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 - 나를 이루는 원자들의 세계
댄 레빗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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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3 댄 래빗.

‘저 별은 어떻게 내가 되었을까’라는 책을 읽고, 번역 제목에 낚였다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이번에 읽은 이 책 ‘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가 먼저 읽은 책 제목이 이끌어낸 궁금증을 푸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온 과학 분야와 이사람 저사람 쫓아다니지만, 다행히도 이 책 읽기는 재미있었다. 같이 읽던 ‘날마다 천체물리’, ‘오늘의 화학’,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 거야’와 겹치는 부분이 제법되는데, 그렇게 같은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준 걸 반복해 읽는게 잘 까먹는 나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원제 ‘what's gotten into you’는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너 왜 그래?’ 라는 뜻이라고 번역기가 알려주었다. 야, 우린 왜 인간인 거냐…어쩌다 이렇게 됐냐…하는 질문과 그 답을 구하는 과정은 빅뱅부터 물질(원자, 아원자, 더 작은 놈들까지)의 탄생, 별의 탄생, 태양과 지구의 등장, 혜성과 소행성의 기여, 남세균, 식물의 등장과 광합성, 우리가 먹는 것(탄단지 말고도 미네랄에 비타민 까지), 세포를 부수고 갈아 원심분리, 또 원심분리, 분리…한 끝에 알아낸 수많은 세포 안의 부품과 기계들(그 유명한 미토콘드리아 말고도 여러가지)까지, 그 모든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실수도 하고 고군분투하고 그래도 끝내 남이 하다만 것 이어 받아 우리가 지금 알게 될 것들을 알아낸 수많은 과학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이 책 안에서 펼쳐졌다. 문장 너무 긴데, 이 책도 그렇게 길고도 스릴넘치게 숨도 못 쉬고 이어진다.

표지는 까치가 까치해서 처음 책 펼 땐 크게 기대 안 했는데, 천체물리, 생물학, 화학, 의학, 온갖 과학 분야를 넘나들며 비유와 재치를 곁들여 내가 어떻게 나인지 (모든 답을 구한 건 아니지만) 설명하려고 애써준 재미있는 책이었다. 제목에 원자 들어가고 표지에 분자 알갱이 같은 이미지 그려져 있으니까 괜히 화학에 국한될 것 같지만, 통섭적이고, 나같은 무지렁이도 어렵지 않게 (가끔 어렵긴 함) 과학의 역사를 훑으며 생명의 기원과 그걸 유지하는 힘까지 맛보게 해 주었다. 사실 다른 과학책들 이거저거 많이 본 가락이랑 수능 생명과학, 지구과학에서 주워본 것도 있겠지만, 그 내용들을 이렇게 한 책으로 엮어 두니까 읽기에 신이 났다. 읽어 봐…과학 좋아하면 읽어 봐…안 좋아해도 읽어보세요… 오늘부터 까치의 알려지지 않은 좋은 과학책 홍보대사 (맘대로) 할랍니다. (일단 바이탈 퀘스천 부터 읽고 올래?)

어차피 한 권 읽는다고 제대로 이해 못하니까, 미친놈처럼 쌓아둔 과학책들 마저 하나하나 읽어가며 반복, 또 반복, 변주, 합주, 그렇게 즐거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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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우리 몸과 주변의 모든 물질에게 우주가 탄생한 날이라는 궁극적인 생일이 있다는 정말 이상한 사실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된다. (12-13)

-훗날 그(르메트르)는 “우주의 진화를 불꽃과 재와 연기를 남기고 끝나버린 불꽃놀이에 비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완전히 식은 재 위에 서서 태양이 희미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의 기원에서 빛나던 광채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26, 팽창 우주가 허블이 아니라 르메트트르가 최초 발견한 이론이었다니...천체물리학자 프레드 호일이 그에게 빈정대며 붙여준 별명이 ‘빅뱅 맨’)

-겔만이 우리와 세상 만물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를 발견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 몸에는 비어 있는 공간도 대단히 많다. 우리 몸이 단단한 고체라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다. 사실 우리 몸의 99.
9999999999999퍼센트에는 아무것도 없다. 원자에 들어 있는 빈 공간의 바다도 엄청나게 크다. 수소 원자의 핵을 테니스공 크기라고 생각하면, 수소를 구성하는 전자는 1.6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돌고 있는 셈이다. 전자, 양성자, 중성자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을 모두 없애면 당신의 몸은 큰 먼지 한 톨보다도 작아진다. 전 인류를 각설탕 1개에 넣을 수 있을 정도이다. (57-58, 그렇다면 우리 존재는 여백의 미)

-그녀(세실리아 페인)는 훗날 자서전에 “나는 내 발밑에 깊은 구덩이가 생기는 것을 보았다. 나는 여교사로서의 삶이 ‘죽음보다 끔찍한 운명’이라고 생각했다”고 썼다. 다행히 그런 끔직한 운명은 실현되지 않았다. (61, 워워...죽을 뻔 해보니 죽는 것보단 나아요… 끔찍한 운명을 벗어나려면 조금 더 똑똑했어야 했다…)

-우리의 행성은 평화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내부 태양계에서는 어쩌면 달과 화성 크기의 천체 수백 개가 롤러 게임처럼 서로 부딪히고, 서로의 궤도를 교란하면서 뒤엉켜 있었다. 일부는 태양에 충돌하기도 했다. 다른 행성들은 가장 큰 행성인 목성 쪽으로 튕겨 나갔다. 충돌하지 않은 천체들은 목성의 강력한 중력에 의해 궤도가 흐트러져서 태양계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그런 사이에 지구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거대한 암석과 미니 행성 안에 갇힌 우리의 불행한 분자들은 수많은 격렬한 충돌을 겪게 되었다. (86, 지금 시기의 안정이 어쩜 찰나의 평화일지도 모르겠다. 우주는 근본적으로 혼돈의 캐아스. 급팽창하고 충돌하고 뒤섞였다 잠시 모였다 빵 터지고)

-혜성은 탈락했고, 소행성이 남았다. 그것으로 충분해 보였다. 우리 몸에 있는 물은 우주에서 날아온 거대한 암석에 의해 지구로 전달된 것이었다. 끝.(121)

-아래쪽의 마그마에서 계속 분출되어 대기 중으로 공급된 수증기에 의해서 수천 년이나 수만 년 동안 비가 쏟아졌다. 판 구조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시기에는 지구에 높은 산이나 깊은 분지가 없었다. 비가 멈추면서 수심이 1600미터가 넘는 바다가 지구 전체를 둘러싸게 되었다. (125, 지구의 물은 여러 곳에서 왔다. 물의 출처는 먼지 입자에 응축되어 지구 내부에 갇혀 있던 것, 혜성, 오르트 구름, 소행성-대부분의 물)

-그(타운스)는 웰치에게 “자신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타운스의 남다른 철학은 최고 수준의 물리학자와 엔지니어들과 함께 수행한 연구의 경험에서 얻은 것이었다. 그는 전문가가 어떻게 자신의 지식 때문에 눈이 멀 수 있는지를 직접 보았다. 그들은 양자물리학이나 증폭기의 작동 원리처럼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은 잘 알지만, 때로는 자신들이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는 간과하기도 했다. (150)

-폼알데히드는 사체 보존에도 사용하지만, 우리 몸에서도 매일 42그램이 생산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52, 그래서 우리가 안 썩고 버티는 것인가)

-잉엔하우스는 프랭클린의 피뢰침을 지지했다. 당시에는 악인에 대한 신의 형벌을 인간이 감히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피뢰침을 반대하는 성직자가 있었다. (193, 저런, 사드의 미덕의 불운을 안 읽으신 분이군-착한 쥐스킨트가 벼락 맞아 죽고 끝남)

-남세균이 죽으면 여전히 그곳에 갇혀 있던 퇴적물이 스펀지와 같은 질감의 탑을 만들고, 그 위에 새로운 남세균 깔개가 자라게 된다. 원시바다에서도 그런 박테리아가 똑같은 방법으로 월컷의 크립토존을 만들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그리스어의 스트로마(층)와 리토스(바위)를 합친 스트로마톨라이트라고 부른다. (228)

-그러나 남세균은 단순히 성가신 존재가 아니라 지구 역사상 가장 체제전복적인 유기체이다. 지질학자 조 커슈빙크는 언젠가 기존의 생태계를 완전히 전복시켰다는 이유로 남세균을 미생물 볼셰비키라고 불렀다. 박테리아의 조상은 미네랄을 먹을 수 있는 곳에서만 살았지만, 광합성을 하는 남세균은 물, 공기, 햇빛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살 수 있었다. 멀고 넓은 지역으로 자유롭게 퍼져나갈 수 있었던 남세균은 그 이전의 다른 유기체와 달리 지구를 식민지화할 수 있었다. 이 순진한 혁명가는 일단 퍼지기 시작하자, 식물과 인간의 출현을 가능하게 해준 수많은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229, 반역자 남세균이라니 매력터지는 미생물)

-지능에 대한 트레와바스의 정의는 단순했다. 그는 어느 이메일에서 “유기체가 위협적이거나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 처했을 때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행동을 수정한다면, 그것이 바로 지능적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식물은 구조 변경을 통해서 특정 신호에 반응한다”고 설명했다. “그것이 자신들의 생존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식물이 어떻게 그렇게 할까? 식물은 무엇을 평가할까? 동물의 경우에 그것을 지능이라고 부른다면, 생물학적 측면에서 행동의 특성은 동일하기 때문에 식물에서도 그것을 지능이라고 불러야만 한다.” (277, 2003년 발표된 ‘식물 지능의 양상’이라는 용감한 논문에서)

-식물이 죽더라도 그 속에 들어 있는 원자는 죽지 않는다. 원자는 토양, 바다, 퇴적암, 대기와 다른 생물에 의해서 재활용된다. 따라서 우리의 영혼이 환생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몸에 있는 원자는 크고 작은 여러 유기체에서 전생을 보냈던 것이 분명하다. (286, 그러니까 다음 생엔 뭐가 될지 두근두근)

-그러나 일단 충분한 양의 단백질을 축적했다면, 더 많은 단백질을 먹더라도 근육을 늘리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순히 지방이 더 많아질 뿐이다. 안타깝게도 더 많은 근육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다. (302, 정말? 싶어서 ai에게 물었다. 부분적으로만 맞다고 한다.
• 단백질은 1.6~2.2g/kg 수준까지는 근성장에 매우 중요.
• 그 이상 먹는다고 근육이 더 잘 붙지는 않음 → 이건 옳음.
• ‘운동이 없는 근성장’은 거의 없음 → 이것도 옳음.
• 하지만 “남은 단백질은 전부 지방으로 간다”는 식의 단순화는 틀림. 남는 건 칼로리이지, 단백질 자체 때문이 아님.
• “충분한 단백질을 축적했다”는 건 단순히 필요량을 충족했다의 의미일 뿐.)
-우리 몸의 각 세포는 지구에 도달하기 전 우주를 떠돌던 약100조 개에 달하는 방대한 수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섭취하는 이 거대한 원자 덩어리가 어떻게 생명으로 도약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DNA, 단백질, 리보솜으로 귀결될까? 아니면 우리 세포에 들어 있던 죽은 원자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메커니즘도 필요할까? (367, 알베르 클로드라는 벨기에 학자가 알려줄 것이라 한다…그런데 아직도 만날 과학자가 더더 많이 남아 있었다…)

-이탈리아의 의사 카밀로 골지가 처음 발견한 골지체Golgi apparatus라는 얼룩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이 실제 구조인지 아니면 염색 과정에서 생긴 인공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369-370, 여태까지 몰랐다… 골지가 이탈리아 사람 이름이라는 게 충격이다…뭔가 골판지 같은 느낌이었는데)

-미토콘드리아는 양전하를 가진 양성자인 수소 이온을 이용해서 내부 막에 전위차를 만든다. 그 전위차는 1피트당 1억 볼트로 번개만큼 강하다. (382, ‘미토콘드리아’ 읽었는데 양성자 뭐 나온 것 같은 느낌적 느낌만 남은 나야…왜 읽니…)

-미토콘드리아는 당의 에너지를 사용해서 전력망을 구축한다. 양성자 전기가 정교한 분자 기계에 동력을 공급하고, 그런 기계가 돌아가면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연료를 공급하는 작은 배터리가 계속 충전된다. (384, 내 몸에 가득한 발전기, 빳데리)

-우리 몸에서는 매 초마다 과거의 박테리아 수천조 개가 세포막을 가로질러 양성자를 퍼내서 ATP를 만드는 회전형 모터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한다. 우리는 1분에 약 3분의2파인트의 산소를 흡입해서 그런 모터를 계속 돌아가게 하고, 그 덕분에 미토콘드리아는 100와트 전구만큼의 에너지를 생성한다. (385, 베껴도 베껴도 질리지 않는 몸 속 발전소와 배터리의 메커니즘)

-그들은 신경의 전류가 양전하를 가진 소듐과 포타슘 이온에 의해서 생성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하를 가지고 있어서 이온이라고 알려진 이 분자는 신경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빠르게 이동하지 않는다. 그 대신 축구 경기를 응원하는 사람들처럼 파동을 일으킨다. (…) 축구 팬이 팔로 옆 사람의 팔 움직임을 유도하듯이 그런(이온이 밀려 들어오거나 빠져나가는) 변화 때문에 인접한 통로가 열리게 된다. 소듐과 포타슘 이온이 막의 안과 밖을 오가면서 신경을 따라 이동하는 전하의 파동을 전파한다. (386, 생명과학 할 때 지겹게 맞춰야 했던 막전위 초 재기, 이동 거리, 속도…축구 응원 비유 참신한데 이걸 알았대도 저건 퍼즐에 산수라 여전히 못했긴 했겠다.)

-우리가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생명은 1000조 개에 가까운 소듐-포타슘 펌프에 달려 있다. 그러나 소듐-포타슘 펌프가 없으면 우리는 생각은 커녕 포식자로부터 도망치지도 못하고, 생명을 유지할 수도 없다. 그것이 바로 소금으로 알려진 염화소듐을 맛있다고 느끼는 이유이다. 우리가 먹는 식물에는 포타슘은 많지만, 소듐은 많지 않다. 몸속의 전하를 유지하려면 하루에 한 티스푼보다 조금 적은 양의 소금이 필요하다. 수렵채집인은 육류에서 소금을 얻었지만, 농경인은 별도로 소금을 섭취해야 했다. 소금 통에 들어 있는 소금 덕분에 우리는 손가락을 꼬고, 귀를 만지고, 생각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387, 덜 짜게 먹는다고 너무 부심 부리지 말아야 겠다…)

-오히려 세포는 끊임없는 움직임을 이용해서 생명을 창조한다. 끊임없는 충돌이 세포 안과 바깥으로 분자를 밀어내고, 단백질의 모양을 바꾸고, 효소의 이동을 도와준다. (390, 생명의 본질은, 에너지는 내부의 무수한 충돌…내면의 잔잔함을 바라는게 애초에 무리였을지도)

-그(폴 애버솔드)는 우리가 한두 달마다 탄소 원자의 절반을 교체하고, 매년 전체 원자의 98퍼센트를 교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391, 지금의 나는 작년의 나랑은 확실히 다르긴 하다.)

-평균적으로 우리는 10년마다 세포를 교체한다. 하루에 3300억 개의 세포를 갈아치우는 셈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작동하는 세포가 더 자주 교체된다. 강한 산에 노출되는 내장의 세포는 손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커서 계획적인 자살을 통해 이틀에서 나흘마다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 긁히거나 자외선에 노출되는 피부 세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교체된다. 혈류를 따라 돌아다니는 적혈구는 120일마다 교체된다. 매초마다 거의 350만 개의 적혈구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뼈와 같은 곳에 있는 다른 세포는 10년에 한 번 정도로 그 빈도가 낮다.
따라서 우리 몸의 세포는 신뢰할 수 있는 기계를 사용하는 것 이외에도 끊임없이 오류를 점검하고, 수리하고, 계속 교체한다는 세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다. (392-393, 신상을 좋아하는 부지런한 우리 몸)

-생물학자 닉 레인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뇌와 심장이 우리를 늙어서 죽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우리 몸의 일부 세포는 대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394, 아이참 닉레인 아저씨 이 책에 꽤나 자주 등장해서 ‘바이털 퀘스천’도 조만간 읽긴 해야 할 듯…)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원자가 끊임없이 교체되는 불꽃에 더 가깝다. 우리는 죽을 수 있지만, 원자는 죽지 않는다. 원자는 생명체, 토양, 바다, 하늘을 화학적 회전목마처럼 돌고 있다. (…) 또다른 기본적인 수준에서 보면, 우리는 빅뱅과 별이 만들어낸 원소들의 일시적인 집합체일 뿐이다. 우리는 주기율표에 포함된 132종 남짓한 원소 중 약 60종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 (400, 118개라고 안 하는거 보니 앞으로도 더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원소가 넉넉한 모양이다…원소에서 안 그치고 아원자 입자, 양자장, 파동, 우리는 우주와 하나, 계속 뻗어나간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미생물 조상, 즉 우리의 위대한 고모나 삼촌과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같은 주제를 가진 변형일 분이다. 린 마굴리스가 지적했듯이, 우리는 미생물이 무성하게 자란 거대한 군집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상의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 몸 안에는 별에서 온 원자로 만들어진 수백 가지의 특수한 세포들이 박테리아가 감히 할 수 없는 특별한 방식으로 서로 협력하고 대화한다. 영성과 우주의 본질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도 그런 경우이다. (405, 박테리아도 우리의 친구지예-하고 겸손 떨다가 그래도 우리는 위대해! 우주와 세계와 우리 존재의 근원을 이해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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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4 17: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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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 무너뜨리기 - 세상을 지배하는 가부장제의 교묘한 작동 원리를 파악하고 해체하는 법
캐럴 길리건.나오미 스나이더 지음, 이경미 옮김 / 심플라이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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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30 캐럴 길리건, 나오미 스나이더.

어릴 때 나는 혼자였다. 나는 내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우연한 (알 수 없는) 때에 벗어날 수 있었다. 제법 이른 시기였고, 그것은 어느 정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대가가 있었다. 권위/권력/폭력으로 내리누르는 압박과 회유, 별종 취급을 당하며 무리에 속하지 못하는 (아마도 그들이 벌칙처럼 내리는) 소외, 정보 비대칭, 외로움.

이 책은 그 두 가지(관계냐 목소리냐)를 맞바꿀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구조가 가부장제라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또다른 사람들은 권력과 지식의 복합체가 그랬다고 할 지도 모르겠다. 내 독서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무엇이 제일 잘 들어맞는다고 주장할 정도는 못 되지만, 일단은 이번에는 가부장제가 잘못했다, 하는 목소리를 들어보기로 했다.

책의 번역은 말하는 것을 듣는 듯하게 -입니다체로 되어 있었다. ‘부당함에 맞서기’세미나를 계기로 캐럴과 나오미가 이 책을 쓰게 되었다. 둘은 주고 받듯 스스로의 경험과, 경험하게 된 다른 이들의 이론이나 주장과, 연구 중 만나게 된 다양한 사례가 된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의 목소리를 겹겹 쌓아 나갔다. 성별, 인종, 계층 등 다양한 교차성을 불문하고, 모두가 가부장제의 피해자가 되는 과정과 결과를, 관계를 위해 자신의 욕구와 목소리를 희생했지만 결국 그 때문에 제대로 관계 맺지 못하는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프로이트의 주장(애도와 분리의 인정을 성숙하고 건강한 반응으로 봄)을 뒤집는 분리에 대한 존 볼비의 주장이 특히 흥미롭게 읽혔다. 모두가 선천적으로 애착의 욕망을 가진다. 그 욕망을 채우지 못한 채 애착 대상을 상실하고, 관계 맺은 이들과 분리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마주할 때 점점 절망으로 나아가는 전개가 제법 내 일상의 고민과 들어맞는 부분이 있었다.

가만 보면, ‘낙화’니, ‘님의 침묵’이니, ‘진달래꽃’이니, 이별과 한을 다른 나아감으로 승화하는 작품들을 문학사에서는 꽤 높은 것으로 친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사실 여성의 목소리를 흉내낸 남성 시인들의 것이다. 대개는 크게 슬퍼하고 통곡하는 소리를, 곡비의 일을 천하고 약한 여성들의 것이라며 격하한다. 헤어짐이나 빼앗김에 분노를 터뜨리는 설정의 대중 예술 속 여성을 호감있게 보는 사람들은 신선한 것으로 여기고, 비호감으로 보는 사람들은 질척거리고 의존적이라고 비난한다. ‘삐딱하게’의 상실 후 막나가는 남성의 분노는 멋지게 보고 공감하지만, 여자 가수들의 이별 노래는 헤어진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거나(‘작별‘), 이 기회에 새롭게 달라져서 후회하게 만들거라 하거나(’보여줄게‘, ’배반의 장미‘), 더 좋은 다른 사람을 만나겠다고 다짐하거나(‘Go away‘), 꺼지라고 하거나(‘I don‘t care), 주체성 있다고 하는 노래들도 기껏해야 상대에게 복수하겠어- 하는 정도이다. 내가 대중가요를 많이 몰라서 이 정도밖에 못 읊는 걸 수도 있다. 언니들이 부르던 노랫말을 만든 사람이 내가 꼽은 곡중 딱 한 명 제외하고 다 남성들인 건 우연이라 할지 내가 그런 것만 고른 건지 판단하기에는 사례가 너무 적긴하다. 좋은 이별이란 게 있긴 해? 화사(언니인 줄 알았는데 나보다 11살 어리다… 아 시간이란…)가 굿 굿바이 하긴 했다만… 아, 내가 착각했는지도. 예나 지금이나 대중예술이나 서사에서 저항은 펑크와 락이 잠깐 시끄럽던 시절을 제외하면 설 자리가 없는 촌스러움일지도 모르겠다.

캐럴은 가부장제를 민주주의와 대비되는 용어로 사용한 다. 그 점이 신선했다. 독재, 파시즘, 전체주의(다 비슷한 소린가), 중우정치, 신자유주의, 제국주의 등을 대척점에 세운 경우는 많이 봤지만 가부장제를 그 반대편에 놓는 건 내가 책을 너무 안 봐서 그런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또 자신을 잃고 사랑을 잃고 목소리를 잃게 만드는 이즘이라면, 그건 민주주의에 가깝진 않을 것 같다. 혹시라도 잘 몰랐는데 그런게 민주주의라고, 대의와 정의를 위해 잃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많은 사람이 말한다면, 난 패대기 칠 거다 그런 민주주의 따위… 그러니까 유교 민주주의 같은 소리는 제 앞에서는 치워 주시구요...

책 후반부에 가자 지구와 이스라엘의 갈등을 화해로 바꾸길 바라며 많은 여성이 모였던 이야기를 언급하는 부분은 감동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같은 여성들조차 짜치게 만들 언어도 있었다. ‘우리는 여성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어머니입니다.(182), ‘우리는 어머니이며 간접적이라 하더라도 권력과 관계를 맺고 있으니 사실 발생하는 일에 관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길을 가로막지 않았으며(…, 183). 베껴둔 글 말고도 어머니 타령이랑 성경 속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딸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그에 대해(사라에 대한 부분) 쓰지 말라는 사람들도 언급한다.

모든 여성이 어머니는 아니다. 모든 여성이 어머니가 되길 원하지는 않는다. 모든 여성이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책에서 모성이라는 말을 한 번이라도 언급한 적은 없지만, 돌봄의 윤리에서 처음 알게된 캐럴 길리건이 말하는 돌봄이 그런 어머니들의 뭔가라면 자기들이 발딛고 선 부채꼴 각도를 너무 날카롭게 좁혀버리는구나 싶었다. 어머니냐 아니냐 가지고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고… 비혼과 기혼과 미혼이 서로 여성의 적이라며 헐뜯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그런 의도가 저자한테 없었더라도 여성 대표를 자처하면서 어머니성으로 좁혀버리는 건 논쟁의 여지가 있다. 여성이냐 아니냐 가지고 싸우다가 너넨 우리편 아님 하고 LGBT+ 일부를 배척하는 상황도 슬프구만… 전쟁 반대는 옳지만,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라는 명분은 고귀하지만 너무 좁다… 인간과 여성을 너무 좁혀 버린다.

책은 기대했던 것보다 좋았고, 읽으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었다. 그래서 별 다섯을 주려다가 후반부에 캐럴의 일부 서술에 좀 짜게 식어서 하나 뺐다. 나오미가 미투 운동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리뷰해주며 경청과 지지의 가치에 대해 언급하고 마무리한 건 도움이 되었다. 트럼프 1기 시절, 2018년에 나온 책을 2025년에 읽는데 아니 그 트럼프가 또, 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지난한 싸움에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버티고 있을까, 그 목소리들이 무엇에 묻혀 내게 닿지 않을까(아마도 내 게으름? 내 불안? 무지?) 싶었다. 그래서 뒤늦게라도 읽을만한 책이었다. 그런데 표지디자인도 마케팅용 카드뉴스도 별로 안 끌리게 만들어놔서 그런가, 많이 안 읽힌 것 같아서 유감이다. 필요한 담론이, 논쟁이 널리 퍼지려면 자본주의가 열일해야 된다는 게 역설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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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가부장제는 관계란 어차피 틀어지고 회복할 수 없는 것이라 단정 지으며 그 관계를 희생양 삼지요. 달리 말하면 심리적으로 상처 입혀서 심리적 ’이득‘을 얻는 셈입니다. 따라서 피할 수 없고 참을 수 없다고 여겨질 상실에 취약해지지 않으려고 우리는 정말 원하는 것, 즉 사랑을 처음부터 회피합니다. (29)

-관계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으며, 가까이 있을 때도 있고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있지만 언제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멀리 가버릴 수 있다는 위험을 알기에 안정된 관계를 확보하려면 친밀해져선 안 된다는 사실도 알았지요. 아무것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뿐이라는 논리 말입니다.(51)

-소녀들은 자신의 솔직한 목소리,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는 주체적인 목소리를 누군가가 “어리석고”, “유난스럽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점점 속마음을 감추게 됩니다. 관계를 맺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것이죠. (53)

-(볼비는) 애착을 인간이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평생 달고 다니는 욕망이라 설명하고 자아와 타인 간의 거리 두기, 분리는 관계의 상실에 적응하지 못해서 나오는 반응이라고 봅니다. 모든 관계 안에 건강한 성장의 씨앗과 가장 고통스러운 트라우마의 씨앗이 공존한다는 그의 말에 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볼비는, 관계를 잃은 후에는 심각한 부상을 당했을 때 몸이 고통스러운 것처럼 마음 역시 고통스러운 상태에 빠지므로 방어벽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이런 방어벽은 회복할 수 없이 망가진 관계에서 우리를 지켜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적응과 파괴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친밀함과 관계 맺을 가능성에서 자신을 배제하고 타인이나 자기 자신에게 해를 끼치게 되지요. (76-77)

-캐럴은 관계의 상실을 받아들이라는 압력이 너무 커지면 건강한 저항이 심리적 저항의 형태로 바뀌면서 자아와 타인과의 연결선을 끊어버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행위라 여겨지니까요.(77)

-일단 거리 두기 단계가 시작되면 우리는 돌봄이나 인간적 연대를 향한 염원을 부인하고 그것과 인연을 끊습니다. 관계에서 멀어질 때 발생하는 상실에 대처하기 위해 자기중심적이 된다거나 사람보단 물질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 것으로 보상받으려 하지요. 이것은 볼비가 ‘강제적 자기 의존’이라 부르는 전략입니다.(…) 거리 두기에 익숙해진 사람은 관계를 향한 열망과 잃어버린 대상이 뒤섞여 생긴 그림자에 정신 상태가 어둡게 가려진 상황이라고 보면 됩니다. 거리 두기를 하는 사람은 사랑을 향한 열망이나 상실의 고통을 품고 있다가 무의식 속으로 밀쳐버립니다. 따라서 그것이 관계를 형성할 능력을 압도하며 유령처럼 떠도는 그림자가 된 것도 모릅니다. (84-85)

-캐럴은 타인을 자애롭게 돌보라는 여성스러움의 명령이 관계 맺기를 막는 장애물이라고 말합니다. 여성스러운 돌봄을 구현하려면 자아를 가져선 안 되기 때문이지요. 자아 없이 돌봄을 행하면 자기 목소리를 갖지 못하게 되고 자신의 경험, 생각, 감정, 욕구, 신념을 신중하게 생각하지 못하게 됩니다. 자아 없이 소위 이타적으로 돌보기만 하는 자를 여성스러움의 아이콘으로 혹은 이상형으로 떠받드는 가부장제 문화는 여성에게 ‘관계’를 위해 진정한 관계 맺기를 포기하도록 부추깁니다. 자신이 관계에 몰입하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돌보는 것은 진정 불가능한 행위입니다. 달리 말해 돌봄을 받는 이와 관계를 맺지 않고 돌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지요. 가부장제는 돌봄의 행위에 필요한 지성과 능력을 무시하면서 돌봄 행위자가 저임금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102-103)

-그들은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질문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푹 빠져 자신이 정작 포기했던 자아를 대신 발견해줄 이성애자 남자’를 갈망합니다. 반복해서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밀레니엄 시대 여성들과 내가 암묵적이건 명시적이건 끊임없이 들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들을 메시지, 즉 여성은 자신의 욕구를 부정함으로써 타인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충족한다는 말을 생각합니다.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적당히 타협한 자아 개념은 보다 강력한 타인을 인정하고 그를 사랑함으로써 복원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3)

-자유를 얻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은 남성이 수치스럽다고 여긴 감정을 다시 각성하도록 부추길 수 있습니다. 남자가 되면서 감추어야만 했던 사랑과 연민에 대한 절실함 말이죠. 이런 시각에서 보면 페미니즘을 향한 포격과 반발은 여성이 해방되면 현재의 지위와 권력, 명예를 잃을 것이라는 남성의 두려움을 반영합니다. 게다가 여태까지 남성이 어떤 식으로든 부인할 수 밖에 없다고 느껴왔던 욕구를 어떻게 여성이 대신 담아내고 감추는 역할을 도맡아 왔는지 드러날 것이 뻔하지요. 이런 의미에서 폭력 및 폭력의 위협은 취약성과 갈망이라는 수치스런 감정을 추방하는 방법이 되었습니다. 또한 여성을 떠나지 못하게 막으려는 절박한 시도이기도 했고요.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과 관계 맺은 여성의 경우 그녀를 가장 큰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는 그를 떠나는 것입니다. (106, 우리 아빠를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상실을 강요하고, 항의를 수치스러워하고, 공명을 왜곡함으로써 가부장제는 우리를 항의에서 절망으로, 절망에서 거리 두기로 이어지는 길 위에 서게 합니다. 즉 거리 두기라 함은 가부장제 문화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다 보면 생기는 병리적 상황에서 활용하는 심리적 방어 전술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파국을 맞은 관계를 회복하는 데 필요한 우리 내면의 능력과 우리 자신을 분리시키는 기제이기도 합니다. 관계의 파탄은 결국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등 온갖 형태의 억압을 의미하므로 결국 그런 부당한 구조까지 지속시키는 것이지요. (142)

-관계에서 일어나는 상실은 사실 문화적 각본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기에 여기에 맞서 항의하다 보면 어떤 구조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 구조는 상실을 보이지 않게 만들거나 당연한 것 혹은 필요한 것으로 몰아감으로써, 회복할 수 없는 것으로 몰아감으로써 이것을 보존합니다. (151)

-민주주의는 일상적인 저항의 영역에 존재했습니다. 내 의견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를, 내 욕구가 충족되기를, 내 소망이 고려되기를 주장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부당함은 철학적이거나 추상적인 이슈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저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줄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건 어쩌면 타인이 가진 것을 갖지 못할 때 얼마나 억울하고 부당하게 느껴지는지를 내가 잘 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행위는 그저 올바르다고 여기는 것을 행하고 나를 포함해 내가 관심 가진 사람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자주 말하는 “그건 공정하지 않아요”라는 외침이 이게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가? (154)

-그들은 소녀들에게 실제로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말하지 말고 타인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잘 살펴보라고 조언했습니다. 소녀는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다른 성인 여성에게 제지당한 채 성인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 여성들은 말함으로써 치러야 할 대가와 말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이득을 알고 있지요. (160, 그런 성인 여성의 위치에 놓이고 싶지 않았어요...그렇지만 벗어날 수 없었고... 정교한 척하지만 사실은 허술한 기계의 부품일 뿐인 나...)

-내가 던진 질문(“정말 그렇게 생각해?” 또는 “그것이 왜 궁극의 악몽인가요?”)은, 자존감을 무너뜨려 소녀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아내의 외도를 최악의 상황이라고 여기도록 남성을 세뇌하는 가부장제 각본에 던진 문제의식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질문을 던짐으로써 깊이 묻어두었던 목소리가 드러났습니다. 그런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논쟁거리인 바로 그 목소리를 밖으로 해방시키도록 공명한 겁니다. 나는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이 구조 때문에 수치스러움으로 낙인찍히고 침묵의 늪에 빠져 영영 돌아오지 못한 목소리가 얼마나 많은지 금세 깨달았죠. 또한 객관성 혹은 중립성을 지킨다는 명분이 연구에 적용되어 가부장제를 유지하는 데 이바지하는 경우가 허다하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168)

-관계를 맺으려는 인간의 욕망 그리고 인간에게 꼭 필요한 관계 맺는 능력을 생각해봅니다. 위계질서를 만들어내고 이를 유지하려면 이런 능력이나 욕망은 제지하고 억압해야 할 표적이 됩니다. (171, 1984가 생각났다)

-볼비가 설명한 대로 상호 호응이 전제되지 않는 관계가 난무하는 환경에서는 거리 두기가 오히려 그 상황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전략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부장제 문화에 다양한 방식으로 적응합니다. 관계에서 거리를 두거나, 자족적이고 독립적이며 타인이 필요치 않은 것처럼 행세하거나, 아니면 자아가 실리지 않은 목소리를 내거나, 욕구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조차 없어 보이도록 하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이 명예롭다거나 선하다고 말하지만 내면으로는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172)

-우리가 말할 때 어떤 반응이 오는지, 우리가 하는 말이 타인과 공명할지 아니면 메아리 없이 사라질지에 따라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하게 될 것이 결정됩니다. 내가 한 말이 공명을 얻지 못하거나 왜곡된 상태로 돌아온다면 진심이 전달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므로 타인과 연결되어 있지 않음을 절감할 뿐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할 자신의 능력까지 의심하게 됩니다. (174, 사람들이 에이아이로부터 정서적 위안을 얻는다면, 그건 같은 말을 비스무레하게 반복해서 응답하더라도 그것이 덜 왜곡된 채, 공명을 얻었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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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화학 - 엉뚱하지만 쓸모 많은 생활 밀착형 화학의 세계
조지 자이던 지음, 김민경 옮김 / 시공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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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9 조지 자이던.

원제 Ingredients가 어째서 ‘오늘의 화학’으로 탈바꿈했는지는 모르겠다. 전에 읽은 ‘우리 집에 화학자가 산다’ 저자 선생님이 번역을 하셨고 화학 얘기도 많이 나오긴 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미국화학학회의 책임 프로듀서를 맡은 요즘 말로 과학인플루언서다.

책의 2/3까지는 제법 흥미롭게 넘어가다가 p값 나오고 통계, 연구방법론, 확률 계산 이런 거 나오기 시작하면 좀 급격하게 흥미가 떨어진다. 나는 양적연구하는 교수님 쪽으로 지도교수님을 옮겼다가 통계 수업 몇 개 듣고는 그냥 학위 같은 거 안 하기로 했었다… 그런 산수도(암기도) 안 되는 내가 언감생심 화학을 공부하고 싶어했다니… 그냥 과학대중서나 두루뭉술 적당히 읽고 재밌네, 재미없네, 하면 좋지 아니한가…

적당히 먹어, 안 죽어,의 한국 권위자는 최낙언 선생님 정도가 생각나는데, 역시 화학 열심히 공부하신 분… 분자식 열심히 포토샵해주시면 와 예쁘네, 이러고 그냥 재밌네 음식 얘기다 냠냠 하고 여러 권 취미로다가 읽었다. 이 책도 비슷했다. 그렇지만 단호하게 흡연은 나쁘긴 나쁘다고 해준다. 담배 회사도 화학 잘 하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겠지…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들은 이렇게 저렇게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

그래서 거의 일년을 점심은 닭가슴과 과일 야채 견과류 친구들로 먹고 있는 나이지만,(아침도 귀리와 요거트와 시리얼과 과일 견과류 친구들을 먹지만) 가공식품의 절정이라 할 만한 단백질 음료(자연계에 지방 탄수 다 빼고 온리 단백질인 것들은 맛없고 또 거의 없겠지)도 달고 살고, 냉동식품-치킨, 피자, 베이커리들, 버거킹 와퍼, 라면, 캔에 든 닭가슴살, 참치, 번데기, 봉지에 든 파우치 파스타 소스, 굴라쉬, 가끔은 과자들, 다 먹는다. 배부를 정도로 많이 먹지 않을 뿐… 극단의 건강식과 소위 초가공식품들이 냉탕온탕하는데, 뭐, 건강합니다. 날씬합니다. 몸무게가 놀랄 정도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근육량은 근력, 저항 운동량이 좌우하지 음식이 좌우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싫은 건 안 먹고(요즘은 주로 한식이나 생선) 당기는 건(이건 아무거나) 그때그때 먹고, 같이 먹는 사람과 맛있게 즐거우면 됐고, 뭐 그렇다. 그렇게 확증편향적인 책만 주워 읽는 나새끼다. 뭐가 좋다, 뭐가 안 좋다, 걱정 안 하고 살면 편해요… 먹고 싶은 거 먹되 양만 잘 조절해 보세요…

+밑줄 긋기
-결국 여러분은 사라질 것이다. 분해되는 여러분의 몸은 어떤 생물에겐 뷔페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라. 거의 모든 생물에게 해당되는 얘기다. (88)

-여러분의 피부 분자를 춤추게 하는 광자(앞의 뜨거운 물처럼)를 “적외선”이라고 부른다. 맞다. 태양의 열기, 열화상 카메라, 진짜 끝내주는 가스레인지 같은 단어들은 우리가 아주 특정한 양의 에너지를 가진 광자에 붙인 이름일 뿐이고, “따뜻함”이라는 단어는 이 광자들이 피부에 부딪힐 때의 느낌에 붙인 이름일 뿐이다. (167)

-하지만 그 후 25년에 걸쳐 “아, 진짜! 커피 마시지 말라고!”와 “뭐, 아마 별일 없을 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논쟁 끝에, 커피는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충격을 안기기로 했다.
“연구자들: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심장마비의 위험이 낮아진다”(209, 맛있고 기운나면 됐다…그만 해…)

-그러니 만약 다음에 “블루베리는 사망 위험 감소와 연관되어 있다”와 같은 헤드라인을 보게 되면, 합리적이고 인과적인 연관성으로 가는 길에 있는 모든 웅덩이를 기억하시라.

1번 웅덩이: 사기꾼
2번 웅덩이: 기본적인 계산 실수
3번 웅덩이: 우연(무작위 가능성)
4번 웅덩이: 절차상 오류
5번 웅덩이: p-해킹을 포함한 통계적 속임수
6번 웅덩이: 교란된 연관성
7번 웅덩이 : 연구 설계(관찰실험vs.무작위 통제 실험) (273, 안 빠지게 주의할 웅덩이가 너무 많다...과학자나 연구자 안 하길 잘 한 듯…)

-어떤 방법이 충분하지 않다면, 그게 여러분이 가진 전부일지라도 그 방법을 사용해서는 절대 안 된다. (302, 충분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또 생기고…)

-CDC(질병통제및예방센터)와 FDA의 안전 경고에 주의를 기울여라. 그 외에 인터넷에서 음식과 건강, 특히 케일과 계란 같은 개별 음식에 대한 소식을 읽는다면 마치 새끼고양이처럼 취급하라. 같이 재미있게 놀되 그로 인해 삶이 바뀌지는 않도록 하라. (315-316, 이 말을 하려고 그렇게 길고 지난한 길을 함께 했다...흡연은 확실히 해롭고, 먹는 건 너무 신경쓰지 마...정도일까)

-예를 들어 85세의 사망 위험은 10세 어린이의 912배다.(9만1200퍼센트 높음…) 1년 동안 미국인의 사망 위험이 10퍼센트에 도달한다고 생각되는 나이는 몇 살일까? 다시 말해, 여러분은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1년 이내에 죽을 위험이 처음으로 10분의 1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 아니다. 87세다. (321, 그러니까 죽음 위험의 확률 증가는 나이가 제일 강력하게 보장한다. 나이가 음식을 이긴다. 어르신들이 들으면 섭섭해하겠다.)

-<소소한 조언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식품 및 건강에 관한 대부분의 뉴스는 안전 리콜이나 오염 통지 등이 아니라면 무시하라. (…). 담배를 피우지 마라.담배를 피운다면 끊어라. (…) 신체 활동을 활발히 하라. (…) 건강한 식단이라고 하면 어떤 하나의 큰 일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수백 가지 작은 것들로 이루어진 상당히 복잡한 혼란이다. 즉, 한 가지 식품의 기대 수명에 대한 기여도는 아마도 아주아주 작다는 의미다. (…) “가공식품을 피하라.” 그리고 말해두지만, 나는 근본적인 점에서 이에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가공식품을 독이라고 부르는 건 그만둘 수 없을까? 가공식품을 독이라고 부르는 것은 설사를 하게 만들거나 심장을 멈추게 하는 진짜 독에게 매우 무례한 행동이다. 설탕(심지어는 초가공식품)을 독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독이라는 단어가 싸구려가 된다. (334-338, 이 책의 두께나 이것저것 시시콜콜 가져다 붙이는 전개가 마음에 안 들면, 그런데 결론은 궁금하면 이 부분만 읽으면 간단하겠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들이마시고 우리 자신에게 바르는 모든 것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는 보기보다 훨씬 어렵다.”
세상은 보통 유기화학 입문처럼 깨끗하고 단순한 반응이 깨끗하고 단순한 제품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마치 모든 아수라장이 펼쳐지는 고급 유기화학에 가깝다. (340, 여러분 이것은 화학에 관한 책입니다...그렇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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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4
알랭 로브그리예 지음, 박이문·박희원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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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5 알랭 로브그리예.

Nirvana-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https://youtu.be/hEMm7gxBYSc

나는 84살은 아니고 84년생이니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4권 정도는 봐야 할 것 같았다. 1957년에 우리 아빠가 태어나던 해에 나온 소설이니 작가 할아버지는 작고하셨겠다. 살아 있으면 100살 넘었음… 인터넷은 이런 걸 찾아보라고 있는 거지만 까딱하기도 귀찮다.

책을 먼저 읽은 친구들은 재미없다, 오래전 읽었는데 나름 감동받으며 읽었다, 그런 반응이었다. 서사가 없는 소설이구만 또… 30쪽쯤까지 읽는데 이거 이전의 라슬로 600쪽 넘는 ‘서왕모의 강림’ 읽기보다 조금 더 힘들었다. 못 알아들었을까 봐 다시 얘기할게, 이러고 같은 스트로크로 덧칠하듯 어느 순간들이 또 또 나온다. 지네가 몇 마리 죽었는지 세어 보고 싶었지만 이게 그 지네인지 다른 지네인지 파악할 길이 없다. 작가는 그림자랑 건물의 구조랑 벗겨진 페인트랑 블라인드랑 창까지 열고 닫아가며 열심히 세밀화를 그려놨는데, 내 뇌는 그걸 따라 그릴 생각을 못해서 그냥 굳이 그리지 말고 글자나 따라가자, 했다. 바나나 농장인데 바나나 한 개도 안 먹는 거 실화냐… 판매용이라 안 먹는 걸까…

뒷표지에 ‘이 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이다.’하는 나보코프 선생의 말을 믿고 끝까지 읽었다. 확실히 나보코프 선생이 좋아할 것 같은 구성이긴 하다. 여러분 서사는 중요하지 않아요. 문체랑 구성이 다예요. 그건 선생님처럼 짓는 자의 마음이고 읽는 자는 또 달라요… 일단 관찰자가 A…나 프랑크와 도무지 소통하는 걸 안 그려놔서 답답해요. 집요하게 쳐다보고, 뒤져보고, 늦은 밤까지 기다리고, 되새기고, 돌아보고, 슬프게도 A…가 관찰자/서술자에게 다정한 말, 눈길 하나 안 줬다. 이 정도면 질투 정도가 아니라 절망해야 하는게 아닐지…

자기들끼리 읽은 소설로 꽁냥꽁냥 이야기하고, 나란히 앉아 술을 마시고, 마누라랑 남사친이 그러고 있는데 그 자리에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멀찍이 지켜보는 듯한 서술만 반복하는 이 사람은 아니 이거 사실 A…의 남편 같은 뭔가가 아니라 시중들던 보이가 구경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읽기 시작했는데, 페이지도 많지 않은데, 읽다 도망가면 그래도 사실 끝까지 읽어도 ‘마누라랑 남사친이 장보고 차 알아본다고 같이 차타고 새벽같이 시내 나가서 결국 그 날 안 들어오고 다음날 아침 돌아온 썰’ 외에는 특별한 서사가 없다. 거기에 귀뚜라미 소리나 원주민의 노래소리나 지네의 스스거리는 소리를 덧입히고, 해가 뜨고 기울고 지고 어둡고 그런 그림자의 변화를 그리고, 공간을 이동하는 사람을 추격하는 눈길을 그리고, 창이나 블라인드 너머로 다른 시선으로 주변과 사람을 들여다 보게 하고, 뭐 그렇게 140페이지 넘게 집요하게 쓴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나는 못해요 못해…

책 뒷표지가 또 재미있는게 해설자랑 나보코프 선생 말고 두 마디가 다 저자가 한 말을 남의 추천사 넣을만한 자리에 적어놨다.

‘줄거리 혹은 사건이 없는 소설, 매초와 매분은 있되 그것의 총합인 하루는 없는 작품, 정념은 있되 그 감정의 주인은 없는 작품’
‘세계는 의미 있는 것도 부조리한 것도 아니다. 세계는 단지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세계의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이다.’

세계는 존재하므로 존재하는 거군요 선생님… 의미도 부조리도 내가 다 갖다 붙힌 거군요… 여하간에 선생님의 책을 읽고 질투의 감정보다는 몹시도 쓸쓸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졸립군요… 밤에 잠 안 올 때 보면 딱이겠다… 나는 얼른 책에서 빠져나오려고 낼름 읽었습니다…. 여기는 아프리카가 아닌데 에이와 남사친은 아프리카 배경의 소설을 읽고, 여기가 식민지이긴 한데 어딘지는 안 나오는데 내맘대로 인도네시아 쯤으로 여기고, 사실 여기는 어디에도 없는 어디에나 흔한 플랜테이션 농장이었을 수도 있겠다. 바나나 먹고 싶다. 인스턴트 쌀국수도 먹고 싶었는데 참았다. 저녁이니까 두유 한 팩이랑 치즈 한 장만 먹고 이 닦음...기특한 나…

+밑줄 긋기(어째 하나도 안 옮겨 적었어서 느낌적 느낌이라도 나누려고 하나 뽑아옴)
-촘촘하게 주위를 둘러싸던 철창이 갑자기 끊겨나가면서 이 정육면체의 감옥은 스스로의 운명에 내맡겨진다. 이것은 자유로운 추락이다. 짐승들 또한 골짜기 깊은 곳에서 한마리씩 숨죽이게 되었을 것이다. 침묵이 너무나 공고해서 아주 약한 움직임마저도 불가능해진다. (갑자기 불끄고 램프 소리 마저 멎은 상태. 암흑. 정적.)
윤곽을 알 수 없는 이 밤을 닮은 비단결의 머리카락이 경련하는 손가락 사이로 흐른다. 머리카락은 길게 늘어지고 더욱 풍성해지며 촉수를 사방으로 뻗는다. 그러면서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처럼 점점 뒤엉킨다. 그러나 손가락은 그 얽힌 미로 속을 무심하게 쉽사리 빠져나간다.
머리카락은 마찬가지로 쉽게 풀리고 퍼져서 어깨에 느슨한 물결이 되어 굽이친다. 그 물결 속을 비단 브러시가 위에서 아래로, 위에서 아래로, 위에서 아래로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이 동작은 오직 숨소리에 의지해서만 감지할 수 있다. 숨소리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어내며 무언가를 측정할 수 있게 한다. 아직도 측정할 무언가가, 구별할 무언가가, 묘사할 무언가가 남아 있다면 말이다. 이 완전한 암흑 속에서 날이 밝아올 때까지. (115-116, 머리카락과 손가락으로, 다른 곳에서는 옆얼굴의 잔상과 착붙 드레스로 인상 남긴 A… 여기쯤 쓰다가 작가도 아 묘사할 만큼 다 했다...지친다...불꺼진 김에 자야지 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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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11-26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브그리예의 질투...이거 읽고 진짜 질렸었습니다. 로브그리예의 문체에...근데 <되풀이>를 보고 이건 뭐지?! 라는 신선한 놀라움이...ㅎㅎ

반유행열반인 2025-11-26 20:30   좋아요 0 | URL
다른 작품은 읽을 엄두도 못 내겠어요 너무 재미없어서요 ㅎㅎㅎ

yamoo 2025-11-27 10:56   좋아요 1 | URL
이야~ 이렇게 재미없고 지루하고 꾸역꾸역 읽으셨는데...별4개나 주셨네요...ㅎㅎㅎ
진짜 저도 딱 그런 느낌....서사 없는 작품은 걍 덮어야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ㅎㅎ 근데 로브그리예 <되풀이>보시면 완전 다른 느낌입니다. 완벽한 서사가 있어요!! 추리소설 기법을 도입해서 그런지 질투와는 완전 다릅니다. 혹시 기회되시면 읽어보세요. 근데, 뭐 다른 재밌는 작품 읽는 게 더 낫기 합니다...ㅎㅎ
 
날마다 천체 물리
닐 디그래스 타이슨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8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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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4 닐 디그래스 타이슨.

같은 저자의 ‘명왕성 연대기’와 ‘나의 대답은 오직 과학입니다’를 4년 전에 읽었다. 덕분에 내 수능 선택과목 중 하나는 지구과학이 되었다. ‘날마다 천체물리’에서는 고등 지구과학1에서 배우던 우주론을 조금 더 재미있게 풀어주었다. 함께 읽고 있던 ‘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의 시작도, 우주의 시작부터 물질이 구성되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 책과 겹쳤다. 그래서 이걸 어느 책에서 본 내용이더라...하고 헷갈릴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같은 이야기를 다른 목소리로 반복해 듣는 게 나쁘지 않았다.

열심히 어려운 계산을 하고, 지루한 관측과 사진 분석을 하던 똑똑하고 성실한 과학자들이 나처럼 수학에 약하지만 세상에 관심 있는 평범한 사람에게 우주의 시작과, 우리가 우리로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최대한 쉽게 전해주려고 쓴 책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 책들을 제법 모아놨다. 3년 동안 입시 공부대신 과학대중서, 교양서들만 챙겨봤어도 가진 책들을 다 봤을 것 같다. 사실 모아 놓은게 너무 많아서 자신은 없구만…

천체물리, 하면 조금 무섭고(개어려울 것 같음) 천문학, 하면 뜬구름 잡고 달보고 별보며 우주에 홀린 사람들이 떠오르지만, 왜 우리가 우주를 알고 우주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아야 할지 저자는 책 말미에서 열변을 토한다. 그부분은 조금 튀긴 한다. 굳이 지구에서의 여러 불행을 열거하지 않더라도, 우주에 대해 알아가려고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던 과학자들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게다가 여태까지 알려진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일이 생각보다 재미있다. 정말입니다. 제가 과학 대중서 좀 봤는데 봐도봐도 자꾸 또 찾아 보게 되거든요. 과학책 읽는 사회 선생은 조금 이상할지 모르지만 어려서는 사회가 좋았는데 이제는 과학이 더 좋아요… 겉핥기라도 좋아요... 어쩜 좋아요… 재미있는데 계속 이러고 살아야지 뭐...

+밑줄 긋기
-우리가 아무리 빨리 움직인다 해도 우리는 질주하는 빛을 추월할 수 없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러니까 그렇다.”라는 답밖에 당장은 내놓을 게 없다. 그 어떤 실험에서도 광속을 따라잡는 물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40, 빛보다 빠르게, 같은 비유는 그러니까 너무 깝치는 것이다.)

-맞갖다: 마음이나 입맛에 꼭 맞다. 딱 알맞다. (번역자님이 알맞다 대신 이 말에 꽂히신 듯)

-그보다도 나는 인류 문화의 아이콘 중 하나가 주기율표라는 데 방점을 찍고 싶다. 각국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실험실과 입자 가속기 등의 시설에서 수행된 다양한 연구의 총체적 결정체가 주기율표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주기율표는 또한, 현대 과학이 이룩한 위대한 국제 협력과 우주에 관한 이해의 최전선을 우리에게 증언한다.(122, 나도 한 장에 세상 물질을 다 담은 주기율표 좋아해요.)

-양극 방향으로 살짝 눌려진 구를 편구, 약간 잡아 늘인 구를 장구라 부른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햄버거와 핫도그가 각각 편구와 장구의 극단적인 예이다. 독자는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햄버거를 한입한입 물어 목으로 넘길 때마다 토성의 모양을 떠올리곤 한다.(148-149, 햄버거 먹으면 이제 편구, 토성, 해야겠군)

-거대 기체 행성인 목성은 자신의 막강한 중력으로 외행성계에서 내행성계로 날아 들어오는 수많은 혜성들을 밀어내서 내행성계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패 구실을 한다. 목성이 없었다면 내행성계는 엉망으로 파괴됐을 것이다. 특히 지구는 덩치 큰 형님이신 목성 덕에 수억 년 동안 평화와 고요를 유지할 수 있었다. 목성이란 중력 방패가 없었다면 행성 지구는 복잡한 구조의 생명체가 보다 더 복잡한 구조로 진화하기엔 지극히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 것이다.(187, 어쩐지 목성이 사랑스러웠어. 지켜줘서 감사합니다 형님)

-거개:1. [명사] 거의 대부분. 2. [부사] 대체로 모두.

-우주에 들어 있는 별들의 개수가 지구 상 바닷가 모래밭의 모래알 수보다 많다. 지구가 탄생한 이래 여태껏 흐른 시간을 초 단위로 잰 값보다 별들의 개수가 더 많다. 지구에 태어나 살았던 인간이 내뱉은 모든 단어와 소리의 분절 수보다 별들의 수가 더 많다. (218, 얼마나 많은지 비교해주니 너무 큰 수는 여전히 이해 밖이지만 대강 겁나 많다는 건 알겠다…무한은 아니겠지만 하여간에 대따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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