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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쟁이 거인 ㅣ 길벗어린이 작가앨범 7
오스카 와일드 지음, 고대영 옮김, 아나스타샤 아키포바 그림 / 길벗어린이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어릴 적 나를 슬프게도 하고 감동에 젖게도 했던 '행복한 왕자'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다. '욕심쟁이 거인'. 뭔가 제목에서부터 벌써 교훈이 스멀스멀 옮겨온다. 내용도 궁금하지만 그림도 많이 궁금하다는 게 그림책을 열기 전의 마음 자세!
거인은 7년 동안 부재 지주...는 아니었고, 다만 집을 비우고 외출했었다. 친구 집에서 7년 동안 수다를 떨었더니 더는 할 얘기가 없어서 돌아왔는데, 그의 훌륭한 정원이 온통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욕심쟁이 거인은 당장 버럭 성을 내어 아이들을 정원에서 모두 쫓아내었다. 키가 나무 한 그루 크기만한 거인이 우렁우렁 소리를 질렀으니 아이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현대인들의 관점에서 자기 집에 무단 침입한 것에 대한 항의로 볼 수 있겠지만, 동화 속에서 아이들을 무시하거나 구박하면 반드시 보복(?)이 뒤따른다. (물론, 현실에서도 그래선 안 되지만!)
위험한 길가에서 놀 수도 없고, 저 너머가 보이지 않는 높다란 담장 밑에 올망졸망 모여 있는 아이들.
온 몸으로 심심해, 지루해~ 오라를 뿜어내고 있다. 학원 가기 바쁜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보면 노여워하거나 부러워할 장면이지만, 동화 속의 아이들에게 그걸 바라면 안 돼지~
거인의 집은 자비가 없고 관용이 없고 나눔이 없기에 겨울만 머물렀다. 주변이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어도, 봄이 오나 가을이 오나 거인의 집은 늘 겨울 뿐이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의 한 대목을 보는 느낌의 그림이다.
차가운 북풍이 온 집안을 휘감는 장면이다. 포스가 느껴지는 눈과 서리, 그리고 북풍. 그림의 미적 가치로는 아주 맘에 드는 장면이지만, 동화 속 얘기에서 북풍이 환영받을 때가 어디 있던가!
게다가 저곳엔 진짜 불청객 '우박'까지 등장했는데 집에다가 후두둑 우박을 뿌려대는 모습이 괴기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 딱 봐도 겨울스럽다. 이 정도로 헐벗었으니, 이제 진정 봄을 기다릴 만하다.
과연 거인은 겨울밖에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집에 만족했을까? 아님 전처럼 아이들이 까르르 웃어대는 봄의 정원을 그리워하게 될까?
당연히, 봄을 갈망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동안 잊고 지냈던 새소리에 깜딱! 놀란 거인, 창문을 열어보니, 작은 방울새가 즐겁게 지저귄다. 아니, 어쩌다가 겨울뿐인 내 정원에 새의 노래 소리가 울린단 말인가! 눈을 들어보니, 세상에! 나무마다 봄이 도착해 있다. 까닭은, 어린이들에게 있었다. 아이들이 담장의 작은 구멍(일명 개구멍!)을 통해 정원으로 들어온 것이다. 거인이 무섭다는 것을 이미 잊은 것을 보니, 그때 그 아이들은 다 자라서 어른이 되었고, 새로이 어린 친구들이 온 것이 아닐까? 내 생각엔 그렇다!
암튼, 노래하는 새를 보니 안데르센의 '나이팅게일'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방울새란 이름은 한국적으로 들리지만 어떤 생김새인지는 사실 모르겠다...;;;;
하여간, 거인은 오랜만에 만난 봄에 아주 기뻐 어쩔 줄을 몰라하는데, 유독 한 그루의 나무에만 겨울이 머물러 있다. 이유인즉슨, 키가 작은 아이가 나무 위로 올라가지 못했기 때문.
자, 다음 시나리오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이미 마음문 활짝 열어젖힌 거인의 도움으로 소년은 나무 위에 봄을 가져다 주는 멋진 전령사 역할을 해낸다. 뿐인가. 덥수룩한 거인의 저 수염 너머 뺨에다가 우정의 입맞춤까지!
이제 거인은 더 이상 욕심쟁이 정원 독점꾼이 아니다. 그의 넓고 아름다운 정원이 진정 빛이 나려면 혼자 독차지 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가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열어주어야 함을 알고 있다.
세월은 흐르고, 거인의 정원은 자연스런 봄여름가을, 그리고 겨울을 맞는데, 그가 첫 마음을 열었던 그 소년만 유독 다시 만날 수가 없었다. 그리움은 더 짙어지고, 거인은 이제 노인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때마침 겨울이었는데 유독 푸르른 나뭇잎을 자랑하는 나무 한 그루와, 그 곁의 소년을 만나게 된다.
거인은 노쇠하여 이제 죽을 날이 다가왔건만, 여전히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저 아이.
거인에게 마음의 봄을 가져다 주었던 그 고마운 아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쯤 되니, 아이의 정체가 눈에 그려진다. 거인의 반응과, 그의 다음 행보도 눈에 그려진다.
내 짐작은 비켜가지 않았다.
고전스런 이야기 책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이 책을 말년에 썼는 지는 모르겠지만 초라했던 그의 말년 행보를 되짚어볼 때, 진정에서 우러나온 참회와 깨달음과 함께 쓴 책이 아닐까. 거인이 마음에 평화를 얻은 것과 마찬가지로, 오스카도 비록 고국으로 돌아가진 못했지만 마음의 평화를 얻은 채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까. 알 수 없지만, 그랬으면 한다.
이 책은 다음 주로 다가온 부활절 선물로 조카에게 주어야겠다. 이 시즌에 딱! 좋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