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리 국어사전 - 남녘과 북녘의 초.중등 학생들이 함께 보는
토박이 사전 편찬실 엮음, 윤구병 감수 / 보리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친구의 생일 선물로 친구의 딸을 위한 국어사전을 구입했다. 단행본으로는 내가 구입해본 책 중에서 최고가를 자랑한다.
국어사전을 오랜만에 펼쳐보았다. 기분이 야릇하다. 언제나 디지털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모처럼 아날로그로 돌아간 기분. 게다가 이것은 '어린이를 위한' 국어사전이 아닌가. 보리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세밀화'가 같이 들어가 있다. 사진을 필요로 하는 것은 사진으로 들어가 있지만 대부분은 직접 그린 그림이다. 그 정성이 놀랍고 고맙다.
제작 기간이 7년 반이었다. 남쪽 어린이와 북쪽 어린이가 함께 볼 수 있는 국어사전을 만들겠다고 각오한 첫 마음이 고맙고 뜨겁다. 일곱차례에 걸쳐 개정된 초등학교 교과서를 모두 찾아서 초등학생들에게 필요한 단어를 모두 실었다고 한다. 그렇게 찾고 찾다 보니 사전의 부피가 무려 1500쪽에 달했다. 여기에 우리나라 산과 들의 동식물과 우리 겨레의 전통문화를 표현한 2,400점의 세밀화가 따라왔다.
부드러운 종이의 질감이 기분을 좋게 하는데, 눈부시지 않은 색감이 더 맘에 든다. 눈을 피로하게 하는 하얀색이 아니라 약간 미색에 가까운 아이보리빛 바탕색을 갖고 있다. 글씨도 작지 않고 강조된 글씨와 첨부한 북한말 표기가 도드라지게 보인다.
'색깔'을 주제로 한 장이다. 칼라로 색을 설명했을 뿐아니라 색깔에 관한 단어들을 정답게 풀어놓았다. 옮겨보면 이렇다.
색깔은 빛깔이라고도 해요. 되쏘는 빛이 색이니까요. '푸르다'는 풀에서 나왔어요. 그래서 '풀이 푸르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려요. '누르다'는 누리에서 나왔어요. 누리는 옛말로 땅이었대요.(지금은 세상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지만요.) '희다'는 해에서 나왔어요.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에는 '희다'를 '해다'로 썼대요. '붉다'는 불에서 나왔어요. 그러면 '검다'는어디에서 나왔을까요? '검'에서 나왔어요. '검'은 하늘을 가리키는 옛말이에요. 해가 비치기 전 밤하늘을 쳐다보세요. 검지요? 천자문에도 나와 있어요. 하늘은 검이고(검고), 땅은 누리다(누르다)라고요. 색깔을 가리키는 말은 '푸르다, 누르다, 희다, 붉다, 검다' 다섯 가지가 바탕이 되어요. 여기에서 다른 말들이 가지를 많이 쳤어요.
이런 식으로 주제 항목으로 묶은 페이지들이 곧잘 눈에 띈다. 새들을 한꺼번에 세밀화로 모아놓은 장의 그림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양서류와 파충류 친구들도 사진으로 보면 질색팔색할 것 같은데 어쩐지 그림으로 보니 정겨운 느낌이다. 기존에 보리에서 작업한 어린이 도감에서의 누적된 역량이 이런 데에서도 빛을 발하는 듯하다.
편집에 참여한 분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이 많은 단어들의 뜻을 다 어떻게 아느냐고. 수많은 책들을 참고하고, 기존의 연구성과를 반영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감각'을 믿고 작업했다고 했다. 그 말이 참 믿음직스러웠고 근사해 보여서 나는 속으로 되뇌어 보기까지 했다. 나의 감각을 믿는다... 나 자신을 믿는다라고 들려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 맘대로 찾고 싶은 단어들을 가나다 순으로 들춰보았다. 예쁜 단어들이 내게로 쏟아진다.
가람 '강'의 옛말
공화국(共和國) 국민이 뽑은 대표자가 법에 따라 다스리는 나라.
나래(날개) '날개'의 강원도 사투리. 또는 '날개'를 곱게 이르는 말
동구나무 동네 어귀에 있는 나무
로션(lotion) 살갗을 부드럽고 촉촉하게 가꾸어 주는 화장품. (북. 물크림)<<<북한말 표기
명료하다 뜻이나 내용 들이 뚜렷하다. <<글을 더 간단하고 명료하게 써라.>>
민주주의(民主主義)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고 국민의 뜻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고 이끌어 가는 정치 제도나 사상. 참)전제주의.
바빠맞다(북) 형편이나 처지가 몹시 어렵고 급하다. <<얼마나 바빠맞으면 이렇게 추운 날에 땀을 뻘뻘 흘릴까.>>
삭정이 살아 있는 나무에 붙은 채로 말라 죽은 나뭇가지
아름드리 둘레가 한 아름이 넘게 큰 것. <<아름드리 소나무>>
죄받다 지은 죄에 걸맞은 벌을 받게 되다. <<할머니는 귀한 쌀을 버리면 죄받는다고 말씀하셨다.>>
촛불 초에 켠 불. 북)초불.
쾌재 마음먹은 대로 잘되어 만족스럽게 여기는 것. <<선영이랑 같은 반이 되었다는 말에 쾌재를 불렀다.>>
터줏대감 마을이나 단체 같은 데서 가장 오래되어 힘이 있는 사람. <<할아버지는 우리 마을의 터줏대감이시다.>>
품행(品行) 사람의 됨됨이와 행동. <<영경이는 품행이 단정하다.>>
하야(下野)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 하야하다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서 대통령이 하야하고 새 정부가 들어섰다.>>
책 뒤편으로는 부록으로 나라 이름에 대한 설명이 실렸다. 국기가 나오고 국명, 위치, 수도, 언어, 특징들을 기록했다.
조카랑은 나라 이름과 수도 이름을 연결한 노래를 곧잘 부르곤 했는데 우리가 아는 나라와 수도 이름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놀이가 될 것이다. 이 사전을 받아들고 친구와 친구의 예쁜 딸도 나만큼 기뻐해 줄 것을 상상해 본다. 아마 분명히 그럴 것이다. 나도 내 감각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