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트 - Doub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배종옥은 자신을 사랑하는 국장에게 "넌 날 사랑한다고 하면서 믿진 않지?"라고 말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상대의 진심을 의심하고, 자신이 더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자신만 희생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의 사랑은,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그게 그의 한계였다. 그럼에도 그런 그를 그녀가 사랑했지만.  

'사랑'과 '믿음' 중에서 어느 게 더 중요하냐고 물으면, 난 믿음이, 그러니까 신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진다. 신뢰란 큰 테두리 안에 사랑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왜 믿음이니 신뢰니 자꾸 떠들었냐 하면, 이 영화 때문이었다.  

'다우트'. 의심 

작품의 배경은 1964년 브롱크스의 성 니콜라스 교구 학교다. 활기에 차 있고, 학생들을 향한 유쾌한 애정을 가득 지닌 플린 신부는 공포와 징벌의 힘을 믿고 있는 교장 수녀 알로이시스(메릴 스트립)에 반대하며 학교의 엄격한 관습을 바꾸려고 한다.  

새내기 선생 제임스 수녀(에이미 아담스) 역시 알로이시스 수녀의 교육 방침에는 불만이 있지만 감히 거기에 대항할 생각은 못하고 대모님처럼 의지하고 있다.  

이 학교엔 유일한 흑인 학생이 있는데 이름은 도널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로워하는 이 학생을 플린 신부가 살뜰히 챙겨준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잘못 확산되면서 알로이시스 교장 수녀는 플린 신부가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고 믿고 축출해내려고 한다.  

작품은 엎치락 뒷치락 하나씩 하나씩 이야기를 진행시키면서 관객들을 혼동시킨다. 과도한 망상으로 멀쩡한 사람 하나 매장시키는 것인가, 아니면 저 신부가 정말 뭔가 뒤가 구린 짓을 한 것인가, 관객들 역시 계속해서 의심하면서 영화에 집중하게 한다.  

도널드의 엄마가 학교에 등장하면서, 그녀와의 대화에서 쇼킹한 진실이 하나 밝혀지고, 과연 플린 신부의 진실은 무엇일까 고민스러워진다. 그가 더 싸우기를 포기하고 교구를 떠난 것은 학생을 지키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그 자신이 밝힐 수 없었던 그 어떤 비밀이 있었던 것일까. 

알로이시스 수녀는 자신이 넘겨 짚은 것을 확신으로 바꾸고 논리상으로는 그것이 맞는 것처럼 증명을 해내지만, 결국 그 자신은 더 큰 의심에 휩싸이며 절망감을 느낀다. 과거 어느 시점에 본인이 저질렀던 부적절한 일. 부도덕적인 일. 고해성사를 했다지만 거기에 아직도 얽매어서 다른 사람도 모두 안경을 끼고 보는 건 그녀 자신이었다. 그런 그녀라면 앞으로 몇 번, 몇 십번을 새 신부로 갈아 치운다고 해도 신뢰라는 것이 싹이 트지 않을 것이다. 그 자신 몸담고 있는 그 성직자의 직분, 신으로 향한 사랑 보다 자기가 준수하고 있는 기준과 규칙만이 오로지 중요한 사람이었으니까.  눈이 어두워지는 노 수녀님의 증세를 제일 먼저 간파하고, 알게 모르게 배려를 해주던 사실은 자상한 맘씨도 지닌 그녀가 왜 그렇게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는지 안타깝다.

플린 신부는 세 차례 설교를 하는데, 세번째는 작별인사였으니 넘어가고, 첫번째 '의심'과 두번째 '험담'에 관한 설교가 인상 깊었다. 특히나 '험담' 편의 비유는 너무도 적절해서 뜨끔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으니,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게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게 더 더럽다는 명언을 상기시키게 했다.  

비록 여우주연상을 타진 못했지만, 확실히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주는 메릴 스트립이었다. 그리고 짧게 출연한 도널드의 엄마 역을 한 비올라 데이비스도 인상 깊었다.  

딱히 배경도 학교랑 교회 밖에 나오지 않았고, 의상도 단벌 뿐인데 제작비는 왜 2천만 불이나 들었을까? 주연 배우들의 몸값 때문일까?  

문득, 어릴 때 하고 놀던 트럼프 게임이 생각난다. 이름은 '다우트'. 어떤 카드를 한 장 엎어놓고 시작을 하는데, 만약 7에서 시작을 하면 6이나 8로 진행을 해야 한다. 카드가 없으면 한 장 가져가고, 만약 속일 마음으로 다른 카드를 엎어놓으면서 해당 번호인 척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그걸 의심해서 '다우트!'하고 외치면 카드를 엎어본다. 거짓말 한 게 맞으면 속인 사람이 엎어져 있던 카드를 다 가져가야 하고, 사실이라면 의심한 사람이 몽땅 가져간다. 그렇게 해서 카드를 제일 먼저 다 내놓는 사람이 이긴다. 오래 되어서 룰이 정확한지 자신이 없지만 대강 이렇게 흘러간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배운 놀이인데, 꽤 오랫동안 못해봤구나. 기회되면 다시 한 번 놀아봐야지. (이 뜬금 없는 마무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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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3-08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이 영화 보셨군요. 저도 빨리 보고싶은데 어째 잘 안 맞네요.
우리집 큰딸 주말이라 어제 기숙사에서 데리고 왔는데 오늘 보러가자고 하니까
피곤해서 좀 쉬고싶다고 엄마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하지 뭐에요.ㅎㅎ
신뢰와 믿음, 의심과 의문.. 어릴 적의 트럼트 놀이 그거 재미난 은유네요.^^

마노아 2009-03-08 10:52   좋아요 0 | URL
혜경님이 보시면 더 좋아할 스타일의 영화 같아요.
아유, 따님이 기숙사 생활하면서 너무 지쳤나봐요. 팔팔한 나이니까 금세 회복되겠죠?
그 트럼프 놀이가 은근히 철학이 있어요.ㅎㅎㅎ

웽스북스 2009-03-08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릴 때 그 트럼프놀이 했었어요

복잡한 마음에 다우트 보러가신다기에 좀 더 복잡해지시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마노아님답게 영화를 잘 소화해내셨네요
이 영화 2009년에 봤던 영화중에는 아직까지 짱먹고 있어요 ㅋㅋ (표현하고는 ㅋㅋㅋㅋ)

마노아 2009-03-08 15:38   좋아요 0 | URL
오, 웬디님도 아는군요! 나중에 불라에서 할까요? ㅎㅎㅎ
복잡한 마음에 보기에 적합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달리 볼 만한 영화가 없었어요.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보고 싶었는데 이 영화도 50보 100보에 결정적으로 상영관이 없었거든요. ^^
저는 좋기로는 벤자민~이 더 좋았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