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평소보다 잠을 한 시간 더 잤을 뿐인데도 몸살 기가 많이 가라앉았다. 기침은 여전하지만 쿡쿡 쑤시는 증상은 조금만 남았을 뿐.

그런데 목소리가 많이 갈라져서 수업(중학교 2학년 사회)을 다 진행하기는 어려웠다. 절반 정도 진행하고 절반은 자습을 시킬 생각이었는데, 한 여학생이 내게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직업이 뭐에요?"

"엉?"

난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나더러 선생님이라고 불러놓고 내 직업이 뭐냔다. 그럼 네 눈엔 내가 뭐로 보인다는 거지?

"교사"

그랬더니 그 옆의 학생이 다시 묻는다.

"선생님은 비정규직이에요?"

헉! 누가 이 아이들에게 그런 단어를 알려줬나 잠깐 생각했는데 주범은 나였던 것 같다. 사회 문제를 얘기할 때 우리 사회에 점점 커지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단 얘기 곧잘 했었다. 그게 실은 내 얘기이기도 하다고는 안 했지만, 원래 계시던 선생님 대신 몇 달 대신 와 있는 이 선생님의 정체(!)가 애들은 궁금했던 것이다.

악의 없는 호기심 성 질문이지만 나는 마음이 아팠다. 또 다른 아이가 '사이시옷' 얘기를 했는데 훌륭한 책이라는 얘기를 했고, 뒤이어 다른 질문들이 더 이어져서 저 얘기는 금세 묻혔다.

국사도 가르치나요?

그럼. 원래 역사 전공이야.

세계사에 어울릴 것 같아요.

난 국사 수업을 더 좋아한단다.

상상이 안돼요.

뭐, 대강 그런 이야기.

수업은 그렇게 마쳤고, 자리에 돌아와 통장 잔고를 확인해 봤다. 오늘은 월급날이거든.

예상은 했지만 많이 부족한 금액.

처음 내 계약기간은 10월 31일부터 11월 29일까지 30일 간이었다. 병가 내신 선생님은 수술 후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갑상선 암이었다.) 두달을 더 쉬라는 진단을 받았고, 자연스레 계약기간은 연장되었다. 그렇게 해서 날짜를 다시 계산하면 12월 29일까지 계약을 잡아야 마땅하건만(이 학교는 방학이 12월 30일이다.) 내 계약 기간은 12월 26일로 잡혔다.

이유는 뻔하다. 27일이 놀토고, 28일이 일요일이니까. 계약 기간을 당김으로 인한 급여 이득은 당연히 정교사 샘이 가져가신다. 한달 계약 기간 잡고도 기뻐했던 내가, 두달로 연장되면서 무척 좋아했던 나니까, 그걸 생각하면 불평거리도 안 될 것 같지만, 사람 마음은 간사해서 섭섭하긴 하다. 그렇게 해서 12월에 5일(수업량은 달랑 4시간) 비는 것으로 인해 월급은 대략 30만원 정도 빠진다. 계약 기간 축소로 손해본 것은 대략 10만원 조금 넘을 것이다.

급여 부분은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으므로 속은 쓰리지만 충격은 없었고, 첫번째 사건은 확실히 충격이 크다.

게다가 화딱지 나게 식대가 하루치 더 나왔다. 뭐 이건 설명하고 되돌려 받으면 되는 거지만.(점심값은 3천원)

억울하면 출세해라, 라는 말로 자르기엔 갑갑한 구석이 많다. 월급날이 되면 엄한 데 메꾸느라 한없이 우울해지는 나로서는 더 착잡한 일이다. 매일 다짐하지만 또 다시 누군가가 미워지려고 해서.

기분전환 한답시고 책 지름신을 불러들이면 다음 달 결제일에 후회하겠지? 참자.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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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7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7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주 2008-12-17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그렇게 치사스럽게 날짜를 잡는 거였군여..이런 젠장할..
저도 기분전환이 필요해요~ㅠㅠ
마노아님 힘내세요. 더러워서라도 식대는 꼭 받아내시구요. ㅠ

마노아 2008-12-17 23:40   좋아요 0 | URL
담당자분이 오늘 출장을 가셔서 내일 받으려고요. 게다가 듣보잡 보험료가 빠져나갔길래 그것도 문의하려고요. 벼룩의 간을 떼어먹을 일이지..ㅜ.ㅜ

순오기 2008-12-17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비정규직이 만연하는 사회 슬퍼요~~~
인간들이 정말 치사하게 굴어요. 지들이 그런 대우 받으면 방방 뛸거면서 남한테 왜 그리 박절한지...

마노아 2008-12-17 23:40   좋아요 0 | URL
그래서 작년에 제게 1년 꽉 채워서 복직해서 퇴직금을 안겨준 선생님이 참 고마웠어요. 그런 사람 진짜 드물거든요. 하루라도 먼저 와서 한 푼이라도 더 받아가려고 하니까요ㅠ.ㅠ

Kitty 2008-12-18 0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요즘 세상에 점심값이 3천원이라니요 ㅠㅠ (먹는 것에 많이 연연하는 1인;;) 그것도 하루 덜 주다니 -_-;;;
너무하잖아욧!! 꼭 다른 좋은 자리가 기다릴꺼에요. 얼른 아픈거 나으시구 힘내세요! 홧팅!!

마노아 2008-12-18 10:35   좋아요 0 | URL
학교 급식이라 좀 싼 편이지요. 근데 재료가 부실하다는 게 티가 나요. 조미료 냄새도 무지 많이 나고요. 결국 제 값을 한다니까요ㅠㅜ
화이팅 감사해요^^

L.SHIN 2008-12-18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역사를 좋아합니다. 마노님이 수업을 하시면 어쩐지 귀에 속속 들어올 것 같다는..^^

마노아 2008-12-18 10:35   좋아요 0 | URL
아하핫, 학생들도 넋을 잃고 들을 때가 많습니다.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요^^

무스탕 2008-12-18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가들도 뭔가 느끼는게 있어서 물어봤을지도 몰라요.
정규직 교사와 몇달짜리-_-;; 비정규직 교사와 비교했을때 마노아님의 수업이 더 재미있고 잘 이해가 돼서요.
비정규직은 정말 슬픈 현실이에요.. ㅠ.ㅠ

마노아 2008-12-18 10:37   좋아요 0 | URL
그런 사람이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라는 건 위로가 아니라 절망이지요. 갈수록 더 많아질 거란 생각은 처참하기도 하구요. ㅠ.ㅠ

노이에자이트 2008-12-18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면 한달에서 며칠 모자라게 계산하는 것은 정규직 교사가 원해서 그렇게 하는 건가요?

마노아 2008-12-18 21:56   좋아요 0 | URL
넵. 계약서를 썼어도 정교사가 중간에 복직하겠다고 하면 그게 우선이거든요. 방학 직전에 돌아오시는 분들은 무수히 많아요. 헌데 이 분은 그 며칠도 또 당겨 가져가셔서 제 맘을 아프게 하네요.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