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eBook] 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01213 김현경.

아홉 살 때, 반에서 나 혼자만 한 아이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지 못했다. 엉엉 울었다. 얼마 후 있을 내 생일에 복수하는 대신 그 아이를 초대했다. 서로 끌어안고 미안하다고 엉엉 울면서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다. 그렇지만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인생 전반적으로 다른 아이들과 잘 지내지 못했다. 열두살, 열세살 때 같은 반 여자아이들과 몸싸움을 벌인 적이 몇 번 있다.(남자아이들과는 거의 매일 몸싸움을 했다. 주먹질 퍽퍽 쌍욕 팍팍) 나보다 키가 한참 큰 한 아이는 살벌하게 침을 튀기며 난 너 진짜 싫어, 애들 다 너 싫어해, 너는 너가 잘나서 회장된 줄 알지, 랩퍼처럼 분노에 찬 디스를 쉴새 없이 늘어놓았다. 멘탈 와장창이었다. 또다른 아이와도 어쩌다가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는 걸 다른 아이들이 떼어놓았다. 그 아이는 내가 붙잡아서 목걸이가 끊어졌다며 고소할 거야! 하고 비명을 질렀고 나는 정리되어 있던 책상과 의자를 다 집어던지며 울었다. 중학교 때도 같이 밥 먹던 아이와 소원해져 한동안 급식을 혼자 먹었다. 고등학교 때는 힘들게 들어간 밴드부 아이들과 사이가 나빠져 탈퇴하면서 익명 게시판에 욕을 한바가지(실력도 없는 것들이 연습도 지겹게도 안 해!) 적어 놓기도 했다.

적어놓고 보니 나한테 문제가 많았나 보다ㅋㅋ 내가 잘못한 것이 분명 있다. 내 생각과 느낌을 거르지 않고 말하는 편이었다. 거기에는 상대의 부족함이나 실수에 대한 지적도 포함되어 있었다. 온건한 대화가 어떤 형태인지 자라면서 경험해보지 못했다. 비난하고, 불만을 표하고, 욕설을 내뱉는 아빠. 당장 도망가거나 죽어버릴 것 같은 어두운 얼굴로 입을 꾹 다문 엄마. 그런 부모를 보며 나와 동생은 매일 서로를 죽일 듯이 싸웠다. 나는 늘 불안하고, 긴장하고, 웃는 법을 몰랐다.
칭찬하거나 호감 표현하는 말을 믿지 않았다. 친절과 도움은 의심했다. 이런 나를 왜? 무슨 목적이 있겠지. 이런 마음은 최근까지도 많이 남아 있었다. 마음을 열지 않고 숨었다.
그런데도 사람에 대한 집착은 심해서, 너무 쉽게 누군가를 좋아했다. 사랑이 나를 구원할 줄 알았다. 막상 친밀한 관계가 되면 상대방이 잠시라도 부재할 때마다 공황 상태가 되어 내곁에 있어주지 않는 그 사람에게 원망의 말을 쏟아 붓고 울기만 했다.

그나마 지금은 평온해진 편이다. 그 사이 내가 무엇을 잘하거나 어떤 부분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냥 나라는 이유만으로 내 존재를 긍정해주고 나를 좋아해준 사람들을 만난 덕분일 것이다. 나의 잘못과 괴로움과 못난 부분을 드러내도 그 사람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여주고 그럴 수도 있겠다, 라고 해 주었다. 기댈 곳이 되어 주고, 내게 기대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많지 않은 친구들, 대학 동아리 선후배들, 새로 만든 가족이 그랬다.

내가 잘 하지 못하는 부분이라 그런지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 소통의 원리에 관해 많이 궁금했다. 커뮤니케이션, 대중매체와 온라인 매체, 사회심리학, 미시사회학이라 불리는 상징적 상호작용론에도 그래서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구조나 거시적 담론보다는 사람들 간에 관계가 맺어지는 과정과 사회가 유지되는 작은 연결고리들에 더 호기심을 가졌다. 뭐 아주 잠시였고 ㅋㅋㅋ몇 가지 책을 찾아보다 말았고ㅋㅋㅋ 그래서 제대로 알게 된 건 하나도 없다.

이 책은 사람이 어떻게 사회 안에서 사람일 수 있는가, 사람 대접 받지 못하던 존재나 상황에 관해 다양한 사례를 들면서 사람이 사람 아닌 존재로 취급받지 않기 위해 사회란 어떤 곳이어야 할지 풀어나갔다. 책의 구성방식이나 표현방법이 독특하게 느껴졌다. 수많은 개념과 사상가들의 주장과 역사적, 시사적 사례를 다루는데 그것들이 이야기하려는 주제와 주장에 착착 맞게 이어졌다. 책이 두껍지 않은데 설명이 명료하고 잘 읽혔다. 뭐 그래서 책 내용을 확실히 잘 이해했냐 하면 나새끼의 산만함과 집중력 저하로 헬렐레 하고 읽은 부분이 더 많다. ㅋㅋㅋ

누구나 인정 받고 싶어하고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안정감을 느낀다. 때로는 내가 가진 호감을 상대방에게 투사해 친밀도와 적정 거리를 유지하지 못했다가 개까이고 엉엉 울거나 너는 나한테 왜 이리 모지냐!하고 삐지기도 한다. 반대로 내 안의 편견과 혐오 때문에 누군가를 오해하고 배척하는 일도 자주 생긴다. 혼자 아닌 여럿이 사는 안에서 사람 시늉하면서 사는 게 이렇게나 힘들다. 일일이 이론적인 틀이나 담론을 떠올리고 적용하면서 살 수는 없겠지만, 사회 현상을 이해하고, 소외와 억압이 발생하는 이유를 알고,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더 잘못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될 책이었다. 원래 그런 거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것들에 설명을 시도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시도는 언제나 고마운 일이다. 그걸 내가 읽을 수 있는 언어의 책으로 묶어 내주는 학자, 저자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밑줄 긋기
-하지만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매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대접이다. 사람행세를 하고 사람대접을 받는 데 물질적인 조건들은 여전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전쟁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의 관계이다. 전쟁 관계에서 개인이 서로 적이 되는 것은 우발적이며, 이때 개인은 인간도 아니고 심지어 시민도 아니며 단순한 병사일 뿐이다. 조국의 구성원이 아니라 그 방위자일 뿐이다. 결국 국가는 적으로서 다른 국가만을 가질 수 있을 뿐 사람들을 적으로 삼을 수는 없다.” 루소는 여기서 병사를 시민이나 인간과 대립하는 개념으로 보고 있다. 실로 병사가 되는 순간 개인은 시민권의 정지를 경험한다. 그는 헌법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예외 지대로 들어가며-물론 이 예외 지대의 존재 자체는 헌법에 규정되어 있지만-잘못을 저질렀을 때 형법이 아닌 군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동시에 그의 인간으로서의 권리 역시 정지된다. 무엇보다 그는 우호의 권리-친교의 권리-를 갖지 못한다. 적을 인간으로 대하는 것은 병사가 결코 저질러서는 안 되는 중대한 죄이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군인들은 아무런 이야깃거리도 갖고 있지 않았다. 진흙 구덩이 속에서 죽음과 싸우며 시간이 지나가기만 기다렸던 그들의 전쟁 경험 속에는 주체성을 증명할 아무것도, 서사를 구성할 어떤 단편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학교에 다녔던 세대가 벌판에, 구름 외에는 변치 않는 게 하나도 없는 풍경 속에 던져져 있었다. 독가스가 폭발하고 죽음이 흐르는 그곳에서 그들은 왜소하고 부서지기 쉬운 인간의 몸뚱이일 뿐이었다.”

-왜 어떤 범주의 사람들-흑인, 재일조선인, 불가촉천민 등등-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럽다고 여겨지는가?
“순수와 위험”에서 더글러스는 더러움을 자리에 대한 관념과 연결시켰다.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발은 그 자체로는 더럽지 않지만 식탁 위에 두기에는 더럽다. 음식이 그 자체로 더러운 건 아니지만, 밥그릇을 침실에 두거나 음식을 옷에 흘리면 더럽다. 마찬가지로 목욕 도구를 옷장에 두거나 옷을 의자에 걸어두는 것, 집 밖에서 쓰는 물건을 실내에 두는 것, 위층의 물건을 아래층에 두는 것, 겉옷이 있어야 할 자리에 속옷이 나와 있는 것 등은 더럽다.”

-한편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오염의 메타포는 그것이 겨냥하는 대상이 지배계급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음을 함의한다. ‘더럽다’는 말은 죽일 수도 길들일 수도 없는 타자에 대한 미움과 두려움을 담고 있다. 그 말은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는 동시에, 그러한 부정이 굳이 필요했음을 인정함으로써 그의 주체성을 역설적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더러운 년’이라는 욕을 들어도 전혀 위축되지 않으며, 오히려 이런 말을 듣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고프먼은 의례의 교환에 참여할 자격이라는 측면에서 다음 세 가지 경우를 제시하는 셈이다. 의례의 교환에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면서 상대방에게 존중의 의례를 기대하고 요구할 수 있는 경우, 특정한 행동 노선을 따를 때만 조건부로 의례 교환에 참여할 수 있는 경우, 의례 교환의 장에서 배제되어 ‘탈인격화’의 과정을 겪는 경우. 여기서 뒤의 두 경우에 속하는 사람들은 성원권이 불완전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새로움을 드러내는 것은 이런저런(흙과 같은) 소설이 아니라, 근대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가장 비천한 사람도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다른 사람과 똑같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그전까지 얼굴이 보이지 않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던 사람들이 사회 안에 현상하게 되는 것은, 소설이 배양하고 확산시킨 이 새로운 상상력에 힘입어서이다.

-하지만 한 사람이 자존감을 유지하려면, 그에게 실제로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단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자존감은 아큐의 ‘정신승리법’과 비슷해져 버린다. 신자유주의의 모순은 상호작용 질서의 차원에서(즉 상징적으로)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하면서, 구조의 차원에서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단을 빼앗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신분주의와 학교 폭력의 연관성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우리 사회의 신분주의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가장 날카로운 경고음은 교실에서 나온다. ‘일진’이 더 이상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아니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교실 내의 위계는 사회의 위계를 닮았다. 가진 게 많은 아이들, 지배 문화의 요구에 가장 잘 부응하는 아이들이 꼭대기에 있고, ‘자본’이 가장 부족한 아이들이 밑바닥에 있다. 위에 있는 아이들은 아래 있는 아이들을 괴롭힌다. 별다른 이유 없이, ‘장난삼아’ 그래도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관계를 지배하는 감정은 경멸이다. 학교는 겉으로는 존중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경멸을 가르친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모욕하고, 가난한 아이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힘센 어른은 힘없는 아이들을 막 대해도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면서 말이다. 그래서 겉치레로 하는 말과 진짜 메시지를 구별할 만큼 영리해진 아이들은 자기보다 못한 아이를 경멸함으로써 학교의 가르침을 실천한다. 마치 어른들이 입 밖에 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회의 진실을 아이들이 연극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교실이라는 무대 위에서 날마다 상연되는 잔혹극. 그러니 이 연극에서 몇 명쯤 죽어나가더라도 너무 호들갑 떨지 말기로 하자. 지금 아이들은 사회에 나갔을 때 꼭 필요한 두 가지 기술-경멸하는 법과 경멸에 대처하는 법-을 익히는 중이다.

-사람을 연기하려면 적절한 무대장치와 함께, 연기를 중단하고 들어가 쉴 수 있는 무대 뒤의 공간이 필요하다. 언제나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 예를 들어 노숙인이나 재소자는 이러한 공간의 구분이 무너져 있기 때문에 사람을 연기하기 어렵다. 예고 없이 빈민가를 방문하여 ‘봉사 활동’을 하는 유명 인사들-나는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지으며 쪽방으로 기어들어가는 박근혜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다-은 시혜의 대상이 된 빈민에게 원치 않는 노출을 강요함으로써, 그들이 상대방을 동등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지 않음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 독거노인을 ‘어르신’으로 부르는 따위의 정치적 수사학이 이 사실을 감추지는 못한다.
한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다루는 또 하나의 방법은 효도나 돌봄 같은 전통적인 가치를 강조하면서 가족에게 짐을 떠넘기는 것이다. 조금 전에 생활보호 대상자를 애완동물에 비유했지만, 한국에서는 애완동물이 될 자격조차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폐지를 주워 팔면서 혼자 사는 노인이 장성한 자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초생활수급권을 얻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사례를 조명할 때 언론은 이 장성한 자녀에게 실제로 부양 능력이 있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만일 부양 능력이 있는데도 노인을 모시지 않는 거라면, 그 자녀는 ‘인륜을 저버렸다’는 비난을 받는다. 요컨대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도덕과 풍습이라는 것이다. ‘시스템의 한계’가 논의되는 것은 자녀 역시 막노동을 하거나 몸져 누워 있는 등 극단적인 빈곤 상태에 처해 있을 때 뿐이다.
간단히 말해, 한국 사회는 B와같은 사람들을 일차적으로 A의 위치로 옮겨놓으려 하며,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만 공적부조 시스템을 가동한다.

-고래들은 아무 매개 없이 동시성 속에서, 모두가 모두에게 직접 연결되어 있다. 동일한 소리의 장 안에 갇혀 있기에, 그들은 교신 대상을 선택할 수 없으며 침묵 속으로 물러날 수도 없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서로에게 청각적으로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데, 이는 언제나 상대방을 침범할 수 있고, 또 상대방에 의해 침범될 수 있음을 뜻한다. 반면 도서관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영혼들은 책을 매개로 서로에게 접근한다. 그들을 연결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소통 가능성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지평 전체를 감싸는 소리의 궁륭이 아니라, 도처에서 조용히,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교류들이다. 이 교류는 거리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혼자 책 쏙으로 침잠하는 것을 모두 포괄한다. 독서와 대화 사이에는 아무런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독서는 또 다른 대화-비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가격을 갖는다는 것은 비교할 수 있으며 대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인간은 그 자체가 목적인 존재이기에 가격을 갖지 않는다. “존엄성의 가격을 계산하고 비교하는 것은 곧 그것의 신성함을 모독하는 것이다.” 타자를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질문을 괄호 안에 넣은 채 그를 환대하는 것을 말한다. 타자가 도덕적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이러한 환대를 통해서이다. 타자는 사회 안에 그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우리의 몸짓과 말을 통해 비로소 사람이 되고, 도덕적 주체가 된다.

-...오늘날에는 누구든 자기가 원하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게시할 수 있으며, 실제와 다른 정보를 게시하는 것도 허용된다...하지만 여기에는 중대한 예외가 있는데, 젠더에 관한 정보가 그것이다. 젠더 정보를 게시하지 않거나 실제와 다르게 게시하는 것은 사회규범의 심각한 위반으로 간주된다. 물론 이 규범은 현대 사회의 작동 원리에 어긋난다. 사람의 수행이 젠더화되어야 할 논리적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길게 본다면 법적 주체의 탈젠더화 추세와 더불어 이 규범도 무너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정체성에 대한 인정은 특정한 서사 내용(“나는 레즈비언이다”)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서사의 편집권에 대한 인정이다. 우리는 정체성운동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지 못했더라도(펨이나 부치 같은 단어를 모른다 해도) 그저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행위를 통해 그러한 인정을 표현할 수 있다.(“네가 레즈비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네가 오늘은 레즈비언이라고 고백하고 내일은 그것을 부인해도 상관없다. 나는 너에 대해서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너 자신임을 인정한다”)

-부모는 아이가 자기들로부터 나왔고, 한때 자기들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잊어야 한다. 부모는 무엇보다 아이에게 생명을 준 사람이 자기들이고, 그들이 아이를 죽일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야 한다. 이 망각으로부터 사회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20-12-13 22: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런저런 고난과 역경의 학창시절을 뚫고 여기까지 잘 자라주셨네요. 멋있다!

반유행열반인 2020-12-13 22:43   좋아요 2 | URL
역경이 아니라 못난 시절이요 ㅋㅋㅋ 좋은 이웃님들의 오구오구도 제가 사람 구실하는데 기여하고 계십니다 ㅋㅋ

하나 2020-12-13 2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좋아해요. 가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라는 문장이 떠오를 때가 있었어요. 사람이 된다는 건 내가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게 아니라, 누군가가 자리를 내줘야만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게 너무 잔인한 거 같아요. 아무리 운이 좀 좋지 않았다, 나도 걔들 별로였다, 혼자인 게 오히려 편했다, 이렇게 넘어가보려고 해도 끝내 아프게 남는 지점들이 있죠. ㅠㅠ 저는 요즘 레비나스 아저씨의 ˝판단정지˝가 왜 환대의 중요한 개념일까 혼자 생각해보고 있는데요. 박찬욱 감독이 대단한 지점이 그걸 벌써 오래전부터 하고 있는 거 같아요. 너 쥐니? 너 싸이보그니? 너 박쥐니? 그렇구나... 밥 먹어...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게 환대의 시작이 맞는 거 같아서요...

반유행열반인 2020-12-14 06:42   좋아요 1 | URL
다른 곳에서도 판단정지 이야기 들었었는데 ㅋㅋㅋ 이미 우리 존재가 도수랑 색 들어가고 이리저리 휘어지게 갈린 렌즈 같아서 있는 그대로 보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이상해 보이는 것들을 더러운 것 제 자리가 아닌 것 치부하는 티를 안 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ㅎㅎ나부터 잘 하자...

하나 2020-12-13 22: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이 밑줄긋기하신 첫 줄도 완전 최애 문장 🧡

반유행열반인 2020-12-14 06:42   좋아요 1 | URL
뒤늦게 읽은 내가 따라쳤네요 ㅎㅎㅎ

scott 2020-12-13 23:3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우리 사회의 신분주의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가장 날카로운 경고음은 교실에서 나온다. ‘일진’이 더 이상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아니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교실 내의 위계는 사회의 위계를 닮았다. 가진 게 많은 아이들, 지배 문화의 요구에 가장 잘 부응하는 아이들이 꼭대기에 있고, ‘자본’이 가장 부족한 아이들이 밑바닥에 있다. 위에 있는 아이들은 아래 있는 아이들을 괴롭힌다. 별다른 이유 없이, ‘장난삼아’ 그래도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관계를 지배하는 감정은 경멸이다. 학교는 겉으로는 존중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경멸을 가르친다]

a밑줄 쫘악

열반이님 멱살 잡은 뇬 ㅋㅋ ,뻔치ω-
열반이님한테 침튀긴 뇬 ㅋㅋ, 마스크 씌우기╭┈┈┈┈╯
열반이님한테 욕을 한바가지 한 뇬ㅋㅋ 한개 바가지 ╰┈┈╯
열반인님한테 익명에 욕을 바가지로 한뇬 ㅋㅋ ╰┳┳╯대야를
상처받고 이해받지 못한 어린시절이지만 열반인님 정말 잘큰 어른,소요님 말씀처럼 여기 까지 오셨네요

한국 사회가 언어에서 부터 모든 계급과 멸시 차별 상처가 시작되는것 같아요.
존경어 존칭 모두 없애버리고 미쿡 처럼 모두 ‘YOU‘라고 했으면 좋겠어 요 ㅋㅋ
(๑•̀ڡ•́๑)


하나 2020-12-13 23:37   좋아요 2 | URL
진짜 scott님 짱 ㅋㅋㅋㅋ 같이 가요 진짜 뇬뇬뇬 다 가만두지 않겠어!!! 🔥(근데 익명으로 욕한 건 문맥상 어린 열반인님인 것 같다... 역시 훌륭 우리 열반인님은 참지않긔!!! 🔥)

반유행열반인 2020-12-14 06:43   좋아요 2 | URL
저도 멱살 잡고 욕하고 익게에 욕 달아서 같이 처맞았네요 ㅋㅋㅋㅋ 저도 존경어 존칭 빼고 이름 부르는 문화 좋을 거 같아요. 이름 부르는 게 하대가 안 되는 사회이면 좋겠네요.

페넬로페 2020-12-13 23: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세상 살면서 정말 이런 선택이 가장 어려워요~~
그냥 멱살잡고 싸우느냐!
아님 똑같은 사람 되지 않게 참느냐!
어떡하면 좋을까요?

반유행열반인 2020-12-14 06:45   좋아요 5 | URL
멱살 잡고 싸우면서도 같은 사람은 되지 않게 멱살 잡을 상대를 봐 가면서 ㅋㅋㅋㅋ나보다 센 놈이면 잡고(그러다 처맞고) 나보다 힘든 이면 먼지 털어주고 상냥한 걸 원칙 삼아 살고 있는데 그런 태도조차 뭔가 고저 따지는 거라 어렵습니다 ㅠㅠ

han22598 2020-12-15 02: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릴때 거의 쭈그러져 있었기 때문에, 반님처럼 믓지게 자기를 표현하며 싸워나가는 (^^) 친구들이 부러웠어요. 반님같은 친구가 나도 있었으면 했었어요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0-12-15 06:53   좋아요 2 | URL
별로 믓지진
않고 저도 쭈그리에 울보였는데 질질 짜면서 할 말은 하는 정도였어요 ㅋㅋㅋ잘 찾아보면 저 같은 친구 있으실 걸요?(어디? ㅋㅋㅋ여기ㅋㅋㅋ)

하나 2021-01-08 20: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얘드라~~~ (존경하는 알라딘 이웃님들..ㅋㅋ) 책은 사람 장소 환대, 리뷰는 반유행열반인님이다... 이거시 이달의 당선작! ㅋㅋㅋ 축하드려요! 우리 누나 좋으면 좋다고 말하라는 나의 충고 새겨들었군 ㅋㅋㅋㅋ 알라딘놈들..

반유행열반인 2021-01-08 20:14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왠지 떼써서 받아 먹은 느낌 난다...하나님도 페이퍼 당선 축하드려요. 나는 꼭, 하나님 글을 간직할게!!!!

scott 2021-01-08 22: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ㅎㅎ알라딘놈들 ㅋㅋ(북플 기능 넘 후짐) 열반인님 이달의 당선 추카~추카~

반유행열반인 2021-01-08 22:14   좋아요 1 | URL
scott님도 2관왕 축하드립니다!!! 알라딘놈 아니 알라딘님들 비천한 제 리뷰도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굽신굽신 ㅋㅋㅋㅋㅋ

2021-01-11 1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11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 폐지수집상. 중고책만 이백권 ㅋㅋㅋㅋ

https://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211679&custno=19405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왜 뭔가를 잃어버리면 마음이 아파? 왜 마음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렇게 아파?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11-05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5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5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20-11-05 19: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도 이거 그었죠. 피할 수 없는 문장이지.

반유행열반인 2020-11-05 19:56   좋아요 1 | URL
아팠던 사람은 그냥 지나칠 수 없지요 ㅎㅎ지금은 하나도 안 아파! 이벤트 때문에 그은 거여!!! ㅋㅋㅋㅋ
 
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01011 황정은.

지난 해 같은 날 어떤 책을 읽었는지 북플이 알려준다. 일 년 전 너는 누군가에게 건네려고 김금희의 ‘오직 한 사람의 차지’를 서둘러 읽었지만 이미 가지고 있다는 말에 도로 들고 온 적이 있다. 오늘 너는 같은 이유로 부지런히 황정은의 ‘연년세세’를 읽는다. 따라 읽고, 따라 읽어, 하며 겹치는 책을 늘려간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자꾸 두 장을 겹쳐 넘기는 착각을 했다. 페이지 수를 확인하면 한 장이다. 아무래도 평량이 높고 두툼한 종이를 썼나 봐. 마침 양장판에 두께도 비슷한 에세이를 읽고 있는데, 두 책을 비교해 보니 같은 페이지일 때 이 책이 삼십 퍼센트쯤 두껍고, 전체 쪽수는 이 책이 백 페이지 가까이 적었다. 가격은 같았다. ㅋㅋㅋ...
황정은이 건네는 문장과 이야기의 무게를 생각하면 더 무거운 물성을 부여해도 그럴만 하지 싶다가도, 조금 더 죽은 나무, 날라야 할 늘어난 무게, 몇 푼 더 지불해야 하는 누군가의 노동의 대가, 차지하는 공간의 부피, 그런 걸 생각하면 최선인가요? 하고 묻고 싶었다. (황정은 작가 팬들이 때리러 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럼에도 연작소설로 네 이야기만 묶은 것은 적절했다. 다른 단편소설집 마냥 꼭 일곱 편 내외로 묶을 필요는 없지. 완결성 독자성 책 한 권을 관통하는 여운.
(그러니까 책 무게와 두께를 줄이고 책값을 내려 달라는,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이 좋은 책을 접하게 하라는 독자의 아우성이었습니다…)

다섯 권 째 읽은 작가의 책이고, 아직 세 권이 남아서 신이 난다. 이번 소설은 많이 말하는 대신 보여주었다. 누군가의 삶이 고단한 이유에 관해 읽는 사람이 스스로 묻고 찾도록 했다.
책을 다 읽은 뒤 왠지 모르게 이순일을 가운데에 놓고 가계도를 그리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렸다. 글씨 못난 것 봐. 황정은은 작가의 말에 이 소설이 가족 이야기로 읽힐지 궁금하다고 써 놨다. 내가 한 일을 보면 나는 적어도 그렇게 읽었다. 가운데에 이순일을 놓는 이야기는, 그간 많이 부족했다. 한영진이나 한세진이 힘든 이유는, 이순일부터 잘 살기를 잘 모르면서 힘들게 겨우 살아남는 데에만 모든 힘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더 오래된 고통부터 차례차례 톺아 넘어가는게 맞지 않을까 싶었다.

-파묘
무덤을 해체하는 이들은 악의 없이 늙은 시골의 농부들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무릎이 아파 느리게 외조부 묘에 닿은 이순일을 기다려 주지 않고, 마지막 인사의 기회도 주지 않고, 묘를 파헤치고, 뼈조각을 태우고, 가루로 부숴 허공에 흩어 보낸다. 충분한 애도를 허용하지 않는 세상, 죽은 사람에게는 그저 마지막 불운일 뿐이지만, 기억과 상실을 적절히 추슬러 남은 삶을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는 가혹하다. 소리 없이 저지르는 폭력이다. 이순일이 아픈 손가락마냥 여기는 한세진만이 이순일의 곁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함께 한다.

-하고 싶은 말
이 소설 제목을 생각하는데 나도 모르게 ‘할 수 없는 말’로 자꾸 잘못 떠올렸다. 아무도 아닌, 을 아무 것도 아닌, 으로 자꾸만 잘못 읽는다고 속상?못마땅?해 하던 작가의 말이 괜시리 떠올라 머쓱….
‘너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어.’
‘거짓말.’
두 말 사이에는 간극이 있지만 나는 저 두 말을 붙여 놓고 싶었다. ‘그 모든 진짜같던 거짓말’(이건 브로콜리너마저)에 속아 ‘너무 늦었어’하며 어떤 말도 들어줄 여력 없이, 생각할 틈도 없이 노동에 지친 삶을 살게 된 한영진을 미워할 수 없었고 그저 안타까웠다. 다른 이들의 편안한 잠을 도울 이불을 팔지만 정작 이불을 파는 사람은 너무 피곤해서 제대로 눕지도 못하는 늦은 밤.
소설 합평 모임에서 K-장녀, 라는 말을 처음 듣고 저게 뭔가 했는데, 가가호호 대대손손 이어지는 장녀 희생의 서사를 여기에서 또 마주하니 입이 쓰고 썼다. 저도 장녀거든요…

-무명
눈 속에 처박힌 채 입안 가득 맛을 본 무명맛의 눈. 이름 없는 자. 제목을 자꾸 유명으로 고치고 싶어졌다. 그러면 자꾸 유명을 달리하다, 유명한 사람 같은 게 생각나서 에이 아니잖아, 했다.
순자로 살아온 이순일의 삶. 순자라는 이름이 흔한 만큼, 순종을 미덕으로 삼고 부모가 있건 없건 돌봄 노동을 위해 희생되고, 배움과 직업 선택의 기회 따위는 말살되고, 그러다가 재산을 양도하듯 배우자에게 넘겨져 또다시 자기 아이와 자기 아이의 아이를 키우다 늙는 삶이 너무도 흔하고 보편적이어서 슬펐다. 나도 그런 보살핌이 없었으면 자라나지도, 내 아이들을 키우지도 못했겠지. 그렇다면 나는 그들의 입을 막는 대신 나라도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왜 자꾸 외면하게 되는 걸까. 고통이 전달되는 걸 피하지 않고 듣고 묻고 위로하는 사람이 결국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거야.

-다가오는 것들
미아 한센뢰베의 영화 제목에서 소설의 제목을 따 왔다. 나는 보지 않은 영화이다. 뉴욕에 간 한세진이 이모 할머니(이순일의 이모)의 손녀 제이미와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는 일. 911과 세월호 참사와 탄핵촛불집회와 미군과 결혼 이민을 떠난 재미 동포들과 해외 입양 고아들까지. 하나하나 중요하고 기억해야 하는 많은 일들이지만 한 소설에 너무 많은 것들을 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간에 국가폭력, 이라는 말을 보자 문득 묻고 싶었다. 그래서, 촛불 이후 정말 그 말이 지시하는 힘과 행위와 작위와 부작위가 사라졌나요? 아직 남은 잘못들은 왜 말하여지지 않나요? 지금, 정말 정의로운 나라가 되는 중이라고 생각하나요? 왜 아직도 힘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은 넘쳐나나요? 그 이유라고, 적이라고 어딘가를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올라갔을 때 보이는 얼굴은 정말 결백한가요?
왜 갑자기 정치글 됨 ㅋㅋㅋ
하미영의 섬세함이 예민함이 되지 않고 질병이 되지 않는 세상이란, 가능할까, 행복할 수 있을까, 다가오는 것들을 너무 미워하지 않고 덤덤하게 맞이했다 다시 흘려보낼 수 있을까. 궁금함이 많아지는 소설이었다.

해를, 세대를 거듭해도 달라지지 않은 (징그러운) 것들. 이 원래 이 독후감의 제목이었는데 형용사를 빼 버렸다. 괄호 안에 그러나 우리를 망치지 못한, 같은 말을 넣거나 문장 뒤에 그러나 우리가 바꿔나갈 것들, 같은 희망적인 말을 덧붙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 소설책 안에서 나는 그런 희망을 찾지 못했다. 내가 숨은그림찾기를 못하는 놈이라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면, 잊어. 그것이 정말 비결이면 어쩌지.’ 당한 폭력과 모욕과 수모를 잊는 것 밖에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면, 정말 어쩌지.


댓글(3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버 2020-10-11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정은 작가님의 책은… 맨날 미뤄두기만 해요. 왠지 그 작가님 책은 조용한 저녁에 각잡고 앉아 읽어야 할 것 같아서요…

반유행열반인 2020-10-11 17:09   좋아요 2 | URL
용감하고 씩씩하게, 읽읍시다 ㅋㅋㅋ이 책은 (실제 중량이) 무겁지만 페이지는 200페이지가 안 되고 잘 썼고 보여주고 싶은 것도 비교적 명확해서 잘 읽히실 거에요. 더구나 기시감 심하고...(어 이거 내 얘긴데, 우리 엄마 얘긴데, 내 친구 얘긴데, 이런 얘기 어느 책에서,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봤는데.....) 그런데 절대 뻔하지 않게 썼고...

파이버 2020-10-11 17:24   좋아요 1 | URL
모두 아는 얘기를 뻔하지 않게 썼다니 소설로서는 극찬인데요. 반유행 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고 도전~ 일단 알라딘 장바구니에 넣어 둘게요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0-10-11 17:33   좋아요 1 | URL
아 갑자기 책임감 묵직 ㅋㅋㅋㅋ읽고 안 좋았다 하시면 제가 환불해드려야 할 것 같아요 ㅋㅋㅋㅋ

파이버 2020-10-11 17:39   좋아요 1 | URL
ㅎㅎㅎ 아녜요 저도 (한권밖에 안읽었지만) 황정은 작가님 호감이에요~ 환불할 일은 없을테니 안심하십시오ㅋㅋㅋㅋㅋ

막시무스 2020-10-11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쓰신 후기만으로 완독한 느낌입니다! 배송중이 책은 반송해도 되겠어요!ㅎ
인물관계도 정말 감사합니다! 뭔가 많은게 얽히고 설켜있네요!ㅎ 즐건 저녁시간 되십시요!

반유행열반인 2020-10-11 17:37   좋아요 1 | URL
반송하시면 곤란합니다! 스포 없는 글 쓰고자 했는데ㅜㅜ폐가 안 되었길.
제가 오독한 부분도 많을 테니 꼭 직접 읽어보시고 좋은 서평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시길 빕니다.

막시무스 2020-10-11 18:10   좋아요 1 | URL
별 말씀을요! 좋은 관점을 제시해주셔서 제가 감사하죠! 가족소설이 아닌 관점에서 볼수있도록 눈에 힘을 줘 보겠습니다!ㅎ

반유행열반인 2020-10-11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이 책도 문단 앞 들여쓰기 안 함..,대세인 편집 방식인가.,,,읽는데 불편함은 없었지만 예전에 작은 출판사가 그런다고 깠는데 큰 출판사도 그러는 거 보니 보고 따라했을지도....그냥 이유가 궁금함. 네모 반듯 예쁘라고? 가독성은 뒷전? ㅋㅋㅋㅋ다른 이유 아시는 분 무지렁이에게 가르침을 주세요...

반유행열반인 2020-10-11 17: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다른책(아직 안 읽은)들과 창비의 다른 책들을 펴보니 ㅋㅋㅋ작가의 책만 모두 들여쓰기 안 했다. 작가의 요청인 듯 ㅋㅋㅋ깊은 뜻을 알 길이 없네...

바람돌이 2020-10-11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는책 다 읽고 내일쯤부터 읽을텐데 저 가계도 펼쳐놓고 읽어야겠어요. ㅎㅎ 아 그리고 글씨 저에 비하면 엄청 좋으십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10-11 20:39   좋아요 0 | URL
펼치고 읽을 정도는 못 되는 솜씨고, 읽으시다가 오류가 있으면 정정해주세요!! 즐거운 독서 되시길!!!!

syo 2020-10-11 2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글씨 왜 귀여워요. 특히 ‘뉴질랜드‘ 부분이 압권이네요.

반유행열반인 2020-10-11 20:41   좋아요 1 | URL
이름마저 만수르. 탈조선 성공에 다가서 위대한 뉴질랜드에 정착 일보직전인 한씨 집안 막내이자 장남...을 귀엽게 썼군요. (독후감에 남자 인물은 너무 언급을 안 해서 댓글로 흘림...얼른 보세요 ㅋㅋㅋ갑자기 황정은 전도사 하는 중 ㅋㅋㅋㅋ)

2020-10-12 0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2 0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0-10-12 07: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게도 저장 ㅋㅋㅋ

공쟝쟝 2020-10-12 0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나 오타 대장이긴 한데 가게도 가계도 ㅋㅋㅋㅋㅋㅋㅋ 잘 참고 할게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10-12 07:42   좋아요 1 | URL
저거 다 읽고 정리하면서 그려본 거라 ㅋㅋ소설 읽을 때는 그닥 필요 없어요 ㅋㅋㅋㅋ

하나 2020-10-15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따라 읽어야지~ 가계도 저장 ㅋㅋㅋ 222

반유행열반인 2020-10-15 21:06   좋아요 1 | URL
내 글씨 부끄러워 ㅋㅋㅋㅋㅋㅋㅋㅋ

하나 2020-10-15 21:10   좋아요 1 | URL
귀여운데여 ㅋㅋㅋㅋㅋ 보조자료 믿고 저도 주문했어요!

반유행열반인 2020-10-15 21:11   좋아요 1 | URL
아 나...황정은님께 커미션을 요구해야 겠다...돈으로 말고 다른 소설 더 많이 써주시는 걸로다가...ㅋㅋㅋ 과로사 노노 만수무강하옵소서 만수르무강

하나 2020-10-15 21:1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웃으면 안 되는데 졌네요 ㅋㅋ 저는 디디의 우산부터 읽어야 돼요 친구가 자기 인생작이라고 강제 선물함.. ㅋ 저도 백의 그림자 좋았어요.(알라딘에서 열반인님이 책 젤 잘 판다!)

반유행열반인 2020-10-15 21:25   좋아요 1 | URL
저는 디디보다는 연년이 좋고, 백은 바로 옆에 꽂혀 있는데 안 보고 아끼는 중 ㅋㅋㅋㅋ누가 너무 좋았다 해서 사놓고 책등만 마냥 바라보며...

2020-11-11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5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5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나 2020-11-11 1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윳!빛!깔! 열반인님 💚 축하드려요!! 나도 우리 누나 따라서 이 책 샀음을.. 알라딘은 기억해죠요! 이쯤되면 황정은님도 커미션 받아줘야 된다~

반유행열반인 2020-11-11 15:36   좋아요 1 | URL
아이참 ㅋㅋㅋ감사드립니다. 두 달 째 받으니 이게 뭐라고 좋은데 하나님이 주시는 축하와 격려가 더 좋음 ㅋㅋㅋ 커미션 받고 다음 소설로 갚고 ㅋㅋㅋ
 
[eBook] 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00919 이언 매큐언.

욕망의 불균형, 파도처럼 부서진 사랑.

에이섹슈얼이라는 말을 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무성애로 번역되는 말로 일컬어지는 성적 정체성 안에도 복잡한 스펙트럼이 있어서 아예 성적 욕망이 없는 사람, 어떨 때는 끌리고 어떨 때는 안 끌리는 사람, 성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없는 사람, 수많은 가능성과 다양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비극은 욕망의 불균형에서 시작된다. 로맨틱한 마음으로 서로를 향한 사랑을 키웠지만, 성적 욕구에서 불균형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그것 또한 큰 비극일 것 같다. 한쪽이 (섹스하는 것 또는 안 하는 것을) 마냥 참으며 불행한 관계를 유지하거나, 결국 그 불균형 때문에 사랑도 관계도 흩어질 수 있다. 이 소설은 하룻밤 사이에 서로의 불균형을 직면하고 깨져버린 사랑을 그려놓았다.
스토리텔링에 관한 책 ’이야기의 탄생’에서 이 소설이 몇 차례 언급되어 흥미를 느꼈다. 직전 읽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몰아치는 섹스 이후 자신들이 놓인 상황과 위치 때문에 금세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연인의 이야기였다면, ‘체실 비치에서’는 풋풋하게 마음과 관계를 키워 결혼까지 도달한 두 사람이 첫날 밤 첫 섹스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망해버리는 이야기였다. 어쩌다 연달아 고른 소설들이 열탕과 냉탕을 오가네….

플로렌스와 에드워드가 어째서 잠자리 한 번 갖지 못한 채 결혼식 날 처음 (할 뻔) 하게 되었나, 하는 의문에 답하듯 소설은 시대적 배경과 두 인물의 성장 과정을 깔고 간다. 1940년대 출생의 이십 대 젊은 연인, 아직 러브앤피스-방종의 1960년대 후반까지 닿지 못한 1960년대 초반에 이루어진 결혼, 체면치레와 관습과 예의를 따지는 영국 옥스퍼드 출신 배운 사람들, 부유한 사업가 아버지와 교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바이올린을 전공한 플로렌스와 시골 마을 교장 아버지와 뇌손상으로 가족을 돌보는 연기만 할 수 있는 어머니를 보며 자라난 역사학을 공부한 에드워드의 우연한 만남과 사랑을 키운 일 년 남짓한 시간.
에드워드의 성장 과정은 지금의 모습을 이해할 만큼 제시되었다. 아픈 어머니와 쌍둥이 여동생들, 어설프지만 가족을 챙기고 아이들을 키운 아버지, 시골 가난한 집 출신이라 저도 모르게 쭈굴한 마음, 역사 연구에 대한 관심과 열정, 젊은 혈기로 벌이는 언쟁과 주먹다짐, 으아아아 결혼했다 첫날밤이다 섹스다!!! 하고 일주일 동안 자위 행위를 참는 기대감이 플로렌스의 손길 하나로 삽입도 전에 플로렌스의 몸위에 범벅쳐버리고 좌절하는 상황을 납득하게 했다.
반면에 플로렌스가 느끼는 성적 접촉에 대한 혐오는 굉장히 두루뭉술하고 희미하게 제시되었다 싶었다. 소설의 시점이 에드워드 일인칭이 아닌데도 그랬다. 아주 자세하게 그려지지는 않은 아버지와 친밀했던 어린 시절, 스킨쉽이 부족하고 거리감 느껴지는 철학 교수 어머니의 양육 태도, 음악을 향한 플로렌스의 열정 외에는 특별한 트라우마적 사건이나 종교적, 성적 억압적 분위기의 교육이나 시대상 같은 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저 혀를 넣는 키스를 비롯한 성적 접근에 대한 현재의 거부감만 반복해서 표현되었다. 경험 부족 때문인지 타고난 기질 때문인지 제시된 상황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섹스에 대한 에드워드의 갈망과 플로렌스의 완강한 저항 때문에 두 인물의 관계가 어그러지는 게 주된 갈등이었는데, 플로렌스가 그런 태도를 갖게 된 이유나 짐작할 만한 암시조차 에드워드의 성장 배경에 비해 부족하게 제시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들이 헤어진 이후 플로렌스의 사중주단이 언젠가 그녀가 했던 약속처럼 위그모어홀에서 (에드워드를 위해)모차르트의 현악오중주를 연주했던 일을 평론 형식으로 전하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찡했다. 플로렌스는 말한대로 이루었지만 에드워드는 9C석 자리에 앉아 환호를 보내기는 커녕 플로렌스가 연주회를 한 것조차 몰랐다. 에드워드는 플로렌스와 이혼?파혼?한 이후 그럭저럭 연애와 성생활을 즐기고 짧지만 또다른 결혼 생활도 경험한다. 말년에 고향에 돌아와 플로렌스가 그를 찾아오며 걷던 시골길을 산책하면서 그제서야 플로렌스와 나눈 것 만한 사랑이 여생 내내 없었음을 돌아본다.
이놈의 사랑이란, 하찮은 문제로도 쉽게 박살나는 마음이란. 어렵다.
언제부턴가 결혼이란 사랑의 완성이고, 영원의 맹세이고, 낭만적 감정의 지속과, 만족스러운 성욕 충족과, 여생의 편안함과 안정을 주는 무언가로 기대되는 것 같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수많은 이혼 커플, 남보다 못한 사이로 애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산다며 으르렁대는 부부, 섹스리스라는 말, 부부의 세계 같은 드라마, 혼외 관계를 다룬 무수한 소설과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 플로렌스와 에드워드가 거쳐간 시간은 사랑 이외의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도 섹스를 원하는 한 사람과 원하지 않는 한 사람이 서로의 차이를 깨닫는 순간 유지될 수 없는 사랑이란, 혼인/연인 관계란, 대체 뭘까 싶었다. 체실 해변의 조약돌 크기가 거리마다 달라지는 건 두 사람도 독자도 확인하지 못했다. 둘의 관계가 무너진 순간 에드워드 눈에 다르게 보이는 풍경이 마냥 슬펐다.

+밑줄 긋기

-에드워드는 강력한 개인의 무자비한 성품, 노골적인 기회주의, 그리고 행운이 수백만 명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 비딱한 결론 덕에 B마이너스라는 점수를 받아 일등 자리까지 위태로울 뻔했다.
  그런데 그가 우연히 깨달은 사실은 전설적인 성공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은 거의 없으며 단지 초조함과 고통스러운 야망을 배가시킬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곳에 손—사실 손등이었다—을 대는 것이 그녀에겐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고 또 기쁘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 엄청난 혐오감을 극복해야 했다.

-그녀가 로큰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그러니 계속 시도할 까닭도 없다는 뜻으로 그가 말하자 그녀는 순순히 인정하면서 자신이 참을 수 없는 건 드럼이라고 말했다. 곡이 너무 간단하고 또 대부분 단순한 사분의 사박자인데, 왜 이 무지막지한 쿵, 탕, 쨍그랑 하는 소리로 박자를 맞춰야 하는가. 이미 리듬 기타뿐 아니라 가끔 피아노 연주도 있는데, 도대체 드럼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연주자들이 박자 소리를 들어야 한다면, 메트로놈을 쓰면 되지 않는가. 에니스머 사중주단에 드러머를 영입하면 어찌 될 것인가. 그는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리고 그녀가 서양 문명을 통틀어 가장 솔직한 사람이라고 말해줬다.
  “그래도 당신은 날 사랑하잖아.”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당신을 사랑하는 거야.”

-그는 그녀를 등지고 돌아서서 해안선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몇 걸음 못 가고 다시 돌아와서 거칠게 자갈밭을 발로 차며 공중에 작은 돌들을 흩뿌렸고, 개중에 몇 개가 그녀의 발 가까이에 떨어졌다. 그의 분노가 그녀 자신의 분노를 일깨웠고, 그녀는 갑자기 그들의 문제가 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너무 예의발랐고, 너무 경직됐고, 너무 소심했고, 까치발을 든 채 서로의 주위를 빙빙 돌며 중얼거리고 속삭이고 부탁하고 동의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고 그럴 수도 없었다. 침묵에 가까운, 사교적인 배려라는 담요가 그들을 결속하는 만큼이나 그들의 차이를 덮어버리고 그들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제나저제나 의견 차이가 날까봐 두려워했고, 이제 그의 분노가 그녀를 그런 두려움에서 해방시키고 있었다. 그와는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그녀는 그의 감정을 해치고 싶었고 혼내주고 싶었다. 그것은 그녀 안에 깃들어 있는, 파괴의 쾌감을 향한 너무도 낯선 충동이었고, 그녀는 그것에 전혀 저항감이 일지 않았다. 가슴이 세차게 뛰었고, 그를 증오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처음 말하기 전까진 살면서 한 번도 말해본 적이 없는 이 무자비하고 경이로운 말들을 할 참이었다. 그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고, 그녀를 비난하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위엄을 총동원하고 있었다.

-“...내 말은, 바로 이거야. 에드워드, 난 당신을 사랑해,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살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그 누구도, 아무도…… 아무도 우리가 뭘 했고 뭘 하지 않았는지 모를 거야. 우리는 함께 있고, 함께 살 수 있을 테고, 그리고 당신이 원한다면, 정말로 원한다면,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당연히 그런 일이 있겠지, 난 이해할 거야, 아니 그 이상으로, 그걸 원할 거야, 내가 그러는 건 당신이 행복하고 자유롭게 되길 바라기 때문이야.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아는 한 절대로 질투하지 않을 거야.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음악을 연주할 거야. 내가 인생을 살면서 하고 싶은 건 이것뿐이야. 솔직하게 말할게. 난 단지 당신 곁에 있으면서, 당신을 돌보고, 당신과 함께 행복해하고, 사중주단과 일하고, 언젠가 위그모어 홀에서 모차르트처럼 아름다운 곡을, 그런 곡을 당신을 위해 연주하고 싶을 뿐이야.”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그의 확실한 사랑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그의 다독거림뿐이었다. 사랑과 인내가, 그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만 했어도, 두 사람 모두를 마지막까지 도왔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들의 아이들이 태어나서 삶의 기회를 가졌을 것이고, 머리띠를 한 어린 소녀가 그의 사랑스러운 친구가 되었을까.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렇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체실 비치에서 그는 큰 소리로 플로렌스를 부를 수도 있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도 있었다. 그는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이제 그를 잃을 거라는 확신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에게서 도망쳤을 때, 그때보다 더 그를 사랑한 적도, 아니 더 절망적으로 사랑한 적도 결코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그녀에게는 구원의 음성이었을 것이고, 그 소리에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을 거라는 사실을. 대신, 그는 냉정하고 고결한 침묵으로 일관하며 여름의 어스름 속에 선 채, 그녀가 허둥지둥 해변을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힘겹게 자갈밭을 헤쳐나가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작은 파도들이 부서지는 소리에 묻히고, 그녀의 모습이 창백한 여명 속에서 빛나는 쭉 뻗은 광활한 자갈밭 길의 흐릿한 한 점으로 사라져갈 때까지.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나 2020-09-19 2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놈의 사랑이란, 하찮은 문제로도 쉽게 박살나는 마음이란. 어렵다.˝ 그러니까요. 저는 이런 문장을 보고 한동안 먹먹했던 거 같아요.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그의 확실한 사랑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그의 다독거림뿐이었다.(...)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렇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이제 안 그래야지~ 누나라고 부르도록 해, 이러면서 ㅋㅋㅋㅋㅋ 좋아하는 건 가져버려야죠. 뭘 그렇게 쉽게 상처 받고 그랬나 몰라.
소설에서 플로렌스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는 것도 공감되네요. ^^

반유행열반인 2020-09-19 21:13   좋아요 1 | URL
하나님이랑 겹치는 책도 많아서 좋아요. 주로 늦게 읽기 시작한 제가 더 후발주자지만 ㅋㅋ그래요. 앞으로는 다 가져버리세요 ㅋㅋㅋ이언 매큐언이 남자라 대놓고 여자 마음은 나는 몰라 모르겠네- 하는 것 같아 조금 더 노력해서 싸보지 으이구 대작가님이 왜 이리 게으르대 하고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9-19 21:13   좋아요 1 | URL
오타좀봐봐 써보지를 싸보지래...나새끼의 리비도...죄송합니다....ㅋㅋㅋ

하나 2020-09-19 21:17   좋아요 1 | URL
아 기절할 거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미쳤어. 왤케 웃겨. 요즘에 진짜 젤 재밌는 새럼이에요. 마성의 누나야 정말.. 저는 토끼와 거북이처럼 3년 정도 쉬었읍니다. 부지런히 따라잡겠습니다 ^^ (그르게~ 나는 모르겠네 몰라~ 했던 부분이 좀 있긴 했던 거 같아요)

반유행열반인 2020-09-19 21:20   좋아요 1 | URL
참고로 쉽게 질리는 msg 같은 속성이에요...금방 시큰둥하실 겁니다... 그럼 저 혼자 힝힝 하나님 요즘 왜 댓글 안 달아줘? 하고 짝사랑하면서 울 걸요...

하나 2020-09-19 21:2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저는 괜찮아요 짝사랑도 💚 계속 지금처럼 부탁드려요 누님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9-19 21:30   좋아요 1 | URL
저야 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나님 갑자기 잠슈 타지 마시고 오래 같이 놉시다
ㅋㅋㅋ

하나 2020-09-19 21:40   좋아요 1 | URL
잠슈 안 타고 오래 있을게여 ㅋㅋㅋㅋ 누님이 계신데 어딜가요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9-19 21:43   좋아요 1 | URL
그 약속 꼭 지켜주세요...난 이거 캡쳐해 놔야겠다. 캡쳐명 지키지못한약속.jpg 안 되게 해주세요 ㅋㅋㅋ

하나 2020-09-19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저는 북플로 먼저 보고 반유행열반인님 서재는 나중에 왔는데요. 제목이 너무 좋아버려. ˝참을 수 없는˝

반유행열반인 2020-09-19 21:14   좋아요 1 | URL
저 진짜 인내심 있는 척 하면서 엄청 성질 급하고 참지 못하는 놈입니다 ㅋㅋㅋ

하나 2020-09-19 21:18   좋아요 1 | URL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 같아요. ㅋㅋㅋㅋㅋㅋ 저는 못 참는데 참는 척하다가 최근에 터져버렸고요. 정말 호밀밭의 파수꾼 홀든처럼 열다섯에 내야 됐을 거 같은 화를 지금 내고 있는데 지금이라도 해서 다행인 거 같아요. (그러고나니까 요즘 약간 분노 가라앉음)

반유행열반인 2020-09-19 21:21   좋아요 1 | URL
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참지 말고 망할 테면 망하라지 하고 자기 보전과 자기 행복과 자기 위안을 위해 사는 겁니다...(막 이러고 타락의 길로 인도함...자기 인생 아니라고 막말함...)

하나 2020-09-19 21:32   좋아요 1 | URL
캡쳐했어요 ㅋㅋㅋㅋㅋ 이따 일기에 응원의 말 코너에 옮기려고요. 맞아여 망할 테면 망하라지~ 한 번 사는 인생인데요! ㅋㅋㅋㅋ 안 착한데 참으면 진짜 병나는데

바다그리기 2020-09-19 2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감상도 늘 재미있게(혹은 감명 깊게) 읽고 있지만, 두분의 핑퐁 댓글도 너무 재미있는 건 뭐죠? ㅋㅋ
읽어야지, 생각만 하면서(괜히 혼자 부담도 느끼면서) 흥미가 더 끌리는 책들에 항상 뒤로 밀리는 책이었는데 조만간 읽어야겠네요.
얼마전 ‘밤에 우리 영혼은‘이란 책에서 말 그대로 손만 잡고 서로의 존재를 위로 삼아 한 침대에서 잠만 함께 자는 70대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읽으며 이게 정말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저는 어쩐지 이 책에서도 여주인공에게 공감(개연성이 부족하다 해도)할 수 있을듯한 느낌이 드네요.
아무튼 이렇게 또 읽어야 할 책이 한권 더 늘어서 저는 정말 기쁩니다. 정말이예요.......

반유행열반인 2020-09-19 21:41   좋아요 2 | URL
바다그리기님이 댓글 관전하셨다니 괜히 부끄러움 ㅋㅋㅋㅋ 저는 손만 잡고 살래면 놉... 여주인공 아직 너무 창창하고 자기 자신을 모르는데 참을 줄 모르는 남주인공이 바보같이 내패대기 쳤다는 생각만 듭니다...잘 달래고 서로 일신우일신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했으면 비극 아니었을 거 같다는 생각을 나이 먹은 저는 합니다....ㅋㅋㅋㅋ
기쁨 드려 감사합니다. 바다그리기님께서도 먼저읽은 책들 풀어 주셔서 제게 읽고 싶은 기쁨 주세요. 바쁘시겠지만 리뷰 남겨주세요. 꼭 꼭 ㅋㅋㅋ(떼씀ㅋㅋㅋㅋ)

syo 2020-09-20 1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섹스인건가.... 요즘 섹스에 좀 천착하고 있는 중이온데.... ☺

반유행열반인 2020-09-20 11:31   좋아요 1 | URL
어이어이 침 닦고 입 다물고 ㅋㅋㅋ섹스 안 맞아서 망한 ‘사랑’이야기입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