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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일라잇 - 나의 뱀파이어 연인 ㅣ 트와일라잇 1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변용란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7월
평점 :
12월에 영화로 먼저 만난 트와일라잇. 나의 뱀파이어 연인이라니, 너무 로맨틱하지 않은가!
영화는 초반에 지루하게 전개되었다. 뛰어나게 잘 생긴 남자 배우와 빼어나게 예쁜 여자 주인공이 나오긴 했지만 크게 눈을 사로잡지 못하다가 극 종반에 긴장감을 팍 조성시키면서 끝내는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면서 극장을 나오게 만들었다. 책은, 그보다 더 큰 임팩트를 내게 남겨줄 거라고 '당연히' 믿었다. 결과적으로는, 조금 배신 당했지만.
아무래도 1차로 접한 매체가 더 인상적이기 마련이었다. 책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았더라면 책이 더 재밌었을 지도 모른다. 대개는 그러했으니까. 그런데 현란하고 화려하고 또 (상대적으로) 스피디한 영화를 먼저 보고서 책을 접하니, 무려 564쪽이나 되는 책이 너무 더디게 읽혔다. 때마침 컴퓨터 고장이란 악재로 인하여 연속 읽기를 감행했는데 정말 진도가 안 나갔다.
120쪽을 넘어가니까 좀 더 속도가 붙긴 했지만, 그 앞쪽은 읽어내는 게 지독히 힘들었다. 문장이, 말이 아니었다! 이게 작가의 문제인지 번역가의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둘 모두의 책임인 것 같은....;;;;
일단, 문장이 정말 매끄럽지 않다. 한 문장이 끊기지 않고 굉장히 긴 편인데 영어 번역 문장은 대개 그렇지만, 그걸 입에 착 달라붙에, 매끄럽게 읽히도록 만드는 게 번역가의 몫이 아닌가. 아무리 주인공 에드워드가 100 가까이 열 일곱살로 살고 있다지만, 웃음 소리를 표현할 때 '껄껄' 웃었다고 쓰고, 구어체 문장에서 '했다.'로 끝나는 종결 어미는 너무 심하지 않은가. 원서에 어떻게 쓰여 있을 지는 알 수 없지만, 번역가의 센스 부족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걸 제외한다면 문장의 몰입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작가의 재능 부족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첫번째 소설이라고 알고 있다. 작가의 훌륭한 상상력에는 기꺼이 박수를 보낼 수 있는데, 문장 낭비는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일으킨다. 에피소드가 재미있기는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너무 길다. 내 생각에는 350페이지 정도면, 그러니까 대략 절반 정도면 끝낼 이야기를 너무 늘여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벨라의 입장에서 서술을 하는데, 그녀의 시선이 이동하는 모든 것을 다 언급하고 지나간다. 그녀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다 풀어놓는다. 이건, 낭비다. 적당한 점프, 생략이 필요한데 그같은 기술은 작가에게 아직 부재한 듯 싶다. 아마도 뉴문, 이클립스로 넘어가면 그런 것들은 좀 더 다듬어지지 않을까. 그렇지만 시리즈 중에선 트와일라잇이 가장 짧다는 거...ㅜ.ㅜ
그래도, 난 원래 상상력이 뛰어난 작가를 더 선호하는 편이니 작가가 밉지는 않다. 제일 좋았던 설정은 이들 뱀파이어 가족이 대낮에도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설정인데, 다만 햇살이 찬란한 날만 피한다는 그들의 방침이 신선하다. 그래서 워싱턴 주라는 늘 흐리고 비가 많이 내리는 습한 지역이 배경으로 설정된다.
읽으면서 계속 느끼게 되는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정말 땅덩어리가 크다는 사실이었다. 주인공 벨라가 피닉스에서 포크스로 이사올 때 사흘 길을 달려(날아) 왔고, 제법 큰 서점을 찾기 위해 시애틀까지 나가야 했으며, 학교 등하교는 자가용 없이는 상당히 힘든 그네들의 일상 생활이라니. 우리로서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부분들이다. 그래서 또 궁금해지는 건, 에드워드가 피닉스로 벨라를 찾으러 올 때 오전 9시 30분 비행기 도착이었는데, 그 맑은 날씨의 피닉스에 어떤 차림으로 내렸을까? 책에서는 그 장면이 나오지 않고 영화에서도 (당연히) 나오지 않았는데 어마어마한 모자와 선글라스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크게 중요하진 않다만.
인간을 사냥하지 않는, 자칭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그들 식구. 그러면서도 외로움에 사랑을 갈망하는 존재. 뱀파이어란 각별한 특성으로 갖게 된 놀라움 미모와 강인한 힘, 그리고 우아한 몸짓. 무수히 길었던 시간을 이용해서 습득할 수 있었단 각종 기술과 또 재능. 그리고 특별한 능력까지. 참으로 곁에 있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들이다. 그런 그들 앞에서 벨라가 스스로 작아지는 것은 지극이 이해가 된다. 영화로 보여주었다시피, 본인은 모르지만 지극히 예쁜 그녀의 미모 외에, 에드워드를 사로잡을 특별한 무언가가 벨라에게 있을까? 또래의 고등학생 틴에이저들과는 조금 남다른 성향을 갖고 있는 그녀. 몹시 무뚝뚝하고, 사교성 제로에 게다가 지극한 몸치와 운동신경-200%. 결국, '보호본능'을 자극한다는 건데... 실제로 에드워드는 그녀를 지키지 못해서 안달이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하면 주인공들의 설정은 굉장히 전형적이다. 누군가 미국판 귀여니라고도 했고, 할리퀸 로맨스 소설이란 평도 들리던데, 그게 어느 정도 타당한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잠을 전혀 자지 않는 에드워드가 잠들어 있는 벨라를 지켜보면서 그녀의 꿈에 관심을 갖는 대목. 자신의 꿈을 꾼 것을 수줍어하고 부끄러워하는 벨라에게,
"쑥스러워하지 마. 내가 꿈을 꿀 수 있다면 네 꿈을 꿀 거야. 그렇다 해도 난 그게 전혀 부끄럽지 않아."
라고 속삭여주는 이 판타스틱한 왕자님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2편 '뉴문'에서는 인디언 소년 제이콥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에드워드의 비중이 줄어든다고 하니 벌써 안타까움이 솟을 지경이다.
에드워드와 언제까지고 함께 있고픈 마음에 그를 따라서 뱀파이어가 되고 싶은 벨라. 그 마음을 절대로 받아줄 수 없는 에드워드. 그네들 나름으로는 아주 진지하고 서글픈 고민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갈등들이 독자들을 긴장시키고 또 흥분시킨다. 뭐랄까. 조금 빤하기도 하고 너무 말도 안 되기도 하는데, 이렇게 아찔하고도 위험한, 그래서 더 본능적인(심지어 피를 갈망하는!) 사랑, 살면서 한 번 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게 내 사랑이 되어버리면 두려움이 더 앞설 수 있지만, 꿈속이라면, 이런 사랑은 얼마나 부럽고 또 부러운 감정들일까.
영화에서는 특수효과를 이용해서 에드워드의 힘과 스피드를 제대로 보여주었는데, 그런 장면장면들이 눈앞에 아직도 아른거린다. 영화는 책의 내용을 굉장히 충실하게 재현해 놓았다. 사냥꾼의 경우는, 오히려 영화의 배우가 원작보다 더 리얼하게 재현해 낸 게 아닐까.
나로서는 기대치가 굉장히 높은 상황에서, 게다가 영화로 인해 캐릭터의 느낌이 이미 잡힌 상태에서 원작을 읽으니 느린 진행과 발목을 잡는 문장들로 꽤나 답답함을 느꼈다. 다음 시리즈에선 그런 답답함과 아쉬움들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3권 이클립스는 이미 구입을 했고, '뉴문'은 이제 구할 차례다. 지금 마음으로서는 빌려 읽고 싶다.(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