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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평점 :
-20230610 권여선.
나보다 20년 쯤 앞선 나이를 살고 있는 소설가의 소설을 읽으며 생각한다. 이만큼 쓰려면, 얼마나 많은 소주가 간을 씻고 갔으며, 얼마나 많은 담배 연기가 허공에 흩어졌을까. 내 편견일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완벽에 가까운 아름다운 것들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빛나는 다이아몬드 한 톨을 위해 숲은 파헤쳐지고 붉은 흙탕물과 함께 어려서 죽는 광산 노동자들이 흘러간다. 입에서 녹는 쇠고기 한 점은 누군가의 손과 땅바닥을 흠씬 적신 피웅덩이와 소의 죽음이 없다면 그것도 없다.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이 유지되기 위해 누군가의 장화와 작업복은 종일 오염물과 독한 세제로 더럽혀지겠지. 편하고 행복한 순간은 그렇게 나의 업과 죄가 쌓여 이루어진다는 생각 자체가 지나친 것일지도 모르겠다. 더럽고 힘든 시간 없이 무언가가 저절로 이루어지길 바라면 안 된다. 쉽게 쓰여진 시를 제목대로 믿으면 안 된다.
열네권쯤 읽은 걸 짚어 되돌아가다가 소설이 (이천 년 전 유실본 빼고는) 없어!!! 놀랄 일도 아닌데 놀라고선 소장본 중 최신간부터 읽었다. 네 권 째 읽는 권여선인데 이젠 잘 쓴다고 놀라지도 않는다 ㅋㅋㅋ 걸리는 것 없이 스르르륵 읽히면서도 가끔가끔 물 위에 돌 던진 것처럼 떨게 만들려면 진짜 어떻게 써야 해… 그렇게 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니까 그냥 궁금해 하지 말자 ㅋㅋㅋ 나의 할 일은 책 내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재미있게 읽는 것이다. 날로 먹는 인생이다.
어릴 때 친구따라 한 번 갔다가 내 입엔 안 맞아…하던 국수인지 수제비인지 팔던 솔밭식당이 궁금해져 검색해보니 7년 전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쓰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것들을 글이 붙들고 남긴다. 양력 1월 23일, 음력 12월 3일이 겹치는 날이 그러니까 언제였는데!!!! 작가의 나이를 계산하며 (작가랑 등장인물 동일시 해서 나이 가늠하는 게 좀 억지고 무리인 거 알면서도) 거의 사십년치 달력의 1월을 훑어 기어이 찾아내고 만다. 1985년 1월 23일이었어요!! 내가 태어난 지 39일째 날이었다. (투머치) 그냥 나처럼 궁금해서 달력 굴릴 사람 생각해서 대신 찾음… 작년 2022년 2월22일과 12월22일이 몇백년 마다 올 2가 많은 날이었다고 혼자 수학노트에 끼적이던 게 생각났다. 그런데 그 노트 그걸 잊고 버려버렸네… 사소한 것도 잊지 못하고 놓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던 삶에서 너무 쉽게 잊고 놓고 버리는 사람으로 되었다. 그건 좋은 걸까. 불행할 때마다 쓰던 일기를 거의 쓰지 않게 된 삶은 행복해졌으니 나아진 걸까. 아니 덜 불행해졌다는데 왜 그걸 묻고 난리야. 소설 읽기는 그렇게 자꾸 쓸데없는 걸 혼자 묻고 혼자 답하거나 답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좋아하면서도 자꾸 피한다.
+읽는 자, 쓰는 자, 어디서 보고 웃겨서.
+1985년1월23일(음력1984년12월3일) 하나 둘 셋, 둘이 함께 왈츠의 스텝을 밟지 못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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