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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의 전설
미하엘 엔데 지음, 비네테 슈뢰더 그림, 김경연 옮김 / 보림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만세를 부른 책! 일단 미하엘 엔데의 이름만 듣고도 호감 백배지만, 그림을 펼쳐드니 그의 환상 문학에 딱 걸맞을 분위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직 세상에 천사와 악마가 있다고 믿던 때의 이야기라고 책은 시작을 알린다. 애인의 배신과 아버지의 파산으로 세상에 회의를 품게 된 젊은이는 성스런 책들을 공부하며 진리를 찾기 위해 열중하지만, '자신의 모든 책이 지푸라기처럼 덧없는 것'이라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글을 읽고는, 책을 덮고 모든 것을 뒤로 한 뒤 떠나버린다. 그후 어느 외딴 골짜기에서 영원을 구하는데 전념하는데 어느 날 꿈에서 불 소용돌이 가운데 목소리를 듣게 된다. "이곳에 머물라! 내가 여기서 너를 만나고 싶으니라."
젊은이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물며 영원을 탐구한다. 그의 육신은 노쇠해졌지만 그는 더욱 성스러운 사람이 되어간다. 그곳에, 또 다른 사내가 하나 들어온다. 세상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던 사내는 도둑으로서 거친, 그리고 죄악에 쩔은 삶을 살아온 이다.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동굴 안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나게 된다. 성자의 무수한 노력 끝에도 거친 사내는 죄를 회개할 줄 몰랐고, 경건한 삶과도 여전히 멀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입장은 극적으로 역전된다. 지난 날의 꿈을 기억하며 성자는 보름달 밤에는 동굴 가까이 오지 말라고 사내를 내쳤고, 사내는 순종으로 이를 지켜낸다. 그러나, 성스러운 자에게만 성스러운 이가 보인다고 강변한 성자를, 점차 동물들이 멀리하는 것을 보며, 또 그에게서 신경질적인.. 전에 보지 못한 모습들을 보며 사내는 약속을 깨고 보름달 밤에 성자를 지켜본다.
성자는 그리폰이 이끄는 마차를 타고 나타난 대천사 가브리엘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사내는 천사를 향해 화살을 날리고, 그가 쏘아 죽인 것은 한 마리 오소리에 불과했음을 두 사람은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성자는, 자신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함을, 그리고 사내로부터 크게 배웠음을 인정한다.
다분히 종교적으로도 읽히는 내용이지만, 그저 우리의 인생에 비추어 철학적으로 상기해 보아도 충분히 이해가 될 법한 이야기 구조였다. 몇 번이나 곱씹을 내용과 적저재적속에 알맞게 그려진 그림들은 이 책을 평범한 테두리 안에 가두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림의 색조라든가 분위기는 미하엘 엔데의 글만큼이나 몽환적이고 아득한 전설을 떠올리게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세부 묘사는 몹시 사실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옮긴이의 말처럼 '글과 그림이 어우러져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것이 그림책이라면, 이 책은 그림책이다. 그러나 그림책을 아이들이나 읽는 책으로 생각한다면, 이 책은 그림책이 아니다." 그 말에 나 역시 공감한다. 성자의 깨달음을 속된 죄인이었던 사내의 변화를 깊이 새겨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