禁止를 금지하라 - 지승호의 열 번째 인터뷰집
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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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인터뷰어.  낯선 직업이다.  '기자'와 다른 것인가?  잘 모르겠다.  내게는 낯선 사람 지승호를, 책을 통해서 만났다.

그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다른 분들의 리뷰 덕분이었다.  리뷰를 맛깔스럽게 읽다 보니 책도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선물로 받게 된 책을 품어안고 일주일 쯤 읽었나 보다.  생각보다는 오래 걸렸다.  금방 읽히지 않는, 가볍지 않은 울분과 메시지들과 격한 호소들이 책속에 살아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 되어오던, 혹은 금지된 일을 거부하면서 격한 시간을 보내온 사람들을 인터뷰어 지승호가 만났다.  인권변호사, 참여연대, 아름다운 재단, 그리고 지금 희망제작소에서 일하시면서 사회운동의 큰 숲을 가꾸고 계신 박원순 변호사,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32권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꿰뚫은 작가, 그러나 태백산맥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고발을 당한 조정래, <즐거운 사라> 사건으로 사회와 학계에서 공개적인 왕따를 당했던, 그러나 굴하지 않고 위선을 벗어던질 것을 종용하는 마광수 교수, 인혁당 사건 때에도 그 자리에 계셨던, 그리고 평택 대추리에서도 묵묵히 가장 약하고 낮은 민중들과 함께 길을 걷는 구도자 문정현 신부님, 정부의 한미 FTA 졸속 추진에 대해 강한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정태인, 성역으로 간주된 삼성 공화국에 돌을 던지며 X-파일을 취재한 이상호 기자, 온 국민의 눈을 가린 황우석 사태를 파헤친 PD수첩의 최승호 CP, 그리고 이 사람들을 '인터뷰'를 통해서 독자 곁으로 다가서게 만들어준 지승호까지.  그렇게 8명과의 대화가 책 한 가득 실려 있다. 

각기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고, 사회적 위치와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지만, 결국 인터뷰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모두 제 분야에서 발벗고 뛰면서 사회의 낮은 자를 위해서 고심하고 또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애쓴 분들이다.  민주주의, 올바른 시민 정신, 표현의 자유, 계급 간의 불화 타파, 과장된 국익에 대한 신화 깨기 등등이 이분들이 일궈낸, 그리고 일구고 있는 너른 밭들이다.

각 개인에 대한 면모는 워낙에 유명하신 분들이니 신문상에서 이름과 얼굴을 아는 정도로 지나치곤 했지만, 진짜 그 속내와 진심까지 다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았다.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한발자국 이상 떨어져 있는 그 대상들은, 지승호의 질문 속에서 한발자국 그 안으로 다가서게 되고, 그들이 목울대를 세우며 던지는 화두들에 공감하게 된다.  그 과정들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서 인터뷰어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망각하게 되고, 인터뷰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그들의 목소리는 그들이 직접 쓴 저서를 만날 때보다 논리정연하지 않고 중첩되는 말이 반복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날것 그대로의 사실감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그들은 솔직하다.  대답하기 곤란한 것은 곤란하다고 말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난색을 표한다.  지승호는 구태여 그들을 구석으로 몰아 자극적인 답변을 얻어내지 않는다.  독자는 제3자의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지만,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을 때의 두 사람의 관계는 몹시 친근하고 또 민주적이었을 거라는 상상을 할 수 있다.

인터뷰어는 드러내지 않은 채 인터뷰 대상이 하고 싶은 말을 잘 끄집어 낸 것은 지승호의 능력이었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묻히는 인터뷰어의 존재가 좀 고독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맨 마지막에 본인의 셀프 인터뷰를 싣는 순간, 독자는 인터뷰어 자신과 지극히 가까워지고 그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이상호 기자와 지승호 인터뷰어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모두들 사회를 위해 애쓰시는 분들인데, 특히 이 두사람이 갖고 있는 불합리한 세대에 대한 분노와 이를 타파하기 위한 열정 등이 닮은 느낌이다.  비슷한 세대여서 그런 것일까?

우리 사회가 절차적 민주주의에 들어섰다고 말하지만(혹은 믿고 싶어하지만), 아직도 금서가 있고 국가보안법이 살아있고, 멀쩡한 국민들을 생존의 터전에서 몰아내는 국가가 여전히 떡 버티고 서 있다.  상대적인 의미로 과거보다 민주화를 이룩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먼 것은 사실이다.  애석한 일은, 어렵던 시절 반대급부 하나 없이도 자발적으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뭉칠 수 있었던 시민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때보다 훨씬 잘 살게 되었고, 보다 열린 자유를 누리고 살지만, 이제 사람들은 서로에게 더 이상 관심과 온정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책의 인터뷰 대상자들 같은 사람들의 자취가 더 고귀해 보이고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인터뷰어 지승호는 발로 뛰지 못하고 글로써 움직이는 자신에 일정한 열등감을 느끼듯이 표현했지만, 발로 뛰어야 할 사람이 있고, 붓을 들어야 할 사람이 있음을, 우린 알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또, 그들처럼은 아니어도 말없이 후원하며 그들의 대화에 공감하며 고개 끄덕이는 독자가 있다는 것도 자그마한 희망의 빛이 될 것이다.

탁해 보이는 표지와 디자인, 조금은 강경한 어조의 제목.  읽기 전에는 부담스러웠는데, 책을 읽고 나니 왜 이런 컨셉을 고수했는지 알 것 같다.  '그들이 있어 진실은 외롭지 않았다'라는 부제도 가슴을 깊게 울린다.  딱 하나 이 책의 흠이 있다면 종종 보이는 오타들.  책이 많이 팔려서 이 오타들이 모두 수정되어서 다시 찍혔으면 좋겠다.

내게는 낯선 이름 인터뷰어.  이제는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작업을 하는 사람을 '기자'라고 부르든 뭐라고 정의하든 중요치 않음을 책을 덮으며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진실을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그 진실을 전하기 위해 또 애쓰는 사람이고, 그 진실을 알아차리는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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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8-30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나도 아는 유명인들이라 쉽게 접근할 수 있겠네요~~~
이주의 리뷰 적립금 아껴둬도 살 되지 않을테니 오늘 몽땅 지릅니다~~~ ^*^

마노아 2007-08-30 15:19   좋아요 0 | URL
적립금 지르기! 오옷, 화끈해요! 뭐뭐 주문했는지 페이퍼 알려주세요. 궁금해요^^ㅎㅎㅎ

2007-08-30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30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30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30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8-30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대문사진 예뻐요^^

마노아 2007-08-30 20:58   좋아요 0 | URL
엄훠~ 기뻐요~ 히힛^^ㅎㅎㅎ

라로 2007-08-31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귀여우신거 아녜요???

마노아 2007-08-31 00:04   좋아요 0 | URL
아앗? 실제로 보면 징그럽다고 하실 거야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