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中庸)』에 보면 '誠者는 天之道요, 誠之者는 人之道'라는 말이 나옵니다. 성(誠)스러운 것은 하늘의 도(道)요, 성(誠)스러워지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면 완전한 것은 하늘의 도요, 완전해지려고 노력하는 자세는 곧 인간의 도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태 복음』에는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참사랑이란 한계를 두지 않는 것입니다. 용서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요 너그럽고 관대해지는 마음입니다.
용서야말로 인간의 근본적인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태도요, 인간으로서 완전에 가까워지기 위한 어려운 걸음의 첫발을 디디는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하는 마음에는 꼭 인내를 필요로 하도록 배려하신 것입니다.
『사랑의 기도』의 저자 J. 갈로는 ?용서?에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용서해 주시듯 우리도 이웃을 용서할 줄 알게 해 주십시오.
잠시라도 마음에 원한을 품는 일 없이 즉시 용서할 줄 알게 해 주십시오.
입으로만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모든 것을 용서할 줄 알게 해 주십시오.
조건을 붙이거나 제한을 두지 않고 온전히 용서할 줄 알게 해 주십시오.
( …… )
저 자신도 많은 잘못을 저질러 이웃의 용서를 받아야만 했으니 (…… ) 모쪼록 겸허한 마음으로 용서할 줄 알게 해 주십시오.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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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폭풍이 일어 분노를 채워 잠이 들고, 분노에 잠이 깨던 새벽이었다. 그 아침에, 도종환의 편지는 '용서'를 말하고 있다.
용서하지 못해 폭풍이 이는 내 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바로 오늘 이 시간, 이런 글을 나로 하여금 읽게 한다.
나 자신이 연약한 마음을 지닌지라, 늘 넘지 못하는 고개가 있다.
어찌해야 용서할 수 있을까. 어찌해야 잊을 수 있을까. 어찌해야 자유로울 수 있을까.
매해, 매달, 매일, 나는 내 마음과 싸우는데.
나는 그가 미안함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왜 미안함을 늘 그렇게 몰염치로 표현하는 것일까.
용서하는 것이 이토록 힘들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