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차 소리가 진동을 하고 주변은 온통 연기가 자욱했다.

길 가던 사람들이 모두 멈춰서 발을 동동 굴리며 지켜본다.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 일단 밖으로 나가보았다. 이 어두운 밤에 시커멓고 하얀 연기가 가득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사람이 죽었다고 하고, 어느 아주머니가 벽을 붙잡고 올고 계시는 게 보인다.

너무 추워서 이빨이 다닥다닥 부딪치고, 비는 계속해서 내리는데, 어떻게 움직일 바를 몰랐다.

그때, 또 다른 아주머니가 윗층에 아이들이 있다고 우리집 위쪽으로 올라갈 수 있냐고 한다.

서둘러 안내를 하고 소방관 아저씨들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다행히 사람은 죽은 것 같지는 않다. 지하 1층 노래방에서 불이 났는데 주인 아주머니는 무섭다고 계속 울고 계신다.

소방관 아저씨는 사람 안 다쳤으니 괜찮은 거라고 계속 위로해 주신다.

다친 사람이 없다고 하니 퍼뜩 정신이 든다. 윗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알고 보니, 옆 건물 옥탑방에는 그 건물 1층 생고기집의 가정집이 있었고, 거기에 아이들 둘이 있었다.

조금 큰 여자와(나이가 짐작이 안 갔다.) 아주 어린 남자 아이랑.

내가 위로 올라갔을 때 그들은 맨발로 뛰쳐나오던 중이었다.

급한대로 일단 우리 집에 들였는데, 그 와중에도 까맣게 지저분해진 발 때문에 못 들어가겠다고 주저한다.

괜찮다고 하고 안으로 들인 뒤 모포를 갖다주고 난로를 켜고 더운 물을 갖다주고 난리 법석이었다.

어린 아이는 경기 들린 것처럼 울고 있었고 누나도 훌쩍거리며 어딘가로 전화 통화를 한다.

이웃이었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옆 건물 옥상에서 우리집 건물 옥상으로 소방관 아저씨가 넘겨주셨고, 그 바람에 아래로 내려올 수 있었는데, 그들은 연기 자욱한 그곳에서 내려가지도 못하고 얼마나 놀랐을까.

우리집 윗층집은 꼭 문을 잠그고 사는데, 거기 문이 닫혀 있으면 옥상으로 올라갈 수가 없다.

그나마 윗집에 사람이 있을 때 일이 난 게 불행 중 다행..ㅠ.ㅠ

아무튼 놀란 두 남매는 곧 병원으로 이동했다. 급히 양말을 신겨보내고 운동화도 내주고 겉옷도 입혀줬다.

화재의 원인은 전기 합선이 맞았다.  어려운 경제 여파 때문인지 노래방에는 손님이 한 사람도 없었다. 그 조차도 감사할 일.

소방차는 언뜻 보았을 때 8대가 보인다. 뒤쪽으로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1차선 도로에 온통 붉은 차 뿐이다.

우리 집에도 연기가 자욱하게 깔렸다. 오늘 중으로 빠질 지 알 수가 없다.

유독가스가 심해서 지금도 코끝에서 탄 내가 난다.

문득, 십여 년 전 기억이 떠오른다.

그땐 우리 집도 지하였는데 나 혼자 있을 때 전기 합선으로 불이 났다.

불이 나면 신고를 해야 하고, 소화기도 써야 하는데(우리 집엔 소화기가 있었다.) 그런 생각은 머리 속에 절대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나는, 집에서 도망쳤다.(ㅡ.ㅡ;;;;)

바로 좀 전에 집을 나간 엄마를 잡아야 된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이다.

문제는, 엄마를 신호등 앞에서 바로 놓쳤고, 그 와중에 우리 집 부엌은 새까맣게 탔고, 2층 아저씨가 내려오셔서 소화기로 불을 끄셨고 뒤늦게 소방차가 왔다.

그 사건 이후 두고두고 욕 먹었다. 수습은 않고 뛰쳐나갔다고.

하지만,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더랬다.

불이라는 게, 정말 무섭다. 한 순간에 끝나버릴 수 있다는 것.

오늘은 집으로 책상자가 하나 오고, 편의점에서 하나 찾아왔었다. 무수히 쌓인 내 책들.

사실 보지 못한 책도 엄청 많은데, 불타면 한 순간에 재가 될 그것들을 욕망처럼 쌓아놓고 사는구나.

한심하다고 혀를 차놓고는, 상황 종료된 순간 책 장바구니 결재 버튼을 눌렀다.

엄마를 부탁해, 오늘만 알사탕 1,000개 준다고 해서..ㅠ.ㅠ

순간의 깨달음은 한 시간을 유지하지 못하는구나. 한심함을 넘어서 무섭다. 망각의 동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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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8-11-21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큰일이 있었군요. 늘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8대나 오다니, 그것은 그만큼 화재 사고 별로 없어서 한가롭다는 뜻이겠죠.
그것도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기가 어려운 이 겨울, 홧김에 화재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마노아 2008-11-21 08:26   좋아요 0 | URL
다른 곳에 사고가 없어서 한 곳으로 집중되어 모였을 수도 있겠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나마 또 다행이에요. 홧김에 저지르는 방화 사건은 더 끔찍하지요. 종종 뉴스에서 그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아찔하지요.
어제 화재 현장을 보니 소방수분들이 유독 더 고맙더라구요. 원래도 고마운 거였는데 눈앞에서 불이 난 걸 보니 저분들 없으면 어쩌나 싶은 데 더 실감나더라구요.

하늘바람 2008-11-21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도 근처에 불이 난걸 살짝 본적 잇는데 아주 무서웠었거든요, 날씨도 추운데 무서우셨겠어요

마노아 2008-11-21 13:25   좋아요 0 | URL
무섭고 아찔했어요. 주변에 불이 번졌으면 그 밤중에 또 얼마나 큰 소동이 있었을까요. 생명이라는 게 한 순간에 앗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 살벌하게 실감나더라구요.

무스탕 2008-11-21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났나고 신고 들어가면 일단 기본으로 출동하는 분량(?)이 있나봐요.
저도 꽤 오래전에 한 밤중에 잠이 안와서 -_- 베란다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그때 살던집은 베란다에서 큰 길이 보였죠) 길 건너편 상가 앞으로 소방차가 대따 많이 오는거에요. 내 눈엔 불도 안보이는데 말이에요..;;
다시 잘 찾아보니 가게 앞에 내 놓은 평상에 불이 났더라구요. 출동 했으니 불은 끄고 다시 돌아가기 전에 주변도 한참 둘러보고 그러더라구요.
하여간 놀래셨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진화돼서 다행이고요. 크게 번져 옆으로 피해가 확산됐으면 어쩔뻔했어요?
무조건 조심조심 불조심입니다!!

마노아 2008-11-21 13:57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예요. 화재 규모에 비해서 출동 차량이 많아 보이긴 했어요. 그런데도 유독가스는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 화장실 갔다가 숨막혀서 혼났지 뭐예요. 화장실 창이 불난 옆건물 방향으로 나 있거든요.
언제든 안전은 '예방'에서 오는 거지요. 휴우... 또한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구요. 자나깨나 불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