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자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부학 책 《그레이 아나토미》의 비밀
빌 헤이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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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0 저자: 빌 헤이스.



책을 다 읽고 앞표지를 다시 보고 나서야 알았다. 무슨 무늬이겠거니 했던 그림은, 얼굴과 목 사이의 근육과 혈관, 신경 같은 것들이 그려진 해부도였다.
저자는 해부학 실습실에 자주 드나들었다. 거기에 나를 자신과 시신 옆에 앉혀 놓았다. 나는 인체 구조에 대해 아는 게 없지만, 이게 뭐고 저게 뭔지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열성적으로 떠드는 저자가 재미있고 신기하기도 해서 계속 자리를 지켰다.

빌 헤이스는 ‘인썸니악 시티’라는 책으로 먼저 만났다. 그 자신도 작가이지만,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연인이었다는 게 더 유명한 사람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쓴 서문, 뒷표지에도 그 사실을 계속 언급해 놓았다. 하긴,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려면 무슨 일이든 해야겠지.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빌은 누구누구의 연인으로만 불리기에는 꽤 아까운 작가였다.

해부학 교과서 ‘그레이 아나토미’의 그레이에 관한 전기가 하나도 없는 걸 알게 된 빌은 집요하게 그의 흔적을 추적한다. 해부학 실습실에서 도서관으로, 미국에서 런던으로, 또 희망봉으로 (인도는 안 간다) 그의 (올리버를 만나기 전 사별한) 연인 스티브와 함께 가서 열심히 뒤지고 다닌다. 그러던 중 그레이 아나토미의 삽화를 그린 헨리 반다이크 카터의 존재를 알게 된다. 별 기록을 남기지 않은 헨리 그레이보다는 훨씬 풍부하게 써 놓은 카터의 일기장을 꼼꼼히 훑으며 당시 상황을 짐작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어느 부분은 약간 ‘빌 헤이스가 헨리 카터의 일기장을 읽고 남긴 감상문’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뭐 일기 읽고 독후감 쓸 수도 있지. 빌 헤이스는 문서 더미에만 집요하게 매달린 게 아니라, 관련된 장소에도 열심히 찾아간다. 그 추적 과정을 적어 이 책을 남겼다.

해부학 책 이름으로만 강렬하게 남았을 뿐, 헨리 그레이의 일생(짧기도 했다)은 우리에게 그다지 전해지는 게 없다. 새로운 판본에 삽화가 이름이 생략되어 있는 탓에 또 다른 헨리는 이름마저 잊힐 뻔 했다. 그러나 카터는 자신을 알아차릴 누군가를 기다린 것처럼 이것저것 기록을 남겨놔서, 거의 200년 이후의 내게도 자신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

나를 비롯한 우리 대부분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고 남긴 주절거림은 좀 더 오래 남겠지. 당장 과거의 내 글도 현재의 나에게 가끔 눈에 띄어 작은 즐거움을 준다.(자가발전) 카터의 일기처럼 너무 성찰문 같거나 교훈적이거나 자기비하를 잔뜩 남기고 싶진 않은데 말이야. 동명의 소설, 페데리코 안다아시의 ‘해부학자’를 읽고 실망을 많이 해서 이 책으로 치유받자, 했는데 충분히 그럴만한 즐거운 독서였다. 미래의 내가 조금 더 재미있을 수 있도록 이것저것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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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에는 끝이 없으므로, 가장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도 아직 배울 게 많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오. (115, 브로디 박사님의 연설 마무리.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나는 참 지성인이 될 수 없어서 징징)

-일기는 자기 자신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의인화하게 된다. 하루의 삶이 아무리 생경해도, 일기장은 모든 단어와 모든 고통(또는 즐거움)을 흡수하며, 텅 빈 페이지들은 더 많은 고백을 유도한다. 금박을 입히고 가죽으로 장정된 일기장이 됐든, 노트북에 설치된 단순한 일기장 파일이 됐든, 일기장을 파괴한다는 것은 점점 더 가당치 않은 생각이 된다. 그건 자기 몸에서 살점을 베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의 진실은 ‘지금 일기장에 써놓으면, 당신의 희망 중 일부가 훗날 언젠가 읽히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낯간지러워도, 당신은 ‘특별한 누군가’를 위해 일기를 쓰는 것이다. 그는 ’완벽한 독자‘로서, 당신의 문장을 폭풍 흡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바로 당신의 미래 자아인 것이다. (128, 일기장 파괴의 이점은 과거 망각 정도이겠다.)

-사람은 표면상으로만 사람이다. 피부를 벗기고 해부하면, 순식간에 기계장치가 된다. (159, 폴 발레리의 글이라는데, 시인의 말 같지 않다. ‘사람 껍질을 입은 우리들/장막을 걷어내면/그 안의 톱니와 나사들’이래야 할 것 같음.)

-“오늘은 일기 쓸 거리가 별로 없다.” 카터는 1855년 11월 25일 일기에 무덤덤하게 적는다. “그레이는 학생들을 위해 <<해부학 편람>>을 편찬할 예정인데, 그 책에 들어갈 삽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좋은 생각이다.” (이 책은 나중에 <<그레이 아나토미>>로 유명해질 책이지만, 그건 까마득히 먼 훗날의 이야기다. 현 시점에서 카터는 이 책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짐작조차 못하고 있다.) “구체적인 계획은 전혀 없다.” 그는 이렇게 덧붙이며, 이 프로젝트에서 단순한 화가로 활동하지는 않을 거라고 여운을 남긴다. 그와 그레이는 대등한 공동 작업자로 해부를 함께 진행하게 될 것이다. (204, 알려진 저자인 헨리 그레이 뿐 아니라, 동료 해부학자이자 의사였던 헨리 반다이크 카터가 삽화 대부분을 그리고 공동 저자로 참여했음을 추적하는 게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읽기 시작하면 주인공이 그레이가 아니라 카터라는 걸 금세 알게 된다.)

-niche니치: 나만의 틈새시장, 나에게 꼭 맞는 독보적인 영역(238, 그대로 니치, 라고 번역되어 있어서 뜻을 찾아보았다.)

-“나는 해부가 좋아요, 그것도 아주 많이.” 다른 해부학 수업(약대생이나 물리치료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해부학)에서는 이렇게 열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곧 의사가 될 의대생들은 뭐가 달라도 확실히 다르다. 그들은 인체-풍성함, 복잡함, 섬뜩함, 그리고 아름다움의 집합체-의 속삭임과 노랫소리를 독특하고 강렬한 방식으로 듣는다. (244, 빌은 세 학과를 대상으로 한 세 가지 수업에 차례로 참관하면서 학생들의 특성까지 분류한다. 의대생한테 혈관 이름 알려주는 부분은 약간 으스대는 것 같이 보인다.)

-문득 두 젊은이가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의 지식에 뭔가가 부족함을 깨닫고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자기가 뭔가를 모른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258, 마지막 문장의 답이 제일 어렵다.)

-나는 이 시간에 실습실에 머무는 걸 좋아한다. 어린 시절 미치도록 좋아했던 도서관의 고요 속으로 나를 데려가주는 느낌이다. (267, 평범한 대사이지만, 해부학 실습실에 시신을 앞에 두고 혼자인 사람이 느끼는 마음치고는 독특하다.)

-“일별, 시간별로 낱낱이 해부해보면, 나의 인생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의 연속이었다.(…)신은 숨어 있고, 나는 예수를 알지 못한다.(…) 나는 아무런 계획이나 목적 없이 나태함 외로움 침울함 단절감 무력감에 휩싸여 수동적인 객체로 전락했다.”(284, 해부학 전문가인 의사 선생님조차 때때로 이런 자아 붕괴에 놓인다.)

-‘지금 여기 사는 사람들은 한때 누가 이 마룻바닥 위를 걸어 갔었는지 알까?’(294, 전에 비슷한 생각으로 지금 사람들이 디딘 자리 중에 누군가 죽었던 곳은 얼마나 많을까? 했었다.)

-”그의 손길이 닿았던 것은 모두 모닥불이 되었을 거예요.“(324, 그레이는 천연두에 걸려 삼십 대에 죽었다. 전염성 질환이라 그의 비말이 닿은 유품은 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저자와 키스(그레이 연구자)는 추정한다.)

-카터는 작은 것에 집중하고, 사물을 분석하고, 정신적으로 해부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능력은 자아 성찰 과정에서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었지만, 다른 한편 그를 ‘정밀한 해부학 화가’와 ‘천부적인 연구자’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335, 왠지 이 부분에서 저자는 ‘나도 그렇다.’ 하고 쓰고 싶었을 것 같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또는 임무)을 수행하면,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내게는 이 좌우명이 늘 허무맹랑하게 느껴진다. (342, 저렇게 기분 좋아질 사람이면 대체로 행복했을 것 같은데 카터는 별로 안 그랬다.)

-과거는 현재나 미래와 분리되지 않고 본래 있었던 자리(또는 머무를 것으로 의도됐던 장소)에 머물러 있지만, 간혹 서둘러 지나가거나 뒤늦게 죽마고우처럼 미소를 지으며 나타나도 괄시받지 않아. 오래된 생각이나 사실을 제거하거나 바꾸려고 노력할 때까지, 우리는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어. (344, 카터 아닌 동생 조의 말. 알 수 없지.)

-그러나 그 많은 시신들 사이에서, 정작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체와 죽음은 각기 배우는 곳이 다르다. 인체는 해부학 시간에 시신을 해부하며 배우는 거지만, 죽음이란 사망-사랑하는 누군가와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359,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게 다행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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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좀 들어봐
줄리안 반즈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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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6 저자: 줄리언 반스.



책의 말미를 거의 앞두고 있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책 뒤편으로 갔다. 옮긴이의 말이 있었고, 친절하게도 줄거리를 써 놨다. 그렇게 뒷마무리를 스포일러 당한 후에 마저 읽었다. 결말을 모르고 읽었어도 그렇게 흥미롭진 않았을 것 같다.

오랜 친구이지만 성격이나 삶의 모습이 너무도 다른 스튜어트, 올리버, 그리고 스튜어트의 여자친구였다가 부인이 된 질리언, 결혼식날 질리언에게 반해버린 올리버, 엄청 꼬셔대는 올리버에게 넘어가 버린 질리언, 두번째 결혼식, 올리버가 두 커플을 지켜보고 지분대던 시절처럼 그 주위를 맴도는 스튜어트. 구질구질한 모습으로 퇴마해버리고 어딘가로 떠나는 가족.

이게 다였다. 세 인물이 화자로 왔다갔다 하면서 방백처럼 독자에게 말을 거는 형식은 그렇게 정신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별로 재미는 없었다. 일단 말마다 프랑스어 섞어 써서 빡치게 만드는 올리버를 가르치는 학생 성희롱이나 하고 남의 부인 빼앗고도 전원에서 유유적적하게 그려 놓아서 완전 나쁜놈의 전형처럼 미워하게 만들어놨다. 질리언은 그렇게 입체적인 인물도 아니고 이 남자 저 남자 쉽게 빠지고 쉽게 갈아타고 그런 마당에 뭔 지혜로운 포샤처럼 잔재주를 쓴다. 스튜어트는 올리버가 워낙 나쁘게 말해대니까 좀 불쌍하다 싶은데 작가가 혹여 독자들이 얘한테 이입할까 봐 좋은 놈 아니게 하려고 이혼 후 성매매 순례 다니는 놈으로 망쳐놨다. 좀 어거지였다.

있으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삼각관계이지만, 결혼-이혼-또 결혼 이 사이를 어물쩡 얼렁뚱땅 제일 갈등 심할 구간을 적당히 비벼서 지나간다. 작가는 그저 위치가 뒤바뀐 두 남자가 거울처럼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것 같다. 하여간에 개빻은 남자들이랑 똑똑한 척 하는 멍청한 여자가 나오고 막 엄청 재미있는 척 재치있는 척 하는데 작위적이란 생각만 들었다. 차라리 두 번 결혼해서 둘다 같이 살았던 ‘아내가 결혼했다’의 주인아 씨 같으면 깜찍한 구석이라도 있지… 일처일부제와 독점적 이성애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구식책은 새롭게 읽히는 게 없다…

책 앞표지로 가서 언제 나온 책인지 보니까 1991년도라고 한다… 이제 줄리언 반스 선생은 소설 안 쓴다고 했댔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연애의 기억’, 산문집 ‘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산책’(이거는 읽었던 것마저 잊어버림)은 아주 오래된 책들은 아니라 그냥저냥 읽을만 했다. 그런데 내 또래 때 쓴 소설은 영 후졌네요… 그동안 적당히 즐거웠어요. 또 만나지 않아도 건강히 잘 사세요.


+밑줄 긋기
-<스튜어트>는 계속 중도 노선을 대표하는 ‘그들의’가 제일 좋다고 주장했다. (15, 에브리원이나 썸원을 데어라는 대명사로 받는 거 나름 선구적이었는데 소설의 다른 인물들은 반대했다. 퀴어들이 대신 받아들였다.)

-세상 사람 중 반은 자신감이 있는 것 같지만, 나머지 반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나는 이쪽 반에서 저쪽 반으로 건너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자신감이 있으려면 먼저 자신만만해야 한다. 그건 악순환이다. (36, 악순환이지.)

-인생을 사는 데 문제는, 이미 때가 늦은 뒤라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것투성이라는 거야.(55, 나도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아. 그 상태를 견디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녀는 변할 것이지만, 다른 어떤 사람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또 다른 모습의 자기 자신으로 바뀔 것이다. 난 그 변화를 옆에서 지켜보고 싶다. (76, 찐사랑이네)

-사람들은 만나는 자리에서 자기 연민에 빠져 혼자 앉아 있어선 안 된다고.
인생에서 당신이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발견하고, 할 수 없는 게 무엇인지 인식하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결정해서, 그걸 목표로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난 생각해. (80, 다른 건 다 해 봤는데 아직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뭔지는 못 찾았다.)

-그래서 난 다음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 스튜어트를 사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올리버와 사랑에 빠진것 같다는 사실.(181, 질리언은 진부하게 올리버의 꼬임에 넘어가고 선언까지 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도 구질구질했는데 남은 페이지는 얼마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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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세계 - 뇌과학자가 전하는 가장 단순한 운동의 경이로움
셰인 오마라 지음, 구희성 옮김 / 미래의창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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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3 저자: 셰인 오마라.


책의 후반부를 읽을 무렵 깨달았다. 뇌과학, 도시생태, 사회학, 진화, 질병 예방 다 끌어다가 걷기의 효용을 두루 다루는 책을 읽으면서도 오늘 하루 그냥 집에만 있었다. 움직이는 게 낫겠지, 하고 오랜만에 실내자전거를 30분쯤 탔다. 저녁은 굽네치킨 고추바사삭과 치즈볼을 먹었다. 그러고서 읽던 책을 마저 다 읽었다.

곁의 사람이 산책을 나가자고 했다. 해는 8시 다 되어서 지는데 7시 반쯤 되었다. 피곤해서 망설이다 같이 가기로 했다.

우리의 걷기는 사뭇 다르다. 나는 빠르게, 넓은 보폭으로 걷는 걸 좋아한다. 곁의 사람은 땀이 나는게 싫어서 느릿느릿 보폭도 좁게 걷는다. 나는 걸으면서 전화기를 들여다보지 않지만, 곁의 사람의 전화기는 물아일체 수준이다. 나는 낯선 골목, 사람 적은 시간의 대로, 숲길 걷기를 좋아한다. 곁의 사람의 걷는 목적은 어떤 곳에 다다르는 것이다. 주로 마트나 빵집 같은 곳을 둘러보며 구경하길 좋아한다. 하나만 골라, 하면 나는 마냥 걷기를 고르겠지만, 곁의 사람은 빵과 과자와 아이스크림(세 개 잖아!)을 택할 것이다.

길을 나서자마자 학교 아이들을 마주쳤다. 서로 못 본 체 했지만 알았을 것이다. 평소에도 빛나는 행색은 아니지만 오늘은 뻗친 머리 가릴 버킷햇에다 원피스 대충 골라 입고 나왔는데 창피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나를 속상하게 한 적이 많은 터라 불편했다.

직장을 걸어서 오갈 수 있는 건 아주 좋은 일이다. 최대의 장점을 고르라면 그렇게 적당히 걸을 수 있는 거리라는 것. 단점은 너무 많아서 생략한다. 아니, 아까처럼 아이들을 동네에서, 오가는 길에서 자주 마주친다. 일부러 내게 어디어디 사시잖아요? 하고 떠보듯 대놓고 말하는 아이에게 태연한 척 그래, 하면서 불쾌함을 삼킨다.

그래서 그렇게 아쉬운 시작을 지나 지하철 역이 있는 대로를 향하고, 그 반대편으로 건너갔다. 시장과 먹거리 골목이 있어 적당히 둘러보았다. 결국 발길이 머문 건 처음 가보는 빵집. 멜론빵과 대파베이컨패스츄리? 대충 그런 걸 샀다. 그러고나서 다시 건너에 있는 마트에 갔다. 사람이 사는데 무엇을 그리 많이 사는가. 복작복작했다. 과자 코너에서 신제품이 보이자 곁의 사람이 신나했고 나는 부지런히 장바구니에 새로운 스낵들을 담았다. 라면 코너를 주의깊게 보았지만 새로운 건 없어서 넘어갔다. 식자재보다는 주로 냉동, 가공식품류들, 유제품과 마실 거리를 구경하고 셀프 계산대에서 바코드 찍고 나왔다. 빵값은 8천 얼마, 과자값은 9천 얼마, 운전도 안 하고 인터넷 장보기를 더 많이 하는 편이라 그렇게 장보기 나들이도 가볍다. 에코백과 그물백에 과자봉지랑 빵을 적당히 나눠담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볍게 나갔다 생각했는데 5434보라고 한다. 많지도 적지도 않게 걸었다. 그런데도 무릎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참 자전거를 먼저 탔구나. 어제는 병원에 가는 날이라 진료 시간을 기다리며 오늘보다 만걸음은 더 걸었었다. 이틀간 누적된 피로도 있겠다.

걷기를 즐기는 내게 그래서, 걷기의 효용을 이렇게 저렇게 외쳐대는 책은 딱히 쓸모도, 재미도 없었다. 걷기 싫은 사람에게 이 책을 읽힌다면, 와 역시 걷기가 좋은 거구나, 하고 설득되서 벌떡 일어나 나설지는 잘 모르겠다. 걷는 거 좋은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나. 몰라서 안 걷는 사람이 있을까?

혼자 오붓한 것도 좋지만, 조곤조곤 이야기 나누며 둘이 걷는 길이 재미있다. 이런저런 걸 보고 아무말이나 하며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 손은 잡아도 안 잡아도 좋다. 날씨가 좋으면 좋아서, 궂으면 궂어서 걷기 좋다. 그걸 알면, 같이 걷자, 할 사람이 있으면 어디든 저절로 걷게 될 것이다.

걷는 사람은 많이들 쓴다. 많이들 읽는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이 많다. 걸으면서 감각하는 세상을, 생각을 지금 이 순간의 나만 알기엔 아쉬운가 보다.

걷는 걸 좋아하게 된 지 8년차쯤 되었다. 별로 길지 않은가 싶다가 어느새 길어져 있었다. 세상 길은 무수하고 가닥가닥 연결도 잘 되어 있어서 한 번 밟고 갈 곳이 넘친다. 지루할 새가 없다. 다만 노동자는 하루의 긴 시간을 실내에 갇혀 계단을 오르내리고 복도를 오고간다. 실내보다는 실외 걷기가 뇌 활성화에 더 좋다고, 당연한 사실 같은데 이 책은 실험으로 증명된 걸 알려준다. 나는 내 뇌가 더 움직이길, 두 다리가 노곤하도록 마냥 움직이길 바란다. 가고 싶은 곳은 많이 없는데 걷고 싶은 곳은 늘 있다. 굳이 안 읽고 그 시간에 걸었으면 더 좋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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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까운 친척이라고 할 수 있는 침팬지들은 손과 발을 함께 사용하여 걷는 중간 단계의 직립보행을 한다. 이 변형된 형태는 ‘너클 워킹Knuckle Walking(손가락 관절 보행)‘이라 불리는데 특별히 효율적인 이동 방법은 아니다.(곁의 사람과 지난 번 걷기 때 이족보행에 대해, 영장류의 보행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저자는 인간의 걷기와 다른 동물들의 두 다리 사용에 제법 굵게 선을 긋는다. 난 이런 걸 보면 인간우월주의라고 외치고 싶어지고…)

-최근 유엔은 향후 30년 이내로 세계 인구가 2.9억 명으로 증가하고 22세기가 되기 이전에 3억 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2050년이 오기 전에 인구의 80~90퍼센트 이상이 도심에서 거주할 것이라고 예측했다.(이건 오자 같아서 옮겨 왔다. 세계 인구가 아니라 도시 거주 총 인구라고 해도 숫자가 맞지 않다.)

-일반적으로 도시 규모가 클수록, 또 경제력이 높을수록, 그리고 특히 경제 성장이 더 높을수록 해당 도시 거주자들은 더 빨리 걷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걷기는 평등하지 않을 수도…)

-결과적으로 노력을 관리하는 뇌 체제와 획득할 수 있는 보상을 예측하는 뇌 체제는 매우 밀접하게 연동한다. 들이는 노력이 클수록 그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적은 보상이 있는 경우에는 비교적 느리게, 많은 보상이 있는 경우 더 빠르게 걸어간다. 이는 도시에서 흔한 풍경이다.(내게 걷기는 뭔가 많은 걸 보상하나 보다. 누구보다 빠르게-)

-나아가 뇌는 노력과 보상의 균형을 통해 노력은 최소화하고 보상은 최대화하려는 시도를 한다. 이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나태함과 노력의 균형을 이루는 뇌의 진화된 반응으로 이해하면 된다.(인류 조상들의 움직임도 지금보다 딱히 더 많지 않았다고, 대신 덜 먹었다고 한다.)

-사용하지 않는 근육의 부피는 빠르고 쉽게 줄어든다. 더 나아가 근육량의 손실은 지속적으로 평생 새로운 뇌세포를 생산하는 뇌의 영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근육이 손실됨에 따라 뇌의 기능도 악화된다. 이와 함께 성격, 감정과 뇌 구조 자체에 유해한 변화도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자가 처방할 수 있는 치료제의 일종인 놀라운 자체 수정 메커니즘이 있는데, 이는 바로 운동이다.(뇌근육 손실은 생각을 잘 못했다… 걸으면 뇌를 움직일 수 있다는 건데, 동시에 읽는 중인 ‘천 개의 뇌’에서도 뇌의 작용을 움직임으로, 움직임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뇌는 사고, 기억, 문제 해결, 기획, 기분 조절 등 기타 다른 다양한 일들을 돕는 목적을 갖는다. 규칙적인 리듬과 속도로 걷는다면 뇌의 전반적인 기능이 빠르게 개선된다는 얘기다.(그런데 걷기가 수학하는 뇌까지 살려주진 못한다…)

-걷기를 통해 건강상의 실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규칙적으로 적정한 거리를 높은 속도로 걸어야 한다. 일주일에 최소 4, 5회씩 최소 30분간 대략 시속 5~5.5 킬로미터를 꾸준히 걷는 것이 좋다.(오, 유일하게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팁을 준 부분이다.)

-우리는 ‘네트워크 중심의‘ 관점에서 뇌가 어떻게 특정 기능을 돕는지 관찰하며, 더 이상 개별 영역을 언어, 시각, 촉각, 움직임 등과 같은 특정 기능만을 위한 곳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뇌의 다른 영역들 간 상호작용의 패턴이 학습과 기억 그리고 언어와 시각, 청각의 기능을 돕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는 관점에서 바라본다.(‘천 개의 뇌’라는 책에 비슷한 내용이 나왔다.)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연령층과 성별에 무관하게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자연에 노출되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개인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소득과 교육 수준, 종교의 유무, 결혼의 유무, 봉사활동, 외적 매력과 같은 요인들에 못지않게 높다는 것이다.
개인의 소득 수준이나 외적 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지만, 나가서 산책을 하는 것은 모두가 쉽게 할 수 있다. 자연환경에서 하는 활동이 행복과 웰빙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입증되었기에 비록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자연이 유일하게 도심 속 공원일지라도 규칙적으로, 또 습관적으로 자연 속에서 걷는 것을 장려해야 한다. (걷기는 평등하다. 평등해야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 했는데 내가 누가 싫어서 안 가냐! 했던 게 얼마전인 것 같은데...무슨 독후감에서였지…‘쉬어도 피곤한 사람들’이었다...)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은 나무, 삼림지대의 개울, 바위와 같은 자연에서도 영혼을 찾을 수 있다는 고대 범신론적 자연 숭배에서 대지의 어머니와 신들을 숭배하는 종교 그리고 오늘날의 ‘가이아‘와 같은 여신에 이르기까지 지구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체를 스스로 제어하는 하나의 생태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러브록 씨의 가이아 이론은 의외로 다른 과학 책에도 자주 등장해서 ‘태양을 먹다’였나? 하여간에 이만큼 반복되면 간단히 적어놓고 기억해줘야겠네 싶었다.)


-시끄럽고 한눈에 봐도 술에 취한 듯한 두 명의 남자들도 홀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나는 대각선 방향으로 걷고 있었고, 한 남자가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적대적인 시선으로 응시했고 더 빠르게 걷기 시작하더니, 왼쪽 어깨를 뒤로 살짝 움직였다. 거리가 아주 가까워졌을 때, 나는 그가 내 왼쪽 어깨를 있는 힘껏 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부딪치려는 순간 나는 내 왼쪽 어깨를 그로부터 멀리 돌렸고, 예상대로 그는 그의 어깨로 나를 치려는 시도를 했지만 내 어깨는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았다. 그는 한 바퀴 빙 돌더니 어색한 모습으로 넘어졌다. 이것은 그의 뇌가 예측한 것이 아니었고, 그가 예상한 결과가 아니었다.(어깨빵 당할 뻔 한 걸 피했다-이 한 문장을 세세하게 관찰하고 꼼꼼하게 기억했다가 적어 놓았다. 작가의 성질을 긁으면 다들 이렇게 박제될 것이다…)

-그런데 꿈을 꾸는 것의 문제는 그때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걷기를 통해 꿈의 특성인 시간적 의미의 상실 그리고 몽상, 서로 다른 기억과 생각의 자유로운 연상을 경험할 수 있다. 척수의 패턴 발생기에 의해 걷는 속도가 규정되고, 규칙적인 걷기 리듬에 빠져들어 시간을 덜 의식하게 되면 모두가 필요로 하는 창의적 사고의 문이 열린다.(꿈과 걷기 중 저자는 글쓰기에 더 유리한 걷기의 손을 들어준다.)

-우리의 시간에 대한 인식은 시계처럼 정확하거나 일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고,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단위는 실제 시간의 단위와 다르다. 이 경우 즐거움이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인간은 흔히 당시 기분에 따라 시간을 지나치게 짧게 또는 길게 예측하는 경향이 있다. 아인슈타인은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손을 뜨거운 난로에 올려놓고 있으면 일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아가씨와 앉아있으면 한 시간이 일분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대성 원리다.˝(‘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 제목 말고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유한을 걱정하면서도 또 영원을 믿게 된다’고 독후감에 써 놓았다.)

-보다 자유로운 창의적 인지 상태를 장려하고 싶다면, 근로자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 화면에서 떨어져 움직이라고 해야 한다. 움직임이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은 강력하고, 이전에 제대로 활용되지 않은 새로운 아이디어 개발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교류할 수 있는 실내•외 공간이 있는 사무 공간과 건물이 장려되어야 하며,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과 영감을 쉽게 기록할 수 있는 수단도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행동을 근무하면서 할 수 있도록 합법화하고, 지원하고, 제도화하는 것이다.(산책을 좋아하지만, 직장 안에서는 사람 마주치는 게 힘들어서 걸을 틈이 있어도 앉아서 보낸다. 그래서 늘 안절부절 못하는 것 같다.)

-오랜 기간의 심사숙고, 준비와 아이디어 개발, 새로운 문제의 적극적인 구축과 공식화, 장기간의 사고를 통한 다양한 답안에 대한 검증 그리고 걷기가 있었다.(수학자가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덕을 걷기에게도 돌리는 저자)

-수학은 때로 낯설고 매일의 일상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현대의 물리학과 컴퓨터 게이밍, 애니메이션, 그래픽 그리고 심지어 전자 칫솔의 디자인 등에도 적용될 수 있다.(대부분 그걸 모르고 이를 닦지요.)

-그러나 몽상은 적어도 이 개념의 일반적인 정의에 따른다면 단순히 게으름이나 시간의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정신 관리의 관점에서는 매우 필수적인 행동으로 우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합하고 자신의 사회적 생활에 대해 질문하고 대규모의 개인적 서사를 가능하게 한다. 만약 몽상이 게으름이라면 이는 매우 독특하고 적극적인 형태의 게으름이다. 행동으로는 조용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매우 활동적인 상태인 것이다.(아침 시간에 멍때리는 아이들 보면 뭐라도 하라고 말은 했지만, 그렇게 명상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 생각 그대로 말해도 될지는 아직 판단이 안 선다.)

-정부는 시위행진이 자유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이나 부상에 대한 위험 또는 재산에 손실이 있지 않는 이상 지나친 통제는 금지되어야 한다. 정의 사회를 완벽하게 마비 상태로 만들도록 설계한 시위가 아닌 이상,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변화를 일으킬 에너지가 발산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걷기가 변화를 일으킬 거라는 긍정과 믿음. 오늘 퀴어퍼레이드가 있었다고 한다. 퍼레이드는 걷는 거지? 그 주변에 기독교 단체가 무대를 설치하고 한 자리에 모여 주여, 하는 영상을 라이브로 보았다. 왜 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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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수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삶의 해를 구하는 공부
카를 지크문트 지음, 노승영 옮김 / 윌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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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8 저자:카를 지그문트.



원제는 이성의 왈츠 쯤 된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자꾸 상대의 발을 밟고 동작을 잊고 박자를 놓쳤다.
무척 어려웠다는 뜻이다. 특히 4장 논리학의 무수한 기호들로 표현된 명제와 결론을 말로 설명해주는 건 책을 포기할 생각이 들게 했다. 읽어도 아무 말도 모르겠는 부분… 마지막 장에서는 예시 폭탄으로 수학의 쾌감을 전하고자 애쓰시지만 거기가 더 힘들었고요...
그러니까 책 뒷표지의 ‘명쾌하고 술술 읽히며 매혹적이다.’에서 술술 읽히며는 빼 주세요.

수학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 3년 간 안 되는 것에 대해 오래 생각했을 뿐이다. 통찰과 즐거움이 조금이라도 따랐으면 좋았겠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적어도 시간은 유한하고 다른 할 것이 있으니까 수학에 오랜 세월 바칠 게 아니라면, 잠시 두고 쓸 수단이라면, 나는 다른 도구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미련은 오래 남아 수학, 과학에 대한 책을 가끔 펼친다. 재치있게 쓰려고 애쓴 티는 난다. 쉽게 쓰려고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쉬움은 상대적인 거니까 아마도 나한테 쉬운 수학 교양서는 없을 것 같다. 그냥 진작 안 덮고 (일부 아니고 다수 페이지는 훌훌 넘기기도 했다. 읽어도 몰라…) 읽은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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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에 의한 지배를 수백 년째 경험한 오늘날 우리는 예전만큼 낙관하지 못한자. ‘백과전서’ 저자들에게 민주주의는 아득한 지평선에 걸린 지복의 약속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차악에 불과하다. 칼 포퍼에 따르면 민주주의 선거는 무엇보다 혼란과 유혈을 최소화하면서 나쁜 정부를 몰아내는 방법이다. 투표가 언제나 ‘옳은’결정을 낳는다고 기대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결정이 다음 선거에서 수정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287)

-파스칼은 신을 믿기가 매우 힘든 사람들이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 불운한 이들이 적어도 노력은 해야 한다고 말한다. (311-312, 저자가 뒤에서 세뇌라고 한다…ㅋ)

-그러므로 ‘이면, 그리고 그런 경우에만if and only if‘은 ’이면if‘을 특별히 강조하는 표현이 아니라 필요충분조건을 나타낸다. “...이라는 것은 명백하다”는 “이것은 당신이 직접 풀어야 한다”라는 뜻이며 “그것은 쉽게 알 수 있다”는 세세하게 검증하는 데 한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다. 일반인에게 무척 거슬리는 것으로는 ’자명하다trivial‘의 남발이 있다. (423, 농담반 진담반)

-수학은 끈기를 가르친다. 겸손도 가르친다.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457, 그래서 포기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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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이옥전집 2 : 그물을 찢어버린 어부 완역 이옥 전집 2
이옥 지음,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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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6 저자:이옥.

책의 제목을 보고 작은어린이가 ”왜 그물을 찢어버린 어부지?“ 했다. 읽어 놓고도 기억이 안 나서 그 부분을 다시 보았다.
그물 하나로 고기잡이를 생업 삼던 어부가 호랑이와 이무기의 방해로 겨우 그들을 물리쳤지만, 이런 시련이면 하늘이 나보고 고기 잡지 말라는 거야, 그물 찢고 굶어 죽자, 했다는 거다.
이옥은 성균관 생활도 했고, 과거 급제도 몇 번 했지만, 심사위원들이 뽑아 놔도 정조가 볼 때마다 에헤이, 이딴 잡스러운 문체, 걔 군대 보내(충군), 하고 지방으로 내쫓겼다. 사면복권이 되긴 했는데, 그러면 다시 과거 응시 가능하도록 본인이 서류를 내는 절차가 있었는데 실수인지 일부러인지 안 내서 결국 벼슬길 근처도 못 갔다.
그물 찢은 어부는 결국 자신의 이야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왕한테 내침 받은 걸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옥의 글이 담긴 책 네 권째(중복된 글 많음) 읽다보니, 그의 삶이 불행했다 단정할 수도 없겠다. 글쓰기가 좋아서, 내키는 대로 자기가 쓰고 싶은 걸 썼고, 왕한테 혼나면서도 그냥 제 글투가 이렇게 생겨 먹은 걸, 하면서 계속 썼다. 여기저기서 재미있는 이야기 들으면 적었다. 담배도 뻐끔뻐끔 피워가며 국순전 비슷하게 담배 의인화 한 글도 썼고, 아예 담배에 대한 책도 따로 하나 썼는데 전집3권에 실려 있어서 아직 안 읽었다. 생전에는 자기가 전을 쓴 류광억처럼 양심 팔아 글을 돈으로 바꾸지는 못했겠지만, 지금도 널리 읽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백 몇 년 지나서도 읽는 사람이 있다. 아, 살아있을 때도 김려란 친구가 후히 읽어주고, 이옥이 죽은 후에도 그 원고 챙겨서 필사해서 여러 권의 책으로 내주기도 했다. 독자란 그렇게 한 명만 꾸준히 있어도 만족할 일 같다.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독자가 되어도 좋다.

그러니까 글쓰기는 살아생전에 뭔 덕 보겠다고 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자기가 쓰는 게 재밌고, 자기 거 읽는 게 재밌으면 쓰는 거다. 딱히 할 일 없고 한가하면, 그런데 그 한가함이 불안한 사람들은 또 쓰는 거다. 흰 바탕을 빽빽하게 검은 글자로 가린다. 누가 읽어주면 좋은 거고 아니어도 그만이다.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죽어버린 쓴 이는 절대 모르겠지만 미래의 사람들이 발견하고 읽고나서 하하호호 하는 거다.

하하호호하면서 적당히 읽고 적당히 쓰면서 살 수 있는 삶이면, 이미 그렇게 살고 있으면 조금 만족해도 되지 않겠니? 그렇게 읽고 쓸 에너지를 마련해주는 돈벌이를 조금 덜 미워해도 되지 않겠니? 이옥처럼 밭에 오이며 담배며 이거저거 키워 적당히 먹고 살 정도의 땅 있는 양반이면 조금 더 자유롭겠지만, 도시의 현대인은 자기 몸뚱이를 밭뙈기려니 하고 그럭저럭 삶을 꾸려 나가렴.

+밑줄 긋기
-내가 볼 때에는 그 모습이 해산하고 갓 일어난 것 같고, 목욕하고 빗질하지 않는 것과 같으며, 사내에게 매 맞고 버림을 받아 울면서 대충 머리를 추슬러 놓은 것 같았다. (87, 미감 심하게 섬세한, 외모품평 오지는 이옥 선생. 영남 젊은 아낙들의 머리 모양-생채계- 흉보는 글마저 남겼다.)

-요컨대, 종이는 흔한데 글씨는 귀한 까닭이다. (112, 입춘을 맞아 마을 사람들이 계속 춘첩을 써달라고 해서 사흘 낮밤 몇 백 폭을 썼다 한다. 웹소설 작가 조르는 독자들 줄선 느낌이다..)

-천재지하에 이목을 괴롭히는 음란한 소리를 하는 자는 그 죄가 진실로 큰 것이다. 어찌 저 거짓말로써 거짓말을 불려 스스로를 짐짓 망언하는 부류로 만들어 다만 남의 한 번 웃음을 더하는 것과 같단 말인가? 그러나 떡갈나무 판에 새기고 닥나무로 만든 흰 종이에 찍으니, 두 나무 또한 원통할 일이다. (132, ‘언문소설’ 중. 나무야 미안해의 원조. 그나저나 픽션 안 좋아하셨던 옥이씨. 본인 글은 팩션이라 봐주는 거냐.)

-사람들이 말하기를, “폭포가 거쳐 오는 길에 옛날에는 돌부리가 있어서 마치 기름장수가 기름을 쏟아 붓는 것 같았다. 폭포 물이 멀리 날아가 더욱 기이하였는데, 주민들이 감사와 고을 원이 놀러 오는 것을 괴롭게 여겨 그것을 쪼아 무너뜨렸다”고 한다. 지금도 쪼은 흔적과 다녀간 사람들의 이름이 있다. 슬프다, 벼슬아치가 명승지에 누를 끼치는 것이 많다. (159, ‘폭포 구경’ 중. 예나 지금이나 높은 사람들은 있던 돌부리도, 산도 막 없애고 사람들을 귀찮게 한다.)

-세상에 그대가 없다고 하여 손실될 바 없고, 그대에게 세상이 없어서 또한 욕될 바가 없다. 그러니 그대는 그대의 뜻을 행하고, 그대가 좋아하는 것을 따를 것이다. 그대가 돌아가지 않으면 누가 돌아갈 것인가? (207, ‘매미의 권고’ 중. 자호 ‘매암’이 매미소리 같다며 얼른 집에 가! 하는 소리로 듣고 있다.)

-한 번 휘두르면 술에 취한 듯하고, 두 번 휘두르면 병든 듯하고, 세 번 휘두르면 비로소 고요해진다.
(222, ’파리채에 새긴 글‘ 중. 이옥의 파리 잡기 삼단계)

-천하가 버글거리며 온통 이끗을 위하여 오고 이끗을 위하여 간다. 세상이 이를 숭상함이 오래되었다. 그러나 이끗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반드시 이끗 때문에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는 이를 말하지 아니하고, 소인은 이끗을 위하여 죽기까지 한다. (350, ‘류광억 전‘ 중. 문제집에 가끔 나오던 과거 대리 시험 봐주던 류광억 이야기가 재밌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끗, 이재에만 몰두하는 삶이 많다. 나도 점점 그러는 거 같아서 싫으네.)

-“내가 너희들에게 이 풍류 소년을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일에 당해서 진실로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뜻을 세우면 규중의 처자라도 오히려 감동시킬 수 있거늘, 하물며 문장이나 과거야 왜 안 되겠느냐?”하셨다. (362, ‘심생 전’ 중. 이것도 문제집에서 많이 보던 이야기였다. 특이한 게 욕먹을까 봐 그랬는지 기이한 연애담 뒤에 사실 이건 교훈적인 이야기이다, 이렇게 돌려막는 게 잔망스러웠다. 과거급제보다는 그래도 연애가 더 쉬울 것 같은데…)

-그러므로 그 사람에 가탁하여 장차 시가 될 적에, 물 흐르듯이 귀와 눈을 따라 들어가 단전 위에서 머물다가 줄줄 잇달아 입과 손끝으로 따라 나오는 것으로, 그 사람의 주관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석가모니가 우연히 공작의 입을 통해서 뱃속에 들어갔다가 잠시 뒤에 공작의 꽁무니로 다시 나온 것과 같다. (405, 그렇다면 소설은 소설의 신이, 독후감은 독후감의 신이 줄줄 흘러나오는 것이렷다)

-그 마음이 간질간질하여 마치 천 마리, 백 마리의 이가 간에서 두루 달리는 것과 같다. 나는 또한 오장육부를 다 기울여 이 이들을 쏟아내 놓은 뒤에야 그만둘 수 밖에 없다. (415, 왜 쓰냐건 웃지요)

-한가함은 진실로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니,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러한가, 그렇지 않은가?(중략)
다만 한가함을 해소하는 데 소용이 된다면 또한 반나절의 도움은 될 것이다. (447-448, ‘김신사혼기제사’ 중. 공부도 안 되고 한가해 죽겠어서 3일 만에 쓴 희곡이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재미로 봐라, 한다. 글 안 쓰면 병나는 병에 걸린 옥이 아저씨)

-임장: 한성부 공문에, 오부 안의 각 동네 늙은 도령을 책으로 엮어 보고케 하고, 관가에서 혼례를 도와 며칠 내로 혼인을 이루어준다 하였소. 좋구나 좋아. 늙은 도령 장가갈 시절이니 좋은 술 한 잔으로 나에게 대접하지 않을 수 없겠소. (457, 스물여덟 늙은 도령이 혼인 못한다고 한탄하는 중에 국가에서 중매해 줌. 시장이 아니라 나라에서 공영화 중매 서비스를 운영하면...다 망하려나. 전과 같은 건 잘 걸러줄 듯. 완전 픽션인지 알았더니, 정조실록에 비슷한 공공서비스 기사가 남아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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