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약속이 있었다. 고시원에 살다가 오피스텔에 이사한 지인의 집에 놀러가기로 한 날.

집을 나서려는데 어무이께서 한 말씀 하신다. "너 다음 주에 이승환 콘서트 가면 안 된다!"

허헛... 담주에 콘서트 있는 것을 어찌 아셨누? 광고를 보셨다고 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왜 안 된다고 하느냔 말이쥐...

사실, 내가 이승환 콘서트 쫓아다닌지 올해로 10년 째인데, 번번히 몰래 다녔다. 남들에게 설명하긴 어렵지만(나도 이해하지 못한다.) 울 집에선 나의 그런 행위(?)를 거의 범법 행위로 취급한다.  이미 3월에 예매했고, 당연히 나는 다음 주에 갈 것이다.  늘 가벼운 마음으로 못 다녀오게 하는 식구들의 행태가 기막히지만, 그렇다고 아니 갈 나도 아니다.

2. 언니네 집은 의왕시에 있었다. 꽤 먼 거리였지만 지하철에서 책 보면서 무사히 도착.  복층으로 구성된 자그마한 원룸인데 참으로 깨끗하고 안락해 보였다. 채광이 좋아서 6시가 넘은 시간까지도 형광등을 켤 필요가 없었다.  천만원에 월 40만원짜리 집이었는데 보는 순간 너무 맘에 들고 부러웠다.  독립을 하려면 이만큼의 자금은 필요하구나. 오옷 +_+!

3. 돌아올 때는 피곤해서 지하철 대신에 광역 버스를 탔다. 남대문에서 내렸는데 천막 뒤에 감춰진 숭례문을 보니 마음이 좀 아팠다.

4. 시청까지 걸어갔다. 환경 영화제를 하더라. 의자까지 다 갖춰놓고 커다란 스크린에 뽀대 나게 차려놨지만 내가 있을 곳은 아니었다. 청계광장으로 옮기는데..... 길을 못 찾겠더라. 한참 헤매다가 이정표 보고서 겨우 도착했다.

5. 이미 청계 광장엔 많은 시민들이 운집해 있었다. 무대는 보이지 않았고 그 옆의 자그마한 스크린으로 겨우 상황을 짐작해 본다. 시청과는 참으로 대조적인 모습.  시민들은 가족 단위로 연인단위로 혹은 친구끼리 모여 있었고 대개들 밝은 표정이었다.  강기갑 의원의 연설도 듣고,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의 발언도 듣고, 그밖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토로했고, 우리들도 구호를 외쳤다.  중간에 학생들 연극이 있었는데 화면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소리만으로 짐작하기엔 좀 지루하더라..;;;;

6. 아무튼,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구호를 외치고 또 노래도 따라 부르는데, 짧은 노래가 뜨겁게 느껴지며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들로부터 나온다.

짧고 단순한 노래였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진실과 원칙을 말해주는 듯했다.  근데 위정자들은 모른다는 것...;;;;;

7. 박부선씨도 나왔고, 트랜스픽션(?)이 나와서 즐거운 인생 삽입곡도 불렀다. 그리고 또 누군가 나왔는데 블랙콘??? 암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회 보신 분이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왕자님'을 모셔왔다고.  엥? 무슨 왕자님? 오늘 출연자로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은 윤도현과 김장훈 정도였다. 두 사람은 아무리 봐도 왕자님 소리 듣는 사람들이 아닌데 뭐지? 하고 쳐다보는데 내 귀를 의심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수 이승환씨가 오셨습니다!"

허걱! 이게 웬 뜻밖의 횡재인가! 벌떡 일어났다가 뒷사람 안 보일까 봐 보도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작은 스크린에 역시나 작은(..;;;) 이승환이 나왔다.  가수가 아닌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이 자리에 섰다는 그의 말이 감동적이다.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과 '천일동안'을 불렀다.  열악한 환경이다 보니 스키퍼에서 쇳소리 나고 웅웅 거리고 장난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참 고맙고 반갑더라.  아침에 엄마랑 싸우고 나왔던 이름의 사람을 이렇게 만나고 보니, 꼭 선물받은 기분이었다. 담주 공연은 당당히 즐겁게 다녀오리라!

8. 촛불 한자루가 대략 3시간 정도 타는 것 같았다. 초반에 종이컵에 불이 붙어서 막 당황했는데 밟아 끄고서 옆 사람 컵을 하나 받아서 불도 옮겨 붙였다.  구멍이 커서 촛농 떨어질 때 뜨거워 놀라기도 했지만 뭐 그쯤이야.... 작아진 촛불은 참 예뻤고, 그 촛불을 든 사람들은 더 아름다웠다.



9. 그 뒤로 김장훈이 나왔는데 노래 조금 듣다가 광장을 떠났다. 기다리면 윤도현도 볼 수 있을 테지만 너무 찬데 오래 앉아 있었더니 힘들어서 안 되겠더라.  시민들을 둘러싼 경찰들이 어찌나 많은지 좀 어이 없기도 했다. 저 중엔 잠복(?) 중인 교사들도 많이 있을 테지.  그 와중에 제복 입은 여경들은 참 멋져 보였다나 어쨌다나...;;;;

10. 오늘도 누에 애벌레 얘기를 안 하면 섭섭할 것 같아서리...;;;

두 마리 중 한마리가 드디어 고치를 만들었다. 하얗게 솜사탕처럼 북슬거리는 실들이 신기하다. 근데 다른 한 넘은 왜 고치 만들 생각을 안 할까? 이렇게 고치 만든 뒤 얼마나 있다가 나방(...;;;;)이 되는 걸까? 애벌레는 징그럽지만, 그래도 고치가 된 것은 참 신기하다.



요건 지난 주에 찍은 사진인데 지금은 이것보다 훨씬!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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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5-18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곤하시겠어요.
편한 밤 되시길...

마노아 2008-05-18 00:05   좋아요 0 | URL
그래야겠어요. hnine님도 편안한 밤 보내셔요^^

순오기 2008-05-18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당하게 살자! 눈치보지 말자! ^^

마노아 2008-05-18 13:35   좋아요 0 | URL
아자아자!!!

전호인 2008-05-18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실이 왜곡되면 살맛이 나질 않습니다.
진실대로 밝혀질 필요가 있고, 그 진실을 인정하면 될텐데 그것을 감추려고 하니 나설 수 밖에 없는 거겠지요.
어릴 때 집에서 누에를 쳤습니다.
여자분이 쉽질 않을 텐데....ㅎㅎ

마노아 2008-05-18 21:20   좋아요 0 | URL
진실이 꼭 승리할 때까지 우린 대동단결이에요!
누에는 조카가 유치원에서 어린이 날 선물로 받아왔어요. 나방 되면 날려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이제부터 뭘 해야 할지 잘 몰라요..;;;;;

무스탕 2008-05-18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의왕 옆에 군포에 살아요 :)


마노아 2008-05-18 21:20   좋아요 0 | URL
아핫, 안양이라서 그렇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