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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알지 못했던 걸작의 비밀 - 예술작품의 위대함은 그 명성과 어떻게 다른가?
존 B. 니키 지음, 홍주연 옮김 / 올댓북스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작품들이 작가의 손에 의해
탄생된 후에 겪게 되는 명성과 인기의 획득과 유실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미술 작품들이 유명해지고
인기를 얻게 되거나 점차 시들해져 버리는 과정과 이유가 너무 다양한데, 이 책에서는 20개 작품에 대해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이집트의 대(great) 스핑크스는
피라미드와 함께 대표적인 이집트의 고대 유적이지만 정확한 유물의 용도나 해석이 밝혀지지 않고 그리스의 수수께끼의 신 스핑크스 신화의 이미지가 겹쳐져서
불가사의함의 상징으로 인기를 얻게 된다.
투탄카멘의 유물들은 발굴 당시의 미스테리한 사건들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복제품을 가지고 전세계 순회 전시를 할 정도가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투탄카멘 왕은 이집트 역사상 위대한 왕은 아니었지만 고대 이집트를 대표하는 왕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의 경우, 일찍부터 아름다움으로 유명했는데, 19세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과 주변 아크로폴리스의 대리석 조각과 부조 작품들의 해외 반출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그 결과, 현재 스웨덴, 덴마크,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여러 국가들에 흩어져 있는 상태이고, 유물 반환 문제와 복구 문제가 논의되는 중이다.
벨베데레의 아폴로 조각상은,
15세기 발견 당시부터 약 300년 동안 예술가들과 대중들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았지만
19세기에 들어서부터 비평가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대중들로부터 잊혀지는 비운의 운명을 겪는 특이한 사례이다.
그리스 인근 에게 해의 외딴 섬 사모트라케에서 발견된 승리의
여신 ‘니케’ 조각상(‘사모트라케의
니케’)은 19세기 중반 발견 당시 머리와 팔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날개도 이미 많이 훼손된 상태라서 최초 전시회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하게 된다. 루브르박물관
큐레이터들은 복원된 조각상의 전시 위치를 웅장한 효과를 내도록 변경한 결과, 예상치 못한 반응을 가져오게
된다.
산드로 보티첼리는 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화가 중에 한 명이었지만, ‘비너스의 탄생’ 작품이 15세기 화풍의 누드화를 구사했다는 이유로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한다.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미술 평론가들의 재평가로
인해, 그리스 신화를 역동적 여성 누드화로 재해석한 르네상스 시대의 선도적인 작품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라면, 아마
당대 유명 화가가 그려서 당대 유명 작품으로 그리고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꾸준히 최고의 걸작으로 사랑받는 작품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바로 그런 작품에 해당된다. 아니, 너무나도 과도하게 사랑을
받아서, 작품에 산성 물질이 흩뿌려지고 찻잔을 맞기도 하며, 도둑에
의해 도단당하기도 했다. 심지어, ‘다빈치코드’ 같은 소설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작품 자체는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모나리자 작품과 관련된 정보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 특이하다.
라파엘로가 그린 ‘시스타나
성모’ 작품의 경우도, 다빈치의 경우처럼, 이미 유명 작가가 그린 작품이라는 배경이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작품
자체의 매력이 더 비중있게 작용한다. 왜냐하면, 라파엘로는
‘시스타나 성모’처럼 ‘성모와
아기’라는 주제로 이미 30점 이상의 작품을 그렸는데, 유독 ‘시스타나 성모’ 작품만이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꼽는 이 작품의 매력은 그림 속 성모와 아기 예수가 짓고 있는
독특한 표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살아 생전에 비교적 빠른 시기에 명성을 얻었지만, 사후에 10년도 채 안되어 잊혀져 버린, 그리고는 사후 300년이 지난 후에 예술가들과 평론가들에 의해 재평가
받은 화가도 있다. 엘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 그러하다. 엘 그레코에 대한 예술적 평가는 모순된 용어로 묘사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엘 그레코 특유의 매너리즘적인 양식인 길쭉한 형태와 뾰족한 턱으로
표현하는 인물 묘사와 강렬한 색채의 사용은, 17세기 중반 르네상스 말기로 접어들면서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로 사조가 변하면서 완전히 잊혀진다. 20세기 초반 스페인 미술 전시를 주관하는 큐레이터들의 모더니즘의 관점에서 엘 그레코의 매너리즘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재평가를 받는 계기가 된다.
램브란트의 경우 미국에서 매우 인기있는 화가로 높은 가격으로
거래된다고 한다. 램브란트에 대한 선호도가 높기 때문에, ‘호메로스의
흉상을 바라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경매로 인해, 작품 가치와
작품 가격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을 그린 에마누엘 로이체는 독일계
미국인 화가로서 정치적인 의미가 있는 과거 사건에 대해 현대적인 해석을 하는 역사화에 관심이 많았다. 약
75년 전에 발생했던 미국군과 영국군의 독일 용병 부대 사이의 전투를 모티브로 워싱턴 장군이 부대를
이끌고 한 겨울에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모습을 재현하였다. 너무 큰 성공을 거두게 되자, 이후의 작품들은 비슷한 풍을 반복해서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하게 되고 점차 반응이 시들해졌다. 20세기 초가 되자, 너무 익숙해진 로이체의 작품들은 미술관에 전시하는
것조차 부끄러울 정도가 된 사례이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작품은 살롱전에 출품했다가 떨어졌는데, 낙선한
작품들을 전시한 낙선전에서 비평가들로부터 악평 세례를 받아 유명해진 경우이다. 19세기 프랑스의 엄숙한
아카데믹한 미술평론의 분위기 속에서 창녀를 그림 속 등장인물로 그려내는 실험적인 화풍때문에 비평가들과 대중으로부터 야유와 모욕을 받은 혹평은 마네가
유명해진 계기가 된다.
파리장식미술관의 입구의 장식 문 제작 의뢰를 받아 로댕이
제작하려 했던 ‘지옥의 문’의 일부분인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은 독립적으로 전시되기 시작하면서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조각상은 판테온 묘지 앞에 설치되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주장과 항의의 상징이 되어 버려, 나중에는 로댕 미술관 안쪽으로 이전하게 된다.
그 외에도
다수의 사례들이 열거된다: 살아 생전에 항상 불우했지만 사후에 유명해진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별이 빛나는 밤’, 사랑의 연작 중에 마지막 작품으로 만든 뭉크의
‘절규’는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친숙하지만 독특하게 표현됨으로써
인기를 얻게 되었다는 점, 시카고 미술관의 현대미술전에서 2등을
차지했지만 1등보다 더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된 그랜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 역시 살아 생전보다는 사후에 유명해진 팝 아트의 창시자인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캔’. 워싱턴 기념탑과 링컨 기념관 사이의 위치에 있다는
점이 유명해지는데 한 몫한 ‘베트남전 참전 용사 기념비’.
여기에 실린 작품 하나 하나가, 미술사적으로 보았을 때 매우 의미있고 한번쯤은 봐야할 작품들이라고 느꼈다.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이나 시대적 상황을 조금이나마 자세히 알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 에피소드 중심의 미술사라고나
할까? 특이한 미술사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