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의 물질 -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발견하다
수지 시히 지음, 노승영 옮김 / 까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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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1 저자: 수지 시히.

겨울 경주 여행 때, KTX 신경주역에서 경주 시내로 들어서는 버스 바깥 풍경에 ‘양성자 가속기’란 글자가 새겨진 건물이 보였다. 나중에 찾아보니 방폐장 설치에 대한 지원 차원에서 양성자 가속기 연구소를 그곳에 설치했다고 했다. 원자의 구성 물질 중에 양성자가 있다 정도만 알았지, 그걸 가속해서 뭐 어디다 쓰는지는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크지 않았다.

같은 번역가의 수학에 관한 책을 읽다 포기하고, 새로 펼친 과학책, ‘세상 모든 것의 물질’이란 제목만 봤을 때는 화학 관련 책일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펼쳐보니 물리학, 그것도 입자물리학이라고… 차례에서 뭔 트론트론 하는 가속기들과, 광양자니 힉스 보손이니 하는 이름들이 등장했고, 난 연속으로 이과빔 맞은 문과멍충이가 되나 싶어 조금 심란했다.

걱정한 것에 비해 이 책은 읽기가 아주 까다롭진 않았고, 그동안 봐 온 과학사 책들처럼 더 작고 더 파악하기 힘든 입자를 찾아 분투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제법 재미있었다. 읽고 나니 화학, 물리학 이런 것 배우는 학생들이나 거기 관심있는 아무나 볼 만한 좋은 내용의 책이었다. 다만 도무지 유혹적이지 않은 표지 디자인과 서체는 조금 아쉬웠는데, 친구들과 ‘까치가 까치한다’표현할 정도로 책의 매력도를 올려주지 못하는 겉모양새였다.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를 보고 소설 아니고 과학책이라고 착각하고 펼쳐 본 사람이 (만약) 있다면 이 책을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엑스선에서 시작해서, 빛은 입자야, 원자는 더 쪼갤 수 있어, 쪼갠 걸 더 쪼갤 수 있어, 전압 왕창 올려서 가속기를 만들게 돈 줘, 그럼 뭐가 있나 계속 깨볼게, 이런 걸 찾아내기 위해 긴 시간, 때로는 일생을 바친 과학자들이 참 많이 등장했다. 위인전 같은 데서는 유명 과학자 이름만 툭, 한 명 던져주니 그 위업을 마치 한 사람이 달성한 것 같지만, 이 책은 입자에 관한 많은 발견이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시간과 고생과 삽질과 돈과 지능이 합쳐져 이룬 일인 걸 강조한다. 책의 말미에도 모두가 협력하면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낙관을 담은 저자의 연설을 요약해 담아 놓았다.

그렇지. 혼자 되는 일은 없다. 저 높은 건물들도, 내가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는 모바일기기와 인공지능들도, 여러가지 과학사적 발견을 알려준 이 책도 무척 많은 사람들이 이뤄서 내게 닿은 것들이다. 그걸 알면서도 자꾸만 뭐든 혼자 해결하고 싶고 최소한으로만 사람을 만나고 싶다. 우린 이걸 우울증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알고 싶고 찾고 싶은 집념에 의기투합해 실제로 원하는 것을 얻은 사람들은 이 책에 적혀 있지만, 거기 가는 과정에서 실패하고 그렇지만 그 실패로도 발견의 밑바탕에 도움을 줬을 책에 안 나온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자꾸 실패만 해도, 그게 다 무용하다고 징징대지는 말아야겠다. 물방울 모여 바다를 이루고, 모래 흙 돌 모여 큰 산을 이루듯 나도 인간이란 바다와 산을 이루는 습기이고 먼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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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컨에는 이진수 신호를 비가시광선(적외선)형태로 보내는 LED(발광 다이오드)가 들어 있다. 우리가 단추를 누르면 광자가 리모컨에서 튀어나와 에어컨에 장착된 검출용 광 다이오드를 때리며-밀리컨의 실험에서와 마찬가지로-이 광자는 운동 에너지를 부여하여 전자를 풀어준다. 광 다이오드는 반도체라는 물질이 두 개의 층으로 접합된 것이다. 이 접합부는 전기가 한쪽 방향으로 더 수월하게 흐르도록 함으로써 광 다이오드에 빛이 쬐이면 전기가 흐르도록 한다. 에어컨은 이진수 패턴을 해석하여 우리의 명령을 따름으로써 받아들인 전기신호에 반응한다.(78-79, 며칠 전 작은 어린이가 어떻게 리모콘이 작동되는지 물었는데 이걸로 설명 될까…)

-1932년 입자 가속기가 원자를 쪼개는 데에 성공한 그해에 자연에서 발견되는 기본 입자의 목록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전자와 그 반물질인 양전자, 그리고 양성자와 중성자가 발견되었다. 이 입자들은 모두 나눌 수 없다고 생각되었으나,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양성자와 중성자에도 내부 구조가 있음이 밝혀진다. 빛의 입자인 광자가 도입되었고, 불과 4년 뒤에는 전자와 양전자의 무거운 사촌인 양성 뮤온과 음성 뮤온이 발견되었다. (153, 지난 이야기를 간단히 한 번 정리해 주심)

-중성미자는 호기심에 이끌린 연구가 현실에 응용된 사례를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고전적 사례이다. 전자기력을 통해서 물질과 상호작용하는 날쌘돌이 전자나 강력을 통해서 원자핵과 상호작용하는 중성자와 달리 전하가 없고 질량도 거의 없는. 중성미자는 감지될락 말락 하는 연기같은 입자로, 거의 아무것과도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실험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발견이 어떤 쓰임새를 가지게 될 지가 늘 명백한 것은 아니다. (251, 거대한 규모의 검출기 실험으로 겨우 찾은 중성미자가 아직은 쓸모를 못 찾았음을 당당히 인정… 나중에 새로운 닉네임 쓰게 되면 중성미자라고 해야지.)

-입자물리학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기는 했지만 입실론은 밑바닥에서 단순성이 드러나고 있음을 확증했다. 그것은 자연에 유쾌한 대칭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이론이었다. 존재하는 것은 6개의 렙톤(전자, 뮤온, 타우, 그리고 이들의 중성미자)과 6개의 쿼크(위, 아래, 기묘, 맵시, 바닥, 꼭대기)였다. (290, 이 부분을 그림 하나로 그려둔 게 생각나 어린이 책 ‘처음 읽는 양자물리학’을 찾아보니 입자들에 대한 표기는 조금 다르지만 하여간에 있었다. 생긴 건 어린이 그림책이지만 제목부터 어린이 책이 아닌 걸로…나중에 이것도 읽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도박보다는 공짜 음료를 들고 테이블 주위에 모여 종이와 펜으로 스케치나 계산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쪽을 좋아했다. 그들은 승리가 보장된 유일한 도박 수를 (사전 모의 없이) 집단적으로 선택했다. 그것은 도박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호텔은 그 주에 최악의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 학술대회가 호텔에 얼마나 큰 재앙이었던지 대회가 끝날 무렵 라스베이거스 시는 물리학회에 다시는 오지 말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이 이야기가 진짜라는 것은 내가 보증할 수 있다. (304, 잭팟 도파민을 이기는 물리학 도파민…)

-표준모형이 믿기 힘든 성공을 거두기는 했어도 우리의 방정식은 중력을 나머지 모든 힘과 조화시키지 못한다. 우리는 우주가 하나인지, 우리가 이른바 “다중우주”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중성미자가 질량이 있고 형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왜 반물질이 아니라 물질에 둘러싸여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우주에 스며 있는 암흑물질의 성질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338, 뭘 아는지도 아직 잘 모르지만,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X선 촬영은 말할 것도 없고 방사성 연대 측정, 무선 리모컨, 전자 현미경, 뮤오그래피, 가속질량 분석법, 반도체 제조, PET촬영, 물질 구조 분석, 백신 개발, 입자 요법, 핵개발 감시, 방사선 요법, MRI촬영, 그리고 뜻밖에도 월드와이드웹까지 수많은 분야가 입자물리학과 가속기물리학으로부터 탄생하거나 막대한 도움을 받았다. (384, 역자 후기에서 이 책 속 발견이 기여한 사례들을 정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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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8-02 0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까치가 까치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6-08-02 13:04   좋아요 1 | URL
좋은 책이 가지가지 많은 곳이죠ㅎㅎ표지만 까치즘 벗어나야... 많이 읽히면 좋겠는 책이에요.
 

-20260726 저자:박상륭.


‘산해기’를 읽다 말고 전집의 앞부분을 펼쳤다. 마침 내가 좋아하고 또 슬퍼하는 ‘죽음의 한 연구‘의 큰 사건, 곡진한 여성 수도부 한 명이 몹쓸 촛불중 때문에 죽고, 그 죽음을 오래도록 애도하는 육조의 모습을 한동안 좇아 읽었다. 그러고나서 다시 산해기를 읽으니 그동안 읽은 장편 소설들의 씨앗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박상륭의 세계관은 제법 일관성 있고 또 끝없이 변주되고 있었다.
그래서 읽던 중간에 같이 펴놓고 보라고 일부러 따로 떼어 놓은 주석책을 아주 오랜만에 폈다. 편집자의 말과 연보를 보았다. 아마 박상륭 전집 사고 금세 봤을 건데 또 처음 읽는 것 같았다. 산해기가 언제쯤 나온 책인가, 궁금했는데 정작 그건 안 들여다봤다.
한 책을 보는 중이면 거기에 충실하자, 주의라서 책 아닌 다른 곳에 한 눈 팔지, 아니면 아예 치워버리고 다른 책을 보지, 하던 나였다. 전집 덕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뭔가를 찾는지도 모른 채 찾는, 아마도 ‘박상륭 읽기’를 하고 있다.

산문집이라고 해서 펼쳤는데, 이 글 속 목소리도 직접 저자가 나선 것은 아니다. 그래서 다른 장편소설과 차이점을 크게 못 느꼈다. 공주를 납치하는 에켄드리아 독룡, 산해경의 이상한 동물처럼 이상한 인간들이 사는 이상한 세상을 떠도는 자라투스트라 등의 입을 빌려 세계에 대해 나름대로의 설명을 하려고 한다. 이원론은 그렇게나 싫은지, 늘 3개의 우주, 색, 삼각관계, 그렇게 셋을 위한 왈츠는 아니고 넋두리 같은 걸 독자 들으라고 잔뜩 적어놨다. 그리고 어딜 가든 열여섯 아름답고 무서운 소녀의 이미지가 따라온다. 주석도 안 보고 신화도 성경도 힌두교도 불교도 잘 모르는 나는 그냥 저자가 풀어놓은대로 말장난을 즐기며 따라가기는 따라갔다. 오랜만에 박상륭체를 읽으니 반가운 친구 내지 은사님을 만난 기분이었다.

읽었다고는 해도 뭐 하나 설명해 봐, 하면 아는 게 없고, 이거 읽었지, 하고 말 나눌 사람을 찾기도 어려운 책들이 있다. 고독한 읽기이지만, 나무 위 상자에 갇히고, 지하 굴속에 산 채로 묻히고, 발이 붓도록 계속 떠돌아야 하는 이야기 속 인물들만큼은 조금도 못 미치니, 엄살을 떨 수도 없다. 그저 박상륭 전집에서 ‘륭’(칠조어론)에 이어 ‘상‘(장편소설과 산문집)을 다 봤다, 이제 ’박‘(단편소설집)만 남았다, 자랑 아닌 자랑, 미련맞음의 전시, 연꽃 아닌 개망초 위의 보석(돼지 목에 진주, 소 귀에 경 읽기) 말고 내놓을 게 별로 없다. 단편까지 전집 다 읽고 나면, ’죽음의 한 연구‘를 한 번 더 볼까, 아주 나아아아아아중에, 생각을 하는데 ’칠조어론‘은 다시 보라 하면 살려주세요, 할 것 같다. 이렇게 저자가 꾼 악몽인지 길몽인지 계시몽인지 모를 꿈을 더듬더듬 짚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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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삶(지바)이, 육신에 억류되기. 육신은, 헤쳐나가기에 그중 어려운(고) 바다(해)-그 한 바닷물은 죽음, 그 간단 없는 흐름은 노쇠, 풍랑은 병, 삶(지바)은 한 조각의 조그만 조각배, 를 뒤집어엎으려 덤비는 상어며 고래 떼는, 만족을 모르는 욕망, 마라, 이 궂디궂은 밤, 방위도, 그 거리의 멀고 가까움도 모르는, 피안을 향해 유정은 항해에 나섰으되, 차안 객줏집에 내걸린 흐린 등불 몇 개밖에, 세상은 왼통 어두움뿐이며, 쉼 없는 흐름뿐이며, 풍랑뿐이며, 배고픈 상어 떼며, 아으, 차안 객줏집에 내걸린 홍등 몇 개, (2620, 삶은 고해. 매번 반복되는 괴로움의 바다, 나에게는 한 번 뿐인.)

-하으 그러고 보니, ‘물질주의’가 일어난 날, 동시적으로, 공자가 이해하고 있는 그 ‘그림자’가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 말이군입지. 조직이라든, 말입지, 제도라든, 말입지, 율법이라든, 말입지, 모든 자유스러운 정신을 억압하는, 끊어낼 수 없는 줄, 심지어는 운명보다도 더 강인한 줄-그런즉슨 아으 무정부주의 만세?(2644, ‘그림자를 판 사나이’도 있는데 이야기 속 웅공자는 그림자를 없애려고 온갖 애를 써도 실패한다.)

-어쩌면, 귀의 독후감 같은 것이라고나 일렀으면 싶은, 그런 비슷한 얘기를 하려는 것인데, 그럼에도, 귀를 말하려 하며, 대략이라도, (귀에 관해) 밝힌 건 밝혀두고 넘어가야, 귀의 독후감이, 귀의 문맹자가 엮어내는, 같잖은 소리만은 아니라는, 그런 변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독후감’이란, 알다시피, ‘독서’를 전문 업으로 삼지 않은, 일반적 독자들의 어떤 책을 읽고 난 뒤의 감상을 이르는 것이기도 하여서, 열의 독자가 있다면, 열의 독후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수긍할 만하다 할 것인데, 독후감이란 그러니, 독자의 사견, 편견, 심지어는 맹안에 의존해 있음도, 쉽게 부정할 수도 있는 얘기는 아니다 할 것이다. 이 얘기는 그런 의미에서, ‘귀의 독후감’이라 이른 것이다. (2650, 귀를 읽기 전 미리, 독후감은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지, 그러니 내가 오독해도 뭐라하지 마러, 이렇게 밑밥부터 깔고 시작한다.)

-자아란, 자기를 흘겨보는 눈을, 둘씩이나, 셋씩이나, 다섯씩이나 되게, 너무 많이, 그리고 크게 해 갖고 있는 것이 탈이다. 아니면, 저렇게나 광활한 우주를 내어다보려하며, 눈을 너무 적게, 그리고 작게 해 갖고 있게 된 것이 탈이다. (2674,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나나니(말벌)(2692, 둘은 완전 다른 벌 종류인데 나나니 나올 때마다 계속 말벌이 괄호로 따라다니는 게 저자의 주석인지 편집자의 주석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다르다.)

-그리고도 어쩌면, 모든 영혼들의 무게를 달아보러 오시는 이는, 따로 어디 밖에서 오는 자이기보다는, 유정들 각자가, 자기들의 영혼의 값을 매기는 자들이나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유정들 각자가, 자신들에 대하여 최후의 대심판관이 아니겠는가 하는데 말씀입지요,…...(2728, 구원은 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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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 연대기 - 유인원에서 도시인까지, 몸과 문명의 진화 이야기
대니얼 리버먼 지음, 김명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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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5 저자:대니얼 리버먼


진화에 관한 책을 꽤 읽었다. 그런 뒤로 일상 속 많은 일들의 이유를 진화의 관점으로 추측해 보기도 한다. 나는 이유를 찾고 완결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므로 진화에 대한 연구는 그런 내게 재미있고 훌륭한 도구가 된다. 최근에는 진화심리학 책을 몇 권 보다가 이번에 진화생물학책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여태 읽은 진화 책들 대부분 생물학적 접근이긴 했다.
‘인류의 진화‘(재미있게 읽었음)나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힘겹게 읽어왔으나 전 세계 온갖 곳의 유적지에 대한 벽돌책을 읽는 효용을 점점 잃고 놓고 있음)에서는 주로 고인류학, 고대사학(위의 책 저자중 하나는 선사시대라는 말을 싫어했다)의 관점에서 인간이 지금 모습까지 오는 여정을 일부 설명하기도 했다. 옛날 사람들을 추정해보려는 노력은 이렇게나 여러 분야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에 읽은 ‘우리 몸 연대기’는 초반부에는 유인원이나 고인류와 현생 인류의 비교를 한다. 중반부에서는 수렵채집인과 현대의 우리를 극명하게 가른 사건인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이 우리 몸에 준 영향을 (발전과 문명화에 대한 찬사는 너무 많으므로) 주로 안 좋은 쪽에서 분석한다. 책의 후반부는 ‘불일치 질환’, ‘역진화’의 개념을 바탕으로 현대 인류가 많이 앓는 질환의 대표 사례들(비만, 당뇨, 골다공증, 근시 등)이 발생한 원인을 나름대로 추정해보고, 저자나 다른 연구자들이 제시한 해결방안에 대해 이야기 했다.

저자의 설명은 친절하고 자세했기 때문에 읽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분량이 주석 제외 500여쪽 정도로 많아서 오래 읽었다. 의자에 앉아 움직이지 않는 (독서 같은) 것이 신체에 얼마나 해로운지 설명하는 글을 한참 앉아서 보았다. 그러다가 일어서기도 하고, 스트레칭도 하고, 나는 그동안 골똘하고 가만하게 앉아 있는 걸 너무 많이 했구나, 그래서 혈전이 생겼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 번 아픈 덕에 생활이 많이 바뀌었다. 책에서 낮은 수치를 우려하는 HDL같은 건 정상 수치를 뛰어 넘어 치솟고, 내장비만레벨2단계로 체지방은 대부분 걷어내 버렸고, 스스로 인간 마운자로라고 할 정도로 식욕은 낮아졌고, 연료 공급의 의무감에서 수렵채집인과 유사하게 과일, 고기, 견과류로 이뤄진 끼니를 하루 한 번 이상 챙겨 먹고, 많이 걷고 계단을 선호하고, 움직이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은 뒤라서 그냥 잘 하고 있네, 정도를 확인하는 정도의 효용이 있었다.

내가 하고 있다고 남들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대부분 달고 기름진 것이 맛있고, 움직이는 것보다는 편안한 게 좋다. 나도 그랬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진화와 유전자는 단기간에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므로 환경의 변화를 강조한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방향이나 자본주의의 이윤 추구는 예방과 환경 변화보다는 이미 일어나버린 불행의 보완책 정도로 뭔가를 소비하게 하거나,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하는데 조금 더 기울이고 있는 것을 저자는 우려한다. 교육의 효과도 생각보다 크지는 않지만 어린이들을 보호하듯 사람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부드러운 개입 같은 것도 주장한다. 흠, 저자도 사람들이 자유를 잃고 건강을 강요하는 순간 폭동이 발생해서 그 건강수용소 체제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하긴 했다. 나에게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래의 건강보다 현재의 즐거움이 중요할 수도 있다. 수렵채집인이 건강했던 건 그런 맛있고 재미있는 걸 누리지도 알지도 못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면서 적응했던 것이니까. 지금 인류는 그렇게 걱정하던 비만 치료에 획기적인 약물을 개발해서 엄청나게 맞아대고 있다. 다른 질환들도 어떻게 해결해 갈지는 더 지켜봐야 알겠다. 2013년에 나온 책이라 스마트폰의 위력 같은 건 진화적 관점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 화면에서 눈을 못 뗀 채 걸어가는 사람들 보면 저러다 사고 나지 않나 싶은데, 또 알아서 주위를 살피고는 있는 것 같다. 스마트폰을 안 하고 걷는 인류가 선택될지, 끝없이 사용하면서도 요리조리 잘 피해다니는 게 적응으로 기본값이 될지, 또 어떤 질환이 등장할지, 이건 내가 죽고도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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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이 잘 익은 과일을 구할 수 없을 때 유인원은 잎, 줄기, 풀, 심지어 나무껍질까지 먹는다. 예비 식량을 먹느냐 못 먹느냐는 생사를 가르는 문제라서, 이것들을 먹도록 돕는 적응은 강력한 자연선택을 받는다. (88, 사람이 별 걸 다 먹는 걸 설명하는데 참고가 될 사실)

-만약 침팬지가 먹는 과일에 영양성분표가 붙어 있다면, 섬유소 함량은 매우 높고 녹말과 단백질 양은 중간이며 지방 함량은 낮다고 적혀 있을 것이다. 예상할 수 있다시피, 침팬지의 예비 식량(잎, 속줄기, 씨, 풀)들은 이보다 섬유소 함량이 훨씬 더 높고 녹말과 열량이 더 적다. 하지만 땅 밑 저장 기관들은 많은 야생 과일들보다 녹말이 더 많고 칼로리가 더 높으며, 대신 섬유소 함량은 약 절반이다. (91, 우리가 먹는 것들의 종류와 특성을 돌아보게 했다.)

-지방은 에너지를 저장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고, 어느 시점에 우리 조상들은 다른 영장류보다 많은 양의 지방을 비축하기 위한 여러 중요한 적응들을 진화시켰다.(177, 지금은 과거의 선택된 적응-지방 축적-을 벗어나기 위한 온갖 식품과 약품이 넘치는 시대가 되었다.)

-또한 현생 인류는 네안데르탈인보다 어깨가 덜 근육질이고, 허리가 약간 더 굽었으며, 몸통이 덜 술통 모양이고, 발꿈치뼈가 더 짧다. (200-201, 깨알 같은 비교. 쓸데 없어 보이는 동시에 유용해보이는 정보)

-열은 몸이 감염과 싸우는 것을 돕고, 관절통과 근육통은 나쁜 달리기 자세 같은 해로운 습관을 그만 두게 하며, 메스꺼움과 설사는 해충이나 독소를 몸 밖으로 배출한다. (241, 증상은 괴롭지만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원인을 해결해야 해.)

-그 자체로는 병이 아니라 할지라도 비만은 예전에는 드물던 자극, 바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얻는 것에서 비롯된다. (351, too much love will kill you, in the end.)

-빠르게 소화되는 포도당이 많이 든 음식은 더 많은 에너지를 제공하고 더 빨리 허기지게 만든다. 단백질과 지방에서 열량을 주로 섭취하는 사람은 당과 녹말 식품에서 주로 열량을 섭취하는 사람보다 더 오랜 시간 배가 고프지 않고, 따라서 전반적으로 적은 양의 음식을 먹는다. 섬유소가 많이 들어 있는 덜 가공된 식품이 허기를 덜 느끼게 하는 것은 그러한 음식이 위에 더 오래 머물면서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을 분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370, 여러 번 인슐린과 혈당 지수에 대해 들어왔는데 여기서 한 번 더 자세하게 정리해 준다.)

-익숙해지는 것이 우리의 습성이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의문을 품으면 매우 불행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으레 자신의 행동이나 환경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445, 두 번째 문장 비이성적인 내 얘기...책에 마지막 문장 끝은 ‘않다.’로 탈자되어 있다.)

-이 세계가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이 아니듯이, 우리 몸도 가능한 모든 몸 중에서 최선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몸이고, 따라서 우리는 그 몸을 즐기고 돌보고 보호해야 한다. 우리 몸의 과거는 더 적합한 자의 생존이라는 과정이 만들었지만, 그 몸의 미래는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 (511, 이 부분이 내 눈에는 꽤나 낙관적으로 보였는데, 바로 뒷부분에서 저자는 안이한 낙관주의를 비판하는 볼테르의 선언을 오마주해서 “내 몸을 일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 책을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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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여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
엘프리데 옐리네크 지음, 이병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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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9 저자: 엘프리데 옐리네크.

내 사람은 아픈 걸 싫어한다.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것도 질색한다. 그게 인간의 디폴트 값인가? 폭력이 대물림된 가정에서 자라나면 그런 것마저 헷갈린다.
나는 일부러 아프고 싶지는 않다. 다만 다른 감각에서는 극도로 예민한데, 고통에는 둔감한 편이다. 몸의 이상은 감지했는데 덤덤한 태도를 보여서 진단이 늦어진 적도 있다. 배가 아픈데 참을만 하다고 했더니 의원에서 장염약을 지어주었다. 그날 저녁 응급실에서 CT를 찍어보니 충수돌기염이었다. 발목 인대가 파열된 걸 모르고 참고 걸어간 의원에서는 몇 번 눌러보고는 발목 염좌로 가볍게 진단했다. 두 달 후에 조금 더 큰 병원에서 MRI찍어보고나서야 인대가 끊어진 것을 알았다.

폭력과 학대를 겪은 사람 중 많은 수는 사랑, 지배, 굴종이 뒤섞여 자신에게 해가 될 일을 구분하지 못한다. 사랑의 범위를 넓히고 넓히다보면, 모두가 사랑하는 평화로운 세상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소설 속 두 인물은 각자 사랑이라 이름 붙인 게 너무도 어긋나서 마음이든 몸이든 좀 많이 망가진다.

심한 압력, 구속, 집착, 폭력으로 자신을 양육(사육)한 어머니에 대해, 에리카는 분리되고 싶은 욕구와 얼른 다시 함께 하고픈 마음이 혼란스럽게 교차한다. 그런 성향은 겨우 상호작용을 하려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도 상대가 고통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전하고 싶은 욕망과,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에리카의 이중적 심정으로 이어진다.

에리카가 긴 편지에 목록처럼 열거한 행위들에 충격을 받은 클레머의 전환은 조금 과장되었다 싶었다. 너무 자신만만한 나르시시스트였던 클레머는 에리카를 가벼운 연애 상대로 삼고자 했다. 원체 여성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어 있긴 했지만, 자신이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이 자신에게 요구한 것들이 터무니없어서 분노로 반쯤 미쳐 공격적이 되고 결국 에리카에게 해를 입힌다. 여자를 패고 강간하고 그 이전에도 자신이 지은 틀 속에 여자를 우겨넣으려 했던 클래머가 엄청 나쁜 놈은 맞는데, 후반부의 폭력성을 드러내려고 너무 순식간에 인물 하나를 망쳐 놓았다 싶었다. 원래 좀 그런 놈인데 백지 같은 놈이 그런 거에도 영향을 받았다, 하기엔 인간이 그렇게 얄팍하진 않은 것 같다.
1983년도에 이 책이 나올 무렵 사회가 지금보다는 더 보수적이었다면 그런 특수한(?) 성애표현에 대해 논란이 있었을 법하다. 그렇지만 인터넷이 등장한 이후 온갖 괴상한 성벽을 맞춰주는 음란물들이 검색어나 해쉬태그로 간단하게 접속된다. 그래서 현대의 독자들은 그 부분에서 저 정도로 왜? 하고 무감해질 것 같다. 그게 아니라 하면 나란 인간이 사드를 너무 읽었나 보다. 사드는 타격도 주고 단련도 주었음이 입증되었다.

아주 어릴 때, 유대인이 나오는 ‘피아니스트’와 헷갈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피아니스트’를 봤다. 그때는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액이 묻은 휴지를 집어 올려 냄새를 맡고, 자기 몸을 면도날로 상처 내거나 칼로 찌르는 장면 정도만 기억에 남았다. 소설과 영화가 어떻게 다른지 다시 확인해보고 싶긴 하지만, 또 확인하기 싫기도 하다. 더럽게 지루하고 재미없었다는 기억이 슬쩍 올라왔기 때문이다. 나마저 이중적이 되게 하는 이 서사...

장황하고 반복적인 서술, 심리와 장면에 대한 비유, 그런게 문학을 문학답게 하는 장식인가 싶다. 한 상황에 대한 표현의 밀도가 제법 높고 집요해서 그렇게 생각했다. 제목에 피아노 들어가고 레슨 받거나 연주회 연습하는 장면도 제법 등장하는데 쓰다보니 피아노 얘기는 하나도 안했다. 피아노는 두 사람이 이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지만, 가르침과 배움, 위계관계, 이런 것들이 연애 감정과 뒤얽히게 되니 비극이 되었다. 나는 비극과 고통 받는 인물이 나오는 서사를 선호하긴 하는데 남들은 충격받는다는, 뒤표지와 띠지의 호들갑에 비해 소설을 너무 덤덤하게 읽어버려서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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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가정에서 만장일치로 공인된 이 어머니라는 지위는 종교재판장의 심문권과 총살집행자의 명령권을 동시에 거머쥐고 있는 것이다. (6, 처음부터 세다. 패드립의 기미가 느껴진다. 기대대로 에리카는 어머니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뭉텅이로 머리카락을 뽑아 놓는다.)

-에리카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한 번도 무엇인가를 느낀 적이 없었다. 그녀는 비에 젖은 마분지 조각처럼 무감각하다. (96, 슬픈 세 문장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는 늙어가는 육체의 감옥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신세가 될 것이다. 그녀는 이 쇠창살들을 줄칼로 잘라내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99, 휘어지는 창살이면 좋을 텐데.)

-그녀의 취미는 자신의 몸을 자르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 스스로를 자신에게 완전히 내맡기고 있는 셈인데, 다른 사람에게 내맡겨진 것보다는 어쨌든 이편이 훨씬 나은 법이다. 자신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고 자기 손의 감각에 따르면 되니까 말이다. (110, 자르지 마…)

-죽는 건 돈은 안 들지만, 삶을 지불해야 되고, 모든 것은 하나의 끝이 있지만 소시지만은 양쪽 끝이 있다고 말하면서 남을 잘 돕는 이 도축업자는 요란하게 웃는다. (122, 아버지이자 남편을 요양원에 데려다 놓고 온 모녀에게조차 유쾌한 푸줏간 주인)

-세련하다:서투르거나 어색한 데가 없이 능숙하고 미끈하게 갈고닦다. (124, ‘세련시키고’란 표현이 있어 찾아보니 동사도 있긴 했다.)

-그러나 더이상 매를 들기를 꺼리기는 하지만 에리카의 어머니는 거머리처럼 균을 감염시키면서 우엉뿌리처럼 에리카에게 달라붙어 있다. 어머니는 에리카의 골수를 빨아들인다. (125, 악!)

-그렇지만 그가 남자라는 점은 에리카가 그보다 십 년 연상이라는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든다. 게다가 여성의 가치는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지적 능력이 뛰어날수록 떨어진다. (203,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데서 초점 화자가 장면 따라 이리저리 바뀌는 듯도 하고, 전지적시점인 것도 같은데 이게 발터 클레머의 생각(아마도 이게 맞음)인지 작가의 생각인지 구분 안 되게 쓴 부분이 생각보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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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삶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3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지음, 이승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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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7 저자: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이제 영화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똥 먹은 입술로 이마에 키스를 하자 입술 자국이 남았던 것만 자국처럼 남았다. ‘소돔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를 두 번 읽고, 악명 높은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까지 보고, 이제 파솔리니의 ’폭력적인 삶‘까지 읽었으니 이런 완전체가 어디 있나, 있으면 나랑 친구하자.

거의 500쪽 가까이 되는 소설에는 빈민가 사람들의 지긋지긋한 생활과 비행과 죽음이 반복된다. 중심 화자인 톰마소는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친구들이 노는 데에 잘 끼지도 못하고, 돈 벌려고 동성애자들을 찾아 어슬렁거리고, 친구들과 차량 강도짓을 하고, 싸우던 사람 배에 칼침을 놓고 감옥에서 2년 살고 나오고, 창녀를 깨물고 핸드백을 빼앗아 돈을 챙기고, 여자친구 이레네를 교제 강간 시도하다 잘 안 되니까 여자 탓을 하며 뺨을 때리기도 한다. 일말의 연민을 품기에도 글러먹은 놈이었다.

결핵에 걸려 요양병원에 수용되었다가 간호사와 환자들의 파업, 단체 행동에 휘말려 병원을 나온 뒤 공산당에 가입하고, 수재로 판자집이 모두 물과 진창에 휩쓸리는 상황에서 소방 대원들을 대신해 고립된 여자를 구한 정도가 그나마 톰마소가 공동체에 공헌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기여마저 자신의 어떤 신념에서 나온 게 아니라 누가 부탁하는 데에 떠밀려서, 어쩌다보니, 가오잡다가 그렇게 행동했을 뿐이다. 남의 생명을 구한 대가로 톰마소는 폐결핵이 악화되어 피를 토하며 죽어간다. ’잘 가, 톰마소.‘(494) 하는 마무리는 작가가 톰마소에게 작별인사를 건네는 건지, 인사하는 게 본인인지 주변 사람들인지 알 수가 없다.

우중충한 책을 꾸역꾸역 읽었다. 진흙 구정물 같은 로마 인근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1959년에 발표한 이 소설이 별 감흥도 없고, 소재만큼 지겹고, 공감하거나 애착이 가는 인간이 하나도 안 나온다고 하면 나는 인민의 적인가. 젊을 때까지 부유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정말 밑바닥 가난함과 희망 없음을 겪거나 직접 마주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그저, ’살로, 소돔의 120일’ 감독이 소설도 썼대, 하는 이야기를 안 들었다면 이 책을 안 봤을 것이다.

감독의 죽음도 톰마소처럼 어처구니 없고 급작스러웠다. 책에서는 그 이유가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하지만, 영화를 찍고 얼마 되지 않아 그와 관계 깊던 소년들 중 하나가 작가를 죽였다는 소리를 어디선가 들었다.(이 구절에 대해 AI는 사실 관계가 정확하지 않으므로 논란이 있다, 정도로 고치라고 한다. 어쩌냐 이미 죽어서 상황을 말해 줄 수 없는 걸.) 어떻게 살았냐가 더 중하겠지만 어떻게 죽었냐가 사람들이 누군가를 기억하고 판단하는데 영향을 많이 주는 것 같다. 모든 이야기의 끝은 누구든 하나 이상 죽음, 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나의 마지막이 어떨지 조금 궁금하지만 내가 내 끝을 알고 적어둘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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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모두 형편없는 족속들이었다. 누가 그에게 좌파가 돼라 우파가 돼라, 이쪽이다 저쪽이다 강요할 수 있겠는가. 그는 자유 시민이고 무정부주의자다. 그것으로 됐다. (222, 톰마소가 그런 사람이라는데. 나도 저렇게 찌질해보이면 안 되는데,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기웃대는 저 인간을 보면서 문득 걱정이 되는 것이다. 저런 톰마소도 이레네랑 성당에서 결혼하려고 자유기독당에 가입하려다가 병원 투쟁에 얽힌 뒤 공산당에 가입한다.)

-톰마소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부터 줄곧 그는 쓰레기와 진창과 배설물 들이 주변에 널려 있고 양철과 방수포로 지붕을 덮은 판잣집에서 살았다. 그런데 드디어 지금 벽이 아름답게 칠해져 있고 계단에는 완벽하게 마무리된 난간이 쳐져 있는 호화롭기까지 한 건물에 살게 된 것이다. (272, 나는 벽지에 곰팡이 안 피는 집 살게 된 때가 좋았다.)

-그들은 담배 연기에 찌든 더러운 옷가지에서 풍기는 악취 때문에 모두 총 맞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410, 알고 싶지 않은 냄새)

-전에도 별거 없었다. 오막살이 몇 채, 녹슨 지붕 몇 개, 누더기 조금이 다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마저도 부서지고 흙탕물에 휩쓸려 강으로 떠내려갔다. (481, 돌아가신 할머니댁도 내가 어릴 때 수해로 침수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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