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이라고, 처음 읽은 게 10살 쯤이라고 해놓고는 설마 열 살이...했는데 만 10살이니 맞긴 맞았다. 1994년에 나온 가나출판사의 (아마도 중역, 번역자도 안 밝힌 기획실의 옮김) 데미안을 알라딘 개인 중고 검색해보니 1500원쯤에 팔고 있었다. 

 그렇지만 난 그 책을 살 필요가 없었다. 책장 구석구석을 뒤지면, 다 있다. 국민학교 1학년 때 부터 사서 읽은 책은 버리지 않고 하여간에 다, 있다. 

 이 표지를 직접 보고 싶었다. 속 표지를 보니 나영미라는 분이 표지 그림과 삽화를 그리신 모양이었다. 아마도 이 얼굴은 싱클레어인 동시에 데미안이고 에바부인이거나 베아트리스 일 수도 있겠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나 정성을 보면 적어도 그림 맡으신 화가님은 소설 데미안을 제법 진지하게 읽으시고 또 좋아하셨을 것 같다.  

 책은 어린이책이라고 지나치게 축약하지도 않고 그냥 이번에 읽은 책이나 분량은 비슷했다. 맨 뒤에 독후감 쓰는 법 같은 사족 빼면 231쪽, 열린책들 판형(길쭉이인가) 272쪽이니 뭐. 사실 야한 것도 없고 잔인한 장면도 없고 (재미도 없고) 아이들이 못 알아 먹을 뿐이지 굳이 삭제판 무삭제판 만들 이유도 없겠다고 이번에 읽고 생각했다. 심지어 다 읽고 나니 그냥 아는 내용 맞는 것 같아... 

1994년 데미안 가나출판사판 4000원.(현재 중고가 1500원...) 2014년 데미안 열린책들판 2025년 현재 알라딘가 9720원. 책값은 내내 내려갔다고 봐야 맞겠다. 

이 시절의 독후감 노트는 찾지 못했다. 다 있다며! 독후감을 썼다는 게 거짓 기억일 수도 있겠다. 1995년의 나는 어두웠다. 내 가정이 어두웠다. 집에 조현병 환자가 강제 입원을 당했다. 자살시도도 했다. 이제 그 사람과는 만나지 않는다. 데미안의 아버지는 그러고보니 나오지 않는 군. 싱클레어가 데미안의 어머니를 사랑한다. 그걸 알고 있었니? 당연하지! 하는 둘의 대화는 좀 유쾌하다 싶었다. 그냥 그 때 애기인 나는 알아 듣지 못할 이야기를 하나 읽고 와 이런 간지나는 나는 멋져, 하고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았을까. 자존감은 높으면서도 낮던 시절. 
 감흥도 없고 이렇게 우연히 뒤적거려야지나 찾게 될 이 냄새나고 먼지 쌓인 종이더미들을 언제까지 지고 갈 건지 에휴... 내가 죽으면 자식들이 폐지처리장에 넘겨 책들에게 안식을 줄런지 또 (귀찮아서) 이고지고 할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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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3-24 1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미 알을 깨고 나온 듯한 모습이네요.

반유행열반인 2025-03-25 19:42   좋아요 0 | URL
표지 모습을 말씀하신 걸까요? ㅎㅎ사실 끝까지 읽어도 싱클레어가 득도를 했는지 어른이 된 건지 데미안 같이 된 건지 모르겠더라구요. 데미안 닮게 되는 게 진정한 나 자신이 된다고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eBook] 돌봄의 사회학 - 당사자 주권의 복지사회로
우에노 지즈코 지음, 조승미.이혜진.공영주 옮김 / 오월의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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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병원 간호병동 입원만 해 봤고, 엄마 지난 번 수술에 보호자 입실 금지인 간호 병동이어서 상주 보호자 역할은 처음이다.

어제 퇴원 예정이라고 몇 달 전 진료부터 수술 직후까지 확언하던 의사 선생님이 오프날이라고 (사정도 있고 많이 힘들겠지만) 퇴원 할 날 병원에 한 번도 안 나와서 퇴원 오더를 못 받은 게 문제지만... 환자는 회복됐는데 병원에 일박 더 갇힌 상황... (큰 문제로군 입원비도 하루 더 내고 말이야)
머리 맡 냉장고는 웅웅 우우우웅 돌고(귀마개가 날 살렸다) 간병인 침대란 바닥이 왠지 더 나을 듯한, 그 신화 속 침대(짧고 큰 고통이겠지 이건 길고 잘은...)보다 불편할...

이제 아침이길! 하고 시계를 보면 세시, 깜빡 네시반, 그러고는 누워도 잠들 수 없었다. 다섯 시 반에 벌떡. 세수.

어제 마침 ‘돌봄의 사회학’ 한국어판 서문이랑 용어 해설만 읽은 터이지만(읽는 데 몇 년은 걸릴 듯), 돌봄 노동자들 처우를 잘 알려주는 구절에 밑줄을 쳤다. 그리고나서 몸소 그걸 체험... 간병노동자들과 긴 와병의 가족 돌보는 사람들은 매일 이 침대에서 잔다는 거잖아... 나쁘다. 내일은 진짜 퇴원시켜 주시오... 내보내 줘...

-지금껏 정책 설계자들은 돌봄이 아무나 할 수 있는 비숙련 노동이며 더욱이 ‘여자가 집에서 해오던 공짜 노동’이라고 여겨왔다. 돌봄노동의 싼 임금은 여태껏 정책 설계자들이 돌봄을 받는 고령자의 처우가 그만하면 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쓸모없어진 노인은 사회의 짐’이라고 보는 노인차별 의식이 그 뒤에 숨어 있다. 성차별과 연령차별이 겹치는 영역이 바로 돌봄에서 드러난다. <돌봄의 사회학> (우에노 지즈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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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열린책들 세계문학 227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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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2 헤르만 헤세


데미안은 청소년 문고 같은 것으로 (아마도 가나출판사. 집에 가면 어디 있을 건데 사진 나중에 올려봐야지) 열살인지 열한살인지에 읽었다. 그때 독후감도 썼을 건데 내용이 궁금하다. 아직 청소년이 되기엔 애기였던, 그렇지만 자기가 태어날 때부터 늙은 줄 알았던 그 아이는 이 책을 읽고 가슴 깊이 뭔가 불타오르거나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냥 좀 특이하고 이상한 책이네, 했을 듯.

삼십년이 지나,헤르만헤세가 이 책을 탈고한 나이에 딱 읽는 나에게는, 이번에는 너무 늦었다. 젊은이들이 늙은이(?)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을까 봐 젊은이인 척 가명 출간하고 젊은작가상까지 타먹은 헤세는 이걸 들켜서 망신을 당하고 문단에서 쫓겨...나는 대신 나중에 노벨상도 타고 85세까지 살아서 전쟁 끝나는 것 다 보고 내가 들어만 보고 읽은 바는 거의 없는 많은 저서를 더 남겼다.

그렇다면 마흔 살고 그보다 두배 이상 살다 죽은 헤세 아저씨 너무 일찍 늙은이 선언했다.

내 의지로 읽은 책은 아니다. 코로나19시절 알라딘이 대여도서를 무료로 많이 풀어줘서 잔뜩 구매해놓고 다운로드 안해서 박제처럼 5년 간 쟁여진 책이 많다. 이것도 아마 그 중 하나일 건데, 뭔 터치 실수였는지 기기에 다운로드 되고 말았지 뭐여. 단 2주 주겠다. 이러면 또 매몰비용 고려 못하는 비합리적 경제인인 나는 읽는 거다...이게 다 우리가 다시 만날 운명이겠거니 하고 열린책들판 데미안을 읽는 거다...아 재미없어...나 다니는 의원 선생님이 정신분석 배웠다던데 하면서…

세계대전 아래, 세상의 종말을 눈앞에 둔 청년이든 중년이든 유럽인이든 아시아인이든 사람들에게, 삶은 진지하고 묵직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금은, 몇분 몇초짜리 반짝이는 쇼츠 영상 수십 수백개에 눈을 맡기고 돈 몇 푼에 하루 대부분을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어딘가에 바치는 사람들에게 삶은, 감자란다. fuck fuck하니까…

엄마가 그저께 입원하셔서, 어제 수술을 받으시고, 의사선생님은 철썩같이 그다음날 퇴원, 토요일 퇴원, 하시더니 병원에 안 오셨다. 퇴원 오더 없어 병원에 갇힌 환자...만하루 엄마 돌보던 동생은 더 못해, 하고 바톤터치 요청해서 내가 왔다. 시간과 공간의 방에. 심심한데 또 책읽긴 힘든 어머니께 와이파이를 잡아드리고 유튜브를 열고 이어팟까지 꽂아 드리니 덜 심심해 보이셔서 다행이야… 어제는 많이 아프셨다는데 오늘은 혼자 운신하시고 화장실도 불편함 없이 다녀오시고 다행이다. 그런데 선생님 왜 집 안 보내주고 안 오셨어요…

그덕에 내일 대여만료인 데미안 말미를 마저 읽었다. 30년 전에 읽었는데도 줄거리는 대강 다 아네… 그책엔 삽화도 있었는데 글씨만 잔뜩인 걸 다 읽고 참 잘했어요.

이 책을 읽고 마음을 불사르던 청년들도 있는데 두 번 읽고도 시들한 이 반항아의 이마에도 표식이 보이는지 한 번 봐주세요...

+밑줄 긋기
-나는 오직 내 마음속에서 절로우러나오는 삶을 살려 했을 뿐이다.
그것이 왜 그리 어려웠을까?

-용기와 개성을 지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늘 으스스하기 마련이야. 두려움을 모르는 으스스한 족속이 주변을 돌아다니게 되면 정말 마음이 불편하지 않겠어? 그래서 그 족속에게 별명을 붙여 주고 허황한 이야기를 지어낸 거지. 그 족속에게 복수하고 싶었고, 모두들 두려움을 견디는 것에 대해 좀 보상받고 싶었겠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가 한순간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갑자기 긴장해서 목사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목사님이 카인과 카인의 표식에 대해 하는 말을 들으면서, 목사님의 가르침이 반드시 맞는 것만은 아니라고 마음속 깊이에서 느꼈다. 그것을 다르게 볼 수도 있었고 비판할 수도 있었다!
그 순간 데미안과 나는 다시 연결되었다.

-동물이나 인간이 모든 주의력과 의지를 어떤 특정한 일에 집중하면 뜻을 이룰 수 있어. 그게 전부야. 네가 방금 물은 것도 마찬가지야. 네가 누군가를 충분히 정확하게 바라보면, 그 사람에 대해 그 자신보다 더 많은 걸 알 수 있어.

-하지만 내겐 간단한 방법이 있어. 그럴 때마다 목사님의 눈을 빤히, 아주 빤히 쳐다보는 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잘 견디지 못해. 다들 불안해하지. 네가 누군가에게서 뭔가를 얻어 내고 싶으면 느닷없이 그 사람의 눈을 빤히 쳐다보도록 해. 그런데도 그 사람이 전혀 불안해하지 않으면 포기해! 그 사람한테선 아무것도 얻어 낼 수 없어. 절대로 얻어 낼 수 없다니까!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어. 사실 나는 그게 통하지 않는 사람을 딱 한 명 알고 있어.」

-파리 한 마리가 그의 이마에 내려앉아 코와 입술을 타고 천천히 기어 내려갔지만 그는 주름살 하나 움찔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어디, 어디에 있을까? 무엇을 생각할까? 무엇을 느낄까? 천상에 있을까, 지옥에 있을까?

-그것은 세상에 항의하는 내 방식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를 망가뜨렸고, 이따금 그 상황을 이런 식으로 보았다. 세상이 나 같은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나 같은 사람들에게 더 좋은 자리, 더 숭고한 임무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나 같은 사람들은 망가져야지 별수 있어. 그래 봤자 세상만 손해지.

-새로 산 작은 튜브 안의 고급 템페라 물감이 나를 황홀하게 했다. 그중에 크로뮴산 같은 진한 초록색이 있었다. 그 초록색 물감이 하얗고 작은 접시에서 처음으로 빛을 발하던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개개인의 가치는 도대체 어디 있지요? 우리 안에 이미 모든 것이 완성되어 있다면, 무엇 때문에 노력해야 하지요?」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말아요. 자연이 당신을 박쥐로 만들었다면, 스스로 타조로 만들려고해서는 안 돼요. 당신은 이따금 자신을 남다르게 여기고 대부분의 사람들과는다른 길을 간다고 자책하고 있어요. 그런 습관은 버리도록 해요. 불을보고 구름을 봐요. 예감들이 떠오르고 당신 영혼 안의 목소리가 말하기시작하는 즉시, 그것들에게 당신 자신을 맡기도록 해요. 그리고 선생님이나 아버지나어떤 신이 그것을 좋아하거나 마음에 들어 할지 묻지 말아요! 그런질문을 함으로써 자신을 망가뜨리고, 걸어다니는 화석이 되고 말죠.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그 사람의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미워하는 거요. 우리 자신 안에 없는 것은 우리를 흥분시키지 않는 법이오.

-하지만 난 이해가 안 가. 왜 성적 욕구를 억제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순수하다〉는 거야. 아니면 너는 모든 생각과 꿈에서도 성적인 것을 몰아낼 수 있다는 말이야?」

-또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린 돼지도 아니야. 우리는 사람이야. 우리는 신들을 만들어서 신들과 싸우고 있어. 그리고 신들은 우리를 축복해 줘.

-새로운 신들을 원하는 것은 잘못이었다. 세계에 뭔가 새로운 것을 부여하려는 것은 완전히 잘못이었다! 각성한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의 내면을 확고하게 다지고 결국 어디에 이르든지 간에 자신만의 길을 계속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그 한 가지 말고 다른 의무는 결코, 결코, 결코 없었다.

-나는 자연이 던진 주사위였다. 불확실성을 향해, 어쩌면 새로움을 향해, 어쩌면 무(無)를 향해 던진 주사위. 태고의 깊이에서 던진 이 주사위를 작용하게 하고 그 의지를 내 안에서 느끼고 완전히 나의 의지로 만드는 것, 오로지 그것만이 나의 소명이었다. 오로지 그것만이!

-정말로 자신의 운명 이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에겐 같은 족속이란 게 존재하지 않아요. 그는 완전히 혼자이고 그의 주변엔 오로지 차가운 우주만이 있을 뿐이오.

-「사랑을 간구해서는 안 돼요.」 그녀는 말했다. 「사랑을 요구해서도 안 돼요. 사랑은 자기 자신 안에서 확신에 이를 수 있는 힘을 갖추어야 해요.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상대에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끌어당기지요. 싱클레어의 사랑은 내게 끌려오고 있어요. 그 사랑이 언젠가 나를 끌어당기면, 그때 가겠어요. 나는 선물을 주지 않아요. 나를 가져가 주길 원해요.」

-그는 단순히 한 여인을 얻는 대신 온 세상을 마음속에 품게 되었다. 하늘의 모든 별이 그의 안에서 밝게 빛났으며 그의 영혼을 기쁨으로 반짝이게 했다. 그는 사랑했고, 사랑하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면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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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설명은 다른 데다가...(예스**에서 포토카드 산 거 들킬지도 몰라서... 말해 버렸군...시디 들은 건 알라딘에서 샀다구!!!)
https://m.blog.naver.com/natf/22379743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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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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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10 필립 로스.

수능 생명과학 강의 들을 때, 인터넷 일타 강사 선생님이 좀 유치하지만 자기가 만든 암기법이라면서 “독감에 걸린 홍소천, 그 연예인 분 아냐 내가 만든 말이야.” 했다. 독감, 홍역, 소아마비, 천연두는 바이러스성 질환, 자매품 ”페콜결파탄. 펩시콜라결국파탄...나 그 콜라 좋아해 비난하는 거 아니고 잘 외우라고 만든 거야.” 세균성 질환 페스트, 콜레라, 결핵, 파상풍, 탄저균. 여태 이거 하나 남은 거 보면 그 강사 용했다.

국민학교 들어가서, 학교에서 예방주사 맞히던 시절이 있었다. 독특한 예방접종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입 안에 물약을 쏴악, 쏘아주면 애들이 인상을 찌푸리고 약을 삼키며 맛이 이상해, 했다. 경구용 소아마비 백신이었다. 이후 어린이들 키우며 대부분이 국가필수예방접종이 되었다. 폴리오, 매번 듣는데 아 그건 뭐지...치약 같네...하다가 아 소아마비라고 하던 바이러스 예방주사구나...이젠 주사로 놓네...했던 기억도 있다.

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무렵, 뉴어크 지역은 폴리오 전파라는 또다른 전쟁을 치른다. 그 안에 있던 켄터 선생은 눈이 아주 나빠 전쟁에 나가지 못하고 남았다. 나도 며칠 전에 5년 만에 안경렌즈 다시 맞춘다고 안과에 처방전 받으러 갔더니 고도근시네요...했다. 내가 고도근시라니… (-9.0, -8.25...안물안궁) 오늘 렌즈 완성되서 새 안경 쓰고 이 독후감 쓰는 중이다.
놀이터 체육교사로 여름 내 아이들 운동을 지도하던 켄터 선생은 폴리오가 퍼지면서 함께 운동하던 아이들이 죽거나 장애를 갖게 되는 것을 목격한다. 운좋게도 그에게는 더위와 질병을 피해 떠날 기회가 생긴다. 연인 마샤가 지도자로 일하는 캠프에 참전자가 생기면서 지도자 자리가 비어서, 켄터 선생은 새 일자리의 기회를 두고 놀이터를 지킬지, 시원하고 전염병 창궐하지도 않는 캠프로 떠날지 한참 고민하다가 마샤와 약혼을 결심하고 놀이터 감독을 그만두고 캠프로 떠난다.

코로나19를 겪은 우리들은 이쯤 읽으면 짐작할 것이다. 결국 캠프에도 병이 창궐하고 누군가는 지옥을 겪겠지. 손 씻어라, 거리둬라, 마스크 써라, 공용음수대 폐쇄하니 각자 물병에 물 담아 다녀라… 5년 전 우리는 모두 켄터 선생이었다. 휴직 직전 학기 끝나갈 무렵 반에서 감염자가 하나 둘 갑자기 등장했고, 등교수업 하던 아이들은 다시 원격수업으로 전환되어 집에 격리되었다. 나는 백신을 맞고는 후유증인지 심장 맥박이 이상하다고 여겼고, 내과에 가니 공황장애약을 줬다가, 호흡기능 검사를 하고는 천식입니다, 하고 천식약을 줬다. 상관 있는지 모르지만 3년 후쯤 폐동맥에 혈전이 걸려 숨이 가쁘고 맥박이 미쳐서 반년간 약을 먹었지… 모든 게 어디서 시작이고 또 끝인지 짐작만 할 뿐 알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짐작만 할 수 있는 이미 일어난 일인 것을, 그걸 모두 자기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켄터 선생은 그런 사람이었고, 본인도 폴리오에 걸려 장애와 재활 과정을 모두 겪었지만, 놀이터의 아이들도, 캠프의 감염자도 사망자도 모두 자기 탓이라 여기며 가질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을 포기하거나 저절로 잃는다. 스물네살의 처음이자 끝 사랑이던 마샤와, 조부모 양육으로 키워진 자신이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마샤의 가족들과 이어질 기회와, 놀이터에서 일하던 고향 동네 모두를 떠났다. 불행히도 삶은 계속되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은 그 놀이터에서 켄터 선생의 굳건한 모습, 이탈리아인들이 침 뱉고 시비걸던 것을 저지하던 일, 아이들에게 안전과 건강을 당부하며 놀이터를 잘 관리하고 멋지게 투창 던지는 모습을 목격했던 놀이터 아이 중 하나인 아널드 메스니코프이다. 그 역시 폴리오에 걸려 후유증을 앓았지만, 완전 절망하지는 않았고, 배우자를 만나 가족을 꾸려가면서 그럭저럭 평온한 삶을 이어갔다. 우연히 마주친 켄터 선생을 알아보고 함께 점심을 먹으며 켄터 선생이 털어 놓은 속내, 캠프의 일, 그 이후의 삶을 전해들으며 아널드는 그 모든 게 선생 탓이 아니라고 위로하지만, 켄터 선생은 꿋꿋하게 끈덕지게 자책을 멈추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탓이 아니라고,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세상에서 켄터 선생 같은 캐릭터는 귀하고 독특하다. 그리고 비극적이다. 세상을 구하거나 망치지 못하면서 자기 자신만 망치고 겨우 살다가 죽는다. 필립 로스는 마지막 소설이라 선언하고 절필한 이 이야기를 쓰면서 어떤 기분이었을까 궁금하다.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그런 사람들에게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탓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일 사람들과, 네 탓 맞는데 좀 인정하라고 해주고 싶어도 끝내 고개를 돌리거나 도망가 버리는 사람들이 마구 섞여서 참 균형 잡기 힘든 세상이다. 1910년대, 1940년대, 그리고 또 수많은 질환들이 널리 퍼지며 사람들을 죽였고 인류는 그래도 살아남았지만, 병을 마주하는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너무 겁먹었고, 그래서 무엇이든 탓을 하고 벌을 주었다. 격리 기간에 연인을 만나다가 처벌 받았다는 뉴스가 떠오른다. 여행을 가도, 코인노래방을 가도, 헬스장을 가도, 외국인이어도, 데이트를 해도, 그게 다 죄이던 시절. 성적 지향과 직업과 주거지와 가족관계 같은 신상이 다 까발려져도 되던 시절. 그 시절에 대해 다시 돌아보고 야 우리 왜 그랬냐 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인간은 잘 배우지만 또 잘 배우지 못한다. 뭐 나도 그렇다… 자책과 남탓을 동시에 하니까 이중으로 힘든 삶이냐…

+밑줄 긋기
-“어른에게 놀이는 오락이고 삶을 갱신하는 것이며, 아이에게 놀이는 성장이고 삶을 얻는 것이다.”(조지프 리의 책을 읽다가 켄터 선생이 적어 놓은 한 구절)

-“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은,” 켄터 선생님이 끼어들었다. “여러분이 모두 진정하고 자제력을 잃지 말고 공황에 빠지지 않는 겁니다. 아이들한테 공황을 퍼뜨리지 않는 겁니다. 중요한 건 아이들 생활의 모든 걸 가능한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여러분 모두가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때 합리적이고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42-43)

-그는 만일 앨런이 상자 안에 누운 채 계속 더 익으면 상자에 불이 붙어 폭발하고, 안에서 수류탄이 터진 것처럼 아이의 유해가 영구차와 거리 전체로 터져나올 거라고 상상했다.(78)

-”...자네 말이 맞아. 큰 고통을 당한 사람들은 히스테리에 사로잡히고, 질병이라는 불의와 마주치면 누군가를 몰아세우려고 하지. 하지만 애들이 공놀이를 한 것 때문에 폴리오에 걸리는 건 아니야. 바이러스 때문에 걸리는 거지. …“(106)

-“뉴저지 주 뉴어크 보건국. 접근 금지. 이 집에는 폴리오 환자가 있음. 보건국의 고립 및 격리 규칙이나 규제를 어기는 사람, 또는 허가 없이 의도적으로 이 카드를 제거하거나 훼손하거나 차단하는 사람에게는 50달러의 벌금을 부과함.” (134)

-아이들과 무리를 지어 언덕의 풀 덮인 비탈을 걸어가는데 비에 흠뻑 젖은 땅으로부터 처음 맡아보는 짙고 습한 파릇파릇한 냄새가 솟아올라 그가 논란의 여지 없이 생명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확인해주는 것 같았다. 그는 늘 조부모와 함께 도시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전에는 온기와 냉기가 섞인 7월의 산 아침을 살갗으로 느껴본 적도 없고, 그런 아침이 일으키는 느꺼운 감정을 경험해본 적도 없었다. 이런 가없는 공간에서 일하며 하루를 보 내는 것은 너무도 생기를 북돋는 일이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텅 빈 섬의 어둠 속에서 마샤의 옷을 벗기는 것은 너무도 매혹적인 일이고, 천둥과 번개의 전격전 아래서 잠을 자고 나서 태양이 인간 활동을 비추는 첫날 같은 느낌이 드는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은 너무도 짜릿한 일이었다. 나는 여기 있어. 그는 생각했다. 나는 행복해-그는 너무 행복한 나머지 그의 발에 푹신푹신하게 밟히는 흠뻑 젖은 풀이 짓이겨지며 내는 절벅절벅 소리에도 기운이 솟아올랐다. (181)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어.”마샤가 속삭이며 그의 안경을 벗기고 굶주린 듯 얼굴에 키스했다.“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우리에게는 서로의 사랑이 있어. 버키, 내가 약속할게. 나는 너한테 늘 노래를 불러주고 너를 사랑할 거고, 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늘 네 곁에 있을 거야.”
”맞아.“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에게는 서로의 사랑이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빌리와 어윈과 로니에게 무엇이 달라질까? 그는 생각했다. 그들의 가족에게 뭐가 달라질까? 상사병에 걸린 아무것도 모르는 십대들처럼 끌어안고 키스하고 춤을 춘들-그게 누구에게 뭘 해 줄 수 있을까? (202...이런 사명감은 병이 아닐까….꼭 뭘 해줘야 하냐고 먼저 묻는게 자기 자신과 여친한테 예의 아니냐…남말할 처지는 아니다만...)(202)

-”하지만 선생님은 폴리오에 걸렸잖아요.“ 내가가냄라했다. ”불행하게도 너무 빨리, 백신이 나오기 십일 년 전에 폴리오에 걸린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폴리오에 걸렸잖아요. 20세기 의학은 엄청난 진보를 이룩했지만 우리한테는 아주 약간 늦었던 거예요. 오늘날 아이들의 여름은 티끌만한 근심도 없이 지나가요. 원래 그래야 하는 거죠. 폴리오의 심각성은 이제 전혀 문제가 안 돼요. 아무도 그때의 우리처럼 무방비 상태가 아니에요. 어쨌든 선생님 이야기를 해보자면, 선생님이 도널드 캐플로에게 폴리오를 옮긴 게 아니라 거꾸로 선생님이 옮았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럼 스타인 버그 쌍둥이 실라는…...그애는 누구한테서 옮은 거야? 이봐, 지금 그 모든 걸 다시 되짚기에는 너무 늦었어.“ 그는 이미 나와 거의 모든 것을 되짚었으면서도 묘하게 그렇게 말했다. ”벌어진 일은 벌어진 거야.“ 그가 말했다. “내가 한 짓은 한 짓이야. 나에게 없는 것은 그냥 없이 사는 거고.”(249)

-“읽어봐. 보라고 가져온 거야. 마샤가 캠프에 가고 나서 불과 며칠 뒤에 받은 거야.”
봉투에서 꺼낸 옅은 녹색의 작은 편지지에는 완벽한 파머 매서드 필기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내 남자
(251, 미안, 난 한 줄만 쓰고 복사-붙여 넣기 세 번 했다….)

-“그만, 제발 좀! 너는 기형이 된 게 네 몸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짜 기형이 된 건 네 마음이야!”
“그게 나로부터 너 자신을 구해내야 할 또하나의 좋은 이유야. 대부분의 여자는 불구자가 스스로 자기 인생에서 걸어나가주면 기뻐할 거야.”
“그럼 나는 그런 대부분의 여자가 아니야! 그리고 너도 단순한 불구자가 아니야! 버키 ,너는 늘 이런 식이었어. 너는 뭘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보지를 못해. 한 번도! 너는 늘 네 책임이 아닌 것까지 책임을 지려고 해. 끔찍한 하느님이 책임을 지거나 끔찍한 버키 캔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는데 사실 책임은 둘 중 누구에게도 있지 않아. …”(260-261,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을 놓다니 진짜 버키는 보통 인간은 아님...이상할 정도로 지나치게 착한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나쁜 미친 놈임….)

-그의 하느님 개념은 전능한 존재로서 기독교에서 말하듯 하나의 신성 안에 삼위가 일체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둘, 즉 좆같은 새끼와 사악한 천재가 합쳐진 것이었다. (265)

-“자신에게 맞서지 마세요. 지금 이대로도 세상에는 잔인한 일이 흘러넘쳐요. 자신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지 말라고요.”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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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03-11 0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태까지 소아마비가 전염될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었네요.

반유행열반인 2025-03-11 16:37   좋아요 0 | URL
저도 병에 대해 잘 몰랐는데 한때 이렇게 고통 받은 사람 많던 걸 이 소설 덕에 알았어요. 감염병 이야기는 이제 무얼 봐도 남일 같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