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름, 완주 듣는 소설 1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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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01 김금희.


시각장애인복지관에 딸린 카페는 내가 잠깐의 시간이 생길 때 숨는 곳이다. 거기는 빵이 정말 맛있다. 탄수화물 기피자인 나도 딸기파이, 밤파이, 대파크림치즈베이글 같은 걸 먹고 놀랐다. 음료도 프랜차이즈 카페들에 비하면 특색 있고 원물 재료 비율이 높다.
카페 안쪽에는 도서관이 있다. 그 도서관에는 복지관 방문을 마치고 장애인용콜택시의 도착을 기다리는 시각장애인들이 머물러 쉴 때가 많다. 아는 목소리를 만나면 반가이 큰 소리로 안부와 근황을 주고 받는 사람들, 자주 듣다보니 이제 나도 아는 목소리네, 하는 사람들도 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할 일이 있으면 이어폰을 끼고 소음을 차단하긴 하지만, 하여간에 나는 거기가 편하다. 내가 있지만 있는 걸 알 테지만 보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냥 편하다.

김금희의 새 장편소설은 오디오북으로 먼저 나왔다고 들었다. 표지만 보면 그래픽노블이나 청소년소설 느낌이었는데, 낭독을 염두에 두고 대사 배치가 약간 희곡처럼 길게 이어지는, 실험적이라면 실험적이고, 이거 오에스엠유인가 그렇게 여러가지 매체로 옮길 만하게도 쓰인 것 같고, 그랬다. 가깝고 친밀하던 사람이 돈을 빌려 떼어먹고 나르는 일이 요즘 젊은 사람에게는 가장 비극일까, 싶게 돈도 잃고 사람도 잃는 이야기가 여기에서도 이어졌다. 장의사 겸 매점인 공간, 정체 불명의 나무 정령 같은 어저귀, 열매가 할아버지와 만나는 꿈 속, 신파와 클리셰가 적당히 범벅된 한국 영화나 드라마 느낌이지만 또 주변 풍광을 묘사하는데 공들인 걸 보면 아...금희언니는 옛날에 시나리오를 쓰려고 시도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망상도 해 보고…

가상의 소읍 완평군, 완주 마을은 완주, 라는 말을 거듭 반복하기 위함인지 조금 뻔하지만 그래도 서사의 고갱이 마냥, 이 여름, 죽지 말고 달려, 온갖 우울증 환자와 빚쟁이들을 위로하려고 애쓰는 느낌이었다. 삶을 살아내는 일을 끝까지 달려 어딘가 도달하는 듯한 완주라는 말로 그리는 건 나는 좀 못마땅했지만 말이다. 꼭 다 달려내야 하는 거니... 가다 못 가면 쉬었다 또 가야 하는 거니, 아픈 다리 서로 기대어…

아직 여름은 이제 시작인 무렵 짧은 소설이라 금세 완독을 했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사 놓은지 오래인데 꽂아만 두고 시작도 못하고선...며칠 전 ‘나의 폴라일지’(아마도 이미 다 읽은 내가 학교 도서관에 애들한테 극지방 배울 때 소개하려고 구매 요청해 둔 책) 읽는 동료를 보며 그 책, 저도 봤어요, 저 이 작가 소설 다 봤어요, 했는데 대온실 수리 보고서가 꽂힌 걸 보고 아차차...뻥쳤네… 첫 여름, 완주 또 보고선 아차차차...완전 거짓말 했네...하면서 이 주말 읽었다. 학교 아이들은 내내 싸우고, 사과를 원하고(그러면서 사실 앙갚음을 하려 들고), 따돌리고, 학교에 오기 싫어하고, 뭐 그런 속시끄러움으로 나는 메모장에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건넬 말을 적어 보고, 욕도 썼다 지우고, 챗지피티에게 내가 적은 걸 읊어주며 조언도 듣고...너무 방어적으로 보일 수 있으니 조금 부드럽게-가자는 버전도 친절하게 꺼내주고 혼자 앓지 말고 여기저기 의논해보라고, 고생했다고 위로까지 잃지 않는 에이아이여… 이 여름 가장 따뜻한 건 왜 에이아이인가… 왜 인간이 아닌 무엇인가..

사실 열매와 어저귀가 잠시 사랑하는 장면도 인간 아닌 존재라고 강조해서 그런가, 외계인보다는 에이아이 같은 정령이랑 교류하는 느낌이었다. 어저귀와 열매가 그렇게까지 속을 터놓기도 전에 말도 많이 안 나눠 보고선 친해지는 걸 보면, 정말 깊어지고 슬퍼지기 전에 너무 서둘러 둘이 다시는 못 보게 된 것도 같았다. 어저귀는 온장고 나르고 장의사 집 수리 열심히 한 정도지, 열매랑 그렇게 통할 만한게 있던가, 싶었는데, 꿀벌 분가하는 장면에서 급전개 해서 둘이 가까워지는 건 조금 작위적이랄까...그것만큼이나 어저귀를 치워버리는 장치도 예측가능하면서도 뭐여 이게...하게 되는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마을 인물 하나하나 생생하게 그려내서 정말 시나리오 읽는 느낌이었다.

난 뭐, 다 못 달려내더라도 천천히 걸어서 가는 데까지 가 보고, 딱히 가고자 하는 곳도 없고, 그냥 걷는 것처럼 그냥 사는 사람이 되려고 애써왔고 그게 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그러니까 재미있는 소설이 아직 많이 쌓여 있으니 그거나 짚으며 이 여름 보내면 되고...여름은 책이 잘 읽히는 계절이라 더워도 괜찮다. 더위에 나무가 쑥쑥 자라듯 종이도 죽죽 넘어간다.

+밑줄 긋기
-할아버지: 아이, 아이, 목청이 왜 이리 좋은 겨? 충남도청까지 날러갈 뻔혔네. 근디 지끔 열매 니는 피난 갈겨? 무신 짐이 이렇기 많댜?
손열매: (씁쓸하게 웃으며) 할아부지, 나 갈 데가 읎네.
할아버지: 우리가 보령 팔 대 토백이덜인데 워찌 갈 데가 없는 외톨백이라 허넌 겨?
손열매: 아녀, 지끔 암도 읎어. 친구도 읎구. 사투리 얼릉 고쳐서 성공할라는 동안 친구들 하나둘 떠내 부렸지. 아이, 서울말을 배야 헌게.
할아버지: 아이구, 서울말은 워디로 밴 겨. 삼십 년 무덤에 있던 나보다 보령 말을 더 잘허는디? 식구덜은 워뜨케 된 겨? 느이 에미 애비는 기어코 갈라선 겨?
손열매: 이.
할아버지:(혀를 차며)해여튼 간이 내가 낳은 자슥 새낑이지만 느이 애비가 원판 시절(얼간이의 충청도 사투리)이여. 개갈 안 나넌 화상이래니께.
손열매: 아빠가 시절이라 나도 시절인개 벼. 의사가 나 얼간이 됐다 그러대.
할아버지: 얼라리요, 니가 워째 시절이여? 너는 외탁이여. 생김새도 영 그짝 판이구. 기런 소리 말어. 열매 너는 어렸을 때부터 쫄대깃살마냥 야물딱지고 똑부러졌대니께.
손열매:(점점 감정이 격해지며 울먹인다) 아니여, 시절이여, 시절이 중에 시절이여. (025, 악마 같은 할배 뒀다 보니 저렇게 노인들이랑 친하고 정감 있는 장면은 늘 공감 못하고 픽션이여 픽션, 하게 되고...시절이 얼간이면 시절 인연은 얼간이 인연이네 충청도에선...하면서 워 사투리 제법인데, 이문구의 후예네, 하면서 제일 먼저 옮겨 적고 싶었던 부분이다.)

-간디: 야, 너 왜 자꾸 나 간디라고 불러?
양미: 너 인도 사람이잖아. 넌 간디, 니 찐친은 러시아에서 왔으니까 푸틴.
간디: 야, 그러면 너는? 응? 너는?
양미: 나? 난 윤석열이지. (위악 쩔고)
푸틴: (불만스러운 말투로 속삭이듯) 야, 재수 없어, 우리끼리 가자.
간디: 쟤 이번 주도 안 나오면 유급이잖아.
푸틴: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우리가 유급하냐? 오지게 인종 차별 하는 애를 우리가 왜 감싸?
간디: 학교 오지 않는 친구가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우리끼리 수업하는 건 수치라고 썜이 그랬잖어. 그 말 할 때 율리야 넌 뭐 했냐? 졸았냐? (37-38, 영화 초능력자에서 보던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 티키타카 장면 비슷해서 식상하긴 해도 간디는 역시 평화주의자로구만…그런데 여기선 좀 더 적극적이다...아 그리고 양미가 뭐임- 하는 말투 쓰는데 요즘 중학생들 ~임 하는 명사형 어미 말투 절대 안 씀...한 십 년 십오 년 유행 지난 듯...청소년 오리엔탈리즘...)

-손열매: 그러니까 그짝 얘기는 대가리도 꽁지도 없이 생선 가운데 토막이다, 그게 외계인의 삶이다, 이건가?
어저귀: 또 외계인...그리고 나는 삶이라는 말도 별로 안 좋아해요. 너무 덩어리 같고 물질적이고 그냥 그거보다 ‘유효’쯤이 살아 있는 상태를 설명하는데 적당하지 않나? 인간, 나무 잎사귀, 물방울, 별 먼지까지 은은히 있다가 사라지는 모양을 다 담을 수 있잖아요. (102, 어쭈, 난 완주가 별로랬는데 삶을 살아낸다는 나한테 어저귀는 삶 별로, 하고 있었다. 이자식...없어져도 별로 안 아쉽더라...흥)

-달을 비추기 위해 기꺼이 더 어두워진 연못의 물결 소리.
뾰족한 전나무 잎들이 공기 중에 긋는 투명한 빗금 소리.
흙 알갱이를 짚으며 땅벌레들이 길을 찾는 소리.
부후된 통나무 껍질을 쪼개며 버섯이 피는 소리.
이불이 펼쳐지듯 밤안개가 너르게 이동하는 소리.
그러다 어저귀와 열매 위로 내려앉는 소리.
그렇게 밤이 존재하는 소리. (155, 아… 이렇게 힘준 부분엔 일부러 더 밑줄 안 긋는데 투명 형광펜으로 작가 언니가 여기야, 여기, 좍좍, 이래 놓은 걸 지나치면 너무 예의가 아니잖아...하고서 한 번 옮겨 적기로 했다.)

-열매는 울고 싶을 정도로 자신이 행복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저귀의 누룩 덕분인지 빵은 무섭게 팔려 나갔다. “감동 그 잡채의 천연 효모 빵”으로 어느 블로그에 소개되더니 사람마다 느끼는 맛이 다 다른 신기한 빵으로 입소문이 났다. 방문자들의 별점도 매겨졌다. 국가 권력급 사워도우, 시간 잘 맞추면 향냄새 나는 장의사 컨셉 카페, 노랑이 믹스커피에 담긴 인생 찐맛, 나이 있으신 사장님은 레알 장례 지도사라고 함, 아무것도 안 넣었다는데 바닐라, 치즈, 트러플향까지 남, 완평의 숨은 맛집, 알바생 성깔 있음. (176, 마침 ‘음식의 영혼, 발효의 모든 것’에서 사워도랑 곡물 발효 음식 읽고 있는데 딱 아퀴가 맞게 빵 굽는 이야기가 나와서 재미있었다. 난 뭐 어제 냉동 생지 녹여서 버터크로와상을 구워 내가 거의 다 먹었지...천연 효모 빵은 그냥 어디 가서 사 먹을게…)

+비디오 테이프 감성인가, 주인공 이미지랑 썩 맞지도, 끌리지도 않는 표지 감성… 밀짚모자 뭐냐고… 캐리어 왜 허공에 떠 있음… 아 그런데 손열매네 할아버지 역할 오디오소설에서는 최양락 씨구나...표지 보니까 최양락 얼굴로 그려놨다… 충청도 사투리니까 인정…

+독후감 쓴 꼬라지를 돌아보니 내가 T여,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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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5-06-01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대온실 수리 보고서 재미있게 읽었는데 친구들 사이에선 호불호가 갈리더군요. 폴라일지는 좀 읽다 접어뒀는데 정말 본격적인 극지방 체험기라 (상상과 달라) 놀랐고요.

첫여름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30대에 뇌졸중 환자가 되었습니다 진실의 그래픽 4
마고 투르카 지음, 김모 옮김 / 롤러코스터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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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31 마고 투르카. 원제 Mon Petit AVC 자그마한 뇌졸중 환자.

생각보다 이삼십대 젊은 나이에 뇌경색, 뇌졸중 발병한 주변 사람들이 많았다.
ㄱㅇ오빠는 함께 밴드하던 베이시스트였다. EP앨범 발매를 위해 기타리스트 겸 엔지니어인 (현 곁의 사람) 오빠와 연습실에서 녹음을 한창 하고 집에 돌아가던 중이었다. ㄱㅇ오빠가 어지러움과 함께 길바닥에서 구토를 하며 쓰러지자, 사람들은 처음엔 취객인 줄 알고 경찰차를 불렀다. 다행히 경찰들이 상황을 금세 파악하고 인근 3차 병원으로 이송해줘서 풍선으로 혈관 넓히는 시술을 받았다. 나는 늘 ㄱㅇ오빠를 이런저런 이유로 구박하곤 했는데, 입원실에 병문안 가서 더듬더듬 말하는 ㄱㅇ오빠를 보니 측은한 마음에 눈물이 돌았다. 그런데 ㄱㅇ오빠의 다른 지인들이 오자 오빠는 유창하게 대화하기 시작했다… 나를 놀래키려고 엄살 부린 걸 생각하니 또 구박하고 싶었지만… 이후 ㄱㅇ오빠는 회복 잘해서 국문학 박사졸업도 하고 어디 대학에서 교수 자리에 있다.


ㅂㅎ언니는 대학원 입학 동기였는데, 나중에 제법 규모가 큰 연수 자리에서 다시 만났다. 언니는 뇌경색으로 한동안 치료 받았다고 했다. 많은 단어들을 잃었고, 다시 배웠다고 했다. 입원 초기에 배우자가 곁에 있는데 ‘자기야...자기는 누구세요?’ 그렇게 물었던 상황이 가장 슬프고 어이없었다고 했다. 이후 ㅂㅎ언니도 박사 과정 잘 마치고 논문도 여러 편 쓰셨고 아마 잘 지내시지 싶다.

ㅁㄱ오빠는 유명 밴드 기타리스트였는데, 역시나 뇌경색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중에 회복한 이후 다른 친구 밴드 공연에 관객으로 오빠를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배우자가 함께 와 있었다. 겉보기엔 전과 다름 없어 나는 실없는 소리를 하고, 그러면 오빠는 나한테 신경질을 내는 게 수순이었는데, 한참 대꾸없이 생각에 잠기더니 화도 안 내고 천천히, 진지하게, 또박또박 대답을 했다. 지극히 이성적으로 보였지만, 감정적 반응이 동반되지 않는 걸 보며 (원래는 나한테 구박할 타이밍인데!) 조금 슬펐다. 이 오빠도 무사히 박사 졸업하고 대기업 입사해서 곁의 사람이랑 티비 만들다가 규모 작은 스타트업 기업으로 이직해서 신나게 잘 사는 것 같다. 막 회사 행사에서 코스프레 한 거 인스타에도 올리고...버거 사진도 열심히 올리고…

쓰고 보니 다들 고학력자야...여러분 학위 과정이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공부는 뇌혈관 질환의 부스터인 것인가… 혈전 제조기인가… 중학교 때 친구인 근육부자 친구도 근래 뇌졸중을 앓았다는데, 무사히 스스로 운전해서 응급실 가서 치료 받고 금세 회복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그냥 궁금해서인지, 중고책 사는 틈에 ‘30대에 뇌졸중 환자가 되었습니다’라는 제목에 끌린 만화책 한 권을 끼워 넣었다. 위치는 다르지만 나도 폐동맥에 혈전 낀 걸 녹이느라 반 년 약을 먹었으니까, 다른 사람의 투병기가 궁금하기도 했다. 한참 전에 사 놓고 이번에 펼쳐 후루룩 읽었다. 만화책이니까 보았다고 해야 하나, 글도 꽤 많긴 하다구…

프랑스에 사는 마고는 나와 연령대 비슷한 1985년생이고, 2007년에 공립 미술 교사로 임용되었고, 2018년 발병 당시 아기를 키우고 있었으니 생애주기도 비슷하다. 집에서 아기 돌보던 중 뇌졸중이 온 걸 자각했고(남동생이 먼저 뇌졸중에 걸려 재활 받는 과정을 지켜봐서 금세 증상을 알았다), 병원 이송되어 치료를 받고, 재활센터에서 열심히 재활훈련을 하다가 5개월 만에 일상으로 복귀했다. 뇌졸중이 왔을 때 겪을 수 있는 실어증, 반신 마비, 신체 특정 부위의 신경통증, 의사소통의 어려움 같은 걸 만화로 잘 전해주었다. 병원 생활하면서 혼자 자기를 돌보는 일이 힘든 것도 그려주었고….머리 감기, 옷 갈아 입기, 용변 보기, 음식 먹기, 그냥 걷는 일 마저 힘든 도전이 된다는 걸 알았다. 난 심혈관쪽이라 그냥 몸 속만 안 좋았지 딱히 통증도 없고 일상생활도 지장 없어서 뇌혈관쪽 질환이 이렇게 무서운 줄은 잘 몰랐던 것 같다.

마고는 병원 재활 중 문득 그림 그리기가 재활에 도움이 되고, 또 뇌졸중에 관한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 만화를 그려서 인스타그램에 공유했고, 2021년에 책으로 묶어 냈다. 남의 일기 보는 기분인데 그럭저럭 흥미롭게 질환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다. 마고는 예민한 성격이지만 의외로 병을 앓으면서 더 긍정적으로 변한 것 같기도 했다. 그건 나도 조금은 겪었던 부분…

아픈 사람 이야기를 문득 꺼내본 건, 반 년 전 8mm안팎의 결절이 다수 보인다는, 정기적으로 추적 관찰하라는 유방 검진 소견 내준 병원에서, 이제 6개월 되었으니 병원 방문하라는 문자를 받고 나서였다. 병원을 정말 가야 하나? 귀찮으니 그냥 다음 종합 검진인 12월에 갈까? 하던 차에 가슴을 촉진해보니 왜...안 만져지던 제법 큰 멍울이 만져져… 의료 전문가도 아닌 내가 만져서 알 정도면 이거 많이 커진 거 아니냐… 일단 근처 3차 병원 유방외과에 다음 주 가장 빠른 진료를 예약해 두었다. 그냥 섬유선종 같은 자잘한 이슈일 수도 있지만, 항상 최악을 대비하는 편이라 아...직장 어쩌지… 우리 애들은 알아서 크니까 걱정은 안 하지만… 또 휴직할 수도 있나… 이러고 망상하다가 형광주황색 이 책이 보여서 한 번 보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 치료기를 블로그로 검색한 것이 제법 도움이 되서 나도 간단하게 폐색전증 치료 후기를 남겼었는데, 만화책으로 찍어낸 질병 이야기도 제법 어렵지 않게 병에 대한 정보를 일부나마 전해주고 있었다. 뭐 그래서 진료 잘 받고 오겠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어 별거 아냐 다음 6개월 후에 또 추적관찰...이러면 가장 다행일 것이고, 어 별거 아냐 진공흡입해서 조직검사해 보면 별거 아닐 거야...하면 또 다행일 것이고… 이런저런 다행을 떠올리며 주말엔 책이나 읽고 먹을 거나 열심히 먹고 (현재 43킬로그램대인 나새끼는 건강할 땐 문제 없던 저체중이 아프게 되면 큰일이겠구나 싶어서 잘 안 먹던 탄수화물 마구 흡입 중...) 놀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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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운동 독립 - 내 몸을 스스로 책임지는 운동 설계법
구현경 지음 / 파이퍼프레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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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9 구현경.

처음이자 마지막 헬스장 등록해 본 경험은, 거의 15년 이상 된 것 같다. 석 달 등록하고 다섯 번도 안 나갔다. 헬스장 관장님이나 운동 도와주시던 트레이너 분은 내가 몸을 움직이는 걸 보면 저렇게 못하나, 하는 경멸에 가까운 눈초리를 보여주었다. 덤벨 운동 한 가지 배우고, 러닝머신만 걷다가, 와, 사람들 많은 곳에서 운동하는 거 정말 싫다, 안 맞아, 이러고 왠일로 매몰비용 아쉬워 하지 않고 불행한 시간을 금세 접었다. 그리고 닌텐도 위 밸런스 보드 따위를 사서 요가하는 시늉하면서 게임하고… 운동이랑은 거리 먼 삶을 오래 살았다.

공부하는 기간 스트레스 풀려고 도망치듯 신나게 걷다가, 발목 인대도 뿌숴먹고 혈전도 얻었다가, 그래도 계속 걷고 실내자전거도 열심히 탔다. 그런데 체중은 줄어도 자꾸 근육량 부족으로 체지방율 높게 나와서 아이, 뭐라도 더 해야 하나, 하고 500밀리 생수병으로 시작해서 1kg, 2kg, 3kg 덤벨 두 개씩 차곡차곡 무게를 늘렸다. 나도 근력운동 한다고!!! 그러나 아직도 3kg가지고 허덕이는 마라카스 연주자이지만, 디스크에 좋다는 케틀벨 8kg귀여운 걸로 데드리프트 비슷한 거 흉내도 내고, 애기랑 같이 플랭크도 째끔씩 하고, 운동 독립이다 못해 이정도면 독립 운동가 아니냐...하면서 거울을 본다. 평생 멸치였던 내 팔다리가 지방 아닌 뭔지 모를 걸로 통통 동그랗게 올라오는 걸 보면 흐뭇하면서도 아...더 굵어지고 싶어… 마동석 좋겠다…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그런 욕심을 들은 친구 대다수는 장난하냐? 덤벨은 최소 5킬로 이상이지.. 덤벨 따위로 근육이 붙을 것 같으냐? 뭐 그렇게 멸치를 구박하던 중학교 때 친구는, 자기 체중으로 운동하는 신의 영역… 인스타그램에 열심히 물구나무 서고 재주 넘고 북두의 권 몸매를 자랑해서, 나는 늘 탄성을 내뱉는 것이다. 북두의 권이지만 힘세고 아름다운 여자분이시다...ㅋㅋㅋ멸치에게 가혹하신 근육 여신 락슈미….

운동에 관한 책은 평생 본 적 없다가 충동구매로 전자책을 사 버렸다. 저자는 회사 다니다가 운동에 관심 커지면서 아예 운동 지도자로 개업을 하신 분이었다. 사실 운동 동작이나 몸의 부분부분 지칭하는 말들 책으로 봐도 하나도 모르겠다. 모르는 말이 많을 수록 나는 밑줄을 엄청 그어 놓고 나중에 봐야지, 하고 안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오...모르겠어...운동을 어디가서 배워봤어야지… 유튜브로 운동 배운다고? 난 유튜브 보는 것도 고역이고 거울뉴런 고장인지 어려서부터 율동 따라하는 것조차 힘들었어…

그래도 안 보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하고 뭔 의무감 같은 걸로 꾸역꾸역 봤다. 저자가 인용하거나 비유로 드는 것들이 조금 재미있을 때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그냥 자기계발서 읽듯, 아 좋은 말씀이겠구나… 그래서 난 어쩌지… 그냥 하던 거라도 열심히 해야지… 아마 평생 피티 받거나, 필라테스나 요가나 피트니스 센터에서 사람들 틈에 운동하는 일은 없을 가능성이 높은데… 가진 기구로 이거저거 해 보고 플랭크랑 스쿼트라도 열심히 해야지… 마인드셋 한 것으로 이 책의 효용을 돌리기로 한다. (그렇지만 이만원 넘게 주고 산 이 전자책은 팔지도 못해…나중에 또 보지 뭐...)

+밑줄 긋기

-그런데, 소비자 입장에서 살펴보면 피트니스 전문가에게 의존하는 경향은 어떤 면에선 능력의 상실이라 할 수 있다. 이반 일리치의 저서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는 전문가의 허가와 승인이 없으면 개인이 스스로 능력의 한계를 설정하고 자신을 옭아매는, ‘인간을 불구로 만든 전문가의 시대’를 비판한다. 피트니스 산업 역시 규모가 커지면서 사실 알고 보면 별것도 아닌 과도한 전문 용어가 범람하게 되었고, 소비자들은 혼란스러워졌다.
과도한 전문화는 소비자들이 자신의 신체와 건강에 대해 주체적으로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다.

-“전문가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을 고객으로 정의하는 권위이며, 그 고객에게 필요를 결정해 주는 권위이고,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알려주는 처방을 하는 권위이다.” -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우리는 자기 안의 재능을 볼 수 있는 눈을 잃었고, 그 재능을 발휘하도록 환경 조건을 조절할 힘을 빼앗겼고, 외부의 도전과 내부의 불안을 이겨낼 자신감을 상실했다.” -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운동 문해력이란, 협소하게는 개인이 운동 및 체육 활동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가지고 있는 정도다. 더 넓게는 자신의 몸이 가진 고유한 특성들을 파악하고, 그에 비추어 다양한 운동의 이점과 원리, 안전한 운동 방법, 적절한 영양 및 휴식 방법 등을 설계할 수 있는 지식을 포괄한다.

-몸에 아무리 좋은 운동이라도,한 종목만 열심히 하면 몸은 고장난다. 티셔츠 하나만 매일 입으면 빨리 닳듯이 말이다.

-사람들이 운동을 이론대로 정확히, 실수 없이 수행하리라는 가정은 자본주의가 이론대로 완벽히 작동하기를 기대하는 것만큼 이상적이다. 일반인보다 탁월한 육체적 조건을 타고난 엘리트 선수들조차도 경기장 밖에서는 부차적인 노력을 한다. 퍼포먼스를 높이고 부상을 예방·관리하기 위해 별도의 근력 운동을 하고, 재활 전문가의 운동 처방을 따르며, 이완 전문가에 몸을 맡겨 근육과 신경계를 풀어주는 식이다. 하물며 회사를 다니면서 어깨는 말리고 골반이 접힌 상태로 사는 일반인인 내가 그 종목만 이상적으로 수행하면 다치지 않으리라 판단하는 건 큰 착각이다.

-프리햅은 현대인의 공통적인 생활 습관으로 인해 약해지고 손상될 부위를 예측하고 예방하는 운동이다. 현대인 열에 아홉은 이미 틀어지고, 힘이 부족한 몸으로 살아간다. 살아가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그 몸으로 일정 강도 이상의 운동을 하거나, 그대로 나이 든다면 통증 때문에 일상에 지장이 생기는 건 시간문제다.

-리스크의 수준을 알면서도 이윤을 위해 무리한 운동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은 악의적이라 해야 할 것이다. 법률상 악의惡意는 ‘어떤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을 뜻하니 말이다.

-시대의 심미안이 언제나 가혹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 속에서 자라온 개인이 스스로를 시대의 심미안을 기준으로 평가하게 되는 건 어찌 보면 자신의 몸을 마냥 긍정하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닐까. 심지어 아기들도 태어날 때부터 사회적으로 매력적이라 간주되는 사람의 얼굴을 더 자주 쳐다본다는 유명한 연구 결과도 있다. 모두가 아름다울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유미주의자다. 여건이 되면 아름다운 것을 좇게 되므로 자신의 몸에 특정 조형미를 만들고 싶은 욕구를 표백하라고 하는 것은 인간성을 지우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운동을 시작해도 괜찮다. 시작은 그래도 된다는 말이다.

-나는 이 유행이 지나가고 난 10년 뒤를 기대한다. 현재 보디프로필을 찍는, 외모를 위한 운동에 관심 많은 20, 30대가 운동 경험을 쌓으면 분명 운동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것이다. 몸이 본격적으로 고장의 징후를 내비치는 시점인 30, 40, 50대가 되어서도 보디프로필용 몸을 원할까, 통증 없고 기능적인 몸을 원할까? 나는 압도적으로 후자라고 예측한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하는 계기는 뭐가 되었든 상관없다.

-운동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운동이 삶을 지배하면 다른 중독과 마찬가지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중독이 심해질수록 다른 활동에서 얻는 즐거움은 감소하고, 중독 행위를 수행할 때만 정상 상태로 느껴지는 것이 중독의 대표적 특징이다.

-나는 운동 시장의 소비자들이 별로이거나 보통인 서비스를 좋다고 믿고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않았으면 한다. 스스로 보는 눈을 길러, 어딜 가서 운동을 배우든 그 센터나 선생님이 나의 시간과 돈을 투자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 거기서 배우는 운동이 과연 나에게 좋은지 분간하는 눈을 갖추게 되기를 바란다. 탁월함을 발견하는 눈 말이다. 애석하게도, 누구나 선한 마음으로 고객을 대하는 건 아니니까.

-그러나 낮은 체중이 안전을 담보하는 건 절대 아니다. 신체 조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반드시 건강한 근육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특히 심각한 저체중의 경우 중대한 근손실을 동반할 가능성이 있으며, 근육을 잃으면 부상 위험에 노출될 뿐 아니라 퍼포먼스 관점에서도 속도가 제한될 수 있다. 체지방률이 특정 임계치 아래로 떨어지면 건강에 해롭고, 회복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특히 부상이 있었던 혹은 현재 부상을 치료 중인 사람들은 몸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는 지난한 시간을 겪게 된다. 이 과정은 인과 관계를 추적하고, 앞으로 부상을 안 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프로토콜을 정립하는 등 차갑고 이성적이기도 하지만, 차도 없음에 대한 답답함, 스스로를 부상에 놓이게 한 자신에 대한 원망과 후회, 부상 때문에 생긴 움직임 제약으로 인한 좌절과 우울,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 등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는 경험이다. 결국에는 그런 자신의 몸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우리의 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에 거의 대부분의 경우 하나의 자세 이상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자세 이상으로 연결된다.

-사랑 같은 영역은 미리 공부한다고 해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적겠지만, 운동은 비교적 단순하고 정답의 변주가 많지 않다. 게다가 우리가 하루 중 가장 높은 빈도로, 가장 강도 높게 사용하는 건 바로 몸이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지겹도록 몸을 사용한다. 미리 공부하지 않아 저지른 실수로 몸이 망가진다면, 그 몸으로 매 순간 살아가야 하는 건 우리 자신이다. 가장 많이 투자해야 하는 대상이 몸인 이유다.

-물론 몸에 대한 투자에는 금전, 시간,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계급적 속성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운동이 가진 민주적인 속성에도 주목하고 싶다. 돈만 있으면 즉시 구입할 수 있는 재화와는 달리, 건강하려면 결국 시간과 노력을 어느 정도는 들여야 한다. 금전적으로 부유한 자도 맛있는 음식을 먹기만 하고, 귀찮다고 움직이지 않으면 건강이 악화될 것이다. 누구나 자기 자리에서 건강을 위한 노력을 실천해야 건강할 수 있다. 인간으로 사는 건 참 피곤한 노릇이지만 말이다.

- 가슴(대흉근, 소흉근)
- 등(승모근, 광배근, 능형근, 대원근, 소원근)
- 어깨(전면, 측면, 후면 삼각근, 회전근개 근육들)
- 몸통(복직근, 내복사근, 외복사근, 복횡근, 늑간근)
- 앞허벅지(대퇴 사두-대퇴 직근, 중간광근, 내측광근, 외측광근)
- 뒷허벅지(대퇴 이두근, 반건양근, 반막양근)
- 엉덩이(대둔근, 중둔근)
- 종아리(비복근, 가자미근)
- 횡격막

#주동근: 주인공
#길항근: 따지자면 악역, 그러나 근육이 악할 리는 없으니 상대역 정도로 이해하자.
#협력근: 조연
#안정근: 동작이 펼쳐지는 무대, 배경

-그래서 한 운동만을 열심히 하기보다는 몸을 다각적으로 발전시키며 삶의 다양한 도전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그에 맞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 공부를 하고, 지식을 전달한다. 삶의 다양한 도전이란 근감소증, 관절과 인대 약화, 가동 범위 축소, 활력 및 대사 저하 등이다. 이런 도전들을 이겨내거나 예방하지 못한다면 친구들과의 활력 있는 여행, 지치지 않는 체력에서 나오는 다정한 말과 감정, 귀갓길에 장바구니 한가득 장을 봐서 가뿐하게 걸어가는 저녁 등과는 이별해야 할 테다.

-그렇다면 결국 문제는 한 운동을 특별히 즐겨서가 아니라,다른 운동을 특별히 즐기지 않아서 발생한다. 수영을 해서 몸이 틀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영만 해서 틀어진다. 등산을 매일 했는데도 틀어진 게 아니라 등산만 매일 해서 틀어진다. 순수하게 한 운동만을 고집하면 몸은 그 종목에 특화되며, 그러면서 자세가 고장나기 시작한다. 이를 ‘운동 편식’으로 지칭하고, 우리가 왜 운동을 고루 섭취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그럼 얼마나 운동을 해야 할까? 강도와 반복 횟수에 대해 단편적으로 조언하기는 어렵지만 근육량을 단순히 유지하는 데에도 엄청난 운동량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각 근육 그룹마다 매주 도합6~10개의 운동 세트를 수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40세 이상이라면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근육 감소를 막기 위해 더더욱 충분한 운동량이 필요하다.

-유연성은 근육 중심적인 개념으로 근육 및 힘줄, 인대 등 그 결합 조직의 신장성에 따라 특정 움직임이 가능한 범위를 말한다. 다리를 펴고 앉은 상태에서 손끝이 발가락에 닿게 하는 능력은 유연성으로, 주로 정적 스트레칭을 통해 개선될 수 있다.
가동성은관절 중심적인 개념으로 관절이 정상적인 범위에서 잘 움직이는 정도를 의미한다. 가동성은 유연성뿐만 아니라 관절의 구조적 상태, 근력, 신경계의 조절 능력 등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스트레칭, 근력 운동, 신경계 훈련 등을 통해 개선될 수 있다.

-신체 조성을 개선하고 싶을 때 더 효과적인 생각의 프레임은 외모를 위한 다이어트가 아닌 건강과 생존, 무병장수를 위한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고작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현명한 태도는 시간과의 관계를 승리와 패배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으며, 주어진 시간을 순수한 마음으로 즐기는 것뿐이다.

-컨디션을 지켜보며 운동을 조합한다는 건 매일 스스로를 혹사시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히 나는운동 강도에 다양한 변주를 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부상에 보수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으로서 힘들게 운동하는 날, 중간으로 운동하는 날, 쉽게 운동하는 날을 적절히 섞어 몸이 회복할 시간을 충분히 준다.

- 일주일 중 2일은 근력 운동: 힙 브릿지, 한 다리 힙 브릿지, 플라이오메트릭 푸시업, 인버티드 TRX 로우, 스플릿 스쿼트, 레터럴 스쿼트 등
- 일주일 중 2일은 가동 범위 훈련: 흉추 신전, 고관절 가동성, 발 조절 훈련 및 통증이 있는 관절 주변부
- 일주일 중 2일은 유산소 운동: 야외 활동, 유산소 기구 등
- 일주일 중 1일은 반드시 휴식
보수적이라면 보수적이고, 그저 성실하다면 성실한 운동 프로그램이다. 흥미로웠던 점은 부상 예방 차원에서 같은 훈련을 이틀 연속으로 수행하지 않는 점이다.

-근육의 기능과 가동 범위의 적절한 사용
#원칙: 미는 근육, 당기는 근육을 고루 운동한다. 한 근육을 여러 방향과 각도, 가동 범위에서 운동한다.
#변칙: 우리가 현재 가정하고 있는 전신 운동 프로그래밍을 기본으로 하면 미는 근육, 당기는 근육을 고루 다루어야겠지만, 자신만의 분할 방식이 있다면 굳이 한 세션 안에서 균형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
가동 범위 전부를 사용해서 운동할 필요도 없다. 운동 시 불편함이 있을 경우 가동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 운동의 범위는 훈련 중인 근육의 기능적 작용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짧은 운동 범위로도 근육의 전체 기능을 훈련할 수 있다.

-운동을 통해 반복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며 몸을 생리적으로 도전시키면 몸은 일반화된 스트레스 반응에 적응하며, 이후 동종의 스트레스(운동)와 이종의 스트레스(운동 이외의 것)에 대한 민감성이 모두 감소한다는 게 바로 교차 스트레스 적응 가설cross stressor adaptation hypothesis이다.

-스트레스 환대하기. 이는 한 사람의 마음의 평온을 위한 ‘정신 승리’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그 사람의 수명을 연장시킨다.

-크럼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성장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고 과정이 필요하다.
1.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2. 스트레스를 환영한다.
3. 스트레스 반응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연결한다(어떤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그 일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운동도 특별한 일상이 아닌, 삶을 지지해 주는 수많은 습관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운동을 특별하게 여기지 말고,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매번 스스로를 칭찬하거나, 작은 보상을 자주 쥐여주지 말라고 조언한다. 운동이 끝나면 매번 근처에서 맛있는 디저트를 사먹는다거나, 운동 인증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포스팅한다거나 하는 행위는 모두 운동을 특별한 행위로 생각한다는 반증이다. 이처럼 운동을 특별한 행위로 여기면 오래 지속하는 데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운동의 일상성이 축소되기 때문이다.
운동은 여행이 아니라 양치질과 같은 것이다. 매일 하지 않으면 건강상의 문제가 생긴다. 가끔 피곤할 때는 정말 귀찮지만, 대부분의 경우 할까 말까 고민조차 하지 않고 습관처럼 한다. 그리고 하고 난 뒤에는 항상 개운하다. 그렇다고 그 행위가 삶을 잠식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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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밀레니엄 (문학동네)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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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6 재독. 스티그 라르손.

2014년 3월부터 4월까지 밀레니엄 시리즈를 읽었다는 메모가 남아 있다. 이 책이 나에게 다시 오는 데 11년이 걸렸다. 원래 책 소개는 잘 안 하는 편인데, 맞은 편 앉은 동료와 이야기 하다보니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니,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시리즈니 괜히 읊다가 아...국문학 전공자 앞에서 뭔 번데기 주름이냐… 하면서도 학교 도서관에 밀레니엄 1부 문학동네판이 소장되어 있는 걸 굳이 검색해서 동료에게 알려주었고, 작가이름과 책 제목을 받아 적고 검색하던 동료는 신이 난 듯 바로 도서관에 뛰어내려가 책을 빌려왔다. 오늘 아침 텀블러의 커피가 그 책에 조금 새어 가지고 곤란한 표정으로 내게 책을 보여주고 다른 컵의 커피를 나눠 주었다.

2014년 봄에는 밀레니엄 소설을, 초여름 다가가는 이맘쯤에는 스웨덴판 영화 세 편을 나눠서 조금씩 보았다. 소설 읽기 전 먼저 보았던 데이빗 핀처의 영화도 한 번 더 보았다. 생각보다 이 시리즈에 푹 빠져 있던 것 같다. 작고한 스티그 라르손의 후계자라 할 다비드 라게르크란츠가 마저 쓴 ‘거미줄에 걸린 소녀’, ‘받은 만큼 복수하는 소녀’, ‘두 번 사는 소녀’까지 아쉬운 대로, 애틋한 대로 완결을 보고 말았다.

주말에 큰어린이와 스웨덴판 밀레니엄 1부 영화를 봤는데, 아이와 보기에 적당하지 않은 장면도 많았지만, 그래도 내가 한 때 푹 빠져 있던 리스베트라는 캐릭터를 소개하고 싶었다. 핀처의 영화까지 다음날 보려고 하자 곁의 사람이 ‘19금 영화잖아’하고 제동을 걸어서 좀 속이 상했다. 아이에게 나중에 보자, 했다. 전자책으로 빌린 밀레니엄 1부를 읽는 중에 스웨덴판 영화를 보고, 또 책을 보고 하니 대강의 줄거리나 디테일들이 조금 기억나는 듯했지만, 이런 이야기였구나, 싶게 새롭게 읽는 재미도 있었다.

여성 증오 범죄인 연쇄 강간 살인, 소녀의 실종, 후견인제도의 어두운 면 아래 폭력과 성범죄에 노출된, 그럼에도 내내 꿋꿋하고 매력적인 리스베트, 약간 멋질 때도 있지만 더 자주 저놈의 윤리관, 고지식한 놈, 거기다가 또 빙구같은 놈, 가지 마!!!! 거길 왜!!! 하고 고구마를 퍼먹이는 미카엘과 오랜만에 재회하니 반가웠다. 책의 판권은 이리저리 팔려 이번에는 문학동네판으로 1부를 봤는데, 2부, 3부는 연이어서 보게 될지 잘 모르겠다. 1부가 벽돌이라 열흘이나 붙잡혀 있었으니… 한 때 반했었고 빠져 있었던 인물들을 만나는 반가움이 있지만, 난 아직 만나지 못한 새 책들도 너무 많단 말이다. 2부는 천천히 만나자...

+밑줄 긋기
-아까까지만 해도 묵직한 덩어리처럼 명치를 꽉 메웠던 불안감이 확 풀려버린 듯했다. 에리카와 함께 있으면 항상 이런 기분 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도 그녀에게 동일한 안정감을 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벌써 이십 년이군.‘ 그는 생각했다. 에리카와 관계를 이어온 것도 벌써 이십 년이었다. 앞으로도 이십 년-최소한 이십 년-은 이렇게 그녀와 사랑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람들에게 딱히 이런 관계를 숨길 생각은 없었다. 비록 자신들 때문에 이따금 다른 사람들과 어색 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리고 사람들이 쑥덕거린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가끔은 간접적으로 그들의 관계를 물어오기도 했는데, 그때마 다 둘은 사람들 말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알쏭달쏭한 대답으로 넘어가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레게르는 둘의 관계를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다. 에리카 역시 미카엘과의 혼전 관계를 전혀 감추지 않았고, 그와 다시 만나게 됐을 때도 곧바로 남편에게 밝혔다. 예술가인 그레게르는 이 모든 관계를 감당해낼 수 있는 걸까? 아내가 다른 남자 와 잠자리를 할 뿐만 아니라 휴가까지 쪼개 산드함에 있는 정부의 별 장에서 일주일씩 지내다 와도 그레게르는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창작 활동에, 혹은 그저 자기 자신에게 너무 열중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미카엘은 그레게르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다. 어떻게 에리카가 이런 남자에게 반했는지 이해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남자 둘을 동시에 사랑하는 아내를 받아들여준다는 사실만큼은 항상 고맙게 생각했다.

-물론 미카엘은 리스베트가 자신에 대해 보고한 내용을 알 리 없었다. 그러나 보고서를 본다면 고개를 끄덕였을 게 한두 군데가 아니다.
특히 그가 재계의 늑대들을 혐오하는 이유가 급진적인 좌익사상 때문 이 아니라고 말한 부분에서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미카엘은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은 아니었어도 정치적 ‘이즘‘은 극도로 불신했다. 1982년 총선 때 그는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투표란 걸 했다. 사회 민주당을 선택했는데 이유는 하나였다. 보수파 예스타 보만이 재무부 장관에, 토르비에른 펠딘이나 자유주의자 올라 울스텐이 수상인 정권이 삼 년 더 연장되는 광경만큼 끔찍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 큰 열정 없이 올로프 팔메를 찍었는데, 얼마 후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팔 수상 암살, 무기회사 보포르스 스캔들, 에베 칼손 스캔들 등 추악한 정치 현실뿐이었다.

-˝내 생애 이십오 년, 혹은 삼 십 년은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하랄드 같은 인간들을 용서하며 보냈네. 그러고 나서 깨달 았지. 혈연이 사랑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하랄드 같은 인간을 변호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도.˝

-˝사는 동안 내겐 수많은 적이 있었지. 그 속에서 한 가지 배운 게 있어. 패배가 확실하면 싸우지 마라. 하지만 나를 모욕한 자는 절대 그냥 보내지 마라. 묵묵히 기다리다가 힘이 생기면 반격하라. 더이상 반격 할 필요가 없어졌다 할지라도.˝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타인의 삶을 뒤지고 사람들이 감추려 드는 비밀들을 까밝혀내는 일에 은밀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스스로 기억 하는 한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저런 형태로 이 일을 해왔으며 지금도 계속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해 드라간에게 임무를 받을 때만이 아니라 때로는 자신만의 유희로 그런 일을 했던 것이다. 일할 때면 왠지 모를 만족감이 느껴졌다. 비디오게임을 할 때 느끼는 그런 종류의 희열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비디오게임의 주인공이 자신의 집 주방을 차지하고 앉아서 베이글 샌드위치를 권하고 있는 게 아닌가.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자, 시간이 됐어.˝
마르틴이 팽팽하게 당겨진 가죽끈 위에 한 손을 올려놓고 아래로 지그시 눌렀다. 미카엘은 끈이 목둘레에 더욱 깊이 박히는 걸 느꼈다.
˝항상 궁금했었지. 남자는 맛이 어떨까 하고 말이야.˝ 그는 끈을 누른 손에 무게를 실으면서 몸을 앞으로 구부려 미카엘의 입을 자기 입으로 덮었다. 그때였다. 얼음처럼 싸늘한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이 개자식아! 내 허락도 안 받고 어디다 주둥이를 들이대?˝

-미카엘처럼 그녀 역시 자신들이 추적하는 대상이 과거의 연쇄살인범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드러난 진실은 정말 뜻밖이었다.
예쁘게 정돈된 목가적인 마을 한가운데, 그것도 기업의 대표라는 사람의 지하실에서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실로 모든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고 쉽사리 이해되지도 않았다.
리스베트는 이 모든 미스터리를 나름대로 정리해보려 애썼다.
마르틴은 1960년대 이후로 여인들을 살해해왔고, 최근 십오 년간 은 매년 두세 명 꼴로 희생자가 있었다. 너무도 은밀하고 치밀하게 계획된 학살이어서 이 연쇄살인마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가져온 문서에서 부분적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마르틴의 희생자들은 익명의 여자들이었다. 스웨덴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친구도 없고 사회적 접촉도 없는 이민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성매매를 비롯해 마약이나 알코올중독 등에 노출된, 이른바 사회적으로 소외된 여성들도 있었다.
리스베트는 성적 사디스트의 심리에 대해 개인적으로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이런 부류의 살인마들이 희생자의 물건을 즐겨 수집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종의 기념품인 셈이었다. 나중에 들여다보면서 과거의 즐거움을 부분적으로나마 다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기념품 말이다. 사디스트들의 이러한 성향을 마르틴은 특별한 형태로 발전시켰으니, 이른바 죽음의 문집을 꾸미는 일이었다. 그는 희생자들 을 꼼꼼히 분류했을 뿐만 아니라 개별적으로 평점까지 매겼다. 그들의 고통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논평했으며, 범행 장면을 담은 영상과 사진을 촬영하는 데 열중하기도 했다.
궁극적인 목적은 폭력과 살인이었다. 하지만 리스베트가 도달한 결론은 희생자를 사냥하는 일 자체가 무엇보다 그를 흥분시켰다는 점이 었다. 마르틴의 노트북 안에는 잠재적 희생자 수백 명에 관한 정보가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방에르 그룹 직원도 있었고, 그가 자주 다니는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 호텔 접수 담 당자, 보험회사 직원, 친분 있는 사업가들의 비서, 그리고 그 밖에도 수많은 여인들이 있었다. 한마디로 일상에서 만나는 여자들을 모두 목록에 올려놓은 듯했다.
물론 마르틴이 살해한 이들은 이중 극히 일부에 불과했지만 실상 주위의 모든 여자들이 잠재적인 희생자인 셈이었으며, 그는 평소 이들에 대한 정보를 세밀하게 기록하고 검토해왔다. 이 목록은 그가 무수한 시간을 투자하는 열정적인 취미라고 할 수 있었다.

-미카엘은 조심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혹시 네게 뭔가 민감한 일이야?˝
리스베트의 눈은 억누른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 미카엘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난 사람들이 오직 교육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하지는 않아. 하지만 교육이 큰 역할을 한다고 믿지. 고트프리드의 아버지는 여러 해에 걸쳐 아들을 심하게 폭행했어. 그리고 그 흔적은 남는 법이지.˝
˝다 엿 같은 소리예요. 이 세상에 맞고 자란 사람이 고트프리드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여자들을 죽일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는 것도 아니고요. 모든 건 그의 선택이었을 뿐이에요. 이건 마르틴에게도 똑같이 해당해요.˝
미카엘은 그녀의 말을 중지시키려는 듯 한 손을 들어 보였다.
˝우리 이런 문제 가지고 싸우지 말자고.˝
˝싸우자는 게 아니에요. 항상 그런 개자식들에게 어떻게라도 정상을 참작해주려 애쓰는 꼴들이 한심할 따름이죠.˝

-˝지금 스웨덴 증시는 사상 최악의 폭락을 맞고 있어요. 그런데 이게 아무것도 아닌가요?˝
˝자, 들어보시죠! 우리는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하나는 스웨덴 경제이고, 다른 하나는 스웨덴 증시입니다. 스웨덴 경제가 뭐죠?
그건 매일 이 나라에서 산출되는 재화와 용역의 총합입니다. 예를 들 어 에릭손의 휴대전화, 볼보의 자동차, 스칸의 닭, 그리고 키루나와 셰 브데를 연결하는 운송 서비스 같은 것들이죠. 이게 바로 스웨덴의 경제이고, 이 경제는 일주일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는 웅변의 효과를 위해 잠시 멈추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증시는 전혀 다른 겁니다. 거기엔 경제도 없고, 재화의 생산도 용역도 없어요. 거기에는 환상만이 존재할 따름이고, 그 환상 속에서 사람들은 이 정도 기업이라면 수십억 크로나 이상 혹은 이하가 되어야 한다고 매시간 결정하기 바쁠 따름이죠. 이건 스웨덴의 현실이나 경제와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그렇다면 증시가 이렇게 자유낙하를 한데도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인가요?˝
˝네. 조금도 중요치 않습니다.”

-원하는 건 단지 그와 함께 있는 것이었다. 그냥 그가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것. 나름의 세계와 나름의 삶을 가진 특별한 존재라고 말해주는 것. 이젠 그에게 단지 우정의 표현만이 아닌 사랑의 표현을 전하고 싶었다. 내가 지금 미쳐가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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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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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5 정지아.

제목부터 신파조겠네, 별로 보고 싶지 않군, 하면서도 남들 다 보고 호들갑 가라앉으면 읽어야지, 하고 쟁여놨다. 작년 엄마가 담낭 제거술 받는 입원 때 들고 가시더니 금세 읽었다고 했다. 읽고 나니 역시, 제목은 책 팔 사람들이 붙여준 거군...이웃집 빨갱이, 그쪽이 더 내 구미에 맞았을 것이고 그랬으면 책은 더 안 팔렸을 것 같다. 좀 순화하면 상주일기 정도...

우리 아버지가 죽으면 장례식에 안 갈 가능성이 높고, 가든 안 가든 삼일 정도는 파티를 할 거라는 나놈이라서, 아버지가 다정하고 사람 됨됨이 좋고, 그래서 어려서나마 애틋함을 느낀 순간이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들에 공감을 못했다. 이문구의 ‘관촌수필’ 속 아버지 회상도 약간 그랬다. 오히려 질투 같은 감정에 에효, 인텔리 빨갱이 애비 둬서 싫지만 좋았겠네… 못되먹은 심보만 더 뒤틀리는 때가 많았다. 내가 쓰는 글은 늘 아버지로부터의 해방일지였으니 뭐 어쩔 수가 없다.

한 사람을 거쳐 간,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다들 좋은 말만 하고 가는 건, 죽으면 후해지는 사람 맘도 있을 것이고, 장례식장이라는 특수한 공간에는 진짜 척 지고 철천지 웬수 같은 사람들은 얼씬 안 할 거라 마냥 좋기만 한 사람 되는 게 가능도 하겠다 싶다.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를 주변 연 닿은 인물들로 입체적으로 그리려고 애쓰는 건 알겠는데, 나는 오히려 쥐포처럼 납짝해진 허구의 인간을 만났지 싶다. 아이 이건 소설이니까, 허구지만 핍진성 병에 걸린 나니까… 술 먹고 엄마를 쥐어패는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를 가진 삶은 살아보지 못했으니까…

혁명과 대의와 해방 세상, 인류의 진보를 위해 개인이 부서지는 이야기를 마냥 훈훈하게 읽을 수 없다. 오히려 동료를 배반하고 위장 전향 아닌 진짜 전향해서 낱낱이 비밀 다 고해 바치고 그렇게 쓰레기 인생 사는 인간상 그리는 게 나한테는 더 쉬운 일이겠구나… 내가 살아온 세상은 그렇게 어두웠구나 했다.

성대 용종 수술을 받고 묵음 요양한다고 구례 산동면에 가을 며칠을 머무른 게 십여년 전이었다. 지리산과, 빨간 열매 달거나 떨구던 산수유 나무와, 길마다 툭툭 보석처럼 떨어져 횡재한 기분 들게 하던 굵은 알밤 정도 생각난다. 빵과자 맛있어서 거의 주식 삼던 불란서베이커리(지금은 망함)랑 그 앞에 하나로마트도 내 밥거리 마련하던 곳… 그저 한적하고 그래서 이런데 묻혀 살고 싶다 한 시골 쯤으로 여겼는데, 그 산 속에서 사상 때문에 목숨 걸고, 또 살해 당하고, 삶의 다른 가능성들을 잃었던 사람들 이야기를 책 덕에 마주 할 수 있었다. 뼛가루 암때나 뿌리듯 마냥 설탕 가루 쳐 놨구만, 신파는 역시 난 됐다...싶지만 그래도 뭐 이제 나도 읽었으니 됐다. 주인공이 못된 척 할수록 난 더 못된 척 자꾸 경쟁하게 된다.

+밑줄 긋기
-열일곱의 나는, 방물장수 하룻밤 재우는 일에 민중을 끌어들이는 아버지나 그 말에 냉큼 꼬리를 내리는, 꼬리를 내리다 못해 죄의식에 얼굴을 붉히는 어머니나, 그때 읽고 있던 까뮈의 ‘이방인’보다 더 낯설었다. (13, 혁명 민중 운운하나마나 여기서부터 이 아버지, 여자 많이 밝히시네...했고 가게 주인 엉덩이 토닥일 때 그 심증을 확증으로 굳혀 버렸다. 뭐 왜 뭐)

-“사회주의의 기본은 뭐여?”
속도 없는 어머니, 아는 것 나왔다고 냉큼 알은척을 하고 나섰다.
“그야 유물론이제라.”
“글제! 글먼, 머리는 둿다 뭣혀! 생각혀봐. 사람은 하나님이 여개 사람이 있어라, 고런 시답잖은 말 한마디 했다고 하늘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고 먼지로부터 시작됐다 이 말이여. 긍게 자네가 시방 쓸고 담고 악다구니를 허는 것이 다 우리 인간의 시원 아니겄어? 사회주의자는 일상에서부텀 유물론자로 살아야 하는 법이여.” (16, 일단 나와 같이 먼지론 주장하는 사람 세상에 제법 흔했구나, 그건 반갑네, 싶고 이 책에 나오는 사회주의 블랙유머들이 그나마 좀 유쾌했다. 일상의 진지화...진지나 잡숴…)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가 된다. 아버지는 잘 못 참는 사람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가 득세하는 것도 참지 못했고,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하라는 봉건잔재도 참지 못했으며, 가진 자들의 횡포도 참지 못했다. 물론 두시간의 노동도 참지 못했다. 그런데 얼어 죽을 것 같은 고통은, 굶어 죽을 뻔한 고통은,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은 동료들이 바로 곁에서 죽어가는 고통은 어떻게 견뎠을까? 신념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내려와봤자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뿐이라는 지극히 절망적인 현실 인식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68, 이제 어디가서 잘 참는다고 구라치지 말아야 겠다…)

-“암만 혀도 자네는 유물론자가 아니구만. 죽으먼 그걸로 끝인디 워디 묻히고 안 묻히고, 고거이 뭣이 중하대?”
방학 중이라 곁에 있던 내가 옳다구나 끼어들었다.
“아버지는 정말 무덤 필요 없어?”
“두말허면 잔소리! 땅덩어리나 아니나 쥐꼬리만 한 나라서 죽는 놈들 다 매장했다가는 땅이 남아나들 안 헐 것이다. 우리 죽으먼 싹 꼬실라부러라.”
입꼬리가 실룩이는 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으나 유물론자가 아니라는 말에 눌린 어머니는 더는 끼어들지 않았다.
“꼬실라서 니 펜한 대로 암 디나 뿌레삐레라. (….이하 생략)” (93, 플래그 붙여 둔 걸 보니 난 유물론 개그를 좋아하는구나… 중심 화자이자 관찰자인 딸래미는 아버지 유지를 너무도 잘 받들어서 곳곳에 아버지였던 먼지를 폴폴 뿌리고 다닌다. 아휴 난 그 감성 신파 못 견디겠는 패륜새끼)

-나는 그 사람들을 맞으러 접객실로 나갔다. 조문실을 가득 메운 늙은 혁명전사들 주변으로 이상한 결계 같은 게 드리운 듯했다. 내가 조문객이었다 해도 쉽사리 발을 디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접객실까지 흘러나오는 결의에 찬 그들의 말투도, 통일을 목전에 둔 듯한 흥분도, 나는 불편했다. 내 아버지도 그랬다. 분단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 되었다는 데, 젊은 세대가 민족의 통일을 지상 최대의 과제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아버지는 분개했다. (146-147, 좌파 정치가가 나온다고 망치로 텔레비전 전면을 깨부시고 전두환 박정희 찬양하는 아버지나, 나는 진짜 깨시민 나이는 먹었지만 샤이 개딸, 그런데 내 딸년은 왜인지 진짜 보수 같은 짓만, 하는 어머니나, 어휴 뭐 중간이 없어 나 이제 평생 선거 안 해, 그러면서 민주주의 가르쳐야 되서 도망치려다 망한 나새끼는 뽈갱이 어매아배 아래 그 낙인 이겨내며 평생 살아야 했던 화자가 그럴 법도 하겠다, 싶으면서도 그래도 그 가정에는 다정도 있고 재미도 있었구나, 싶었다.)

-공교롭게도 아버지의 옛 처제가 막 나간 문으로 이번에는 어머니의 옛 시동생이 아내는 물론 아이들 셋을 데리고 나타났다. 속 모르는 사람이 보고 개판이라고 욕을 해도 할 말이 없을 집안사였다. (165, 정상가족성 좆까소, 평등주의 어매아배 양쪽 집안이 재가해서도 이렇게 왕래하는게 얼리아답터 집안, 내 취향…)

-“질 줄 알았응게.”
“예?”
그가 되물었다. 나도 묻고 싶었다.
“질 게 뻔한 전쟁이었소. 우리야 기왕지사 나선 몸이제만 그짝은 사상도 읎고 신념도 읎는디 멀라고 뻔히 질 싸움에 끼울 것이요.” (179, 질 걸 알면서도 싸우는 마음, 그러니까 넌 빠져, 하는 게 폼 잡는 거 같으면서도 그나마 나에게 먹히는 신파...슬램덩크인가…)

-“긍게이. 이상허지야. 여개 앉아 있응게 자꼬 그날 생각이 나야. 쫌 대줄 것을…...나 아픈 중 빤히 아는 사램이 자개도 오죽허먼 그랬을랑가 싶고야…...” (248-249, 망자 태우는 자리에서 그때 못해준 것 미안하고 아쉬울 수 있겠지만, 대줄 걸, 대줄 걸, 성욕 해소 못해준 거 어머니가 곱씹고 있는 장면은 선 넘네 싶었다. 웃기라고 웃프라고 넣은 장면인데, 아비도 사람이었네, 뭐 그런 건가 싶지만 자식이 모르던 아비의 인간적인 장면이 저런 식으로 그려지는 건… 후반부에서 짜게 식었소.)


+2013년, 지리산에서 횡재. 밤 세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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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5-05-25 17: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손바닥을 가득 채우는 밤 세알, 횡재 인정합니다^^ 잘 지내시지요?

반유행열반인 2025-05-25 18:22   좋아요 1 | URL
얄님 반갑습니다 ㅎㅎㅎ 오래 전의 횡재인데 사진만 봐도 뭔가 뿌듯해서 올려봤어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