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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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230610 권여선.

나보다 20년 쯤 앞선 나이를 살고 있는 소설가의 소설을 읽으며 생각한다. 이만큼 쓰려면, 얼마나 많은 소주가 간을 씻고 갔으며, 얼마나 많은 담배 연기가 허공에 흩어졌을까. 내 편견일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완벽에 가까운 아름다운 것들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빛나는 다이아몬드 한 톨을 위해 숲은 파헤쳐지고 붉은 흙탕물과 함께 어려서 죽는 광산 노동자들이 흘러간다. 입에서 녹는 쇠고기 한 점은 누군가의 손과 땅바닥을 흠씬 적신 피웅덩이와 소의 죽음이 없다면 그것도 없다.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이 유지되기 위해 누군가의 장화와 작업복은 종일 오염물과 독한 세제로 더럽혀지겠지. 편하고 행복한 순간은 그렇게 나의 업과 죄가 쌓여 이루어진다는 생각 자체가 지나친 것일지도 모르겠다. 더럽고 힘든 시간 없이 무언가가 저절로 이루어지길 바라면 안 된다. 쉽게 쓰여진 시를 제목대로 믿으면 안 된다.

열네권쯤 읽은 걸 짚어 되돌아가다가 소설이 (이천 년 전 유실본 빼고는) 없어!!! 놀랄 일도 아닌데 놀라고선 소장본 중 최신간부터 읽었다. 네 권 째 읽는 권여선인데 이젠 잘 쓴다고 놀라지도 않는다 ㅋㅋㅋ 걸리는 것 없이 스르르륵 읽히면서도 가끔가끔 물 위에 돌 던진 것처럼 떨게 만들려면 진짜 어떻게 써야 해… 그렇게 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니까 그냥 궁금해 하지 말자 ㅋㅋㅋ 나의 할 일은 책 내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재미있게 읽는 것이다. 날로 먹는 인생이다.

어릴 때 친구따라 한 번 갔다가 내 입엔 안 맞아…하던 국수인지 수제비인지 팔던 솔밭식당이 궁금해져 검색해보니 7년 전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쓰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것들을 글이 붙들고 남긴다. 양력 1월 23일, 음력 12월 3일이 겹치는 날이 그러니까 언제였는데!!!! 작가의 나이를 계산하며 (작가랑 등장인물 동일시 해서 나이 가늠하는 게 좀 억지고 무리인 거 알면서도) 거의 사십년치 달력의 1월을 훑어 기어이 찾아내고 만다. 1985년 1월 23일이었어요!! 내가 태어난 지 39일째 날이었다. (투머치) 그냥 나처럼 궁금해서 달력 굴릴 사람 생각해서 대신 찾음… 작년 2022년 2월22일과 12월22일이 몇백년 마다 올 2가 많은 날이었다고 혼자 수학노트에 끼적이던 게 생각났다. 그런데 그 노트 그걸 잊고 버려버렸네… 사소한 것도 잊지 못하고 놓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던 삶에서 너무 쉽게 잊고 놓고 버리는 사람으로 되었다. 그건 좋은 걸까. 불행할 때마다 쓰던 일기를 거의 쓰지 않게 된 삶은 행복해졌으니 나아진 걸까. 아니 덜 불행해졌다는데 왜 그걸 묻고 난리야. 소설 읽기는 그렇게 자꾸 쓸데없는 걸 혼자 묻고 혼자 답하거나 답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좋아하면서도 자꾸 피한다.

+읽는 자, 쓰는 자, 어디서 보고 웃겨서.
+1985년1월23일(음력1984년12월3일) 하나 둘 셋, 둘이 함께 왈츠의 스텝을 밟지 못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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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6-10 2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으.... 2 편애자 열반님. 가장 작은 prime number ‘2‘. 제 예비고사 수험번호가 222888. 이걸 보신 정여사 왈, 망통이다, 망통. 여사님의 예언대로 예비고사, 말아 먹었습니다. ㅋㅋㅋㅋㅋ
저도 권여선, 그간 뜸했는데 함 찾아 읽어봐야겠군요.

반유행열반인 2023-06-10 20:53   좋아요 2 | URL
저는 둘이 좋습니다 ㅋㅋㅋ 그거 골백작님 평생 28청춘으로다가 16살 마냥 철딱서니 없이 책이나 보구 술이나 빨구 살라는 감사(?)한 계시가 아니었을른지요? 골백작님은 여선이, 할지 누님, 할지 궁금합니다 ㅋㅋㅋ폐가 많습니다…

은오 2023-06-11 0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그렇게 좋은가요? 담아갑니다. 저도 놀라보고 싶어요!

반유행열반인 2023-06-11 08:28   좋아요 0 | URL
저는 댓글 쓰신 시간에 놀라고 ㅋㅋㅋㅋ숙면을 기원합니다.

Yeagene 2023-06-13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권여선 작가는 두권만 읽은 것 같아요.더 읽을까 고민중입니다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6-13 21:11   좋아요 1 | URL
최근 소설집들이 저는 좋더라구요.

은오 2023-07-31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것도 땡투❤️

반유행열반인 2023-07-31 15:20   좋아요 1 | URL
은오님 이번 계절은 한국소설의 여름입니까 ㅎㅎㅎ 저는 김금희 다시 읽으려구요.

반유행열반인 2023-07-31 15:21   좋아요 1 | URL
매번 감사 인사 자꾸 생략하네요. 땡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라딘이 오래전에는 땡투 누르는 사람도 돈 준 적이 있었다는 속터지는 소식도 전합니다 ㅋㅋㅋ

은오 2023-07-31 15:34   좋아요 1 | URL
저는 독서끈이 짧기도 하거니와 알라딘 서재 오기 전엔 비문학길만 걸었어서, 한국소설을 읽고싶어도 뭘 읽어야할지 몰라 고르기 어려웠거든요. 제2의 이병률 사태(ㅋㅋㅋ)를 막기 위해 유열님과 자목련님의 리뷰를 참고하고 물어가며 한국소설을 담고 있습니다. ㅋㅋㅋㅋ 김금희 작가는 어떤 작품을 읽어보는 게 좋을까요? 그리고 유열님이 좋아하시는 한국 작가들이 궁금해요!
저야말로 땡투할 수 있는 믿고 따라읽을 수 있는 유열님이 계셔서 좋고 감사하고요 ㅋㅋㅋㅋ
그 소식은 상상도 못했는데 헐;; ㅋㅋㅋㅋㅋ 북플 업뎃이나 좀 해라.. 친구 즐겨찾기 기능이라든지 선택한 친구 글 등록 알림이라든지 댓글 링크 누르면 바로 이동가능하게 하는거라든지 읽고있어요 피드에 안뜨게 하기라든지...... 😮‍💨😮‍💨😮‍💨

반유행열반인 2023-07-31 17:10   좋아요 1 | URL
책 추천이라는 게 되게 괜히 했다가 뻘쭘해지는 일이 많아서 (받아도 줘도 ㅋㅋ) 뭐가 좋을까? 하고 물으면 망설임이 많아집니다 ㅋㅋㅋㅋ
김금희 뭐가 좋아요? 할 때 안 그래도 다른 이웃분께 비댓으로 줄줄 읊어놔가지고 그걸 옮겨와? 하다가 ㅋㅋ너무 성의 없군...하고서...
저 오늘 아침에 좌절해가지고(이유는 너무 어이없는데 고1수학 푸는데 100분에 13개 밖에 못 풀고 다 틀리고 그래서 막 엉엉 움 ㅋㅋㅋ) 아... 꿈도 희망도 힘도 없다... 하다가 김금희! 나도 김금희를 읽자! 하고 책을 두권 꺼내왔는데요.
일단 1/3쯤 본 건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라는 엽편(단편보다 짧은 소설 모음)집입니다. 이거 보니까 꿈도 희망도 없는데 적당히 말랑하고 따뜻한데 또 너무 뻔하지 않은 문장이 필요하다, 할 때 한 편씩 보면 체력 소모 안 하고 볼 수 있는 소설들 같아요. 그런데 형식이 짧다보니 김금희 공력 만땅 끌어올린 느낌은 아니고 소소하고 ㅋㅋㅋㅋ
같이 뽑아든 ‘너무 한낮의 연애’는 제가 은오님 만할(?)때는 김애란을 아주 좋아해서 김애란 소설집 다 봤고 여러번 봤고 그랬는데 다 커서 산문집 샀다가 완전 별로! 이러고 알라딘 매장 가서 팔아버리고 받은 돈으로 처음 김금희 소설을 산 거였습니다.
다시 볼 생각을 한 게 엄마랑 딸래미한테 갑자기 햄버거 이야기하다 말고 이 소설집에 등장한 ‘피시버거’가 예전에 먹다가 피시버거가 사라졌어...이러고 상징적으로 등장하는데 나중에 맥도날드에 피시버거 부활! 이래가지고 작가가 자기 인스타에 그 소식을 올렸었더랬다- 그런 이야기 하다가 아 이제 다시 봐야지...하고 뽑아왔습니다.
한국 장편소설에서 보기 드물게 무해한 남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장편‘소설(이것은 SF인가 평행세계판타지인가)이 읽고 싶으시면 ’경애의 마음‘이랑 ’복자에게‘도 좋았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한국소설 작가를 찾고 싶다 싶으시면 그해 나오는 젊은작가상수상집이나 현대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이상문학상 등등 수상작품집, 아니면 여러작가들 모여서 주제 맞춰 묶은 소설집들(아 이거 뭐라고 하는지 까먹음 아 앤솔로지??) 하나씩 보시면서 거기서 결 맞다 싶은 작가 소설집 하나씩 사거나 빌려다 보시면 좀 맞는 작가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2017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처음 읽다시피한 최신 한국소설 모음이었는데 거기서 최은영, 강화길, 최은미, 백수린, 김금희 정도 건져서 그 작가들은 거의 다 읽다시피 해서 (그무렵이 그리고 여성서사 폭발의 정점 같기도...서사와 프로파간다에다 문장까지 갖춘 언니 작가들 마지막인듯... 그거랑 현남오빠에게 라는 소설모음집이 여성소설가들 탐색할 만함)그해 수상집을 보셔도 취향 확인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2021년 젊작 수상집까지 보고 저보다 젊은 작가들 등장 시작하면서 아 난 여기까지구나 ㅋㅋㅋ하고 22,23부터는 안 보고 있습니다.
이병률도 저는 안 봤지만(엄마가 하나 사둔 거 있지만 안 봄) 그냥 누가 야 그런거 왜 봐 ㅋㅋㅋ 이런거 봐 ㅋㅋㅋ 할 때 다 믿지 마시구 똥도 된장도 다 직접 찍어보시면서 아 나새끼 왜 샀어...하는 체험 조금씩 줄여나가시는 게 내 취향 만들어가고 똥책 거르는 능력 기르는 길이 아닐까 하는 건 제가 원래 누가 좋대도 잘 안 보고(그러다 망하기도 여러번) 안 좋대고 굳이 보고 그러다보니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7-31 17:10   좋아요 1 | URL
아오 쓰다보니 뭔 이메일을 써라 ㅋㅋㅋㅋ투머치 박찬호 죄송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Book] 에린 왕자 - 전라북도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심재홍 옮김 / 이팝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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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9 앙투안 드 생텍쥐베리. 심재홍 옮김.

노승영 번역가가 옮긴 ‘여우와 나’를 조금 읽었다. 외딴 동네 오두막에 홀로 사는 생물학자가 때마다 곁에 와서 앉았다 가는 여우에게 ‘어린왕자’를 읽어주는 장면이 나왔다. 여우를 채갈까 봐 검독수리 마릿수를 세고 있었다. 생각난 김에 이 책을 보았다. 갱상도어판 ‘애린왕자’를 감명 깊게 읽어서 전라북도어판 ’에린왕자‘도 많이 궁금했었다. 1개국어 사용자라 다른 언어로 읽을 일은 잘 없는데 방언은 또 상용어는 아니라도 어찌 읽어지는데다 왠일인지 리듬도 억양도 약간은 상상이 되어 읽는데 크게 무리는 없다. 맨날 읽어 지루하다 싶은 책도 다른 언어로 읽으면 또 좋지 않나. 아쉬운 건 장음을 전부 :표시 했는데 이게 되게 가독성이 떨어졌다. 성조와 장단표기가 사라진 언어 세상에 살다보니… 차라리 -표시로 길게 빼는 게 좀 읽기 나은가 싶어 손으로 옮기며 바꿔보니 그것도 마뜩찮고 그냥 아쉬웠다… 전라도 사투리는 박상륭 소설이 좋았다. 태백산맥은 너무 성폭력이 난무해서, 말 한 마디를 해도 나쁜 말이 많아가지고 읽다 말았다…

경기도에서 태어나 서울말에 가까운 말만 쓰다보니 내 언어 테두리는 너무 좁다. 사람 테두리도 더 좁다. 아는 말 만큼 맺은 관계만큼 세상을 겪는 정도도 달라질 텐데. 나는 동물하고도 식물하고도 별로 친하질 못해. 나랑 친한 건 아주 적고 그래서 깊다. 웅굴 같고 시암 같은 이들. 미구 같고 여수 같은 이들.

+밑줄 긋기
-난 넘들이 내 책을 그냥 개붑게 읽는 건 싫은게 일:케 적는 거여. 이 얘기를 다시 헌게 겁나게 맴:이 시리네잉. 내 친구가 지: 양이랑 가뻐린 것도 벌써 육 넨이나 됐구만. 내가 여그 이 얘기를 허는 것은 까:먹덜 않을라고 그런 것이여. 친구를 잊어 먹어뻐림 슬프잖여. 모든 사람이 다: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닌디.(20-21)

-˝참을성이 있으야 혀˝ 여:수가 대답혔어. ˝첨:에는 나헌티 서 쫌: 멀:찍이 떨어져 앉아잉, 요로코롬잉, 풀밭에 말이여. 글믄 난 널 접눈질로다가 볼건디 암:말도 허믄 안 디야. 말: 짓이란 것이 쌔 빠닥 땜시 생기는 거다잉. 근디 그담:에 매일 같이 넌 나헌티 가차운 디다 앉게 될 것이여.˝ 그담: 날 에린 왕자가 다시 왔어.

˝똑:같은 시간에 오는 것이 젤로 좋겄구만. 여:수가 말:혔어. ˝에를 들어 니가 오후 네: 시에 온다 허믄 난 세: 시부 텀 기분이 좋아질 것이여. 시간이 가믄 갈수락 더 좋:아질 거고잉. 네: 시가 딱 되믄 인자 난 벌써 안달이 나 갖곤 걱정을 헐 것이여. 행복이 얼:매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될 거란게! 근디 니가 암:때나 오믄 말이여, 언제 준비를 혀야 쓸란가 내가 알:수가 없지 않냐 이 말이여. 으레가 있어야 되는 벱이여.˝
˝으례가 뭐:여?˝ 에린 왕자가 말:혔어.
˝것도 시방은 안: 사:램이 벨라 없는 건디˝ 여:수가 말혔어.
˝하루를 딴 날이랑, 어떤 시간을 딴 시간이랑 달부게 맨들아 주는 거구만. 에를 들어 사양꾼들 헌티도 으례가 있어잉. 갸들은 목요 일마덤 말: 처자들이랑 춤을 춘다잉. 그런게 목요일은 훌룽헌 날이제! 내가 포도밭꺼정 마실 나가도 암시랑도 안 헌게. 근디 사양꾼들이 아무날에나 춤을 춰 싸믄 어떻게 되겠냐, 그 날이 그날 같은게 난 하루도 쉬덜을 못: 헐거 아닌 개비.˝(70)

-˝사:람들은 있잖애요” 에린 왕자가 말:혔어. ˝급행 열차에 타 믄서도 지:가 멀: 찾고 있는지 인자는 모른단게요. 걍: 불안 헌게로 안절부절험선 뺑글글 돌고 있는 거죠잉...˝ 그러드만 말을 잇었어.
˝그게 뭣: 허는 짓이래요잉.˝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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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있는 거랑 읽은 거 사이에 새로 온 시집 끼워 맞추니 그러데이션-색감이 죽이는데 시리즈 시집 높이가 안 맞는 부분… 이런 거 거슬리는 편집증…ㅋㅋㅋ

+몇 권 안 되는 문동 시집 다 데려와 추가해 보니 최근 시집들이 으쓱 올라간…숨은 의미가 있나 보다…30주년을 맞이해 글씨는 몇미리 도약하고 종이는 (실수로) 좀 더 짤랐습니다 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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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6-09 20: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집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책 사이즈.... 이거 정말 KS 규격이 필요합니다. 책장이 을매나 낭비되는지 깝깝해 미치겠습니다.
근데 자꾸 ˝욜˝이 눈에 밟히는 거, 어떻하죠?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6-09 20:21   좋아요 2 | URL
유온리리브원쓰니까요 ㅋㅋㅋㅋ아니 책두께 얇은 건 그렇다 쳐도 새로 온 인찬이 시집이 호수 시집보다 0.5mm는 짧습니다…이제 보니 안다 시집 문학동네 로고는 아래로 혼자 쳐졌네요…왜 그래 니들…

얄라알라 2023-06-10 2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수학적 마인드...0.5 mm 차이도 느끼시는 엄밀함, 아니 정밀함^^ 참, 정밀하십니다~^^

저도 서가 부족하면 눕혀놓는 책들 있는데, 그럼 5mm차이도 엄청 신경 쓰이더라고요. 윗 부분이 망가져서^^;;; 눕히면 안 되는데 자꾸 책들을 홀대하네요

반유행열반인 2023-06-10 21:23   좋아요 1 | URL
저에게 언제나 후하신 얄님 ㅋㅋ그리 엄밀하진 않구 그냥 쌩눈으로 대충 찍었습니다… 시리즈 아닌 책들은 그러려니 하는데 색 이쁘게 알록달록 좋아하는 시인 시집들이 미세하게 안 맞으니까 씅질 나드라구요?ㅋㅋㅋ시인들 잘못은 없고 물질(?)만든 사람들 그걸 잘못이라 하기도 쪼끔 그렇고 오차…말씀대로 엄청 신경 쓰이네요. 5mm면 차라리 낫겠어 0.5mm…

은오 2023-06-11 03: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떤 사람이 자긴 서점 갈때마다 민음사 세문집 책등에 있는 작가 사진 높이 맞는거만 사려고 자 들고 다녀서 서점 직원들이 이상하게 본다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아 난 저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다 했던 기억이.... 열반인님도 저 정도 아닌 게 다행 ㅋㅋㅋㅋㅋ 근데 저런거 거슬리긴 하더라고요 ㅜㅜ

반유행열반인 2023-06-11 08:29   좋아요 2 | URL
저도 자로 재고 싶은 순간이 많은데 자가 없어서 휴대용 줄자 하나 사? 이러고 주문까지 했다가 그만해 미친놈아 이러고 취소했었네요 불과 얼마 전 ㅋㅋㅋㅋ

새파랑 2023-06-11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의외로 예민하신듯 합니다 ㅋ
책들은 왜 다 규격이 다 다른걸까요 ㅜㅜ 같은 출판사라도 좀 맞췄음 좋겠습니다 ~
저도 크기순 두께순 좋아합니다 ㅋ

편집시왼쪽정렬에 여백 설정을 동일하게 하면 될텐데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6-11 10:32   좋아요 1 | URL
저는 의외로가 붙은 게 더 의외입니다 ㅋㅋㅋ한편으로는 사람도 이렇게나 다양한데 책한테 규격화 되라고 하는 게 뭔가 다양성 말살(?)같기도 해서 책마다 그렇게 만드는 사연이 있으려니 합니다. 다만 같은 시리즈는 좀 맞춰달라 ㅋㅋㅋ(저 시집 시리즈 보기만 해도 티나는데 손으로 쓸어보면 너무 명확해서 앞 권들까지는 매끈하다 움푹-왜 인찬이 시집만 키 작냐!!! 이러고 자꾸 화내게 됩니다 ㅋㅋㅋ)
 

알라딘 커피 안 산대고서 또 샀다. 콜드브루 생산 위탁한 곳이 내가 좋아하는 연*커피…(맞지만)여서는 아니고 케냐 커피 좋아하니까! 그리고 오랜만에 알라딘님이 당선작 적립금을 주셨기 때문에 보은을 해야지…
…는 사실 어제 와 황인찬 새 시집이 나왔어, 또! 까면서 보는 해부학 만화도 드립이 너무 심하긴 하지만 전작을 봤으니 후속작도 봐야지…하면서 직배송이랑 회원중고랑 무려 21권(…)을 산 뒤였다. 그래도 저는 어린이 줄 300원짜리 중고 이런 걸 섞어 사기 때문에 저렇게 사도 7만원 밖에 안 듭니다. 할인 카드도 있어서 헤헤 여기서 만원 할인 이러고 혼자 좋아하고 있었다…아니 내가 책 사나 안 사나 보구서 적립금 줄까 말까 결정한 걸까 하루만 미리 주지…(그건 너무도 자기중심적 사고)…

그렇지만 아침에 거금 3만원 용돈을 받았으니까 받은 건 받은 거대로 받은 날 플렉스해야지, 하고 큰어린이가 사달라던 스티커 컬러링북(이게 제일 비쌈)도 사고, 커피도 슬쩍 끼워 넣고, 우주점 배송이랑, 회원 직거래 배송까지 15권(개?)샀다. 이틀에 36권 샀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 나야… 이렇게 판매처 여러곳 섞어 사면 품절 났을 때 저번에도 겪어봤지만 적립금이랑 쿠폰이랑 막 꼬여서 좋지 않지만 그래도 저는 최저가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그만… 여기서 싸게 사면 그 돈 아껴서 저기서 한 권 더 사고…그렇게 제가 집을 헌책방으로 만들었습니다…(북플에서는 관련 상품이 열 개 밖에 안 들어가서 다 열거는 못함…)

내가 맨날 알라딘 커피 맛있지만 비싸 우웨웨웨 하고 배신 때리고 그래서 나만 적립금 안 줘…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니 반대로 나만 적립금 안 주니까 깽판 쳐야지 우헤헤 하고 생각한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그러고 있었는지도…

나의 어그로는 대개 처음에는 나의 짝사랑으로 시작한다. 호감과 친밀해지고 싶은 욕구, 상대방이 주변 다른 이들 아끼듯 나를 아껴줬으면 하는 마음, 그런데 늘 속도 조절 온도 조절 못해서 친해지기도 전에 막 돌진을 하다가 거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뭐야 선 넘네, 저리 안 떨어져? 하고 진저리 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렇게 상대방의 미움을 넘어선 혐오를 보고 나면 왜 날 뷁…곰곰 돌아보며 내가 뭘 잘못하긴 했나 보네… 이제 망했다 별 수 없지 날 싫어하는 이유가 분명치 않다면 싫어할 이유를 만들어주자! 하고 흑화되어 버렸다. 그렇게 내가 너보다 더 미워할 거야!! 하고 열심히 못되게 굴다보면 어느새 상대가 측은해지기도 하고(…) 너무 격렬하게 미워했나 하고 미안해지기도 하고 그렇게 좋아함도 싫어함도 물에 탄 콜드브루처럼 적당히 희석이 되어 맛있어지…는 건 아니고 그럭저럭 적응이 된다. 친구는 이것도 나의 집요한 균형 맞추기 중 하나로 평가하며 힘들게 산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러니까 집에는 이미 미처 못 다 먹고 묵어가는 분쇄 원두도 네 봉지나 있고! 디카페인 콜드브루도 파우치로 잔뜩 쟁여 놨고! 그런데 아 카페인 든 아프리카 출신 콜드브루는 없네? 하고 사 버렸지요. 여러분 케냐나 에티오피아 붙은 커피 사면 대부분 꽤 좋구요 아프리카 나라들 커피 사면 새로운 동네 것이라도 평균 이상은 합니다… 중남미 커피는 무난하지만 막 고급지고 그렇진 않고 그렇다고 나쁜 건 아니지만 비싸게 사 먹을 건 아닌 것 같고…(나는 판매자의 최저 이윤을 선호합니다…)

입원한 날 부터 열흘 정도는 원두커피를 끊었다. 딱히 끊으라 의학적 권고가 있던 건 아닌데 곁의 사람이 심장에 왠지 나쁠 것 같다고 말려서…그러다가 약 먹고 심박수도 산소포화도도 조금 안정된 것 같을 때부터 다시 신나게 하루 두 잔씩 드립커피 먹고 더 먹고 싶으면 디카페인 콜드브루 퍼먹었다. 그리고 스텐 드리퍼랑 캡슐 머신도 있으면서… 왠지 나보다 더 커피를 잘 만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밀리타의 아로마보이라는 드립 메이커를 사 버렸다. 1979년부터 커피 만든 놈이면 잘 만들겠지? 내가 좋아하는 스매싱펌킨스 노래네? (Smashing Pumpkins-1979 https://youtu.be/4aeETEoNfOg ) 그런데 내가 스텐 드리퍼에 손주전자로 내리는 커피가 더 맛있다… 나는 종이 필터로 깔끔하게 내린 거보다 지저분하게 미분이랑 오일 동동 뜨는 원시적 커피를 좋아했음이 밝혀졌다… 그래도 아로마보이 녀석이 훨씬 빨리 커피를 내려주기 때문에 맛은 좀 덜하지만 애용하고 있다.

2년 전에 안나 카레니나 2권 읽고 독후감 쓴 제목이 나를 미워하세요? 였는데 요즘 권여선 소설 읽다 보니 그런 문답법이 인상 깊어서 나도 흉내를 내고 싶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우리는 언제부터든 이렇게 됐어. (‘사슴벌레식 문답’ 중)

나를 미워하세요?
나를 미워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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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3-06-09 1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틀에 36권 ㅎㅎ과연 열반인님답게 책을 착실히 쟁이고 계시는군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6-09 19:41   좋아요 0 | URL
택배박스 마구 쏟아지니까 좋은데 꽂을 데가 없네요… 정작 산 것들은 안 보고 전자책 두 개 빌려 봄 ㅋㅋㅋㅋ
 
[eBook]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이반지하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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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4 이반지하.

이 책 재미있다, 독특하다, 유쾌하다, 잘 쓴다, 책깨나 읽는 나의 이웃들이 치켜세우는 걸 한참 전에 들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오래 미뤘다. 관심은 갔지만 왠지 모르게 피했다. 이미 알았을 것이다. 이웃집/퀴어/이반/지하 이 단어들이 제목에 들어간 책을 읽으며 나는 웃을 수 없을 거야.

우울증에 걸린 광대 노릇을 해 본 사람은 그러니까 동류의식 내지 동종업계 사람 보는 기분으로는 웃을 수가 없다. 글도 삶도 그림도 흥미롭고 웃기려고 기를 쓰고 쥐어짜고 있다고 -아냐 난 자연스러운 거야 그냥 숨만 쉬어도 웃겨 그럴지도 모르지만, 숨쉬는 걸로 웃기는 게 얼마나 힘든 건데- 그간 쌓인 짬과 공력이 여기저기 비져나왔지만 나는 풉, 하거나 실실거리지는 않았다. 못했다. 아, 차 타고 가다 베그노스 이야기 하는 거 보고 글이랑 그림 마저 다 보기 전에 이름 특이하네, 이러고 검색을 했다가 그런 거 없잖아! 좀 더 읽고 흠, 좀 재밌군, 하긴 했다.

책 초반부 읽을 때부터 조금 의문이긴 했다. 나는 이 사람을 모르고 분명 이 사람도 나를 모를텐데, 그래도, 학교 다니던 시절도 조금은 겹치고 이 정도 포스를 풍기던 내 또래 사람을 왜 나는 인지하지 못했지? 근데 왜 아는 것 같지? 김소윤, 내가 아는 김소윤은 없는데 왜 자꾸 익숙하다…이러다가 기쁨과 성폭력이 있던 노래패 활동, 이 부분에서 딱 멈췄다. 어쩌면 나는 김소윤씨가 튀긴 침이 묻은 마이크로 노래 연습을 했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내가 동아리 들어간 즈음에는 태풍 같은 뭔가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후의 느낌이라, 반성폭력 회칙도 마련되어 있었고 그걸 같이 읽는 자리를 가졌고(그러다 내가 집행부?되면서 그런 거 있었다는 걸 다 까먹고 잊혀짐…죄송…) 세미나 커리로 받은 첫 제본집도 여성주의라고 제목 붙여 묶어 놓은 것이었다. 똑똑하고 소처럼 일하는 언니들과 거기 묵묵 말 잘 듣고 잘 따라가는 오빠들을 보며 아, 성인이 된 이후 마주하는 세계는 저러하구만, 이 세계는 한층 평등해졌구나, 착각이었다. 그 인큐베이터 이후로 나는 바깥 세상에서 그런 공동체를 만난 적이 다시는 없었다...

나랑 같이 사는/자는 사람은 나보다 2년 전 먼저 동아리에 들어왔고(그리고 중간에 연애가 망하면서 탈퇴했다가 내가 들어갈 무렵 재가입), 나보다 더 심하게 오래된 물건을 못 버리는 성향이 있어서 그 시절 공연 팜플렛도 다 가지고 있다. 나는 그의 1학년 꼬꼬마 시절 가을 공연 팜플렛을 펼쳤다. 거기에는 공연에 참여한 구성원들의 사진과 소개가 간단히 담겨 있거든.

펼친 페이지 안 곁의 사람 바로 위에 김소윤씨가 노래를 부르는 얼굴이 있었다. 같은 페이지 안에는 아는 얼굴들도 많았다. 여태까지 활동하는 밴드 뮤지션 얼굴들도 있고, 유명 밴드 멤버이다가 이제는 (아 아직도 다른 밴드는 하네) 회사원인 사람도 있고, 곁의 사람의 직전/첫 여친 사진도 있다. 사연이 많은 페이지였다. 씻고 나온 곁의 사람에게, 01에, 김소윤님, 미대 맞아? 응 조소과였나…아냐 회화…아 맞다…
책 말미에 이자람님이 추천의 글로 이미 같은 동아리였습니다 인증글 남겨 두셨었다… 꼬꼬마 새끼였던 내가 창작 판소리 명창 대선배님도 몰라 뵙고 이제 룸은 금연입니다, 하고 동아리방에서 쫓아내던 생각 밖에 안 난다… 나중에 판소리 음반도 열심히 찾아듣고 아마도이자람밴드 공연도 쫓아다닐 거였으면서 그땐 그렇게 사생팬이 될 걸 모르고 모질었던 나를 용서해주세요…

아주 잠깐, 디지털 음반내고 홍대 앞 클럽들 전전하고, 그러면서 대학원도 다니고, 그러다가 심신에 병이 든데다 임신까지 해서 다 집어치우고 그냥 공무원으로 남았다. 끈질기고 꾸준하게 존버해서 유명해지고 사랑도 받고 좋아하는 일로 돈도 벌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시무룩, 이제 열정도 번뜩임도 다 잃고 평범해졌어…하는 내게 곁의 사람이 말했다. 그래도 이젠 행복해지기로 했잖아.
평범하게 애기 키우고 3년 쯤 살다보니 왜 또 충수염, 성대폴립 이런 자잘한 병으로 한 해 동안 수술을 두 번 받고, 그러고나니 지랄병이 도져서 멘탈도 갈 곳 모르고 방황했다. 그때 지드래곤이 허옇게 탈색한 머리를 하고 영원한 건 절대 없다고 뻔한 소리를 하는 게 그렇게나 멋있었다.
그래서 나도 이제 부임 1년차 된 학교 축제에서, 중학교 어린이들 사이에 단독 무대를 마련해달라고 떼(?)를 쓴다. 만 나이 28세에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탈색/염색이라는 걸 해 본다. 주책스러운 (지금 보면 내 눈엔 아직) 어린 아줌마가 지드래곤 흉내를 신나게 내고 무대에 드러눕는다. 발라당.

그게 다 살려고 하는 짓이잖아요. 세상 내향적인 인간이 굳이 무대에 서는 기분이 어떤 건지 느낌아니까. 이것 뿐 아니라 생애주기 마다마다의 비슷비슷 지긋지긋한 경험들이 자꾸 책 속에 겹치니까 이건 공감대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파수가 공명해서 나는 이명을 느끼고 가라앉은 밤을 보냈다. 그니까 나는 이런 책을 보고 아 시발 너무 잘 알지 하지 않고 그냥 안쓰러워하면서 남의 일처럼 웃고 싶다. 그렇지만 알잖아, 우린 이미 망가졌어.

+밑줄 긋기
-주인공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계속 실험해나가는 걸 보는 것도 좋았다. 성욕을 느끼고 표현하고 거절하고 이용하고 등등. 강간당하지 않고 그럴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보통 이러면 사회로부터 성性적으로 크게 혼나곤 하는데, 이 시리즈에는 그런 것이 나오지 않아서 좋았다.

-그러니까 잘난 여자를 감히 혼내지 말자. 제발 좀 그르지 말자.

버릇이 나쁘다 싶어도 제발 좀 내버려두자. 구린 구석 없이 정정당당하게 도와도 주자.

-나는 그 사람들이 나를 욕망한다는 것이 어쨌든 좋았다. 그 사람들은 적어도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에 감탄해주었다. 그것이 착취고 성폭력이고 불법이라는 것은 ‘지금’ 돌아보면 중요했다. 그중 한 명은 내가 부잣집 애라는 것을 알아보고 돈을 뜯어가기도 했다. 그건 아마도 내 절박함에 대한 죗값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그 아저씨들의 집이나 모텔에서 자고 아침에 등교하면 나는 내가 특별하고도 퇴폐적으로 느껴졌다. 학교에서는 서울대 갈 아이라고 선생들이 좋은 문제집을 주었다.

-검열을 당한다는 것은 생각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생각이라는 것은 대단히 생산적이거나 발전적인 무엇이 아니라, 나 자신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속의 장기와 세포 하나하나까지를 양말 까뒤집듯이 의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검열은 잔인하다. 검열하는 쪽은 간편하되 당하는 쪽에서는 정말로 내가 당당한 피해자인지를, 내 쪽에 정말로 한 점의 원인 제공도 없었는지를 지속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 이것이 잔인함의 핵심이다. 검열은 저쪽에서 시작되었으나, 결국 그걸 지속하는 것은 이쪽, 나 자신이 된다는 것 말이다.

-한 학기, 그러니까 6개월 뒤 나는 레즈비언 관계를 주제로 한 작업을 졸업심사에 냈고, 아무도 레즈비언 얘기인지 몰라서 무사통과되었다. 그렇게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니미 시팔 다시는 학교 같은 건 다니지 말자고 다짐했다.

-오히려 나는 개개인의 개별성과 저마다의 다양한 관계 맺음을 훨씬 더 피부에 와닿게 경험한다. 나는 그런 면에서 퀴어와 헤테로를 대립구도로 보지 않는다. 그냥 우리는 다 ‘퀴어’라고, 실상은 헤테로가 퀴어의 하위범주라고 인지한다. 우리는 모두 개별적으로 이상한 변태들일 뿐이고, 그것은 헤테로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어느 날인가 당첨 복권 하나 없이 빈손으로 와 새 복권을 사면서 “아가씨가 복권을 잘 못 골라주는 것 같애. 저번에 아가씨 땜에 하나도 안 됐어”라고 했을 때는 속으로 시발아, 라고 생각했지만 말로 하진 않았다.

-나도 내 젠더도, 너도 니 젠더도, 세상도 세상 젠더도 각자의 입체적 회전을 하던 중에 잠깐 맞물렸을 뿐이다. 그 맞물림, 그 일시적 정상성은 그래서 그토록 달콤하다. 거의 세상에 없는 달콤함이라고 보면 된다. 드물다시피 없다.

-지금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말 좋은 것들은 전체 인구의 1퍼센트 혹은 0.1퍼센트가 누리고 있지, 우리 손까지 내려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섹스가 정말 좋은 거였으면 우리가 하고 있을 리가 없어……

그걸 명심하셔야 돼요.

-위험한 생각이 들 때는, 주변에 폐를 끼쳐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진짜 힘듭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엔 내가 쓸모없는 존재 같고, 민폐 그 자체인 것 같으니까요. 누구한테 전화하고 치대고, 이러기가 진짜 힘든 상태일 거거든요. 그래도 주변에 얘길 해놓는 게 좋습니다. 당분간 내가 많이 힘들 거야, 심할 때 전화할게. 아니면 이럴 때는 병원에라도 가야 해요. 응급상황이거든요. 우리가 갑자기 살 찢어지면 응급실 가잖아요. 똑같습니다. 이럴 때는 정기적으로 가는 상담 시간이 아니어도 응급이라 생각하고 가셔야 해요.

-나는 그때 한창 정신과 약발이 잘 받기 시작하여 제법 평온한 마음을 경험하고 있었다.

“남들은 평소에 이런 마음으로 살았던 건가요?”

나는 이렇게 정신과 선생한테 물었다. 그것은 어떤 평행우주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갑작스러운 감정기복과 닥쳐오는 우울 같은 것이 없는 평안한 마음을 누군가는 갖고 살고 있었다니……

아니, 인생 너무 쉽게들 사는 거 아녀?

-내가 무기력해서 뭐가 안 풀리는 게 아니라, 뭔가가 힘들기 때문에 무기력감이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기력감은 어떻게 보면 골절 같은 거죠. 난 지금 조금 다친 상태인 거예요. 그 상태를 받아들이고, 나를 돌보는 걸 더 우선순위에 두어야지, 나 왜 이렇게 무기력하지, 난 무기력해서 문제야 이런 식으로 몰아붙이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무기력감은 되게 큰 트라우마 이후에 오기도 하고요. 우리나라에서는 무기력감을 게으름, 나태함 같은 것과 많이 연결을 짓지만, 그럴 만해서 그런 거예요.

이럴 땐 제때 맞춰서 밥 먹고 머리 감고, 그런 것도 너무 큰 일입니다. 그러니까 살아 있는 게 일인 거죠. 내가 그 수고를 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잘 생각하고 달래주면 좋을 것 같아요. 산다는 것은 존나 많이 힘든 겁니다.

-아무렇게나 말하고 뒤죽박죽 섞어 말하고 이 얘기 저 얘기 붙여서 말하고 말도 안 되는 얘기 하고 그런 거 너무 재밌다. 실제로 우리 사는 것도 다 이렇게 엉망이다.

-고통 없는 웃음은 없는 겁니다.

집안이 화목하면 웃길 필요가 없지. 나와서 광대 짓을 왜 하냐? 내가 뭘 해도 엄마 아빠가 웃어주는디? 우린 눈치 보고 애를 쓰는 거지……

유머러스해지고 싶다, 그러면 어린 시절부터 큰 고통을 겪으면서 사춘기 때 크게 방황하고, 그러면서 내 살길 찾아서 단절도 경험해보고, 다양한 (성적) 경험과…… 차별과 억압을 통해서 어떻게든 웃을 일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들은 얘기예요.

-엄마가 순결에 대해 이렇게 묻잖아요.

“우리 딸은 하느님 앞에 부끄러움 없겠지?”

그럼 이렇게 한 번만 돌려주란 말이에요.

“엄마는? 엄마는 어때?”

여기까지 가줘야 돼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고요히 기름이 끓다가,

밀가루가 들어가는 순간!

귀청이 나갈 것 같은 그,

대단한 폭포수 같은 그 소리,

그것이 시작된다!
(튀김 이야기이다…이 글 표현력에서도 좀 감탄)

-죽을 때까지 해야 되는 일은 없어요. 죽을 것 같으면 안 해야 돼요.

-다 해도 됩니다.

페미니스트 종류 되게 많습니다.

슈퍼마켓 같은 거예요.

자유롭게 맘대로 사십시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괜찮아, 별일 아냐.


+베그노스

+상처 헤집는 삽화 보고 생각나서 가져온 내 그림

+지드래곤 흉내내다 발라당, 10년 전 나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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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6-04 15: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제가 지금 보고 있는 분이 바로 열반인님이신 거죠?

저는 항상 수학 문제 풀고 또 풀고, 뭔가 차도녀 이미지로 상상했는데 사진 속 GD헤어님은 완전 정열의 여인이신데요. 조명때문인가요.
근데 어쩌다가 완전히 무대에 누우신거예요^^

그리고 이자람님을 금연이라고 내보내셨단 말예요 ㅎㅎㅎ아놔!!

2023-06-04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04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04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04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04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04 1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04 1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미 2023-06-04 21: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탈색 잘 어울리는데요?!! 열반인님 너무 멋있다!!
뭐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후회가 덜한것 같아요.
저도 요즘 그런 것들을 적어두고 있습니다ㅋ 일단 적는 것부터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6-05 08:44   좋아요 1 | URL
미미님 말씀 듣고 생각해보면 저 하고 싶은 건 그럭저럭 다 하고 산 것 같습니다ㅋㅋㅋ적은 것들 궁금하고 하나하나 다 했다! 안 해도 그만- 하시며 후회 없이 행복하시길 ㅎㅎ

새파랑 2023-06-04 23: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가 상상(?)하던 그 열반인님의 이미지가 맞았네요 ㅋ 뭔가 잘 어울리시는거 같아요~!! 내향적이라고 하시기엔 좀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6-05 08:42   좋아요 1 | URL
제가 그 INFJ입니다…T에서 F로 변하긴 했지만 I는 굳건한 은둔자 입니다 ㅋㅋㅋ

Yeagene 2023-06-07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열반인님 의외의 모습!ㅎㅎ 탈색한 머리랑 패션 멋있으세요♡

반유행열반인 2023-06-07 22:49   좋아요 1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진님 ㅎㅎ저건 무대용이고 지금은 지극히 평범(?)하게 화장 머리 안 한지 거의 이 년 되어 가는 꾸질이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