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은 닭의 미래 - 양안다의 4월 시의적절 4
양안다 지음 / 난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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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8 양안다.

시의적절 시리즈를 시인의 산문집이라 생각했는데 이번 양안다의 4월은 시가 더 많았다. 하이브리드 시집 쯤 되는 것 같다. 황인찬의 7월은 작년을 안 넘기고 읽었는데 4월은 한 해 넘겨 또 온 4월에 읽었다. 역시 나의 일타는 황인찬 안다야 미안해 자꾸 이등 시켜서…
4월의 기념일과 4월이 생일인 사람들을 가끔 아니 종종 아니 자주 생각한다. 어느 4월 이맘쯤엔 벚꽃이 피었거나, 이미 잎이 났거나, 아직 피지 않았다. 올해는 잎이 쑥쑥 꽃 사이로 이미 자랐다. 꽃잎 말고 초록 잎도 사랑해주세요.
저녁에 엄마가 구워둔 달걀 하나를 까 먹었는데 나는 닭의 미래를 먹은 걸까. 나는 조류가 먼저 생겼다고 했는데 친구는 포유류가 더 먼저라고 했다. 나는 고집탱이라서 아니야 아니야 이러고 심통을 부렸다. 남은 공룡이 조류니까. 아니 파충류가 포유류보다 먼저인 건 맞는데 공룡보다는 포유류 조상이 먼저래. 쥐나 개보다는 길에서 나무 위에서 알아서 뭘 주워다 쪼아다 먹으며 알아서 지내는 새가 더 좋긴 하다. 사실 나는 개를 질투하는 것 같다. 날씨가 좋으면 목줄에 개를 데리고 걸으러 나오는 사람이 많다. 나는 목줄은 필요 없고 뭐에 채우고도 싶지 않지만 같이 걷는 건 부럽고 좋은 일이다. 개를 너무 미워하진 말자. 치킨이 더 맛있다고 개고기를 무시하면 안 되요.
그럭저럭 읽었는데, 직전 읽은 시집 보다는 밑줄 긋기도 옮겨 적기도 많이 안 했다. 그냥 시인이 내 생각처럼 영화를 좋아하고 영상처럼 시를 쓰는 구나 확인한 것 정도가 소득? 왜 소득이란 비유가 천박한 느낌일까. 얻은 점, 이라고 하면 좀 점잖아질까. 4월은 아침엔 너무 춥고 낮엔 너무 덥다. 옷을 입기가 제일 까다로운 시절 같다. 책을 고르기는 사실 까다로울 필요가 없다. 그냥 아무거나 집어다 읽으면 대체로 좋잖아. 그만 사고 있는 거나 읽자. 나는 숫자 중에 4를 가장 좋아한다. 초록색은 그만 좋아했으면 좋겠다.

+밑줄 긋기
-오후 세시의 햇빛 속에 네가 잠들어 있습니다

창문으로 새 두 마리가 아른거리고요

식물은 그림자를 키우고 있습니다

감은 너의 눈꺼풀을 열어보아도 되겠습니까

빛은 어둠에게 용서받은 적이 있겠습니까

그림자를 증오한다는 이유로 나무를 베어선 안 되어요

너는 꿈속에서도 의지가 약하고 눈물을 짜내었습니다

4월이 겨울에게 허락받은 음악은 어떤 장르입니까

너무 많은 그림자는 식물을 죽이는 것입니까

한낮은 꿈을 빛으로 물들이려고

내가 너의 꿈을 훔치려고

사랑을 하고 있네 운 얼굴 망가졌네, 새 두 마리는 노래하겠지

나는 네가 꿈을 꾸고 있는 꿈을 꾸는 중이라고
(‘낮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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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헌법은 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질문하는 사회 10
곽한영 지음, 오승민 그림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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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7 곽한영.

7번째 읽은 곽한영 선생님 책이다. 전작 쯤 되는 ‘귀찮아 법 없이 살면 안 될까?’에서 법 일반적인 내용을 다뤘다면 이 책은 헌법을 더 자세히, 친절히 파고든 책이었다.

내 전공은 일반사회교육인데, 한 학년은 이번 학기 지리를 가르치고(어린이들에게는 세계여행한다고 말한다), 또다른 학년은 인권과 헌법이 첫 꼭지이다. 인간은 어떻게 되먹은 존재인지, 많은 유머가 남을 조롱하고 비꼬고 괴롭히는 종류가 많다. 그러니까 인권 단원에서는 재밌게 하겠다고 나서기 쉽지 않다. 일단 말실수 줄이도록 엄숙 근엄 진지……어린이들에게 학기 시작할 때 오찬호 선생의 ‘곱창 1인분도 배달되는 세상, 모두가 행복할까?‘와 이 책을 권했다. 인권과 헌법 단원에서 중학생 읽기에 나름 적절해 보였다. 어떤 미친 사람이 이딴 책 운운하며 인권 같은 허접한 개념으로 뭘 어쩔 수 있겠냐고 비웃는 백자평 쓴 걸 보고 저런 인간이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자기 잘난 줄 알고 살고 있구나… 저런 마음으로 군림하는 인간들이 국민 위해 일하라 맡겨둔 권력으로 국회에 군대 보내 놓고도 국민 계몽시키려고 한 일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그냥 좋은 답변-인터넷 밈-만 해주고 싶다. 그럼 죽어- 는 심하니까 그냥 꺼지세요 정도. 얄팍한 인간의 인권이라도 보호해 드려야지 암암)

사실 당위로 하는 독서는 더디다. 헌법 관련 이런 저런 풀어 놓은 책들을 보았다. 내 읽기의 목적과 목표는 헌법학을 하는게 아니라 어린이들이 조금이라도 헌법 조항 맛보고 이게 왜 존재하고 본인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 한 번이라도 듣고 가게 하는 것이다. 나중에 억울한 일 생기면 그런 거 배웠지, 하고 기억이 안 나네? 하면서도 검색이라도 해볼 수 있게. 그러라고 온갖 청소년용 헌법 이야기 책이 나왔는데, 친절한 것도 있고 불친절한 것도 있다. 이 책은 친절한 쪽이었고 최대한 쉽고 자세하게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도움되는 부분은 밑줄을 박박 그어놨는데 다 까먹고 못 써먹을지도...어딘가엔 남겠지…

5년 전 이 무렵에는 박근혜 탄핵을 예시로 입법 사법 행정 기관과 헌법재판소까지 다뤄볼 수 있었다. 그 사이 사례 갱신된 게 놀랍구요… 이렇게까지 전직 대통령들 감방 수순 내지 임기도 못 채우고 맛가서 탄핵하는 일이 이어지는 걸 보면 대통령제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좀 돌아봐야 할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각보다 막강하다. 한 사람이 맛이 가버리면 행정부도 같이 돌아버리는데 이걸 매번 탄핵으로 막는 것도 국민들이 치르는 걱정도 비용도 너무 크고 그런데 아무도 의원내각제는 고려조차 안 하는 것 같아… 이런 말하면 차기 대통령 노리는 사람들이 너 죽어, 하고 암살범 보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뭐라고… 에라이 싸우자 독재, 싸우자 민주주의, 아무하고나 나 혼자 그림자 권투 하다가 맨날 쓰러진다. 헌법은 좋은 거지만 부족한 나는 그 좋은 것이라도 이것에 관해 반복해서 말하는 게 너무 무겁다...

+밑줄 긋기
-민주주의는 국민 모두의 믿음과 애정이 바탕이 되었을 때만 존재할 수 있는 아주 연약하고 소중한 정치 체제니까요.

-하지만 헌법상에서 양심은 단순히 착하고 좋은 마음만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내면에 지니고 있는 마음, 인격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에 가까워요.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해 스스로 내리고 있는 대답과 같은 거죠.

-헌법이 보호하려는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 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이지,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양심이 아니다. (1997. 3. 27. 96헌가11)

-우리 헌법에서 교육을 국민의 의무로 설정해 놓은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구성원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지 않으면 운영되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앞에서 민주 사회는 모든 국민들이 주인이 되는 사회라고 설명했죠? 그런데 그렇게 모든 국민들이 주인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선거에도 참여하고, 법도 지키고, 국가에서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고치라고 요구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글을 읽고 쓰는 건 당연히 알아야 하고, 다양한 사회 제도가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필요하지 않겠어요?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소양을 갖추도록 하려면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인 조건이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견제’를 하는 거예요. 그렇게 선을 넘지 않고 법과 원칙을 지키도록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다 보면 모두가 헌법의 원칙에 따르는 ‘균형’이 만들어지게 되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사람들이 독자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존재로 독립되어 있어야겠죠? ‘권력을 분립하여 견제와 균형을 이룬다’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에요.

-헌법에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독립되어 있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한 조항은 없지만 제40조에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제66조 4항에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 제101조 1항에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라고 각각 규정하고 있어서 각각의 권한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고유 권한이라고 밝히고 있어요. 그러니 이 조항들이 법치에 관한 권한을 셋으로 쪼개어 나누어 놓은 삼권 분립에 관한 조항이라고 볼 수 있어요.

-국회에서 입법권을 갖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정부가 마음대로 법을 만들어서 집행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 권한을 분리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즉, 입법권을 통해 정부를 견제하는 거죠. 하지만 입법 외에도 돈을 직접 통제하는 것 또한 정부를 견제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에요.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얼마나, 어떻게 거둘 것인지, 그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 등에 대해 국민의 대표들로부터 결재 도장을 꽝, 받아야 한다는 거죠.

-따지고 보면 헌법은 이런 ‘정의롭게 살아가려는 의지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진 문장들이 아닌가 해요. 그러므로 마치 앙금처럼 바닥에 가라앉은 그 문장들이 다시 현실 속에서 힘을 발휘하려면 고여 있는 물을 힘차게 휘젓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우리의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져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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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독후감으로 적립금 삼만원 받았다. 빌린 전자책으로 이미 10분의 1쯤은 읽은 ‘음식의 영혼, 발효의 모든 것‘은 반납 기한 내 읽는 게 불가능해 보이는데 오랜만에 흥미로운 책이라 거의 오만원 되는 책인데 적립금에다 좀 더 보태서 소장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안 두꺼운 벽돌...은근 잘 넘어가는 페이지 터너...(이거 한글로 좀 바꿔 알려주세요 한글 요정님!!!책넘김으뜸이?!!!ㅋㅋㅋㅋ책도 한자인데 망했어요)

’멸망에 투자하세요‘는 청소년 내지 어린이들 소설 같은데 제목이 다 한 듯하지만 어린이 읽어보라고, 나도 저쪽 장르?시장? 궁금해서 한 번 보려고... 오그라드는 감수성에 면역되고 싶다. 왠지 지상 최악의 소년 기분도 나는데, 그 만화책도 다 갖춰놨는데 웹툰으로 본 이후론 안 봤네...큰어린이만 읽혔네... 에효 so many books so little time...

본투리드도 나름 마음에 드는 슬로건인데 이제 진짜 리틀 타임에 폐지 왕창이라+사실 물욕이 또 건들건들해서 위의 청소년 책 포함 오만원이면 받을 수 있다는 저 로고 박힌 멀티수납 북엔드라는 것을 들이고 말았다. 책보다 저 물건 때문에 거대한 박스... 쿠폰 이천원 쓰겠다고 꼽사리 낀 샤인머스켓 젤리...(같이 팔던 망고 젤리가 더 쫀득한 편이고 이건 먹다보면 포도알의 그 흐물한 느낌 들면서도 나쁘진 않은데 젤리는 역시 망고다)

책상을 둘러보며 아...저 삼십센티 가까운 수납장 빙자한 책꽂이겸 연필꽂이는 들어갈 데가 없다... 결국 책상 위를 다 뒤집으며 나는 아이고 나새끼야, 아이고 이 호더야... 자괴감과 자책 속에 테트리스를 하며 수평으로 늘어져 있던 물건들을 수직으로 재배치하고 기어이 저 새 플라스틱 쪼가리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 냈다. 엘리베이터 독서대 두 대와 삼단 회전 책장과 서랍장1 서랍장2 안경서랍장1,2 그리고 저 북엔드인지 서랍인지 연필꽂이인지 하이브리도 뭐시기에다 책도 수십 권 내지 백여권 짊어진 내 나무 책상(원래는 식탁 출신)은 언젠가는 폭삭 주저앉아 내 무릎을 뿌서 뜨릴지도 모른다는, 저 쌓아올린 것들이 와장창 무너져내리며 태블릿이고 전화기고 스마트워치고 다 깨뜨려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자꾸만 이리저리 흔들어 보고 밀어 보고 균형을 잡으면서도 결국 쌓고 채우기를 멈추지 못하는 나는, 번뇌만 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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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5-04-06 1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궁금했는데 덕분에 실물샷 봤습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5-04-06 15:12   좋아요 1 | URL
넵 같은 걸 바깥 세상(?)에서 사려면 좀 비싸던데 알라딘 적립금 가격에는 괜찮은 선택이었어요. 다만 놓을 자리를 30센티 언저리로 확보해야 해요. 생각보다 자리 차지가 광폭(?)이네요.

새파랑 2025-04-07 0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아고타 크리스토프하고 필립로스 하고 프리모 레빙디 책이 눈에 들어오네요 ㅋ

반유행열반인 2025-04-07 20:25   좋아요 1 | URL
역시 책을 사랑하는 새파랑님 답네요 ㅎㅎㅎㅎ댓글 오랜만이라 반갑습니다.
 
HOW TO READ 사드 How To Read 시리즈
존 필립스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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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250405 존 필립스.

저자의 덧붙임인지, 역자의 첨언인지 모르겠지만 ‘함께 보면 좋은 자료’(부록?)에 사드의 저작들을 이 순서대로 권한다.

-사드를 처음 읽는 사람은 리베르탱 작품 가운데 가장 덜 잔혹한 것으로 시작하고 싶을지도 모르니, 다음의 순서로 읽도록 충고한다. ‘규방철학’ ‘쥐스틴’ ‘신쥐스틴’ ‘쥘리에트’ ‘소돔 120일’ 이외의 사드 작품은 각기 취향에 따라 어떤 순서로 읽어도 좋다. (186)

역자 선생님은 후기에서 원전 보다 친절한 이 해설서에 대해 언급하신다. 그 말씀에는 나도 동의하지만…

-이 책을 읽지 않고 사드의 글을 먼저 대했더라면 분명히 몇 장 넘기지 못하고 그냥 덮었을 것이다. 적어도 역자에게는 이 책이 사드의 원작보다 훨씬 재미있고 친절하다. 또 사드에 대한 매우 긍정적인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보부아르, 크리스테바, 들뢰즈 등 당대의 대가들이 아무리 지지했다 한들 쉽게 손에 잡지 못했을 사드의 해설서를 번역하면 재미있겠다는 용감한 생각이 든 건 순전히 저자 존 필립스의 설득력 있는 해석 덕분이다. 각 장마다 실려 있는 사드의 원문, 참고하기 위해 뒤진 사드의 원저들은 과연 읽기에도 만만찮았고, 번역하기에는 더욱 힘겨웠다. (198, 이유는 짐작이 가지만 하여간에 역자 선생님 힘드셨대….)

뭐든 거꾸로 가는 놈 답게 나는 아래 순서대로 이미 사드를 읽고 나서야 해설서를 뒤늦게 읽었다.
’소돔 120일‘(2013...와 일찍도 봤다. 그래서 동서문화사의 악명 높은 중역판 및 완전판도 아닌 것으로 추정되는 판본을...그렇지만 역겹게도 두껍더라...)
https://m.blog.naver.com/natf/221297784892

‘밀실에서나 하는 철학‘(규방철학, 2021, 민음사판. 사투리 번역이 진짜 우스웠던..지기미 죽이네유 이런 거...)
https://m.blog.naver.com/natf/222211254131

’미덕의 불운‘(2023, 이게 쥐스틴인지 신쥐스틴인지 모르겠다. 민음사판)
https://m.blog.naver.com/natf/223146766847

’악덕의 번영‘(2023, 이것도 동서문화사판만 있을 때라...소돔120일 보다도 난 이 책이 너무 힘들었다. 심장딸 시발거…)
https://m.blog.naver.com/natf/223155501988

많이 아프던 2023년 죽을 위기에서는 벗어난 뒤 그 7월에 연속으로 사드를 두 권이나 본 연유는 잘 모르겠다. 역설적으로 생을 생생하게 감각하고 싶었는가...칠조어론도 그때 봤으니 그런데 소생 득도 열반 뭐든 간에 멀었고 아마도 나중에도 안 될 거야...

국내 번역서도 제대로 출간되기 이전인 2008년에 나름 해설서로 부분 인용하면서 맛뵈기로 감질나게 했을 이 책, 소설 원문 다 읽고 난 뒤에 봤지만 유용했다. 되새김이랄까...사실 당시엔 뭐 그렇게 진지 빨고 읽지 않았고, 이 반항아 새끼 변태에다 징그러운데 뭔가 짠하다… 빌런에 이입하는 병에 걸린 나는 그냥 기괴한 서술들이 고단수의 블랙코미디로만 읽혔다. 똑똑한 또라이 변태를 감옥에 가두면 인류는 이렇게 다른 의미로 초인간적 괴물이 되는 것이다…

국내 번역된 사드를 읽어야 하느냐, 누가 물으면 굳이? 굳이??하겠지만 해설서는 그럭저럭 흥미롭고 맛뵈기로 사드에 대한 배경 지식 쌓기에 좋았다. 본게임 다 하고 이제서야 배경 쌓는 나놈은 늘 반대라 쫌 그렇지만...뉴런하다 쎈 풀고 망하는 역방향의 인생이지만… 조용필도 사드랑 이 해설서를 읽었다면 노래 가사 바꿨을 거다. 나보다 불행하게 살다 간 사드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밑줄 긋기
-사드는 무신론적 유물론을 지지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논쟁적인 발언자로서, 계몽주의의 어두운 측면을 담당한다. 그는 다른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감히 속삭일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들을 크고 분명하게 발언한다. 신은 죽었으며 신 중심적 우주가 타버린 재에서 인간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그의 메시지다. (18, 난 어둠을 맡을게. 니들은 빛이 되렴….)

-그러나 한마디로 요약해본다면 그는 최고의 회의주의자, 젠체하는 정통주의자들의 옷 솔기를 뜯어버리고 허세의 풍선을 터뜨리고 일관성 없음과 위선을 폭로하기로 작정한, 의심하는 목소리라 부를 수 있다. 실제로 독자들은 사드의 글이 풍자적이고 아이러니하거나 패러디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자주 발견할 것이다. 사드는 철학적 논쟁에서의 의도적인 트집쟁이이며, 그의 작품에 나오는 지독하게 극단적인 문장은 무신론적 유물론의 논리를 극단적 결론에까지 밀고 나가기 위해 고안된 전법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 (19)

-자신의 장점(정직성, 감수성, 자비심, 자선, 아내와 자식, 친척, 친구들에 대한 사랑)을 죄다 늘어 놓은 뒤 후작은 이렇게 계속한다. “나의 악덕에 대해 말하자면, 통제할 수 없이 화를 잘 내는 데다가 온 세상이 일찍이 보지 못한 종류의 도덕관을 갖고 있고, 광신적일 정도로 무신론자이니, 단 두 마디로 다시 한 번 말해보자. 나를 죽이든가 아니면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든가 하라. 난 절대로 바뀌지 않을 테니까.”(56, 드 사드 부인에게 보낸 편지, 1783, 이런 고집불통, 그런데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 여기는 구나...자존감 무엇...)

-...그 행간에서는 진짜 사드가 항상 드러난다. 그 사드는 규칙을 준수하기보다는 위반하려는 성향이 훨씬 더 큰 사드였다. 결국 그의 지속적인 명성은 그의 작품이 관례적인 문학적 기준에 어느 정도까지 들어맞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이 문학적, 예술적 규범만이 아니라 도덕적 규범과 가치를 어느 정도까지 전복하는 것으로 간주되는가 하는 데 근거한다. 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카터가 지적했듯이, 사드에게 모든 예술은 오로지 “기존 질서의 영구적이고 사라지지 않는 전복”이다. (102, 전복죽 지난 주에 엄마가 해줬다.)

-과잉이란 인간을 인간 이상의 존재로 만들어줄 지배력의 잃어버린 차원을 찾아내어 인간적으로(또는 초인간적으로) 가능한 한계를 끝없이 확장한다는 뜻이다. 과잉은 모든 기대를 넘어서며, 과잉은 리베르탱이 계속 위반하도록 강요되는 항상 움직이는 경계선이다. 신체적, 도덕적, 종교적 규범과 규칙을 위반하는 데서 가능한 것은 오직 향유 뿐이기 때문이다. (107-108)

-...사드는 동시대인들에게 선한 일을 하려는 충동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악한 행동이 따라 나올 수 있다는, 받아들이기 힘든 견해를 직면하라고 강요하며, 그들에게 최근의 정치적 소동 속에서 새로운 공화국이 얻은 권위의 출처가 바로 그것이 행한 한 가지 불법적이고 끔찍한 행위, 즉 국왕의 참수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사실 ‘쥐스틴’ 기획 전체는 로베스피에르와 같은 덕성에 대한 비타협적인 헌신이 얼마나 쉽게 참혹하고 피비린내 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구상되었다. (127, 피 흘리지 않는 권력 교체를 생각하면 그래도 세상은 진보했다고 믿어야겠지...그런데도 이 구절은 현대 정치에도 왠지 오버랩된다. 내가 나빴네 어디 감히 민주주의를 깔라고)

-쥐스틴 본인은 결코 그런 일을 하도록 허락되지 않지만, 우리는 서술의 그늘에 숨어 그녀에게 공감하면서 독자들에게 윙크를 보내는 저자의 존재를 알아볼 수 있다. 마치 ‘당신들은 이 이야기가 실망스럽겠지. 하지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렇지 않아’라고 말하는 듯이. (129-130, 가끔 이런 메타적 농담 버무린 표현 재밌다.)

-당황하고, 그런 배은망덕함에 굴욕감을 느끼고, 너무나 혐오스러운 일을 당했지만, 그래도 더 나빠질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달아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만족한 이 불운한 아이는 신에 대한 감사를 중얼거리면서 성문을 지나 큰길로 이르는 길을 내려갔다. 그곳에 거의 닿았을 때 하늘에서 번쩍이는 벼락이 떨어져 그녀를 때렸다. 번개가 그녀를 관통한 것이다. (…) “빨리 와요, 부인. 와서 하늘이 한 일을 보라고요. 하늘의 힘이 경건함과 선함에 어떤 보상을 내리는지 봐요. 덕성을 사랑하라고 말들을 하지. 그런데 그 가장 헌신적인 추종자에게 하늘이 어떤 운명을 마련해두었는지 봐요.” (131, 쥘리에트 일부 인용. 난 이걸 미덕의 불운인지 악덕의 번영인지에서 봤는데 하여간에 개충격적인 전개였다. 이 짓궂은+지독한 사드 새끼, 했던 부분)

-사드의 인간이 자신을 낳아서 신도 없고 적대적인 우주에 떨어뜨려 놓은 자연을 용서할 수 없다면, 혹은 자연의 공범자 행세를 하는 여성을 용서할 수 없다면 모든 여성의 대변인인 어머니와 비슷한 쥐스틴에게 인간의 상징적인 비출생의 장소만큼 더 어울리는 죽음의 장소가 달리 있겠는가. (134, 이전 이후 인용 부분은 이거 읽을 사람들의 안위를 위해 안 옮길 건데 이걸 이렇게까지 해석하냐 싶긴 했어…)

-17세기와 18세기의 코미디와 멜로드라마에서 그날 공연의 결말을 최후의 순간에 해결해주는 기계장치의 신(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들어 있는 연극적 관습이 여기서는 전면적으로 도치되어, 구조의 주체이던 어머니가 오히려 구조의 대상이던 딸의 제물이 되어버린다. (161, ‘밀실에서나 하는 철학’ 결말 보면서 저렇게 외제니 엄마 능욕하고나서 다들 밥 먹자! 하는 새끼들 보고 진짜 질렸던 기억이…)

-하지만 사드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무엇보다도 이런 것보다 덜 특정적이고 더 널리 퍼져 있는 것, 즉 광신주의가 증식되는 시절에 종교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가리지 않고 건강한 회의주의를 지닐 수 있는 재능이다. 푸코에게 사드는 고전 시대와 근대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존재였다. 그의 작품은 낡은 군주제와 귀족 세계, 또 그것을 지지했던 종교적 신념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총체적으로 제시할 뿐 아니라, 어떤 형태든 혁명 이후의 모든 독재주의가 끌어들이는 위험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이는 그의 동시대인 어느 누구보다도 더 멀리 나아간 비판이다. (178, 저자님 사드 못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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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에서 우리는 K-포엣 시리즈 12
양안다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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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4 양안다.

우연히 예전에 소설 강의 듣던 문화센터 커리큘럼을 살피다 오, 양안다 시인이 이제 여기서 시를 가르치는구나, 나 다니던 때는 황인찬 시인이 강좌를 했었는데. 나의 원탑 투탑 시인들은 이래저래 열심이구나. 아주 잠시 시 강의를 듣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기초반은 평일 열한시야...그리고 나는 시를 써 본 적도 시를 쓸 생각도 없다. 그럼 다시 소설을? 하다가 아직은 쓰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걸...당장은 아무 것도 안 하고 싶어...아무 것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걸 하고 싶어… 했다.

작년 4월에 나온 양안다의 산문집을 읽는 중인데, 5년 전 나온 시집이 어쩌다보니 끼어들었다. 시각장애인 복지관에 딸려 시각장애인 바리스타가 음료를 만들어주는 카페를 좋아한다. 음료가 싸고 맛있다. 작은 도서관이 연결되어 있는데, 점자 책도 제법 있고, 아르코 나눔 도서 선정된 책들도 비치되어 있다. 언젠가 그 책들을 훑다가 이 시집이 있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어느 날은 그 시집을 다 읽을 때까지 딸기 말차 라떼를 쭉 빨아 먹는 것이다. 자주 보이는 어르신의 목소리를 벌써 익혔다. 다른 시각장애인들과 안부를 나누고 안 보인지 몇 년차인지, 복지관에서 무슨 활동을 하는지 (헬스도 하고, 드럼도 치고, 이렇게 친교활동도 하고) 서로 묻고 답한다. 의사소통을 목소리에만 의지해야 하는 사람들은 말을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한다. 비언어적 단서가 없으니 어투에 담기는 표정도 조심스러울 것 같다. 그래서 다들 말을 유독 곱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좁은 공간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틀어두고는 있지만 말을 또렷하게 크게 하며 나누는 대화는 저절로 귀에 꽂힌다. 그러면서 시를 읽고 있으니 시인에게는 건성으로 읽었냐! 하고 미안할 일일까…

이 시집은 이전에 읽었던 최신 시집들보다 조금은 덜 난해했다. 주제도 일관되어서 연작 시 보는 느낌도 들었다. 망한 세상이라도 너, 라고 할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난 덤덤히 망함을 받아들일 것 같은데. 너, 가 망함에 너무 빠져 나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있다면 또 슬플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시들을 읽을 때는 눈뜨고코베인의 노래 두 곡이 떠올라서 한 번씩 들어봤다. 마음에 드는 시들을 통째로 아니면 조각으로 옮겨 적었다. 여기에다 산문집(시의적절 시리즈는 시도 섞여 있으니 엄밀히 말하면 하이브리드 시집 쯤 되겠네)까지 이달 안에 읽으면 나 양안다 팬 맞지 않냐… 황인찬의 ‘구관조 씻기기’, 양안다의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 이렇게 두 권만 사둔 채 안 읽고 있는데, 민음사에서 나온 밀란쿤데라의 ‘커튼’도 그렇게 묵히다가 할배 돌아가시고 나서 읽었는데 이건 뭐 내가 쟁인 시집 읽기도 전에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래도 내 곁에 너, 들이 끝까지 우리, 라고 말해준다면.

https://youtu.be/72gnaqACh6k
내년엔 납골묘를 만들어
여기저기 흩어진 묘들을
이장할 생각이다
그래야 너희들도 편하겠고
나도 죽기 전에
그것만은 하려고 한다

아버지 납골묘 아래에
내가 먼저 들어갈 건데요
(눈뜨고코베인 ‘납골묘’ 가사 중. 위의 영상에는 건강하던 시절의 내 친구가 드럼을 치고 있어서 조금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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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을 사랑하는 건 신과 우리 뿐일 거야. 세계가 망가지는 건 우리와 무관한 일. 우리는 우리의 사랑과 서사에 전념하면서. 모든 게 기울어지고 있어. 어쩌면 너의 눈앞에서 춤추던 내가 쓰러질 수도. (‘영원한 밤’중)

-우리가 그곳으로 향할 때. 끝나지 않는 눈길을 걸으며. 어떤 빛을 발견하기 위해. 나는 생각했어. 우리에겐 집이 필요해. 낙하산과 에어백, 혹은 울타리라는 이름의 노래와 발목에 묶을 밧줄. 나는 누군가의 마음으로 추락하는 게 사랑이라고 믿었는데. 네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눈의 비명을 들었다. 우리는 하얗게 질리도록 걸었지. 숨쉴 수 있거나 숨을 수 있는 곳으로. 지평선을 향해 점으로 작아지면서. 무한해. 지평선은 닿을 수 없이 멀어지고. 우리는 무한한 발자국을 남기고 눈보라는 우리의 발자국을 지우잖아. 너의 입김은 어느 설국에서 부르는 노래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줄게. 너를 만나기 전의 일. 그러니까 내가 지금보다 작고 작은 영혼이었을 때. 그때 나의 마음은 그저 투명했다는 생각. 물을 만지면 푸른색에 잠기고 꽃밭을 걸으며 총천연색으로 물들기도 했지. 지금은 마음을 잘라 단면을 살펴보아도 핏빛이다. 그때 꾸었던 꿈과 지금의 꿈은 왜 다른 걸까.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듣고 있어? 우리가 그곳에 도착할 때. 그곳에는 집, 낙하산과 에어백, 울타리라는 이름의 노래와 발목에 묶을 밧줄조차 없을지라도. 표현할 수 없는 공허. 혹은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불. 갈증을 삼키려 퍼먹던 한 주먹의 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게. 듣고 있어? 아직 잠들기 이른 시간이야. 너는 두 눈을 옆으로 길게 찢으며. 웃었지. 나는 너의 어깨를 흔들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눈을 감지 말라고.
(‘세계의 끝에서 우리는’ 전문)

-다음엔 새가 되고 싶어. 너는 말했다. 새가 되면 가장 높은 나무만 골라 앉을 거야. 흔들리는 나무를 찾아오면 나를 만날 수 있도록. 저 멀리 숲길을 걷는 아이들이 보였다. 문득 비가 쏟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너는 말했다. 너는 불이 되어야 해. 불이 되어서 가장 높은 나무만 골라 태워야 해. 내가 널 찾지 못하도록.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합의했다. 꿈에서 나는 타오르고 있었다. 불 속으로 날아드는 새가 보였다.
(’암전‘ 전문)

https://youtu.be/j0dI6Iz7_XA
세상은 너와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이유로)
폐업을 선언하고 모두
사라져버렸네 (남았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얼굴을 붉히고)
세상엔 우리 밖에 없다는 걸 알고
옷을 벗기 시작했네
(…)
아주 오래된 약속
아주 오래된 맹세
너와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있었던
그 약속을 기억해볼까
아주 오래된 약속
아주 오래된 맹세
너와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있었던 그 이야길 반복해볼까
(눈뜨고코베인 ‘종말의 연인’ 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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