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 유재현의 아시아 역사문화 리포트, 프놈펜에서 도쿄까지 유재현 온더로드 1
유재현 지음 / 그린비 / 200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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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에 신청하면서 꼭 되었음 좋겠다고 바랐던 책이었다.  막상 되고나서는 정말?하고 얼떨떨했던 책.  몹시 기대하며 기다린 책이지만 필시 무거운 마음을 안겨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내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인도차이나, 동남아시아, 그리고 동아시아에 주목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역사를 지녔지만 너무도 비슷한 현대사의 굴곡을 지나온 비슷한 운명의 아시아.  그 기억의 언저리를 훑으며 신랄한 비판과 진심어린 애도를 보내는 작가를 따라가 보았다.

첫 주자는 태국이었다.  신혼여행지로도 각광을 받고, 저가에 이용할 수 있는 해외여행으로도 손꼽히는 태국은 오늘날 '섹스관광'이라는 불명예스런 이름에도 꼭 끼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여기에 역사적 비극이 동시에 도사리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을 상대했던 기지촌 여성들... 그들은 미군의 휴식과 오락의 대상이었다.  가까운 일본에도 즐비했으며, 인도차이나 전쟁 때에 그 수행대상은 태국으로 옮겨갔다.  저들은 정조관념이 없어, 우리가 도와주는 거야.라는 식의 자기합리화를 입에 달지 말자.  오히려 더 추잡해질 뿐이다.  우리도 조국의 딸들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 우리가 이제 좀 먹고 살만해졌다고 받았던 설움과 아픔은 기억지 않고 저들의 더러운 발자국을 따라가는 행태라니.  일본도, 유럽도 이 비난에서 비켜갈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반성해야 할 대상은 섹스관광지가 될 수 있는 씨앗을 뿌린 미국과 미군이다. (거기에 태국 정권까지 포함해야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미국에 대해서 분노할 타이밍은 수없이 등장한다.  벌써부터 흥분해서는 곤란하다.(릴렉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바로 킬링필드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그 독재와 학살의 산 증거로서가 아닌, 그 땅이 그렇게 비쳐진(비추도록 강요된) 원인에 대해서 저자는 집중하고 있다.  물론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짐작이 가겠지만 여기서도 아름다운 나라(쿨럭...)는 빠지지 않는다.  아니, 주인공이다.(단연코!)

또 거기에 보태어 나를 놀라게 한 인물은 호치민이다.  이 책에서는 폴포트(폴포츠와 헷갈리면 곤란하다)와 호치민을 나란히 편집하여 올린 사진이 나오는데 양극단에 위치할 것 같은 두 사람에게서 기존 이미지의 반대되는 것들을 발견한다면... 상상만 해도 놀랍지 않은가.

폴포트의 민주캄푸치아에 대한 평가의 일반은 혁명 후 급진적인 공산주의 사회를 꿈꾸었다는 것이고, 그 결과 급진적 공산화 정책이 킬링필드로 귀결되었다는 것이다. 그 모델은 중국의 대약진운동이었다고 평가된다. 실패했음이 분명한 대약진운동을 모델로 삼다니, 이것은 병적인 자신감인가 아니면 판단착오인가?  다른 추측도 가능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던 절박함이 그들에게 있었다는 것.  그건 바로 식량난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땅은 미군의 폭격으로 석기시대로 돌아간 것과 다름 없는 상태가 되었었는데, 캄보디아가 꼭 그랬다.  200만 명 정도가 학살되었다고 알려진 킬링필드는, 사실상 70만에서 80의 희생자를 냈으며 대부분이 아사했다는 것.  이들의 식량난을 조성한 것이 미국이었고, 그것을 부추긴 것이 베트남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 모든 진실은 '반공'이라는 목표 아래 덮어져 무수한 사람이 죽었다는 잔인한 '사실'만을 내세워왔던 것. 

세뇌교육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 세뇌교육은 우리나라에서만 자행된 것이 아니었다.  전세계를 상대로 '반공'의 목표 아래 얼마나 많은 진실들이 감추어져 있고 억울한 희생을 낳았던지... 그렇다고 해서 호치민 나쁜 놈, 폴포트 사실은 좋은 놈! 이런 식으로 이분화하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진실은 진실 그대로 보아야지 무엇을 덧씌워서 보아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사실이 곧 진실은 아님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중국의 베트남 난민 편에서는 '난민'이란 단어가 목에 탁 걸렸다.  중국 화교로서 베트남에 정착했던 이들은 중국인에 의해 베트남인으로 몰렸고, 베트남에 의해서는 중국인으로 분류되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베트남에서 추방될 때 중국은 이들을 자국민으로 받아주지 않았다.  그들이 먼저 손을 쓴 화교들처럼 재산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난민'으로 전락하기 전에 살길을 찾았겠지만, 이들은 그럴 형편이 못 되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이 가난한 노동자였던 이들은 30년 가까운 세월을 아직도 난민으로 살고 있다.  이들을 외면하는 중국 정부의 인면수심이란.  이들을 안타까이 바라보다 보니 조선족들이 떠오르고 이내 한숨이 새나온다.  남 욕할 입장이 아닌 것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것도 뻔뻔함에 결코 뒤지지 않으니까.

필리핀을 얘기하기 위해서 막사이사이상으로 화두를 열었다.  필리핀의 3대 대통령 이름을 기념해서 제정한 막사이사이상.  그가 필리핀의 역대 대통령 중 발군의 인물이기는 했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설명을 마칠 수 있을 것인가.  불안감이 엄습했는데 역시나 비켜가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이승만! 정도로 설명한다면 막사이사이가 어떤 존재감을 보여주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솔직히 이승만과 비교하는 것은 막사이사이에게 미안한 일이긴 하다.)  그는 철저한 친미반공주의자였고 미국이 원했던 맞춤형 대통령이었다.  그가 빈민출신 대통령으로서 여타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청렴함을 보여주긴 했지만 필리핀의 역사라는 거대한 입장에서 바라볼 때, 그 역시 역사 앞에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막사이사이상을 받은 훌륭하신 분들을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 상의 이름을 딴 정치인의 행보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만을 얘기하면서는 영화 '비정성시'를 끌어왔다.  양조위가 주연을 맡았다는 것 말고는 아는 정보가 없었는데, 대만에서 있었던 2.28항쟁의 전모를 살펴보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도 급증했다.  대만의 2.28항쟁이란, 우리로 치면 광주항쟁 정도로 비교하면 될 듯 싶다.  자국(혹은 모국이라 자처한) 군대에 의해 진압정도가 아니라 전투 대상으로 치부된 사람들의 억울한 피눈물이 두 나라에 동시에 흐르고 있었다.  그 후의 전개과정은 많이 다르긴 해도.

93년도였던가.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광주학살을 가리켜 역사의 심판에 맡겨두자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학살의 주범이 반성하지 않고 죄를 인정하지 않고 뻔뻔한 얼굴로 버젓이 살아있는데, 아직도 그 참혹함을 기억하고 있는 희생자들에게 어찌 용서라는 말을 떠올리라 할 수 있을까.  대만의 입장이 꼭 그랬다.  여전히 기득권은 그때의 학살자들인데, 무엇도 반성하지 않고, 어느 것도 용서를 빌지 않은 채 묻혀진 역사라니... 대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그리고 언제 그 책임을 질 것인가.  그들에게, 우리에게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의 맨 마지막에는 일본의 적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부분은 솔직히 어려워서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재차 읽었어야 했는데 눈을 부릅뜨지 못했다.;;;) 다만 "남쪽으로 튀어"의 지로 아버지 이치로가 전공투 출신이었던 것은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책을 읽으면서, 과연 국가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마냥 어릴 때는 국가란 아름답고 멋지고 숭고하고 훌륭한 무엇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조국'이란 단어는 뜨겁고 서럽고 감동적인 의미라고 여겼다.  이제는 그런 생각들이 허무해진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서운 폭력이 두렵고, 그런 나라를 '조국'이라고 부를 때에는 수치심마저 느껴진다.  자국 역사는 물론이요,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의 역사(다른 나라에게 끼친 역사)를 지켜볼 때 섬뜩함마저 일어버린다. 

자국(혹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선 남의 생명이나 재산은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인간(국가)도 무섭지만, 과거에 학대받고 설움받았던 기억을 당연하다는 듯이 잊어버리고 똑같이 압제자가 되어버리는 인간(혹은 나라)도 마찬가지로 무섭다.  비슷한 고난을 겪어온 아시아인들이(혹은 남미의, 아프리카의) 서로를 끌어안으며 진정한 '독립(우리는 여전히 신식민지에서 살고 있으니까.)'을 위해 애쓰기를 바란다면 너무 구름잡는 소망일까.  그곳이 동쪽이든 서쪽이든, 함께 손을 잡아가다 보면, 지구는 둥그니까 정말로 우리 모두는 만날 수 있을 텐데......

유재현을 만나서 좋았다.  그의 느린 희망은 책꽂이에서 날보고 손짓하는데, 그를 통해 쿠바를 들여다보아야겠다.  조속한 시일 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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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7-08-21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리뷰를 읽으니... 한번 읽어보고 싶어요.^^
담아갑니다 =3 =3 =3 추천도 꾸~~욱!!!

마노아 2007-08-21 00:38   좋아요 0 | URL
뽀송이님도 읽으시면서 먹먹해질 것 같아요.
추천 감사해요. 덥지만 편안한 수면 취하셔용^^

turnleft 2007-08-21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재현씨 <느린 희망>은 제가 읽어본 쿠바 여행기 중에서는 발군이었어요. 다만 책의 내용과 화려한 도판이 영 미스매치 같아서 좀 찜찜했지만요. 이 책도 재밌겠군요.

마노아 2007-08-21 09:40   좋아요 0 | URL
도판이 너무 화려해도 곤란할 때가 있군요. 저도 느린희망을 어여 봐야겠어요.
입소문을 직접 확인한 셈인데 유재현씨 참 멋지네요^^

프레이야 2007-08-21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재현의 다른 책을 선물 받아두고 있는데 이 책도 당깁니다.
후에 읽어봐야겠어요.^^

마노아 2007-08-21 09:41   좋아요 0 | URL
다른 책 제목이 뭐에요? 메콩의 슬픈 그림자? 저도 두루두루 읽어보려구요. 좋은 저자분 알게 되어서 기뻐요^^

프레이야 2007-08-21 12:40   좋아요 0 | URL
담배와 설탕 그리고 혁명,이에요. ^^

마노아 2007-08-21 12:54   좋아요 0 | URL
와, 제목이 호감 가요. 저도 궁금해지네요. 혜경님의 리뷰를 기다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