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 2 펭귄클래식 75
샬럿 브론테 지음, 류경희 옮김 / 펭귄클래식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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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260914 샬럿 브론테.

1권의 두께와 변죽만 울리는 비밀에 질렸다면 독자들이시어, 2권은 온갖 사건이 빵빵 터져 읽는 재미가 더 있습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시길.

말한 대로 2권 읽기가 조금 더 재미있었다. 우연히 헤매다 친척들로부터 구원받고, 갑자기 혈연이 거액의 유산을 남겨주는 건 밤나무 쪼개버린 벼락보다 낮은 확률이겠지만, 결혼식 날 사실 신랑감에겐 미친 부인이 있었다, 맨몸 알거지로 손필드 장을 나와 굶어 지쳐 죽어버릴 뻔했다, 광신 사제가 강제로 부인 만들어 인도 끌고 가려고 했다, 그리고 유년기의 고생까지 더하면 그 정도 행운은 줘도 좋았다. 소설 속에서나마 그렇게 망할 뻔한 인생 행복하게 해주면 좋지. 역시나 망한 인생이던 로체스터가 이제 부와 힘이 역전된 제인 에어의 선택으로 구원 받는 것도 자기가 좋다는데 좋은 방향으로 갔으면 됐다.

풍경과 심리 묘사가 치밀했고 그래서 분량이 많아서 읽긴 힘들었지만, 거의 이백 년 전 이런 서사로 독자들이 도파민 터졌을 것 생각하면, 심지어 거의 이백 년 후의 독자인 나도 다른 재미 거리 마다하고 주말 내 읽었으니 그래서 고전이구나, 끄덕이게 되었다.

다치고 몸이 불편해진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서로의 행복을 키워나갈 수 있다면 복된 인생일 것이다. 슬프게도 현실에서는 둘 중 하나 혹은 둘다 마음이 지치고 사랑은 휘발되어 끊어지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지옥을 견디는 관계가 많다. 정말 행복한 사람들은 어디 둘만 꼭꼭 숨어서 잘 지내느라 소설 속 이야기처럼 소문 나지 않을 것이다.

자립 자조를 외치는 제인의 이야기는 당시의 여성들에게는 환상의 환타지였을 텐데, 지금은 제법 많은 사람들이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삶을 선택하고 있다. 어쩜 제인처럼 구원자가 되는 숭고한 영혼들도 어딘가는 있겠지. 건투를 빈다. 나는 그냥 제인에게 이입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만한 파란만장과 불행의 롤러코스터를 탈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뭔가를 최대한 선택하지 않는 삶이었으면.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고 싶다. 내 영혼은 그렇게 맑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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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새가 아닙니다. 어떤 그물망으로도 저를 잡을 수 없습니다. 저는 독자적인 의지를 가진 자유인입니다. 그 의지를 지금 발휘해서 떠나려고 하는 겁니다.”
다시 한번 애를 써야 자유로워질 터였다. 나는 그의 앞에 똑바로 몸을 세우고 꼿꼿이 섰다.
“그렇다면 당신의 그 의지가 당신의 운명도 결정할 거요.” 그가 말했다. “당신에게 내 손과 내 가슴과 내 재산의 일정 몫을 주겠소.” (제인은 새장에 갇힌 새이길 거부한다.)

-“나의 제인을 공단 천과 레이스로 차려입히고 머리엔 장미꽃을 꽂게 하겠소.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 머리는 더없이 귀한 베일로 덮어주겠소.”
“그러면 저를 못 알아보실 거예요, 주인님. 그리고 저는 더 이상 주인님의 제인 에어가 아니라 어릿광대 옷을 입은 원숭이에 불과할 거고요. 빌려온 깃털을 뒤집어쓴 어치 새일 거예요. (어치가 성질이 더럽다고 한다. 제인은 계속 새 취급 받길 거부한다.)

-그가 내게 더 많은 물건들을 사줄수록 성가시기도 하고 타락한다는 생각이 들어 내 뺨은 점점 더 달아올랐다.(자본주의에 굴하지 않는 저런 영혼이면 좋겠다.)

-“저는 노예가 될 바로 그 사람들과 주인님의 그 후궁 거주자들에게 자유를 가르치는 선교사가 되어 나갈 준비를 하겠습니다. 아마 저는 그 후궁에 입장이 허락되겠지요. 그러면 반란을 선동하겠어요. 그렇게 되면 말 꼬리가 세 개 그려진 군기를 휘날리는 부대의 군사령관 격인 주인님께서는 순식간에 우리 손에 의해 족쇄가 채워져 구금될 것입니다.(반란의 제인2)

-미래의 아내가 자신과 남편이 함께 죽을 거라는 말을 하다니요. 그런 이교도적 발상이 의미하는 바가 뭐였을까요? 저 같으면 남편과 함께 죽을 생각이 전혀 없어요.(제인 에어 명언집 같은 거에 들어갈 만한 말)

-그의 손은 이미 로체스터 씨를 향해 내민 상태였고, 그의 입술은 이미 “그대는 이 여자를 그대의 아내로 맞겠습니까?”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가까운 곳에 있던 누군가가 또렷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 결혼은 계속해서는 안 됩니다. 혼인 장애 사유가 있음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이 결혼 무효야!의 원조)

-“안 돼, 네 혼자 힘으로 떨어져 나가야 해. 누구도 널 도와주지 않아. 네 스스로 네 오른쪽 눈을 뽑아야 해. 네 스스로 네 오른손을 잘라내야 해. 네 심장이 희생물이 되어야 해. 네가 사제가 되어 네 심장에 못을 박아야 해.”(눈이 빠지고 손이 잘리는 건 로체스터의 복선인 것 같기도. 제인은 그렇게나 힘든 이별을 스스로 선택한다.)

-나는 나를 그토록 사랑해 준 사람을 절대적으로 숭배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사랑과 숭배의 대상인 우상을 버려야만 했다. 우울하기 짝이 없는 한 단어에 견딜 수 없는 내 의무가 담겨 있었다. ‘떠나!’라는 단어였다.(단호한 헤어질 결심.)

-내가 나 스스로를 보살필 거야. 더 외로울수록, 홀로 남겨질수록, 의지할 이가 없을수록 나는 나 자신을 더 소중하게 여길 거야.(갖추고 싶은 미덕)

-나는 다시 한번 보통의 소화 기능을 지닌 사람이 백여 가지 산해진미가 차려진 잔칫상을 혼자 받았을 때 느꼈을 감정을 느꼈다.(로또 당첨되도 거북한 이 맑은 영혼)

-나 역시 여동생은 필요하지 않아요. 아내를 원합니다. 평생 동안 내가 유효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절대적인 내 소유물로 보유할 수 있는 유일한 협력자를 원합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몸서리가 쳐졌다. 골수까지 그의 영향력이 느껴졌고, 내 사지마저 그가 꽉 움켜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로체스터나 리버스나 제인을 소유하고 지배할 생각만 했다. 제인은 그걸 알고 다 떨궈냈다.)

-그러나 그의 아내로서 가게 된다면 나는 늘 그의 옆을 지키면서 늘 억눌리고 늘 억압당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내 타고난 열정의 불꽃을 끊임없이, 억지로 낮게 타오르게 만들어야 하고, 안에서만 타오르도록 강요해야 하고, 비명 소리 한마디 내지르지 못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었다. 감옥에 갇힌 거나 매한가지인 그 불꽃이 내 안의 핵심 장기들을 하나둘씩 다 소진해 버린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런 일은 정말로 견딜 수 없는 일일 것이었다. (사랑 없이 결혼과 선교행을 요구하는 리버스 오만 정이 뚝 떨어졌다. 결국 제인은 로체스터의 곁에서 늘 그의 옆을 지키게 되지만 그건 제인의 의지 대로 사랑이라서 선택한 것이고 누구 말릴 일가도 없었지만 하여간에 행복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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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1 펭귄클래식 74
샬럿 브론테 지음, 류경희 옮김 / 펭귄클래식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20260912 저자: 샬럿 브론테.

과외 선생이 된다는 건 모르는 가정 안에 풍덩 들어간다는 뜻이다. 공부 공간이 좁고 답답한 발코니인데 그 안에 책상을 놓고 이혼한 제 아빠(이름으로 칭해짐)를 쏙 빼닮았다는 아이 얼굴에 관한 품평을 들은 뒤 문이 닫히고. 엄마가 아빠와 싸우고 집을 나가서 아직 안 들어왔다고 걱정하는 두 남매를 보고(엄마는 내가 과외 끝나는 시간에 딱 맞춰 장 본 걸 들고 들어오셨다). 일본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라다가 건너온 아이는 한국이 아직도 낯설고, 거실에 앉은 남자 어른을 보고 아빠니? 했더니 아빠 아니에요! 꽥 소리지르기도 하고. 열이 펄펄 끓는 아이에게 수업 대신 타이레놀을 먹이고 자리에 눕혀 재우고 돌아오기도 하고. 엄마와 말이 안 통해 말티즈 강아지를 동생처럼 끌어안고 하늘아, 하는 걸 떼어놓고 책상 앞에 앉혀야 하고. 엄마가 맛있는 배달 점심 식사와 체리나 골드키위 같은 당시엔 비싼 과일을 간식으로 주면서 시험 공부를 하라고 선생과 아이를 방안에 다섯 시간 가두기(?)도 하고. 면접만 갔던 집에 애아빠가 이상한 질문과 반응만 해대서(아마도 정신질환자였다) 아이가 울상으로 아빠, 하고 말리던 기억…
나는 그다지 길게 맡은 학생이 없었기 때문에 만난 학생 수가 많았고, 특이한 부모와 온갖 가정사를 마주한 날이 많았다.

고아로 외삼촌이 돌아가신 외숙모 집에서 학대 당하며 머물던 어린 제인 에어도 로우드 학교를 거쳐 로체스터의 손필드 장에 가정교사로 들어가면서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더구나 18세의 입주 가정교사란, 이 집을 나가면 거처할 곳 없는 신세란, 그런데 나보다 나이가 두 배보다 더 많은 권위주의적인 학생의 아버지가 술에 취해 횡설수설 말을 걸어온다면, 나는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제인 에어의 타고난 기질과 유소년기에 지독한 더부살이를 한 탓에 형성된 체념과 고집이 그나마 어떤 사람을 겪든 잘 참고 지나가게 하는 듯보였다. 나는 그게 안 되서 힘들다. 학생이 힘들고 학부모가 힘들고 동료들이 힘들다.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소수의 무례하고 추궁해대기 바쁜 사람들 때문에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렇지만 가정교사 제인 에어를 생각해 봐, 퇴근이라는 게 사실상 없다!

점점 가정교사는 아이만 가르치고 돌보는 것이 아니라, 손님 맞이 음식 준비도 거들고, 응접실에서 노다거리는 귀하신 분들의 병풍도 되어주고, 방화의 불길도 잡고, 뭔가의 공격으로 피투성이가 된 로체스터의 친구 간호도 밤새 해주고, 결정적으로 변덕스럽고 혼란스러운 주인의 말벗이 되어 본인까지 혼란스러워지고 만다. 그렇지만 두들겨 패는 외사촌 외의 남자 사람이랑 이렇게 오래 같이 지내본 것도 처음이고, 그 남자가 자꾸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네가 필요해, 하면서 애절하게 굴고, 그러면 그런 상황에서 엉뚱하게도 사랑의 감정이 솟아나기도 한다.

생각보다 이 소설의 장르는 미스터리/공포/스릴러에 가까웠다. 고딕 어쩌구… 그러니까 애기 때 축약판으로 보고 기억한 다락방의 미친 여자 나오는 책인 것도 틀리진 않은데 이미 알고 보려니까 막 두근거리는 느낌이 없는 건 좀 아쉽다.

로체스터의 -하오체는 많이 어색하고 짜친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인이 주인님 거리는 것도 거슬리지만 그게 둘의 고용-피고용 권력 관계를 잘 보여주는 호칭이기도 하니까, 집주인 맞으니까 뭐 여기서는 내가 체념하기로 했다.

갑자기 제인 에어를 읽게 된 건 에이드리언 리치의 서평을 읽어서이다. 폭풍의 언덕보다 제인 에어가 나아, 하는 그 말을 확인하려면 남은 제인 에어2권과 폭풍의 언덕도 봐야 한다. 고전이란...두께 참… 그래도 이렇게 두껍게 이야기를 계속 토해내는 게 보통 일이 아닌 건 알겠으니, 이미 리치 선생한테 엄청 스포일러 당했지만 묵묵히 읽긴 읽어야겠다.

+밑줄 긋기
-왜 나는 늘 고통을 겪고, 늘 험상궂은 표정으로 위협받고, 늘 욕을 먹고, 영원히 비난받아야만 했던가? 왜 나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지 못했던가? 왜 내가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기 위해 애쓰면 아무 소용이 없었던가?(열 살에 이런 의문으로 고통 받는 건 좀 가혹하다. 그런데 내 열 살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기분이다.)

-나는 내 신분을 희생해 자유를 사고 싶을 정도로 담대한 용기를 지닌 사람이 아니었다.(리드 집안에서 쫓겨나면 갈데 없고 먹고 살 길 없어...그런 시대도 있고 여전히 그런 사람도 있긴 하니까…)

-인간이란 본래 반드시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하는 존재다. 그런 사랑을 베풀 만한 보다 가치 있는 대상이 없던 나로서는 작은 허수아비처럼 색 바래고 남루해진 조각 인형을 그저 사랑하고 아끼는 데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애를 쓸 뿐이었다.(그래서인가 너 커서 내 보기엔 망가진 허수아비 같은 남자한테 막 사랑에 빠지고 그래…)

-‘모두들 리드 부인이 내 은인이라고 말하고 있어. 그렇다면 은인이란 불쾌하기 짝이 없는 존재일 거야.’

-나는 난생처음으로 복수 비슷한 감정을 맛보았다. 그 맛은 삼키면 따뜻하고 풍미 넘치는 포도주처럼 향기로운 맛이었다. 그러나 쇠붙이 냄새나 뭔가 부식하는 듯한 냄새가 나는 그 뒷맛은, 독극물을 먹은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복수 시리즈만 보았지, 저런 비슷한 감정은 느낀 적이 있던가...생각보다 아예 나쁜 놈으로 살진 않았나 봄)

-“하지만 피할 길이 없다면 참는 게 네 의무일 거야. 어쩔 수 없이 참는 게 네 운명인 일을 ‘난 못 참아.’라고 말한다면 그건 나약하고 어리석은 짓이야.”(병에 걸려 얼마 후 세상을 떠날 아직 어린 아이 헬렌이 이런 달관을 한 게 씁쓸했다. 나도 잘 못 참는 ‘못 참아…’)

-내 본성 안에는 한곳에 안착하지 못하는 들뜬 심정이 내재해 있었다. 어떤 때는 그런 심정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마음을 교란했다.(동아시아인들은 그걸 역마살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영국엔 그런 이름이 없었나 보다.)

-인간이란 평온한 삶에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건 헛된 일이다. 인간은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런 활동을 찾을 수 없으면 만들어낸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운명보다도 더 정적인 운명에 처해지고 있지만,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에 대해 무언의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반란의 제인)

-나는 서서히 그런 삶이 지닌 안정되고 편안한 특권적 가치를 고마워하지 않는 심리 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런 시점에서 차라리 불확실할지언정 전력을 다해 발버둥 치며 분투하는 폭풍우 속에 내던져진 삶을 살았더라면, 그리고 거칠고 험하고 고통스러운 체험을 통해 지금 내가 그 한가운데서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 평온한 삶을 갈망하는 법을 깨닫게 되었더라면, 내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겠는가!(폭풍우 그거 굳이 왜...좋지 않아…)

-“주인님, 방금 제게 ‘카도’를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가르치는 학생의 향상에 대한 칭찬이야말로 선생님들이 가장 탐내는 보상이지요.”(난 일찍부터 싼타 할아버지 따위 믿지 않았어)

-그런 변덕스러운 기분 상태가 내 기분을 상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그런 변화무쌍한 기분이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고, 그런 감정의 기복이 나와 전혀 무관한 원인에 기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득도한 스님 같은 마음 가짐. 그러나 말만 그러고 결국 남의 감정 기복에 휩쓸리고 마는 제인...)

-“저는요, 주인님. 주인님께서 저보다 나이가 많다거나 세상 구경을 더 많이 하셨다는 이유로 제게 명령할 권리를 가지셨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할 권리는 선생님께서 그 시간과 경험을 어떻게 사용했느냐에 달려 있지요.”(꼬박꼬박 말대꾸 잘해서 마음에 드는 제인. 대개는 벌받고 짤리고 할 건데 로체스터 ‘나한테 이런 사람 너가 처음이야’를 시전하는 듯)

-당신이 설령 다른 대다수 사람들과 비교하여 다른 틀에 넣어져 만들어진 것 같은 성격의 소유자이더라도 그건 당신 자신의 공이 아니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요.(집주인 아저씨는 가끔 짜치는 말투로 바른 말도 하긴 함)

-당신에게서 언뜻언뜻 조밀한 새장 창살 사이로 호기심에 가득 찬 시선을 던지고 있는 새 모습을 보게 되오. 활기차고, 들떠 있고, 결연한 포로처럼 갇혀 있는 새 말이오. 자유롭게 풀려나기만 하면 그 새는 구름처럼 훨훨 높이 날아오를 거요. 여전히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소?(나도 새야.)

-그러니 앞으로는 계속해서 우리 두 사람이 영원히 단절되어 있다는 말을 반복해야만 해.─하지만 살아 숨 쉬고 생각할 수 있는 한 나는 분명히 그 사람을 사랑할 거야.(이루지 못할 사랑을 놓지 못하는 마음. 그거 이 중년한테는 너무 희미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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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에서 인류애로 - 성적 지향과 헌법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강동혁 옮김, 게이법조회 해제 / 뿌리와이파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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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0 저자: 마사 누스바움.

미선이-Sam
https://youtu.be/CLXroGPSNds

원서는 2010년, 번역서는 2016년에 나온 책을 2026년에 읽었다. 2000년대 초반 섹스앤더시티에 나오던 게이 친구들은 2020년대 앤저스트라이크댓에도 여전히 등장하고, 심지어 앙숙이던 앤서니와 스탠포드는 결혼식을 올린다. 거기에 LGBT+, 다양한 인종과 문화 배경의 인물들이 추가되었다. 미국은 확실히 변하고 있고, 그게 문화 컨텐츠에도 반영이 된듯하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는 워낙 안 보다보니 어떤지 모르겠다. 박상영의 소설을 원작으로 드라마가 나왔다는 소식은 들었다. 트랜스젠더 유튜버가 텔레비전 예능에 출현하는 것도 알았다. 그렇지만 커밍아웃하고 연예계 활동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문화 예술계만 그럴까, 온 일상 자체가 아직 비주류라고 스스로를 드러내기에는 너무도 모질고, 냉랭한 편견과 혐오가 깔려 있다.

연방 헌법과 주 헌법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판례를 통해 이 책은 자유와 평등을 누릴 대상에서 성소수자가 제외될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잘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막연한 징그러움, 혐오의 형태를 근원적 혐오-주로 죽음이나 더러움에서 느끼는-를 다른 대상에게 덮어 씌워 버리는 투사적 혐오라는 말로 표현한다. 혐오에 관한 이야기는 사회학이나 심리학, 철학에서 더 파고들만한 주제 같다. 이 책은 법철학, 법윤리에 더 초점을 맞춰서 혐오에 관한 부분은 논의에 필요한 최소한만 다룬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그 정도로도 자신과 다른 존재들에게 선을 긋고 그들보다 더 우월하고 안전하고 깨끗하고 안심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는 충분히 설명된 것 같다.

특정 사람들이 비범죄화 되고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과정을 인종 문제에서 많이 유비하고 있었다. 형식적인 법률 면에서 미국은 인종주의를 많이 극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흑인을 범죄자 취급하거나, 아시안을 멸시하는 풍토는 여전하다. 우리 나라도 이주 노동자나 결혼 이주민과 그 자녀에 대한 차별을 문제 삼고 공론화도 많이 되지만, 현실은 여전히 ‘그들’에게 가혹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이지 남들과 다른 존재에게 무자비하다. 하물며 성소수자라면 대놓고 혐오하고 타도할 대상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주로 일부 종교계가 그렇다.
이미 아이들 때부터 패거리 문화가 인종이나 성적 지향이 아니더라도 조금 다르다 싶은 아이들을 얼마나 소외시키고 괴롭히는지 모른다. 끝없이 차별 금지, 평등, 인권, 존중 같은 걸 입에 올리지만, 자괴감이 든다. 이게 대체 무슨 소용일까 싶다. 인간 자체가 갈라치기에 너무 특화된 종족 같다. 부모가 그렇게 키우고, 또래집단에서, 미디어에서 남을 혐오하는 태도를 점점 강화한다. 학교가 말뿐인 인권교육을 하고 있을 뿐, 이게 교육으로 되는 문제인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다.

인류애라는 말은 참 아름답다. 그렇지만 주로 ‘인류애가 사라진다’하는 표현에서나 접할 만큼 아득하다. 나도 점점 인간 혐오로 가는 기분이다. 이토록 비슷한데, 또 이토록 다른 인간들이 같이 평화롭게 사는 일은 아직도 어렵다. 지상 평등 낙원이라 할 나라가 어디 있기는 있는 걸까? 없다는 데 더 치우치는 마음이지만 우리가 향해야 할 방향인 건 알겠다.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약 같은 걸 수돗물에 타고 싶다. 미워하면 저절로 이유를 만드는 뇌들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게 슬프고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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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에 대한 사법적 존중은 또한 이성에 따른 정치라는 근본적 패러다임마저 깨뜨린다. 적의에 대한 반응으로 만들어진 법에는 이성적 기초가 없기 때문이다. (23)

-이와 같은 헌법의 정치적 태도는 반집단주의적이다. 이에 따르면, 타인에게 해를 끼치거나 국가 전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것이 분명한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다수의 이익이 개인의 기본권에 우선할 수 없다. 이 정치적 입장은 좌파와 우파 사이의 대치와는 다른 것으로, 좌파의 집단주의나 우파의 집단주의 모두와 대비되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입장이다.(26)

-사람들이 자신의 냄새나고 부패해가며 너무나도 인간적인 신체에 대해 느끼는 불편감은 도처에서 일관적으로 외부에 투사되어 왔다. 공동체의 오물 역할을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그 불편감을 투사함으로써 지배적인 집단은 자신을 깨끗하고 천상적인 존재라고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4)

-혐오스러운 동물성의 세계와 ‘나’사이에 준-인간이 존재한다면, ‘나’는 필멸하는/부패하는/냄새나는/진액이 흘러나오는 것들로부터 그만큼 떨어져 있게 되는 셈이다. 진짜 위험과 신뢰할 만한 연관관계가 거의 없는 이 투사적 혐오는 망상을 먹고 자라며 예속을 만들어낸다. 혐오가 자신을 순수한 것으로, 타자를 더러운 것으로 표상하려는 뿌리 깊은 인간적 필요에 봉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필요가 사회를 공정하게 만드는지는 대단히 의심스럽다. 오히려 이러한 전략은 사회의 공정성을 해친다. (55)

-평등한 자연권은 덕이 있는 사람이나 특정한 사회 규범에 따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73)

-삶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탐색을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79, 종교와 양심의 자유)

-표면적인 대칭성을 넘어, 다양한 집단에 속하는 시민들이 살면서 무언가를 추구하려 할 때 실제로 어떤 기회를 누릴 수 있느냐를 엄격히 검토할 때에만 우리는 법이 시민들을 진정으로 평등하게 존중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84, 실질적 평등)

-혐오에 차 있는 사람들은 타인을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한 인간으로 보지 않기에 그들을 존중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90)

-‘혐오의 정치’로부터 ‘인류에의 정치’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라는, 보다 일반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 본질적으로, 이는 집단을 앞세우는 사람과 개인적 자유의 영역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늘 있어온 해묵은 논쟁이다. 이를 좌우의 이념대립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105)

-그러므로 “당신은 결혼할 수 없소”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은 미국식 인생 주기를 결정짓는 의례 중 하나에서 완전히 배제됨을 의미한다. (185)

-사람들은 국가가 기혼자들에게 법적으로 제공하는 갖은 특권을 누리기 위해, 다시 말하면 결혼을 하기 위해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증명을 할 필요가 없다. 유죄판결을 받은 중죄인들, 양육비를 지불하는 데에 실패한 이혼 부모들, 가정폭력 전과가 있거나 감정적 학대의 전과가 있는 사람들, 불량납세자들, 마약중독자들, 강간범, 살인범, 인종차별주의자나 반유대주의자들처럼 편견에 찌든 사람들도 결혼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기만 하면 모두 결혼할 수 있다. 실제로 헌법은 이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만 먹으면 결혼할 수 있는 기본권을 보장한다. 어쨌거나 이성과 결혼하는 경우에는 말이다. (188-189)

-(그러나 중혼에 반대하는 법적 주장들은 극도로 취약하다. 일부다처제 혼인권을 제약할 만큼 강력한 국가의 법익은 성 평등에 따르는 이익이라지만, 만일 그렇다면 다부다처제에 따른 결혼은 허용되어야 한다.)(221)

-성행위에 따르는 건강상의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결정은 과식이나 흡연, 등산처럼 자신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리겠다는 다른 모든 결정과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한다. 이 모든 결정은 개인이 스스로 내리는 것으로서, 그 결과로 인해 타인의 권리가 침해되는 경우에만 범죄가 된다. (277, 이 책 내내 소중히 다뤄지는 자유와 평등. 어떤 행위나 관계들은 거기에서 예외 취급을 받아 행복 추구가 어려워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 전체에서 다룬 것처럼 혐오란 이면에 여러 형태의 낙인과 위계질서를 감추고 있는, 신뢰할 수 없는 힘이다. 혐오는 마치 피해처럼 작용하는 경우에 한해, 전통적인 생활방해법이 설정한 기준에 따라 입법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278)

-혐오의 정치는 우리가 무엇을 통제하고 싶어하는지, 또 무엇을 통제하지 않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통제의 이유에 대해서조차도 명료히 생각하지 못하돌록 방해해왔다. 이 분야에서의 사유가 그토록 엉성했던 또 한 가지 이유는 엉망진창인 “사생활” 개념과 그 한계 때문이기도 했다. (280)

-헌법은 사회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감각을 표현한다. 자유와 평등은 무엇이며, 기본권을 갖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개념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자유와 평등, 두 영역 모두에서 어느 정도 보호되는 구역을 갖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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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에이드리언 리치 지음, 이주혜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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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6 저자: 에이드리언 리치.



식구들과 망고와 초콜릿을 나누어 먹었다. 냉장고가 고장나 녹은 냉동망고와 피비상품인 다크초콜릿이었다. 여기보다 여름이 더 뜨거웠을, 아직 뜨거울 지역에서 주재료가 만들어졌다. 어쩌면 그곳까지 케이팝이나 한국산 반도체가 탑재된 전자기기는 닿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세계는 기우뚱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쁜 놈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이분법을 생각한다. 나쁜 놈이 힘을 잡았을 때는 타도할 권력, 되찾아야 할 민주주의, 항의와 선언이 이어진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토록 정의롭다. 문제는 나쁜 놈이 밀려나고 난 뒤이다. 사적 이익을 위한 권력 남용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자본주의의 냉혹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원하는 자유란 앞에 ‘경제적’이 붙은, 자산가가 되는 꿈이다. 나쁜 놈의 반대편이 힘을 가진 사회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외치기는 겸연쩍은 모양이다. 이것도 금지된 침묵일까. 나쁜 놈에 반대하는 오롯이 착한 놈은 존재하지 않는다. 잘못과 삭제와 억압과 차별에 대항하는 목소리는 어느 시대이건 계속되어야 한다.

에이드리언 리치는 그렇게 계속 목소리 내길 주저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모성이나 이성애를 강제된 제도, 학습된 것으로 보는 관점은 참신했다. 인종 문제, 유대인 정체성 같은 차별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 보였고, 시인이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일, 무엇이 이 미친 세상에 내놓아야 할 시인지도 계속 질문하고 있었다. 자신이 걸쳐져 있는 교차성에 대해 끝없이 고민한 흔적이 보였다.
동의하는 주장도 있었고, 특정 사람들을 삭제시키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을 삭제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 레즈비언이 찐 사랑, 이성애는 너희들이 속고 있는 거야! 게이 때문에 레즈비언이 그 대칭처럼 오해받는 거야! 하는 건 사랑에 대한 관점이 너무 좁고, 그외의 사람들을 모두 망했다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읽게 된 건 ‘자두’라는 소설 안에 이주혜 작가가 자신이 번역한 이 책에 대해 언급했기 때문이다. 어디서 주워들었지만 에이드리언 리치는 세 아들을 낳았고, 순서는 모르겠지만 레즈비언 정체성을 찾았고 아마도 이혼했고 남편은 자살했다는 것만 기억에 남았다. 산문집이라니까 그냥 막연히 페미니스트 작가로군, 사회운동가로군, 했는데 시작은 시인이었다. 시가 해야 할 일을 여러 글에서 반복해서 이야기하는데, 시를 가끔 읽지만 현대 시는 해방 세상에 대한 시는 프로파간다라고, 문학계에서 쳐주지 않는 건지, 그런 시가 별로 없는 건지 어찌되었든 나에게는 그런 목소리가 닿은 적은 드물었다. 어쩌면 담겨있는데 그걸 읽어내지 못했었을 수도 있다. 자본주의 비트는 시 정도는 읽었던 것 같다. 이런 걸 따지기에는 시를 별로 안 읽었다.

초콜릿 조각을 똑같이 나눠먹는 기계적 평등이나 실천하는 나란 인간은 집안 내 권력 구조가 존재하는 것도 대충 알겠고(내가 최상위 포식자, 폭군이다) 그렇게 누가 시키지도 않은 가부장 노릇과 모성과 이성애가 비벼져 있어서 그런지(그런데 이성애 동성애로 나누는 자체가 성 정체성을 스펙트럼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막 읽을 때 사이다 같거나 내가 향해야 할 방향을 이끌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혹시...하고 여성주의 책을 오랜만에 펼쳤다가 아 안 되네 나란 놈 설득이 안 되네… 하는 게 반복이다. 동시에 마사 너스바움의 ‘혐오에서 인류애로’(헌법과 판례를 들어 동성애자-주로 게이- 차별 멈춰! 하는 책이다)를 읽다보니 둘다 평등 세상 꿈꾸는 건 같은데 왜 사이는 안 좋은가 싶었다. 사이좋게 지내자, 우적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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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이 못마땅하게 느끼는 점은 로체스터의 관능성이 아니라 제인을 자신의 대상이자 창조물로 삼으려고 하고, 아낌없이 보석을 줘가며 제인을 꾸미고 싶어하고, 다른 이미지로 재창조하려고 하는 그의 경향성이다. 제인은 미인이나 요염한 여자로 낭만화되는 것을 격렬하게 거부하며 그에게 하렘의 일원이 되지 않겠다고 말한다.(67)

-내가 가난하고, 미천하고, 못생기고, 몸집이 작다고 해서 영혼도 감정도 없는 줄 아세요? 틀렸어요! 나도 당신처럼 영혼이 있고 감정도 풍부해요!(…)나는 지금 관습이나 인습을 통해, 또는 육체를 통해 당신에게 말하는 게 아니에요. 내 정신이 당신의 정신을 향해 말하는 거예요. 마치 우리 둘 다 무덤을 지나 하느님의 발치에 서 있을 때처럼 평등하게, 그리고 지금처럼 평등하게요! (68-69, 초2때 그저 다락방의 미친 여자 나오는 공포소설로 읽었던 제인에어를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안 읽은 폭풍의 언덕도 같이… 리치는 이런 인용된 구절들을 들어 앞의 소설을 더 높게 친다.)

-이 작가에게 인간관계란 ‘고통스러운 수치심이나 풀죽은 굴욕감을 느끼지 않는’사람들 사이의 거래, 그리고 누구도 타인에게 이용 가능한 대상이 되지 않는 거래를 말한다. (75, 그 반대의 것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예속, 종속, 억압...)

-붕괴는 한순간의 행위가 아니다
근본적인 중단
무너짐의 과정은
조직적인 부패다

영혼에 지은 최초의 거미집이고
먼지의 표피이고
축을 뚫고 들어가는 벌레이고
기본적인 녹이다-

멸망은 형식적인-악마의 작품
연속적이고 느릿한-
한순간의 실패는-어떤 인간도 하지 않는다
미끄러지기는-충돌의 법칙 (115, 에밀리 디킨슨을 리치 선생님이 소개시켜줬는데 나는 여전히 시를 잘 모른다. 뮤리엘 루카이저는 저자가 꼭 읽어보라 해서 검색해보니 번역 시가 없다.)

-마지막으로, 또 한 번의 결혼을 위해 아내와 딸의 곁을 떠나놓고 그들의 이름을 시집의 제목에 가져다 쓰고, 버림받은 스트레스와 고통으로 써 내려간 전 부인의 편지를 이용해 새 아내에게 바친 시집을 묶어낸 시인에 대해 혹자는 뭐라고 말할까?(…)대체 무슨 목적으로? 시 속에 편지를 삽입한 것은 나로선 전례를 떠올릴 수도 없는, 시의 역사상 가장 앙심으로 무장한 비열한 행위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고, 이러한 행동을 가능하게 한 그 부적절한 에고는 로웰의 시집 세 권 모두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123-124, 로웰의 시집을 무자비하게 까기 위해 강한 어조로 비판을 했는데, 미발표 산문이다. 인용할 때 허락을 구하고 신중해야 하는 것)

-‘어머니’에게 아이는 최소한 9개월, 종종 몇 년까지 이어지는 지속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어머니 됨은 처음에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렬한 통과의례-임신과 출산-를 통해서, 그다음은 양육의 학습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지 본능적으로 생기지 않는다. (128, 겪지 않으면 잘 모를 배움.)

-가부장제에서 집단 아동 돌봄의 목적은 단 두 가지다. 첫째, 경제개발 중이거나 전쟁 중에 수많은 여성을 노동력으로 유입하려는 목적, 둘째, 미래 시민을 세뇌하려는 목적이다. (131, 공교육과 사교육도 두 가지 목적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

-‘이 문제가 다른 여성들에게도 유효한가?’(133)

-모성 제도 아래서 모든 어머니는 어느 정도는 아이에게 잘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느낀다.(172)

-‘아이 없는 여자’와 ‘어머니’는 잘못된 양극화로, 모성과 이성애 제도에 복무한다. 이렇게 단순한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212)

-부모 노릇이라는 말이 사실은 한쪽 부모인 어머니의 역할을 뜻하는 것처럼 특별하고 중요한 현실을 은폐하듯, 게이라는 용어도 페미니즘과 여성 집단의 자유를 위해 중요하게 분별할 필요가 있는 윤곽을 흐리게 만드는 목적에 복무할 수 있다. (263, 이건 좀 너무 갔다 싶었다. 특정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너네 존재 자체가 우리까지 너네 유사품으로 만들어서 문제야, 하는 건 퀴어라는 말로 묶지 마, 니들도 남자니까 하여간에 나빠 하는 걸로 읽힌다.)

-1976년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브뤼셀 국제재판소는 ‘강제적 이성애’를 ‘여성 대상 범죄’ 중 하나로 지정했다. (267, 두 사례가 덧붙는다.)

-그보다 우리는 모든 성애의 삶이 하나의 연속체이며, 남성과의 관계도 포함하는 연속체라는 복잡한 사회적 모델을 가정합니다. (280, 이성애를 하나의 제도로 보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거짓 의식을 강요 받은 결과물이라고 주장하는 리치 선생에게 샤론, 크리스, 앤이 반박하는 편지글을 위의 내용을 담아 보냈다. 리치 선생도 자신의 의도와 바람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인생에 흥미와 의미가 가득하다고 믿었던 나 역시 어떤 것 때문에 죽은 자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즉, 그들은 운명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 금기가 되어버린 이름,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정체성 때문에 죽었다. (296, 그런 금기의 존재는 다양하다.)

-아름다운 언어도 거짓말을 할 수 있고, 억압자의 언어가 때로는 아름답게 들릴 수 있음을 아는 시인. (317, 윤리적 예술, 윤리적 미학 이런 말이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논란의 영역이었다.)

-그 세계는 뒤집혀
왼족이 항상 오른쪽이고
그림자가 사실은 육체이며
우리는 밤새 깨어 있고,
천국은 바다의 깊이 만큼
얕고, 당신은 나를 사랑한다. (324, 엘리자베스 비숍의 시 인용. 마지막 줄 맴찢)

-이들(메리 울스톤크래프트, 시몬 드 보부아르, 제임스 볼드윈)은 ‘원래 그런 것’처럼 보였던 것들도 사실은 사회적 산물일 수 있고, 누구에게는 이로워도 누구에게는 불리할 수도 있으며, 이와 같은 산물도 얼마든지 비판하고 변화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343)

-‘진정한 변화는 원래 알고 있던 세계의 붕괴를, 정체성을 부여했던 모든 것의 상실을, 그리고 안전의 종말을 의미한다.’(344, 제임스 볼드윈을 인용)

-시는 우리 존재의 고통을 풀어줄 수 없다. 그러나 점점 쌓여가는 삶의 다급한 일들, 우리 스스로 등을 떠밀어 우리 것인 양 받아들인 거짓 욕구와 필요 아래 묻힌 욕망과 취향을 드러내줄 수는 있다. (369, 시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나는 남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을, 즉 자신으로 사는 자유를 가지게 되었다. 어쩌면 여성들도 가지고 있었을지 모른다. 다만 내가 몰랐을 뿐.(408)

-성애는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면서 얼마나 예리하고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442, 오드리 로드, ‘성애의 사용: 성애라는 힘’의 글이 각주로 인용되어 있다.)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 개인과 사회 권력의 관계, 개인과 집단적인 인간 경험의 대변동과의 관계는 언제나 가장 풍성하고 복잡한 질문이 될 것이다. 이때 숨은 질문은 다음과 같다. 개인적인 역사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신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 무엇을 알게 될까? 당신과 운명을 함께 한다고 믿는 사람은 누구인가? (475)

-그 작가의 사회적 정체성이 무엇이든, 작가는 글쓰기라는 행위의 본질상, 의사소통과 연결을 위해 애쓰는 사람, 언어를 통해 옥타비오 파즈가 ‘잃어버린 공동체’라고 부른 것과 살아 있는 대화를 유지하고자 탐색하는 사람이다. 때때로 자신의 글이 병 속에 넣어 바다에 던질 쪽지처럼 느껴지더라도 말이다.(481)

-우리는 왜 파시스트의 통치 방식이, 시민권과 인권의 파괴가 여기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했을까? 한 국가로서 우리가 독단적인 가짜 순수에 집착하면서 우리나라의 상황, 우리 정치의 내출혈은 모른 척 눈을 감아 왔기 때문이다. (508, 독재자들을 지원하는 공화당과 민주당을 이란성 쌍생아 정당이라고 저자는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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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매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8
김금희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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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30 재독. 저자:김금희.


나의 책 9권 꼽아보기를 하며 몇 권을 쥐어짜던 나는 스스로 의심이 들었다. 내가 좋아한다던 책들이 사실 가물가물했다. 어떤 상징이거나 어렴풋한 느낌만 남았다. 그래서 김봉곤, 김금희의 소설을 꺼내 보았다. ‘생명의 도약’이나 ‘감각 환각 착각’ 같은 과학책은 확인하는데 조금 더 오래 걸릴 테니까. 아마 다시 안 볼 수도 있고.

다 저녁 때 이거 오늘 다 읽겠네, 할 만큼 김금희의 중편 소설은 폭이 손가락 한 뼘 쯤 되고, 페이지는 다 떼고 소설만 보면 124쪽 안에서 끝났다. 다시 읽으며 아주 초반과 아주 후반의 장면은 기억이 났지만, 내가 이 책을 읽긴 했었나 싶었다. 소설을 다시 읽을 때 그렇게 레드썬 하는 기분이 들면, 그게 또 약간 횡재한 것 같다. 재미있었다고, 잘 썼다고 생각만 남은 글이 다시 읽어도 재미있고 잘 쓴 그대로 있어서 다행이다. 변한 건 나였어!

읽는 나는 첫 번과 이번이 달랐다. 뭐라고 콕 찝어 설명할 수 없지만 하여간에 그렇다.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강처럼, 그 발도 사실 같은 발이 아닌 것이다. 매기와 재훈의 만남도 그랬다. 2002년 월드컵 광장을 스치던 그들과, 아마도 2016년 사람들이 광장으로 몰려가던 무렵 레이디치킨 2층에서 숨어서 만나는 그들은 같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또 흘러가는 건 비슷했다. 재훈은 찌질해보이지만 동시에 가여웠다. 이번에는 블룸 씨처럼 처용처럼 뭔가를 빼앗긴 양(그런데 그거 원래부터 네 거 아냐) 바쁜 남자가 아니라 이건 사랑, 연애, 하고 생각하려고 하지만 상대방의 조심조심으로 그게 잘 안 되어 이건 외도, 불륜, 하고 애정이 수치심으로 자꾸 치환되는 남자 화자의 율리시스였다. (서울, 순천, 제주, 부지런히 다닌다.) 김금희는 그런 걸 쓸 수 있는 작가였고 그래서 내가 좋아했다. 좋아한다.

+밑줄 긋기
-사랑은 프라이빗한 것이지만 쇼잉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그 마포구 와우산로17길에서 깨달았다. (11, 심지어 도로명주소야.)

-우리는 뭐든 그렇게 ‘축적’이라는 것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사진도 찍지 않았다. 둘이서 다정하게 카메라를 바라보는 일, 그것이 아무리 기계의 눈에 지나지 않더라도 그렇게 제삼의 눈을 바라보는 게 차마 못할 일이었다. (63, 사랑보다 깊은 상처가 많은 재훈. 매기가 좀 아깝다.)

-“그 순댓국집 아줌마에게서 왔지.”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을까?”
매기는 한동안 말해주지 않다가 우리를 그나마 예쁘게 봐준 사람이잖아, 라고 했다. (120, 매기의 전설. 손이(네일아트가) 예쁘다고 칭찬하던 아줌마의 노래 속에서 생겨났다.)

9권 꼽아보기
https://www.mytop9books.com/share/IhpCrjbn

2021년 겨울의 매기. 2026년 여름의 매기와 온도차가 있는 듯 없는 듯.
https://m.blog.naver.com/natf/222203545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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