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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맛은 사람 사이에 있다 - 혀끝으로 만나는 중국의 음식과 인생 이야기
천샤오칭 지음, 박주은 옮김 / 컴인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중국 전 지역의 토속적인 음식에 관련된 내용을
주요 소재로 다루는 컬럼 형태의 수필들의 모음이다. 이 책의 저자 진효경(陳曉卿)은 중국 지역별로 토속적인 음식을 소개하는 CCTV 다큐멘터리 [혀끝으로 만나는 중국]을 제작한 다큐멘터리 제작자이며, 10년 넘게 미식과 관련된 컬럼을
쓰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 책의 구성은 6개의
주제로 나누어 관련된 지역 음식과 저자가 겪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모든 사람의 진주비취백옥탕’, ‘나 혼자만의 국수집’, ‘강호 최고의 맛’, ‘따끈따근한 맛’, ‘이대로 끊어지기 아까운 솜씨’, ‘손가락 쪽쪽 빨아먹는 즐거움’.
첫 번째는 명나라 태조 주원장과 관련된 ’진주비취백옥탕’ 이야기로 대표되는 주제로, 모든 개인마다의 소중하게 아끼는 음식과 선정의 이유가 존재하며 주로 성장기에 강렬한 인상을 받은 음식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저자의 생각을 소개하고 있다.
두 번째는 면 요리에 관련된 이야기들로, 중국 지방의 다양한 면(面)요리들을
소개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콩 요리와 양고기 요리로 대표되는
안휘성 숙주시 출신의 저자가 조선족의 연길식당의 메밀냉면이 자신이 최고로 아끼는 면요리이며, 우연히
냉면에 푹 빠지게 된 사연도 소개하고 있다.
세 번째로, 요리사(세프)들의 세계를 하나의 무림 고수들의 세계로 본다면, 이른바 대도시에서 번듯한 정통음식 위주의 식당을 운영하는 이른바 명성을 얻고 있는 소수의 대형식당 요리사들과
대도시가 아닌 지방에서 숨어 있지만 정통요리보다는 지역적 특색을 갖춘 소규모 식당의 다수의 요리사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비유를 들어, ‘(관광객을 위한) 특색음식’과
‘(현지인을 위한) 현지음식’을 대비하고 있다.
네 번째 주제는 ‘따끈따끈한
맛’이 가지는 2중적 의미를 다루고 있다: 따끈한 음식에서 느껴지는 맛과 음식을 매개로 나누는 인간 사이의 따뜻한 정(情). 전통적인 중국 요리의 도구인 솥과 웍이 원래 제사에 쓰이던 도구였다는 작가 아청(阿城)의 ‘정과(鼎鍋)론’은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 있는 부분으로 느껴졌다.
다섯 번째로는 어쩌면 요식업에서는 숙명과도 같은 주제인
요리 전통의 계승과 혁신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과거로부터 엄격하게 전통을 유지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지, 아니면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독특한 또 하나의 요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지에 관한
논란을 다루고 있다. 아울러, 중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계획도시 조성이라는 사회적인 요소도 전통요리가 아닌 통합요리를 만들어내게 하는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마지막은 식사예절에 관한 주제로, 단순히 자신만을 위한 식사를 할 것인지 아니면 자기 본성을 억제하고 예의를 지켜가며 타인과 함께 식사를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 규범의 차원에서 벗어나 먹는다는 행위와 먹는 장소와 먹는 음식이 가지는 사회적인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을 담아 내고 있다.
제목만 들으면 굉장히 운치 있어 보이고 인간미와 따뜻한
정(情)이 느껴지는 글귀이다. 무슨 뜻인지는 책의 맨 마지막 장에 나온다.
이 책의 특징을 몇 가지 꼽을 수 있다. 우선, 문장이 매우 간결하다. 음식과
함께 만드는 레시피를 소개할 때 재료와 조리 절차를 단순 명료하게 잘 설명하고 있다. 단순히 지역의
음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과 관련된 시골의 풍경이나 모습들을 시각적인 표현 문구로 잘 그려내고
있다. 마치 tv속 한 장면처럼 자연스럽게 머리 속에서 연상이
된다.
그리고 번역의 위대함이다.
번역서를 읽다 보면 흔히 만나게 되는 이해가 되지 않는 엉터리 문장을 이 책을 읽는 내내 단 한 구절도 찾아 볼 수 없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또한, 책 속에 등장하는 중국 지명과 문화적 용어, 특히 각 지방의 토속적 음식 이름에 대해, 각주를 통해 간략하게
핵심적인 설명을 제공한 것은 매우 훌륭한 서비스이다(독자를 배려하는 차원을 넘어서 지금까지 어느 번역본에서도
보지 못한 독자를 위한 서비스로서 다른 번역작가들이 본받아야 할 부분이다).
이 책은 매우 잘 쓴 수필이다. 문장이 매우 수려하고 아름답다(아마도 10년 넘게 써왔던 글들 중에서 엄선한 것이라 원래 문장이 아름다운 탓도 있겠지만, 수준 높은 번역의 힘도 굉장히 크다고 본다). 지금 당장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도 전혀 손색이 없는 훌륭한 문장이다. 작가의 뛰어난 유머감각도 글의 흥미와 긴장감을
높이고 읽는 이로 하여금 몰입하게 만드는데 한 몫을 한다. 주제가 음식과 맛에 관한 글이라면 보통 지루한
내용으로 채워지기 마련인데, 전혀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작가의 유쾌한 경험담이 쏟아진다(‘주성치’류의 유머코드에 비슷하다).
중국의 지역적 토속 음식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중화민국 수립 이후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중국 내의 음식을 포함한 많은 문화적 전통들이 단절되었을 거라는 순진한 예상을 깨뜨리고 끈질기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한가지는 현재 내가 자주 이용하는 중국음식점들은 동북지방의 음식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게 되어 좋았다.
중국 지방의 토속적 음식에 관해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