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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이 떠난 거리 - 코로나 시대의 뉴욕 풍경
빌 헤이스 지음, 고영범 옮김 / 알마 / 2020년 9월
평점 :
-20260711 저자: 빌 헤이스.
스스럼없이 모여 하고 싶거나 해야 하는 걸 한다. 치킨과 함께 술을 마시든, 음악을 틀어놓고 땀에 푹 절어 운동을 하든, 원탁에 둘러앉아 회의를 하든.
아픈 사람의 동선이 낱낱이 밝혀지는 일은 없다. 집에서 나왔다고 경찰에 잡혀가지 않는다. 감히 코인노래방이나 헬스장에 갔다고, 정말 미쳤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미어터지는 지하철, 숨결이 닿을 거리에서 다들 휴대전화를 들고 각자의 세상에 빠져 있다. 아직도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대부분의 얼굴을 구경할 수 있다.
마스크를 사려고 줄을 설 필요가 없다. 이미 평생 쓰고도 남을 양이 집안 곳곳에 처박혀 있다. 초기에 나온 줄서서 사던 마스크들은 이걸 결국 쓰게 될까 싶게 모양도 안 예쁘고 숨도 더 답답하고 너무 커서 효과가 있을까 싶은데도 못 버리고 가지고 있다.
다들 손을 덜 씻는 것 같다. 손세정제를 일부러 쓰는 사람도 잘 없다. 문고리나 난간을 매일 소독제 묻은 직물로 문지르는 사람도 아마도 없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을 받은 아이들은 하루 이틀 정도 쉬고 열이 떨어지면 다음 날 조금 안 좋은 컨디션으로 등교를 한다. 마스크를 쓰는 아이도 있고 안 쓰고서 신나게 돌아다니는 아이도 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축구와 농구를 하고, 서로 들러붙어 장난을 친다.
대부분 우리가 뭔가를 할 수 없었던 날들을 잊은 것 같다. 그런 일이 없던 것처럼 일상을 누리고 살아간다. 불안과 공포는 모두 휘발되었다. 어떤 것들은 잊어야 살아진다. 바이러스는 도처에 가지가지가 있다. 무뎌지고 무던해진다. 코로나19 감염으로 가까운 사람을 잃었거나 일자리를 잃었거나 건강을 해친 사람들은 남들보다는 더 그때를 떠올릴 수는 있겠다.
그때의 나는. 불안과 무력감, 때론 공포. 그렇지만 인구밀도가 순식간에 낮아진 도시를 거니는 편안함이 공존했다. 가족 중 한 명이 확진이라는 연락을 받는 순간, 부랴부랴 짐을 싸서 독서실을 나오던 생각이 난다. 나중에 걸린 독감이 더 아팠던 것 같긴 하지만, 코로나19도 지독하게 아팠다. 왜인지 골반과 엉치뼈가 제일 아팠다. 냄새를 덜 맡게 된 건 예민한 나에게는 오히려 좋다는 생각을 했었다. 걸렸구나, 마침내. 이미 대유행 3년차에 접어들던 때라 백신도 마스크도 큰 소용 없이 한 번쯤은 걸리고야 마는 병이려니 했다.
십수년 전 이야기 떠올리듯 꺼낸 기억들이지만,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지금 내가 읽는 빌 헤이스의 책은 6년 전 코로나19 시대의 뉴욕을 기록한 책이다. 빌은 사람과 차로 붐비던 뉴욕의 거리가 몇 달 만에 텅 빈 모습을 전후 사진으로 대조하듯 찍어 놓았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걸 글로 쓰던 빌은 처음에는 답답했을 것 같다. 그러나 텅 빈 도시를 돌며 아직 있던 자리에 남아 나름대로 고안한 방식으로 책과 음식을 파는 사람들, 운동하는 군인들,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사람과 멀찍이나마 만나고, 문 닫은 곳곳을 사진과 글로 남겨 놓았다.
비슷한 일이 생기면 다들 조금은 더 침착할 수 있을까. 같은 방식으로 대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도 혐오와 탓하기는 남아 있겠다. 걸린 그들과 걸리지 않은 우리, 말 안 듣는 그들과 규칙을 준수하는 우리로 사람 사이를 긋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모두에게 같은 펜데믹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폭락했던 주식을 주워 담아 늘어난 유동성과 함께 부자가 되었고, 누군가는 굴뚝의 연기로 사라졌다. 빌은 최대한 다정한 도시 사람들을 추려 담아 놓았지만, 나는 겁에 질려 아무나 미워하던 사람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밑줄 긋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쓰는 거야-지적으로, 창조적으로, 비판적으로, 생각을 불러일으키도록-지금 이 시대에 사는 게 어떤 건지에 대해서. (31, 빌에게 올리버가 건넨 말.)
-우울증에 대해서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사항은 우울증을 ‘하나의 우울함’으로, 마치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인 것으로 다루지 말라는 것이다. 그 안에는 오랜 시간-어쩌면 평생-에 걸쳐 형성된 많은 부분들-비탄, 트라우마, 학대, 고립, 거부, 억울함, 돈 걱정, 경력 후퇴 등등이 들어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 두드러지는 단 한 부분에라도 초점을 맞출 수 있고 그걸 분리해낼 수 있다면-그래서 그 안에 들어 있던 진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말할 수 있게 된다면-그동안 지고 있던 짐은 현저히 가벼워진다. (54, 이 년 반 째 한 주에 한 번 상담을 받다가 코로나로 인해 줌 상담을 받게 된 빌의 말.)
-그리고 이 강요된 고독과 고요 속에서, 너는 때때로 네 생애의 어떤 순간들을 돌이켜보는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 말해진 것들과 말하지 않은 것들, 행해진 것들과 행하지 않은 것들, 표현된 사랑과 표현되지 않은 사랑, 네가 받은 그 모든 감사한 일들, 네가 느낀 그 모든 감사함. (88, 외로움과 고요가 공존하던 시절. 불안과 두려움도.)
-“안녕.”
“안녕.”
“당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중인 것 같아.”
“아냐, 안 잃어버렸어. 난 여기 있어.” 내가 말한다. (118)
-이 도시는 너무나 밀도가 높고, 너무나 긴장되어 있고, 너무나 촘촘하고, 너무나 스트레스가 심하고, 너무나 더럽고, 너무나 다양하고, 외부와의 접촉면이 너무나 거칠고, 다들 자신의 감정을 너무나 투명하게 드러내서, 이따금씩 낯선 사람의 도움을 얻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154, 내가 사는 곳이 뉴욕인 줄 몰랐다.)
-“해봐. 내 나이가 되면 내가 한 일 때문에 후회하진 않아. 안 한 것들 때문에 하게 되지.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나는 범죄자야.”
나는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그 말 기억할게요. 늙은 범죄자.” (200-201, 나이 차 많은 게이 커플의 다정한 대화.)
-이 망할 놈의 산 너머에는 과연 뭐가 있는지 보고 싶다. (204, 이 독후감의 전반부를 참조하세요 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