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가족 - 과레스키 가족일기
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김운찬 옮김 / 부키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과문한 탓에 조반니노 과레스키의 작품들을 전혀 접해보지 못했다.  어느날 선물로 도착한 이 책은 그야말로 내게 신선한 작가에 신선한 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 신선하다 못해 엽기적인 가족들아 '까칠한' 이름으로 책 속에 모여 있다.

아빠, 엄마에 오누이 둘인 네 가족은 전형적인 이탈리아의 평범한 가족일 법도 했지만, 각각의 독특한 개성으로 인하여 절대 평범하지 않은 가족이 되어버렸다.

글을 쓰는 아버지가 그 중에선 가장 평범하고 상식적인 인물이랄 수 있겠지만, 보다 보면 아버지 역시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엄마 마르게리타는 상상력이 아주 좋아서 망상에 이른 인물이랄 수 있다.  중요한 마감을 앞둔 월요일만은 소화를 못 시키는 튀김만은 결코 만들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남편에게 극구 튀김 요리를 '선사'하는 그녀는, 그럼에도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가 가득하다.  '변명'이 아닌 이유 말이다.

아들 알베르티노는 그 중 비중이 조금 작은 편이다.  언제나 사건을 진행시키는 것은 동생 파시오나리아니까.  그래도 그 둘이 뭉치면 막강하다.  둘밖에 없어도 '조직'이라 불리고 또 그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니까.

가장 재밌었던 캐릭터가 막내 파시오나리아다.  어리지만 자기 주관이 뚜렷한 그녀가 이 까칠한 가족의 대표 명사가 될 수 있겠다.  착한 행동을 한 대가로 뭐든 들어주겠다는 아빠에게 우리 집이 아닌 남의 집 담벼락에 꼭 낙서를 하겠다고 고집하는 딸래미. 게다가 아빠도 해보라며 대신 망도 봐 준다.  첫 영성체 축하 선물을 거들떠도 안 보더니 잘못 배달온 코르크 마개 막는 기계에 열광한 것도 그녀다. 

뿐이던가.  부모님의 직업 조서 설문지에 글쓰는 아버지를 백수 취급하는 것도 이 당돌한 막내딸이다.  신문에 글을 쓰고 책을 쓰지 않냐고 항변하는 아버지에게 '그건 목수나 의사, 기술자, 변호사 같은 직업이 아니에요'라고 딱 잘라 말한다.  아버지는 이제 화를 내지만, 딸은 여전히 냉정하다. 그녀의 답변을 좀 더 들어보자.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을 할 때 직업이라고 말해요.  옷이 필요할 때는 재봉사를 부르고, 약이 필요할 때는 의사를 부르고, 식탁을 만들어야 할 때는 목수를 불러요.  하지만 슬프거나 웃기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작가를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나아가 이제라도 학교를 졸업하거나 아니면 장사를 하는 게 어떠냐고 충고까지 아끼지 않는다.  누구도 이 당돌하고 까칠한 대꾸에 아버지 편을 들지 않는다.  결국 그날 파시오나리아는 설문지를 고쳐 쓴다.  아버지의 직업은 어느새 트럭 운전사로 둔갑해 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직업이 '승진'한 것에 감사해야 할 판.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들 가족의 이야기는 매번 상식을 약간 비켜나가지만 언제나 유쾌함만은 동반하고 있다.  8시 등교 시간에 일어나지 못하는 이들 부부는 문단속을 위해서 묘안을 짜내니, 문열고 나간 다음에 문을 잠그고 키를 우편함에 집어넣는 묘수를 낸다.  시험을 해보기 위해서 온 가족이 다 나왔는데, 어머나! 모두 나오고 키는 우편함에 들어가 있네.  이제 식구들은 일제히 담장을 넘기 시작한다.  다음 날은 누가 마지막에 남겨져 있는지 확인하지 않는 바람에 또 다시 담장을 넘어야 했고, 이제 그들은 새로운 대안으로 '창문'을 이용하기로 한다. 그들로서는 가장 명쾌한 해법이랄 수 있다.

파시오나리아의 생일 케이크를 '굳이' 직접 만들겠다는 엄마의 '선언'에 식구들은 그 케이크를 '연옥'이라 부르고, 부드러워야 할 케이크가 잔뜩 굳자 이쑤시개로 잘 익었는지 확인 불가, 결국 드릴로 뚫는 '모험'까지 감행한다.  이들 가족에게 이 정도 실력 행사 쯤이야 아주 가벼운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나는, 소소한 일상에서의 유머러스한 일화보다도 충분히 당혹스럽고 황당할 수도 있는 일을 나름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의 마음가짐이 보기 좋았다.  아버지 조반니노는 독일군에 의해 포로 생활도 하였는데, 그때의 사실조차도 이들 가족들에게는 신랄한 말싸움의 한 소재로도 등장할 수 있다.  아프고 고통스러웠을 기억을 그들 식으로 소화하는 모습이랄까.  그래서 때로 블랙코미디처럼 보이는 이들 가족의 이야기가 씁쓸하게 웃게 만든다.  저자는 어디까지나 가볍게 가볍게 이야기하지만 독자로서는 무조건 가볍게 읽혀지지 않아서 말이다.

이제는 작가의 딸이 환갑 노인이 지났을 만큼이나 시간이 흘러버렸는데도, 이들 괴짜 가족의 이야기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공감과 웃음을 동시에 선사한다.  시대를 넘어서 즐거움을 주는 독서를 선물해 주었으니 작가 조반니노는 성공한 글쟁이다.

그나저나, 까칠한 파시오나리아의 그 당찬 구석, 굉장히 부러웠다.  만만하지 않은 녀석... 어리지만 할 말은 다 하고 산다.  그녀가 대표 주인공이 되어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면 그 역시 대단한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다음 기회에는 작가의 출세작 '돈 카밀로와 페포네' 시리즈에 도전해 보고 싶다. 좋은 책을 선물해 준 어느 님께 감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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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6-12-21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재미났겠어요~^^
마이~ 까칠한던가요?
ㅋ ㅋ
저도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마노아 2006-12-21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종류의 까칠함이라면 가끔 권장해도 좋을 것 같아요. 나름 부러웠어요^^ㅎㅎㅎ

마노아 2006-12-22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님도 읽고 계시군요!(당연하지만^^;;;) 아아, 이들 가족의 마인드가 부러워요. 전 이렇게 대차게 살고 싶어요.(대차게 대들며 살고 싶어요>_<)헤헤헷, 참 좋아요. 감사해요^^

프레이야 2006-12-2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벌써 리뷰 올리셨네요^^ 아주 조금 읽었는데 무지 개성있고 재미있더군요.

마노아 2006-12-2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이 책 읽고 계신분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다 기쁘네요^^

마태우스 2007-01-03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마노아님도 읽으셨군요 알라딘에 이 책 선풍을 일으킨 분이 바로 마노아님...!!

마노아 2007-01-03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공교롭게 서평단 읽을 즈음 비슷하게 읽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