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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들의 노래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35
다이안 셀든 글, 개리 블라이드 그림, 고진하 옮김 / 비룡소 / 1996년 9월
이 책을 누구 서재에서 보고서 보관함에 오래 묵혀두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중고샵에서 발견하는 순간 내 눈에서 빛이 났던 건 확실히 기억한다.
케이트 그린어웨이 대상을 수상했다. 칼데콧 상 받은 책을 더 많이 접하다 보니 보다 익숙하긴 하지만, 케이트 그린어웨이 수상작도 실망해본 적이 없는 듯.
확실히 이 책은 그림책이다. 아, 얼마나 섬세하고도 산뜻한 떨림을 주던지.
어느 날 할머니가 들려주신 고래 이야기.
고래들이 좋아하는 것을 가져다 주면 고래가 너를 찾을 거란 이야기.
그러니까 그들은 선물을 주고 받는 마니또 같은 존재.
할머니와 손녀는 진지하건만, 할머니의 동생 프레드릭 할아버지는 이런 그들이 못마땅하다.
그림이 어찌나 사실적이든지, 꼬장꼬장한 프레드릭 할아버지의 옆 얼굴에서 노인의 완고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어린 릴리는 많이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고, 할머니는 난처한 얼굴을 하고 계시다.
고래의 꿈을 꾼 릴리는 텅빈 바닷가에서 고래에게 꽃을 선물한다.
한송이 노란 꽃이 바다로 낙하중이다.
바다라고 했지만 아래는 진흙더미처럼 시커멓게 보인다.
여기까지는 환상적인 분위기가 다소 약한 편이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마법을 볼 시간!
자다가 깬 릴리에게 들려오는 먼 바다의 소리.
그것은 바로 고래의 노래 소리.
아, 고래의 노래란 어떤 것일까.
고래들이 일으킨 물보라 위에서 춤추는 노란 꽃.
고래들은 답례를 할 줄 아는 동물이었던 것이다.
멋진 우정이 이들에게서 싹트는 순간!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선명하고 또 몽롱했던 고래와의 추억.
그림이 마치 사진을 찍어놓은 듯이 그려졌다.
아이의 맑은 눈동자에 호기심과 의아함, 감동과 선망의 물결이 출렁인다.
오늘 낮에 중고샵에서 이 작가의 다른 책을 발견했는데 선뜻 장바구니에 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후회가 된다. 최근엔 동화책 사는 걸 좀 줄여보려고 했는데, 역시나 동화책은 투자해도 아깝지 않은 멋진 책이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 아직도 안 팔렸으면 그 책은 내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