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look very happy.
이주 전쯤 원어민 선생님이 내 굿모닝에 대한 인사로 해준 말이다. 그냥 아침 인사 하면서 살짝 웃었을 뿐인데, 그에게는 내가 참 행복해 보였나 보다. 사실, 그 전날 3주 동안 말 않던 언니랑 결국 내가 먼저 얘기 시작하면서 마음의 짐을 약간 덜어내긴 했었지만.
그때 내가 덜어낸 것은, 사실 말을 하지 않는 '답답함' 하나 뿐이었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나아진 것도 없었다.
내가 지고 가는 문제들은 여전히 산재해 있었는데, 달라질 것 없으므로 말을 않는다는 게 무의미 해서 다시 말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아마, 오늘부터 다시 말을 못하게 될 것 같다. 언제나 먼저 말문을 닫는 것은 언니이지만, 그로 인한 후폭풍을 담당하는 것이 내 몫이라는 변함없는 사실을 동반하며.
내가 수업 들어가는 2학년 세 반 중, 유독 나랑 잘 맞는 한 반이 있다. '공부는 못해도 좋으니 건강히, 밝게 자라다오'란 담임샘의 철학을 너무도 잘 따르는 그 반 아이들. 잘 따르니 얘기도 더 많이 해주었는데, 아이들 눈에 내가 참 행복해 보였나 보다.
그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은 대략 이렇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회 선생님!"
왜 그런 얘기가 나오냐 하면은, 색분필 하나만 가지고도 내가 너무 좋아라 해서, 전날 읽은 소설책과 동화책의 내용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그 주에 볼 영화 한편이 너무 기대되어서... 등등의 소소한 것들. 그런 작은 것들을 말할 때 내 표정이 정말 행복해 보여서...
원래 행복이란 거창한 게 아니라고, 그런 소소한 것들에 기쁨 느끼면서 감사할 줄 알면, 그게 바로 행복인 거라고.
그게 내 평소 생각이었으니까 아이들의 호칭은 바른 표현이다.
그렇지만 사실 내 마음밭을 들여다 보면 황량하기 이를 데가 없다. 온통 가시밭길이고 시각적으로 표현하면 현재 피 철철 흘리는 중이랄까.
함께 있어 소중한 가족인데, 가족이기에 너무 힘이 들 때가 있다. 치료하지 못하고 봉합해 버린 상처는 조금의 충격만 받아도 이내 다시 터지고 만다. 회복하려는 노력들이 무위로 돌아가버리면 다음 번에는 더 큰 용기를, 더 큰 희생을 요구해 버린다. 적어도 숨쉴 공간은 남겨두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나를 몰아치니... 나한테 왜 그리 잔인하니...
지난 여름, 내가 들었던 질문 하나. 꿈이 뭐냐고...
'행복'해지는 거라고... 대답했다.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한 말에 더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민폐 끼치지 않고 사는 것이요.'
그 말에는 민폐를 당하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도 같이 있었다. 비록 그때는 말할 수 없었지만.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 이모는 선보라고 전화를 하셨다. 생각 없다고 말했는데, 마음을 고쳐먹을까 또 고민중이다.
빨리 만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한 것 알지만, 일단 만나봐야 좋은 사람인지도 알 수 있는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