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은 - 13일 동안 이어지는 책에 대한 책 이야기
요시타케 신스케.마타요시 나오키 지음, 양지연 옮김 / 김영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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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5 요시타케 신스케, 마타요시 나오키.

그 책은 한 번 펼치면 멈출 수가 없다.
다정하게 함께 읽던 아이들이 한 쪽 더, 12쪽, 20쪽, 30쪽, 더, 더, 읽게 만든다. 그 책을 펼친 아이들은 경이로운 행복감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책장은 읽을 수록 점점 불어난다. 책의 결말은 알 수가 없는데, 읽는 속도가 불어나는 속도를 미처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요시타케 신스케와 잘 모르는 마타요시 나오키라는 작가가 협업해서 낸 책이다. 책에 관한 책은 역시 ’있으려나 서점‘을 넘길 만큼 귀여운 걸 아직 찾지 못했다. 그림책 부분은 좋은데, 잘 모르는 작가의 부분은 잘 몰라서 그런가, 정말 재미가 없게 써서 그런가 책 두께가 쓸데없이 두껍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 듯하다 느낌이 안 들고 진귀한 책 이야기라 하기에는 많이 식상했다. 종이 두께도 빳빳해. 재미 없는 부분은 찢어서 비행기를 접어 날리면 잘 날아다닐 것 같다. 하늘을 나는 책(이었던 것)이다. 배를 만들어 물에 띄우면 안 젖고 먼 바다까지 갈 것 같다.

마타요시 나오키를 검색해보니 ‘불꽃’이라는 소설로 아쿠타가와상을 탔다고 한다. 이름이 나오키라서 나오키상은 안 줬나 보다. 올해는 아쿠타가와상도 나오키상도 수상자 없음이라고 한다. 일본도 문학이 쭈그러드는 시절인가 보다. 아니 문학은 저 할 일 한다고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제 문학에 관심이 없어진 건가. 이 책은 문학이라고 해야 하나, 그림책이라고 해야 하나, 애매했다. 책 이야기라고 해도 재미있는 책도 있고 뻔한 것도 있으니, 늘 좋기만 할 수는 없지.
책에 대해 엄청 떽떽 거리는데도 재미있게 읽은 건 조 퀴넌 아저씨의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정도였다. 그런데 의외로 극불호인 독자들도 많아서 놀랐다. 그러니 ‘그 책은’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겠다...하고 찾아보니 정말 내가 후하게 친 앞의 책보다 별점이 훨씬 더 높고 좋다는 리뷰도 많다… 취향 뭘까… 이게 책의 매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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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자기 자신을 구할 수는 없다.
다른 누군가를 구할 뿐.
그렇기에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른 누군가로부터 구원받기 위해. (77, 구원은 셀프, 하던 내게 콩밤을 날리는 구절)

-마지막 그림은 나랑 너. 우리는 인간이야. 인간은 강하지? 어떤 이야기에서든 귀신을 이기잖아. 전부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 이기잖아? (118, 이겨라)

-’어쩌면 나는 본래 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스쳤다.
한때 마가 끼어서 잠시 인간이 되고 싶다고 바랐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전부터 내가 내가 아닌 듯한
내 자리가 아닌 곳에 내가 있는 듯한 불안을 느껴 왔다.
그건 내가 본래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다. (155, 어쩌면 나도 본래 책이었는지도 모른다!)

-상상 이상으로 악마는 예의 발랐다.
“엇, 악마는 무서워야 하는 거 아냐?” 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악마는 웃으면서 “다 옛날 얘기죠. 그땐 저도 어렸고요.”라고 말했다. (164, 인간은 어릴 때가 덜 무서운데.)

-세상에는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실은, 가닿지 못한 책들이 별만큼이나 많을지도 모른다. (177, 내게 닿고자 했으나 내가 쳇 하고 튕겨버린 책들에게 미안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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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에 Historie 12
이와키 히토시 지음, 오경화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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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나온 걸 오래 냅뒀다가 이제야 봤다. 그간 스토리 다 잊어버림... 사람이 많이 죽었다. 13권은 또 몇 년 뒤에 나올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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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5-12-15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걸 샀나... 안샀나.... 집에 가서 확인해봐야겠네요 ^^;;;
(전에도 그런 적 있는듯)

반유행열반인 2025-12-15 19:43   좋아요 0 | URL
저도 꽂힌 걸 간만에 발견해서 읽었어요. 또 한 5년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총상 입은 밤하늘
오션 브엉 지음, 안톤 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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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오션 브엉.

남자는 베트남 전쟁에 다녀왔다. 싸우다 다쳤다. 돈을 벌어왔고, 깡통에 든 온갖 조림과 과일과 커피와 주스 가루와 향기로운 비누 같은 걸 집에 가져왔다. 그렇지만 이후 내내 술로 살았다. 큰아들을 전쟁에 내보낼 만큼 가난했던 부모를 원망하고, 어머니에게 술주정을 했다.
큰아들의 큰아들은 남자의 꾸중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 떠돌았다. 나이 든 아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는 췌장암 말기 환자가 되어 있었고,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나무 밑에 묻었다.
큰아들의 작은아들은 나이를 먹도록 혼인을 못했다. 자신보다 스무살 가까이 어린 여자아이를 베트남 깡시골에서 데려왔다. 여자는 한국을 동경했지만 한국살이에, 혼인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고향집에 다녀오겠다는 걸 보내면서, 가서 싫으면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여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해방 두 달 전 태어난 남자는 8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암 진단을 받고 몇 달 지나지 않아서였다. 참전용사 해병병장이었던 남자의 유해는 국립현충원의 충혼당에 모셔졌다. 살아서는 놓여 본 적 없는 로얄층 로얄라인, 한 벽면의 가로 세로 한가운데에 죽어있게 되었다.

나는 그 친척 남자가 베트남에 다녀온 걸 떠올릴 때면, 사람을 죽여봤겠지, 민간인도 죽여봤을까? 베트남 여자들에게 몹쓸짓을 했을까? 잠시 궁금했다. 그렇지만 한 번도 전쟁에 대해 물을 생각은 안 했다. 남자는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는 그저 말이 없고, 내가 다니러 가면 00이 왔니, 하고 더 할 말을 못 찾았다. 아주 어린 오래 전에 00이가 공부를 잘 한다며, 한 게 가장 길게 걸어온 말이었던 것 같다.

베트남, 하면 그렇게 다녀왔던 남자가 떠오르고, 나중에 다낭 여행을 갔다가 거기는 완전 열대기후는 아니라 겨울에는 선선하구나, 수영을 할 수 없구나, 하고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오래 줄 섰다 먹은 반미는 정말 맛있었는데, 미국이 싫어서 반미인가, 그런 시덥잖은 농담만 맴돌고.

소설 ‘지상에서 잠시 우리는 매혹적이다’를 먼저 사 놨다. 친구가 어느 구절을 옮겨 주며 어떠냐고 물었는데, 별 감흥이 없었다. 어머니, 아버지, 이렇게 많이 찾았던 것 같다. 같은 작가의 시집이 있는 걸 알고 제목이 강렬해서 마련해 두었다. 영한 번역 처음 한다는 한영 번역 위주로 하던 번역가가 옮겼으니 베트남어 아니고 영어로 쓰인 시일 것이다.

시인이 표지 사진만 보면 지정 성별 남성으로 보이니까, 시를 읽다 보니 이 남자는 남자들을 사랑하는 것 같고, 아버지로 괴롭고, 어머니로 조금 녹고, 누군가 총에 맞았던 모양이고, 그랬다.
친구가 단골로 다니던 혼술집에 두어번 따라갔었는데, 어느날 친구가 그 사장님 여자예요, 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나는 남의 성별이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이나 그런 걸 함부로 예단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글 잘 쓰는 게이들이 꽤 많다는 생각은 떨쳐낼 수 없어… 나는 사람 되려면 멀었다.

베트남의 전쟁을 겪은 세대의 후손들이나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의 자식 손주들은 거기에서 받은 영향을 글로 꽤 많이 풀어낸 것 같다. 그런데 한국전쟁을 치르고 태평양 전쟁에 희생된 사람들의 후예인 우리들은 거기에 대해 너무 모르고, 그래서 잘 이야기하거나 쓰지 못했던 것 같다. 분명 그 시절을 거친 조부모나 친척 어른들과 생애의 접점이 있긴 했는데, 우리는 물을 생각을 못했고, 그들은 말할 생각을 못했다. 그러고는 21세기에 하나둘 돌아가셨다. 이미상의 소설 ‘셀붕이의 도’에서는 그 상처를 조심성 없이 후벼파서 할아버지를 긁어버린 미히 같은 애도 있었다. 그러진 말아야지.
나의 부모도 정작 제일 뼈아프고 부끄러웠던 젊은 기억은 나에게 말해주지 않는다. 내가 적당히 몰래 훔쳐봤을 뿐… 그러니까 유산처럼 이야기 따위 물려받을 생각 말고, 유산도 개뿔 없으니 받을 생각 말고, 내 이야기는 내가 매조지 하고 가야겠는데… 내 아이들은 내 엄마나 자기 엄마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긴 할까?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이야기들은 나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쓰인 것만 남는다고 설터 할아버지가 그랬는데, 나는 남의 책 읽고 투덜거린 것만 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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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은 중력에 닿았을 때 바뀌었지. 중력은 우리의 슬개골을
부러뜨리는 한이 있어도 하늘을 보여주려고 해. 왜 우리는 자꾸
그래라고 말했을까-저 많은 새들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누가 우리를 믿을까? 라디오 안의 내 목소리가
뼈처럼 바스러지고. 바보 같은 나. 난 사랑이 진짜고
몸은 상상이라고 믿었지. 화음 하나만으로 모든 게
가능하다고. 하지만 우리 다시
여기-이 추운 벌판에 서 있잖아. 그녀를 부르는 그.
그의 곁에 있는 그녀. 그녀의 발굽 아래에서 끊어지는
서리 내린 풀. (68-69, ’에우리디케‘ 중. 슬개골은 무릎 앞의 작은 뼈)

-미군 용사가 어느 베트남 시골 처녀를 박았지. 그래서 우리 엄마가 존재하고. 그래서 내가 존재하고. 고로 폭탄 없음=가족 없음=나 없음.

세상에. (92, ‘노트의 파편들’중)

-듣고 있니? 네 몸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어머니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모든 부분이란다.
여기, 한 가닥의 지뢰선으로 깎아내린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이 있네.
걱정 마. 그냥 그걸 지평선이라고 부르면
절대 닿을 일 없으니.
(…) 두려워 마, 총소리는
조금 더 오래 살려는 자들이 내는
실패하는 소리일 뿐. 오션아. 오션아-
일어나. 네 몸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몸의 미래야. 그리고 기억해,
외로움마저도 세상과 같이 보낸
시간이라는 걸. 여기,
모두가 있는 방이야.
네 죽은 친구들은 바람이
풍경을 통과하듯
너를 통과하고 있어. 여기 절름발이
책상 그리고 그 책상을 지탱하는 벽돌이 있어. 그래, 여기 방이 있어
따뜻하고 피처럼 가까운,
맹세해, 넌 잠에서 깨면-
이 벽들을
피부로 착각할 것이라고.
(107-108, ‘언젠가 난 오션 브엉을 사랑할 거야’ 중)

-번역은 본래 정치적인 행위이며 역사적으로도 제국주의, 식민주의와 얽혀 있어 번역가들을 “제국의 시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답니다. 그 어감이 매우 불쾌하지만 그 말의 뜻이 아주 정당하지는 않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요? (117, 옮긴이 안톤 허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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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구지 G1 우라가 고고구 - 5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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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가 고고구 농장 이름이 재미있어서 예가체프를 제끼고 구지 원두를 사 봤다. 꼬수운 맛이 군고구마는 오케이. 산미는 덜하고 살짝 달달한 무난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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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5-12-14 1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시다모 난세보 이런거 잘 마셨는데 시다모가 행정구역 개편으로 구지와 게데오로 나뉘었다고 한다!!! 오늘 처음 알았다.
 
사드 전집 1 :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 사드 전집 1
D. A. F. 드 사드 지음, 성귀수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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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3 D.A.F.드 사드.

 ‘소돔 120일’, ‘밀실에서나 하는 철학(규방철학)’, ‘미덕의 불운’, ‘악덕의 번영’ 네 권이면 많이 봤다. 그렇지만 두 권을 중역에 발췌본으로 악명 높은 동서문화사판으로 읽다보니, 제대로 읽은 건가 미심쩍기도 했다. 굳이 제대로 읽어야 되냐 싶다만… ‘하우투리드 사드’를 읽으며 이미 읽은 것들(그동안 대체 뭘 읽은 거냐 우웩)을 복기했다.
 그리고 성귀수 번역가가 야심차게 14권 전집 옮기기로 기획한 것을 얼핏 들었지만 애써 외면했다. 많이 봤다 아이가… 그렇지만 어느 결에 2014년 처음 나온 사드 전집 1권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는 내 책장에 꽂혀 있었다… 2018년 나온 전집 2권 ‘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는 아 이전 판이 마지막엔 막 그냥 막버무리 요약본으로 끝나던데 새 번역으로 또 봐?(그걸?????) 하는 마음이 오락가락이다. 그런데 이번에 1권에서 입수한 정보로는 원작도 그렇게 앞의 150가지 이야기만 자세히 풀고 뒷부분은 종이가 모자랐는지 그렇게 압축 요약으로 끝낸게 맞나 보다… 이제 11년이 지나 2025년에 사드 전집3권 ‘알린과 발쿠르 혹은 철학소설’이 새로 나왔는데 이 속도대로라면 14권까지 나오는데 50년쯤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성귀수 번역가님 120살 넘게 사세요… 제가 프랑스어를 몰라 후계는 (니가 왜) 못되겠습니다 (니가 그러니까 왜)

 전집1권의 표제작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는 짧은 단편이지만, 사드의 주제의식이랄까, 인생모토랄까 이런게 챡 압축된 느낌이었다. 나머지는 이런저런 편지글과 완전판이 아닌 드문드문 남은 원고들 주워 모아 놓은 듯했다. 사드 원전들보다, 기욤 아폴리네르가 와, 사드 짱짱맨인데 니들이 너무 이상한 놈으로 오해한 거야 하고 이렇게 저렇게 자세하게 작품 요약이랑, 서신들이랑 넣어서 쓴 해설이 더 메인인가 싶게 비중이 높았다. 그런데 읽어보면 그냥 이상한 놈 맞다. 그러니까 2권 읽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해라, 하고 생애 연보랑 작품 목록 소개 이런 걸 제시하는 예열 정도라서, 걱정했던 것과 달리 별게 없었다. 그렇지만 2권 볼 사람들은 긴장하라고… 쥐스틴 시리즈는 이렇게 저렇게 개작에 개명에 여러 판 나온 걸 4,5,6권 이렇게 세 권에 각각 다 옮길 셈인가 본데, 사드 연구할 생각 있는 사람들에겐 도움이 되겠다. 그렇지만 일반 독자는 굳이 반복해서 봐야 되나요… 딱 한 권만 추려주시면 안 되겠지요… 아니 그걸 또 보겠다는 건 아니고…. 쥘리에뜨는 확실히 다시 보기엔 심장에 무리가 (심장의 용도...하아…) 가지만…

 세상과 불화하고, 사실 세상에 그렇게까지 개긴건 아닌데 그보다 더 심하게 핍박 받고, 나쁜 놈은 맞는데 아 그렇게까지 할 건 아니잖아요, 하고 징징대면서 산더미처럼 글을 써 놓은 200여년 전 괴짜 놈의 생애와 작품에 왜 이리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다. 좀 억까다 싶으면 내가 후해지는 면이 있는 것 같다. 듣고 싶던 개소리를 가학적이고 맛탱이 간 장면 사이에서 가끔 던져주는게 우스꽝스러우면서 통쾌한 느낌이 있었다. 감옥에 갇히고 정신병원에 가둬지면서도 써재끼길 멈추지 못한 그 에너지가 신기하기도 했다. 다음엔 곱고 예쁜 걸 봐야겠다. 사드 무덤은 흔적도 없고 그 위에 뿌린 도토리에서 자란 참나무도 다 죽었을 것 같다. 그래도, 아무리 지워 없애려 들어도, 뺏고 가두어도, 마구 불태워도, 늘 세상엔 한줌 반항아들이 있어서 꾸역꾸역 전승되는 미친 상상력…

+밑줄 긋기
-죽어가는 자. 바로 그자가 제일 당해야 마땅한 존재였으니까. 그는 선동적이고 과격하며 중상모략을 일삼는, 교활한 방탕아인 데다, 무식한 어릿광대이자 사악한 위험인물로서, 대중을 압도하는 기술을 가졌는데, 결국에는 당시 예루살렘 같은 왕국에서 처형당할 처지가 되고 말지. 그를 제거한 건 정말이지 현명한 조치였네. 다른 때라면 지극히 관대하고 온건한 나의 기준에서도 그 일은 법과 정의의 엄격한 적용을 받아들일 만한 유일한 경우라 할 수 있었네. (32-33, 신성모독 안 나오면 사드가 아니지… 그런데 소크라테스 이야기입니까?(딴청))

-내세에 대한 생각을 단념하게. 그런 건 결코 존재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행복의 즐거움, 특히 이 세상에서 그것을 누리는 일만은 절대로 포기하지 말게. 그것이야말로 삶을 배가하고 확장할 유일한 방법으로 자연이 자네에게 쥐어준 선물이니까...친구여, 관능적인 쾌락은 언제나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이었다네. 평생 나는 그것을 예찬해왔고, 그 품에 안겨 생을 마감하고 싶었지. 이제 나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네. (…) 죽어가는 자가 종을 울리자 여자들이 입장한다. 타락한 자연이란 어떤 것인지 결국 설명하지 못한 설교자는 여자들 품에 안긴 채 자연에 의해 타락한 인간이 되었다. (35-36, 행복해진 사제.)

-정당하지 않으면서 단지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모든 법은 단순한 횡포에 불과하다. 필요성이란 횡포의 구실이며, 부당함을 윤색할 수 있는 유일한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모든 법은 그것이 정당한 만큼만 좋은 것이고, 필요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악인을 사회에서 단절시켜야만 하는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벌로써 응징하는 것은 문제가 다르다. 악인은 죄를 지은 만큼 벌을 받는 것인데, 만약 악인이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면 죄를 지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을 내쫓음으로써 제거하되, 파멸시키지는 마시라. (52-53, 여기서 사드의 사형 반대론 같은 게 도출되나. 일반적 법감정과 사법의 논리가 부딪히는 지점 같기도.)

-오, 인간이여,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판결을 내리는 일이 과연 너의 몫인가? 자연에 한계를 부여하길 원하는 것, 자연의 허용 범위와 금지 대상을 결정하고, 명시하는 것이 정녕 인간이라 부르는 초라한 개체의 속성이란 말이더냐! 아직도 자연의 가장 하찮은 작용조차 해명하지 못하는 너, 자연의 가장 가벼운 현상도 설명하지 못하는 너, 나에게 운동 법칙, 중력 법칙의 근본을 정의해보아라! 물질의 정수를 내게 차근차근 설명해보아라! 그것은 불화성인가 활성인가? 만약 그것이 스스로 운동하지 않는다면, 결코 휴식이라고는 없는 자연이 이제까지 그 안에 존재해온 무언가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 내게 말해보라. 그리고 만약 자연이 스스로 운동한다면, 그것이 지속적인 생성과 교체의 정당하고 확실한 원인이라면, 도대체 삶이란 무엇인지 말해보라. 그리고 죽음이란 무엇인지 증명해보여라. 공기란 무엇인지 내게 말해보라. 공기의 다채로운 현상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해보라. 산꼭대기에서 왜 조개껍데기가 발견되는지, 바다 밑바닥에서 어떻게 폐허의 잔해가 발견될 수 있는지 내게 가르쳐다오. 어떤 행위가 범죄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너, 콩고에서는 왕관을 씌워줄 만한 일로 파리에서는 목을 매달아버리는 너, 별의 운행과 정지, 성간 인력과 그 운동성, 별의 본질과 주기에 대한 나의 생각을 확정해다오. (65, 250년 쯤 늦게 태어났다면 이 궁금증쟁이 사드의 답답함이 다 해결됐을까? 과학적 이치에 골몰하느라 이상한 짓은 좀 덜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여전히 변태였을 것 같다…)

 -자연이 불어넣은 괴이한 성향들을 낱낱이 묘사한들
 범죄자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리. (117)

-나는 내 말을 알아들을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을 상대로 이야기하니, 그들은 아무 위험 없이 나를 읽을 것이다. (166, 봉쥬르, 해치지 않아요.)

-1814년 12월 2일 사드 사망. 유언(‘...무덤에 흙을 덮고 나면 그 위에는 떡갈나무, 너도밤나무 등등의 열매들을 뿌려두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토양이 회복되고 이전처럼 덤불숲이 우거질 수 있도록 한다. 내 무덤의 흔적은 그렇게 하여 대지의 표면으로부터 완전히 사라질 것이요, 나로서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나에 대한 기억이 깨끗이 사라지는 게 더 없이 기쁠 따름이다.’ 116, 정말?) 에도 불구하고 종교의식에 따른 장례식이 거행된다. 단 그의 바람대로 무덤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고, 7년 전 압수된 ‘플로르벨의 나날들 혹은 폭로된 자연’의 원고는 차남의 요구에 따라 전량 소각된다. (187, 안 돼...나 못 읽잖아...아들이 태워버리자 할 만큼 매운 것이었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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