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60509(저자:정세랑)


5~6년 전 직장에서 책을 사 준대서 이걸 골랐다. 앞 몇 페이지를 읽으려고 시도했으나, 아 이런 걸 어떻게 읽어...하고 덮었던 게 또 수 년 전이다.
장르나 난이도 상관 없이 어떤 책들은 최소한의 마음가짐이 있어야 받아들여진다. 아니 적어도 읽다가 중단하는 (나한테는 굴욕적인) 일이 벌어질 확률이 줄어든다.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둘 중 하나는 써 보고 싶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책은 둘다 섞어서 한 권으로 냈다. 늘 유행과는 반대 흐름을 타는 삐딱이라서 다들 신나게 읽을 땐 흠, 하다가 거의 잊혀지면 뒤늦게 펴든다.

처음 시도했던 때와 달리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능력의 설정, 확장, 한계, 조력자, 빌런, 이야기거리를 물고 오는 조연, 약간 병풍 같지만 그래도 분위기를 살려주는 엑스트라까지, 이야기를 짜는 사람들이 어떤 걸 어떻게 배치해서 이야기의 끝까지 치고 나가는지 비교적 뚜렷이 읽히는 책이었다. 읽히려면 클리셰는 필요하다. 물론 가장 마지막 장의 모래 바람 혼돈의 카오스와 브랜드 로고 달린 용의 등장은 이게 최선이었니, 무슨 장면을 읽고 있는 건가, 싶긴 했지만 결말은 늘 어려운 거니까. 대부분 끝에선 누군가를 죽여버리는데, 여기선 다짜고짜 해피엔딩이다.

‘가로등 아래 김강선’은 나 대놓고 울라고 쳐패는 신파 싫어하는데, 크레인이 무너져 깔려 죽어버린 김강선 이야기에서부터 눈물을 억지로 꾹꾹 참았다. 옛 친구가 안은영에게 찾아와 이승의 미련을 풀듯 이런저런 말을 하다 사라지는 이야기인데, 내가 우는 걸 참은 대신 안은영이 마지막 줄에서 울어줬다. 가만보면 슬픔의 정서를 제대로 써 본 경험이 없었다. 맨날 지나치게 덤덤하거나 냉소하는 것만 쓴 것 같다.

언제 펑펑 울어봤나, 떠올려보면 죄다 짝사랑이든 사랑이든 곁에 두고 싶은 걸 잃고 몇날 며칠 통곡했던 기억은 난다. 사랑의 부재 말고는 크게 울일이 없었으니 운이 좋은 인생 아니겠니. 우울증 때문에 운 건 잘 기억도 안 난다.

정세랑 책을 적게 읽지는 않았다. (와 찾아보니 옴니버스 빼고 단일 작가로는 이책까지 7권이다) 딱히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서도 계속 나도 모르게 찾아보긴 했다. 항상 사랑 이야기가 나와서 좋았던 것 같다. 세계가 멸망하고 현실이 파괴되는 순간에도 그래도 사랑, 하는 작가가 또 흔하진 않은 것 같다. 갑자기 시공이 오그라들기 때문이다. 그런 유치해짐을 무릅쓰고 계속 쓰는 사람이 있고,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다. 나는 좋아하게 될까? 모든 이야기의 끝은 죽음과 파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니 오히려 산뜻했다. 드라마나 천만영화 같은 걸 잘 안 보는 인간이라 뻔한 게 새롭다.

+밑줄 긋기
-죽은 것들은 의외로 잘 뭉치지 않는다. 산 것들이 문제다. 2차 성징의 발현이란 짓궂고 지겨웠다. (14)

-“딱밤에 적당한 기운을 실어 관자놀이를 때리면 기절하더라고요.” (83, 귀신 보는 눈, 플라스틱칼, 비비탄총에 이은 소소한 능력)

-만약 능력을 가진 사람이 친절해지기를 거부한다면, 그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치관의 차이니까. (117, 이건 좀 인정하기에는 위험한 상황이다. 능력으로 남을 괴롭히거나 세계 정복을 시도할 수도 있잖아…)

-사람을 쏴 본 적은 없었다. 산 사람을 쐈을 때 어떻게 되는지는 몰랐다. (122, 아...내가 설정한 세계관이랑 겹쳐서 벌써 빡쳤다. 늦게 쓰는 자의 슬픔…)

-아무도 교사가 매력을 활용하는 직업이라고 얘기해주지 않았으므로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애초에 매력 있는 학생이 자라 매력 있는 선생님이 된다는 걸 왜 몰랐을까. 학생 때도 학교가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으면서 교사가 된 스스로가 한심했다. 시험을 준비할 때에는 분명히 간절하게 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막상 되고 나니 2년 만에 그 간절함의 이유를 까먹고 말았다. 3년 전으로 돌아가 세살 어린 자신의 멱살을 잡고 왜냐고 묻고 싶은 기분이었다. (131, 토씨 하나 안 빼고 내 마음이었어…)

-대흥이 생각하기에 20세기는 오점 없이 살기 쉬운 세기가 아니었다. (227, 너그럽다 너그러워)

-저는 이 이야기를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습니다. 한 번쯤은 그래도 되지 않을까 했습니다. 그러니 여기까지 읽으며 쾌감을 느끼지 못하셨다면 그것은 저의 실패일 것입니다. (275, 작가의 말 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픔이여 안녕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20260508 (저자:프랑수와즈 사강)

책을 다 읽고 한 일은, 엄마에게 계좌로 십만원을 부쳤다. 오늘이 어버이날인 것을 오후 열시 쯤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녁은 엄마가 싸준 김밥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 읽은 책은 엄마 없는 아이가 엄마가 될 뻔한 여자를 잃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들을 찾아 읽고 싶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장르를 나누고, 우열을 가리고, 호불호를 따진다. 그런데 이제와서 드는 생각은 뭐 재미있으면 됐다.

사강의 책은 ‘패배의 신호’를 먼저 읽었다. 그 책도 성공했다지만,(페라리 뽑음) ‘슬픔이여 안녕‘은(재규어 뽑음) 여기저기서 빠지지 않고 이 책을 읽었다는 사람도 많이 봤다. 그래서 엄청 미뤄뒀던 것 같다.

일단 짧아서 좋았다. 별 이야기도 아닌데 감정과 관계와 인간의 욕망 같은 게 밀도 있게 압축되어 있으면 사람들은 잘 썼다고 좋아하는 것이다. 잘 썼다.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시기하고 험담을 했겠지. 남의 성공에 배아픈 사람은 참 많다.

유독 프랑스 소설들 보면 휴가를 가고, 거기서 해변에 늘어져라 쉬다가, 수영하다가, 권태를 느끼다가, 갑자기 사랑하다가, 갑자기 누가 떠나거나 죽어버리고, 막판에 폼잡고 끝난다. 유한 계급의 이야기이다. 아, 나도 해변에서 빈둥대면서 몇 주 몇 달씩 휴가를 보내고 싶구나...

아버지와 딸이 등장하지만, 사실 둘다 백치 같이 덜 자란 애새끼들이고, 그런 애들도 좋다고 달려드는 주변 인물 덕에 그 인물들이 매력있게 그려진다.
인물의 주인공됨이나 아름다움도 결국 상대적이고, 주변 인물들의 개성과 다양함이 양각 판화의 배경처럼 깔려서 주인물들을 두드러지게 한다.

제목의 안녕이 봉쥬르, 인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더 나은 마지막 문장을 생각하기 어렵지만 마무리는 그냥 닭살 돋았다.

세실이 안에 대해 갖는 여러 복잡한 감정들을 한참 그려놨는데도, 안을 선망하고 좋아하고 그냥 따르고 싶고 그러면서도 밀어내는 감정이 잘 와닿지를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에 안의 떠남과 죽음에 절절한 감정을 보태는 게 저게 뭐야 싶었다. 와 싸이코패스인가 별 장난은 다 쳐놓고선.

누구도 필요 없는, 나는 겪어본 적 없는 친밀함과 공범 의식 같은 걸 가진 아버지와 딸의 모습은, 이게 부러운 것도 아니고, 한심해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저렇게 지들 마음대로 살아도 살아는 지는게 고깝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도 어느 정도 내 마음대로 살고 있으니 나라는 이야기를 읽는 누군가는 고까울지도 모르겠다.

+밑줄 긋기
-난생처음으로 나는 그런 특별한 기쁨을 경험했다. 어떤 존재를 간파하고 찾아내고 백일하에 드러낸 다음 명중시키는 즐거움. 과녁으로 삼을 누군가를 찾아헤맸고, 발견하자마자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었던 것처럼 조심스럽게 즉각 방아쇠를 당겼다. 명중! 내가 모르던 경험이었다.(지배와 조정, 가스라이팅, 음모와 계략, 통제력과 권력욕, 사람들은 이런데서 대리만족을 느낄까.)

-그녀는 많은 여자들이 간 길을 따랐고 알다시피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죠. 젊은 시절 중산층 아내이자 어머니가 되었고 그 상황에 안주해 거기서 벗어나려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어요. 그 부인은 이것도 하지 않고 저것도 하지 않았다는 걸, 뭔가를 성취하지 않았다는 걸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요.(이런 뒤틀린 말 같은 데 밑줄 긋고 있었네 나야…)

-모래 폭포가 시간처럼 모습을 감추고 있다고, 그건 한가로운 생각이라고, 한가로운 생각을 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라고 느꼈다. 여름이었다.(밈으로 쓰이는 ‘여름이었다’의 기원일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자급자족한다
오한기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60502 (저자: 오한기)


많은 걸 살 수 있다. 남들의 상상력과 이야기마저 돈과 바꿔 온다.
나는 내가 쓴 글을 다시 읽고 또 읽고 몇 년이 지난 뒤 또 읽으며 이런 일이 있었군, 이런 감정이었군, 한다. 돈이 된 적 없고 내 스스로 지어내 읽고 있으니 이거야 말로 자급자족이다.

내가 오한기를 또 읽다니. 물론 이건 삼천원에 중고로 구매했는데 완전 새 책인데 이 값이라니, 수상한데...싶다가도 백년 동안의 고독도 천사백원인데 역시나 명작이었잖아. 자본주의에 속지 말자. 작품을 보자, 했다.

120페이지쯤 읽었을 때, 파이트클럽을 생각했다. 어쩌면 미아 모닝스타는 화자가 만든 환상이고, 사실 자급자족단은 화자가 두목인데 그 폭주를 막으려고 반대편을 설정해놨다 뭐 그런…내 상상력이 빈곤해서 그렇게 예측했다. 일단 마저 읽어보는 거지.


다행히 예측은 틀렸다. 명작일 가능성도, 상상 속의 전개도...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실제 전개는 여기서는 밝히지 않기로 한다.(이 문장과 비슷한 표현이 소설 속에 자주 등장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같은 거...)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은 갖다 붙이려 들면 자급자족이 아닌 것이 없다고 한다. 자급자족을 자본주의의 대척점으로 그려 놨다. 사실 내 보기에 자급자족이란 말은 틀렸다. 자연주의 마을도, 비비와 볼키도, 미아와 헤밍웨이도, 카프카와 해인도 관계의 구성원끼리 연결되어 있고 서로가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서로 끝없이 떠먹여주고 있었다. 대놓고 반자본주의 하면 너무 유치하니까 네 글자 맞추느라 택한 조어 같았다.

스파이물을 많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존 르 카레의 ‘리틀 드러머걸’,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아, 처음 읽은 건 아주 오래전 베를린 느와르 ‘4월의 제비꽃’이었나 그랬다.
그래서 이 한국적이고 특정 시대(2018년 언저리)를 배경으로 한 스파이물이 제대로 쓰인 건지 그냥 개허접인지 판단할 능력이 안 된다.

딱히 재미있지는 않은데, 괜시리 두껍고, 그런데 읽는 게 더디지는 않았다 정도였다.
CIA니 국정원이니 트럼프니(아 그런데 이 소설 나오고 7-8년 지난 지금도 왜 트럼프일까…) 재벌 총수니 평창올림픽이니, 이름 번듯한 조직이나 기관, 인물과 사건을 다 때려 넣고 B급 코미디 같은 걸 하고 싶었던 건지, 사회 풍자라고 해야 할지, 이 장르물 자체에 대한 조롱인지(이렇게 물으면 아니라고 할 것 같다) 읽는 내내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이전까지 시간은 꽉 채우는 것이라 생각했다. 요즘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시간은 무엇이든 아무거나 하면서 보내는 거라고. 채우는 것이 보내는 것으로 바뀌니까 여유가 생겼다. 자기계발 중독자, 성취지상주의자가 드디어 체념한 것이다. 책이라도 빈 시간 속에 욱여 넣었는데 이젠 안 읽어도 시간은 잘 간다. 지난 달에 11권을 읽어 놓고 안 읽었다고 하면 거짓말 같지만…

대충 이거저거 쓰고 읽고 하면서 보내고 있다. 자급자족을 하면 확실히 소비는 덜 하게 된다. 돈 안 되는 글쓰기야 말로 확실한 반자본주의일지도 모르겠다.


+밑줄 긋기
-그러나 대책은 공정거래, 4차 산업혁명, 정의, 욜로처럼 공허한 단어였다. 우리는 가난한 데다가 공허하기까지 했다. 확신하는데 빈곤은 100년 뒤에도 모든 글의 소재거리가 될 것이었다. 빈곤은 현재를 넘어 과거를 돌아보게 했고, 미래를 예견하게 했다. 빈곤만큼 고전적이고 동시대적이며 SF적인 건 없었다. (19, 흙으로 만든 수저는 밥 한 술이나 뜰 수 있을까.)

-스파이는 경계해야 한다.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망을. (59, 모두가 경계해야 할 것 같은 욕망)

-나는 주온에게 막연한 동질감을 느꼈고, 주온이라면 해인과 같은 침대에서 자는 걸 목격해도 질투가 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102, 뜬금 없이 처용하는 화자)

-마지막으로 형식. 혹자는 형식이 껍데기일 뿐이라고 하지만, 형식만큼 어필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특히 보고서에 있어서는요. 상사들은 형식에 눈이 멀기 마련이거든요. (148)

-내가 물었다. 사랑을 위해 죽음으로 뛰어든 양완규. 그 행위는 상상보다 아름답지 않았다. 생각보다 비참했고, 예상보다 처참했다. 해인이 위기에 빠졌다면 나 역시 비참하고 처참해지리라. 갑자기 한기가 몰아닥쳤다.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213, 나는 오한기가 오기나 한기 같은 단어를 쓸 때 심상할지 궁금했다.)

-책을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하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책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270, 적어도 시간을 보내는 걸 해결해주긴 한다.)

-한때 좋아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당신의 작품을 좋아했던 게 후회되네요.
잘됐네. 나도 너 같은 독자는 필요 없으니. (277, 좋아하던 작가들과 내가 나눌 법한 대화였다.)

-미아는 불법으로, 아니, 진짜 미쳐 있었지만, 주는 합법적으로 미쳐 있었다. 이 세상은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우기면서 운영되는 것이었다. 이게 세상의 비밀이었다. (325, 나의 미침은 불법인지 합법인지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 알마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60425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이야기의 신은 이야기 안에서 전능하다. 누군가를 사라지게 하거나 새로 나타나게 한다. 살고자 하는 사람도 죽이고, 죽고자 하다가 다시 살려고 하는 사람도 죽인다. 가시덤불 숲 정도 태웠다가, 에라이 하고서 한 도시 전체를 불타게 할 수 있다. 사람을 철길 위에 네 토막 내는 것도 가능하다.

읽는 사람은 이야기 안에 있는 동안은 그렇게 끌려다닌다. 읽던 도중에 덮어버리는 것도, 기어이 끝까지 읽는 것도 둘다 이야기에 대항하는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왜 이야기랑 싸우려고 하죠? 한 인물이라도 이입하기 힘든 독자는 어떻게 하죠?

이번 소설은 마침표가 제법 후한 편이었다. 대신 마침표마다 초점 화자가 바뀌었다. 그걸 따로 말 안 해줘도 읽어나가다 보면 이번엔 또 이놈이군, 할 수 있게 잘 써 놨다. 다만 교수와 똥강아지는, 머리커는 어디로 갔을까? 자기가 여기선 신이라고 탱크로리 데려다가 (아마도) 기름을 마구 뿌리고 다 폭파시키고 끝내면 되는 거야? 모든 이야기의 끝은 죽음이라고 생각하지만, 딱히 더 나쁠 것도 더 나을 것도 없는 인간들, 평범하고 다양한 인간들을 줄줄이 시시콜콜 보여줘 놓고 다 날려버리는 건 너무 짓궃다. 정신 없는 영화 한 편 본 기분이었다.

한 편으로는, 소설은 이렇게 내가 만들고 싶은 세계를 만들고, 다시 다 부숴버리고, 모래성이나 블록집처럼, 찰흙놀이처럼, 그렇게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인데 난 잘 가지고 놀지 못해 아쉽기도 하다. 모래밭에 파헤치고 간 흔적, 물웅덩이, 두고간 작은 삽, 불장난 뒤의 잿더미, 땅 속에 묻힌 시체, 남이 실컷 놀고 간 뒤에 얘들은 뭐하다 간거야, 하는 기분이다.

제목은 딱히 극적인 사건도 아니었다. 하찮은 사람이 다 망하고 다 늙어서 자기 죽을 자리 찾아온 걸로 호들갑 좀 떨었다가 온 도시가 멸망한다. 뒤좀 돌아봤다고 소금기둥인지 돌인지 만든 신만큼 이 이야기의 신도 잔인하다. 소돔120일의 결말이랑 딱히 차이점을 모르겠다. 오히려 더 심한 대량 학살… 이걸 무덤덤하게 읽도록 쓴 신이 나쁜 건지, 그렇게 읽은 내가 나쁜 건지 둘다 안 나쁜 건지 잘 모르겠다.

+밑줄 긋기
-그냥 꼼짝하지 않고 누워 여전히 눈을 뜨지 않고서 자신에게 말하길 오, 안 돼, 절대, 머리커, 다시 꿈꾸기 시작하면 안 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니까, 절대로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237, 이번 소설은 제법 마침표가 많다. 벵크하임의 옛 사랑 머리커 할머니. 한국에서는 놀림 많이 받았을 이름...)

-감정이라고는 한 톨도 없는 작자들, 이 불쌍한 말들은 존중받아 마땅한 것을, 하지만 저치들은 누구도 무엇도 존중하지 않아, 내 저들의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겠어, 저 돼먹지 않은 어중이떠중이 놈들, 하나씩 모가지를 비틀어주마, 내가 농담하는 줄 알지, 두고 봐. (254, 일방적으로 말수레를 동원하라는 명령에 분노하는 마구간지기. 말에 대한 존중에 자신에 대한 존중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사람이 왜죽어야 하는지가 아니야,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사람이 왜 살아야 하는가라고, 라고 벵크하임 벨러 남작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바깥을 보고 싶지는 않았고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는데, 이것이 그의 방식이었으며 어차피 도시를 썩 잘 볼 수는 없었던 것이, 바깥은 모든 것이 잿빛이었고 그가 있는 쪽 창문에는 뿌옇게 김이 서렸거니와, (494, 제목에 속았지만 사실 이 소설 주인공은 벵크하임이 아니라 폭주해서 총질하고 불지르고 다니는 미친 교수가 아닐까 싶다. 한쪽은 무기력에 에너지 과소, 한쪽은 에너지 과다에 생의 의욕 폭발)

-(…)질투를 거론하려거든 한국인을 생각할지며 위선을 거론하려거든 이번에도 한국인을 생각할지며 오만함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든 교활한 아첨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든 잠재적 공격성을 거론하려거든 다시 한국인에게 돌아올지니 그대가 어떤 못된 습성을 떠올리든 한국인에게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으나 적어도 그대는 그곳에 있고, 그렇다면 적어도 한국인의 상투는 틀어쥘 수 있을 것이며 그냥 한국인은 똥구멍이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정곡을 찌르는 것이기는 한데, 그렇더라도-누구에게 이 말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그에게 말해봐야 소용없는 것이, 그에게 이 말은 술집에서 주먹을 부르는 한낱 모욕에 불과하거나 아니면 그가 벽에 붙어 게걸음으로 나가 어둠 속에 숨어 앙갚음할 기회를 엿볼 것이거니와 그에게 말해봐야 소용없는 것은 그 무엇도 그에게 진짜로 상처를 입힐 수 없으며 그러는 동안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자기연민에 빠질 수 있는바 그의 실체를 굳이 그에게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은 가망 없는 짓이기 때문이어서, 그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결코 파악하지 못할 것이고 결코 깨우치지 못할 것임은 이것을 이해하고 파악하고 깨우치려면 한국인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나 그대는 한국인이고 지금도 앞으로도 영영 한국인, 용납할 수 없는 한국인일 것이요, 온갖 예외를 내게 들먹이지 말 것은 예외들이 내게 구역질을 일으키기 때문이요, 실은 예외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어서, 한국인은 누구든 나의 일가요, 한국인은 누구나 한 뿌리에서 나왔은즉 그는 자신이 왕이라고 생각하는 무식하고 위험한 어릿광대이지만 그는 왕이 아니어서, 끊임없이 투덜대다가도 누가 자기에게 고함지를라치면 슬그머니 내빼니 내 진심으로 말하건대…(648-649, 자기 출신 민족을 셀프 디스 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간접 체험이라도 해 보려고 ‘헝가리인’하는 부분을 ‘한국인’하고 바꿔 적어봤는데 어느 나라가 들어가도 상관 없겠네 싶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60421 (저자:수디르 벤카테시)

제목만 봤을 땐 사회학에 관한 여러 이론이나 통념을 깨는 연구 결과 등을 열거해 놓은 책 같았다. 그런데 원제를 확인해 보니 ‘하루 동안의 갱 보스’. 이쪽이 더 책의 고갱이를 잘 드러냈다.

사회학 대학원생 수디르는 정말 하루간 갱단 보스 역할을 체험하기도 한다. 실제로는 거의 수 년을 시카고의 흑인 빈민 주택단지 로버트 테일러 홈스에 드나들며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기록했다.

세상물정 잘 모르고, 강한 호기심에 이끌려 갑자기 남의 험한 동네로 뛰어든 학생처럼 본인을 그려 놨지만, 속표지의 소개 사진을 보면 저자는 체격도 다부지고 깡따구도 있어 보였다. 자신의 안전과 생명을 걸고 마약 거래와 총격전이 오가는 갱단의 관리 구역에 들어가 연구할 마음을 먹은 것을 보면, 수디르는 야심넘치고 학계에서 성공할 욕심도 크게 가졌던 것 같다.

그래서 갱단의 보스 제이티와 주택단지 주민회장 베일리 부인 등을 중심인물로 하면서, 그 주변 인물들과 주민들의 삶을 그린 이야기가 이렇게 흥미롭게 읽히는 건, 저자가 서사를 만들고, 그렇게 읽히도록 많은 장면들을 편집하고 재배치한 덕일 거라고 생각했다. 삶은 드라마가 아니다. 그렇지만 어떤 이들의 삶은 어떤 드라마보다도 굴곡 많고 이야기거리도 많다. 수디르처럼 가까이서 오래도록 지켜보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일상이 이야기로 남도록 그릴 수 있는 것이다.

마약 거래, 매춘, 뇌물, 갱단 간 전쟁, 부패 경찰, 온갖 지하경제가 한 동네 안에서 얽히고설켜 있다. 그들 나름대로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붙들고 있는 것일 수도, 그런 일이 아니면 더는 선택할 수 없어서일 수도 있다. 책으로 전해들었을 뿐 그 안에 뛰어들어 보지 않아서 짐작만 할 뿐이다. 심지어 그 동네는 재개발과 함께 사라져 버려서 옛 주민들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대신 이 책이 남았다.

유튜브는 잘 보지 않는데, 한동안 관심을 가지고 둘러본 채널이 있었다. 특히 ’나락의 삶‘이라는 다큐 형식의 컨텐츠가 흥미로웠다. 정신이 (나보다 더)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 젠더 퀴어, 크리에이터라고 하지만 그렇게 큰 수익을 누리지 못하고 대개 술방송으로 간팔이를 하거나 막장 방송을 하는 사람들, 도박중독, 성형중독, 성매매, AV배우 등 사회 대다수에게 인정 받지 못할 방식으로 생계를 잇고 있는 사람들이 잔뜩 등장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영상 속 사람들이 생각났다. 세상엔 다양하게 고달픈 삶이 존재하고, 멀리 치워두고 들여다보지 않아서 몰랐을 뿐, 나름대로의 삶을 어떻게든 끌고 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존재한다. 내가 저런 처지가 아니라고 안도하기보다, 제대로 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기 전에, 그것 말고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을 삶에 대해서도 가끔 생각해 봐야 겠다.

+밑줄 긋기
-“백인을 절대로 믿지 말게나.” 어느 날 올드타임 할아버지가 내게 조언했다. “그렇다고 흑인이 그보다 더 나을 거라고도 생각지 말고.” (23, 색은 중요치 않다. 누구도 믿지 마...)

-우리는 이곳을 벗어나려고 애쓰느라 시간을 허비하면서 이곳에서 살고 있지. (24, 많은 사람이 그러고 살긴 하는데 로버트 테일러 주택단지는 더 그럴만 했다.)

-식품 잡화점 주인에게서 식료품을, 시카고 주택공사로부터 집세 면제를, 사회 복지 담당 공무원에게서 혜택 지원을, 경찰관으로부터 감옥에 간 친척들을 위한 특혜를 받을 수 있었다. 섹스를 화폐 대용으로 사용하다니! 그러나 그들의 설명은 일관되고 아주 현실적이었다. 아이가 굶주릴 위험에 처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다. 이 젊은 엄마들은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이런 생필품을 얻는 것을,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괴로워하는 듯했다. (292-293, 사회경제적으로 제일 어려운 지역 사회에서 제일 고통 받고 착취당하는 건 여성들이었다.)

-나는 경찰이란 일이 잘못되었을 때 도와주는, 믿을 만한 영웅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랐다. 그런데 여기서는 평범한 시민인 내게도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 (329, 무력을 사용하는 공권력을 가진, 좋은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쁜 사람도 일정 비율 늘 섞여 있다.)

-그래도 나는 선택권이 있어서 로버트 테일러 홈스에서의 생활을 그만둘 수 있었지만 그곳 주민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빈곤 문제 연구를 끝내고 나서 오랜 후에도 그곳 주민들 대부분은 여전히 가난한 미국인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었다. (335, 선택할 여지가 없는 사람들. 그들도 좋아서 거기 사는 게 아니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수 2026-04-21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체고야..

반유행열반인 2026-04-22 06:47   좋아요 0 | URL
늘 감사합니다 ㅋㅋㅋ 체다치즈 고다치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