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1권
굽시니스트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책이 만화의 형식으로 출간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그런 책은 어린이용이라도 가급적 보려고 한다. 물론, 이 책은 어린이용은 아니다. ^^ 

나로서는 상당히 낯선 형태의 책이었다. '본격'이란 단어가 이렇게 웃기게 들릴 줄이야. 디씨 인사이드에서 굽시니스트님이 어떤 분인지는 전혀 알지 못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겠다. 이 분, 제대로 오덕후시다! 게다가 패러디의 거장이랄까! 

그러니까 대략 이런 분위기다.  



미술학도가 되고 싶었던 히틀러의 패러디다. 소녀물을 그리는 오덕후 스타일의 히틀러라니, 이건 정말 발상 자체가 차원이 너무 다르지 않은가! 이렇게 심각한 인물도 얼마든지 희화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그와 비슷한 여타 다른 독재자들의 운명(?)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패러디로 점철된 내용들이 쭈우욱 진행되고, 한 챕터가 끝나면 인용한 패러디의 원작이 무엇인지 출처를 밝히고 있다. 내가 아는 작품도 있지만 모르는 작품들도 많다. 대강 알고 있는 나도 이 정도로 웃으면서 봤다면, 인용 작품의 용도(?)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더 쓰디쓴 웃음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제대로 웃긴닫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이를 테면 이런 거다. 



프랑스의 '마지노선'을 이야기하면서 등장한 마음의 소리 패러디다. 못 오를 나무를 쳐다볼 게 아니라 돌아서 가면 된다는 이야기.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그 어머어마했던 마지노선에 대한 제대로 된 풍자가 아닐까.  

인터넷 용어를 남발 정도가 아니라 아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데, 그 문체만 보고 있어도 절로 웃기다. 물론, 그런 점 때문에 이 책을 읽고 즐길 수 있는 독자는 좀 한정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역사적 진실까지 왜곡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뜻밖에도(?) 역사 공부를 쫌! 하신 분이다. 하핫! 



거의 2미터에 육박하는 키를 가진 드골 준장. 그의 큰 키를 우습게 표현한 대목이다. 그 큰 키를 유용하게 써보라고 했더니 등장한 저 풍선 인형. 아하하핫, 울지 못해 웃는다.  

그리고 나를 무한정 웃게 했던 이 씬! 



내가 참 좋아하는 최종병기 그녀의 명 장면 패러디다. 제목도 제대로 비껴갔다. '최종병신 괴링' 

이런 모습이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저 발그레한 표정. 원작의 그 심각한 장면이 이렇게 변신할 수 있다니 놀랍고도 감탄스러울 뿐이다.  



이 장면은 좀 더 유명하니 알아보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바로 데스 노트의 L을 패러디한 것이다.  

스탈린이 히틀러의 배신을 미리 짐작하지 않았을까 하는 대목. 원작에서 엘은 라이토가 키라라는 것을 확신한 채로 죽는다. 바로 그 장면의 눈이 흐려지는 모습을 스탈린에게 접목시켰다. 놀라운 조화(?)랄까.  

패러디에 원작 소개만 남기면 진짜 진실이 잘못 해석될 수 있으니, 매 장마다 실제 이야기도 같이 적어준다. 그러니까 패러디로 한 번 웃고, 나를 웃긴 원작이 무엇인지 한 번 확인하고, 그리고 역사 속 실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3단계의 과정을 거치면서 진행된다. 그리고 마지막 씬. 뒷 권을 기대하게 만드는 그 묘미라니! 



극적으로 살아난 볼로쟈와 마리아 부부가 다시 가진 아기 이름은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러시아의 푸틴이다. 우연과 필연이 겹치고 반복되는 역사의 현장을 강조해서 보여준 대목이다.  

그리고 맨 뒷장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예고편' 



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이름, 지명, 사건들... 그것들이 단지 검은 바탕 위에 하얀 글씨로 정렬해 있을 뿐인데, 무규칙 속에서 일정한 패턴과 흐름을 보여주는 '디자인'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난 이 장면을 보면서 뒷권 내용에 대한 더 강렬한 갈망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패러디와 코믹으로 포장이 된 2차 세계대전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어찌 짐작했을까. 코드가 안 맞는 사람은 거부감이 들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반가운 시도였다. 작가가 주류의 길을 걸은 역사가가 아닌 덕분에(!) 조금 더 다른 접근, 시도, 해석, 아이디어가 보인다. 작가의 역사 공부가 계속 진행되는 한 이런 시도는 다른 방향으로 더 진전될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한국전쟁, 베트남전, 그리고 무수한.... 꼭 전쟁사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강철의 연금술사가 궁금해져 버렸으니, 다른 장르, 다른 책으로의 전염(?)도 가능한 책 전도사가 되니 그도 바람직한 노릇일 것이다.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은 부분은 또 담아둘 수 있으니 역시나 고마운 책이다.  

애니북스에서 나온 책들이 굉장히 마음에 들곤 하는 요즘이다. 그런데 이 책, 새 책 냄새가 좀 많이 난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석유 냄새 같은 느낌? 이 책의 소재와도 좀 많이 어울리긴 한다. 

하여간 이 책, 오덕후가 만든 2차세계대전 야사 같은 느낌이다. 반갑고 즐거운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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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1-12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서점에서 보고 산다는걸 깜빡했어요. 재밌겠네요. http://homa.egloos.com/ 여기가 굽시니스트 블로그에요.

마노아 2009-01-13 12:30   좋아요 0 | URL
옷,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놀러가볼게요. 재밌을 것 같아요. ^^

아영엄마 2009-01-21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이 리뷰가 이번에 리뷰대회에서 [경영/만화/자기계발/실용/여행]분야에서 일등하셨네요.
그 외에 다른 책 리뷰들도 선정되셨고.. 왕~ 축하해요!!

마노아 2009-01-21 22:24   좋아요 0 | URL
으하하핫, 아영엄마님! 축하 감사해요^^
제가 보기엔 이 책에 다른 리뷰가 없었던 게 아닐까요ㅜㅜ
그래도 기뻐요. 유후~!

순오기 2009-01-22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축하해요~ 리뷰 읽으러 들어왔어요.^^

마노아 2009-01-22 00:49   좋아요 0 | URL
헤헷, 감사해요. ^^
아무래도 저는 부전승(?) 같긴 하지만 그래도 행운이지요. ^^

희망찬샘 2009-01-22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었군요. 마노아님은 글도 잘 쓰시고, 또 아주 많이많이 쓰시니 받을 결과를 받으신 거지요. 다시 한 번 더 축하드려요.

마노아 2009-01-22 11:14   좋아요 0 | URL
하핫, 감사합니다~ 리뷰대회 때문에 산 책이 상금을 훨씬~ 넘어요. 전 밑졌어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