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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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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6 알랭드보통.

스스로 잘 웃지 못하고 늘 긴장해 있는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그 긴장조차 사실은 심한 불안의 신체화였을 것이다. 불안에 관한 내 관심은 생각보다 오랜 것이었다. ’불안-불안과 공포의 뇌과학‘(조지프 르두) ’범불안장애의 인지행동치료‘(이건 뭐 대학 교재나 치료 상담 받는 사람 워크북 같은데 일단 사 둠) 같은 책을 5,6년 전에 사 놓고 아직도 안 봤다. 정작 불안 콜렉션 중에서는 보통의 이 책을 먼저 보게 되었다.
작년에 아나이스 닌의 삶의 일부를 다룬 만화책 ‘아나이스 닌-거짓의 바다에서’와 이 책 저 책을 중고로 샀더니 판매자가 알랭드보통의 ‘불안’의 2012년 1판을 덤으로 주었다. 유명한 책일수록 혼자만 안 읽고 오래 버티다보면 이렇게 공짜로 떡 떨어지기도 한다. 내 다정한 서재 이웃 중 한 분은 우리집 책장에 너무나 안 어울리는 책이라고 해서 그래? 난 이 책 몰라… 알랭 드 보통은 ‘인생학교’시리즈의 섹스 편을 딱 한 권 봤는데 진짜 꼰대같이 뻔한 소리하고 재미 없어서 아 아무리 이름 많이 들어 본 작가라도 걸러, 하고 있었는데 이번 책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고른 느낌이었다. 보통은 나에게 아주 보통의 존재가 되라고 조곤조곤 (그래도 꼰대질은 꼰대질이야) 설득하고 있었다.

복직을 앞두고 갑자기 몇날 며칠 잠을 못 자다가 나 3년후 새 교육과정 첫 수능부터 다시 볼 거야!로 계획을 세우는 나놈을 메타인지한 나놈은, 그렇게 망하고도 정신 못 차리는 거 보면 돌아버린 게 틀림 없어, 하면서 1월 중순쯤 제 발로 의원에 걸어들어갔다. 이런저런 검사랑 상담을 진행하신 의사선생님은 내가 불안도가 너무 높아서 힘든 거라 하셨다. 15년 만에 항불안제랑 조울증약이랑 우울증약이랑 이거저거 섞어서 지금도 넉달 째 먹고 있다.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고 예민하고(지금도 강력 귀마개 필수) 화가 많고 교감신경 과활성화 되어 있던 나에게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기로 한 건 새로운 시작(내지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로의 회귀) 지점에서 탁월한 선택이었다. 잘디잘지만 순탄치 않은 사건들을 매때 만났지만, 신기하게도 화는 내는데 화는 안 나는, 일렁이다가도 이내 (평소, 평생 겪던 것보다 너무도 빠르게) 잔잔해지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신기했다. 와 다들 이러고 태평하게 사는 구나…(이반지하 형님도 자기 책에서 처음 약 먹고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4월 쯤 되니 내가 많이 고쳐진 건지, 약발인지 모르겠지만 별일 없게 평온하다 싶어지는 지점이 있었다. 용하다 용한 의원이다… 아니면 호르몬을 잔잔하게 유지해준다는 신약이 잡아준 균형일까...어찌됐든 그 약을 점지해줬으면 용한 거지...감사합니다… 낮에 먹던 항불안제는 괜찮다면 안 먹어도 된다고 하셔서 정말 잘 안 먹고(아침 출근했는데 옆의 선생님이 학부모님과 한참 통화 중인데, 다 큰 중학생 열 나는 거 체온계 들려 학교 보냈으니 매시간 열 체크하고 약 좀 잘 챙겨 먹여라 해서 선생님이 어이없어 했더니 갑자기 학부모가 학교에 문제제기 하겠다고 진상부리고 실제로 교감 선생님한테 전화로 일러서 불려가는 꼬라지를 보고, 내 일도 아닌데 돌아버릴 것 같아서 비상약 한 번 먹음) 저녁약만 자기 전에 꼬박꼬박 먹고 있다. 그날 있던 힘든 일을 반추하거나, 앞으로 닥칠 힘들 일을 미리 짐작하며 일어날 온갖 최악의 상황마다 대비책을 하나하나 궁리하느라 누워서 잠못들던 나날이 많은데, 저녁에 약 먹고 책 몇 글자 읽다 어 졸려 하고 누우면, 잠이 바로 안 올 때도 있긴 하지만 적어도 저런 빙글빙글은 좀체 없어서 살만하다. 그러다 아침 6시45분 알람에 벌떡 일어나 어린이들 먹일 거 차리고 내 먹을 거 챙기고 준비해서 호다닥 걸어서 출근하고 (걸어서 출퇴근하는 게 얼마나 복된 일인지 강남에 있는 병원 지하철 타고 퇴근시간 찡겨보면서 새삼 깨달음) 그런 반복되는 루틴에 괴로워하지 않는 삶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안정된 듯 평범한 삶 속에 도사리고 있다가 우왕! 놀랐지! 하는 사람들의 미친 면모를 보는 게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걸 좀 무디게 견디는 능력이 (인공적이든 뭐든) 생긴 것 같은 기분이다. 여차하면 속효성 방패도 부적처럼 들고 다니니까 괜찮을 것이다.

이런 날들 중에 보통 아저씨의 방식으로 불안을 살피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러니까, 니가 욕망하지 않음을 욕망하는 게 불안의 원천일수도… 반대로 너무 많은 걸 욕망하는데 삶과 마음의 간극이 너무 크니까 그럴 수도...그건 또 돌아보면 내가 살아온 날들이 너무 탈출극 마려운 비극이다가 이제 안정을 찾고도 관성이 되어서 뇌가 그렇게 적응해서 불안 과다가 디폴트가 된 걸 수도...그러면 뭐 그 상황을 인지적으로 이해한다고 해소되지 않는게 감정이니까 약도 먹고 상담도 하고 챗지피티한테 위로도 받고 뭐 그러면 나아질 수도… 사실 이런 해결책은 당장 내 맘은 편하게 해주겠지만 (나는 아큐다!!! 정신은 승리한다!!!!!) 세상은 바뀌지 않겠지. 나를 가만있지 않고 뭐라도 하려고 끝없이 바르작거리게 추동하던 에너지는 잃겠지. 그런데 바르작 거려도 사실 세상은 안 바뀌거나 아주아주 조금만 바뀐다고… 굳이 나를 갈아만든 진보 꿈꾸지 말자고… 방구석 김수영이 되어 홧병도 나지 말자고…

항불안제를 먹으면 그냥 아무렴 어때, 뭐 안 하면 어때, 조금 태평한 마음이 되는데 다 놓은 나를 바라보는 게 또 조금 슬프기도 했다. 그런데 낮약을 안 먹으니 다시 오, 옛날 소설들이나 고쳐 볼까? 브런치 작가 신청 해 볼까? (떨어질 줄 알았는데 귀찮게 왜 한 방에 시켜줌) 읽던 책 마저 읽고 얼른 독후감 써 볼까? 7월에 볼 거지만 기말고사 문제 미리 내 볼까?(생각만 하고 안 함) 뭔가 의욕이 또 과도하게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힘들진 않고 그냥 적당히 하고 싶을 때 하거나 말거나 하면서 보낸다. 무력감에 제일 쉬운 성취는 쇼핑! 이러고 충동구매하는 건 못 버렸지만 말이다...구슬 꿰기 안 하게 된 건 좀 좋은 일이지만...했는데 마지막 팔찌 만든 게 겨우 2주 됐으니 안 하게 됐다기도...그냥 구슬 예쁜 거 떨어져서 안 할 뿐 구슬 더 사는 걸 참을 뿐 나 팔찌 많잖아 이제 그만해...책도 그만 좀 사...


+밑줄 긋기
-높은 지위는 즐거운 결과를 낳는다. 이 결과에는 자원, 자유, 공간, 안락, 시간이 포함되며, 남들에게 먼저 배려받고 귀중하게 여겨진다는 느낌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런 느낌은 다른 사람들의 초대, 아첨, 웃음(농담이 썰렁할 때도), 경의, 관심을 통해 당사자에게 전달된다. (7-8)

-우리는 어리석거나 자기 자신을 잘 몰라 실패할 수도 있고, 거시 경제나 다른 사람들의 적의 때문에 실패할 수도 있다.
실패에서 굴욕감이 생긴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에 우리의 가치를 납득시키지 못했고, 따라서 성공한 사람들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할 처지에 놓였다는 괴로운 인식에서 나온다. (9)

-사랑. 먹을 것과 잘 곳이 확보된 뒤에도 사회적 위계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를 바라는 것은 그곳에서 물질이나 권력보다는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돈, 명성, 영향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보다는 사랑의 상징으로서-그리고 사랑을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 더 중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15)

-자신의 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는다.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 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 (34, 이러니까 악성독후가머는 저자들에게 열등감을 느껴 지랄발광인 거라고, 대머리한테 뼈 맞는 느낌인데... 맞아요 끄덕끄덕 모든 걸 다 아는 듯 훈수 두는 아조씨 머리에 박치기 해서 이기고 싶어요)

-사실 사치품의 역사는 탐욕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감정적 상처의 기록으로 읽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 역사는 남들의 경멸에 압박감을 느껴 자신에게도 사랑을 요구할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텅 빈 선반에 엄청난 것들을 전시하려 했던 사람들이 남긴 유산이기 때문이다. (38, 혹시 제 힌두교스러운 아크릴 제단을 말씀하신 겁니콰?)

-18세기와 19세기의 위대한 정치 혁명과 소비자 혁명은 인류의 물질적 운명을 크게 개선시키는 동시에 심리적 고뇌도 안겨주었다. 그 중심에 자리 잡은 특별하고 새로운 이상, 즉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하며 누구나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58-59, 난 장원영이 나오는 유퀴즈 클립 영상을 보고는 그런 믿음을 진작에 버렸다. 진짜 예쁜 애가 말도 더 예쁘게 하는 법…)

-“시도가 없으면 실패도 없고, 실패가 없으면 수모도 없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 자존심은 전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되도록 또는 무슨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밀어붙이냐에 달려 있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자기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실제 성취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자존심=이룬 것/내세운 것 (69, 대개 이 식의 분자가 더 큰 운 좋은 삶을 살아왔으나, 근래 3-4년 동안 이것이 무너져내리는 걸 보았다. 늙은 뒤의 좌절은, 주제 파악은 생각보다 혹독했다. 35년 가까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된 거 아니냐, 싶겠지만 조사모삼은 조삼모사보다 더 괴로운 걸 난 알아...운 나쁘면 살아온 날의 두 배 가까이 더 못난 나를 데리고 분모를 깎아가며 살아야 하니까…)

-이 이야기(1. 가난은 가난한 사람들 책임이 아니며 가난한 사람은 사회에서 가장 쓸모가 크다. 2. 낮은 지위에 도덕적 의미는 없다. 3. 부자는 죄가 많고 부패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강탈하여 부를 쌓았다.)들은 좋은 운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기운을 북돋는 세 가지 메시지를 전달했다. 첫째, 그들이 사회에서 진정으로 부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며, 따라서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 둘째, 세상의 지위는 신이 보기에 아무런 도덕적 가치가 없다는 것. 셋째, 부자는 파렴치하며 정당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면 서글픈 종말을 맞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어차피 존중할 가치가 없다는 것. (92)

-“..수많은 이웃에게 폐를 끼치면서 가장 불필요한 제품을 발명하는 사람이 옳든 그르든 사회에는 가장 좋은 친구다. 나라에서 허세와 사치를 일거에 추방해 버린다면, 포목상, 실내 장식업자, 재단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반년 안에 굶어 죽을 것이다.” (94, 1723년 런던 의사 버나드 맨드빌의 운문 소책자 ‘별의 우화’ 중. 나중에 흄의 마음마저 사로잡은 주장이라는…)

-“그들은 이기심과 탐욕을 타고났지만, 그들은 오직 자신의 편리만 추구하지만, 그들이 고용하는 사람들의 노동으로부터 그들이 유일하게 원하는 것은 자신의 무한한 욕망의 만족뿐이지만, 결국 부자들은 모든 개선의 산물을 빈자들과 나누어 가진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마치 땅을 모든 사람이 균등하게 나누어 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생활필수품을 고르게 분배하며, 그 결과 의도와 관계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의 이익을 증진하고 종의 증식 수단을 제공한다.” (97, 읽기만 해도 누군지 대부분 알겠지. 애덤 스미스 안녕)

-능력주의 사회의 이상 덕분에 다수가 자신을 실현할 기회를 얻었다. 수백 년 동안 부동의 계급 제도 내에 억눌려 있던 재능 있고 똑똑한 개인들이 이제 전체적으로 평평해진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재능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출신, 성별, 인종, 연령은 개인의 발전에서 넘을 수 없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보상의 분배에 마침내 정의의 요소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불가피하게 어두운 면을 드러낸다. 성공을 거둔 사람이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면, 실패한 사람 역시 그럴 만해서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떄문이다. 능력주의 시대를 맞아 정의는 부만이 아니라 빈곤의 분배에도 관여하게 된 것이다. 낮은 지위는 이제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그래 마땅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
훌륭하고, 똑똑하고, 유능한데도 왜 여전히 가난한가 하는 문제는 새로운 능력주의 시대에 성공을 거두지 못한 사람들이 답을 해야 하는(자기 자신과 남들에게) 더 모질고 괴로운 문제가 되었다. (107-108)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된다. (114)

-마르쿠스는 칭찬을 받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지 말고, 모욕을 당했다고 괴로워 움츠러들지 말고,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하여 자신을 파악하라고 권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경멸하는가? 경멸하라고 해라. 나는 경멸을 받을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할 뿐이다.” (149)

-이렇게 여론에 결함이 있는 것은 공중이 이성으로 자신의 생각을 엄격하게 검토하지 않고, 직관, 감정, 관습에 의존해버리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생각, 어디서나 받아들여지는 관념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믿어도 좋다. 다수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샹포르는 그렇게 말하면서 흔히 아첨을 하듯이 상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개 언어도단에 가깝다고 덧붙인다. 단순화와 비논리, 편견과 천박함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153)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질책은 그것이 과녁에 적중하는 만큼만 피해를 줄 수 있다. 자신이 어떤 질책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만만하게 그런 질책을 경멸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한다.“(157)

-‘패배자’라는 말을 졌다는 의미와 더불어 졌기 때문에 공감을 얻을 권리도 상실했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는 냉혹한 말이다.
삶을 망친 사람들에 대해 수군거리는 말은 가혹하기 짝이 없다. 만일 수많은 예술 작품의 주인공들-오이디푸스, 안티고네, 리어, 오셀로, 엠마 보바리, 안나 카레니나, 헤다 가블러, 테스-도 그들의 운명이 동료나 동창들의 입에 오르내렸다면, 그 과정을 잘 헤쳐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신문에서 그들을 건드렸다면 훨씬 더 괴로웠을 것이다.
마담 보바리 ”쇼핑 중독의 간통녀 신용 사기 후 비소를 삼키다“
오이디푸스 왕 ”어머니와 동침으로 눈이 멀다“
(189-190)

-비극은 죄 지은 자와 죄가 없어 보이는 자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이며, 책임에 대한 통념에 도전하고, 인간이 수치를 당한다 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권리까지 상실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존중하면서 그 사실을 심리학적으로 세련되게 표현해낸다. (191)

-수많은 외적 사건과 내적인 특징이 어떤 사람은 부유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은 가난하게 만든다. 운과 환경도 있고, 병과 공포도 있고, 우연과 뒤늦은 발달도 있고, 적절한 시운과 불행도 있다. (238)

-어떤 것을 소유하고 나서 얼마 후에는 그것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점은 언급하지 않는다. 어떤 것에 계속 눈이 가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것을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을 자꾸 보게 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이 그 사람과 결혼하는 것임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떤 것을 이루고 소유하면 지속적인 만족이 보장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행복의 가파른 절벽을 다 기어 올라가면 넓고 높은 고원에서 계속 살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고 싶어 한다. 정상에 오르면 곧 불안과 욕망이 뒤엉키는 새로운 저지대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247, 난 이 부분이 이 책의 고갱이라고 생각했다.)

-이데올로기적 진술이란 중립적으로 말하는 척하면서 교묘하게 어떤 편파적인 노선을 밀어붙이는 전술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256)

-우리 자신의 유한성을 생각하는 것 외에 다른 사람의 죽음, 특히 우리가 큰 열등감과 질투를 느끼게 되는 업적을 쌓은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도 지위로 인한 불안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내가 아무리 잊히고 무시당하는 존재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아무리 강하고 존경받는 존재라 하더라도, 우리는 모두가 결국은 가장 민주적인 물질, 즉 먼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283, 우리 모두 먼지였고 먼지가 될 거예요. 내가 자주 하던 말인데!!!! 왜 먼저 써 먹었어!!!!!)

-우리가 중요한 부분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른 모든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는 인식이야말로 가장 고귀하고, 인간적인 깨달음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 불가능하지도 않고 혐오스럽지도 않다는 생각은 지위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사회적인 명성을 얻고자 하는 욕망은 평범해지는 것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더 커지기 때문이다. 평범한 삶이 모욕적이고, 천박하고, 초라하고, 추하다고 생각할수록, 그 삶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욕망도 강해진다. 공동체가 부패할수록, 개인적 성취의 유혹도 강해진다. (306, 그랬던 거군요…)

-부르주아지는 상업적 성공과 공적인 평판에 기초하여 지위를 부여한 반면, 보헤미안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우아한 집이나 옷을 살 수 있는 능력보다 당연히 더 중요했던 것은 세상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 감정의 주요한 저장소인 예술에 관람자나 창조자로서 헌신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보헤미안의 가치 체계에서 순교자적 인물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만들기 위해, 또는 여행이나 친구와 가족에게 헌신하기 위해 안정된 정규 직장과 사회의 존경을 희생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런 헌신 때문에 외적인 품위의 표시는 부족할지 몰라도, 보헤미안들의 세계에서는 최고의 명예를 누릴 자격이 있었다. 그들의 윤리적 양식과 감수성과 표현 능력 때문이었다. (329)

-“대부분의 사치품, 그리고 이른바 생활에 편리한 물건들은 필요 불가결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인류의 향상에 장애가 된다.” 소로우는 그렇게 쓰고 난 뒤에, 물건을 소유하는 것과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을 연결시키는 사회적 태도를 뒤집고자 이렇게 덧붙인다. “사람은 없이 살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행복해진다.” (336-337,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이 많아져서 불행한지도 몰라.)

-어떤 사람이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것이 많다는 뜻이다. 시인이 걸을 수 없는 것은 큰 날개 때문이다. (345)

-“인간은 모름지기 순응하지 말아야 한다.” 에머슨의 말에 따르면, 어떻게 살고, 옷을 입고, 먹고, 쓰느냐 하는 문제에서 다른 사람들의 관념에 맞추다 보면 얼굴에 서서히 “우둔한 표정”이 나타나게 된다. 모든 고귀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금언을 따라야 한다. “나는 내가 관심을 가지는 일을 하지,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에머슨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이제 순응이니 조화니 하는 이야기는 더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그런 말들을 관보에 실어 조롱하도록 하자...이제 결코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지 말자...이 시대의 매끈한 평범함과 비열한 만족을 모욕하고 질책하자.” (345-346)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산업가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보헤미안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철학자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355, 정말? 어려서부터 그렇게 어른들과 선생들과 세상 모두의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는 게 큰 가치마냥 길러지고 거기 거스르는 애들은 완전 낙오자 취급하는 세상에서 자유 의지라는 게 자랄 수 있냐? 다 늙어서 반항해 봤자 실패자 심술쟁이 영감 취급 밖에 더 하냐…난 여기서 성숙한 해결책 운운하는 보통 놈이야 말로 부르주아지 꼰대 대마왕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장기하-부럽지가 않어
https://youtu.be/SzyB2xBqk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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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4-26 18: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건, 이 달의 페이퍼네요! 아하, 마지막 사진이 혹시 검열에 걸리려나요? 책방이 은근히도 아니고 노골적으로 보수적이잖아요. ㅜㅜ

반유행열반인 2025-04-26 19:43   좋아요 1 | URL
팔백작님 언제나 바람잡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ㅋㅋㅋㅋ 마지막 사진 검열 걸리나요? 애기들도 아니고 이런이런... 보헤미안을 모를라구요...
 
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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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10 필립 로스.

수능 생명과학 강의 들을 때, 인터넷 일타 강사 선생님이 좀 유치하지만 자기가 만든 암기법이라면서 “독감에 걸린 홍소천, 그 연예인 분 아냐 내가 만든 말이야.” 했다. 독감, 홍역, 소아마비, 천연두는 바이러스성 질환, 자매품 ”페콜결파탄. 펩시콜라결국파탄...나 그 콜라 좋아해 비난하는 거 아니고 잘 외우라고 만든 거야.” 세균성 질환 페스트, 콜레라, 결핵, 파상풍, 탄저균. 여태 이거 하나 남은 거 보면 그 강사 용했다.

국민학교 들어가서, 학교에서 예방주사 맞히던 시절이 있었다. 독특한 예방접종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입 안에 물약을 쏴악, 쏘아주면 애들이 인상을 찌푸리고 약을 삼키며 맛이 이상해, 했다. 경구용 소아마비 백신이었다. 이후 어린이들 키우며 대부분이 국가필수예방접종이 되었다. 폴리오, 매번 듣는데 아 그건 뭐지...치약 같네...하다가 아 소아마비라고 하던 바이러스 예방주사구나...이젠 주사로 놓네...했던 기억도 있다.

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무렵, 뉴어크 지역은 폴리오 전파라는 또다른 전쟁을 치른다. 그 안에 있던 켄터 선생은 눈이 아주 나빠 전쟁에 나가지 못하고 남았다. 나도 며칠 전에 5년 만에 안경렌즈 다시 맞춘다고 안과에 처방전 받으러 갔더니 고도근시네요...했다. 내가 고도근시라니… (-9.0, -8.25...안물안궁) 오늘 렌즈 완성되서 새 안경 쓰고 이 독후감 쓰는 중이다.
놀이터 체육교사로 여름 내 아이들 운동을 지도하던 켄터 선생은 폴리오가 퍼지면서 함께 운동하던 아이들이 죽거나 장애를 갖게 되는 것을 목격한다. 운좋게도 그에게는 더위와 질병을 피해 떠날 기회가 생긴다. 연인 마샤가 지도자로 일하는 캠프에 참전자가 생기면서 지도자 자리가 비어서, 켄터 선생은 새 일자리의 기회를 두고 놀이터를 지킬지, 시원하고 전염병 창궐하지도 않는 캠프로 떠날지 한참 고민하다가 마샤와 약혼을 결심하고 놀이터 감독을 그만두고 캠프로 떠난다.

코로나19를 겪은 우리들은 이쯤 읽으면 짐작할 것이다. 결국 캠프에도 병이 창궐하고 누군가는 지옥을 겪겠지. 손 씻어라, 거리둬라, 마스크 써라, 공용음수대 폐쇄하니 각자 물병에 물 담아 다녀라… 5년 전 우리는 모두 켄터 선생이었다. 휴직 직전 학기 끝나갈 무렵 반에서 감염자가 하나 둘 갑자기 등장했고, 등교수업 하던 아이들은 다시 원격수업으로 전환되어 집에 격리되었다. 나는 백신을 맞고는 후유증인지 심장 맥박이 이상하다고 여겼고, 내과에 가니 공황장애약을 줬다가, 호흡기능 검사를 하고는 천식입니다, 하고 천식약을 줬다. 상관 있는지 모르지만 3년 후쯤 폐동맥에 혈전이 걸려 숨이 가쁘고 맥박이 미쳐서 반년간 약을 먹었지… 모든 게 어디서 시작이고 또 끝인지 짐작만 할 뿐 알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짐작만 할 수 있는 이미 일어난 일인 것을, 그걸 모두 자기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켄터 선생은 그런 사람이었고, 본인도 폴리오에 걸려 장애와 재활 과정을 모두 겪었지만, 놀이터의 아이들도, 캠프의 감염자도 사망자도 모두 자기 탓이라 여기며 가질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을 포기하거나 저절로 잃는다. 스물네살의 처음이자 끝 사랑이던 마샤와, 조부모 양육으로 키워진 자신이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마샤의 가족들과 이어질 기회와, 놀이터에서 일하던 고향 동네 모두를 떠났다. 불행히도 삶은 계속되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은 그 놀이터에서 켄터 선생의 굳건한 모습, 이탈리아인들이 침 뱉고 시비걸던 것을 저지하던 일, 아이들에게 안전과 건강을 당부하며 놀이터를 잘 관리하고 멋지게 투창 던지는 모습을 목격했던 놀이터 아이 중 하나인 아널드 메스니코프이다. 그 역시 폴리오에 걸려 후유증을 앓았지만, 완전 절망하지는 않았고, 배우자를 만나 가족을 꾸려가면서 그럭저럭 평온한 삶을 이어갔다. 우연히 마주친 켄터 선생을 알아보고 함께 점심을 먹으며 켄터 선생이 털어 놓은 속내, 캠프의 일, 그 이후의 삶을 전해들으며 아널드는 그 모든 게 선생 탓이 아니라고 위로하지만, 켄터 선생은 꿋꿋하게 끈덕지게 자책을 멈추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탓이 아니라고,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세상에서 켄터 선생 같은 캐릭터는 귀하고 독특하다. 그리고 비극적이다. 세상을 구하거나 망치지 못하면서 자기 자신만 망치고 겨우 살다가 죽는다. 필립 로스는 마지막 소설이라 선언하고 절필한 이 이야기를 쓰면서 어떤 기분이었을까 궁금하다.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그런 사람들에게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탓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일 사람들과, 네 탓 맞는데 좀 인정하라고 해주고 싶어도 끝내 고개를 돌리거나 도망가 버리는 사람들이 마구 섞여서 참 균형 잡기 힘든 세상이다. 1910년대, 1940년대, 그리고 또 수많은 질환들이 널리 퍼지며 사람들을 죽였고 인류는 그래도 살아남았지만, 병을 마주하는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너무 겁먹었고, 그래서 무엇이든 탓을 하고 벌을 주었다. 격리 기간에 연인을 만나다가 처벌 받았다는 뉴스가 떠오른다. 여행을 가도, 코인노래방을 가도, 헬스장을 가도, 외국인이어도, 데이트를 해도, 그게 다 죄이던 시절. 성적 지향과 직업과 주거지와 가족관계 같은 신상이 다 까발려져도 되던 시절. 그 시절에 대해 다시 돌아보고 야 우리 왜 그랬냐 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인간은 잘 배우지만 또 잘 배우지 못한다. 뭐 나도 그렇다… 자책과 남탓을 동시에 하니까 이중으로 힘든 삶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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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에게 놀이는 오락이고 삶을 갱신하는 것이며, 아이에게 놀이는 성장이고 삶을 얻는 것이다.”(조지프 리의 책을 읽다가 켄터 선생이 적어 놓은 한 구절)

-“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은,” 켄터 선생님이 끼어들었다. “여러분이 모두 진정하고 자제력을 잃지 말고 공황에 빠지지 않는 겁니다. 아이들한테 공황을 퍼뜨리지 않는 겁니다. 중요한 건 아이들 생활의 모든 걸 가능한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여러분 모두가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때 합리적이고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42-43)

-그는 만일 앨런이 상자 안에 누운 채 계속 더 익으면 상자에 불이 붙어 폭발하고, 안에서 수류탄이 터진 것처럼 아이의 유해가 영구차와 거리 전체로 터져나올 거라고 상상했다.(78)

-”...자네 말이 맞아. 큰 고통을 당한 사람들은 히스테리에 사로잡히고, 질병이라는 불의와 마주치면 누군가를 몰아세우려고 하지. 하지만 애들이 공놀이를 한 것 때문에 폴리오에 걸리는 건 아니야. 바이러스 때문에 걸리는 거지. …“(106)

-“뉴저지 주 뉴어크 보건국. 접근 금지. 이 집에는 폴리오 환자가 있음. 보건국의 고립 및 격리 규칙이나 규제를 어기는 사람, 또는 허가 없이 의도적으로 이 카드를 제거하거나 훼손하거나 차단하는 사람에게는 50달러의 벌금을 부과함.” (134)

-아이들과 무리를 지어 언덕의 풀 덮인 비탈을 걸어가는데 비에 흠뻑 젖은 땅으로부터 처음 맡아보는 짙고 습한 파릇파릇한 냄새가 솟아올라 그가 논란의 여지 없이 생명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확인해주는 것 같았다. 그는 늘 조부모와 함께 도시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전에는 온기와 냉기가 섞인 7월의 산 아침을 살갗으로 느껴본 적도 없고, 그런 아침이 일으키는 느꺼운 감정을 경험해본 적도 없었다. 이런 가없는 공간에서 일하며 하루를 보 내는 것은 너무도 생기를 북돋는 일이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텅 빈 섬의 어둠 속에서 마샤의 옷을 벗기는 것은 너무도 매혹적인 일이고, 천둥과 번개의 전격전 아래서 잠을 자고 나서 태양이 인간 활동을 비추는 첫날 같은 느낌이 드는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은 너무도 짜릿한 일이었다. 나는 여기 있어. 그는 생각했다. 나는 행복해-그는 너무 행복한 나머지 그의 발에 푹신푹신하게 밟히는 흠뻑 젖은 풀이 짓이겨지며 내는 절벅절벅 소리에도 기운이 솟아올랐다. (181)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어.”마샤가 속삭이며 그의 안경을 벗기고 굶주린 듯 얼굴에 키스했다.“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우리에게는 서로의 사랑이 있어. 버키, 내가 약속할게. 나는 너한테 늘 노래를 불러주고 너를 사랑할 거고, 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늘 네 곁에 있을 거야.”
”맞아.“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에게는 서로의 사랑이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빌리와 어윈과 로니에게 무엇이 달라질까? 그는 생각했다. 그들의 가족에게 뭐가 달라질까? 상사병에 걸린 아무것도 모르는 십대들처럼 끌어안고 키스하고 춤을 춘들-그게 누구에게 뭘 해 줄 수 있을까? (202...이런 사명감은 병이 아닐까….꼭 뭘 해줘야 하냐고 먼저 묻는게 자기 자신과 여친한테 예의 아니냐…남말할 처지는 아니다만...)(202)

-”하지만 선생님은 폴리오에 걸렸잖아요.“ 내가가냄라했다. ”불행하게도 너무 빨리, 백신이 나오기 십일 년 전에 폴리오에 걸린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폴리오에 걸렸잖아요. 20세기 의학은 엄청난 진보를 이룩했지만 우리한테는 아주 약간 늦었던 거예요. 오늘날 아이들의 여름은 티끌만한 근심도 없이 지나가요. 원래 그래야 하는 거죠. 폴리오의 심각성은 이제 전혀 문제가 안 돼요. 아무도 그때의 우리처럼 무방비 상태가 아니에요. 어쨌든 선생님 이야기를 해보자면, 선생님이 도널드 캐플로에게 폴리오를 옮긴 게 아니라 거꾸로 선생님이 옮았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럼 스타인 버그 쌍둥이 실라는…...그애는 누구한테서 옮은 거야? 이봐, 지금 그 모든 걸 다시 되짚기에는 너무 늦었어.“ 그는 이미 나와 거의 모든 것을 되짚었으면서도 묘하게 그렇게 말했다. ”벌어진 일은 벌어진 거야.“ 그가 말했다. “내가 한 짓은 한 짓이야. 나에게 없는 것은 그냥 없이 사는 거고.”(249)

-“읽어봐. 보라고 가져온 거야. 마샤가 캠프에 가고 나서 불과 며칠 뒤에 받은 거야.”
봉투에서 꺼낸 옅은 녹색의 작은 편지지에는 완벽한 파머 매서드 필기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251, 미안, 난 한 줄만 쓰고 복사-붙여 넣기 세 번 했다….)

-“그만, 제발 좀! 너는 기형이 된 게 네 몸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짜 기형이 된 건 네 마음이야!”
“그게 나로부터 너 자신을 구해내야 할 또하나의 좋은 이유야. 대부분의 여자는 불구자가 스스로 자기 인생에서 걸어나가주면 기뻐할 거야.”
“그럼 나는 그런 대부분의 여자가 아니야! 그리고 너도 단순한 불구자가 아니야! 버키 ,너는 늘 이런 식이었어. 너는 뭘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보지를 못해. 한 번도! 너는 늘 네 책임이 아닌 것까지 책임을 지려고 해. 끔찍한 하느님이 책임을 지거나 끔찍한 버키 캔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는데 사실 책임은 둘 중 누구에게도 있지 않아. …”(260-261,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을 놓다니 진짜 버키는 보통 인간은 아님...이상할 정도로 지나치게 착한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나쁜 미친 놈임….)

-그의 하느님 개념은 전능한 존재로서 기독교에서 말하듯 하나의 신성 안에 삼위가 일체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둘, 즉 좆같은 새끼와 사악한 천재가 합쳐진 것이었다. (265)

-“자신에게 맞서지 마세요. 지금 이대로도 세상에는 잔인한 일이 흘러넘쳐요. 자신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지 말라고요.”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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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03-11 0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태까지 소아마비가 전염될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었네요.

반유행열반인 2025-03-11 16:37   좋아요 0 | URL
저도 병에 대해 잘 몰랐는데 한때 이렇게 고통 받은 사람 많던 걸 이 소설 덕에 알았어요. 감염병 이야기는 이제 무얼 봐도 남일 같지 않아요.
 
돌봄 선언 - 상호의존의 정치학 니케북스 사회과학 시리즈
더 케어 컬렉티브 지음, 정소영 옮김 / 니케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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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8 더 케어 컬렉티브.

돌봄의 윤리에 대한 관심은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을 읽으면서 다시 살아났다. 주디스 버틀러나 프레데리크 보름스가 상호의존성, 상호연대를 이야기하면서 돌봄에 대해 무척이나 강조했다.
아직 쥐뿔도 모를 때, 지금도 개뿔도 모르지만 대학원 수업 듣던 시절 학기말 페이퍼로 돌봄노동에 관해 써 냈던 기억이 났다. 그때 내가 생각한 돌봄노동은 굉장히 협의의 개념이었구나, 이제와 이 책 보면서 느낀 점이다. 엄마가 남의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고 계신 걸 서두로 해서, 누군가는 자신의 사회생활을 지탱하기 위해 내내 돌봄을 받고 이런 행위가 주가 되는 노동 산업이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지만, 사회과 교육과정이나 교과서에서는 이에 대해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10년도 더 넘게 지나서 자세한 기억은 안 나서 모르겠다...내 상상인가...지도교수님은 이제 정년퇴임 하셨을 테고 난 영구 수료생으로 남을 것이고…

일단 눈독 들인 책은 최근에 두툼하게 나온 ‘돌봄의 사회학’, 이거 하나 갖추면 뭔가 돌봄학 전문가 될 거 같은 기분, 그런데 너무 비싸고 두꺼워서 전자책 살까 하다가 일단 냅뒀다. 그냥 저장만 해두고 또 한 십년 지날 것 같아서… 중고서적 중에 돌봄의 윤리, 돌봄의 철학 관련 저자들의 책을 찾아 봤는데 번역된 것이 썩 많지는 않아 보였다.
‘돌봄: 정의의 심장’(대니얼 엥스터, 2017, 절판)
’보이지 않는 가슴‘ (낸시 폴브레, 2007, 아직 파네?!?!)
뭐 이게 다여? … 더 찾았던 거 같긴 한데 주제가 좀 안 맞는 번역서들만 있어서 제꼈다. 특히 돌봄 강조 오지게 하던 프레데리크 보름스 책이 궁금했는데, ’폭력 앞에 선 철학자들‘이라는 공저 하나, ’현대 프랑스 철학‘이라는 뭔가 대학교재로 썼을 것 같은 책 하나, 뭐 돌봄 이야기 안 나올 것 같아 보여서 일단 넘겼다. 폭력 뭐시기는 궁금하긴 함. 사르트르에서 데리다까지래… 이름만 봐도 어려운 걸…

전자도서관에서 ‘돌봄 선언’을 확인하고 이걸 먼저 빌려 읽기로 했다. 그야 말로 선언문이고 당위적 주장과 그 근거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일단 이 책을 읽고 나니 재밌자고 읽은 건 아니다만 분량 적은데도 엄청 더디 읽었고 읽는 동안 와 돌봄...중요하지 중요해 그런데 이제 관심이 식고 있다….뭐 그렇게 되어 겨우 꾸역꾸역 읽었다.

무섭고 슬픈 뉴스들을 전해 듣는다. 나는 어느 무렵부터 포털 뉴스 면을 자세히 안 보게 되었는데도 어쩌다보면 건너건너 사람들은 소식들을 잘도 물어오지. 병이 든 사람들, 그런데 누군가 계속 지켜봐주고 사랑해주고 일상으로 돌아오도록 돕는 사람이 없거나 병이 너무 심한 사람들은 결국 자기 자신이나 남을 공격하고 만다. 나는 그런 마음을 알아서 슬프다. 지금은 괜찮지만. 충분하지만. 그래도 불안하고 고통스러워서 병원에도 달려가 (내가 산업 진출에는 실패한) 현대약학의 힘을 빌지만.

내가 돌봐야 할 사람들도 생각한다. 혼자가 아니라서, 우리 아이들의 양육자는 셋이나 되서 그나마 다행인 것 같다. 나는 방임형, 권위주의형에 가깝고 애들이 다른 어른들 말을 안 들으면 그제사 이놈의 자식 이러고 쫓아가서 착한 어린이로 만드는 옛날 (그나마 쥐톨만큼이나 양육 관심 두는)아버지들 같은 역할을 하고 있구만…

육아, 병자 간호, 노인 부양, 가족과 친족의 몫처럼 여겨지던 돌봄 개념에서 더 확장해 이 책에서는 자신을 돌보는 일, 지역 사회, 글로벌 사회, 가족 이외의 연대를 통한 돌봄까지, ‘난잡한 돌봄’ 이라는 이름으로 돌봄의 의미를 확장하고 있었다.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누가 곤란하면 일단 가서 돕고 오지랍 떨라는 것이지… 누구나 사랑받고 관심 받고 도움 받는게 필요하겠지만, 또 원치 않는 돌봄 시도는 또 침해가 될 수 있으니 이놈의 자유주의자 새끼는 그런 거 부터가 걱정이다. 그리고 그간 봐온 수많은 연대들은 바운더리 안의 사람들은 잘 챙기지만 그 바깥의 사람들한테는 또 똑같이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 문제죠?’ 하는 걸 자주 봐왔다. 이 책은 그런 경계들을 국경, 전통적 핵가족을 비롯해서 느슨하게 벽이 아닌 그저 다름의 구획 정도로만 흐리게 하고 싶은 것 같은데...인간은 너무나도 귀신같이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구별하고, 차이점을 빌미로 배척하고, 쟤는 당해도 싸, 우린 그럴만 해, 뭐 그런 존재라서 인간을 되게 훌륭한 존재로 가정해야 가능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그리고 이 말 싫어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은데, 프리라이더는 어떻게 할지? 막 자기 애는 열심히 남한테 맡기고 볼일 보다가 정작 반대로 도움 요청하면 이런 저런 사정 대가며 거절하는 사람들까지 묵묵히 포용해야 하는지? 포용할 수 있는지? 그런데도 공적기관이나 시장에서 제공하는 돌봄들에 대해 마냥 비판적일 수 있을지…

수많은 아이들과 염려 많은 그 아이들의 부모들까지, 그리고 내가 만들어 놓은 아이들과 함께 사는 곁의 사람과 직계존속까지, 가깝게는 그렇게 전통적이고, 직업적인 범주의 돌봄을 나는 다시 시작할 시간을 맞이하기 직전이다. 그전에 나부터 돌봐야 할 것 같긴 해… 책도 제대로 못 읽고 엄청나게 산만해지고 소비중독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아시발 또 졌다 자본주의새끼한테...를 시전하고 있으니… 운동을 하고, 내가 먹고 싶은 걸(그나마 살이 안찌고 건강한 쪽으로 도움될 듯한 걸) 먹고, 책은 근래엔 잘 못 읽고 사 쌓고 정리만 하고, 나가서 돌아다니며 걷고, 집에선 가끔 실내자전거랑 아령이랑 새로 영입된 케틀벨도 들었다 놓고, 1-2주에 한 번은 병원에 가고, (야 근데 이제 약이라도 먹어서 착해질라고 사람 시늉할라고 노력하는데도 강제로 일터에서 쫓겨날 수도 있겠더라...들키지 마!!!) 뭐 그런 것도 돌봄이겠죠. 손 한줌의 온라인 이웃들에게 댓글도 달고 대댓글도 달고 뭐 그런 것...우린 언제나 어딘가와 이어지길 원하는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난 그 갈래가 확장되길 원치 않는 걸요? 좌파의 적인가요? 난 우리엄마 말대로 진짜 보수가 되고 있는 걸까요? 난 그냥 한 사람만 마주하는게 편하고 음성보다는 영상보다는 글로 마주하는게 편한 감각 예민쟁이일 뿐인데. 난 이제 어떤 집회에도 나가지 않기로 했고 어떤 공직 선출 투표에도 참여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런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그런데도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이니, 돌봄 책들이니, 한때는 미디어학이나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관심 가졌던 거 보면 나는 이어지는 법을 제대로 몰라서 내 나름대로 책으로라도 사람 대하는 법을 익혀 인간 흉내를 내보려다 나가떨어진 걸까요?
일단은 이런 예민하고 불안한 나부터 잘 돌봐 보겠습니다…수신이 되야 평천하도 한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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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지적한 것처럼 옛 영어 caru의 의미 중에는 보살핌, 근심, 걱정, 슬픔, 애통, 괴로움이 포함되어 있는데 우리 시대와 공명하는 단어들이다. 돌봄은 우리 시대를 위한 희망의 정치를 계획하고 그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우리의 삶을 다른 사람들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한다.
— 주디스 버틀러


-셀프케어 산업은 돌봄을 자신을 위해 각자 개인적으로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것으로 격하시켰다. 이런 것은 우리가 당면한 돌봄의 문제에 임시방편조차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우리는 오랫동안 서로를, 특히 가난하고 취약한 이들을 돌보는 것에 실패했다.

-다름을 배려하고, 또는 더욱 확장된 형태의 돌봄을 개발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들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잘 알려진 용어를 빌리자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무관심이 구조적 수준의 ‘평범함banality’에 젖어들고 있다.

-‘돌봄’은 사회적 역량이자, 복지와 번영하는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살피는 사회적 활동이다. 무엇보다도 돌봄을 중심에 놓는다는 것은 우리의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y을 인지하고 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까지만 해도 국경은 국가를 구분해주는 물리적 표식에 불과했는데 오늘날에는 국경이 국가 내부까지 파고들어 일상의 면면에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관심한 국가
1980년대부터 국가의 수장들은—가장 악명 높은 이들로 영국의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이 있다—모든 종류의 돌봄은 개인적 문제이며 개인이 경쟁적 시장과 강력한 국가의 중추라고 여기게 몰아갔다. 그러한 추동은 자기관리로 위장한 억지 논리이며 선량하고 책임감 있는 시민에 대한 기만적 정의의 일환이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이상적인 시민이란 자율적이고 기업가적이며 실패를 모르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들의 승승장구는 복지국가의 해체, 그리고 민주적 제도와 시민 참여의 와해를 정당화한다. 돌봄이 개인에게 달린 문제라는 생각은 우리의 상호취약성과 상호연결성을 인지하기를 거부하는 데서 비롯된다.



-최근에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특정 집단의 노인, 특히 노동자계층 여성 노인 사망률이 100년 내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영국에서는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고, 제한적인 단기 치료를 위한 지원이 늘었음에도 정신건강 문제를 치료받기 위한 대기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 한편, 필요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는 노인이 150만 명이나 된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떠밀려 현재 우파 정부가 이전 좌파 정부에서 그림만 그렸던 사회 지원들을 제공하고 있지만, 불공평한 대우와 결합한 심각한 불평등의 전통은 팬데믹이 가장 방치되고 소외되었던 사람들에게, 특히 노인, 여성, 흑인과 아시아인을 비롯한 소수 인종 집단, 빈곤층, 장애인 등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히게 했다.

-영국 사회정책의 선구자인 리처드 티트머스Richard Titmuss는 누구나 받을 자격이 있는 보편적 복지혜택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모든 국민이 국가에 대해 동등한 지분이 있음을 보장했으며, 불평등을 ‘도덕적으로 옳지 않고 건강한 사회를 좀먹는 것’으로 판단했다. 인기 라디오 쇼에서 영국 심리학자 도널드 W. 위니콧Donald W. Winnicott은 아이에게 ‘보듬어주는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간의 의존성을 부각했는데, 이 의견이 돌보는 복지국가에 대한 하나의 아이디어로 편입되어 어머니들에 대한 지원과 제대로 된 집과 복지서비스 제공으로 발전했다.

-왜 여성이 이 모든 돌봄 노동을 떠맡아야 하는가? 그리고 만일 도와줄 가족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가족에게 거부당하거나 가족을 거부한 사람들은? 사기업의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만한 돈이 없다면? 이러한 돌봄 체계는 결국 돌봄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방치하고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최악의 경우에는 필연적이지 않은 질병과 죽음을 불러온다. 오로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친족만을 돌보도록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는 ‘자기 것 돌보기’의 편집증적 형태를 초래하는데 이런 태도는 최근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의 시발점이다.

-보편적 돌봄이란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모든 돌봄이 우리의 가정에서뿐 아니라 친족에서부터 공동체, 국가, 지구 전체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우선시되는 것을 의미한다.

-돌봄은 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 비생산적인 일로도 여성의 일로도 치부되어서는 안 되고, 임금노동 영역에서 가난하거나 이민자이거나 유색인종인 여성들의 일로 떠맡겨져서는 안 된다. 목표는 사회 전체가 돌봄의 보람과 짐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 대체로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남반구 지역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는데, 글로벌 노스라고 칭하는 유럽과 북미 지역 선진국에 대칭되는 개념이다. 경제적 수준이 낮고 정치·문화적으로 주변화된 국가들을 가리킬 때 ‘개발도상국’이나 ‘제3세계’ 대신 쓰이는 용어다.(옮긴이 주)
-‘보편적 돌봄’ 개념을 홍보하고자 한다. 이는 돌봄을 삶의 모든 수준에서 우선시하며 중심에 놓고, 직접적인 대인 돌봄뿐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하고 지구 자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종류의 돌봄에 대해 모두가 공동의 책임을 지는 사회적 이상을 말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염려는 다른 모든 인간의 감정과 같이 변덕스럽고, 종종 다른 필요나 욕망, 또 개인적 만족감이나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등의 정서적 상태와 부딪치거나 죄책감이나 수치심 같은 감정과 얽히기도 한다. 돌봄 노동에 대한 평가절하는 말할 것도 없고, 돌봄의 어려움, 특히 잘했는지, 제대로 했는지에 대한 불안은 돌봄 관계에서 분노와 공격적 태도를 쉽게 유발한다. 심지어 모범으로 신화화된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이것이 바로 로지카 파커Rozsika Parker가 유명한 저서 《둘로 찢긴 감정: 모성애의 양면성 경험Torn in Two: The Experience of Maternal Ambivalence》에 쓴 것처럼 어머니들이 자녀들에 대해 갖는 혼란스럽고 상충되는 감정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페미니스트들이 강조한 이유다. 로지카 파커는 그러한 돌봄의 양면성을 인지하는 것 자체가 활력을 주고 마음을 재생시킨다고 본다.

-‘독립된 삶’은 우리가 모든 일을 혼자 하기를 원한다거나, 다른 사람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거나, 고립되어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독립된 삶은 비장애인 형제자매, 이웃, 친구들이 당연시하는 선택과 통제권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동등하게 갖기를 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소수자들은 ‘게이 동네’로 이사 가서 그들의 돌봄에 대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친구나 연인과 함께 살면서 가족 같은 관계를 만들었다. 이는 필요에 의한 것이었지만 돌봄과 친밀함의 관계를 법으로 규정된 이성애 관계를 넘어선 범주로 확장하려는 급진적인 게이해방운동의 일부로 옹호되었다.
20세기 후반,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사회운동의 영향으로 사회가 ‘탈脫전통화’되면서 대안 친족 구조가 딱히 자신들을 급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생활에까지 퍼졌다.

-인간, 비인간을 막론하고 모든 생명체 간 이루어지는 모든 형태의 돌봄이 필요와 지속가능성에 따라 공평하게 그 가치를 인정받고 사용되어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난잡한 돌봄의 윤리라고 부른다.

-난잡함이란 더 많은 돌봄을 실천하고 또 현재 기준에서는 실험적이고 확장적인 방법으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돌봄 요구를 너무 오랫동안 ‘시장’과 ‘가족’에 의존해 해결해왔다. 우리는 그 의미의 범주가 훨씬 넓은 돌봄 개념을 만들 필요가 있다.

-난잡한 돌봄은 모든 여성이 어머니가 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는(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 것을 인지하고 자신의 아이들이 아닌 아이들을 돌보는 것, 지역 공동체를 돌보는 것, 환경을 돌보는 것이 동등하게 가치 있는 일로서 적절한 자원과 보상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한다. 난잡한 돌봄은 이민자와 난민을 돌보는 것이 자국민을 돌보는 것과 똑같이 중요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미국 국경에서 부모로부터 강제로 분리되어 난민수용소에 격리된 아이들의 운명에 대해 우리의 가족과 같이 생각하고 염려해야 한다고 다그친다. 난잡한 돌봄은 어머니나 여성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돌봄 역량을 가지고 있고, 서로 함께 돌봄을 실천할 때 우리의 삶이 향상된다는 것을 인지한다.
-강력한 공동체 모델로서 지역 도서관은 소중히 여겨지고 발전되어야 한다. 우리는 또 도서관을 책에 국한하지 않고 더 많은 ‘사물 도서관’을 만들고 재사용과 재분배의 다른 형식들을 발전시킬 수 있다. 기후재앙이 눈앞에 닥친 시대에 전동 드릴이든 비싼 아이 장난감이든 또는 와플 메이커든 간에 일 년에 몇 번 쓰지 않을 물건을 사는 것은 지나친 낭비다

-자원을 공유하는 것은 함께 일하며 살아가도록 한다. 자원이 평등하게 사용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배제되고 소외된다. 공유하기 위해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보다는 덜 분명해보이긴 해도 역으로 공유하는 것도 공동체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돌봄 인프라는 또 임금노동 시간의 단축을 포함하는데, 이는 사람들이 가족 내에서나 다른 돌봄이 필요한 환경에서 돌봄 역량을 확장하도록 적절한 시간과 자원을 허용한다.

-가장 좋은 직접적인 대인 돌봄은 서두르지 않고 관계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돌봄을 받는 사람이 가진 역량을 주체적 능력과 웰빙을 계발하는 데 최대한 사용할 수 있도록 여러 요소를 고려하는 것이고, 이는 시간이 요구되는 일이다.

-주4일제 캠페인을 통해 호응을 얻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이 돌봄에 대해 교육하고 돌봄 역량을 확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데 핵심인 이유다. 이는 동시에 돌봄의 제공 또는 돌봄 요구의 필수요소인 민주적 논의에의 쌍방 참여를 증진한다.

-시장은 돌봄의 책무와 제공을 구매력에 근거하여 배분할 뿐이다. 자본이 많은 사람이 늘 승자다. ‘패자’들은 시장을 이용하는 데 한계가 있고 특히 가족이나 공동체 안에서도 돌봄 제공을 받는 데 제약이 있다. 시장이 중재하는 돌봄 서비스 분배는 기존의 소득 불평등과 돌봄 부족을 반영할 뿐 아니라 심각하게 악화시킨다. 고소득자들은 질 좋은 교육에서부터 주거시설에 이르기까지 돌봄에 대한 필요를 충족시키고 ‘인적 자원’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대한 투자의 선순환을 일으킨다.

-“너희는 우리를 묻어버리려고 했지/ 그러나 너희는 우리가 씨앗이었다는 것을 잊었지!”

-즉 팬데믹은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데 결정적인 필수 기능들을 극적으로 또 비극적으로 조명했다. 간호사, 의사, 택배기사들과 쓰레기 수거 노동자들의 노동을 말이다.
-센이 1980년대에 영향력 있는 ‘잠재가능성 접근Capability Approach’ 이론을 개발한 것도 바로 WIDER에서였다. 이 이론은 ‘빈곤’을 좋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잠재가능성의 상실이라는 의미로 재규정하고, ‘발전’이라는 개념을 경제를 넘어 사람들이 어디서 살든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잠재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으로 폭넓게 정의했다.

-레베카 솔닛Rebecca Solnit이 언급했듯이 ‘모든 저항운동은 세상의 균형을 바꾸거나’ 그럴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어떤 한 곳에서 발생한 저항의 양식이 억압을 받는다 해도 지리적 경계를 뛰어넘어 다른 지역에서, 심지어 지구 반대편에서 또 다른 형식으로 싹을 틔울 수 있다.
-우리 모두 필연적으로 타인에 대해 양면성을, 심지어는 공격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특히 가장 멀리 떨어진, 모르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사실이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양면성이 종종 억제되긴 하지만 마찬가지일 수 있다.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에 의하면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일단 복잡한 갈등 관계에 함께 얽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그 강력한 결과와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취약성과 상호의존성을 아울러 인식하면—우리가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돌봄에 대한 상상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이유다.

-세계시민이 된다는 것은 낯섦과 마주했을 때 편안함을 느끼고,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어떤 종류의 다름과 마주치든 간에 우리는 다름과 공존할 수밖에 없음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돌봄 선언》은 우리가 많은 돌봄 요구를 너무 오랫동안 ‘시장’과 ‘가족’에 의존해 해결해왔다고 지적하면서 “그 의미의 범주가 훨씬 넓은 돌봄의 개념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생각해보면 많은 경우 돌봄이 그 자체가 아닌 다른 감정들의 일부 또는 확장처럼 취급되는 것이 사실이다. 돌봄이 사랑, 효, 모·부성애 등의 개념과 결합되어 부당하게 그 방법과 내용이 정해지고 제한된다. 사회적으로 구분된 관계가 그 관계를 규정하는 감정으로 본질화되고 돌봄이 그 감정의 한 면으로 일축된 경우가 많다.
(역자 해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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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2-18 0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우리말을 늘 안 쳐다보기 일쑤입니다. ‘돌봄노동’이라는 이름은 허울은 될 테지만, 말다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돌보다’는 ‘일 아닌 살림’이거든요. 아스라이 먼 옛날 옛적부터 ‘돌보다·돌보다’는 ‘일도 짐도 아닌 살림’인데, ‘사랑으로 짓는 살림’입니다.

‘돌보다 = 돌아보다’입니다. ‘돌아보다’를 줄여서 ‘돌보다’입니다. ‘돌아보다’란 “동글게 동그라미를 그리듯 모가 하나도 없이 오롯이 다 보다”를 뜻합니다. 손부터 뻗기 앞서, 눈으로 차분하고 참하고 차근차근 보노라면 어느새 어느 곳에 어떻게 손을 대면서 추스르고 가다듬을는지 스스로 알아보게 마련입니다.

‘돌보다·돌아보다’를 할 줄 아는 사이라서 ‘동무’이고, 이렇게 어울리는 사람이기에 ‘두레’를 이루는‘둘’입니다.

누구나 보금자리라고 하는 집에서 아이어른으로서 돌아보고 동무로 어울리고 두레로 일을 하는 둘(어버이·어른 + 아이)인 터라, 이 둘은 ‘너 + 나 = 우리’로 맞닿습니다. ‘너나우리’일 적에는 “다르면서 하나인 우리”이고, 이를 줄여서 ‘하늘(한울 : 하나인 울타리)’라 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5-02-18 17:11   좋아요 0 | URL
그런 허울들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저 운동하시는 분들도 돌봄 뜻을 더 넓히는데 힘쓰고 계시더라구요 ㅎㅎ

2025-02-18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18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18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18 1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19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20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20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최낙언의 커피 공부 - 무엇이 커피를 특별하게 하는가
최낙언 지음 / 예문당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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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2 최낙언.


식품, 향료 전문가여서 아는 사람만 아는, 그래도 제법 유명하신 것 같은 저자이지만 알라딘 마니아 목록에는 아직 없는 최낙언 선생님… 알라딘에 최낙언의 매니아가 추가된다면 (아마 안 될 듯... 해당 도서 독후감 올리는 사람이 여럿이어야 가능하니...) 내가 1위 안 하면 진짜 억울할 수준이다. 2012년부터 13년 읽었으면 이제 진짜 됐어 그만 봐 임마…(괄호 안은 읽은 년도)
1.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2012)
2.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2013)
3. 맛의 원리 (2015)
4. 모든 생명은 GMO이다(2016)
5.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진짜 식품첨가물 이야기(2016)
6. 맛이야기(2017)
7. 감각 착각 환각(2017)
8.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2018)
9. 물성의 원리 (2020)
10. 감정이 어려워 정리해 보았습니다 (2021)
11. 식품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법(2021)
12. 향의 언어(2021)
13. 내 몸의 만능일꾼, 글루탐산(2024)
14. 커피 공부(2025)
와… 단일 저자로 비문학을 이렇게 많이 읽은 건 유일하다… 매번 하산 하겠습니다...하고서 늘 시간 지나가면 까먹어서 해마다 또 찾아 읽은 건 안 비밀… 애독자 인증서, 명예 훈장 같은 거 없나요...

사실 커피 무지렁이한테 믹스나 카누 대신 원두 입문 시켜준 건 알라딘이다. 예전엔 화장품부터 과자, 가방, 안 파는 게 없던 알라딘은 이거저거 말아 먹고 이젠 플랫폼 장사다! 하면서 당근마켓 비슷한 거 하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창작 플랫폼 해 보자! 웹소설 플랫폼 다 죽었어! 하고 또 야심차게 뭘 열었지만 가끔 조회수 들여다 보면 저 정도면 자본 잠식 수준인 사업이로세…
그래도 알라딘 커피는 100자평 꾸준히, 많이 달리는 거 보면 오래도록 건재해 보인다. 커피 팬층도 많은 듯… 이런저런 맛있는 커피 발굴해다 주기적으로 소개해주는 것 보면, 커피 무지렁이 내 입에도 오 좀 다른데...신선한데...하는 걸 보면 뭐 잘 되고 있겠지...번창하세요… 예전에 농장 소개해주고 주절주절 그러는 거 나름 커피 공부에 도움 됐던 것 같은데 요즘엔 간단한 커핑 노트 향미 소개랑 추출법 정도만 있어서 아쉬워진 상품 페이지… 나 말곤 안 읽던 것인가...

대충 알라딘 월별 신작 분쇄 원두 사다 일회용 드립백에 적당히 넣어 물 부어 먹던 놈이 스텐드리퍼랑 드립주전자도 갖추고, 그러다가 에스프레소 캡슐 머신도 사고, 질리면 콜드브루도 카페인 디카페인 골고루 갖춰 돌려가며 먹고, 매번 추출 품질 다른 내 손보단 낫겠지 하면서 아로마보이도 들이고, 홀빈 사다 부숴 먹겠다고 분쇄기도 들이고(그러다 꼬물 사서 안 되겠네 그냥 균일하게 갈아주세요 하고 다시 분쇄원두만 삼 ㅋㅋㅋ), 내 커피의 역사는 나름 확장의 추세였다. 지금은 캡슐 커피는 거의 안 먹고 아로마보이 녀석이 드립해주는 거 대충 두어잔 내려 마시고 오후엔 귀찮으니 콜드브루나 단백질음료 커피맛을 먹는 식으로 굳어졌으니…

그래도 커피는 내내 궁금하니까, 뭔가 집대성 해 놓은 듯한 커피공부 책을 작년 3월에 갖췄다. 그러고나서 수능 끝나고 펼쳐가지고 해를 넘겨 겨우 다 봤다. 재미로 보기에는 작물부터 원두, 향미 분자(화학이다 화학…), 로스팅, 추출(여기엔 물의 특성까지), 효능, 커피의 특별함 등등 400여쪽에 총망라해 놓은 책이라 막 커피 좋아하면 꼭 보라고 권하긴 어렵다. 화학분자구조식 엄청 나옴… 향의 언어, 물성의 원리 이런데 나오던 화학 분자들도 안녕 나 기억 나니? 하고 자꾸 튀어 나옴… 재밌는 커피책 보고 싶다면 왠 미친놈이 커피 찾아 세계 여행하던 ‘커피 견문록’을 권하겠다. 절판이지만 중고로 흔하니 적당히 구해 보슈….
그래도 커피를 업으로 삼을 관련 산업 종사자라면 커피를 과학으로 접근하려는 이 책, 한 번 보면 좋겠다. 책 보다보면 막 관련 논문이랑 참고 도서랑 제시된 것도 많으니… 자기가 맡은 프로세스 일부 말고도 커피의 시작부터 도착점까지 과학적으로 따라가보고 통찰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커피는 식품 중에서도 독특한 부분이 많은 작물이었다. 다른 식재료는 200도 넘게 오래도록 가열하면 남아나지 않을텐데, 아...에어프라이어에 200도로 10여분 내외로는 감자튀김이나 붕어빵 잘 구워지긴 함 ㅋㅋㅋ 그, 사람 환장하게 하는 튀김, 구이의 풍미처럼 커피의 향그럽고 쌉쌀 달콤 시큼한 그 향의 비밀 대부분은 로스팅 과정에서 생성되는 화학물질 때문이라고 했다. 커피 콩의 세포벽이 두껍고 탄탄해서 고온 잘 견디고 그 자체로 고온 고압의 조리 기구(?)처럼 가열되면서 온갖 화학 반응이 일어나고 없던 향미도 생겨나고 있던 향미는 일부 사라지고 그런 결과물을 또 우리가 물에 녹여 내가지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마시는게 커피인 것이다. 사람은 참 신기한 짓을 잘도 해낸다. 지금 우리가 보편적으로 하는 커피 만드는 활동도 수많은 사람이 수만번 망하고 나서 그나마 낫다 하는 걸 찾아낸 결과가 전해진 걸 테니…

새로 알게 되거나 예전 맛, 향 책에서 본 내용도 있었지만, 그래서 흥미롭기도 했지만, 나같이 이과돌이 전향하려다 실패한 빡대가리 문돌이에게는 어려운 화학 반응, 화학 물질이 자주 등장해서 아...그런게 있구만...이러고 넘어갔다. 그래도 커피 마실 때 나름 도움되는 것도 있었다.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아바야 게이샤 원두 사서 드립 내렸는데, 왜 맛이, 향이 전 같지 않은 거지?... 고민하다가 오...아로마보이한테 식힌 물 없어서 너무 뜨거운 물 줘 버렸어… 고온에서는 쓴맛 떫은 맛이 잘 추출된다고 한다… 체크… 원두를 너무 쳐 넣고 물을 너무 작게 잡은 건 아닐까? 진하다고 다 맛있는 건 아니니 이 커피 특성 살려 꽃향 산미 잡을 농도로 다시 체크… 귀찮다고 맨날 종이필터 바로 꽂고 쓰는데 린싱(필터 뜨신 물로 한 번 헹궈냄)하면 그 리그닌 따위의 잡맛이 좀 제거되지 않겠냐? 이러고 다음 번 커피를 내렸더니 헤헤 그럭저럭 먹을 만 해졌다. 역시 사람은 좀 배워야 시행착오, 오류 개선에도 도움을 받는다…

디카페인 부분 읽다가 뛰어나가서 새로 산 디카페인 콜드브루 한 잔 먹고 다시 봤더니 또 좋았다. 용매로 카페인 용출하는 건 대충 들어 알긴 했는데 어떻게 카페인만 뽑냐 다른 애들은 안 녹아? 했던 궁금증도 책 읽으니 어느 정도 해소 되었다. 일단요 용매 잘 스며들라고 일반 원두를 물에 불린대요!!!! 오! 새로 안 사실… 그러고 나서 다양한 용매로 카페인 뽑아내고 향미가 너무 손실된다 싶으면 용매에 녹아나온 카페인은 제거하고 녹아나온 향미를 다시 원두에 축축히 적신 후 건조하면 좀 맛이 살아남! 놀랍다! 그렇게 복잡한 짓을 해야 하니 디카페인 원두가 좀 더 비싼 것도 납득…

향에 대해 알면 모르는 것보단 좋긴 하겠지만 커피 하면서 여기까지? 할 정도로 어려운 분자들 튀어나와서 와 나 화학 안 하길 잘했네...ㅋㅋ싶다가도 그래도 아직도 내가 감각하는 많은 물질들의 정체가, 이름이 궁금한 걸 보면 정신을 덜 차린 것 같다. 거의 십년 가까이 최선생님 책 일부 제외하면 독점하다시피 나오는 출판사 예문당은 사실 내가 이 2024년 3월 초판 전에도 ISBN 안 붙인 베타 버전으로다 네이버에서만 커피 책을 잠시 판 걸로 아는데(그때도 사고 싶은 걸 참음 정식 출간되면 사 보자고…), 새로 나오면서 오자 좀 많이 고쳤으면 싶었는데 역시나 이번 책에도 오자가 많았고, 그건 같은 출판사 다른 식품 책 볼 때도 늘 아쉽던 부분이라 이번에도 아쉬웠다. 커피 책도 개정판 나온 것 같던데(아닌가 몰루) 책 완성도 높이는 몫은 출판 편집의 일이니 오자 내가 센 거 만도 수십 개인데 그거 좀 잘 잡아 고쳤으면 싶고… 그래도 수많은 컬러 그림, 도표에다 이 두께 묶는데 책값이 아주 사악하지 않은 건(조금만 사악함) 감사할 일이고…
이 책은 알라딘 아니고 인터파크 도서에서 샀는데 그 사이 인터파크 도서도, 티몬도, 위메프도 다 망해 버렸다. 인생무상… 일년이란 세월은 생각보다 많은 일이 일어난다. 사건사고도 많았고, 계엄에 공성전 같은 것도 다 보게 되고 말이다… 그간 내가 마신 커피는 또 얼마나 되겠어… 그 사이의 커피는 읽고 쓰는 데는 거의 소비되지 않아서 아쉽지만… 다시 나의 원동력이 되어 주겠니, 각성과 집중의 화학물질들아… 향기롭고 맛있는 용액아… 물성의 기술 책 모셔둔 게 남아 있지만 그냥 물성의 원리(이미 빌려 봄)를 살 걸...이건 내가 제면 공장이나 음료 공장 차리지 않는 이상 볼 가망이 없겠다… 그래서 진짜로 하산합니다!!!!

물 분자 사이에 녹는 놈 안 녹는 놈 깨알같이 그린 모식도 한 장만 가장 마음에 들어서 퍼 옴...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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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1-14 0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제목처럼 커피를 공부하는 책이군요 화학도 말한다니... 그런 거 봐도 모를 것 같네요 예전에 커피로 보는 세계사 같은 거 봤습니다 저는 그저 드립백만 조금 마셔봤습니다 여전히 커피는 잘 모릅니다 반유행열반인 님은 조금 아셨겠네요


희선

반유행열반인 2025-01-14 21:06   좋아요 1 | URL
저도 사실 아직도 커피를 모르는 것 같사옵니다 ㅎㅎ 먹고 맛있고 즐겁고 잠에 방해만 안 되면 커피는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아요!!
 
내 몸의 만능일꾼, 글루탐산 - MGS를 훌쩍 뛰어넘는 아미노산, 단백질, 생명현상 이야기
최낙언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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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3 최낙언.

 

 문돌이인 나에게 과학 공부를 많이 시켜준 , 재미있게도 수능 과학 과목이 아니라 수능 국어의 독서(옛날에 비문학이라 하던) 과목이었다. 한바닥짜리 쪽글은 초식동물의 반추위에서 일어나는 대사 과정, 식물 광합성의 명반응과 암반응, 반도체의 작동 원리, PCR검사의 원리, 미토콘드리아와 고세균의 공생과 공생 아닌 것의 구분, 이부프로펜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용매와 용질과 촉매와 어쩌구… 열거하지 못할 만큼 이런저런 지식들이 쏟아져내렸다. 당연히 남들 학기 걸려 대학교재 권으로 배울 것을 10여분 안에 이해할수도 없고, 이해하기를 바라지도 않는게 독해 문제이다. 최대한 빨리 읽어내려가며 구조 파악하고, 적당한 인덱싱으로 나중에 문제 풀다 돌아가서 짝맞추기 잘하도록 끝없는 훈련, 훈련.

 

 과학 공부는 오히려 산수 공부 내지 멘사 두뇌 퍼즐, 이런 이름이 적합한 퍼즐 맞추기에 가까웠다. 근육이 수축하면 부분은 줄고, 여긴 늘고, 여기에 자극이 가해지면 순차적으로 마이크로 단위로 부분은 전위가 발생해 찌르르 흐르고 그게 마이크로세크당 센티미터까지 이동하고 전위 발생 정도가 탈분극인지 재분극인지 맞춰 하는… 나는 대소비교와 비례식, 단순 덧셈뺄셈 나눗셈에 매우 취약한 사람인 3 공부하면서 알았다. 풀이의 논리도 중요하지만 계산기와 같은 빠르고 정확한 계산은 입시 수학 과학에서 너무나 중요해. 어려서 구몬수학 같은 번도 안하고 덧셈 뺄셈은 두자리 부터는 세로셈으로 적지 않으면 하지도 못하던 나새끼가 분초를 다투는 고등 수학 과학에 다시 도전한 건…원래도 셈이 느리고 자릿수도 만의 자리 천의 자리 0개수 구분 어렵던 나새기가 노화마저 비가역적으로 진행되어 더딘 모르고 너무 무모한 도전이었구나… 그랬다.

 

 어느 달인가 알라딘에서 독후감에 적립금 상을 줘가지고, 고민하다가 최낙언 선생의 전자책이 보여서 낼름 사버렸다. 글루탐산, 그거 -글루타민산나트륨에 붙어 있는 뭔가가 아닌가? 엠에스지 이야기냐… 그래도 펼쳐보면 단순히 맛과 음식 이야기가 아니라 유익한 공부를 시켜주는 선생님의 책이기 때문에 홀린듯 놓고 다운로드도 받고 잊고 있다가… 수능이 끝나자마자 홀린 전자책 놓은 있냐...하다가 먼저 펼쳤다.

 

 아니 그런데 책에, 내가 수능 생명과학에서 공부하던 나와 있었다. 수능 국어 지문에 나오던 이런 저런 화학 반응 관련된 거도 나오고… 그냥 수능 과학 공부 하고 책을 먼저 봤으면 재밌고 고생한 아닐까 싶게… 단백질과 중에서도 핵심이라 만한 아미노산인 글루타민, 글루탐산 다루면서 선생은 생명의 온갖 작동 원리들- 근수축, 막전위 변화, 광합성, 호흡, 질소순환, 20여가지 아미노산이 분자 분자 붙고 떨어지고 하면서 이루어지는 분자구조식까지 깨알같이 담아 두셨다. 생명과학이랑 화학 공부하는 중고생들이 읽으면 통섭적인 이해에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문제 풀이 시키기 위한 수능 과학은 진짜 과학 공부하는 본질은 잃고 순발력과 지구력 테스트를 위한 퍼즐 맞추기 문제로 변질되어 있어서 우리가 이걸 공부하고 나중에 대학가서 어떤 응용 과학에서 이걸 이용하게 될지, 혹은 우리에 대해 무엇을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해 이걸 공부하는지 완전히 망각시키고 있다. 이미 공부 조금이나마 하고 와서 이게 재밌는건지, 진짜 궁금했던 이야기들을 그래도 최대한 일반인들이 이해할 있게 텍스트랑 그림으로 풀어줘서 그런지 책은 제법 흥미로웠다. 물론 이해하지는 못하고 한참 성분명 분자명 나열하는 부분에서는 이런 것까지...하는 사람도 있을수는 있지만 말이다… 식품공학이나 화학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두고두고 읽을만 보였다.

 

 어려서부터 아토피성 피부염을 평생 앓고 있다. 학교도 들어간 , 동네 약국 약사 아줌마가 자기가 낫게 해준다고 엄마한테 엄청 확신에 차서 꼬시는 바람에 엄마는 거의 돈백을 약국에 꼴아박고 나는 생약인지 정체 불명의 갈색 과립(약간 인스턴트 커피 알갱이 같은 제형)약을 일년 꼬박 먹었다. 먹지 말아야 것들의 목록도 길게 챙겨 줬는데, 거기엔 돼지고기, 닭고기, 우유, 계란, 밀가루 등등... 성장기 필수 영양소 담긴 음식 거의 대부분이 있어서, 유치원에서 간식시간에 우유 담긴 컵을 무심히 내민 선생님 앞에서 우유 마시면 된대요 하고 울어버린 일도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서른 중반 되어서 병원 종합검진 패키지에 딸린 알레르기 검사를 보니… 나는 가장 흔한 식품, 식물, 집먼지알레르기 등등 70여종 항원 어느 것에도 알레르기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 7 수많은 알레르기 가능성 있는 음식을 제한한 그저 가장 자라는 시절에 영양 부족으로 성장 지연만 시키고 ( 키는 그래서 157에서 자랐고…) 그렇게 헛짓거리로 남은 것이었다. 거의 일년 비슷한 식습관 (오트밀에 요거트랑 견과류 비벼먹고 단백질 음료에 시리얼바 처묵처묵 정도만 일반식사) 하면서 몸무게를 10킬로 줄이고 체지방 줄이고 근육량은 늘린 같은데, (자세한 다음 건강검진 인바디와 각종 검사로 건강 상태 확인 예정), 내내 건강하게 지내다 식습관이나 운동 습관 그대로 갔는데도 연말 환절기 되니 아토피성 피부염이 7 만에 올라와 버렸다. 수능 앞두고 2 전이었다. 결국 자가면역에 가까운 만성 질환들은 대부분 자체가 병의 시작이다. 부신 피질에서 뿜뿜하는 스트레스 관련 호르몬… 반짝거리는 피부 보고 오늘이 왠지 올해 들어 가장 예쁜 같아… 이제 이럴 같아…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며칠 바로 얼굴과 목과 발목과 거의 전신에 염증성 피부염이 벌겋게 돋아나 나는 가려움과 감염 위험과 줄다리기하면서 보습하고, 약한 스테로이드도 발라보고, 그렇게 자신이랑 싸우는 날들이다…

 

 잡설이 길지만 결국 우리는 집어서 무슨 물질이 나쁘고, 무슨 음식은 어디에 좋고 그렇게 착각을 하는데, 모든 물질은 자체로는 중립에 가깝고 전반적인 환경과 적재적소에 정량이 갖춰지느냐 아니냐에 따라 건강과 생명과 질환과 죽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구나 하는 확인하는 독서였다. 그게 과학적인 지식과 전반적인 통찰에 의한 결론이면 좋은데, 대부분 사람들은 유튜브에서 이건 좋다더라, 나쁘다더라 이러고 아니 어디선 커피가 당뇨에 좋다더니 얘는 공복 커피가 혈당 올린다고 어쩌라고! 하면서 버럭질을 하는 댓글을 다는 것이다. 커피는 그냥 맛있고 기분 좋자고 먹는 거지 건강 따질 거면 그냥 맹물을 열심히 드시라구요…

 

  레인의산소’와미토콘드리아’를 예전에 갖추고 이걸 수능 끝나면 볼까, 했는데 책에서도 거기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제법 인용되었다. 역시나 나중에 나가는 읽으니 저자 선생님께서도 책들에서 많은 영감을 얻으셨다 하고 참고문헌에도 적혀 있어서 결국 알아서 필요한 읽고 그러다보면 책들끼리 줄줄이 이어지는 구나...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맨날 이제 최선생님 그만 봐야지...하면서도 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유사한데 (문제는 물질 자체는 죄가 없다 암은 랜덤…) 그래도 보다보면 조금이라도 배우는 있고 재미있어서 자꾸 보게 된다. 쟁여둔 커피 공부 책만 보고 진짜로 하산하겠습니다…


주요 아미노산을 한 바닥에 깔끔하게 정리한 그림… 이 책에는 이런 아름다운 도표와 분자구조식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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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11-23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토피성 체질인데 고 3때 1년 내내 고생했고 만성이었던 중이염도 그때 최대로 심했거든요
제 인생의 앞길을 막은 건 이 두 가지였다고 생각해요 이것만 아니었다면 좀 더 잘 풀릴 수 있었을텐데요 ㅎㅎ
아토피는 가을부터 봄까지 계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것 같아요.
보습제를 발라도 그때 뿐이고 스테로이드 연고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가 없어요.
여름이 덥고 땀은 나지만 아토피는 훨씬 덜 하더라고요.
저도 알러지 검사에서 음식에 대한 반응이 없었는데
그래도 우유, 달걀, 요거트 등 유제품이 확실히 안 좋아요.
단백질 섭취를 위해 먹어야 하는데
정말 고민입니다 ㅠㅠ
커피를 좋아해서 맹물을 죽어라고 안 마시기게 돼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4-11-23 12:51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고생 많으시군요. 정말이지 여름은 공기 중에 습기가 많아서 피부 상태가 썩 괜찮아요. 동남아시아 놀러가면 로션 안 발라도 안 꺼칠은 피부가 며칠 지속되서 진지하게 (피부염 때문에) 여기 살고 싶다...근데 여기서 뭐해먹고 사냐.. 그러고 포기한 기억도 있네요 ㅎㅎㅎ 커피는 맛있잖아요... 물에 콩가루 태운 거 녹인 주제에 왜 향기로워서 사람을 홀리냐... 물 마실 배 좀 남겨다오... ㅋㅋㅋ

hnine 2024-11-23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일 재미없게 쓴 생물책은 고등학교 생물 교과서가 아닐까요.
있던 흥미도 떨어뜨리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너무 많은 내용을 담는데 치중하다보니 충분한 설명 없는 도표와 구조식이 더 어렵게만 만들고요.
이 책 흥미로운데요. 책표지 구조식에 산소 자리에 미원 상표 그려넣은 것도 재미있고요.

반유행열반인 2024-11-23 14:09   좋아요 0 | URL
이 책도 분자구조식? 구조도? 는 쫌 많은데 저는 열 권 넘게 본 저자라 그냥 익숙해진 대로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ㅎㅎ전자책을 보다보니 표지 깨알 미원 마크는 미처 못 봤는데 덕분에 ㅎㅎㅎ 요즘 교과서는 올칼라에 저희(?라떼??) 때 보다는 낫게 나온다 싶지만 교육과정 자체가 딱 뭔가를 관통하는 방향성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는 게 (제 전공인 사회도 사실 좀 그래요...) 짧은 공부로 얻은 느낌이었고 그건 거의 (의치한약수 더하기 명문대 거름망) 고시처럼 변질된 선발 목적의 입시교육의 한계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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