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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큐정전 - 루쉰의 소설 ㅣ 마리 아카데미 2
루쉰 지음, 조관희 옮김 / 마리북스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20세기
초반 중국 현대 소설의 효시로 알려진 작가 루쉰의 3편의 단편 소설을 모음집이다: <외침>, <방황>,
<새로 엮은 옛 이야기>. 그 유명한 ‘아큐정전’과 ‘광인일기’가 <외침>편에 실려 있다.
루쉰이 소설을 작성한 이유가 중국인들의 의식과 사상을 일깨우고
계몽시키려는 의도라고 밝혔다고 한다. 루쉰의 소설들의 공통적으로 일관된 특징은 1900년대 초반 개화의 혁명의 물결 속에서 휘말려 가던 당시의 아직 자각하지 못한 상태의 대다수 중국인들의 삶을
우화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광인일기>에서는 중국의 역사를 의인화하여 표현하고, <고향>에서는 혼란한 국내 정치의 불안정 속에서 관리와 도적들에게 핍박 받으며 여전히 개화되지 못하고 봉건사회의
계급적 신분 관념 속에 갇혀 살아가는 궁핍한 시골 농부의 삶과 모습을 담고 있다.
루쉰의 작품에는 ‘좌전’과 ‘논어’와 같이 중국
고전의 고사(古事)들이 많이 인용되기도 하며 ‘저우’나 ‘뉘와’, ‘메이젠츠’ 같은 중국 고대 전설의 인물들이 소재로 쓰이기도 하는
점이 특징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마도
루쉰은 이 소설의 독자층을 인문적 소양이 있는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삼은 것이라고 추측한다.
아울러, 청나라
말기 중국인들의, 특히 강남 소흥 지방의 전통적인 생활 풍습과 음식들이 많이 묘사되어 소개되고 있는
것도 특이하게 느낀 점이다: 웃통을 벗은 옷차림을 하며 도박과 낮잠을 일상적으로 하는 강남 지방의 시골
농부들의 옷차림, 죽순 요리나 무청, 섣달 그믐에 지내는
제사 풍습, 남자들에 억눌린 여인들의 고단한 삶의 흔적인 전족, 가난으로
인해 삭막해져 버린 농촌 이웃간의 인심.
루쉰이 묘사한 개혁을 맞이한 시골의 풍경은 우리네 조선
시대 개화기 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하게 만든다: 변발 금지와 서양인과 서양 풍속에
대한 거부감, 사회 신분제도의 타파에 대한 거부감 등등.
개인적으로 인상적으로 꼽는 단편은 복수를 소재로 한 전설을
다룬 ‘메이젠츠’편이 기억에 남는다. 읽는 동안 무협지의 느낌도 나고 슬픔과 기구함과 우스꽝스러움이 뒤섞여 마무리되는 마지막 부분까지 전체적으로
마치 한편의 중국 고전 무협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점은 1910년대 중국의 문맹율이 상당히 높았을 텐데, 과연 루쉰의 의도대로
이런 우화적인 소설이 중국국민의 의식 계몽운동의 수단으로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왜냐하면,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1910년대 조선의 문맹률이 80%에 달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내용이 일종의 풍자적이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숨겨져 있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전달된다는 점도 소설의 실효성에 의문이 들게 만든다.
루쉰의 바람이나 계몽 운동의 효과와는 상관없이, 루쉰은 현재 중국의 현대 소설의 창시자로서 평가 받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모든 것을 대변해준다고 볼 수 있다. 루쉰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모음집이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