트에 참가했다가 사망에 이르고, 이때 수혈 받은 의문의 피로 기적적으로 되살아 나지만 뱀파이어가 되고 말았다. 그의 모든 감각은 인간의 그것을 몇 차원이나 건너 뛰어 발달했고, 심지어 날기까지 한다. 힘은 강력해졌고, 조심만 한다면 불사의 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낮을 잃어버린 그는 이제 모든 '욕망'을 추구한다. 피에 대할 갈망은 식욕 이상의 것이고, 육체에 대한 탐욕마저 그를 괴롭힌다. 이럴 때에 만나게 된 것이 어릴 적 친구의 아내인 태주.
김해숙은 신하균의 엄마인데, 어려서 걷어 키운 태주를 모자란 아들의 아내로 만들어버렸다. 모자라도 많이 모자라고 찌질해도 한참 찌질한 그 남편과 살며,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으며 사는 태주가 불만과 욕구의 팽창 상태가 되어버린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때에 신부의 옷을 입은 상현을 만난 것이다.
이후부터는 송강호 표, 박찬욱 표 유머가 발휘된다. 피가 난무하는 불편할 수 있는 이런 영화에서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것들.
김해숙은 머리를 저렇게 촌스럽게 하고 눈을 치뜨는 것만으로도 대사 없이 캐릭터를 잘 표현해 낸다.
김옥빈은 우려했던 것보다 연기가 좋았고, 중반의 변신 이후 분위기가 확 바뀌는 것이 자극적이었다.
왼쪽 사진은 얼굴이 하얘지면서 고혹적인 모습을 보여준 김옥빈.
오른쪽 사진은 집안을 온통 하얗게 칠해버려서 그 극단적인 흰색과 파랑색의 색의 대비가 긴장감과 섹시함을 함께 보여주는 실내 풍경이다.
이런 영화에선 여배우의 노출이 이슈가 되기 마련이겠지만, 영화 개봉 직전에 송강호의 노출 이야기가 확 떠버렸다. 그런 노이즈 마케팅도 어느 정도 의도한 바이겠지.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그 장면은 꼭 필요하지도, 꼭 불필요하지도 않은 채 그저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그때 당시 상현의 결심이 어떠했는지를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 장면이 그가 사제로서 가졌던 마지막 신앙으로의 회귀 본능, 그래서 순교적인 각오가 필요했다는 느낌도 든다.
최근에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읽어서 이쪽 뱀파이어도 물 속에라도 들어가면 혹 살아남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아무 쓸모 없었고..^^;;;
배우들이 모두 호연을 했다. 감독도 평균 이상으로 해냈고, 여러모로 괜찮은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이미 말했다시피, 이미 기대치가 많이 높아져 있는 까닭에 전작들을 월등히 뛰어넘는 무언가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다소 아쉬움이 남을 수 있겠다. 그렇지만 박쥐는 박쥐 그대로 훌륭하다. 영어 제목은 더 적절하고.
이제 5월 개봉작으로는 마더가 기대작인데, 봉준호 감독은 좀 더 기대가 될까, 긴장을 할까? 봉감독 역시 관객들의 높아진 기대치로 고전을 치를 수도?
무튼, 여러모로 볼거리는 많은 5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