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도를 할 때는 무릎을 꿇어야 하죠? 저라면 정말 기도하고 싶을 때 이렇게 하겠어요. 혼자 드넓은 들판에 나가거나 깊고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서 하늘을 올려다볼 거예요. 푸른색이 끝없이 펼쳐진 것처럼 보이는 아름답고 푸른 하늘을 높이, 높이, 높이 올려다볼 거예요. 그런 마음으로 기도가 느껴질 거예요. 자, 저는 준비됐어요. 뭐라고 말해야 하나요?"-87쪽
"네, 한꺼번에 다 먹지는 않을 거예요. 오늘 밤에는 하나만 먹을 거예요, 마릴라 아주머니. 절반은 다이애나에게 주고 싶은데, 괜찮겠죠? 다이애나에게 좀 주면 나머지 절반이 두 배는 맛있을 거예요. 다이애나에게 줄 것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뻐요."-143쪽
"마릴라 아주머니, 뭔가를 기대하는 게 그것에서 얻는 기쁨의 절반이에요. 그걸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걸 기대하는 재미는 무엇도 막을 수가 없거든요. 린드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하다. 실망하지도 않을 테니까'라고 말씀하지만, 저는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150-151쪽
그 길을 걸으며 앤은 "단풍나무는 아주 사교적인 나무야. 항상 바스락거리며 너한테 속삭이잖아"라고 말하곤 했다. -169쪽
"절대로 길버트 블라이스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필립스 선생님도 내 이름을 쓰면서 e를 빼먹었어. 내 영혼이 학대받았어, 다이애나."-179쪽
"마릴라 아주머니, 10월이 있는 세상에 살아서 너무 좋아요. 만약 9월에서 11월로 곧장 넘어가버리면 끔찍할 것 같지 않나요? 이 단풍나무 가지 좀 보세요. 가슴이 두근대지 않나요? 이걸로 제 방을 장식할 거예요."
미적 감각이 별로 발달하지 못한 마릴라가 말했다.
"지저분하다. 밖에 있어야 할 걸로 방을 온통 어질러놓았잖니. 침실은 잠을 자는 곳이다."
"꿈을 꾸는 곳이기도 해요, 마릴라 아주머니. 또 방에 예쁜 것이 많으면 훨씬 더 멋진 꿈을 꿀 수 있잖아요. 이 가지들을 파란 단지에 꽂아서 제 책상 위에 올려놓을 거예요."-190쪽
길버트에게는 순전히 선의의 경쟁이었지만 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바람직하지는 않았지만 앤은 원한을 품어두는 경향이 있었다. 앤은 사랑도 증오도 모두 격렬했다. 앤은 학교에서 길버트와 경쟁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앤이 고집스레 무시하던 길버트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는 꼴이기 때문이었다. -215쪽
"마릴라 아주머니, 내일이 아직 아무런 실수도 저지르지 않은 새 날이라고 생각하면 기쁘지 않으세요?"
"내일도 너는 많은 실수를 저지를 거다. 너처럼 실수투성이인 애는 본 적이 없으니까."-273쪽
"그래도 제가 상상력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상상을 하면서 지내면 견디는데 도움이 될 거예요. 상상력이 없는 사람은 뼈가 부러졌을 때 어떻게 견뎌낼까요."-289쪽
매슈는 앤의 교육 문제에는 상관하지 않기로 한 걸 벌써 몇 번이고 다행이라 생각했다. 앤의 교육은 전적으로 마릴라의 책임이었다. 매슈가 앤의 교육을 책임졌더라면, 앤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은 마음과 의무감 사이에서 갈등하며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는 매슈는 마릴라의 표현대로 마음껏 '앤을 망쳐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것도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작은 '이해'가 세상에서 가장 공들인 '교육' 만큼 효과가 큰 법이다.-298쪽
"아무것도 먹지 못할 거 같아요. 이렇게 흥분이 되는 순간에 아침은 너무 현실적이잖아요. 전 차라리 이 드레스를 보면서 눈의 성찬을 즐기겠어요. 퍼프소매가 아직 유행하고 있어 정말 다행이에요. 제가 이런 드레스를 입어보지도 못하고 유행이 지나가버렸더라면 그 아쉬움을 절대로 잊지 못했을 거예요. 전 사실 제 옷에 만족할 수 없었거든요. 그리고 저에게 리본을 주시다니 린드 아주머니도 너무 친절하신 분이에요. 이런 때에는 모범생이 아닌 게 정말로 유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언제나 앞으로는 모범생이 되자고 결심하지만 떨쳐버릴 수 없는 유혹을 이겨내기가 정말로 힘이 들거든요. 다음부터는 정말로 노력해야겠어요."-309쪽
마릴라가 나가자, 한쪽 구석에 말없이 앉아있던 매슈가 앤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네 낭만을 모두 포기하지는 말거라, 앤. 조금은 괜찮아. 물론, 너무 많이는 말고. 조금은 간직하거라. 조금은."-347쪽
"오늘 저녁은 꼭 자줏빛 꿈같지 않니, 다이애나? 살아 있다는 게 너무 기뻐. 아침에는 아침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지만 저녁이 오면 저녁이 더 좋은 것 같아."-349쪽
조시 파이가 레이스 뜨기에서 일등을 했어요. 저도 정말로 기뻤어요. 또 조시가 일등을 해서 내가 정말로 기뻐하는 것도 기뻤어요. 제가 그만큼 나아졌다는 증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마릴라 아주머니?"-354쪽
"배리 할머니는 약속하신 것처럼 우리를 손님방에서 자게 해 주셨어요. 정말 멋진 방이었어요, 마릴라 아주머니, 하지만 손님 방에서 잠을 자는 일이 왠지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좋지는 않았어요. 그 점이 어른이 돼 가면서 나쁜 점이겠죠. 그것을 깨닫기 시작했어요. 어렸을 적에 원하던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면 생각했던 것보다 절반도 좋지를 않아요."-356쪽
다이애나는 자기도 도시 체질인 것 같다고 말했어요. 배리 할머니가 저도 그러냐고 물어보셨는데 저는 진지하게 생각을 해본 다음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어요. 그래서 잠자리에 든 다음 생각을 해보았죠. 그때가 뭔가를 생각하기엔 가장 좋거든요. 그래서 결론을 내렸는데요, 마릴라 아주머니, 저는 도시 체질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기뻐요. 가끔은 밤 11시에 멋진 레스토랑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도 좋긴 하지만, 평소에는 11시면 제 동쪽 방에서 편안히 잠들어 있는 게 더 좋거든요. 내가 잠든 사이에 밖에서는 별들이 빛나고 바람은 시내를 건너 전나무 숲으로 불어오겠구나 생각하면서요."-357쪽
"세상에, 언제 키가 이렇게 컸니?" 그리고 긴 한숨이 이어졌다. 이상하게도 앤이 크는 것이 아쉬웠다. 마릴라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준 아이는 어느덧 사라져버리고, 껑충 커버리고 진지한 눈빛과 생각에 잠긴 듯한 이마와 자신감에 넘치는 작은 얼굴을 가진 열다섯 살의 소녀가 눈앞에 서 있었다. 마릴라는 과거의 작은 아이만큼이나 지금의 이 소녀를 사랑했지만 뭔가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그날 밤 앤이 다이애나와 기도회에 간 후, 마릴라는 겨울 저녁의 어스름 속에 혼자 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383쪽
아, 다이애나, 수학 시험만 끝낸다면! 하지만 린드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듯이 내가 수학에서 실패하든 성공하든 태양은 변함없이 떠오르고 또 지겠지. 맞는 말이지만 특별히 위로가 되지는 않아. 차라리, 내가 실패하면 태양도 뜨지 않는 게 낫겠어!
-너의 충실한 친구, 앤-393쪽
3주가 지나도 합격자 명단은 발표되지 않았다. 앤은 그런 긴장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식욕도 떨어졌고, 에이번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졌다. 린드 부인은 보수당원인 교육감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냐고 빈정댔고, 앤이 매일 오후 우체국에서 창백한 얼굴로 기운 없이 터덜터덜 돌아오는 모습을 지켜보던 매슈는 다음 선거에서는 자유당에 투표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395쪽
"제 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커요. 목표가 좀 바뀌었을 뿐이죠. 저는 좋은 선생님이 될 거예요. 아주머니의 눈도 지켜드릴 거예요. 공부는 여기 집에서도 할 수 있어요. 저 혼자서 대학 과정을 조금씩 공부해나가면 돼요. 계획이 아주 많아요, 마릴라 아주머니. 1주일 내내 생각했거든요. 여기서 최선을 다할 것이고 그렇게 하면 뭐든 얻게 되겠죠. 퀸스 학교를 졸업할 때는 제 미래가 곧게 뻗어있는 길롬나 나아갈 줄 알았어요. 그 길을 따라가면 많은 이정표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그 길에 굽은 길이 생겼어요. 그 모퉁이를 돌아가면 무엇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 지 저도 몰라요. 하지만 좋은 게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거예요. 모퉁이 너머에 어떤 길이 있을지 궁금해요. 어떤 초록빛 영광, 부드럽고 얼룩덜룩한 빛과 그림자가 있을지 궁금해요. 어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어떤 새로운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날지, 또 어떤 모퉁이와 언덕과 골짜기가 있을지 궁금해요."-455쪽
퀸스에서 집에 돌아와 그곳에 있던 날 밤 이후로 앤의 세계는 좁아지고 말았다. 앤은 앞에 놓인 길이 좁아지긴 했지만, 그 길을 따라 평화로운 행복의 꽃이 피어나리라고 확신했다. 성실한 노력과 가치 있는 꿈, 마음이 맞는 친구에게 얻는 기쁨이 앤의 것이 될 테고, 타고난 상상력과 꿈에 그리는 이상적인 세계를 앤에게서 빼앗아 갈 것은 없었다. 길에는 언제나 모퉁이가 있기 마련이다!
앤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하느님은 천국에 계시고, 땅에서는 모든 것이 평화롭도다."-4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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