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6-12-01 22:42]    

“사형수를 미화한다고요? 그들을 만나보신 적이 있나요?”

소설가 공지영씨(43)가 지난달 30일 저녁 사형제 폐지를 위한 캠페인에 나섰다. 세계 사형폐지의 날을 맞아 ‘생명의 빛’이란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천주교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불교인권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등 7개 단체 공동 주최로 명동성당 앞에서 치러졌다. 저녁 7시 천주교의 사형폐지기원 미사가 열렸고, 미사 후에는 푸른숲 돌베개 랜덤하우스 등 5개 출판사가 10권의 책을 선정해 12월 한달간 판매되는 책 1권당 1,000원을 피해자 유가족과 사형수들을 위한 기부금으로 내놓는 ‘책 나눔 캠페인’ 약정식이 있었다. 이 책들 가운데는 지난해 4월 출간 이후 지금까지 73만여부가 팔린 공씨의 장편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하 우행시)이 들어 있다.

“살인자를 죽임으로써 죄를 응징하고, 피해 유가족에 대해서는 생계보장이나 정신치료 등 아무 보살핌도 주지 않는 것은 국가가 할 일이 아닙니다. 죽이는 것만이 벌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그는 죽음을 앞둔 사형수와 3번이나 자살을 기도한 여교수의 사랑을 그린 작품 ‘우행시’로 사형제 폐지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최근 국제앰네스티 한국위원회가 주는 언론상 특별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공씨가 사형수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우행시’를 쓰기 위해 2004년 취재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사형수와 한 여성의 사랑 이야기라는 골격은 10여년 전부터 머릿속에 있었는데 죄와 벌이란 주제가 끼어들면서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사형제에 대한 윤리적 물음으로 발전했다. “어떤 일 때문에 반성을 하게 됐는데 그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는 그는 “인간에게 가장 큰 벌이란 죽음보다 참회가 아닐까, 살인을 저지른 자를 사형하는 것은 공권력에 의한 또다른 살인이 아닐까 묻게 됐다”고 한다.

공씨는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사형수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천주교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이영우 신부와 성바오로수녀원의 조성애 수녀, 사형수들의 아버지인 박삼중 스님 등의 도움으로 매주 서울구치소를 찾았다. 그때 본 사형수들의 얼굴은 살인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맑고 선량했다. 그들의 변화를 가늠해보기 위해 체포 당시 방송에 보도된 비디오를 구해보기까지 했다.

“그들의 변화는 사랑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세상에 믿을 건 주먹과 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그들에게 신부님과 스님, 수녀님, 그리고 엄마같은 많은 봉사자들이 사랑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그들로부터 태어난 것이 ‘우행시’의 주인공 윤수다. 어렸을 때 동생과 함께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굶주렸던 윤수는 친구의 배신에 절망하면서 광포해진다. 사형선고를 받기 전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판사 앞에서 “죽지 못해 살아온 나를 나라에서 굳이 죽여주니 좋다”고 독설을 퍼붓는다. 하지만 감옥에서 다른 사람이 된 그는 자살중독인 여교수와 정신적 사랑을 나누고, 그녀에게 삶의 희망을 남겨준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올해로 9년째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다고 해요. 내년이면 국제앰네스티로부터 실질적으로 사형이 폐지된 국가로 인정받기는 하지만 하루빨리 사형폐지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해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그는 요즘도 매달 한번씩 봉사자들과 함께 서울구치소를 찾는다. “회개한 사람에게서 뻗쳐나오는 영성과 선한 기(氣)는 보통사람이 따를 수 없다”며 “늘 그들과의 만남을 기다린다”고 말한다. 또 “사형수들로 인해 예전의 나에게는 없었던 인간에 대한 신뢰를 얻었다”면서 “끝까지 그들과의 인연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사형수를 다룬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의 한 장면.

1990년대 중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봉순이 언니’ ‘고등어’ ‘인간에 대한 예의’ 등의 히트작을 냈던 그는 7년 만에 내놓은 장편 ‘우행시’의 성공 이후 일본작가 쓰지 히토나리와 공동 집필한 소설 ‘사랑 뒤에 오는 것들’, 산문집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를 내놓으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특히 지난 9월 영화가 개봉하면서 더욱 조명받은 작품 ‘우행시’는 한국소설로는 4년 만에 처음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8주간 종합순위 1위였으며 이번주에도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책이 잘 팔리니까 생활비 걱정을 안해서 좋다”고 말하는 공씨는 3차례 결혼, 3차례 이혼으로 성씨가 다른 세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주부가장이다. 자신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냈던 산문집으로 더욱 화제를 모았던 그가 현재 가장 바라는 것은 ‘사회적 칩거’다. “역시 창작은 고독과 빈둥거림의 산물”이라는 게 요즘의 생각이다.

이 때문에 올 3월부터 맡았던 CBS 표준 FM ‘아주 특별한 인터뷰’의 진행을 연말분까지 미리 녹음했으며 이날 사형제 폐지 캠페인 참여를 끝으로 당분간 대중의 시선으로부터 멀어질 예정이다. 세 아이들과 정신없이 복닥대겠지만 새로운 작품을 위한 구상에 힘을 쏟겠다고 한다. “새 작품은 현대사에서 흔하게 자행됐으면서도 제대로 형상화된 적이 없는 고문의 문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글 한윤정·사진 권호욱기자 yjh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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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2-02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번 주제도 심상치 않다.

프레이야 2006-12-02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문의 문제라면 훨씬 논란을 가져올 소지가 많은 작품이 되겠네요. 또 한차례 고통을 겪게 되겠군요. 작가 개인적으로든 독자와 사회 전체로든.. 우행시는 사실 남녀의 사랑보다 사형제 문제와 인간애에 무게를 두고 싶은 작품이었어요. 전 그렇게 보이더군요. 책과 영화 모두요. 용서의 문제에 대해서 좀더 많이 생각하게 했구요. 공작가가 이 작품으로 비평가들의 혹독한 말들을 많이 듣는 걸 보고 글의 힘이나 책임에 대해 여러번 생각하게 됩니다. 잘 돌아보지 않았던 문제에 관심 갖게 하고 반향을 몰고 왔다는 점만으로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년이면 사형제폐지국가로 인정된다는 소식이군요.

마노아 2006-12-02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행시는 사랑보다 인간에 집중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사랑 쪽으로 책보다는 좀 더 무게를 두었더군요. 공작가가 단순히 작품의 소재로만 사용했다면 비판받을 소지가 크겠지만,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집중하는 것을 보면 진정성이 보인다고 여겨져요. 사형수들은 일년만 더 버티기를 간절히 바랄 테죠. 작가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의식 등등, 생각할 거리를 좀 안겨주네요.

짱꿀라 2006-12-03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근데 사형제도가 없어진다는 것은 조금더 생각을 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마노아 2006-12-03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형 제도가 과연 범죄의 경감 효과를 주는 지 의문이에요. 점점 더 무서워지는 범죄들 앞에서요. 피해자가 내 가족이라는 질문 앞에서는 누구라도 폐지해야 한다!라고 말하기 힘들겠지만, '교화'에 더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들어요. 어려운 문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