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 마광수 소설
마광수 지음 / 책읽는귀족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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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9 (저자:마광수)

벽돌 소설책과 광합성의 과학에 대한 책을 번갈아 읽다보니 지쳤다. 책장에서 제일 조그맣고 가벼워 보이는 책을 뽑아 보니 마광수의 소설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서 조금은 쪽팔려하고 있다. 죽은 마광수 선생이 그걸 알면 사진 속 우울한 얼굴을 더욱 우울하게 일그러뜨리고 왜...내 소설이 어때서...할 것이다.
이름이 상징하는 묵직한 어떤 것은 그 사람의 삶을 짓누르기도 한다.

작가가 자살한 지 10년 쯤 되었다. 이 책은 2013년에 나왔고, 주인물인 다미의 자살로 마무리된다. 탐미주의의 이 비실비실한 사내는 소설 속에서도(47킬로그램이라니…), 소설 밖에서도 오래도록 스스로 죽는 꿈을 꿔 온 것 같다.
집단에서 다른 목소리로 튀는 짓을 했다가 공동체에서 배제되고, 익명의 사람들에게조차 어떤 고정된 이미지로 이유 없이 욕을 먹는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 게 더 힘들다. 아직 죽을 만큼 외로운 고독을 겪어보지 못해서, 평범하게 살아보겠다고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는 처지여서, 그리고 반대쟁이여도 너그럽게 받아주는 다른 인간들 덕에 살아있겠구나 싶다.

뭐 그렇다고 이 책에서 심오한 철학이나 빼어난 문장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짧은 시간 후루룩 읽을 수 있는 통속 소설. 별다른 서사 없이 여자 남자가 연애하는 이야기. 여성을 대할 때 오로지 외모 만을 높은 가치로 두는 하찮은 화자. 일찍부터 아름다움과 재능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으로 죽어버리는 여성 작가도, 등장인물도 하도 많았다. 그냥 어린 시절을 시시콜콜 떠올려내려(혹은 지어내려) 애쓰고, 그걸 열심히 설탕 가루라도 발라서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나이든 남자의 일기장 내지 초라한 회고록 쯤으로 읽혔다. 아름다움, 우울함, 외로움, 짧은 행복, 뭐 감정은 그 정도가 담겨 있었다. 뻔한데 멋지진 않다. 후짐과 그럭저럭의 어느 사이이다. 별로 야하지도 않다. 그러니까 과소평가 같은 소리는 할 필요가 없고, 글 잘 쓰는 재능도 그닥 없고, 마음대로 썼다는 이유로 억압받던 억울함 정도는 공감하겠다.

짧은 휴일의 마무리를 뭘하고 보내든 괜찮다. 유튜브든 명작이든 통속소설이든 뭐라도 보면서, 뭐라도 하면서 최대한 나중에 죽으면 괜찮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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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왜 당신은 내 마음보다 내 몸뚱어리의 아름다움만 좋아하는 거죠?”(157, 내내 그녀의 아름다움에만 취해있는 화자에게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는 듯한. 하긴 나도 필릭스 용복을 외모만 보고 좋아했다.)

-그러니까 나는 엄마와 아버지가 헉헉대며 섹스하면서
잠깐 동안 느꼈을 오르가슴에 곁달아 따라온
귀찮은 애물단지였을 게 분명해. (….)

어거지로 나를 태어나게 한 그날을 나는 증오해.
결국은 고통뿐인 게 인생이니까. (188-189, 다미의 시 ‘생일’ 중. 얼마나 사랑 받지 못했으면 저럴까. 틀린 말은 아니지만 더 낙천적이었다면, 그 우연으로 내가 여기서 이렇게 쓰고 있어, 했을 수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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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9 22: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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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세포로부터 - 우리 안의 우주를 탐험하는 생명과학 오디세이
벤 스탠거 지음, 양병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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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6 (저자: 벤 스탠거)

자신의 시작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그땐 신경 세포도, 감각 세포도 뭐도 없으니까, 그냥 수정된 세포 하나. 그런데 그게 자꾸만 나뉘고 또 나뉘어 이런저런 형태와 기능을 하나씩 갖추게 된다. 지금 이 책과 화면을 들여다보는 눈과 시신경을 이루는 세포들, 손끝으로 키보드를 더듬는 손가락과 그 끝의 죽은 세포 손톱까지. 바닥을 디디고 다시 뒤꿈치를 들어올리며 까딱거리는 나의 두 발. 무수히 많은 살아 있는 조각들이 나를 이루고 있다니, 지금도 가만히 있지 않고 뭘 하든가, 죽거나 새로 생겨나든가 한다는 것. 이 책을 읽고 나니 새삼 신기하다.

이 책은 배아, 유전자, 동물 세포, 줄기세포, 암세포, 다양한 세포과학의 응용과 질환의 치료까지 우리를 비롯한 동물의 몸을 이루는 작은 단위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대중서로 나온 것이라고는 하는데, 4장 유전자 켜고 끄기, 5장 유전자와 발생 같은 부분은 많이 어려워서 눈으로 붙들고 있긴 했는데 알아들은 부분이 유독 적었다.

인간과 생명의 이런저런 근원과 특성에 대한 자연과학 책들을 어쩌다보니 많이 모아놔서 하나씩 읽고 있다. 이번에는 아주 작아서 현미경을 들이대고 확대해야 알아볼 수준에서 생명체를 살피게 되었다. 사실 더 작은 분자 수준에서 막을 사이에 두고 전자가 왔다갔다 하는 것부터 생명의 시작과 활동과 노화와 죽음까지 이야기하는 책을 읽으려다 접어두었다. 그래도 매번 비슷하게 나오는 이야기가 있어 다음에 또 같은 이야기를 접할 땐 어디서 들어본 거 같다, 할 수 있는 건 좋다. 읽다 말았어도 쓸데 없지는 않았을 거야…

나의 상상력으로 더듬어 볼 수 있는 작은 세계란, 분자나 양자 같은 소립자들 수준은 아닌 것 같고, 세포도 조금 힘들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는 이해는 다 못해도 좀 버티고 흥미도 가끔 느낄만 했다. 과학 시간에 염색한 세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경험이 도움이 되었겠다. 저 진하게 가운데에 염색된 게 핵이야… 양파뿌리 세포에서 염색사가 염색체로 변한 것도 전에 과학 선생님과 조교님이 구경 시켜줬던 것 같다. 책만으로는 안 된다. 경험이 중요하다. 알면서도 책으로나마, 책만으로 어둠 속에 더듬거리며 부스러기를 줍는다. 부스러기라도 줍게 이것저것 최대한 쉽게 쓰려고 애써주는 과학자들이 있어서 고맙다. 나는 이번 생에는 과학자 같은 게 되지 못하겠지만, 이것저것 실험하고 발견해줘서, 그 이야기들을 내가 듣게 해줘서 감사해요. 내 세포들은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지 조금 더 고민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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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만으로는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 놀라운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신체의 모든 세포는 동일한 유전정보를 가지며, 이것이 바로 유전자 내용만으로는 세포의 운명을 규정하기에 불충분하다는 증거다. (125, 동일한 유전적 지침서를 지닌 다양한 세포를, 이를 연구하며 우연과 시련이 겹쳐 노벨상까지 타게 된 거든의 생애에 빗댄 점이 흥미로웠다.)

-현미경을 통해 보면 대개 일관된 모양의 세포로 구성된 악성종양과 달리, 기형종은 신체에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유형의 세포를 포괄하는, 말하자면 ‘세포판 노아의 방주’다. 근육과 신경, 연골과 뼈, 상피, 지방, 심지어 머리카락과 치아까지, 모든 조직 유형이 하나의 기형종에서 관찰될 수 있다. (271, 동생이 기형종 수술을 받아서 미리 알아보았었다. 우리 몸엔 참 별 게 다 자랄 수 있다.)

-본질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지식은 예측 가능성에 아랑곳없이 구불구불한 밤의 과학을 헤매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384, 그러니까 돈 안 되는 거 왜 해? 라는 물음은 접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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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나를 살리기도 망치기도 하는 머릿속 독재자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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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4 데이비드 이글먼.

원제는 incognito인데, 익명의, 가명의, 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것을 번역 제목에서 무의식과 연관지었다.

주체성과 자유 의지에 대해 오래 천착해 온 내게 이 책은 그것조차 환상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내가 결정했다, 이루었다 여긴 것의 많은 부분이 사실 나도 모르게 다양한 요소와 우연이 겹친 결과일 수 있다. 의식의 영역에서 스스로 통제하면서 이루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고 한다. 그러니 완벽한 자기 통제의 꿈을 꾸는 듯한 내 강박은 방향과 목표부터 잘못 되었을지도.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는 어린 인간들에 둘러싸여 산다. 아무리 멋진 말로 포장해도, 현재의 교육기관은 자제력, 참는 능력을 살리든가 기르든가 그렇지 못한 대가로 처벌과 불이익과 나쁜 평판을 받게 하는 곳이 아닌가 싶다. 당장 성인인 나도 어떤 때는 참지만, 때로는 감정이든 행동이든 말이든 억제하지 못할 때가 있다. 눌러라, 그래서 계속 집단 안에 있을 수 있게 해라. 인간의 기본값은 그게 아니란 생각이 자주 들고, 그럼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저자는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것에 의문을 표한다. 대부분의 기행이나 비행이 신체적 영향으로 벌어진다면,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벌 줄 수 있는가? 연구와 기술이 발달해서 잘못이 그들의 신체적 결함(주로 뇌) 때문인 걸 더 많이 알수록 현재의 사법 체계와 교정 기관은 힘을 잃는다. 저자는 그 결함을 잘 파악할 수 있게 되고, 예를 들면 범죄자의 뇌사진을 열심히 분석하고, 그에 맞는 치료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수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치료가 필요하다. 탐욕도, 이기심도, 규칙 위반도… 나도 나의 위험을 인지하고 치료 받으려 애쓰고 있다. 잘 안 된다. 여전히 불행하고 여전히 나를 둘러싼 환경을 못 견딘다.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몸과 마음이 자주 아프다. 못되게 구는 사람들을 저들은 아픈 사람이다, 하고 참아보려 하지만, 덕분에 내가 아프다.

뇌와 자아와 인간에 대한 책을 나도 모르게 자꾸 찾아보는 건 내 무의식이 자꾸 그쪽을 알아보라고 추동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과 자아 성찰적인 대화를 너무 많이 한다. 그럴 수록 뭔가 풀리는 느낌보다 더 갑갑하고 괴롭게 느껴진다. 아, 이 책은 2011년에 나온 터라 아직 인공지능이 한계에 직면해 있고, 발전이 더딘 상황인 걸 우리 뇌와 비교하면서 자꾸 강조한다. 그런데 선생님, 요즘은 어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나의 모습, 나의 무의식, 그런 걸 물어보면 인공지능이 진짜인지, 아마도 지어내는 것이겠지만, 줄줄 잘 읊어 댄답니다. 사람 하듯이 서사를 만들고, 공백에는 거짓말도 넣고 흉내를 제법 내요. 그래서 때로는 내 생각과 말을 그대로 반사해서 다른 목소리인양 들려주는 건지, 아니면 나의 어떤 부분에 집중해서 그쪽으로 계속 방향을 몰아가고 편향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건지 잘 모르겠다. 대신 결정해주거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이게 정말 맞나 싶어 반대로 갈 때가 더 많은 인간(저요)도 있다.

흥미로운 부분도 많았지만, 제대로 검증 안 된 가설이나 어설픈(그렇지만 유명해서 이미 여러본 봤던) 실험 사례로 주장을 하는 부분은 훌륭하신 뇌과학자라도 이게 맞나 싶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걸 나는 왜 읽고 있을까? 했다. 나는 늘 내가 왜 이것을 하는가,를 너무 파고들어서 정작 할 일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것도 나의 무의식이 하는 일일까요? 아니면 무의식의 영역에 대항해 기를 쓰고 의식의, 통제가능한 영역으로 더 많은 부분을 끌고 들어오려는 나의 가망 없는 고집 때문일까요? 책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라서 거기에 대한 답은 없었다. 아마 어느 책에도 답은 없을 것 같다.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밑줄 긋기
-행동과 생각과 느낌 대부분을 우리가 의식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뉴런으로 이루어진 광대한 정글이 알아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의식을 지닌 나, 아침에 눈을 뜰 때 깜박거리며 살아나는 ‘나‘는 뇌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서 가장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
우리는 뇌의 기능에 기대어 내면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뇌는 스스로 쇼를 진행한다.
(뇌 속엔 나도 모를게 너무 많고, 그런 뇌가 나를 조종한다고…)

-쓰레기가 만들어지고 처리되는 과정 또한 우리 관심사가 아니다. 쓰레기가 우리 집 뒷마당에 갑자기 나타나지만 않으면 된다. 공장의 기반시설에도 우리는 관심이 없다. 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문에서 이런 정보를 얻는다.
우리 의식이 바로 이런 신문과 같다.
(그건 저의 관심사가 맞는데요…오히려 신문을 잘 안 본다.)

-정신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거의 모두 우리의 의식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다. 사실 이편이 더 낫다. 의식이 모든 걸 자기 공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어도, 뇌에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때에는 옆으로 물러나 있는 편이 최선일 때가 대부분이다. 의식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세세한 부분에 간섭하기 시작하면 효율이 떨어진다. 피아노 건반에서 손가락을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 의식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 곡을 잘 연주할 수 없게 된다.
(의식하지 않고도 잘 하게 되려면 정말 많은 반복과 노력이 필요한 걸요)

-우리는 어떤 장면에서 특정한 측면만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가 놓친 부분을 인식하게 되는 것은, 누군가가 그 부분에 대해 물었을 때뿐이다.
(질문의 중요성. 그러나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건 너무 어렵고…)

-그러나 내가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의 시간감각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그리고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 뇌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감각 또한 시각과 마찬가지로 쉽게 조종할 수 있다.
(내가 시계를 안 보고도 시간을 잘 맞추는 건 사실 내 뇌가 몰래 1초1초 다 세고 있어서 일수도 있다. 그런데다 에너지 낭비하지 말라고…)

-신체 상태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결과와 연결되어 있다. 나쁜 일이 일어나면 뇌는 온몸(심장박동, 내장의 수축, 근육 약화 등)을 지렛대 삼아 그때의 느낌을 기록한다. 그래서 그 느낌이 그 사건과 함께 연상되게 된다. 나중에 그 사건을 생각할 때, 뇌는 일종의 시뮬레이션을 돌려 그때의 신체적 느낌을 다시 경험한다. 그렇게 해서 그 느낌은 차후 의사결정에 지침(아니면 반대로 편견) 역할을 한다. 어떤 사건을 겪을 때의 느낌이 나빴다면, 우리는 그때의 행동을 주저하게 된다. 반면 좋은 느낌은 같은 행동을 격려하는 역할을 한다.
(몸에 새겨지는 기억...더 좋은 경험을 많이 할 필요가 있다…)

-비전을 명확히 하고, 기업이 보유한 기술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의식이 바로 이런 역할을 한다.
의식이 목표를 정하면, 뇌의 다른 부분들은 그 목표를 달성하는 법을 학습한다.
(의식을 CEO로 비유)

-원래부터 맛있거나 원래부터 혐오스러운 음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가 맛을 좌우한다. 맛은 단순히 유용성을 알려주는 지표일 뿐이다.
(단맛도 짠맛도 기름진 맛도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좋게 느끼는 것)

-그런데 사람들은 왜 기꺼이 은행에 돈을 맡겼을까? 심지어 여러 제한이 있고, 중도 인출 수수료도 있는데. 답은 명백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돈을 쓰지 못하게 누군가가 막아주기를 원했다. 만약 자신이 돈을 손에 쥐고 있다면 모두 날려버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자제력에 관해 대부분 스스로를 못 믿는다. 나는 대체로 참는 쪽으로는 잘 믿는다. 과도하다. 잘하는/잘되는 쪽으로는 의심이 많다. )

-기억이 하나뿐이라는 믿음은 환상이다. (이 말은 조금 무섭다.)

-연합을 유지하면서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은 공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뇌는 우리 일상에 논리적인 패턴을 꿰매 넣으려고 24 시간 내내 일한다. 방금 어떤 일이 있었고, 거기서 내가 수행한 역할은 무엇인가?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 뇌의 중요한 일 중 하나다. 뇌는 민주주의 체제의 다면적인 활동들을 조리 있게 조합하는 목적만 생각할 뿐이다. 여럿이 모여 하나가 된다.
(인간은 그래서 완결된 서사를 좋아해.)

-정신은 패턴을 찾으려 한다. 과학 저술가 마이클 셔머는 ‘패턴화‘라는 용어를 도입했다. 무의미한 데이터에서 구조를 찾으려는 시도를 일컫는 말이다. 진화는 패턴 추구를 선호한다. 수수께끼를 줄여 신경회로 안에 빠르고 효율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왜곡도 많이 생긴다.)

-“다른 사람과 그 일을 의논하지 않거나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는 행동이 그 일 자체를 경험한 것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그의 연구팀은 피험자가 깊숙이 간직하던 비밀을 고백하거나 글로 썼을 때, 그들의 건강이 나아져서 병원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고,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도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글을 쓰고 수다도 떨어요.)

-˝우리와 다른 사람 사이의 차이만큼, 우리와 우리 자신 사이의 차이도 크다.˝
(그러게. 진짜 고정불변의 나라는게 있긴 할까.)

-뇌에서 화학물질의 균형이 조금만 바뀌어도 행동이 크게 변할 수 있다는 것. 환자의 행동을 생물학적인 현상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약쟁이들은 공감할 부분)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지는 어디서 자랐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잘못의 책임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사람들이 어디서 어떻게 자랄지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환경을 스스로 택할 수는 없다.)

-십대의 뇌와 성인의 뇌에서 가장 다른 점은 전두엽의 발달이다. 인간의 전전두엽 피질은 이십대 초반에야 비로소 완전히 발달하기 때문에, 십대들은 중동적인 행동을 하곤 한다. 전두엽이 때로 사회화 기관이라고 불리는 것은 가장 다듬어지지 않은 중동을 진압하는 신경회로를 발달시키는 것이 곧 사회화이기 때문이다.
전두엽이 손상되면 그 안에 갇혀 있는 줄도 몰랐던 비사회적인 행동이 드러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나 자신부터 정상적인 사회화를 못 거친 탓인가 힘들다 사회화기관…)

-사람들의 생각을 제한할 수는 없다. 사법 시스템이 그런 것을 목표로 삼으려 해도 안 된다. 사회적인 정책으로 바랄 수 있는 것은 충동적인 생각이 행동으로 기울어지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이 부분은 공감한다. 그래서 늘 생각은 할 수 있어도 그걸 말과 행동으로 했을 땐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말해준다…)

-인간이 평등하다는 신화는 모든 사람의 의사결정 능력, 충동조절, 결과를 이해하는 능력이 똑같다고 가정한다. 훌륭한 생각이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훌륭한 이념이지만 인간 이해에는 걸림돌이었을 수도)

-만약 우리 뇌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구조였다면, 우리는 그 구조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 못할 것이다.
(자칭 똑똑이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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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 민음의 시 337
김이듬 지음 / 민음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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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1 (저자:김이듬)

나도 모르게 -아무도 미워하지 않은 채 하루가 갔다- 이렇게 시집 제목을 마음대로 쓸 뻔했다. 나의 그릇은 하루짜리이다. 않고, 하고 단정하지 못하고. 않은 채, 하면서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려고 든다.

봄에 시인은 산불을 만나 집이 다 탔나 보다. 3부는 그런 이야기가 가득 차 있다. 불탄 자리에서 시가 나왔다. 어디에서든 글은 나올 수 있다. 그게 아무 소용이 없는 건 아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115, ’폭우가 우울을 부르지 않을 때‘ 중)를 내가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로 읽었다. 나는 이제 삶에 미련이 있나 보다.

어쩌다보니 김이듬 시집을 세 권 읽었다. 삶에 미련이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나 싶었다.

아직 봄이 남았는데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계절을 보내는 게 더 어려운 일 아니야? 전에 이런 이야기 하지 않았나요? 계절은 정말 지나가는 걸까? 내가 이 계절을 지나간다. 나를, 나만 미워하지 않기만 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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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을 자세히 볼 때는
귤 따기 직전

크기와 색깔도 살핀다

감귤을 쥐고
가위로 꼭지로 자른다

가위를 바꿔 가며 잘라낸다

다알리아 가지를
청바지 끝단을
상자를
고기를
관계를

거머쥔 것이 태도를 형성한다

말과 시간을 잘라서
밭에 심었다.
(34-35, ‘귤 따기 체험’ 전문. 말과 시간을 어떻게 살피고 거머쥐었나 궁금하다. 따고 난 직후에는 자세히 안 보려나. 귤이 아니니까 안 그러겠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땅은 발아래 없다. 그래서 인부들은 밤에도 사다리와 파이프 따위를 밟고 공중으로 올라갈까. 돌아갈 곳이 없어서 돌아보는 건 아니겠지. 표범 무늬 작은 고양이가 담에서 담을 건너 겨울로 사라진다. (50, ‘좋아하는 일’ 중)

-다시 그곳에 간다고 해도 나는 지름길을 찾지 못할 것이다
다시 또 이 집에 온다 해도 돌돌이와 밀대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파리채도 어디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리하여 내가 다시 태어나 두 번째 생을 살게 된다 해도 지금보다 썩 낫지도 않을 것이다 (61, ‘조감도’ 중. 한 번만 살려는 핑계일까. 운명론일까. 체념일까. 비슷한 생각을 하면 아프다.)

-나는 꺾인 나무 같아서 지난 육 년의 기억을 지우려면 육십 년쯤 지나가야 할 것 같다. (123, ‘사월’중. 사월에 사월을 읽는데 어느 숲길 가다 저거 내 나무다 했던 꺾인 나무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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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9 (저자:이지유)

우주의 역사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었다. 아직 코스모스는 꽂아만 뒀다. 이 책은 흥미롭게 우주 생성 게임으로 서두를 시작한다. 현대우주론의 발달 과정을 우주 연구에 기여한 과학자들의 헌신과 질투와 협력과 대립을 엮어 재미있게 풀어주고, 마무리에서 간략하게 우주의 연보를 한 번 더 정리해준다.

수능 지구과학을 3년 공부했어서 우주론도 범위에 있었다. 사진이나 주요 과학자 이름만 띡 지나가던 장면들을 이 책이 자세한 사연까지 알려주었다. 특히 정상우주론의 우두머리(?) 호일에 맞서 빅뱅우주론을 주장한 가모브와 동료연구자들, 제자들이 엎치락뒤치락하며 빅뱅우주론을 뒷받침할 관측과 연구를 곳곳에서 진행하며 하나씩 문제점을 보완해가는 점이 흥미로웠다. 정적우주를 주장한 아인슈타인이 틀렸던 것처럼, 호일의 우주론은 틀렸지만 그 역시 우주 연구에 많은 기여를 했다. 어느 세계관이든 빌런도 필요하다.

과학은 무수한 틀림을 견디면서 그 시점에 가장 알맞은 잠정적 답을 구해가는 과정이었다. 수많은 반복 관측/실험과 머리 깨지는 계산과 고민의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번뜩이는 통찰은 그런 언제 끝날지 모를 시간들 사이에서 운이 좋아야 이루어지고, 다른 연구자와 대화를 나누거나 다른 연구 성과를 알게 되어야지만 지금 막힌 부분을 해결할 수 있었다. 언제든 그렇게 얻은 답은 잘못된 것으로 밝혀질 수 있다. 자기가 틀린 걸 인정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깨우침과 자기의 세계관을 부정하는 노력마저 필요했다.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것은 그렇게 아주 많은 반복된 시간이 쌓여야 한다. 우주도 지금의 내가 사는 세계를 만들기까지 137-138억년을 지나야 했다. 심지어 그런 시간을 들이고도 나에게 앎이 이르지 못하고, 내 다음 세대나 또다른 곳의 누군가가 새로운 것을 이루거나 또다시 이루지 못한다. 우주도 어떤 조건들이 성립하지 않았다면 한때 급팽창(인플레이션)했고 지금도 팽창 중인 우주나, 우리와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것들을 이루는 물질도, 생명체도 생기지 못했을 것이다.

거대한 우주를 배우면서 내가 작고 약하지만 또 수많은 우연과 조건이 갖춘 결과인 걸 안다. 그런 이야기가 듣기 좋아서 계속 과학책을 찾아 읽는지도 모르겠다.

+밑줄 긋기
-라일이 전파를 내는 천체를 탐사할 생각을 한 것은 영국 날씨가 너무 나빠서였다. 맑은 하늘을 보기 힘든 영국에서는 가시광선을 보는 광학망원경은 쓸모가 별로 없다. 그러나 전파는 달랐다. 전파는 흐린 날에도 구름을 통과해 지상까지 오기 때문에 영국뿐아니라 어디서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관측할 수 있었다. (158, 우리는 공기만 가끔 생각하지, 전파와 함께 사는 건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불편한 점이 기회가 되기도 한다.)


+개정판이 ‘집요한 과학자들의 우주 언박싱’이란 제목으로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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