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따뜻한 제목 아래 숨겨져 있던 엄청난 폭력과 슬픔의 내용을 이미 겪었는데, '즐거운 인생'이라는 제목 뒤에도 그와 같은 반전이 있을 거라고, 미리 짐작했어야 했다.  도서관에 새 책이 도착했다고 하길래, 제일 먼저 달려가서 미등록 도서를 빌려와서는, 조금은 두근거리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책장을 기쁘게 펼쳤는데, 내가 이렇게 많이 울면서 읽을 거라고는 정말 생각해보지 못했다.  작품이 많이 슬프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개인적인 경험 혹은 어떤 상처가 건드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맙소사, 타이밍이 정말 안 좋았다!

세번 이혼하고, 각기 다른 성을 가진 세 아이들과 함께 사는 베스트 셀러 작가의 이야기. 바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다.  분명히 이 작품은 픽션이고, 상상력과 허구, 어느 정도의 미화와 포장이 포함되어 있겠지만, 그녀와 아이들의 경험과 축적된 기억이 바탕이 되어 있을 것이고, 때로 그것들은 날것 그대로 노출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이런 글들을 불편하게 여길 것이고 또 누군가는 비아냥 섞인 말들을 내뱉겠지만,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게 비난받을 일은 아니지 않은가. 유독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에게, 또 그 중에서 예쁜, 그리고 잘 나가는 인사들에게 박하게 구는 경향이 있다. 공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기에 그녀가 감수해야 하는 일정량의 형벌같은 관심이 늘 따라다니지만 때로 그것이 너무 지나쳐 보일 때가 있다. 작품을 읽는 내내 나로서는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와 그녀의 세 아들 딸에게도.

작품은 큰 딸 '위녕'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엄마, 아빠의 이혼으로 새엄마와 7년을 보내었던 위녕이, 어떤 계기를 통해 아빠를 버리고 엄마에게로 돌아가면서 작품은 시작된다. 낯선 도시에서 새 학교, 새 친구,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위녕이 느끼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들은 너무 조숙해서 오히려 위태로운 느낌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친엄마 없이 보냈던 유년 시절의 어떤 부재에서 오는 빈 공간 때문일 것이다. 독자도 느끼는데 친엄마가 그것을 모를 리 없다. 너무 일찍, 너무 쉽게 엄마 아빠를, 그리고 새 엄마를 용서하지 말라는 당부가 참으로 아프게 박힌다.

작품 속에서 보여지는 위녕의 엄마와 아빠는, 불과 물 같아서 서로 어떻게 섞이어 살았을지 상상이 안 간다.  어쩌면 섞이지 못했기에 갈라져서 살게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명왕성이 태양계의 행성 자리를 잃어버린 것을 묘사하면서 위녕은 이렇게 얘기한다. 그건 아빠 식으로 표현하면 '퇴출'이고 엄마 식으로 표현하면 명왕성이 '자유'를 얻은 것이라고. 누가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그저 '달랐을' 뿐이었다. 서로 같은 목표를 향해 투쟁할 때는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공동의 목표가 이뤄지고/혹은 사라지고 나자 부부는 서로를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만다. 서로가 서로에게 구속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결별 이상의 다른 선택이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아이에게는 당연히 미안하고 또 미안한 일인데도, 이혼은 정해진 순서였다.

그렇게 상처를 안고도 또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었냐고 묻는다면, 내가 그 입장이 아닌데 어떻게 대변을 하겠느냐마는, 그게 왜 불가능한지도 설명하지 못하겠다. 어쨌든 그녀는 새로운 사랑을 찾았고, 그 사랑에 몰입하여 결혼이라는 것을 했다. 당연히 아이도 가졌다. 그런데 그 사랑이 오래 갈 수가 없었다. 그녀가 사회적으로 얻은 명성과 부가 오히려 부부 사이에 장벽이 되어버렸다. 서로가 예술을 하던 사람이니까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맘처럼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에게 매맞고 다음 날 페미니즘 강의를 나갔어야 했다고 말하는 베스트 셀러 작가. 그렇게 살았다는데, 그녀가 다시 이혼을 했다고 해서 어찌 돌을 던질까?

세번째 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소설에서 쓰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작품 속에서는 굳이 나오지 않아도 전혀 이야기에 방해되지 않는 구조였다. 그녀는 영리하기만 할 뿐아니라 노련하기까지 했다. 당연하다. 중견 작가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세번이나 이혼을 했는데 상처가 없을 수 없고 자격지심이 없을 수 없었다. 딸 자식의 방문 앞을 교대로 지켰다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옛 기억에는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딸이 세번이나 이혼했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싫지만 그래도 그 딸이 불행해지는 것은 더 싫다고 말하는 아버지라니, 암 수술을 받는 날짜에 딸이 해외 학회에 참석하게 되자 기꺼이 다녀오라고 말해주는 아버지, 자신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그래서 후회 따윈 없다고 말해주는 아버지라니...... 그런 아버지가 있으니, 어제 불행했던 것도 억울한데 오늘까지 불행하게 살 수는 없다고 주먹 쥐고 일어서는 강한 그녀가 태어날 수 있었나 보다. 새삼스레, 부모가 줄 수 있는 영향력과 기꺼이 되어주는 기둥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가족이란 그런 거라고. 그래야만 하는 거라고......

버려진 새끼 고양이 두마리를 키우게 된 일, 그 중 한마리와 이별하게 되고 또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는 과정. 그리고 그 사이에 접하게 된 동생의 친아버지의 죽음 등등. 생명과 죽음의 반복된 테두리 안에서 작품 속 주인공 위녕은 성장한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엄마도 함께 자라버린다. 덮어두었던 상처의 치유와 함께. 서로를 보듬어 가며 위로해 주는 장면들이 참으로 애틋하고, 때로 다른 누군가의 부족함으로 위안을 삼아버리는 미안한 마음들에도 크게 공감해 본다. 그래, 우리는 모두들 그렇게 작고 작은 사람들이지......

작가 자신이 자식들에게 공부 잘해야 행복해지는 것 아니라고, 무엇이 우선순위인지를 힘주어 말하는 대목들은 뜨거웠다. 그것이 오늘의 우리 교육 현실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 알기에, 그리고 실제로도 그녀가 그런 태도로 임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그러했다. 참교육이 어떻고 지성인이 어떻고 말하는 그녀의 친구들의 자녀들이 모두 유학 가서 학위를 받는 '엄친딸, 엄친아'들이기에 그 대조성은 더욱 두드러졌다. 살짝 비틀어 조롱하는 솜씨에 어쩐지 고소하다는 느낌.

새엄마와 아빠에 대한 오랜 상처를 극복해내기 위해서, 그들에게 상처를 주어서라도 풀어버리고 싶은 마음의 자물쇠를, 엄마는 극구 반대했었다. 그것이 딸 위녕에게 다시 상처로 돌아올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러나 위녕은 완강했고 결국 엄마는 딸을 이겨내지 못했다. 대신 그녀가 택한 것은 딸의 잘못된 선택에 동참하여 그 죄의식을 같이 지고 가는 것.  나는 말렸으니 책임 없다, 가 아니라...... 말리지 못했으니 함께 가겠다고 말하는 그 엄마의 마음이 나는 오래오래 짠했다. 엄마가 아니라면 누가 그렇게 해줄까 싶어서 말이다.

결과적으로, 위녕은 자유를 얻었다. 비록 아빠에게 어느 정도의 상처를 주었지만, 위녕이 성장한 것처럼 아빠도 그 자신의 성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신만 피해자인 척 하는 것, 정말 어른스럽지 못한 일이 아닌가. 물론, 진짜 속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위녕이 고3 수능을 보고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장면은 좀 비약이 있어 보였다.  앞 부분에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계기가 보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어떤 선생님을 꿈꾸는지 말하는 대목에 있어선 코끝이 찡했다. 너무나 많아진 이혼율 때문에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야 하는 것을 현장에서 느끼기 때문에 더 그랬다. 비록 위녕은 엄마 아빠의 이혼으로 큰 상처를 안고 자라왔지만,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엄마 밑에서 역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행복한 아이로 성장해냈기 때문에, 그런 위녕이 품어안고 가르칠 아이들은 좀 더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 본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작가 공지영은 똑똑하다. 작품을 보면 그런 느낌이 강하다. 어떻게 쓰면 독자들이 감동하고 또 어느 대목에서 울어버릴 것인지 알고 있는 작가로 느껴진다. 어쩐지 깍쟁이 같고 어쩐지 약은 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 작가에게 감동하고 또 공감하는 내가 싫지 않다. 재미도 주고 감동도 주는 매력적인 작가인데 고마워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녀가 만들어낸, 그리고 여전히 만들어 가고 있는 '즐거운' 나의 집에 아련히 웃어 본다. 외형적인, 물질적인 즐거움도 무시할 수 없지만, 결국엔 그 안의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 그 구성원들의 몫이 제일 크다는 것도 새삼 다시 한 번 느낀다. 그래서, 사실 그래서 나는 지금 많이 슬프다. 내 가까운 누군가가 겪게 된 어떤 슬픔 때문에. 아이들은 아무 죄가 없지만, 아이들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결코 하지 말라고, 나는 꼭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작품 속 위녕이 말했듯이, 엄마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행복할 수 없다고. 그게 진실이라고. 세상의 시선이 아무리 차갑더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한 것이라면 나는 반드시 지지하겠다고...... 즐거운 나의 집을, 꼭 만들어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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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7-23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마노아님, 저도 막 이 책 리뷰를 쓰려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마노아님 만큼 큰 감동을 못받았어요. 바로 마지막 구절에 쓰신 이유때문인 것 같아요. 어떻게 쓰면 독자들이 감동할지 알고 썼다는 것이 바로 그 독자의 눈에 너무 여실히 나타나서요. 하지만 글을 잘 쓰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아요.
'즐거운 나의집' 만들기가 얼마나 녹녹치 않은 일인지, 저도 가끔 그런 것을 느낀답니다. 그래서 언젠가 제 서재에 그 노래를 올린 적도 있지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마노아 2008-07-23 11:40   좋아요 0 | URL
개인적인 어떤 사정 때문에 이 책이 밟힌 것 같아요. 영리하고 약은 게 눈에 보여서 나아중에 다시 들춰보고 두고두고 곱씹을 작품으로 기억되긴 힘들 것 같지만, 그래도 그 순간에 내게 폭발적인 눈물을 주었던 것은 분명하니까, 기꺼이 별 다섯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즐거운 나의 집 노래 올렸던 게 생각나요. 그 노래, 슬퍼요..ㅠㅠ

연두부 2008-07-23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읽고...공지영씨...참 영리한 작가네....하는 생각이...쩝

마노아 2008-07-23 11:41   좋아요 0 | URL
베스트 셀러 작가가 괜히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순오기 2008-07-23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으며 독자의 상황과 감성이 어떠냐에 따라 감동의 폭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나는 큰딸 대학입학식을 앞두고 인천 동생집에서 읽으며 그 부모님의 심정에 동감하며 많이 울었어요~
그때의 내 상황과 감성이 그랬어요.ㅜㅜ
공지영씨 똑똑하니까 그런 삶을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도 들었고요. 작품 속 위녕은 교대에 갔지만,
실제는 작가를 지망한다고~ 시비돌이님이 알려주셨어요.^^

마노아 2008-07-23 11:44   좋아요 0 | URL
시비돌이님 댓글 본 기억이 나요. 얼마만큼이 실제 모습이고 얼마만큼이 허구인지 많이 궁금해지더라구요. 사생활의 영역이니까 궁금해도 어쩔 수 없지만요.
암튼, 사람들이 하듯이 무턱대고 돌만 던질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누구에게나 다 이유는 있으니까요. 이 책 다음에 나온 에세이집도 읽어보려고 해요^^

순오기 2008-07-24 03:44   좋아요 0 | URL
저한테 행운을 가져다 준~ 민주의 생일선물이었고 이주의 리뷰를 안겨주었죠.^^

마노아 2008-07-24 08:59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랬었어요^^ 생일 선물로 책을 사주는 엄마라니, 너무 근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