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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망한 사랑
김지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평점 :
-20241117 김지연.
나는 이제 아픈 건 참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아침 나절에 타이레놀 한 알을 더 먹었다. 전날 밤에는 타이레놀 콜드를 먹고 잠들었다. 이전 감기가 나아진지 얼마 되지 않는 작은어린이가 새로운 종류에 걸려온 걸 옮은 모양이다. 금요일 밤에 어린이는 열이 38.8도를 찍고 아주 조금 토했다. 다행히도 열은 금방 내렸다. 통증을 잘 견디는 사람은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사이코패스 될 가능성도 높다는 연구가 있다는 기사문을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보았다. 나는 소음과 냄새와 빛의 자극에는 개복치처럼 민감한데, 아픈 건 또 잘 참아서 내 살갗을 뚫는 피를 뽑아내거나 주사액을 넣기 위한 바늘 구멍을 눈을 떼지 않고 노려본다. 눌렀다 떼면 아픈 압통이 있어 스스로 충수염 의심하고 의원에 갔는데 의사가 열도 안 나고 별로 안 아파 한다고 장염약을 지어주는 바람에 죽을 먹고 약을 먹고 그러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응급실 가서 저 충수염 같은데… 그런데 밥을 바로 먹어서 통증을 견디며 공복이 되기 위한 몇 시간을 채우고 조영제 씨티를 찍어야 했던 적이 있었다. (충수염이 맞았다. 바로 수술 받음) 인대가 파열된 것도 모르고 접질린 발목으로 뚜벅뚜벅 걸어간 동네 외과에서는 엑스레이만 찍어보고 몇 번 눌러보고 내가 너무 멀쩡했는지 파열은 아닌 것 같다고, 물리치료나 잘 나오라고 오진을 해서 결국 한 달 뒤 엠알아이로 발목 인대 여러 개 나갔던 흔적을, 초음파로 그 합병증인 다리 심부정맥혈전증을, 직후에 숨이 차 뚜벅뚜벅 절룩절룩 천천히 걸어간 응급실에서 씨티 촬영으로 심장에서 폐로 나가는 동맥에 혈전이 박힌 걸 발견했다. 그러니까 통증을 가지고 막 호소하지는 않는데 또 제법 몸의 이상은 일찌감치 감지를 잘해서 그냥 이렇게 살아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조금 아프면 그냥 아프네? 하지 말고 병원도 바로 가고, 약도 잘 먹기로 했다.
수능 시험 마치고 집에 오니, 큰아이 얼굴이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이틀전 체육시간에 다른 아이가 던진 공에 맞은 안경이 휘면서 찰과상을 입었다. 그런데 보건실에서 소독 후에 가로세로 삼센티미터 정도로 큼지막하게 마름모 모양으로 볼에 붙여준 습윤밴드가 문제였다. 다음 날 아침에 떼어보니 원래 상처는 크지 않았는데 반창고 모양으로 꼭 화상 입은 것처럼 되었다. 수험표 받고 돌아온 나는 감염이 걱정되어 항생제 연고를 발라주었다. 그러고 시험보고 돌아와보니 반창고 닿은 부위가 전부 접촉성 피부염에다 감염까지 되어 진물이 흐르고 번진 상처를 중심으로 얼굴이 전체적으로 평소보다 몇배로 부어 아이는 눈도 못 뜨고 있었다. 급히 야간 진료하는 피부과를 찾아 전화를 걸고, 저희는 상처 치료 안 하는데요, 말로만 듣던 미용 레이저 피부과 몇 개를 거르고 진료 봐준다는 병원을 찾아 아이 치료를 하고 (내가 한 거처럼 그냥 항생제만 얼굴 전체에 도포해주었다), 스테로이드랑 항히스타민제랑 항생제 먹는거랑 바르는 거 받아왔다.
시험 중에 뇌정지 오고 문제 안 풀려 고통스러울 때마다 다크초콜릿 싸간 걸 까득 반 조각 내 입에 넣고 녹여 먹었다. 알라딘에서도 팔던 나폴리탄 어쩌구를 아니 집더하기가 훨씬 더 싸네, 하고 샀다가 몇개월 냉장고 처박아 뒀던건데 평소 먹지도 않던 걸 싸갔더니 비상 포션으로 유용했다. 시험장 학교는 전전날 내가 오랜만에 산책 멀리 나간 공원 근처였다. 마치 거기 갈 걸 알았던 것처럼 만걸음 넘게 갔던 곳인데 수험표 받은 날은 꼭 그전날 걸은 길을 반대로 돌아 시험장을 확인하고 왔다. 여로에서 가장 가까운 후문께 가서 에이, 시험장날 설마 잠가 둘까 열어주겠지, 했는데 역시나 잠가놔서 좀 빙 돌아야했다. 그래도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괜찮은 시험 전날을 보낸 수험생이 아닐까 싶었다. 집에서부터 버스로는 환승해서 38분, 걸어서 49분, 네이버지도에 그렇게 알려준 곳이라 교통편이 애매했는데, 그냥 가장 가까이 가는 버스 한 번만 타고 1.4킬로미터는 걷기로 했다. 괜찮은 선택이었다. 다음 날 아침 버스를 내려 공원을 가로질러 걷는데, 거기에는 수능이랑 아무 상관 없는 이 세상 사람 9할 정도가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걷고 뛰고 있었다. 정원은 마음의 약국, 이라는 키케로의 문구가 적힌 팻말을 아마도 세 번째 (시험장 모르고 산책할 때, 전날 답사 갔다 돌아올 때, 그리고 시험 당일) 지나고 있었다.
학교 환경은 그간 내가 근무한 세 곳과 감독갔던 아홉 번(학교 자체는 중복이라 그거보다는 적지만) 중에 가장 쾌적하고 깨끗하고 좋았다. 휴지심을 네토막 내어 들고가서 책상이 흔들리면 고이려고 준비했는데 여자고등학교라 그런가 책상 의자가 키 작은 내게 맞춤한 듯 낮고 새거고 튼튼해서 그냥 소독 티슈로 한 번 슥 닦고 방석하나 놓고 하루 잘 보냈다. 그래도 내내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프니까 쉬는 시간 마다 운동장이라도 걸으려 했는데 오전부터 비가 왔다. 3층인 내 시험실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고 여자화장실은 늘 만원인 걸 알아서 나는 그 옆 복도 구석을 지나 본능이 이끄는대로 교과실들 놓인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가니 감독관 대기실이 보였고 ㅋㅋㅋ(감독관 출신의 본능이란…) 저기 화장실은 조금 더 한산하겠지, 만 한 층 더 내려가자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 (아무래도 평소에도 한산한 듯 쾌적 깨끗한) 화장실을 찾아내 하루 내내 나의 아지트로 활용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마다 여길 이용하고 그 안을 내내 빙빙 걸었다. 벽에는 앙리 마티스 그림도 걸려 있었다. 공사한지 얼마 안 되는지 깨끗하고 사방에 전신거울, 화장대 같은 거울, 옆에는 바깥 단풍 내다 보이는 창이 있어 답답하면 열어놓고 찬공기도 쐬면서 있었다. 수학시간에는 나는 현우진이다, 이주란 소설에서 배운 것처럼 빙의해보려고 했지만(운동 가기 싫으면 나는 김연아다, 출근하기 싫으면 나는 봉사활동 가는 중이다, 한다고 했다) 실패했다. 마킹하지 못한 답안지를 채우려고 그간 작성한 답지 중 제일 적은 보기를 세는 스스로를 보며 참담함을 느끼는 일은 20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사실 이번 수능이 망할 것이라는 걸 며칠 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길고 작게 미리부터 애도를 하고 있었다. 시험 주 내내 하루 만걸음 넘게 바깥을 싸돌아다니며 가을날 마지막을 느끼고 돌아왔다. 시험 이틀전에는 급기야 몇 주 몇 달 참던 책을 꺼내들고 읽었다. 나는 조금 덜 아프고 싶었다.
김지연의 소설이었고, 내가 이전에 김지연 소설 처음 읽고 아 이건 좀...나랑은 안 되겠네, 했다가 다른 수상작품집에서 ‘포기’를 읽고 흠 한 번 더 읽어 볼만 할지도 했어서 신작 소설집을 산 건데 마침 그 ’포기‘가 처음으로 나왔다. 소설 속 젊음들은 사랑을 잃고 거기에 더해 돈도 잃는다. 그런 이야기만 거의 삼연타로 나온다. 헤어진 연인이 돈도 안 갚고 잠적...이런 거 진짜 자주 있는 일인건지 그렇다면 정말 자본주의적인 맴찢이 아닌지…
김지연 소설을 읽다가 나는 내가 4년 전 마지막 쓴 소설이 생각나 다시 읽어보고 혼자 흡족하면서 씁쓸하기도 했다. 한국문학에 내 자리가 손바닥만한 거라도 남아 있었다면, 그 비슷한 위치는 이미 김지연이 있다...나는 중복이라 땡탈락...혼자 그런 망상을 하면서 웃었다. 나는 나중에 소설집을 낸다면 ’사랑의 흑역사‘라고 내겠다고 그런데 아직 그런 제목의 소설을 쓰지 못했네...했는데 ’조금 망한 사랑‘이 비슷한 위치를 선점했지 않냐...그런데 소설집과 동명의 소설은 없긴 하다. 작가의 이전 소설도, 작가 자체도 난 잘 알지 못했는데 작품들 읽는 내내 많은 교차점을 발견하고 반갑기도 하고 어 야...왜 자꾸 먼저 써… 그런 기분도 들고 사실 내가 오래 책을 굶다 읽은 거라 뭘 읽어도 후했을 시기이긴 한데 하여간에 악성반놈한테 잡힌 것 치고는 운이 좋...은 게 아니고 작가님 잘 쓰셨네요…
22년도와 올해 인생 두번째, 세번째 수능을 보면서 그제서야 나는 생각보다 망해보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국어도 딱히 잘 본 건 아니지만 굶주린 나놈에게 가뭄의 물줄기 같던 국어 공부가 즐거웠던 걸 보면 나새끼는 별 수 없는 뼛속 깊은 문과따리라는 걸 다시 확인하는 기회일 뿐이었고… 나는 망친 몸 건강과 정신 건강을 회복하는 방법, 혼자 집에서 체지방을 덜고 근육을 붙이는 방법, 아무데서나 밥 말고 시리얼바 하나랑 단백질 음료로 끼니 떼우고도 건강히 생존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리고 조금 덜 울면서 잘 망하는 방법도 조금은 익혔을지도… 망하기 전에도 알았고 망한 후에도 알았지만 나는 잃은 게 하나도 없었다. 내 사랑은 하나도 망하지 않았다. 세상에. 나는 가진게 너무 많았고, 잠시 들이닥칠 안 좋은 일들도 시험을 비껴 다가와서는 주말 내에 서서히 나아지는 중이다. 아이들도 나도 아픈 곳이 (아마도) 회복중이다.
내 삼년만의 가족 복귀를 기념하듯 어제는 내가 마트에서 4900원 주고 사온 부자만들기라는 보드게임을 둘러 앉아 세 시간 넘게 했다. 십억을 벌면 이기는 게임인데, 나는 연지 일주일도 안 되서 피씨방이 화재로 불타 폐업했다. 헬스장을 여니 대형 피트니스센터가 들어와 또 강제 폐업 당했다. 치킨집, 호프집, 다시 의류백화점 업종 변경을 하며 겨우겨우 돈을 모아 완전 개털되지 않고 근근이 생존했지만, 큰어린이가 10억10만원을 모아 게임이 종료되었을 때 나는 그 절반인 5억 얼마를 모으고 꼴찌를 했다. 게임이니까 꼴찌이지 5억이 어딘가…. 게임인데도 재산세 50만원! 학원비 40만원! 자녀 대학 입학금 400만원! 경조사비 50만원! 이렇게 지출이 디테일한 구석이 있어서 망했다 흥했다 자본주의적 인생 경로 한 번 잘 따라갔다 왔네…
하여간에 수능은 망했는데 그냥 나는 안 망했다는 인사를 독후감 빙자해서 길게도 썼다. 더 읽고 쓰겠다고 공부를 택했는데 너무 돌아갔다 다시 온 것 같기도 하다. 굳이 무엇이 안 되어도 이미 하고 있었는데? 뭘 더 안 가져도 이미 너무 많은데? 하고.
+밑줄 긋기
-내가 상상한 평범한 삶이라는 게 웬만한 건 다 충족된 삶이었다는 것도 나중에 깨달았다. 집이 있고, 차가 있고, 일 년에 한두 번 해외여행을 가고, 함께 여행 갈 애인이나 친구나 가족이 있는, 그런 게 평범한 삶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런 게 평범하던 시절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더이상은 아니었다. 그건 아주 어렵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삶이었다. 민재가 말한 평범한 삶이란 불운과 함께하는 삶이었다. 살면서 한두 개의 불운이란 없을 수가 없으니까 그것이야말로 평범한 삶이었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지. (’포기‘ 중, 25)
-반려빚은 정현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정현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 말이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있을 수 있는 꿈이라고 해도 그건 말이 안 됐다.
우린 진작 헤어졌잖아.
반려빚은 잠시 정현의 말을 곰곰 생각해보는 듯했다.
참, 그랬지.
반려빚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코트 깃을 세우고 현관에 서서 정현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정현을 떠났다. 정현 역시 현관에 오래 서 있지 않았다. 찬장에서 소금을 꺼내와 현관 밖에 팍팍 뿌렸고 문이 닫히자마자 걸쇠를 단단히 걸어 잠갔다. 다시는 얼씬도 못하도록. 꿈속에서 정현은 마냥 홀가분했고 깨어서도 그랬다. 마침내 0이 된 기분. 정현은 그 이상을 바라는 것도 이상하게 무섭기만 해서 그저 0인 채로 오래 있고 싶었다. (’반려빚‘ 중, 104-105)
-무슨 일에서든 선경은 성실을 최고의 가치로 두곤 했다. 그렇게 성실한 사람이니까 바람을 피울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엠비티아이 유형을 따져보자면 아마 K는 J타입일 것이다. 철두철미한 계획형 인간. 그런 것치곤 피임은 제대로 못하는 편인 듯했지만 인간이 한쪽으로만 치우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정확한 비밀‘중, 209. 비꼬고 두들겨 패는 거 잘 함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