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S] 알루미늄으로 된 발판을 들고 있는 지하철 직원. 그리고 그 옆엔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보호자가 있다. 이쯤되면 어떤 상황인지 대략 짐작이 간다. 장애인이 지하철에 잘 올라 탈 수 있도록 차량 문턱에 깔판을 깔아주기위해 직원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후 역으로 지하철이 들어왔다. 문이 열리자 직원들은 몸이 불편한 손님을 안전하게 탑승시켰다. 열차가 떠난 뒤 한 직원이 손님이 하차할 역으로 전화를 걸었다. 뭐라고 말하나 살짝 들어 봤다.




"아, 수고하십니다. 저는 도쿄역 ○○○라고 합니다. 지금 휠체어 손님이 3번 차량 첫번째 문으로 안전하게 탑승하셨습니다. 손님께서 하차하실 때 그쪽에서도 잘 부탁드립니다."

손님이 ○번 차량 ○번 문 쪽으로 탑승했으니 그 앞에서 깔판을 가지고 기다려 달라는 이야기였다. 음….

사실 일본에서는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 대신 '몸이 불편한 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해주는 서비스는 어찌보면 당연한 서비스인데 왜 나는 그런 장면을 볼 때 마다 감동을 받을까? 장애인들도 평범한 이웃으로 늘 내 곁에 존재하고 있건만 어쩌면 나조차도 그들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언젠가 이런 일도 있었다. 매년 나고야항에서는 불꽃놀이 축제가 열리는데 축제 기간에는 한꺼번에 수십만 명이 몰려들기 때문에 나고야항으로의 차량 진입이 통제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하철을 이용하거나, 반경 5㎞ 근처까지 차로 와서 행사장인 부두까지 걸어온다.

불꽃놀이는 저녁 7시30분에 있었고 예상대로 축제날 지하철은 대만원이었다. 개막 4시간 전이었는데도 사람들어 엄청나게 몰려들고 있었다. 아이 셋을 데리고 찜통 지하철에서 이리저리 사람들에게 떠밀리다가 겨우 도착한 나고야항.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가니 붉은 줄로 '출입금지'라는 표시가 되어있었다. '아니 이렇게 사람들이 붐비는데 고장이라도 난건가?'





하지만 자세히 보니 직원들 몇 명이 나와 몰려드는 인원을 통제하고 있었고 평소 지상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는 반대로 내려오고 있었다. 누군가 타고있는 모습이 보였다. 역무원은 계속해서 협력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렇다. 장애인의 지하철 승차를 돕기 위해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통제하고 반대 방향으로 돌려놓은 것이었다. 당연히 수많은 사람들은 계단으로 올라가야 했고 계단은 올라가려는 사람들과 내려오려는 사람들로 절반씩 나뉘어졌다. 덕분에 지상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은 길게 줄을 서야만 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장애인들이 서울에 있는 한 지하철역 철로로 내려가 공공 교통수단을 통한 이동권을 주장했다는 씁쓸한 뉴스를 접했다. 그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길래 철로까지 내려가는 극단적인 시위 방식을 택했을까.

또 얼마 전에는 장애인 재미교포가 한 일간지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한국에 왔을 때 장애인으로서 느꼈던 불편을 미국과 비교한 글이었다. 그런데 정작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 기사의 수많은 리플이었다.

"그런게 싫으면 한국에 안 오면 될 것 아니야"라는 등의 악플이 수없이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댓글들이 일부 철없는 아이들의 악플이라고 애써 생각했다. 그 이후로 한국의 장애인 시설과 장애인을 위한 공공 복지 서비스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장애인도 몸이 조금 불편할 뿐 당당한 우리사회의 일원임을 명심해야 한다. 언제든 우리도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장애인의 입장에서 그들을 배려해줄 수 있는 사회적 성숙이 너무나 아쉽다.

관련 사진을 한 장 더 올린다. 사진은 친절하기로 유명한 MK택시다. 자세히보니 장애인일 경우 기본요금을 580엔에서 520엔으로 할인해준다는 스티커가 눈에 띄어 찍었다.

최종욱 [paper.cyworld.nate.com/japanbogi]

*이 글은 블로그 플러스(blogplus.joins.com)에 올라온 블로그 글을 제작자 동의 하에 기사화 한 것입니다.


중앙 엔터테인먼트&스포츠(J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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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7-06-16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본받을만한 부분이죠. 저긴 신체적인 장애만 있는 사람만 나오지만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경우에 겪는 일들도 만만치않죠. 한국에서 장애인들이 살기엔 힘들어요. 국가적 차원에서 크게 지원해주는 것도 없고.

마노아 2007-06-17 01:10   좋아요 0 | URL
선진국 운운하지만, 우리가 아직 한참 멀었다고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에요.
갑갑하고 안타깝고, 슬픈 현실이구요. ㅜ,ㅜ

비로그인 2007-06-16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
옆에 자리가 많이 있는데도, '올라가는 길' '내려가는 길'을 정해진대로 이동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라면, 저 텅빈 계단을 가만 놔두지 않았겠죠?
그리고 힘들게 계단을 올라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오랜만에 일본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마노아 2007-06-17 01:10   좋아요 0 | URL
저런 '발상'을 했다는 것부터가 큰 차이점이죠. 우리나라에서 휠체어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려고 한다면 엄청난 '각오'가 필요한데 저기선 참 자연스럽게 보이네요.
부끄럽고 부럽고, 아프고 그럽니다ㅠ.ㅠ

비로그인 2007-06-17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한국에서도 요즘 지하철에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나 계단 옆에 보조장치가
있던데..문제는 멀쩡한 사람이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뻔뻔하게 타는 것입니다.
'발상'이야 한국에서도 한 적은 있었을겁니다. 단지, 실천의 차이겠죠.
조금씩 나아지겠죠, 한국도.

마노아 2007-06-17 18:36   좋아요 0 | URL
지하철 안에는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어느 정도 '의무적'으로 설치되어 있고 엘리베이터 공사도 되어 있는데, 그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려고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은 더 힘든 것 같아요.
엘리베이터에 노약자와 임산부, 장애인 말고도 건강한 사람들이 타는 것은 참 양심 없지요.
교과 과정에 '장애체험'을 의무적으로 패스해야 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역지사지가 되지 않을까요.
차차 좋아지고는 있지만 너무 더디어서 안타까워요. 장애인 문제뿐인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비로그인 2007-06-1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역지사지' 좋은 말입니다. '장애 체험'이 가장 좋은 방법이죠.

마노아 2007-06-18 15:47   좋아요 0 | URL
제가 나중에 연륜이 훨씬 더 많이 생기고 경험도 더 쌓였을 때에 학급 아이들 상대로 함께 해보았음 좋겠단 생각이 들어요. 아예 '제도적'으로 뒷받침되면 더 좋겠지만, 그게 안된다면 말이죠. 저야말로 많이 배울 테지요. 그때가 되면요.

비로그인 2007-06-18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지금은 안됩니까?
마노님은 지금 가장 좋은 자리에 계십니다. 앞으로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목발, 눈가리개, 손 기부스 등 간단한 도구들만 있으면 지금이라도
아이들과 함께 '불편한 몸 체험하기'는 할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뜻 있는 일을 행하는데 '때'란 없습니다.
바로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

마노아 2007-06-18 19:27   좋아요 0 | URL
제가 지금은 '비담임'이기 때문에 곤란하다 말한 거였어요.
교과만 담당하고 있을 뿐, 학생들과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창구가 없거든요.
이런 특별한 시간을 갖기에는 아직 준비 부족이네요.
아무튼,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조금 서글프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