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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에서 인류애로 - 성적 지향과 헌법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강동혁 옮김, 게이법조회 해제 / 뿌리와이파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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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0 저자: 마사 누스바움.

미선이-Sam
https://youtu.be/CLXroGPSNds

원서는 2010년, 번역서는 2016년에 나온 책을 2026년에 읽었다. 2000년대 초반 섹스앤더시티에 나오던 게이 친구들은 2020년대 앤저스트라이크댓에도 여전히 등장하고, 심지어 앙숙이던 앤서니와 스탠포드는 결혼식을 올린다. 거기에 LGBT+, 다양한 인종과 문화 배경의 인물들이 추가되었다. 미국은 확실히 변하고 있고, 그게 문화 컨텐츠에도 반영이 된듯하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는 워낙 안 보다보니 어떤지 모르겠다. 박상영의 소설을 원작으로 드라마가 나왔다는 소식은 들었다. 트랜스젠더 유튜버가 텔레비전 예능에 출현하는 것도 알았다. 그렇지만 커밍아웃하고 연예계 활동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문화 예술계만 그럴까, 온 일상 자체가 아직 비주류라고 스스로를 드러내기에는 너무도 모질고, 냉랭한 편견과 혐오가 깔려 있다.

연방 헌법과 주 헌법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판례를 통해 이 책은 자유와 평등을 누릴 대상에서 성소수자가 제외될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잘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막연한 징그러움, 혐오의 형태를 근원적 혐오-주로 죽음이나 더러움에서 느끼는-를 다른 대상에게 덮어 씌워 버리는 투사적 혐오라는 말로 표현한다. 혐오에 관한 이야기는 사회학이나 심리학, 철학에서 더 파고들만한 주제 같다. 이 책은 법철학, 법윤리에 더 초점을 맞춰서 혐오에 관한 부분은 논의에 필요한 최소한만 다룬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그 정도로도 자신과 다른 존재들에게 선을 긋고 그들보다 더 우월하고 안전하고 깨끗하고 안심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는 충분히 설명된 것 같다.

특정 사람들이 비범죄화 되고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과정을 인종 문제에서 많이 유비하고 있었다. 형식적인 법률 면에서 미국은 인종주의를 많이 극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흑인을 범죄자 취급하거나, 아시안을 멸시하는 풍토는 여전하다. 우리 나라도 이주 노동자나 결혼 이주민과 그 자녀에 대한 차별을 문제 삼고 공론화도 많이 되지만, 현실은 여전히 ‘그들’에게 가혹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이지 남들과 다른 존재에게 무자비하다. 하물며 성소수자라면 대놓고 혐오하고 타도할 대상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주로 일부 종교계가 그렇다.
이미 아이들 때부터 패거리 문화가 인종이나 성적 지향이 아니더라도 조금 다르다 싶은 아이들을 얼마나 소외시키고 괴롭히는지 모른다. 끝없이 차별 금지, 평등, 인권, 존중 같은 걸 입에 올리지만, 자괴감이 든다. 이게 대체 무슨 소용일까 싶다. 인간 자체가 갈라치기에 너무 특화된 종족 같다. 부모가 그렇게 키우고, 또래집단에서, 미디어에서 남을 혐오하는 태도를 점점 강화한다. 학교가 말뿐인 인권교육을 하고 있을 뿐, 이게 교육으로 되는 문제인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다.

인류애라는 말은 참 아름답다. 그렇지만 주로 ‘인류애가 사라진다’하는 표현에서나 접할 만큼 아득하다. 나도 점점 인간 혐오로 가는 기분이다. 이토록 비슷한데, 또 이토록 다른 인간들이 같이 평화롭게 사는 일은 아직도 어렵다. 지상 평등 낙원이라 할 나라가 어디 있기는 있는 걸까? 없다는 데 더 치우치는 마음이지만 우리가 향해야 할 방향인 건 알겠다.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약 같은 걸 수돗물에 타고 싶다. 미워하면 저절로 이유를 만드는 뇌들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게 슬프고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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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에 대한 사법적 존중은 또한 이성에 따른 정치라는 근본적 패러다임마저 깨뜨린다. 적의에 대한 반응으로 만들어진 법에는 이성적 기초가 없기 때문이다. (23)

-이와 같은 헌법의 정치적 태도는 반집단주의적이다. 이에 따르면, 타인에게 해를 끼치거나 국가 전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것이 분명한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다수의 이익이 개인의 기본권에 우선할 수 없다. 이 정치적 입장은 좌파와 우파 사이의 대치와는 다른 것으로, 좌파의 집단주의나 우파의 집단주의 모두와 대비되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입장이다.(26)

-사람들이 자신의 냄새나고 부패해가며 너무나도 인간적인 신체에 대해 느끼는 불편감은 도처에서 일관적으로 외부에 투사되어 왔다. 공동체의 오물 역할을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그 불편감을 투사함으로써 지배적인 집단은 자신을 깨끗하고 천상적인 존재라고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4)

-혐오스러운 동물성의 세계와 ‘나’사이에 준-인간이 존재한다면, ‘나’는 필멸하는/부패하는/냄새나는/진액이 흘러나오는 것들로부터 그만큼 떨어져 있게 되는 셈이다. 진짜 위험과 신뢰할 만한 연관관계가 거의 없는 이 투사적 혐오는 망상을 먹고 자라며 예속을 만들어낸다. 혐오가 자신을 순수한 것으로, 타자를 더러운 것으로 표상하려는 뿌리 깊은 인간적 필요에 봉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필요가 사회를 공정하게 만드는지는 대단히 의심스럽다. 오히려 이러한 전략은 사회의 공정성을 해친다. (55)

-평등한 자연권은 덕이 있는 사람이나 특정한 사회 규범에 따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73)

-삶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탐색을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79, 종교와 양심의 자유)

-표면적인 대칭성을 넘어, 다양한 집단에 속하는 시민들이 살면서 무언가를 추구하려 할 때 실제로 어떤 기회를 누릴 수 있느냐를 엄격히 검토할 때에만 우리는 법이 시민들을 진정으로 평등하게 존중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84, 실질적 평등)

-혐오에 차 있는 사람들은 타인을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한 인간으로 보지 않기에 그들을 존중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90)

-‘혐오의 정치’로부터 ‘인류에의 정치’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라는, 보다 일반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 본질적으로, 이는 집단을 앞세우는 사람과 개인적 자유의 영역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늘 있어온 해묵은 논쟁이다. 이를 좌우의 이념대립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105)

-그러므로 “당신은 결혼할 수 없소”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은 미국식 인생 주기를 결정짓는 의례 중 하나에서 완전히 배제됨을 의미한다. (185)

-사람들은 국가가 기혼자들에게 법적으로 제공하는 갖은 특권을 누리기 위해, 다시 말하면 결혼을 하기 위해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증명을 할 필요가 없다. 유죄판결을 받은 중죄인들, 양육비를 지불하는 데에 실패한 이혼 부모들, 가정폭력 전과가 있거나 감정적 학대의 전과가 있는 사람들, 불량납세자들, 마약중독자들, 강간범, 살인범, 인종차별주의자나 반유대주의자들처럼 편견에 찌든 사람들도 결혼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기만 하면 모두 결혼할 수 있다. 실제로 헌법은 이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만 먹으면 결혼할 수 있는 기본권을 보장한다. 어쨌거나 이성과 결혼하는 경우에는 말이다. (188-189)

-(그러나 중혼에 반대하는 법적 주장들은 극도로 취약하다. 일부다처제 혼인권을 제약할 만큼 강력한 국가의 법익은 성 평등에 따르는 이익이라지만, 만일 그렇다면 다부다처제에 따른 결혼은 허용되어야 한다.)(221)

-성행위에 따르는 건강상의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결정은 과식이나 흡연, 등산처럼 자신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리겠다는 다른 모든 결정과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한다. 이 모든 결정은 개인이 스스로 내리는 것으로서, 그 결과로 인해 타인의 권리가 침해되는 경우에만 범죄가 된다. (277, 이 책 내내 소중히 다뤄지는 자유와 평등. 어떤 행위나 관계들은 거기에서 예외 취급을 받아 행복 추구가 어려워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 전체에서 다룬 것처럼 혐오란 이면에 여러 형태의 낙인과 위계질서를 감추고 있는, 신뢰할 수 없는 힘이다. 혐오는 마치 피해처럼 작용하는 경우에 한해, 전통적인 생활방해법이 설정한 기준에 따라 입법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278)

-혐오의 정치는 우리가 무엇을 통제하고 싶어하는지, 또 무엇을 통제하지 않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통제의 이유에 대해서조차도 명료히 생각하지 못하돌록 방해해왔다. 이 분야에서의 사유가 그토록 엉성했던 또 한 가지 이유는 엉망진창인 “사생활” 개념과 그 한계 때문이기도 했다. (280)

-헌법은 사회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감각을 표현한다. 자유와 평등은 무엇이며, 기본권을 갖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개념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자유와 평등, 두 영역 모두에서 어느 정도 보호되는 구역을 갖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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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요리 - 세상 모든 음식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요리의 비결
해럴드 맥기 지음, 이희건 옮김 / 이데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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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8 저자: 해럴드 맥기.


8월 3일 저녁. 11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호기롭게 펼쳤다. 이걸 완독하는 건 무식한 걸 수도 있고, 꽤 장기 과제가 되겠다. 추천사와 저자 서문을 본 뒤 15장으로 먼저 갔다. 거기에는 음식의 가장 기본이 되는 분자인 물, 지방, 탄수화물, 단백질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그 다음 주석 직전 책의 말미 부록에는 기초 화학에서 배울 법한, 그러면서 음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하는 원자, 에너지, 물질의 상(액체, 고체, 기체)에 대해 짧게 정리해 놨다. 이렇게 책에서 제일 지겨울 것 같은 부분을 먼저 해치우고 1장으로 간다.

8월 4일. 1장. 대다수 인간의 첫 식량인 젖(우유 등)과 버터, 크림, 요구르트, 치즈, 그외 다양한 유제품에 대해 온갖 이야기를 한다. 주로 음식의 상태가 왜 그렇게 되는지 분자의 상태와 변화를 그림까지 그려가며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다 과학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고, 유제품 종류와 특성과 제조법, 역사 속 음식 이야기 같은 깨알 같은 내용도 있다. 1장의 말미를 치즈로 마무리하는 게 좋았다. 다른 음식은 별 감흥 없었는데, 치즈에 대해 읽으니 그동안 먹어본 이런저런 치즈맛과 모양이 생각났다. 큰 마음 먹고 비싼 퐁뒤를 먹으러 갔는데 맛도 없고 먹기도 곤란했던 20여년 전 일도 떠올랐다. 저녁으로 엄마가 참치김치볶음밥에 계란까지 부쳐 주셨는데, 그 위에 고단백 슬라이스 치즈를 곱게 얹어 먹었다. 젖과 유제품 만으로도 110쪽이 넘어서, 책 한 권을 본 기분이었다. 그래도 벌써 1/10이나 읽었어…

8월6일. 2장. 초반 달걀 노른자와 흰자에 대한 부분을 읽고는 점심 거리로 달걀 프라이를 부쳐서 아이들과 함께 먹었다. 정말, 노른자 근처의 흰자는 덜 익고, 노른자 위 하얗고 작게 뭔가(생식세포가 있는 흰색 원시 노른자가 노란색 노른자보다 밀도가 낮아 떠오름)가 있는게 보였다. 아는 만큼 보이는 구나. 그렇지만 아직 덜 읽어서 프라이를 예쁘게 부치지는 못했다. 달걀 장은 의외로 달걀 거품에 페이지 할애를 많이 해서 베이킹을 잘 안 하는 나에게는 생소했지만, 온갖 거품의 종류와 특성과 제조법을 나열해 놓은 건 신기했다. ‘머랭이란 뭘까….그건 뭔가의 번데기가 아닐까’하는 만화 속 이상한 노래 가사 생각이 난다.
이 방대한 책의 아쉬운 점은 모든 요리를 텍스트로 소개해서 (분자 구조식은 예외) 잘 모르는 음식은 시각화하기 힘들다는 거였다. 그렇지만 원래 책은 미각 후각도 못 전하는 것, 글자와 종이는 먹지도 못한다. 그래서 조리법이 길게 나오는 경우는 적당히 넘어가기로 했다.

3장. 고기를 다룰 때는 단순히 식품과 식재료의 의미부터 등장하지 않고, 인류학, 사회학, 건강 이슈 관련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고나서 생명과학이나 해부학 관련에서 보던 근섬유 조직에 대해 나와서 와, 봤던 거다 했다. 고기를 굽는 다양한 방식은 나름 실용적일 것 같은데, 아직 에어프라이어가 보편화되기 이전 책이라 그런가 최후의 도구는 전자레인지만 제시되었다. 선생님, 겉바속촉에 온도 조절까지 자유로운 그런 도구가 추가되었답니다...

8월 7일. 고기를 익힐 때 굽든 찌든 끓이든 시간과 온도를 조절해 가며 육즙을 남기는 게 전문적인 영역으로 보였다. 내가 저렇게 고기에 진심이었던 적이 있던가… 고기를 사면 늘 양념불고기나 찜이나 국류는 엄마가 하고, 생고기를 오븐이나 에어후라이어나 팬에 굽는 건 내가 한다. 다 그냥 어림짐작과 중간에 가위로 잘라서 색 보고 속까지 익었나 눈대중으로 저렴한 고기들을 요리하는데 어떻게 해 주든 맛있게 먹어줘서 다들 고마워...오늘은 소시지까지만 읽자…(그런데 뒤에서 더 읽어보니 원래 고기익히기는 그렇게 짐작과 대중이래…)

8월8일. 푸아그라나 콩피, 발효 소시지 같은 건 상상도 못하게 생소해서 그냥 그렇구나...했다. 어제 읽다 만 고기 파트 마무리. 닭(오리, 칠면조 거위 정도 추가), 소, 돼지처럼 주로 먹는 고기 위주였고 양이나 말 같은 건 안 나와서 그야말로 실용서였다.
어류를 물고기 대신 물살이로 표현한 다른 책이 기억나는데, 이 책에서는 육고기 외 해산물을 다루므로 얄짤없이 물고기이다. 생선, 조개, 갑각류를 식재료로 다루기 전에 남획, 양식의 문제점과 해산물 섭취로 인한 위험-병원균, 기생충, 축적된 오염물질, 생명체로서의 물고기 특성 등을 먼저 이야기하는 게 인상 깊다.
좋아한 적도 없지만 어느 순간 생선 냄새를 많이 싫어하게 되었다. 그런 인간이 물고기의 신체 구조와 특성에 대해 읽고 있다. 작은어린이는 반대로 생선을 무척 좋아해서 손으로 마구 주무르면서 껍질도 벗겨 먹고, 눈알도 먹고 싶어 한다. 내 대신 생선 구워주시는 엄마에게 감사하기로… 게살을 흉내낸 명태살로 만든 크래미를 먹고는 생선살과 게살에 대한 부분을 읽는다. 진짜 게를 먹은 지 너무 오래되었다. 내가 다루기 싫다고 어린이들에게 여러가지 먹을 기회를 빼앗는 건 아닌가 싶다. 찬바람 불면 가을 꽃게라도…

8월9일. 점심에 훈제(햄)오리를 오븐에 채소랑 마늘이랑 구워서 먹었다. 기름이 적당히 빠졌는데 이전에 본 고기 익히는 온도를 생각했지만 직접 조정할 엄두는 못내고 그냥 닭다리구이 모드로 익히다 조금 먼저 꺼냈다. 패각류, 연체동물, 생선알 같은 부분을 마저 읽었다. 생선 장은 캐비어로 마무리되는데, 그걸 내가 언젠가 먹어볼 일이 있을까 모르겠다. 다음은 드디어 식물 식재료로 간다.

8월10일. 식품이 되는 식물 일반에 대해 읽었다. 식물의 광합성, 구조와 기능, 질감, 색, 맛 이런 것들. 오늘 먹은 식물이 뭐가 있나 역순으로 떠올려본다. 복숭아, 자두, 콩(두유), 귤, 배추(김치볶음밥), 쌀, 바나나, 피칸. 온갖 것들이 나를 이루고 있다.

8월11일. 채소를 끓이고 튀기고 찌고 다양하게 익히고 갈고 하는 부분이 무척 재미없었다. 채소가 들어간 음식을 너무 안 만들어 먹는다는 생각이 든다. 집 앞에 무척 싸게 파는 채소가게가 생겨서 어르신들의 메카가 되었고, 우리집 어르신도 가끔 저렴한 채소와 과일을 득템해 오신다.

8월12일. 과일 저장을 위한 건조, 발효, 잼, 통조림 만들기 부분으로 이 장이 마무리 되었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채소, 과일, 향료, 씨앗, 곡류 이렇게 식물 식재료가 각각 한 장씩 차지하고 있다. 개별 종에 대해 나오니 조금 더 재미있으면 좋겠다.

8월13일. 채소의 날. 아는 채소가 나오면 익숙하고, 처음 듣는 채소가 나오면 흥미로웠다. 정작 오늘 먹은 채소는 소량의 배추 김치와 콩나물국 말고 없다.

8월14일. 과일의 날. 정작 집에는 먹을만한 과일이 없다. 귤 몇 개와 냉동 망고. 책에는 흔히 먹는 온대, 열대 과일 종류와 특징이 담겼다. 브레드프루트와 두리안도 나온다.

8월16일. 하루 쉬고 허브/향신료 부분이다. 맛의 원리나 향의 언어 같은 책을 읽었지만 오래 전이어서 기억이 날리가 없으니 여러 풍미 성분 분자 이름들을 한 번 더 훑었다. 재료가 되는 식물 나열만으로도 눈이 아팠다. 한국에서는 만나지 못했을 식물이 정말 많았다. 차, 커피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히 다루고 훈연을 이 파트에 포함시켰다. 커피를 끊다시피해서 아, 난 왜 삶의 즐거움을 하나씩 덜어내고 있나, 싶다.
다음 주제는 씨앗-곡물, 콩, 견과 등이다. 이건 먹고 사는 거랑 큰 관련이 있는 주제라 관심있게 읽게 된다.

8월17일. 곡물 중 옥수수를 읽는 참이었는데, 마침 라운드 나초를 하바네로 살사에 찍어먹었다. 재료명 중 마사라는 게 있는데 옥수수가루를 알칼리 처리한 후 반죽 같은 거라고 했다. 책 읽은 보람이 있네. 전날에는 타코를 시켜 먹었는데 그것도 옥수수 재질로 감싸져 있었다.
견과류 부분은 다양성하지만 거의 다 아는 애들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피칸을 열 알 정도 먹었는 걸. 그렇게 1년 정도 먹으면 HDL이 정상범위 뚫고 올라가기도 한다.

8월18일. 오랜만에 출근해서 피곤한데다 빵 하나 안 먹은 날 빵과 반죽과 밀에 대해 읽으려니 잘 들어오지 않았다.

8월19일. 빵과 케이크를 먹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그걸 만드는 원리-섞기, 반죽 치대기, 굽기, 식히기-에 대해 읽는 건 전혀 달콤하지 않다.

8월22일. 잇몸 치료 하고 서너시간은 있어야 마취가 풀리는 와중에 페이스트리와 쿠키에 대해 읽는다. 와퍼 주니어를 사왔지만 저걸 언제 먹게 될 지 모르겠다. 쿠키라는 말이 한입에 넣을 수 있는 작은 케이크를 의미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제과 제빵 부분은 대부분 유럽, 미국 음식 위주라 빵순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 싶었는데, 면에 대해 나올 때는 아시아도 할 말이 많아서 좀 더 흥미롭게 읽었다.
소스 부분에는, 내 식사에서 소스는 사치품, 영양성분에 크게 기여 못하고 염분만 높이는 무언가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소스에 진심인 사람이 많았다. (특히 프랑스) 우리가 육수라고 부르는 맛 베이스를 여기서는 스톡 농축, 추출로 표현해 놓았다. 소스-육수-젤리를 한 부류로 다루는게 내가 보기에는 독특했다.

8월23일. 설탕과 초콜릿, 당과에 대해 다루는 장을 본다. 18세기에 영국인들이 갑자기 설탕을 많이 소비하게 되었다는데 그 당시에 당뇨병은 안 유행했는지 궁금해졌다.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니 늘긴 했지만 현대인 먹는 양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거고 활동량은 훨씬 더 많았던데다 평균수명도 낮아서 당뇨 진단 자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설탕, 꿀, 단풍나무 시럽 등 온갖 단 식재료에 대해 읽었다.

8월25일. 사탕을 안 먹는 내가 다양한 종류의 사탕에 대해 읽었다. 문득 종류별로 사탕이 먹고 싶어지긴 했다. 그렇지만 그냥 물 마셨다.

8월26,27일. 집에 초콜릿이 하나도 없는데 초콜릿에 대해 읽었다. 이십대에 제과 사이트에 재료 주문해서 이것저것 초콜릿 만들었던 생각이 났다. 지금은 아휴 귀찮아. 있으면 먹는데 아니 있어도 몇 주를 냉장고에 묵히다가 가족 다같이 있을 때 한 조각씩 나눠 먹는 정도이다. 그래도 지금은 한 조각 먹고 싶은데 없다.
다음 파트는 술인데 역시나 집에 술이 없고 지금의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술에 대한 부분이 생각보다 두툼하다. 이제 천페이지가 넘었고 그래도 끝이 보인다…

8월28일. 예전에 ‘술 취한 식물학자’란 책을 술알못이 어렵게 읽던 기억이 났다. 이 책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거의 80쪽 넘게 알코올 음료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나는 술을 먹지 않는 편이 덜 나쁜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술과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삶이 살아진다. 두께 탓인가 이 책은 먼지다듬이(책벌레)의 서식처가 되었다. 오늘까지 벌써 세 마리가 기어다니는 걸 눌러 죽였다. 책등 두꺼운 부분에 공간이 벌어져 있어서 거기에다 에프킬라를 두 번이나 뿌렸는데도 소용이 없다. ‘음식과 요리’는 먼지다듬이의 맛있는 음식이 되어 버렸다.
포도와 곡물에 진심이던 사람들이 온갖 재주를 부려서 다양한 와인과 맥주를 내놓았다. 그런 식문화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인류의 독특함은 한두가지가 아니겠지만 술을 담가 먹는 것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다수가 알코올 때문에 몸이 둔해지고 살짝 맛이 가는 걸 즐겁게 여긴다.
알코올 발효 다음은 초산 발효라서 식초도 이 장에서 함께 다뤘다.
마지막 장인 음식물의 기본 분자를 미리 봤기 때문에, 그 바로 앞장 조리 방법과 조리기구의 재질이 읽기의 마무리가 되었다. 사실 이제 버거워서 좀 대충 넘겼다.
갈변반응인 캐러멜화와 메일라드 반응 같은 게 분자 구조도와 함께 나왔다. 이건 화학인가...
그러고나서 열의 전도, 대류, 복사 같은 물리학 같은 게 튀어나왔다. 그런데 대부분의 요리가 열을 쓴다는 점에서 열의 전달 방식을 아는 게 도움이 되긴 할 것 같다.
그릴링(열원이 음식 아래), 브로일링(위에), 베이킹(대류, 복사), 보일링, 시머링(보일링보다 온도 낮음), 포칭, 찜, 프라잉, 소테잉, 튀김, 마이크로파 복사, 열은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쓰이고 있었다.
세라믹(질그릇, 사기그릇, 유리, 법랑), 알루미늄, 구리, 철, 강철, 스테인리스 스틸, 주석, 다양한 재질에 대해서까지 다룬다. 진짜 웅장한 책이었다...음식에 대해서 잘 알기 위해 기구 소재까지 다룬다.

천페이지 넘는 이걸 읽은 나란 놈은 이제 요리는 거의 손을 놓고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있다. 기껏 해야 냉동피자, 냉동치킨, 가끔 고기 굽기, 떡볶이 정도 만들고 도시락 닭가슴살은 전자렌지 1분으로 끝나는 제품을 사 먹는다. 그런 나라도 요리에 대해 읽는 건 흥미롭고 아는 부분도 생각보다 많았다. 음식과 맛 책을 읽은 역사가 길긴 하다. 먹는 낙을 놓은 지는 오래이지만 뭐 한 번 훑어봤으니 궁금하고 생각날 때마다 아, 그부분에 비슷한 설명이 있었지, 하(는 일은 흔치 않겠지만)고 찾아볼 수는 있겠다. 먼지다듬이만 더 퍼지지 않는다면 말이다.이 책을 비닐백에 넣어 냉동실에 얼려 벌레를 죽이기엔 시멘트 벽돌만하다.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깝다. 전집류 빼고 한 권 짜리 책 중에는 제일 비싼 8만8천원(중고로 더 싸게 삼)인데다 내용도 꽉꽉 차 있단 말이다. 아 제일 비싼 건 ‘한반도의 새’ 도감 12만원(이것도 중고)이었다...이제 이렇게 무식하게 보지는 말아야 겠다. 통독 안 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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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수십 년 동안 치즈를 먹으면 충치 발생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인정되어 왔다. (…)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스트렙토코쿠스에 의한 산 생성이 증가하는 식사 끝 무렵에 치즈를 먹으면 치즈 속에 함유된 칼슘과 인산이 박테리아 서식지로 스며들어 산의 증가를 둔화시킨다고 한다. (113, 치즈가 충치에 좋다니, 말맛이 맞는다. 나만의 비법이라면, 된장국에 모짜렐라 치즈를 넣으면 감칠맛이 터진다...다들 알려줘도 시도를 안 하더라…)

-하나의 달걀은 생명으로 굴절된 태양 빛이다. (116, 노른자는 해로 많이 비유가 된다. 이 부분은 아주 시인이구만…)

-도대체 우리는 영혼을 가진 이 야생 닭의 후예들을 햇볕 한 줌 볼 수 없고, 흙 한번 파보지 못하고, 움직거릴 틈이라고는 3~4센티미터에 불과한 좁은 공간에 갇힌 생물 기계로 전락시키지 않고, 좀 더 인간적인 방법으로 싸고 좋은 달걀을 먹을 수는 없는가.(123, 여기서 ‘인간적’은 좋은 쪽으로 쓰인 듯하다. 이미 산업화된 양계시스템은 충분히 인간답긴 하다.)

-물 위로 완전히 뜨는 달걀은 아주 오래된 달걀이며 버려야 한다. (136, 공기주머니가 커질수록 오래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고기가 인간의 진화를 도왔지만, 이제 고기는 인간의 퇴화를 도울 수도 있다. 우리는 고기를 절제하며 먹어야 한다. 그리고 고기가 가진 영양상의 힘과 한계를 보완하는 채소와 과일을 함께 먹어야 한다. (196, 자주 듣지만 또 자주 간과하는 일. 기후위기, 식량불균형, 동물권 등 고기는 생명체였던 것의 살점 이상으로 연결된 문제가 많다.)

-좋은 고기란 깨물면 이빨이 쑥 들어가고, 치밀하면서 실팍하고, 처음엔 잘 씹히지 않지만 이내 이빨에 백기를 들면서 풍미가 나는 그런 고기다. 질기다는 것은 불쾌감을 느낄 정도로 고집스레 씹기에 저항하는 것이다. 질김은 근섬유나 근섬유를 둘러싸고 있는 결합 조직 때문일 수도 있고, 마블링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205, 참 감각적이네 좋은 고기 먹고 싶게 만듦)

-닭다리의 단백질은 5~8센트가 콜라겐인 반면에 가슴살은 2퍼센트에 불과하다. (206, 퍽퍽함의 이유)

-몇 년 후, 정부에서 비용을 댄 연구들에 의해 다량의 마블링이 결코 소고기의 연한 육질과 맛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마블링이 풍부한 프라임 소고기의 지위는 끈질기게 유지되었으며, 미국은 지방 밀도를 고기 품질의 주된 기준으로 삼는 세 나라 가운데 한 나라가 되었다. 다른 두 나라는 일본과 한국이다. (212, 그러니 등급과 비싼 가격이 고기 맛의 다는 아니지만...다들 더 맛있다잖아.)

-계속해서 쉬익-쉬익-하는 소리가 강하게 나는 것은 뜨거운 팬에 의해 수분이 곧바로 수증기로 변한다는 표시이며, 이때는 효과적으로 표면이 갈변된다. 약하고 불규칙한 펑-펑-하는 소리는 수분이 물방울로 집적되고 있다는 신호이며, 팬이 덜 달궈져 그것을 날려 보낼 만큼 뜨겁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247, 와 요리사들은 고기 팬 프라잉할 때 소리로 온도를 판단한대.)

-잘 만들어진 통조림은 정말 효과적이다. 100년 된 통조림 고기를 아무 탈 없이 먹은 적도 있다. 아, 물론 별 맛은 없었다. (276, 아 선생님...ㅋㅋㅋ)

-다행히 지독한 생선 비린내는 두 가지 간단한 조처로 크게 줄일 수 있다. 생선껍질에 축적된 TMA는 수돗물로 씻어 낼 수 있다. 또 레몬주스, 식초, 토마토 같은 산성 재료도 도움이 된다. (298, 비린내 싫어하는 나에게 팁...인데 이미 식초 든 세정제로 식탁을 벅벅 닦곤 한다.)

-오늘날 참치는 대부분 태평양과 인도양에서 잡힌다. 압도적으로 가장 많이 잡히는 것은 가다랑어와 황다랑어로, 이들은 작거나 중간 크기의 기름기 적은 물고기이며, 번식이 빠르고 해수면 근처에서 떼로 그물에 걸린다. 흰색 살을 가진 고독한 날개다랑어와 더불어 전 세계 참치 통조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308-309, 참치의 원래 이름을 기억해줘야지. 참다랑어, 눈다랑어는 더 크고 희귀하다고 한다.)

-통생선을 구입하는 경우에는, 껍질이 탱탱하고 윤기가 있어야 한다.(…) 자연적인 단백질성 점액이 껍질을 덮고 있는 생선이라면 그 점액이 투명하고 윤기가 있어야 한다. (…) 눈알이 맑고, 검고, 불룩 튀어나와 있어야 한다. (…) 온전한 생선인 경우에는 복부 부위가 부풀어 오르거나 물컹거리거나 손상되어 있지 않아야 한다. (…) 토막 생선을 구입하는 경우에는, 스테이크와 필레가 겉보기에 포동포동하고 윤기 있어야 한다. (…) 토막 생선이든 통생선이든 상큼한 바닷가 공기 냄새나 으깬 초록 잎사귀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나고, 비린내가 심하지 않아야 한다. (314-315, 생선 구입 시 참고하세요.)

-모든 식물 조직은 수분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건조해져서 팽압을 잃고 내부 시스템이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습도를 유지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것은 식물성 음식은 비닐 주머니, 냉장고 안의 서랍 같은 제한된 공간에 보관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411, 어려운 말 하고 나면 친절하게 바로 풀이해주심)

-알칼리성 조건은 실제로 쓴맛이 나는 올레우로페인을 분해하며, 광택이 나는 겉껍질에 구멍을 내고 들어가 세포벽 물질을 용해한다. (437, 올리브는 수산화나트륨 용액으로 처리한다고...이후 알칼리성 중화 위해 세척, 산성 처리를 한다고 한다.)

-포테이토칩은 심하게 말하면 외피만 있고 속은 없는 프렌치프라이다. 감자를 1.5밀리미터 두께-감자 세포 10~12개에 해당한다-로 얇게 편 다음 수분이 없어지고 아삭아삭해질 때까지 튀긴다. (449, 집에 감자튀김과 감자칩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셋 있다. 난 사양하는데 몸에 안 좋다하니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타피오카는 말린 카사바 전분을 작은 공 모양으로 가공한 것으로, 디저트나 음료에 넣으면 물기를 빨아들여 젤리처럼 된다. (451, 필릭스 용복 때문에 자꾸 공차의 펄 알갱이가 어른거린다...광고의 효과)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특별히 즐기는 고사리는 DNA를 손상할 수 있는 잠정적 위험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므로 피해야 한다. (469, 고사리를 피하자)

-비식용 꽃:은방울꽃, 수국, 수선화, 협죽도, 포인세티아, 로도덴드론, 스위트피, 등나무(481, 먹으면 안 돼)

-아보카도라는 이름은 나와틀 족의 단어 ahuacatl에서 왔다. ‘고환‘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배를 닮은 열매의 모양과 울퉁불퉁한 표면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496, 선생님, 이제 전 평생 아보카도 먹을 때마다 이 구절을 떠올릴 것 같습니다.)

-익지 않은 상태에서 더운 지역 과일을 냉장하면 세포 조직이 손상되어 영원히 익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익으면 냉장고에 여러 날 동안 넣어 둬도 질이 유지된다. (496, 검게 변한 바나나는 빼고)

-무화과는 딸기를 뒤집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무화과는 조그만 크기의 진짜 열매들, 즉 수과 밑에 있지 않고 그것들을 덮어싸고 있다.(545, 딸기를 뒤집으면 무화과. 재밌다.)

-동물들에게는 경험을 통한 학습, 말하자면 특정한 감각을 그에 수반되는 특정한 상황과 연결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 냄새가 기억 및 그와 연관된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568, 이쯤에서 마들렌을 안 꺼내 오셔서 감사하다.)

-감초는 소량씩 비정기적으로 섭취하는 것이 좋다. 일상적인 섭취는 심각한 혈압 상승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611, 어려서 먹어보고 구경도 못했지만 혹시 몰라 적어둔다.)

-이미 입안에 불이 났을 때(캅사이신 섭취) 그 불을 끄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는 얼음처럼 차가운 것을 입안에 넣는 것, 다른 하나는 밥이나 크래커나 설탱 등 뭔가 단단하고 까칠까칠한 것을 입안에 넣는 것이다. (…)(탄산음료는 오히려 자극성을 높인다). 이 모든 방법이 실패했다면, 캅사이신의 고통은 15분 안에 사라진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기 바란다. (615, 이외에도 심하게 매운 걸 먹었을 때 대처법을 공유합시다. 아니면 15분 기다리자...)

-생강 교역량 가운데 놀랍도록 많은 양이 예멘으로 향하는데, 이 지역에서는 커피에 생각을 타서 마신다. 커피 무게의 15퍼센트가 생강이라고 보면 된다. (621, 예멘 커피 마실 기회가 있을까? 어느 카페 메뉴에 있어서 와, 하고 시켰더니 이제 없다고 했다.)

-(쓰촨후추=화자오에 든 화합물인)산쇼올은 그냥 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치 탄산음료를 마시거나 약한 전류에 감전되었으르 때(9볼트의 전지를 혀에 댔을 때)처럼 낯설고 따끔거리고 찌릿찌릿하고 얼얼한 감각을 만들어 낸다. (626, 때지난 마라탕 열풍의 주역, 난 이걸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잘 모르겠고(먹어볼까?->에이 왜 먹었지->망각->또 먹어볼까?->에이..반복), 식구들은 확실히 싫어한다.)

-파비우스 가문은 누에콩(파바빈)에서, 렌툴루스 가문은 렌즈콩(렌틸)에서, 피소 가문은 완두콩(피)에서,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키케로 가문은 병아리콩(칙 피)에서 이름을 빌려 왔다. 그 어떤 음식물 집단이 이처럼 추앙받은 적이 있었던가?(699, 로마 명문가는 모두 콩)

-영국에서는 황산염이 풍부한 버튼온트렌트의 쓴 물맛 덕분에 맑은 에일에 홉을 조금만 첨가해도 되었고, 필젠의 순한 물은 체코의 맥주회사들로 하여금 쓴맛과 향을 위해 홉을 다량으로 첨가하게 만들었다. 뮌헨, 영국 남부, 더블린의 탄산염이 풍부한 알칼리성 수질은 보통이라면 보리 겉껍질에서 떫은 맛의 물질을 너무 많이 추출하게 되는 짙은 색 맥아의 산도를 조정해 주며, 독일의 흑맥주와 영국의 포터와 스타우트 같은 흑맥주의 발달을 이끌었다. (1061, 물맛이 술맛에 영향을 준다. 당연한 거 같은데 또 새롭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1센티미터 두께의 고기가 속가지 익는 데 걸리는 시간은 1/2센티미터 두께의 고기보다 2배가 걸릴 것 같지만, 실제로 해보면 음식의 전체적인 생김새에 따라 2배에서 4배 사이의 어디쯤까지 걸린다. 깍둑썰기를 한 고기는 조금 덜 걸리고 넓은 스테이크나 필레는 조금 더 걸린다. 열이 음식 표면에서 중심부까지 전달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신뢰할 만한 방법은 없다. 따라서 최선의 규칙은 수시로 그 익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1110, 그니까 고기는 계속 살펴가며 구워야...그나마 삶은 달걀은 칸트 같이 시간 딱딱 맞추는 성실한 음식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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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26-08-29 0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식재료와 요리에 관심 많아서 재밌게 리뷰, 잘 읽었습니다 ^^ 근데 커피는 왜 끊기로 하셨나요;;

반유행열반인 2026-08-29 09:3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로제트50님!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커피는 제가 밤에 잠을 못 자는 편이면서 미련하게 마시는구나 싶어서 평일에는 아예 안 먹는 편이에요. 몇 주 만에 주말찬스로 드립커피를 내려 마셨는데 끊었다고 하기 민망해져버렸네요 ㅋㅋㅋ

로제트50 2026-08-29 1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커피는 오후 1시 이전까지만 마시면 수면에 영향이 없다고 하네요^^~

반유행열반인 2026-08-29 15:10   좋아요 0 | URL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차가 있는 것 같아요!!! ㅎㅎㅎ
 
별빛이 떠난 거리 - 코로나 시대의 뉴욕 풍경
빌 헤이스 지음, 고영범 옮김 / 알마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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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1 저자: 빌 헤이스.


스스럼없이 모여 하고 싶거나 해야 하는 걸 한다. 치킨과 함께 술을 마시든, 음악을 틀어놓고 땀에 푹 절어 운동을 하든, 원탁에 둘러앉아 회의를 하든.
아픈 사람의 동선이 낱낱이 밝혀지는 일은 없다. 집에서 나왔다고 경찰에 잡혀가지 않는다. 감히 코인노래방이나 헬스장에 갔다고, 정말 미쳤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미어터지는 지하철, 숨결이 닿을 거리에서 다들 휴대전화를 들고 각자의 세상에 빠져 있다. 아직도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대부분의 얼굴을 구경할 수 있다.
마스크를 사려고 줄을 설 필요가 없다. 이미 평생 쓰고도 남을 양이 집안 곳곳에 처박혀 있다. 초기에 나온 줄서서 사던 마스크들은 이걸 결국 쓰게 될까 싶게 모양도 안 예쁘고 숨도 더 답답하고 너무 커서 효과가 있을까 싶은데도 못 버리고 가지고 있다.
다들 손을 덜 씻는 것 같다. 손세정제를 일부러 쓰는 사람도 잘 없다. 문고리나 난간을 매일 소독제 묻은 직물로 문지르는 사람도 아마도 없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을 받은 아이들은 하루 이틀 정도 쉬고 열이 떨어지면 다음 날 조금 안 좋은 컨디션으로 등교를 한다. 마스크를 쓰는 아이도 있고 안 쓰고서 신나게 돌아다니는 아이도 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축구와 농구를 하고, 서로 들러붙어 장난을 친다.

대부분 우리가 뭔가를 할 수 없었던 날들을 잊은 것 같다. 그런 일이 없던 것처럼 일상을 누리고 살아간다. 불안과 공포는 모두 휘발되었다. 어떤 것들은 잊어야 살아진다. 바이러스는 도처에 가지가지가 있다. 무뎌지고 무던해진다. 코로나19 감염으로 가까운 사람을 잃었거나 일자리를 잃었거나 건강을 해친 사람들은 남들보다는 더 그때를 떠올릴 수는 있겠다.

그때의 나는. 불안과 무력감, 때론 공포. 그렇지만 인구밀도가 순식간에 낮아진 도시를 거니는 편안함이 공존했다. 가족 중 한 명이 확진이라는 연락을 받는 순간, 부랴부랴 짐을 싸서 독서실을 나오던 생각이 난다. 나중에 걸린 독감이 더 아팠던 것 같긴 하지만, 코로나19도 지독하게 아팠다. 왜인지 골반과 엉치뼈가 제일 아팠다. 냄새를 덜 맡게 된 건 예민한 나에게는 오히려 좋다는 생각을 했었다. 걸렸구나, 마침내. 이미 대유행 3년차에 접어들던 때라 백신도 마스크도 큰 소용 없이 한 번쯤은 걸리고야 마는 병이려니 했다.

십수년 전 이야기 떠올리듯 꺼낸 기억들이지만,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지금 내가 읽는 빌 헤이스의 책은 6년 전 코로나19 시대의 뉴욕을 기록한 책이다. 빌은 사람과 차로 붐비던 뉴욕의 거리가 몇 달 만에 텅 빈 모습을 전후 사진으로 대조하듯 찍어 놓았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걸 글로 쓰던 빌은 처음에는 답답했을 것 같다. 그러나 텅 빈 도시를 돌며 아직 있던 자리에 남아 나름대로 고안한 방식으로 책과 음식을 파는 사람들, 운동하는 군인들,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사람과 멀찍이나마 만나고, 문 닫은 곳곳을 사진과 글로 남겨 놓았다.

비슷한 일이 생기면 다들 조금은 더 침착할 수 있을까. 같은 방식으로 대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도 혐오와 탓하기는 남아 있겠다. 걸린 그들과 걸리지 않은 우리, 말 안 듣는 그들과 규칙을 준수하는 우리로 사람 사이를 긋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모두에게 같은 펜데믹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폭락했던 주식을 주워 담아 늘어난 유동성과 함께 부자가 되었고, 누군가는 굴뚝의 연기로 사라졌다. 빌은 최대한 다정한 도시 사람들을 추려 담아 놓았지만, 나는 겁에 질려 아무나 미워하던 사람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밑줄 긋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쓰는 거야-지적으로, 창조적으로, 비판적으로, 생각을 불러일으키도록-지금 이 시대에 사는 게 어떤 건지에 대해서. (31, 빌에게 올리버가 건넨 말.)

-우울증에 대해서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사항은 우울증을 ‘하나의 우울함’으로, 마치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인 것으로 다루지 말라는 것이다. 그 안에는 오랜 시간-어쩌면 평생-에 걸쳐 형성된 많은 부분들-비탄, 트라우마, 학대, 고립, 거부, 억울함, 돈 걱정, 경력 후퇴 등등이 들어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 두드러지는 단 한 부분에라도 초점을 맞출 수 있고 그걸 분리해낼 수 있다면-그래서 그 안에 들어 있던 진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말할 수 있게 된다면-그동안 지고 있던 짐은 현저히 가벼워진다. (54, 이 년 반 째 한 주에 한 번 상담을 받다가 코로나로 인해 줌 상담을 받게 된 빌의 말.)

-그리고 이 강요된 고독과 고요 속에서, 너는 때때로 네 생애의 어떤 순간들을 돌이켜보는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 말해진 것들과 말하지 않은 것들, 행해진 것들과 행하지 않은 것들, 표현된 사랑과 표현되지 않은 사랑, 네가 받은 그 모든 감사한 일들, 네가 느낀 그 모든 감사함. (88, 외로움과 고요가 공존하던 시절. 불안과 두려움도.)

-“안녕.”
“안녕.”
“당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중인 것 같아.”
“아냐, 안 잃어버렸어. 난 여기 있어.” 내가 말한다. (118)

-이 도시는 너무나 밀도가 높고, 너무나 긴장되어 있고, 너무나 촘촘하고, 너무나 스트레스가 심하고, 너무나 더럽고, 너무나 다양하고, 외부와의 접촉면이 너무나 거칠고, 다들 자신의 감정을 너무나 투명하게 드러내서, 이따금씩 낯선 사람의 도움을 얻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154, 내가 사는 곳이 뉴욕인 줄 몰랐다.)

-“해봐. 내 나이가 되면 내가 한 일 때문에 후회하진 않아. 안 한 것들 때문에 하게 되지.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나는 범죄자야.”
나는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그 말 기억할게요. 늙은 범죄자.” (200-201, 나이 차 많은 게이 커플의 다정한 대화.)

-이 망할 놈의 산 너머에는 과연 뭐가 있는지 보고 싶다. (204, 이 독후감의 전반부를 참조하세요 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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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세계 - 뇌과학자가 전하는 가장 단순한 운동의 경이로움
셰인 오마라 지음, 구희성 옮김 / 미래의창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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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3 저자: 셰인 오마라.


책의 후반부를 읽을 무렵 깨달았다. 뇌과학, 도시생태, 사회학, 진화, 질병 예방 다 끌어다가 걷기의 효용을 두루 다루는 책을 읽으면서도 오늘 하루 그냥 집에만 있었다. 움직이는 게 낫겠지, 하고 오랜만에 실내자전거를 30분쯤 탔다. 저녁은 굽네치킨 고추바사삭과 치즈볼을 먹었다. 그러고서 읽던 책을 마저 다 읽었다.

곁의 사람이 산책을 나가자고 했다. 해는 8시 다 되어서 지는데 7시 반쯤 되었다. 피곤해서 망설이다 같이 가기로 했다.

우리의 걷기는 사뭇 다르다. 나는 빠르게, 넓은 보폭으로 걷는 걸 좋아한다. 곁의 사람은 땀이 나는게 싫어서 느릿느릿 보폭도 좁게 걷는다. 나는 걸으면서 전화기를 들여다보지 않지만, 곁의 사람의 전화기는 물아일체 수준이다. 나는 낯선 골목, 사람 적은 시간의 대로, 숲길 걷기를 좋아한다. 곁의 사람의 걷는 목적은 어떤 곳에 다다르는 것이다. 주로 마트나 빵집 같은 곳을 둘러보며 구경하길 좋아한다. 하나만 골라, 하면 나는 마냥 걷기를 고르겠지만, 곁의 사람은 빵과 과자와 아이스크림(세 개 잖아!)을 택할 것이다.

길을 나서자마자 학교 아이들을 마주쳤다. 서로 못 본 체 했지만 알았을 것이다. 평소에도 빛나는 행색은 아니지만 오늘은 뻗친 머리 가릴 버킷햇에다 원피스 대충 골라 입고 나왔는데 창피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나를 속상하게 한 적이 많은 터라 불편했다.

직장을 걸어서 오갈 수 있는 건 아주 좋은 일이다. 최대의 장점을 고르라면 그렇게 적당히 걸을 수 있는 거리라는 것. 단점은 너무 많아서 생략한다. 아니, 아까처럼 아이들을 동네에서, 오가는 길에서 자주 마주친다. 일부러 내게 어디어디 사시잖아요? 하고 떠보듯 대놓고 말하는 아이에게 태연한 척 그래, 하면서 불쾌함을 삼킨다.

그래서 그렇게 아쉬운 시작을 지나 지하철 역이 있는 대로를 향하고, 그 반대편으로 건너갔다. 시장과 먹거리 골목이 있어 적당히 둘러보았다. 결국 발길이 머문 건 처음 가보는 빵집. 멜론빵과 대파베이컨패스츄리? 대충 그런 걸 샀다. 그러고나서 다시 건너에 있는 마트에 갔다. 사람이 사는데 무엇을 그리 많이 사는가. 복작복작했다. 과자 코너에서 신제품이 보이자 곁의 사람이 신나했고 나는 부지런히 장바구니에 새로운 스낵들을 담았다. 라면 코너를 주의깊게 보았지만 새로운 건 없어서 넘어갔다. 식자재보다는 주로 냉동, 가공식품류들, 유제품과 마실 거리를 구경하고 셀프 계산대에서 바코드 찍고 나왔다. 빵값은 8천 얼마, 과자값은 9천 얼마, 운전도 안 하고 인터넷 장보기를 더 많이 하는 편이라 그렇게 장보기 나들이도 가볍다. 에코백과 그물백에 과자봉지랑 빵을 적당히 나눠담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볍게 나갔다 생각했는데 5434보라고 한다. 많지도 적지도 않게 걸었다. 그런데도 무릎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참 자전거를 먼저 탔구나. 어제는 병원에 가는 날이라 진료 시간을 기다리며 오늘보다 만걸음은 더 걸었었다. 이틀간 누적된 피로도 있겠다.

걷기를 즐기는 내게 그래서, 걷기의 효용을 이렇게 저렇게 외쳐대는 책은 딱히 쓸모도, 재미도 없었다. 걷기 싫은 사람에게 이 책을 읽힌다면, 와 역시 걷기가 좋은 거구나, 하고 설득되서 벌떡 일어나 나설지는 잘 모르겠다. 걷는 거 좋은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나. 몰라서 안 걷는 사람이 있을까?

혼자 오붓한 것도 좋지만, 조곤조곤 이야기 나누며 둘이 걷는 길이 재미있다. 이런저런 걸 보고 아무말이나 하며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 손은 잡아도 안 잡아도 좋다. 날씨가 좋으면 좋아서, 궂으면 궂어서 걷기 좋다. 그걸 알면, 같이 걷자, 할 사람이 있으면 어디든 저절로 걷게 될 것이다.

걷는 사람은 많이들 쓴다. 많이들 읽는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이 많다. 걸으면서 감각하는 세상을, 생각을 지금 이 순간의 나만 알기엔 아쉬운가 보다.

걷는 걸 좋아하게 된 지 8년차쯤 되었다. 별로 길지 않은가 싶다가 어느새 길어져 있었다. 세상 길은 무수하고 가닥가닥 연결도 잘 되어 있어서 한 번 밟고 갈 곳이 넘친다. 지루할 새가 없다. 다만 노동자는 하루의 긴 시간을 실내에 갇혀 계단을 오르내리고 복도를 오고간다. 실내보다는 실외 걷기가 뇌 활성화에 더 좋다고, 당연한 사실 같은데 이 책은 실험으로 증명된 걸 알려준다. 나는 내 뇌가 더 움직이길, 두 다리가 노곤하도록 마냥 움직이길 바란다. 가고 싶은 곳은 많이 없는데 걷고 싶은 곳은 늘 있다. 굳이 안 읽고 그 시간에 걸었으면 더 좋았겠다.


+밑줄 긋기
-인간의 가까운 친척이라고 할 수 있는 침팬지들은 손과 발을 함께 사용하여 걷는 중간 단계의 직립보행을 한다. 이 변형된 형태는 ‘너클 워킹Knuckle Walking(손가락 관절 보행)‘이라 불리는데 특별히 효율적인 이동 방법은 아니다.(곁의 사람과 지난 번 걷기 때 이족보행에 대해, 영장류의 보행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저자는 인간의 걷기와 다른 동물들의 두 다리 사용에 제법 굵게 선을 긋는다. 난 이런 걸 보면 인간우월주의라고 외치고 싶어지고…)

-최근 유엔은 향후 30년 이내로 세계 인구가 2.9억 명으로 증가하고 22세기가 되기 이전에 3억 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2050년이 오기 전에 인구의 80~90퍼센트 이상이 도심에서 거주할 것이라고 예측했다.(이건 오자 같아서 옮겨 왔다. 세계 인구가 아니라 도시 거주 총 인구라고 해도 숫자가 맞지 않다.)

-일반적으로 도시 규모가 클수록, 또 경제력이 높을수록, 그리고 특히 경제 성장이 더 높을수록 해당 도시 거주자들은 더 빨리 걷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걷기는 평등하지 않을 수도…)

-결과적으로 노력을 관리하는 뇌 체제와 획득할 수 있는 보상을 예측하는 뇌 체제는 매우 밀접하게 연동한다. 들이는 노력이 클수록 그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적은 보상이 있는 경우에는 비교적 느리게, 많은 보상이 있는 경우 더 빠르게 걸어간다. 이는 도시에서 흔한 풍경이다.(내게 걷기는 뭔가 많은 걸 보상하나 보다. 누구보다 빠르게-)

-나아가 뇌는 노력과 보상의 균형을 통해 노력은 최소화하고 보상은 최대화하려는 시도를 한다. 이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나태함과 노력의 균형을 이루는 뇌의 진화된 반응으로 이해하면 된다.(인류 조상들의 움직임도 지금보다 딱히 더 많지 않았다고, 대신 덜 먹었다고 한다.)

-사용하지 않는 근육의 부피는 빠르고 쉽게 줄어든다. 더 나아가 근육량의 손실은 지속적으로 평생 새로운 뇌세포를 생산하는 뇌의 영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근육이 손실됨에 따라 뇌의 기능도 악화된다. 이와 함께 성격, 감정과 뇌 구조 자체에 유해한 변화도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자가 처방할 수 있는 치료제의 일종인 놀라운 자체 수정 메커니즘이 있는데, 이는 바로 운동이다.(뇌근육 손실은 생각을 잘 못했다… 걸으면 뇌를 움직일 수 있다는 건데, 동시에 읽는 중인 ‘천 개의 뇌’에서도 뇌의 작용을 움직임으로, 움직임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뇌는 사고, 기억, 문제 해결, 기획, 기분 조절 등 기타 다른 다양한 일들을 돕는 목적을 갖는다. 규칙적인 리듬과 속도로 걷는다면 뇌의 전반적인 기능이 빠르게 개선된다는 얘기다.(그런데 걷기가 수학하는 뇌까지 살려주진 못한다…)

-걷기를 통해 건강상의 실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규칙적으로 적정한 거리를 높은 속도로 걸어야 한다. 일주일에 최소 4, 5회씩 최소 30분간 대략 시속 5~5.5 킬로미터를 꾸준히 걷는 것이 좋다.(오, 유일하게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팁을 준 부분이다.)

-우리는 ‘네트워크 중심의‘ 관점에서 뇌가 어떻게 특정 기능을 돕는지 관찰하며, 더 이상 개별 영역을 언어, 시각, 촉각, 움직임 등과 같은 특정 기능만을 위한 곳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뇌의 다른 영역들 간 상호작용의 패턴이 학습과 기억 그리고 언어와 시각, 청각의 기능을 돕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는 관점에서 바라본다.(‘천 개의 뇌’라는 책에 비슷한 내용이 나왔다.)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연령층과 성별에 무관하게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자연에 노출되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개인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소득과 교육 수준, 종교의 유무, 결혼의 유무, 봉사활동, 외적 매력과 같은 요인들에 못지않게 높다는 것이다.
개인의 소득 수준이나 외적 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지만, 나가서 산책을 하는 것은 모두가 쉽게 할 수 있다. 자연환경에서 하는 활동이 행복과 웰빙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입증되었기에 비록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자연이 유일하게 도심 속 공원일지라도 규칙적으로, 또 습관적으로 자연 속에서 걷는 것을 장려해야 한다. (걷기는 평등하다. 평등해야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 했는데 내가 누가 싫어서 안 가냐! 했던 게 얼마전인 것 같은데...무슨 독후감에서였지…‘쉬어도 피곤한 사람들’이었다...)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은 나무, 삼림지대의 개울, 바위와 같은 자연에서도 영혼을 찾을 수 있다는 고대 범신론적 자연 숭배에서 대지의 어머니와 신들을 숭배하는 종교 그리고 오늘날의 ‘가이아‘와 같은 여신에 이르기까지 지구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체를 스스로 제어하는 하나의 생태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러브록 씨의 가이아 이론은 의외로 다른 과학 책에도 자주 등장해서 ‘태양을 먹다’였나? 하여간에 이만큼 반복되면 간단히 적어놓고 기억해줘야겠네 싶었다.)


-시끄럽고 한눈에 봐도 술에 취한 듯한 두 명의 남자들도 홀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나는 대각선 방향으로 걷고 있었고, 한 남자가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적대적인 시선으로 응시했고 더 빠르게 걷기 시작하더니, 왼쪽 어깨를 뒤로 살짝 움직였다. 거리가 아주 가까워졌을 때, 나는 그가 내 왼쪽 어깨를 있는 힘껏 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부딪치려는 순간 나는 내 왼쪽 어깨를 그로부터 멀리 돌렸고, 예상대로 그는 그의 어깨로 나를 치려는 시도를 했지만 내 어깨는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았다. 그는 한 바퀴 빙 돌더니 어색한 모습으로 넘어졌다. 이것은 그의 뇌가 예측한 것이 아니었고, 그가 예상한 결과가 아니었다.(어깨빵 당할 뻔 한 걸 피했다-이 한 문장을 세세하게 관찰하고 꼼꼼하게 기억했다가 적어 놓았다. 작가의 성질을 긁으면 다들 이렇게 박제될 것이다…)

-그런데 꿈을 꾸는 것의 문제는 그때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걷기를 통해 꿈의 특성인 시간적 의미의 상실 그리고 몽상, 서로 다른 기억과 생각의 자유로운 연상을 경험할 수 있다. 척수의 패턴 발생기에 의해 걷는 속도가 규정되고, 규칙적인 걷기 리듬에 빠져들어 시간을 덜 의식하게 되면 모두가 필요로 하는 창의적 사고의 문이 열린다.(꿈과 걷기 중 저자는 글쓰기에 더 유리한 걷기의 손을 들어준다.)

-우리의 시간에 대한 인식은 시계처럼 정확하거나 일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고,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단위는 실제 시간의 단위와 다르다. 이 경우 즐거움이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인간은 흔히 당시 기분에 따라 시간을 지나치게 짧게 또는 길게 예측하는 경향이 있다. 아인슈타인은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손을 뜨거운 난로에 올려놓고 있으면 일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아가씨와 앉아있으면 한 시간이 일분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대성 원리다.˝(‘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 제목 말고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유한을 걱정하면서도 또 영원을 믿게 된다’고 독후감에 써 놓았다.)

-보다 자유로운 창의적 인지 상태를 장려하고 싶다면, 근로자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 화면에서 떨어져 움직이라고 해야 한다. 움직임이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은 강력하고, 이전에 제대로 활용되지 않은 새로운 아이디어 개발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교류할 수 있는 실내•외 공간이 있는 사무 공간과 건물이 장려되어야 하며,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과 영감을 쉽게 기록할 수 있는 수단도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행동을 근무하면서 할 수 있도록 합법화하고, 지원하고, 제도화하는 것이다.(산책을 좋아하지만, 직장 안에서는 사람 마주치는 게 힘들어서 걸을 틈이 있어도 앉아서 보낸다. 그래서 늘 안절부절 못하는 것 같다.)

-오랜 기간의 심사숙고, 준비와 아이디어 개발, 새로운 문제의 적극적인 구축과 공식화, 장기간의 사고를 통한 다양한 답안에 대한 검증 그리고 걷기가 있었다.(수학자가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덕을 걷기에게도 돌리는 저자)

-수학은 때로 낯설고 매일의 일상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현대의 물리학과 컴퓨터 게이밍, 애니메이션, 그래픽 그리고 심지어 전자 칫솔의 디자인 등에도 적용될 수 있다.(대부분 그걸 모르고 이를 닦지요.)

-그러나 몽상은 적어도 이 개념의 일반적인 정의에 따른다면 단순히 게으름이나 시간의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정신 관리의 관점에서는 매우 필수적인 행동으로 우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합하고 자신의 사회적 생활에 대해 질문하고 대규모의 개인적 서사를 가능하게 한다. 만약 몽상이 게으름이라면 이는 매우 독특하고 적극적인 형태의 게으름이다. 행동으로는 조용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매우 활동적인 상태인 것이다.(아침 시간에 멍때리는 아이들 보면 뭐라도 하라고 말은 했지만, 그렇게 명상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 생각 그대로 말해도 될지는 아직 판단이 안 선다.)

-정부는 시위행진이 자유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이나 부상에 대한 위험 또는 재산에 손실이 있지 않는 이상 지나친 통제는 금지되어야 한다. 정의 사회를 완벽하게 마비 상태로 만들도록 설계한 시위가 아닌 이상,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변화를 일으킬 에너지가 발산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걷기가 변화를 일으킬 거라는 긍정과 믿음. 오늘 퀴어퍼레이드가 있었다고 한다. 퍼레이드는 걷는 거지? 그 주변에 기독교 단체가 무대를 설치하고 한 자리에 모여 주여, 하는 영상을 라이브로 보았다. 왜 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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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쓰레기는 재활용되지 않았다 - 재활용 시스템의 모순과 불평등, 그리고 친환경이라는 거짓말
미카엘라 르 뫼르 지음, 구영옥 옮김 / 풀빛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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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5 (저자:미카엘라 르 뫼르)

점심은 짬뽕 밀키트로 준비했다. 채소, 해물, 건고추, 소스, 면까지 각기 투명 비닐 포장이 되어 있고, 비닐을 벗겨 씻어낸 뒤 조리하는 식이었다. 가위로 하나씩 오릴 때마다 불편함이 올라왔다. 죄책감에 가까웠다. 이런 마음도 시간이 지나가면 망각하고 무뎌지겠지만, 이 책을 읽은 직후의 비닐은 이전의 그 비닐이 아니었다.

전부터 궁금했다. 쓰레기, 종류도 다양하게 일반, 재활용, 음식, 오폐수까지, 그 모든 건 내가 버린 후 어디에서 무엇이 될까 자주 생각했다. 제대로 찾아보지는 않았다. 우연히 이 제목을 발견하고 읽었다. 책은 두껍지 않고 금세 읽힌다. 그렇지만 나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책에서 다룬 소재는 플라스틱 백이라 불리는 봉다리이고, 번역도 모두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다. 나는 생활용품이자 생활 용어로 자리잡힌 비닐로 통칭하기로 했다.

사회학, 인류학 박사과정생이던 저자는 사회 조사를 위해 베트남 민 카이 마을을 둘러보고, 여러 사람들과 인터뷰를 한다. 도처에 악취, 마을 곳곳에 쌓인 쓰레기산, 지금도 너무 더러운데 공장 폐수가 흘러들면 온갖 색으로 변한다는 강물, 재활용 산업에 관한 행사장까지.

쓰레기 더미에서 허술한 장갑 하나 끼고 쭈그려 앉아 쓸만한 비닐을 수집하는 여성 노동자들. 모인 비닐을 다시 사용 가능한 형태로 만드는 공장의 남성 노동자들은 방독면도 없이, 온갖 기계 사이에서 상의 없는 맨몸으로 절단하고, 갈아내고, 녹여내고 또 절단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쓰레기가 없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고, 공단 지역이 되면서 빼앗긴 땅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방류된 폐수 색깔로 물이 덜 더러운 날, 더 더러운 날을 구분하는 주민도 있었다.

부산에 놀러갔을 때, 해양박물관을 가던 길에 유독 자원순환시설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수집품들을 담아둔 자루나 상자에는 죄다 외국어가 쓰여 있었다. 내가 버린 것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배에 실려 외국으로 가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다음은? 하는 물음에 어디선가 정화 시설 갖춘 곳에 소각해서 연료로 쓰이지 않을까, 막연한 추측을 했다. 이 책은 쓰레기를 벌이 삼은, 실은 자신의 건강과 삶의 질을 돈으로 바꾸는 사람들의 삶터를 생생하게 보여주며 진짜 답을 알려주었다.

유럽 바이오 플라스틱 협회의 행사장에서 분해되는 비닐을 반대하는 사람은 기존 비닐 사용량이 줄면 사업에 지장을 받을 업체 대표 뿐이었다. 저자의 설명을 통해 분해되는 비닐도 바이오를 붙일 만하지 않고, 생분해성과 관계가 멀다는 것을 알았다. 분자 구조를 느슨히 만드는 물질을 첨가해서 빨리 형체가 사라지는 것은 맞지만, 그저 미세플라스틱의 양이 늘어가는 변화였다.

책을 다 읽고 난 기분은 네오의 빨간 약을 삼키다 목구멍에 걸린 느낌이었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석유화합물은 생태계를 망칠 것이고, 재활용이란 이름으로 저개발국가의 주민들을 착취할 것이다. 저자의 사회학, 인류학 프레임을 통해 쓰레기와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니까 큰일이네, 싶었다. 재활용 공장을 가진 사람들은 부자가 되지만, 민 카이 마을 사람들은 부지런히 돈을 모으지 않으면 계속 그곳에 남아 지독하고 유해한 냄새를 참아야 한다. 그 냄새의 원천을 돈으로 바꾸기 위해 품을 들여야 한다. 이 새로운 앎이 너무 강렬해서 주방의 비닐들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재생원료를 함유한 PET를 사용하였다는 상품 포장의 문구가 달리 보였다.

앞으로는 친환경 재생 소재를 소비하며 좋은 일을 한다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이다. 장바구니 가방 사용, 페트병 배출을 줄이기 위한 필터 물병 정수기, 페트병 생수는 최대한 안 먹되 먹게 되면 다회용기처럼 여러 번 물을 담아가며 사용하기(세균, 미세플라스틱 다 알지만 그냥 내가 필터다) 그 정도가 내가 해온 쓰레기 줄이기 노력이었다. 이제는, 뭘 더 할 수 있을까? 옷(이것도 대부분 석유 화합물) 안 사기, 택배로 받는 물품 소비 자제하기(비닐 테이프, 완충재), 결국 덜 쓰고 덜 만드는 게 맞다. 새로운 소비를 더하는 인류에게는 답이 없다.

그렇지만 나의 작은 마음은 빨리 이 책의 내용을 잊었으면, 한다. 비닐을 고통스럽게 여기는 마음이 사라지길 바라고 있다. 나도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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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할 쓰레기를 분류하고 세척한 사람은 누구일까? 쓰레기였던 플라스틱을 압축하고 녹여 새로운 모습으로 성형할 때 나오는 유독 가스는 누가 마셨을까? 공장에서 배출된 오염수는 어디로 갈까? 기업이 이렇게 위험 요소가 많은 재활용 산업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추천글에서 먼저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

-어찌 됐든 가난하지만 깨끗한 도시는 본 적이 없어요. 사람들이 불행해 지면 그 불행은 보통 지속되죠. (중략) 파벌, 부패, 빈곤은 모두 함께 존재해요. 더러움, 질병도 마찬가지고 … (나쁜 건 늘 함께 다녀)

-쓰레기 가공에 특화된 민 카이 재활용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도로의 갓길과 황무지를 쓰레기가 점령하고 있었다. 가방, 필름, 사용한 플라스틱 포장지뿐만 아니라 회색빛 봉투에서 알록달록한 봉투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 쌓여 있는 쓰레기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수천 톤의 쓰레기에 짓눌린 공 같은 그 형태 에서 그것들이 컨테이너에 실려 긴 바다 여행을 마쳤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재활용이라기보다 우리 눈앞에서 일단 치워뒀다 저곳으로...가 맞겠다)

-역으로 ‘원천적 쓰레기 분류 ’와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 ’ 이라는 법령 속에서 개인의 사생활과 일상에 쓰레기 관리 문제가 정치적으로 끼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불평등한 무역이 이뤄진다는 명백한 사실과 더불어, 아일랜드에서 출발한 더러운 종이 상자를 분리하는 베트남 농민의 두 손을 통해 드러난 것은 바로 정치적 문제다. (쓰레기도 정치다..)

-사진 촬영을 허락받았지만 한 여성이 카메라 렌즈를 날카로운 눈으로 응시하면서 큰소리로 물었다. “프랑스에도 이런 일이 있나? ” “아뇨, 없는 것 같아요. ” “그럼 날 좀 프랑스로 데려가. ”(이분들도 좋아서 여기 사는 거 아니야…)

-민 카이 마을에 있는 수공업 공장들의 재활용 라인을 한단계 한 단계 훑으면 물질 부스러기는 광석으로 변한다. 인간과 기계의 힘이 작용한 여러 작업 단계를 거쳐 처음의 형태를 잃는다.
큰 보따리가 작은 보따리가 되고, 필름이 조각이 되며, 조각은 냉온탕을 지나 세척된 후 녹아서 떨어지고 섞인 다음, 용암이 되어 사출기를 밧줄처럼 빠져나가서 알갱이가 된다. 마치 산이 수많은 모래알로 침식되는 것처럼 고체와 액체 사이의 불분명한 이 재료의 성질은 향후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형태가 없어야 다시 형태를 만들 수있기 ’ 때문이다. (재활용 과정도 결국 환경오염이 수반된다)

-부서진 쓰레기들이 햇빛에 썩어 가면서 뿜어내는 악취가 코끝을 자극하고, 귀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끊임없이 돌아가는 모터와 기계의 소음뿐이다. 아마도 개구리는 여전히 거기 있을 것이다. 오염된 늪지에 숨어 있겠지만 소음이 점령한 이 풍경에서 개구리는 사라지고 없다.
재활용된 알갱이들을 생산하는 작업장에서는 플라스틱 입자가 둥둥 떠다니는 더러운 물을 흘려보낸다. 분쇄된 폴리머 쓰레기의 세척 수조에서 나오는 오수는 마을의 도랑이나 재활용 공장 주변의 공터로 흘러가 고여 있다.(자기가 사는 마을이라면 공장주는 저 지경을 만들까…)

-실제로 이들의 화학적 분쇄 방식은 생분해와 아무런 관련이 없고 오히려 플라스틱 미세 입자와 오염 물질을 분산시켜 생태계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그럼에도 산화해체성 플라스틱은 전 세계에 퍼져 있다. 특히 베트남에서는 이 봉투가 ‘친환경 ’ 라벨을 붙이고 대형 마트의 계산대까지 배포되었다.(우리나라 마트의 친환경 봉투라고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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