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 Art Travel 1
이주헌 지음 / 학고재 / 200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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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신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책이 나온 지 얼마 안 되었다고 느껴지는 건, 지금 현재 진행형으로 전시되고 있는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을 지난 주에 보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보고 가면 좀 더 그림을 보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열심히 읽었는데, 절반만 읽고 가고 나머지 절반은 다녀와서 읽게 되었다.  이 책에 나온 그림이 이번 서울 전시회에 같이 온 것은 대략 4편 정도로 아주 조금이었지만 전혀 도움이 아니 된 것은 또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지리적으로 굉장히 가까운 편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또 우리 근현대사에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까지 갖고 있는 러시아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라는 나라는 심리적으로 아주 먼 나라라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지리적 가까움을 빌려 '같은 동양'이라는 느낌보다는 '다른 서양'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서쪽으로 치우쳐서 발달했거니와 아무래도 생김새가 지극히 서양적이긴 하지...;;;)

저자 이주헌씨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두 도시의 대표적인 미술관인 트레티야코프 미술관과 푸슈킨 미술관 그리고 러시아 미술관과 에르미타슈 박물관을 다녀왔다. 저자도 서문에서 밝혔지만 두 도시의 대표격 미술관을 모두 다루느라고 심도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소장품이 너무 많은지라 고르는 데에도 여간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서울 전시회는 이 중에서 트레티야코프 미술관과 러시아 미술관의 소장품을 가져온 것이다.)

전시장에서도 느낀 거지만 책을 보면서 감탄한 부분이 '리얼리즘' 미술의 사진을 보는 듯한 형형한 그림과 '풍경화'에서 느껴지는 러시아의 거대한 자연의 웅혼함이었다. 

일랴 레핀의 그림은 특히 인상 깊었는데 초상화 그림에서 유독 도드라졌고, 손의 핏줄이라던가 눈빛의 형형함은 바로 코 앞에 실물을 갖다 놓은 듯한 인상마저도 풍겼다.

옆의 사진은 맨발의 톨스토이인데 대 작가의 일상의 모습을 스케치한 것이다.

맨발은 자연과 하나 되어 정직하고 순수한 삶을 살고자 했던 그의 의지를 엿보게 한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듣고 보니 그렇게 느껴진다. ^^;)

일랴 레핀의 다른 그림으로 '볼가 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도 몹시 인상적이었다.

바지선을 직접 몸으로 끌어내는 지친 인부들의 익숙한 얼굴들. 어느 곳에서나 사회 최하층을 차지하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신산한 삶이란 안쓰럽기 그지 없다.  그럼에도 제 앞의 생을 놓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하는 '근성'같은 것도 그림 속에서 같이 느껴진다. (이번 서울 전시회에서 이 그림의 초벌 스케치가 걸려 있는데 책 속 그림과 아주 '약간' 다르다.)



(해상도는 메롱이다. 게다가 줄이기까지 해서..;;)

이상하게 전에도 느꼈지만 이주헌씨의 책은 '대중적'이라는 찬사를 많이 받음에도 불구하고 나랑은 좀 안 맞았다.  어쩌면 그것이 미술 관련 서적의 특징일지도 모르겠지만 대체로 지루했다. 그래서 그림을 보는 즐거움이 있음에도 읽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내가 바라는 편집이 있다면, '귀족들의 은밀한 삶'처럼 양페이지를 다 차지하는 그림은 펼침메뉴로 책을 만들어서 그림을 펼쳐놓고 넓게 감상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설명도 그 페이지 안에서 끝나거나 단락이 마쳐질 수 있는 기묘한 편집!(사계절 출판사의 생활사 박물관 시리즈처럼 말이다!)을 원한다.  너무 배부른 투정일까?

아무튼 맘에 들었던 그림 몇 장을 더 올려본다.



이반 시쉬킨의 <겨울>

이 책의 제목처럼 '눈'이 온통 덮어버린 자작나무 숲이다.  러시아 하면 겨울이 생각나고 눈이 같이 연상되는 것은 당연하다.
어찌나 아름답고 근사하던지 보고 있으면 진짜로 추위가 느껴지는, 세포를 자극시키는 그림이었다.  춥지만 뭔가 신성한 느낌도 나는, 자연의 울림 같은 것이 묘하게 연상되어지는 그런 그림.

니콜라이 게의 <갈보리>라는 작품이다.  자세히 보면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쓴 것을 알 수 있다.  신의 아들이며 신의 인격화인 예수지만 자신 앞에 놓인 죽음의 잔은 두렵고 무서웠을 것이다.  그 고통과 공포의 순간을 포착한 그림인데 뒤에 있는 죄수의 귀신 같은 얼굴 덕분에 예수의 고통이 더 실감나게 느껴진다.

성화 그림에서 보통 보여지던 '신격화'보다 더 신성해 보이고 은혜(?)롭다고 해야 할까.

러시아의 역사를 보건대 기독교와도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이 역시 일부러 인식하지 않으면 잘 느껴지지 않는 일종의 선입견이다.  책에는 역사화도 많이 있고 종교화도 많이 있었다.

20세기의 추상화는 너무도 어렵고 멀게 느껴지며 사실 '아름다움'조차도 잘 못 느끼겠던데(전시회에서도 마찬가지!) 역사화와 풍경화, 또 초상화는 눈길을 떼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자꾸 전시회 이야기를 해서 민망하지만, 이번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에서의 놀라움 감격은 뜻밖에도 '고흐 전'보다도 더 깊었다.  좀 더 익숙하고 대중적으로 알려진 고흐보다 신선했던 러시아 미술에 호감이 더 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오후에 간 고흐전과 오전에 간 러시아 거장전의 차이도 한 몫 했을 것이다. )

이 책은 두 도시의 네 곳 미술관의 그림들을 '골라서' 자세히 언급해 주었고, 그 과정에서 러시아의 역사도 훑듯이 말해 주었다.(심지어 책 뒤에 러시아 역사 연표도 나온다.) 낯선 지명과 낯선 이름들만큼이나 낯선 러시아의 역사지만, 그림을 통해서 다가가니 좀 더 가깝게 느껴진달까. 아무래도 호감이 상승한다.

힘들게 마친 독서이지만 새해에 만난 러시아 미술과의 감회는 뜻깊다.  모처럼 눈과 마음이 함께 호강했달까. 다음 시리즈는 뉴욕, 런던, 북유럽이라고 하는데 이어지는 이주헌의 예술 여행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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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13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일요일 아침, 친절한 마노아샘 덕분에 러시아 미술 감상하고 좋아라~~~~ 나의 로망, 자작나무숲!
미술은 음악과 다르게 책이나 그림으로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아이들에게 보여줄 명화관련 책들만 보니, 심도있게 다룬 책은 못 보았어요.ㅠㅠ 학고재에서 미술 관련 책들을 잘 만들어주네요~ 감솨^^

마노아 2008-01-13 13:27   좋아요 0 | URL
이주헌씨랑 학고재랑 인연이 깊은가봐요.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도 학고재에서 출판되었네요.
자작나무는 발음만으로도 참 예뻐요. 저도 미술책은 아이들용 책만 보다가 모처럼 긴 페이지 책을 읽었더니 머리가 아파요^^;;;;

2008-01-13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3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8-01-13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열렬한 이주헌씨 팬!! ㅎㅎ 저도 고흐 전시회도 보고싶고 칸딘스키 전시회도 보고싶고 모딜리아니 전시회도 보고싶고... 아 멀어라...마노아님 얘기 듣고 나니 더 가고싶어요. ^^

마노아 2008-01-14 00:58   좋아요 0 | URL
저는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을 읽다가 중도 하차했어요. 다시 도전해야 해요^^;;;
고흐전 다녀오고 칸딘스키전 다녀오고 다음주에 모딜리아니 전 가려고 해요. 죄송...염장성 발언을^^;;;

2008-01-14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14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8-01-14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멋질 것 같아요. 보관함에 넣어둬야겠당^^

마노아 2008-01-14 22:21   좋아요 0 | URL
헤엣, 이 책 매력 있어요^^

딸기 2008-01-15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으로...

마노아 2008-01-15 17:44   좋아요 0 | URL
고고씽^^

딸기 2008-01-18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름신을 부추기는거지!

마노아 2008-01-18 10:25   좋아요 0 | URL
어머, 화들짝!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