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해결의 단서, 구더기 [제 815 호/2008-09-24]


서울 인근의 야산에서 꽤 오래된 것 같은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 산속까지 어떻게 알고 왔는지 구더기들이 코와 입 등에 들끓고 있었다. 시신은 부패가 많이 진행되어 육안으로는 누구인지 전혀 구별할 수 없었다. 그의 옷과 소지품 등에서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단서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증거를 찾지 못했다. 신원을 알 수 없어 더 이상 수사가 진행될 수 없었고, 미궁에 빠진 수사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상황이었다.

신원 확인이 안 되는 시신의 경우는 시신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인 성별, 연령 등을 확인하는 검사를 한다. 치아의 마모정도로 연령을 측정함으로써 변사자의 대략의 나이를 알 수 있으며, 두개골에 대한 법의인류학적 판단으로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알 수 있어 수사 범위를 좁힐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추정되는 사람이 나타나서 그들과 비교가 되어야지만 누구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체가 발견된 수사에 있어서 시신의 신원 확인이 불가능하면 일단 시신이 언제 그곳에 유기되었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그곳에 유기된 날짜를 역 추적하여 그때에 실종된 사람을 중심으로 수사를 하게 되면 변사자의 신원 확인이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유기된 날짜를 역 추적하는 것은 수사가 진행되면서 용의자와의 관련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시신이 유기된 시간을 중심으로 용의자들의 행적을 정밀하게 검사함으로써 범행을 밝힐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실마리가 된 것은 바로 구더기였다. 구더기하면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더럽다, 징그럽다’라는 단어가 연상되는데, 과연 이것이 어떻게 사건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을까? 구더기들의 생활사 중 어느 단계인가를 관찰하면 사후경과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 발견 당시까지 성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여 거꾸로 시간을 역산하면 거의 정확한 사망 시점을 계산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망하게 되면 파리가 시신의 코, 입 등 서식에 알맞은 곳에 알 또는 유충(쉬파리는 구더기를 낳는다)을 낳는다. 이들 유충은 성장을 거쳐 번데기로 되고 성충인 파리로 된다. 이때 유충(구더기)이 단계별 (1령, 2령, 3령 및 번데기)로 성장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측정하여 사후경과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 유충은 온도, 습도 등 외부적인 요인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들의 영향에 따른 성장 속도 등을 연구하여 이를 반영한 후 사후경과시간을 계산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사계절이 뚜렷하기 때문에 더욱 그의 계산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시신이 유기된 지 오래된 경우도 어떤 종류의 곤충이 공격을 하고 있는지를 관찰하여 부패 과정에서 관여하는 지표 종들과 비교함으로써 사후 경과시간을 비교적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다. 시체를 공격하는 생물 중 약 85%는 곤충이다. 시신의 부패가 진행되면서 곤충들은 그들의 생활 습성과 주요 먹이습성에 따라 시간을 두고 모여든다. 가장 먼저 시체에 접근하는 곤충은 검정 파리, 쉬파리와 같은 파리들이다. 이들은 몇 분 안에 시신에 도착하여 부패가 진행된 후 2주까지 시신에 머물기 때문에 초기의 사후 경과시간의 지표로 비교적 정확하다. 그 후 송장벌레와 같은 딱정벌레가 파리의 알과 구더기를 먹기 위해 몰려들고, 그다음으로 개미나 말벌 같은 잡식성 곤충들이 달려든다.

이렇듯 범죄와 관련된 여러 가지의 정보 및 증거를 제공하기 위해 시신의 주변에서 관찰되는 여러 곤충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가 법곤충학이다. 법곤충학을 이용한 사건의 해결은 18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때 처음으로 사건에 적용된 이후 1960년대 들어서는 동물의 사체를 대상으로 한 과학적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 연구에서 사체의 부패가 진행되는 단계에 따라 이에 관여하는 곤충 등에 대한 세부적인 연구가 진행되어 많은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 결과는 법곤충학의 과학적 기반을 마련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과학수사의 영역은 제한이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곳에서 범죄는 일어나게 마련이고 이러한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과학수사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수사는 모든 학문적 영역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흉악 범죄의 경우 모든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서라도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이 중 법곤충학도 매우 중요한 분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추후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면 사건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과학 수사에서는 구더기 같은 작은 생물마저도 사건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단서로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많은 과학수사 관련자들의 이러한 노력이 있는 한, 모든 범죄는 반드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범죄 수법이 변화하는 것만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과학도 진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 : 박기원 박사(국립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분석과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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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08-09-24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찍 일어나시는군요 ^^
구더기 기사로 즐거운 하루를 시작하..쿨럭;;

마노아 2008-09-24 08:39   좋아요 0 | URL
이번 주는 출근모드라서 새벽같은 기상이에요^^ㅎㅎㅎ
근데 정말 새벽 댓바람부터 구더기 얘기를 꺼냈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9-24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의학에 법곤충학이 있군요.읽어보니 중요한 학문이군요.말벌이나 딱정벌레도 한 몫 끼네요.저는 범죄야화 같은 분야에 관심이 있지요.

마노아 2008-09-24 15:58   좋아요 0 | URL
범죄야화는 어떤 분야인가요?? 천일야화만 생각나는걸요...;;;;
몽골 관련 교수님 설명 듣다가, 저번에 얘기해 준 일본 작가 이름을 들었어요. 시바 료타로. 구하긴 힘들지만 '몽골의 초원' 기회 닿으면 읽어보라고 하시더라구요. 노이에자이트님 생각이 났어요6^^

노이에자이트 2008-09-25 17:21   좋아요 0 | URL
중요한 범죄이야기지요.논픽션이구요.별 건 없어요.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우리나라 어린이 대상 성범죄 범인의 거의 대부분이 60대 이상 남자라는 거죠.
그런데 몽골의 초원은 소설이 아닐 걸요.달단 질풍록은 금나라에서 청나라 초기까지가 배경인 역사소설이에요.이 책에서 여진족과 몽고족의 라이벌 관계,수렵족과 유목족의 차이에 관해 알게 되었지요.시바는 소설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그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데 그게 구수하고 재미있어요.도서관에서 빌려서 열심히 요약했지요.타타르를 한자음으로 달단이라고 하지요.좀더 학술적으로 알고 싶으면 김한규<한중 관계사>가 좋아요.너무 두툼하니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으셔도 됩니다.

마노아 2008-09-26 00:00   좋아요 0 | URL
우헤헷, 저 아까 중고샵에서 '몽골의 초원' 구매했어요. 4500원 정가 책을 4000원에 파는데 배송비가 3200원이더군요. 그래도 절판된 책을 집에 앉아서 구했다는 게 기쁠 따름이지요. 노이에자이트님 덕분이에요^^
한중 관계사는 1권 품절이던데, 1.2권 합해서 1000페이지가 넘더라구요. 꺄우!
달단이란 발음을, 영웅문에서 본 것 같기도 하구요... 선명하게 기억은 안 나네요.
아무튼, 말씀해주시는 책들 잘 기억해둬야겠어요. 고맙습니다^^

다락방 2008-09-24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에는 법곤충학을 이용한 새로운 조사 방법들이 거의 매일 생기고 있다. 특이한 강간사건을 조사하는 몇몇 대학 동료들은 최근에 인간의 DNA에서 유전 정보를 찾기 위해 이의 소화관에 든 피의 성분을 분석하기도 했다. 내 연구실 학생들은 빈대의 위장에 든 내용물을 분석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이러한 분석의 의미는 상당히 큰데, 특히 강간이나 살인과 같은 범죄의 경우 곤충에게서 용의자의 DNA 정보를 빼내 결정적인 증거로 이용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M. 리고프作,『파리가 잡은 범인』中

마노아 2008-09-25 11:31   좋아요 0 | URL
오옷, 파리가 잡은 범인이라니, 의미 심장합니다. 이 분야 영역이 확대되고 있군요. 꽤 유용한 연구 같아요.

2008-09-24 2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25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조기후 2008-09-26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제 즐거운 꿈나라;로 가야할 시간에 시체와 구더기;;; 아하학;
법곤충학이라는 게 다 있군요.. 굉장히 흥미로운 분야네요. 비위만 좀 강하다면^^:

마노아 2008-09-26 08:58   좋아요 0 | URL
전 비위가 강한가 봐요. 이거 읽고도 아무렇지도 않았거든요. 근데 공포영화는 못 본다는 거^^;;;;

노이에자이트 2008-09-26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바 료타로의 동창인 진순신의 중국사도 재밌죠.열 몇권 짜리 대작이라 내용도 풍부하고 이야기체라 재미있어요.하.은,주나라 때부터 현대중국까지 다 다루죠.틈틈이 찾아볼 때도 편해요.

마노아 2008-09-26 17:18   좋아요 0 | URL
지난번 얘기해 준 소설 십팔사략의 저자군요. 중국사는 현재 모두 절판이던데 헌책방에서나 귀하게 구할 수 있겠군요. 아니면 도서관에서요. 노이에자이트님은 나중에 책에 관한 책을 써도 될 것 같아요. 다양하게 많은 정보를 갖고 계세요. 대단대단!

노이에자이트 2008-09-27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저는 칭찬받으면 겸손할 줄을 모르니 조절해서 해주세요.

마노아 2008-09-27 18:21   좋아요 0 | URL
아하핫! 그럽지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