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망원시장 - 여성상인 9명의 구술생애사
최현숙 외 지음 / 글항아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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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7 최현숙 외.

내 부모도 장사를 했었다. 시장 안은 아니고, 시장 바깥에서 멀지 않은 사거리, 터미널로 가는 길에 있는 가건물이었다. 아빠가 귀금속 세공사 일을 했었어서 금은방을 했다. 빚을 내어 보증금, 인테리어비, 진열할 물건들 떼어오는 값으로 써서, 원래부터 겁이 많고 불안도가 높은 아빠는 매일 가게를 접자고 엄마를 들볶고 결국에는 조현병까지 걸렸다. 아빠가 아픈 동안 엄마가 가게를 혼자 운영했다. 작지만 고가의 물건이라 도난, 강도, 부도수표 지불, 반지계 파토, 외상값 미회수 등 이런저런 일이 많았다. 그렇지만 최고의 재앙은 정신질환 호전 이후에도 하루종일 나가 술먹고 놀다 들어와 깽판치고, 세콤(도난방지설비)이 잘 안 된다고(꽐라되서 자꾸 문잠그는 타이밍을 놓침) 셔터 문을 마구 발로 차고 엄마를 때리고 언어폭력을 행사하던 아빠였다.

엄마는 자기 성격과 맞지 않던 장사를 하느라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점심 도시락을 싸다가 나르고, 아빠가 안 오면 혼자 문을 닫고, 술취한 채 문을 닫겠답시고 혼자 발광을 떠는 아빠 탓에 주변 사람들에게 창피하고. 아빠는 손님과 자주 싸우고, 싸게 팔아도, 비싸게 불러 못 팔아도 난리를 떨었지만, 엄마는 물건을 사지도 않을 거면서 가게 쇼파에 들러붙어 박카스를 얻어 먹거나 커피를 타달라고 하는 아빠 지인들, 주변 상인들에게 마음에도 없는 친절, 요새 말로 감정노동을 했다. 결국에는 그 사람들이 잠재적인 손님이었으니. 1994년에 가게를 열어서 2007년 아빠를 떠나 서울로 올 때까지 13년 간 30대 후반에서 50 직전까지 장사하는 엄마를 지켜봤다. 그런 탓인지 내가 장사할 일은 꿈도 안 꿔 봤고, 실제로 형태가 있는 재화를 파는 일은 안 해 봤다. 대신 용역? 서비스?를 팔고 있읍니다...

대부분 50대 언저리인 망원시장의 여성 상인들의 생애를 구술한 것을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의 제자 작가들이 인터뷰해서 정리한 책이었다. 그래서 글마다 완성도나 가독성, 반복되는 말이나 내용 여부가 편차가 좀 있었다. 그리고 구어체로 쓰여 있으면 잘 읽힐까 했는데, 나새끼 남의 말 경청 못하는, 사회 지능 부족… 오래 더디게 읽었다. 읽던 거 먼저 읽자 하고 새로운 책 펼칠 엄두를 못 냈더니 독서 자체가 더뎠다. 힘든 한 주이기도 했다.

2018년의 여성 상인들은 온갖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지만, 그래도 먹고 살 정도는 되고, 스스로 쌓아올린 지금의 모습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삶에 대한, 자기가 몸담은 시장이라는 장소에 대한 긍정과 애정도 공통으로 엿보였다. 그렇지만 삐뚤이 나놈은 장사 잘 안 되고 힘든 상인들은 인터뷰에 응하려 들지도 않았겠지… 장사 못해 먹겠다 싶어도 이걸로 책이 나가고 내 얼굴과 이름이 나간다 생각하면 어느 정도 미화되는 부분도 있었겠지… 이 정도면 고통 서사 중독자야… 행복하고 편하고 좋다고 하는 걸 보면 못 믿거나 전체 구성원의 일부 표집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어딜가도 불행을 조금씩 남겨 놓고 사는 놈의 눈은 그렇다.

내가 사는 관악구 지역 상인들의 이야기였으면 조금 더 이입해 봤을 듯하다. 반대로 망원동 근처에 살거나 인근을 많이 돌아다녀 지리를 아는 사람들은 책을 읽는 동안 시장의 모습이 눈에 선하고, 왠지 시장 한 번 더 가서 상인 분들 여전히 잘 지내시나 궁금해서 아케이드 안 이곳저곳을 기웃대기고 뭘 사기도 할 것 같다.

책으로나마 다른 종류의 노동을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읽는다. ‘뭐든 다 배달합니다’, ‘까대기’, ‘편의점 인간’(여긴 좀 많이 이상한 놈이 나오긴 하지만), ‘골목의 약탈자들’(여긴 주로 자영업자들 등쳐먹는 놈들이 많이 나온다) 같은 데서도, 그외 작가, 분식점, 부동산, 판매원, 여러 소설과 에세이에서 다른 삶을 엿본다. 과학자들이 쓴 책에서는 과학자의 삶을 봤구만… 그러고보니 선생 이야기는 많이 읽지 못했던 것 같다. 의도적으로 교육에세이 같은 거 피해서 그럴 수도 있고… 나도 학교 생활 적당히 픽션으로 재구성해서 뭘 쓸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 귀찮다… 어른들의 요구는 칼 같이 자르는데 아이들 앞에서 약자가 되는 나는 아무래도 직업을 잘못 골랐다.(친구는 나에게 최악의 상대는 악한 약자라고 했다. 말도 참 잘 골라.) 별 수 있냐 그냥 살아야지… 시장 언니들처럼 긍정 연대 협력 투쟁하면서 살 수 있을까… 됐다. 너무 애쓰지 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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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마포구에서 여성건강 사업 한다고 설문지를 돌리는데 질문에 ‘당신은 아픈데도 참고 일한 적이 있습니까?’하는데 나 거기서 볼펜을 멈추고 있었잖아요. 이걸 내가 어떻게 써야 되나. 나는 늘 아프거든요. 365일 다 아파요. (91, 노동의 고통.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이나 몸이고 마음이고 다 아프다.)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이 최고로 편해. 내가 뭘 안 했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 40대에는 “내가 장사는 왜 하나. 여기서 뭐하는 건가?”그런 생각으로 한참 힘든 적이 있었어. 애들이 다 크고 집안이 편안해지니까, ‘아, 지금이 참 좋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해. (123, 40대에게 괴로워도 존버하면 50대엔 편해, 하는 느낌. 지금이 좋긴 한데 편하지 않은 저는 버틸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그녀는 현명하다. 이제와서 그녀의 삶이 불이익을 받았고 계급의 불평등이었다고 우긴들 무슨 소용일가. 행복했다 생각하는 긍정의 힘 앞에 계급적 논리가 무슨 소용일까. (153, 그러니까 종교든 정치든 우상이든 자부심이든 뭔가를 사랑하며 행복해하는 어르신들의 산통을 깨는 대신, 투쟁은 아직은 불행한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하자..곧 만41이 될 난 늙은이인가 젊은이인가 아리까리하다만. 투쟁 안 하려고 늙은 척하는 듯)

-우울은 좌절에서 온다. 내가 충분히 나로서 살지 못할 때, 세상이 내게 나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요구하는데, 이를 거부하지 못할 때 우리는 자신을 세계로부터 닫아 건다. (271, 가사에 갇혀 있을 때 우울증에 시달리던 한 상인은 시장 일을 시작하고 시장 사람들과 나이트클럽에 놀러 다니면서 우울감이 가시고 성격도 변했다. 일을 하는 사람은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다면 내패대기 치고 싶고, 이런저런 이유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일하기를 꿈꾼다. 해도 안 해도 우울과 좌절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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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 거야 - 작고 찬란한 현미경 속 나의 우주
김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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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4 김준.



예쁜꼬마선충에 대한 연구자들의 책은 ‘벌레의 마음’을 이미 갖춰두고 있었다. 얇고 표지 예쁘고 아마도 과학자가 쓴 에세이라는 것 말고는 책 정보가 별로 없던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 거야‘를 먼저 폈다. 그런데 이 책이 예쁜꼬마선충 연구하는 과학자가 쓴 것이었다. 본의 아니게 새치기 하고 만 책…

자신의 연구생활과 연구대상인 예쁜꼬마선충에 대해 애정을 담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는 책이었다. 주60-80시간 연구노동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연구 안 하길 잘했다가 아니라 난 잘 못했을 것 같다… 결과가, 성취가 가시적이지도 단기적이지도 않는 일에 오래 매달리는 일에는 아직도 미숙하다. 아마 평생 미숙할 것 같은 급한 성질의 나놈아…

일터에서 많이 힘들고 상처입었다. 내 말은 다 무의미했고 사람은 변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을 변화시키라는 요구를 받으며 나는 일을 한다. 잘못하는 사람들은 늘 자신만 그런게 아니고, 자기는 억울하고,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고 주장한다. 피해를 입고 상처 입고 울게 된 사람들이 있는데, 그럼 그건 누구의 짓일까? 나는 무력감에 감정을 폭발하고 울었다. 더는 나에게 이 짐을 지게 하지 마소서. 누가 들어줄까. 이번 생은 망했다.

예쁜꼬마선충으로 태어난 것보다는 나로 태어난 게 더 나은 일인지 자신할 수 없다. 쟤들은 그냥 짧은 순간 열심히 알을 낳고 조금 살다 죽는다. 그렇게 무수히 벌레들이 이어진다. 사람 사는 것도 상대적으로 보면 찰나일텐데, 벌레들도 그 짧은 기간 나름의 고충도 고통도 있겠지. 그렇지만 짧게 겪을 거라 생각하면 나보다 못하다고 못하겠다. 한국 좋아졌다 하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꾸준하고 끈질긴 과학자 책 읽어놓고도 왜 이런 마음인지. 오늘 하루가 힘들어서 아니 이번 한주가 한달이 한해가 그랬겠지. 모두가 힘들텐데 사람은 자신의 힘듦 말고는 잘 들여다 보지 못한다. 이 책을 보면 남의 힘듦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런 힘든 일일지라도 거기에서 재미와 발견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좀 부러웠다. 나는 내 일에서 재미도 감동도 없다. 도망칠 궁리하다가 실패했다. 다시 도망칠 길이 있나 이것저것 찾아봤지만 답이 없었다. 내 마인드셋의 문제인지 환경과 맥락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다 문제겠지. 내 문제는 컴퓨터로 코딩해 돌리는 연구과제들보다 답이 없어 보인다.

다 읽고나서 과학자가 꿈이라 과학고에 가겠다는 한 어린아이에게 이 책을 주었다. 오늘 힘들어서 펑펑 운 내가 불쌍했는지 어린이는 주섬주섬 하리보 곰돌이 젤리를 꺼내서 내게 주려고 해서 마음만 받겠다고 했다. 찰나의 위로였지만 이게 내 일의 지속할 기운을 주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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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의 염색체는 대부분 양 끝이 노출된 실처럼 생겨서 이 양끝이 망가지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책의 시작과 끝이 표지로 덮여 있는 것처럼, 염색체도 양 끝이 특정한 덮개(텔로미어)로 보호되어 있다.
그런데 때로는 이 덮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떨어져나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자연히 염색체 끝부분이 망가지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마치 표지가 뜯겨진 책의 낱장이 점차 흐트러지는 것처럼 염색체도 죄다 망가질 수 있다. (…) 다행히 표지가 뜯겨나간 뒤에도 염색체라는 책이 한 방에 찢겨나가진 않았다. 어떻게든 새로운 덮개를 다시 수선해서 붙이려는 시도가 생겨났고, 너무나 얇지만 끝을 덮을 수 있는 1만자가량의 얇은 덮개가 생겨났다. 그런데 이걸론 부족했던 것 같다. 이 얇은 문자 덮개 끝에, 염색체 안쪽에 있던 20만자 정도 되는 좀 더 두꺼운 부분을 끌어다가 새로운 덮개로 삼으려는 시도가 다시 한번 있었다. 덕분에 이 염색체 끝은 표지가 한 번 뜯겨나간 흔적만 남긴 채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었고, 그 뒤에야 다시 원래 쓰이는 튼튼한 덮개가 염색체 끝부분에 씌워지게 됐다. (157-158, 하와이출신 예쁜꼬마선충의 염색체가 다른 동네 애들과 다른 이유를 책에 비유)

-염색체란 정말 튼튼해 보이지만 사실 자주 끊어진다. 망가진 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계속해서 끊어진 부분을 때우고 수선해서 회복시켰을 뿐이다. 이 과정을 거치며 돌연변이가 생겨나고 다양성이 생겨나며 진화가 일어날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긴다.
사람 사는 것도 비슷하지 않겠어? 인생이라는 실타래도 매순간 끊길 듯 위태롭지만 결국 어떻게든 이어지고,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성장할 수 있는 것 같다. 열심히 살기 정말정말 싫지만, 살아남으려면 별수 없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159, 으으으 가혹한 체험 진화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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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 - 나를 이루는 원자들의 세계
댄 레빗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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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3 댄 래빗.

‘저 별은 어떻게 내가 되었을까’라는 책을 읽고, 번역 제목에 낚였다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이번에 읽은 이 책 ‘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가 먼저 읽은 책 제목이 이끌어낸 궁금증을 푸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온 과학 분야와 이사람 저사람 쫓아다니지만, 다행히도 이 책 읽기는 재미있었다. 같이 읽던 ‘날마다 천체물리’, ‘오늘의 화학’,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 거야’와 겹치는 부분이 제법되는데, 그렇게 같은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준 걸 반복해 읽는게 잘 까먹는 나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원제 ‘what's gotten into you’는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너 왜 그래?’ 라는 뜻이라고 번역기가 알려주었다. 야, 우린 왜 인간인 거냐…어쩌다 이렇게 됐냐…하는 질문과 그 답을 구하는 과정은 빅뱅부터 물질(원자, 아원자, 더 작은 놈들까지)의 탄생, 별의 탄생, 태양과 지구의 등장, 혜성과 소행성의 기여, 남세균, 식물의 등장과 광합성, 우리가 먹는 것(탄단지 말고도 미네랄에 비타민 까지), 세포를 부수고 갈아 원심분리, 또 원심분리, 분리…한 끝에 알아낸 수많은 세포 안의 부품과 기계들(그 유명한 미토콘드리아 말고도 여러가지)까지, 그 모든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실수도 하고 고군분투하고 그래도 끝내 남이 하다만 것 이어 받아 우리가 지금 알게 될 것들을 알아낸 수많은 과학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이 책 안에서 펼쳐졌다. 문장 너무 긴데, 이 책도 그렇게 길고도 스릴넘치게 숨도 못 쉬고 이어진다.

표지는 까치가 까치해서 처음 책 펼 땐 크게 기대 안 했는데, 천체물리, 생물학, 화학, 의학, 온갖 과학 분야를 넘나들며 비유와 재치를 곁들여 내가 어떻게 나인지 (모든 답을 구한 건 아니지만) 설명하려고 애써준 재미있는 책이었다. 제목에 원자 들어가고 표지에 분자 알갱이 같은 이미지 그려져 있으니까 괜히 화학에 국한될 것 같지만, 통섭적이고, 나같은 무지렁이도 어렵지 않게 (가끔 어렵긴 함) 과학의 역사를 훑으며 생명의 기원과 그걸 유지하는 힘까지 맛보게 해 주었다. 사실 다른 과학책들 이거저거 많이 본 가락이랑 수능 생명과학, 지구과학에서 주워본 것도 있겠지만, 그 내용들을 이렇게 한 책으로 엮어 두니까 읽기에 신이 났다. 읽어 봐…과학 좋아하면 읽어 봐…안 좋아해도 읽어보세요… 오늘부터 까치의 알려지지 않은 좋은 과학책 홍보대사 (맘대로) 할랍니다. (일단 바이탈 퀘스천 부터 읽고 올래?)

어차피 한 권 읽는다고 제대로 이해 못하니까, 미친놈처럼 쌓아둔 과학책들 마저 하나하나 읽어가며 반복, 또 반복, 변주, 합주, 그렇게 즐거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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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우리 몸과 주변의 모든 물질에게 우주가 탄생한 날이라는 궁극적인 생일이 있다는 정말 이상한 사실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된다. (12-13)

-훗날 그(르메트르)는 “우주의 진화를 불꽃과 재와 연기를 남기고 끝나버린 불꽃놀이에 비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완전히 식은 재 위에 서서 태양이 희미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의 기원에서 빛나던 광채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26, 팽창 우주가 허블이 아니라 르메트트르가 최초 발견한 이론이었다니...천체물리학자 프레드 호일이 그에게 빈정대며 붙여준 별명이 ‘빅뱅 맨’)

-겔만이 우리와 세상 만물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를 발견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 몸에는 비어 있는 공간도 대단히 많다. 우리 몸이 단단한 고체라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다. 사실 우리 몸의 99.
9999999999999퍼센트에는 아무것도 없다. 원자에 들어 있는 빈 공간의 바다도 엄청나게 크다. 수소 원자의 핵을 테니스공 크기라고 생각하면, 수소를 구성하는 전자는 1.6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돌고 있는 셈이다. 전자, 양성자, 중성자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을 모두 없애면 당신의 몸은 큰 먼지 한 톨보다도 작아진다. 전 인류를 각설탕 1개에 넣을 수 있을 정도이다. (57-58, 그렇다면 우리 존재는 여백의 미)

-그녀(세실리아 페인)는 훗날 자서전에 “나는 내 발밑에 깊은 구덩이가 생기는 것을 보았다. 나는 여교사로서의 삶이 ‘죽음보다 끔찍한 운명’이라고 생각했다”고 썼다. 다행히 그런 끔직한 운명은 실현되지 않았다. (61, 워워...죽을 뻔 해보니 죽는 것보단 나아요… 끔찍한 운명을 벗어나려면 조금 더 똑똑했어야 했다…)

-우리의 행성은 평화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내부 태양계에서는 어쩌면 달과 화성 크기의 천체 수백 개가 롤러 게임처럼 서로 부딪히고, 서로의 궤도를 교란하면서 뒤엉켜 있었다. 일부는 태양에 충돌하기도 했다. 다른 행성들은 가장 큰 행성인 목성 쪽으로 튕겨 나갔다. 충돌하지 않은 천체들은 목성의 강력한 중력에 의해 궤도가 흐트러져서 태양계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그런 사이에 지구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거대한 암석과 미니 행성 안에 갇힌 우리의 불행한 분자들은 수많은 격렬한 충돌을 겪게 되었다. (86, 지금 시기의 안정이 어쩜 찰나의 평화일지도 모르겠다. 우주는 근본적으로 혼돈의 캐아스. 급팽창하고 충돌하고 뒤섞였다 잠시 모였다 빵 터지고)

-혜성은 탈락했고, 소행성이 남았다. 그것으로 충분해 보였다. 우리 몸에 있는 물은 우주에서 날아온 거대한 암석에 의해 지구로 전달된 것이었다. 끝.(121)

-아래쪽의 마그마에서 계속 분출되어 대기 중으로 공급된 수증기에 의해서 수천 년이나 수만 년 동안 비가 쏟아졌다. 판 구조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시기에는 지구에 높은 산이나 깊은 분지가 없었다. 비가 멈추면서 수심이 1600미터가 넘는 바다가 지구 전체를 둘러싸게 되었다. (125, 지구의 물은 여러 곳에서 왔다. 물의 출처는 먼지 입자에 응축되어 지구 내부에 갇혀 있던 것, 혜성, 오르트 구름, 소행성-대부분의 물)

-그(타운스)는 웰치에게 “자신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타운스의 남다른 철학은 최고 수준의 물리학자와 엔지니어들과 함께 수행한 연구의 경험에서 얻은 것이었다. 그는 전문가가 어떻게 자신의 지식 때문에 눈이 멀 수 있는지를 직접 보았다. 그들은 양자물리학이나 증폭기의 작동 원리처럼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은 잘 알지만, 때로는 자신들이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는 간과하기도 했다. (150)

-폼알데히드는 사체 보존에도 사용하지만, 우리 몸에서도 매일 42그램이 생산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52, 그래서 우리가 안 썩고 버티는 것인가)

-잉엔하우스는 프랭클린의 피뢰침을 지지했다. 당시에는 악인에 대한 신의 형벌을 인간이 감히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피뢰침을 반대하는 성직자가 있었다. (193, 저런, 사드의 미덕의 불운을 안 읽으신 분이군-착한 쥐스킨트가 벼락 맞아 죽고 끝남)

-남세균이 죽으면 여전히 그곳에 갇혀 있던 퇴적물이 스펀지와 같은 질감의 탑을 만들고, 그 위에 새로운 남세균 깔개가 자라게 된다. 원시바다에서도 그런 박테리아가 똑같은 방법으로 월컷의 크립토존을 만들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그리스어의 스트로마(층)와 리토스(바위)를 합친 스트로마톨라이트라고 부른다. (228)

-그러나 남세균은 단순히 성가신 존재가 아니라 지구 역사상 가장 체제전복적인 유기체이다. 지질학자 조 커슈빙크는 언젠가 기존의 생태계를 완전히 전복시켰다는 이유로 남세균을 미생물 볼셰비키라고 불렀다. 박테리아의 조상은 미네랄을 먹을 수 있는 곳에서만 살았지만, 광합성을 하는 남세균은 물, 공기, 햇빛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살 수 있었다. 멀고 넓은 지역으로 자유롭게 퍼져나갈 수 있었던 남세균은 그 이전의 다른 유기체와 달리 지구를 식민지화할 수 있었다. 이 순진한 혁명가는 일단 퍼지기 시작하자, 식물과 인간의 출현을 가능하게 해준 수많은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229, 반역자 남세균이라니 매력터지는 미생물)

-지능에 대한 트레와바스의 정의는 단순했다. 그는 어느 이메일에서 “유기체가 위협적이거나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 처했을 때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행동을 수정한다면, 그것이 바로 지능적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식물은 구조 변경을 통해서 특정 신호에 반응한다”고 설명했다. “그것이 자신들의 생존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식물이 어떻게 그렇게 할까? 식물은 무엇을 평가할까? 동물의 경우에 그것을 지능이라고 부른다면, 생물학적 측면에서 행동의 특성은 동일하기 때문에 식물에서도 그것을 지능이라고 불러야만 한다.” (277, 2003년 발표된 ‘식물 지능의 양상’이라는 용감한 논문에서)

-식물이 죽더라도 그 속에 들어 있는 원자는 죽지 않는다. 원자는 토양, 바다, 퇴적암, 대기와 다른 생물에 의해서 재활용된다. 따라서 우리의 영혼이 환생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몸에 있는 원자는 크고 작은 여러 유기체에서 전생을 보냈던 것이 분명하다. (286, 그러니까 다음 생엔 뭐가 될지 두근두근)

-그러나 일단 충분한 양의 단백질을 축적했다면, 더 많은 단백질을 먹더라도 근육을 늘리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순히 지방이 더 많아질 뿐이다. 안타깝게도 더 많은 근육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다. (302, 정말? 싶어서 ai에게 물었다. 부분적으로만 맞다고 한다.
• 단백질은 1.6~2.2g/kg 수준까지는 근성장에 매우 중요.
• 그 이상 먹는다고 근육이 더 잘 붙지는 않음 → 이건 옳음.
• ‘운동이 없는 근성장’은 거의 없음 → 이것도 옳음.
• 하지만 “남은 단백질은 전부 지방으로 간다”는 식의 단순화는 틀림. 남는 건 칼로리이지, 단백질 자체 때문이 아님.
• “충분한 단백질을 축적했다”는 건 단순히 필요량을 충족했다의 의미일 뿐.)
-우리 몸의 각 세포는 지구에 도달하기 전 우주를 떠돌던 약100조 개에 달하는 방대한 수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섭취하는 이 거대한 원자 덩어리가 어떻게 생명으로 도약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DNA, 단백질, 리보솜으로 귀결될까? 아니면 우리 세포에 들어 있던 죽은 원자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메커니즘도 필요할까? (367, 알베르 클로드라는 벨기에 학자가 알려줄 것이라 한다…그런데 아직도 만날 과학자가 더더 많이 남아 있었다…)

-이탈리아의 의사 카밀로 골지가 처음 발견한 골지체Golgi apparatus라는 얼룩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이 실제 구조인지 아니면 염색 과정에서 생긴 인공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369-370, 여태까지 몰랐다… 골지가 이탈리아 사람 이름이라는 게 충격이다…뭔가 골판지 같은 느낌이었는데)

-미토콘드리아는 양전하를 가진 양성자인 수소 이온을 이용해서 내부 막에 전위차를 만든다. 그 전위차는 1피트당 1억 볼트로 번개만큼 강하다. (382, ‘미토콘드리아’ 읽었는데 양성자 뭐 나온 것 같은 느낌적 느낌만 남은 나야…왜 읽니…)

-미토콘드리아는 당의 에너지를 사용해서 전력망을 구축한다. 양성자 전기가 정교한 분자 기계에 동력을 공급하고, 그런 기계가 돌아가면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연료를 공급하는 작은 배터리가 계속 충전된다. (384, 내 몸에 가득한 발전기, 빳데리)

-우리 몸에서는 매 초마다 과거의 박테리아 수천조 개가 세포막을 가로질러 양성자를 퍼내서 ATP를 만드는 회전형 모터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한다. 우리는 1분에 약 3분의2파인트의 산소를 흡입해서 그런 모터를 계속 돌아가게 하고, 그 덕분에 미토콘드리아는 100와트 전구만큼의 에너지를 생성한다. (385, 베껴도 베껴도 질리지 않는 몸 속 발전소와 배터리의 메커니즘)

-그들은 신경의 전류가 양전하를 가진 소듐과 포타슘 이온에 의해서 생성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하를 가지고 있어서 이온이라고 알려진 이 분자는 신경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빠르게 이동하지 않는다. 그 대신 축구 경기를 응원하는 사람들처럼 파동을 일으킨다. (…) 축구 팬이 팔로 옆 사람의 팔 움직임을 유도하듯이 그런(이온이 밀려 들어오거나 빠져나가는) 변화 때문에 인접한 통로가 열리게 된다. 소듐과 포타슘 이온이 막의 안과 밖을 오가면서 신경을 따라 이동하는 전하의 파동을 전파한다. (386, 생명과학 할 때 지겹게 맞춰야 했던 막전위 초 재기, 이동 거리, 속도…축구 응원 비유 참신한데 이걸 알았대도 저건 퍼즐에 산수라 여전히 못했긴 했겠다.)

-우리가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생명은 1000조 개에 가까운 소듐-포타슘 펌프에 달려 있다. 그러나 소듐-포타슘 펌프가 없으면 우리는 생각은 커녕 포식자로부터 도망치지도 못하고, 생명을 유지할 수도 없다. 그것이 바로 소금으로 알려진 염화소듐을 맛있다고 느끼는 이유이다. 우리가 먹는 식물에는 포타슘은 많지만, 소듐은 많지 않다. 몸속의 전하를 유지하려면 하루에 한 티스푼보다 조금 적은 양의 소금이 필요하다. 수렵채집인은 육류에서 소금을 얻었지만, 농경인은 별도로 소금을 섭취해야 했다. 소금 통에 들어 있는 소금 덕분에 우리는 손가락을 꼬고, 귀를 만지고, 생각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387, 덜 짜게 먹는다고 너무 부심 부리지 말아야 겠다…)

-오히려 세포는 끊임없는 움직임을 이용해서 생명을 창조한다. 끊임없는 충돌이 세포 안과 바깥으로 분자를 밀어내고, 단백질의 모양을 바꾸고, 효소의 이동을 도와준다. (390, 생명의 본질은, 에너지는 내부의 무수한 충돌…내면의 잔잔함을 바라는게 애초에 무리였을지도)

-그(폴 애버솔드)는 우리가 한두 달마다 탄소 원자의 절반을 교체하고, 매년 전체 원자의 98퍼센트를 교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391, 지금의 나는 작년의 나랑은 확실히 다르긴 하다.)

-평균적으로 우리는 10년마다 세포를 교체한다. 하루에 3300억 개의 세포를 갈아치우는 셈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작동하는 세포가 더 자주 교체된다. 강한 산에 노출되는 내장의 세포는 손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커서 계획적인 자살을 통해 이틀에서 나흘마다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 긁히거나 자외선에 노출되는 피부 세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교체된다. 혈류를 따라 돌아다니는 적혈구는 120일마다 교체된다. 매초마다 거의 350만 개의 적혈구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뼈와 같은 곳에 있는 다른 세포는 10년에 한 번 정도로 그 빈도가 낮다.
따라서 우리 몸의 세포는 신뢰할 수 있는 기계를 사용하는 것 이외에도 끊임없이 오류를 점검하고, 수리하고, 계속 교체한다는 세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다. (392-393, 신상을 좋아하는 부지런한 우리 몸)

-생물학자 닉 레인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뇌와 심장이 우리를 늙어서 죽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우리 몸의 일부 세포는 대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394, 아이참 닉레인 아저씨 이 책에 꽤나 자주 등장해서 ‘바이털 퀘스천’도 조만간 읽긴 해야 할 듯…)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원자가 끊임없이 교체되는 불꽃에 더 가깝다. 우리는 죽을 수 있지만, 원자는 죽지 않는다. 원자는 생명체, 토양, 바다, 하늘을 화학적 회전목마처럼 돌고 있다. (…) 또다른 기본적인 수준에서 보면, 우리는 빅뱅과 별이 만들어낸 원소들의 일시적인 집합체일 뿐이다. 우리는 주기율표에 포함된 132종 남짓한 원소 중 약 60종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 (400, 118개라고 안 하는거 보니 앞으로도 더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원소가 넉넉한 모양이다…원소에서 안 그치고 아원자 입자, 양자장, 파동, 우리는 우주와 하나, 계속 뻗어나간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미생물 조상, 즉 우리의 위대한 고모나 삼촌과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같은 주제를 가진 변형일 분이다. 린 마굴리스가 지적했듯이, 우리는 미생물이 무성하게 자란 거대한 군집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상의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 몸 안에는 별에서 온 원자로 만들어진 수백 가지의 특수한 세포들이 박테리아가 감히 할 수 없는 특별한 방식으로 서로 협력하고 대화한다. 영성과 우주의 본질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도 그런 경우이다. (405, 박테리아도 우리의 친구지예-하고 겸손 떨다가 그래도 우리는 위대해! 우주와 세계와 우리 존재의 근원을 이해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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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4 18: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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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4 18: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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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4 19: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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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 무너뜨리기 - 세상을 지배하는 가부장제의 교묘한 작동 원리를 파악하고 해체하는 법
캐럴 길리건.나오미 스나이더 지음, 이경미 옮김 / 심플라이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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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30 캐럴 길리건, 나오미 스나이더.

어릴 때 나는 혼자였다. 나는 내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우연한 (알 수 없는) 때에 벗어날 수 있었다. 제법 이른 시기였고, 그것은 어느 정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대가가 있었다. 권위/권력/폭력으로 내리누르는 압박과 회유, 별종 취급을 당하며 무리에 속하지 못하는 (아마도 그들이 벌칙처럼 내리는) 소외, 정보 비대칭, 외로움.

이 책은 그 두 가지(관계냐 목소리냐)를 맞바꿀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구조가 가부장제라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또다른 사람들은 권력과 지식의 복합체가 그랬다고 할 지도 모르겠다. 내 독서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무엇이 제일 잘 들어맞는다고 주장할 정도는 못 되지만, 일단은 이번에는 가부장제가 잘못했다, 하는 목소리를 들어보기로 했다.

책의 번역은 말하는 것을 듣는 듯하게 -입니다체로 되어 있었다. ‘부당함에 맞서기’세미나를 계기로 캐럴과 나오미가 이 책을 쓰게 되었다. 둘은 주고 받듯 스스로의 경험과, 경험하게 된 다른 이들의 이론이나 주장과, 연구 중 만나게 된 다양한 사례가 된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의 목소리를 겹겹 쌓아 나갔다. 성별, 인종, 계층 등 다양한 교차성을 불문하고, 모두가 가부장제의 피해자가 되는 과정과 결과를, 관계를 위해 자신의 욕구와 목소리를 희생했지만 결국 그 때문에 제대로 관계 맺지 못하는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프로이트의 주장(애도와 분리의 인정을 성숙하고 건강한 반응으로 봄)을 뒤집는 분리에 대한 존 볼비의 주장이 특히 흥미롭게 읽혔다. 모두가 선천적으로 애착의 욕망을 가진다. 그 욕망을 채우지 못한 채 애착 대상을 상실하고, 관계 맺은 이들과 분리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마주할 때 점점 절망으로 나아가는 전개가 제법 내 일상의 고민과 들어맞는 부분이 있었다.

가만 보면, ‘낙화’니, ‘님의 침묵’이니, ‘진달래꽃’이니, 이별과 한을 다른 나아감으로 승화하는 작품들을 문학사에서는 꽤 높은 것으로 친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사실 여성의 목소리를 흉내낸 남성 시인들의 것이다. 대개는 크게 슬퍼하고 통곡하는 소리를, 곡비의 일을 천하고 약한 여성들의 것이라며 격하한다. 헤어짐이나 빼앗김에 분노를 터뜨리는 설정의 대중 예술 속 여성을 호감있게 보는 사람들은 신선한 것으로 여기고, 비호감으로 보는 사람들은 질척거리고 의존적이라고 비난한다. ‘삐딱하게’의 상실 후 막나가는 남성의 분노는 멋지게 보고 공감하지만, 여자 가수들의 이별 노래는 헤어진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거나(‘작별‘), 이 기회에 새롭게 달라져서 후회하게 만들거라 하거나(’보여줄게‘, ’배반의 장미‘), 더 좋은 다른 사람을 만나겠다고 다짐하거나(‘Go away‘), 꺼지라고 하거나(‘I don‘t care), 주체성 있다고 하는 노래들도 기껏해야 상대에게 복수하겠어- 하는 정도이다. 내가 대중가요를 많이 몰라서 이 정도밖에 못 읊는 걸 수도 있다. 언니들이 부르던 노랫말을 만든 사람이 내가 꼽은 곡중 딱 한 명 제외하고 다 남성들인 건 우연이라 할지 내가 그런 것만 고른 건지 판단하기에는 사례가 너무 적긴하다. 좋은 이별이란 게 있긴 해? 화사(언니인 줄 알았는데 나보다 11살 어리다… 아 시간이란…)가 굿 굿바이 하긴 했다만… 아, 내가 착각했는지도. 예나 지금이나 대중예술이나 서사에서 저항은 펑크와 락이 잠깐 시끄럽던 시절을 제외하면 설 자리가 없는 촌스러움일지도 모르겠다.

캐럴은 가부장제를 민주주의와 대비되는 용어로 사용한 다. 그 점이 신선했다. 독재, 파시즘, 전체주의(다 비슷한 소린가), 중우정치, 신자유주의, 제국주의 등을 대척점에 세운 경우는 많이 봤지만 가부장제를 그 반대편에 놓는 건 내가 책을 너무 안 봐서 그런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또 자신을 잃고 사랑을 잃고 목소리를 잃게 만드는 이즘이라면, 그건 민주주의에 가깝진 않을 것 같다. 혹시라도 잘 몰랐는데 그런게 민주주의라고, 대의와 정의를 위해 잃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많은 사람이 말한다면, 난 패대기 칠 거다 그런 민주주의 따위… 그러니까 유교 민주주의 같은 소리는 제 앞에서는 치워 주시구요...

책 후반부에 가자 지구와 이스라엘의 갈등을 화해로 바꾸길 바라며 많은 여성이 모였던 이야기를 언급하는 부분은 감동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같은 여성들조차 짜치게 만들 언어도 있었다. ‘우리는 여성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어머니입니다.(182), ‘우리는 어머니이며 간접적이라 하더라도 권력과 관계를 맺고 있으니 사실 발생하는 일에 관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길을 가로막지 않았으며(…, 183). 베껴둔 글 말고도 어머니 타령이랑 성경 속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딸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그에 대해(사라에 대한 부분) 쓰지 말라는 사람들도 언급한다.

모든 여성이 어머니는 아니다. 모든 여성이 어머니가 되길 원하지는 않는다. 모든 여성이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책에서 모성이라는 말을 한 번이라도 언급한 적은 없지만, 돌봄의 윤리에서 처음 알게된 캐럴 길리건이 말하는 돌봄이 그런 어머니들의 뭔가라면 자기들이 발딛고 선 부채꼴 각도를 너무 날카롭게 좁혀버리는구나 싶었다. 어머니냐 아니냐 가지고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고… 비혼과 기혼과 미혼이 서로 여성의 적이라며 헐뜯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그런 의도가 저자한테 없었더라도 여성 대표를 자처하면서 어머니성으로 좁혀버리는 건 논쟁의 여지가 있다. 여성이냐 아니냐 가지고 싸우다가 너넨 우리편 아님 하고 LGBT+ 일부를 배척하는 상황도 슬프구만… 전쟁 반대는 옳지만,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라는 명분은 고귀하지만 너무 좁다… 인간과 여성을 너무 좁혀 버린다.

책은 기대했던 것보다 좋았고, 읽으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었다. 그래서 별 다섯을 주려다가 후반부에 캐럴의 일부 서술에 좀 짜게 식어서 하나 뺐다. 나오미가 미투 운동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리뷰해주며 경청과 지지의 가치에 대해 언급하고 마무리한 건 도움이 되었다. 트럼프 1기 시절, 2018년에 나온 책을 2025년에 읽는데 아니 그 트럼프가 또, 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지난한 싸움에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버티고 있을까, 그 목소리들이 무엇에 묻혀 내게 닿지 않을까(아마도 내 게으름? 내 불안? 무지?) 싶었다. 그래서 뒤늦게라도 읽을만한 책이었다. 그런데 표지디자인도 마케팅용 카드뉴스도 별로 안 끌리게 만들어놔서 그런가, 많이 안 읽힌 것 같아서 유감이다. 필요한 담론이, 논쟁이 널리 퍼지려면 자본주의가 열일해야 된다는 게 역설이구만...


+밑줄 긋기
-즉 가부장제는 관계란 어차피 틀어지고 회복할 수 없는 것이라 단정 지으며 그 관계를 희생양 삼지요. 달리 말하면 심리적으로 상처 입혀서 심리적 ’이득‘을 얻는 셈입니다. 따라서 피할 수 없고 참을 수 없다고 여겨질 상실에 취약해지지 않으려고 우리는 정말 원하는 것, 즉 사랑을 처음부터 회피합니다. (29)

-관계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으며, 가까이 있을 때도 있고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있지만 언제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멀리 가버릴 수 있다는 위험을 알기에 안정된 관계를 확보하려면 친밀해져선 안 된다는 사실도 알았지요. 아무것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뿐이라는 논리 말입니다.(51)

-소녀들은 자신의 솔직한 목소리,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는 주체적인 목소리를 누군가가 “어리석고”, “유난스럽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점점 속마음을 감추게 됩니다. 관계를 맺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것이죠. (53)

-(볼비는) 애착을 인간이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평생 달고 다니는 욕망이라 설명하고 자아와 타인 간의 거리 두기, 분리는 관계의 상실에 적응하지 못해서 나오는 반응이라고 봅니다. 모든 관계 안에 건강한 성장의 씨앗과 가장 고통스러운 트라우마의 씨앗이 공존한다는 그의 말에 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볼비는, 관계를 잃은 후에는 심각한 부상을 당했을 때 몸이 고통스러운 것처럼 마음 역시 고통스러운 상태에 빠지므로 방어벽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이런 방어벽은 회복할 수 없이 망가진 관계에서 우리를 지켜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적응과 파괴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친밀함과 관계 맺을 가능성에서 자신을 배제하고 타인이나 자기 자신에게 해를 끼치게 되지요. (76-77)

-캐럴은 관계의 상실을 받아들이라는 압력이 너무 커지면 건강한 저항이 심리적 저항의 형태로 바뀌면서 자아와 타인과의 연결선을 끊어버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행위라 여겨지니까요.(77)

-일단 거리 두기 단계가 시작되면 우리는 돌봄이나 인간적 연대를 향한 염원을 부인하고 그것과 인연을 끊습니다. 관계에서 멀어질 때 발생하는 상실에 대처하기 위해 자기중심적이 된다거나 사람보단 물질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 것으로 보상받으려 하지요. 이것은 볼비가 ‘강제적 자기 의존’이라 부르는 전략입니다.(…) 거리 두기에 익숙해진 사람은 관계를 향한 열망과 잃어버린 대상이 뒤섞여 생긴 그림자에 정신 상태가 어둡게 가려진 상황이라고 보면 됩니다. 거리 두기를 하는 사람은 사랑을 향한 열망이나 상실의 고통을 품고 있다가 무의식 속으로 밀쳐버립니다. 따라서 그것이 관계를 형성할 능력을 압도하며 유령처럼 떠도는 그림자가 된 것도 모릅니다. (84-85)

-캐럴은 타인을 자애롭게 돌보라는 여성스러움의 명령이 관계 맺기를 막는 장애물이라고 말합니다. 여성스러운 돌봄을 구현하려면 자아를 가져선 안 되기 때문이지요. 자아 없이 돌봄을 행하면 자기 목소리를 갖지 못하게 되고 자신의 경험, 생각, 감정, 욕구, 신념을 신중하게 생각하지 못하게 됩니다. 자아 없이 소위 이타적으로 돌보기만 하는 자를 여성스러움의 아이콘으로 혹은 이상형으로 떠받드는 가부장제 문화는 여성에게 ‘관계’를 위해 진정한 관계 맺기를 포기하도록 부추깁니다. 자신이 관계에 몰입하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돌보는 것은 진정 불가능한 행위입니다. 달리 말해 돌봄을 받는 이와 관계를 맺지 않고 돌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지요. 가부장제는 돌봄의 행위에 필요한 지성과 능력을 무시하면서 돌봄 행위자가 저임금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102-103)

-그들은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질문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푹 빠져 자신이 정작 포기했던 자아를 대신 발견해줄 이성애자 남자’를 갈망합니다. 반복해서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밀레니엄 시대 여성들과 내가 암묵적이건 명시적이건 끊임없이 들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들을 메시지, 즉 여성은 자신의 욕구를 부정함으로써 타인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충족한다는 말을 생각합니다.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적당히 타협한 자아 개념은 보다 강력한 타인을 인정하고 그를 사랑함으로써 복원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3)

-자유를 얻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은 남성이 수치스럽다고 여긴 감정을 다시 각성하도록 부추길 수 있습니다. 남자가 되면서 감추어야만 했던 사랑과 연민에 대한 절실함 말이죠. 이런 시각에서 보면 페미니즘을 향한 포격과 반발은 여성이 해방되면 현재의 지위와 권력, 명예를 잃을 것이라는 남성의 두려움을 반영합니다. 게다가 여태까지 남성이 어떤 식으로든 부인할 수 밖에 없다고 느껴왔던 욕구를 어떻게 여성이 대신 담아내고 감추는 역할을 도맡아 왔는지 드러날 것이 뻔하지요. 이런 의미에서 폭력 및 폭력의 위협은 취약성과 갈망이라는 수치스런 감정을 추방하는 방법이 되었습니다. 또한 여성을 떠나지 못하게 막으려는 절박한 시도이기도 했고요.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과 관계 맺은 여성의 경우 그녀를 가장 큰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는 그를 떠나는 것입니다. (106, 우리 아빠를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상실을 강요하고, 항의를 수치스러워하고, 공명을 왜곡함으로써 가부장제는 우리를 항의에서 절망으로, 절망에서 거리 두기로 이어지는 길 위에 서게 합니다. 즉 거리 두기라 함은 가부장제 문화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다 보면 생기는 병리적 상황에서 활용하는 심리적 방어 전술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파국을 맞은 관계를 회복하는 데 필요한 우리 내면의 능력과 우리 자신을 분리시키는 기제이기도 합니다. 관계의 파탄은 결국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등 온갖 형태의 억압을 의미하므로 결국 그런 부당한 구조까지 지속시키는 것이지요. (142)

-관계에서 일어나는 상실은 사실 문화적 각본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기에 여기에 맞서 항의하다 보면 어떤 구조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 구조는 상실을 보이지 않게 만들거나 당연한 것 혹은 필요한 것으로 몰아감으로써, 회복할 수 없는 것으로 몰아감으로써 이것을 보존합니다. (151)

-민주주의는 일상적인 저항의 영역에 존재했습니다. 내 의견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를, 내 욕구가 충족되기를, 내 소망이 고려되기를 주장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부당함은 철학적이거나 추상적인 이슈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저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줄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건 어쩌면 타인이 가진 것을 갖지 못할 때 얼마나 억울하고 부당하게 느껴지는지를 내가 잘 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행위는 그저 올바르다고 여기는 것을 행하고 나를 포함해 내가 관심 가진 사람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자주 말하는 “그건 공정하지 않아요”라는 외침이 이게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가? (154)

-그들은 소녀들에게 실제로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말하지 말고 타인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잘 살펴보라고 조언했습니다. 소녀는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다른 성인 여성에게 제지당한 채 성인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 여성들은 말함으로써 치러야 할 대가와 말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이득을 알고 있지요. (160, 그런 성인 여성의 위치에 놓이고 싶지 않았어요...그렇지만 벗어날 수 없었고... 정교한 척하지만 사실은 허술한 기계의 부품일 뿐인 나...)

-내가 던진 질문(“정말 그렇게 생각해?” 또는 “그것이 왜 궁극의 악몽인가요?”)은, 자존감을 무너뜨려 소녀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아내의 외도를 최악의 상황이라고 여기도록 남성을 세뇌하는 가부장제 각본에 던진 문제의식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질문을 던짐으로써 깊이 묻어두었던 목소리가 드러났습니다. 그런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논쟁거리인 바로 그 목소리를 밖으로 해방시키도록 공명한 겁니다. 나는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이 구조 때문에 수치스러움으로 낙인찍히고 침묵의 늪에 빠져 영영 돌아오지 못한 목소리가 얼마나 많은지 금세 깨달았죠. 또한 객관성 혹은 중립성을 지킨다는 명분이 연구에 적용되어 가부장제를 유지하는 데 이바지하는 경우가 허다하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168)

-관계를 맺으려는 인간의 욕망 그리고 인간에게 꼭 필요한 관계 맺는 능력을 생각해봅니다. 위계질서를 만들어내고 이를 유지하려면 이런 능력이나 욕망은 제지하고 억압해야 할 표적이 됩니다. (171, 1984가 생각났다)

-볼비가 설명한 대로 상호 호응이 전제되지 않는 관계가 난무하는 환경에서는 거리 두기가 오히려 그 상황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전략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부장제 문화에 다양한 방식으로 적응합니다. 관계에서 거리를 두거나, 자족적이고 독립적이며 타인이 필요치 않은 것처럼 행세하거나, 아니면 자아가 실리지 않은 목소리를 내거나, 욕구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조차 없어 보이도록 하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이 명예롭다거나 선하다고 말하지만 내면으로는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172)

-우리가 말할 때 어떤 반응이 오는지, 우리가 하는 말이 타인과 공명할지 아니면 메아리 없이 사라질지에 따라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하게 될 것이 결정됩니다. 내가 한 말이 공명을 얻지 못하거나 왜곡된 상태로 돌아온다면 진심이 전달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므로 타인과 연결되어 있지 않음을 절감할 뿐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할 자신의 능력까지 의심하게 됩니다. (174, 사람들이 에이아이로부터 정서적 위안을 얻는다면, 그건 같은 말을 비스무레하게 반복해서 응답하더라도 그것이 덜 왜곡된 채, 공명을 얻었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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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화학 - 엉뚱하지만 쓸모 많은 생활 밀착형 화학의 세계
조지 자이던 지음, 김민경 옮김 / 시공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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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9 조지 자이던.

원제 Ingredients가 어째서 ‘오늘의 화학’으로 탈바꿈했는지는 모르겠다. 전에 읽은 ‘우리 집에 화학자가 산다’ 저자 선생님이 번역을 하셨고 화학 얘기도 많이 나오긴 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미국화학학회의 책임 프로듀서를 맡은 요즘 말로 과학인플루언서다.

책의 2/3까지는 제법 흥미롭게 넘어가다가 p값 나오고 통계, 연구방법론, 확률 계산 이런 거 나오기 시작하면 좀 급격하게 흥미가 떨어진다. 나는 양적연구하는 교수님 쪽으로 지도교수님을 옮겼다가 통계 수업 몇 개 듣고는 그냥 학위 같은 거 안 하기로 했었다… 그런 산수도(암기도) 안 되는 내가 언감생심 화학을 공부하고 싶어했다니… 그냥 과학대중서나 두루뭉술 적당히 읽고 재밌네, 재미없네, 하면 좋지 아니한가…

적당히 먹어, 안 죽어,의 한국 권위자는 최낙언 선생님 정도가 생각나는데, 역시 화학 열심히 공부하신 분… 분자식 열심히 포토샵해주시면 와 예쁘네, 이러고 그냥 재밌네 음식 얘기다 냠냠 하고 여러 권 취미로다가 읽었다. 이 책도 비슷했다. 그렇지만 단호하게 흡연은 나쁘긴 나쁘다고 해준다. 담배 회사도 화학 잘 하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겠지…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들은 이렇게 저렇게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

그래서 거의 일년을 점심은 닭가슴과 과일 야채 견과류 친구들로 먹고 있는 나이지만,(아침도 귀리와 요거트와 시리얼과 과일 견과류 친구들을 먹지만) 가공식품의 절정이라 할 만한 단백질 음료(자연계에 지방 탄수 다 빼고 온리 단백질인 것들은 맛없고 또 거의 없겠지)도 달고 살고, 냉동식품-치킨, 피자, 베이커리들, 버거킹 와퍼, 라면, 캔에 든 닭가슴살, 참치, 번데기, 봉지에 든 파우치 파스타 소스, 굴라쉬, 가끔은 과자들, 다 먹는다. 배부를 정도로 많이 먹지 않을 뿐… 극단의 건강식과 소위 초가공식품들이 냉탕온탕하는데, 뭐, 건강합니다. 날씬합니다. 몸무게가 놀랄 정도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근육량은 근력, 저항 운동량이 좌우하지 음식이 좌우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싫은 건 안 먹고(요즘은 주로 한식이나 생선) 당기는 건(이건 아무거나) 그때그때 먹고, 같이 먹는 사람과 맛있게 즐거우면 됐고, 뭐 그렇다. 그렇게 확증편향적인 책만 주워 읽는 나새끼다. 뭐가 좋다, 뭐가 안 좋다, 걱정 안 하고 살면 편해요… 먹고 싶은 거 먹되 양만 잘 조절해 보세요…

+밑줄 긋기
-결국 여러분은 사라질 것이다. 분해되는 여러분의 몸은 어떤 생물에겐 뷔페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라. 거의 모든 생물에게 해당되는 얘기다. (88)

-여러분의 피부 분자를 춤추게 하는 광자(앞의 뜨거운 물처럼)를 “적외선”이라고 부른다. 맞다. 태양의 열기, 열화상 카메라, 진짜 끝내주는 가스레인지 같은 단어들은 우리가 아주 특정한 양의 에너지를 가진 광자에 붙인 이름일 뿐이고, “따뜻함”이라는 단어는 이 광자들이 피부에 부딪힐 때의 느낌에 붙인 이름일 뿐이다. (167)

-하지만 그 후 25년에 걸쳐 “아, 진짜! 커피 마시지 말라고!”와 “뭐, 아마 별일 없을 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논쟁 끝에, 커피는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충격을 안기기로 했다.
“연구자들: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심장마비의 위험이 낮아진다”(209, 맛있고 기운나면 됐다…그만 해…)

-그러니 만약 다음에 “블루베리는 사망 위험 감소와 연관되어 있다”와 같은 헤드라인을 보게 되면, 합리적이고 인과적인 연관성으로 가는 길에 있는 모든 웅덩이를 기억하시라.

1번 웅덩이: 사기꾼
2번 웅덩이: 기본적인 계산 실수
3번 웅덩이: 우연(무작위 가능성)
4번 웅덩이: 절차상 오류
5번 웅덩이: p-해킹을 포함한 통계적 속임수
6번 웅덩이: 교란된 연관성
7번 웅덩이 : 연구 설계(관찰실험vs.무작위 통제 실험) (273, 안 빠지게 주의할 웅덩이가 너무 많다...과학자나 연구자 안 하길 잘 한 듯…)

-어떤 방법이 충분하지 않다면, 그게 여러분이 가진 전부일지라도 그 방법을 사용해서는 절대 안 된다. (302, 충분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또 생기고…)

-CDC(질병통제및예방센터)와 FDA의 안전 경고에 주의를 기울여라. 그 외에 인터넷에서 음식과 건강, 특히 케일과 계란 같은 개별 음식에 대한 소식을 읽는다면 마치 새끼고양이처럼 취급하라. 같이 재미있게 놀되 그로 인해 삶이 바뀌지는 않도록 하라. (315-316, 이 말을 하려고 그렇게 길고 지난한 길을 함께 했다...흡연은 확실히 해롭고, 먹는 건 너무 신경쓰지 마...정도일까)

-예를 들어 85세의 사망 위험은 10세 어린이의 912배다.(9만1200퍼센트 높음…) 1년 동안 미국인의 사망 위험이 10퍼센트에 도달한다고 생각되는 나이는 몇 살일까? 다시 말해, 여러분은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1년 이내에 죽을 위험이 처음으로 10분의 1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 아니다. 87세다. (321, 그러니까 죽음 위험의 확률 증가는 나이가 제일 강력하게 보장한다. 나이가 음식을 이긴다. 어르신들이 들으면 섭섭해하겠다.)

-<소소한 조언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식품 및 건강에 관한 대부분의 뉴스는 안전 리콜이나 오염 통지 등이 아니라면 무시하라. (…). 담배를 피우지 마라.담배를 피운다면 끊어라. (…) 신체 활동을 활발히 하라. (…) 건강한 식단이라고 하면 어떤 하나의 큰 일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수백 가지 작은 것들로 이루어진 상당히 복잡한 혼란이다. 즉, 한 가지 식품의 기대 수명에 대한 기여도는 아마도 아주아주 작다는 의미다. (…) “가공식품을 피하라.” 그리고 말해두지만, 나는 근본적인 점에서 이에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가공식품을 독이라고 부르는 건 그만둘 수 없을까? 가공식품을 독이라고 부르는 것은 설사를 하게 만들거나 심장을 멈추게 하는 진짜 독에게 매우 무례한 행동이다. 설탕(심지어는 초가공식품)을 독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독이라는 단어가 싸구려가 된다. (334-338, 이 책의 두께나 이것저것 시시콜콜 가져다 붙이는 전개가 마음에 안 들면, 그런데 결론은 궁금하면 이 부분만 읽으면 간단하겠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들이마시고 우리 자신에게 바르는 모든 것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는 보기보다 훨씬 어렵다.”
세상은 보통 유기화학 입문처럼 깨끗하고 단순한 반응이 깨끗하고 단순한 제품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마치 모든 아수라장이 펼쳐지는 고급 유기화학에 가깝다. (340, 여러분 이것은 화학에 관한 책입니다...그렇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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