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9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5월 18일, 첫페이지를 펼치다.
5월 23일, 마지막 페이지를 덮다.

쿠바의 혁명을 주도하고, 남미의 혁명을 꿈꾸며 볼리비아에서 활동하다 전사한 체 게바라.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떠오르는 또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빨치산 남부군 대장 이현상, "태백산맥"의 농민출신 빨치산 하대치, 한국전쟁 당시 38도선과 40도선 사이에서 활동했다는 3840유격대. 그리고 1980년 광주의 시민군. 모두가 자신의 신념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긴 사람들이다. 그들이 가진 신념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들의 삶과 죽음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숙연함을 불러일으킨다.

자신의 뚜렷한 가치관을 형성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시련과 유혹들을 물리치고 그 가치관을 끝까지 지켜가는 일은 더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체 게바라는 억압받는 남미의 농민과 노동자, 가난과 무지때문에 비참한 삶을 사는 민중들을 비인간적인 제국주의로부터 구원하겠다는 의지를 꺾은 적이 없다. 의사라는 신분은 충분히 타협을 통해 안락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자리였다. 게다가 쿠바에서 성공한 혁명은 그를 쿠바은행의 총재와 장관 그리고 쿠바의 전권대사로서 각국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지위까지 올려놓았다. 수많은 파르티잔(빨치산)과 게릴라들이 자신의 신념을 이루지 못한 체 한맺힌 죽음을 맞이한 것에 비추어볼 때, 체 게바라는 분명 성공한 게릴라, 행복한 게릴라였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인이면서 쿠바의 혁명을 이루어낸 그의 목표는 남미 전체의 혁명이었다. 민족이나 지역적 개념을 넘어서 전 세계의 혁명이라는 더 큰 목표, 진정한 목표를 위해서 자신의 기득권을 버릴 줄 아는 그의 면모가 그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한다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안락함과 기득권을 버리고 나서는 사람은 볼 수가 없다. 오히려 허울좋은 명분으로 자신을 미화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결국 자신의 안위를 지켜나가는 위선적인 모습들을 많이 봐왔다. 세상을 대하는 마음은 불신과 분노로 점철되어있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한번 희망을 가져본다. 아직도 어디에선가 자신을 내던져 우리 모두의 정의를 위한 삶을 살고 있을,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음을 기대해본다.

p.s. 전기문이나 평전에 대해서 심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 편견의 유래는 한때 우리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의 일생이 담긴 만화책을 본 기억과 그것이 철저한 거짓임을 깨닫게 된 날의 충격때문이었다. 인물에 대한 기록들은 어떤 목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수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 평전을 읽어가는 동안에도 그러한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의심과 경계를 늦추지 않고 책을 읽어나갔다. 그러나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의심이나 경계를 그대로 두고서라도 체 게바라라는 인물이 주는 위대함은 감출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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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28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긍게요. 이 책 쬐꼬만허지만 꽤 부피가 있쟎어요. 게바라야말로 진정한 세계시민이란 생각이 들어요. 자신의 나라도 아닌 타국에, 기득권을 누릴 수 있는 위치에서 고난의 혁명가로!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에 대한 인간적인 고뇌와 투쟁! 아, 저도 이 책 읽으면서 빨치산 생각했었습니다. 스스로를 한 번쯤 돌이켜 보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2004-06-08 0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Peter Handke의 『관객모독』에 대하여

『관객모독』의 연극 목표는 연극관람자로서 아무 의식없이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들에게 자신들이 누구이고  무엇때문에 이곳에 있는지를 인식시키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인식의 과정을 확장시켜 아무 자극없고 변화없는 관객들의 일상속에서 자신들의 위치와 존재를 올바로 인식하게 하여 지금까지 의식하지 못했던 현실의 가능성을 보게 하거나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한트케에게 있어 연극은 관객의 내적 유희공간을 창조하는 수단으로, 관객의 의식을 넓히고 심화시키는 수단으로 의미가 있다. 한트케는 자신의 연극을 서극이라고 한다. 연극을 보고 나서 관객은 각자의 '본극'에서 스스로가 서극에서 연극을 통해 느낀 것을 통해 좀 더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한트케가 작품속에서 관객을 의식시키기 위해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는지 살펴보자.
한트케는 이 극에서 관객을 이야기꾼들의 '상대역'으로 만든다. 이 극의 이야기꾼들은 무대위의 자기 동료를 향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관객을 향해서만 이야기한다. 이러한 이야기꾼들의 태도를 통해 관객들은 수용자로서의 전통적인 자신의 역할에 대해 낯설게 느끼게 되며, 이 낯설음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진지하게 다시 생각하게 된다. 즉 관객은 이 극에서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의 수용자가 아니라 공동제작자이다. 만일 관객이 이 극에서 무엇인가를 하거나 혹은 곰곰히 생각하도록 요구받지 않는다면 상연시 매우 지루하게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극은 어떤 특별한 줄거리나 흥미거리를 서술하지 않았고 또한 연기자와 연기자 사이의 어떤 갈등이나 대립을 묘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야기꾼들은 관객에게 이 극의 촛점이 되어 줄 것을 요구한다.
한트케는 이 극에서 관객을 의식시키기 위해 '욕설'이라는 자극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관객을 모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객을 직접 연극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이다. 욕설은 관객을 자기자신과 대면하게 한다. 관객들이 일상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한 욕설을 인용함으로써 관객들은 자기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욕설은 관객을 자기자신과 마주치게 하여 자의식에 이르게 하는 수단인 것이다. 이야기꾼들이 관객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심지어 욕설까지 하는 것은 관객을 자의식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말은 한트케가 작품을 통한 관객의 변화를 믿고 있다는 것이다.
한트케의 『관객모독』의 서술동기는 그 시대의 연극에 반대하기 위한, 그 시대 연극의 모순을 드러내주기 위한 연극이다. 역할을 파괴하기 위하여 역할을 구성하거나, 연극을 파괴하기 위해 연극을 상연한다면 그 구성과 파괴의 관계는 단지 유희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유희인 『관객모독』속에 현실이 상연된다. 자기의 시간의 흐름을 떠나 무대위의 시간속으로 이주하고자 했던 관객들은 무대위에서 현실과 마주침으로 인해 무대위에서 자신의 제 현실문제와 대면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의 제 문제에 대해 무대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관객의 주의만을 환기시킨다. 이 연극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극장에 가며, 그 곳에서 무엇을 기대하며 또한 그들이 극장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상세히 서술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극은 전통적인 연극의 모든 것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미 하나의 '의식 Ritual'이 되어버린 극장에 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관객에게 분명히 알리려 노력한다. 즉 우리를 규정화하는 모든 것들을 깨뜨리는 것이다. 이러한 규정의 틀을 파괴함으로 관객은 자신의 올바른 형상화를 위해 자유로워지며, 그 토대 위에 자신의 내적 자유와 동질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참조: 전영록,'개방희곡으로서의 Peter Hnadke『관객모독』연구', 『독일어문학』제4-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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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 2004-05-20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들려요.
관객모독 보았었는데 느낌이 독특하기는 했지만 크게 공감은 못했어요. 대사와 상황이 어긋나기도 하고, 대사의 톤에 따라 대사의 내용이 다르게 전달되는 것은 재미있었어요. 극 중에서 "현실이 어쩌고"하는 대사가 있는데 기주봉인가 하는 배우가 "현실이"만 강조해서 부르니까 꼭 사람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어요. 끝나기 전 10분 동안은 관객들에게 욕설을 퍼붓는데 당황스럽기 보다는 재미있기도 헀어요.
관객이 배우들에게 관찰당하는 느낌도 들고, 관객의 자리가 좀 불편해지기도 하는 연극이었는데, 사람들의 마음을 배반하는 전개가 매력인 것 같아요.

메시지 2004-05-20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희곡을 먼저 접했어요. 거기서 번역에대한 불만이 무척 많았지요. 심한 번역투가 오히려 내용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었죠. 언어극이라고도 하는데 작가가 전하고자하는 언어에대한 생각이 잘 표현되지 못하는 것 같았죠. 독일어가 꽝이라 원서를 볼 능력은 없고, 불만으로만 남아있죠. 연출의 해석과 작업이 희곡을 무대 위에서 새로운 의미와 상황으로 거듭나게 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비로그인 2004-05-22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나도 씨원하게 물베락 함 맞아봤음 좋겠어요. 왠지 그럴 듯 해 보여요. 모욕을 당하는 곳에서 자유를 찾을 수 있다니. 캬~

메시지 2004-05-22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물뿌리고 욕합니다. 아주 징허게~~

푸른별 2004-05-24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한트케의 희곡은 아직 읽어보지 못하고 민음사에서 나온 그의 산문집 "소망 없는 불행"을 읽어보았는데 희곡도 한번 찾아서 읽어봐야겠네요.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 - 김태수 희곡집 1 김태수 희곡집 1
김태수 지음 / 연극과인간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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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연극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재미에는 두 기둥이 있다. 하나는 웃는 재미요, 또 하나는 우는 재미이다. 그의 작품은 이 두 재미의 축을 잘 엮어간다.  '21세기를 열어가는 극작가. 함영준', "옥수동에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  p.10.

 

 김태수라는 희곡 작가를 처음 접한 것은 전국연극제였다. 각각의 지역 대표 극단들이 참가한 공연 목록에서 김태수라는 이름을 너무도 많이 발견한 것이다. "꽃마차는 달려간다"는 무려 3팀이었고, "해가지면 달이 뜨고"라는 작품도 있었다. 그리고 얼마후에 "옥수동에 서면..."과 "칼멘"에 대하여도 알게되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김태수라는 작가 이름을 검색했고, 세권의 희곡집이  출판되어 있었다. 기쁜 일이다. 사실 우리의 출판 문화에서 우리나라 작가의 창작 희곡집은 엄청난  왕따를 당하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전문 출판사가 생겨나서 예전에 비하면 희곡집에 대한 갈증은 조금이나마 해소되고는 있다.

 김태수의 회곡집은 3권까지 출판되었다. 1집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 2집 "서울 열목어", 3집 "칼맨"이다. 작품집마다 각각의 특성이 있지만, 출판일이나 공연된 상황, 그리고 작가가 추구하는 바를 볼 때 이 세권은 분량의 문제로 나눈 것일뿐, 하나의 일정한 흐름을 이루고 있다.

 김태수 희곡의 가장 큰 특징은 소개글에서 드러나듯 재미이다. 김태수 희곡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직업의 특성이나 개성이 강하다. 그래서 많이 웃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우리와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걱정과 염려, 바람을 가지고 산다는 점에서 특별하지 않기도 하다.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삶을 살고있는 인물들의 사실적이면서도 재치있는 대화를 보는 것이 김태수 희곡이 가진 재미의 핵심이다.

 김태수의 작품들을 가리켜서 '서민극'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재미의 뒤에는 일상의 삶이 보여주는 여러 모습들에서 삶의 의미가 발견되고 진한 감동을 주기때문이다. 재미와 감동. 김태수의 희곡은 이 두개의 흥행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는 작품이다.

 주변에서 처음 연극을 보러가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봐야할지에 대하여 의뢰해올 때가 있다. 이런 의뢰를 받았을 때 처음이라는 말때문에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그러나, 재미와 감동을 모두 갖춘 김태수의 작품을 추천하면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희곡읽기의 어려움때문에 희곡 읽기를 꺼려하는 경우에도 김태수의 작품을 추천한다. 우선 등장인물이 많지 않기에 극적상황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적고, 내용 전개도 빠른데다가  대사에서 주는 재미때문에 희곡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게 되는 희곡이다.

우리의 희곡집들은 대부분 초판에서 끝이나고 만다. 외국의 유명한 명작들 중에 희곡이 많고, 그 작품들이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꾸준히 출판되는 것을 볼 때면 더욱 아쉬운 생각이 든다. 우리의 좋은 창작 희곡 작품들이 더 이상 사장되지않고 널리 읽혀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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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5-18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리뷰를 낳으셨군요.^^ 희곡...연극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 문학작품으로서의 희곡은 읽어본 기억이 없군요. <김태수>란 이름, 기억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마태우스 2004-05-18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기억할께요.

비로그인 2004-05-18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우는 재미와 웃는 재미. 웃음과 울음의 페이소스가 잘 혼합된 연극을 보면 저도 모르게 무대위의 상황에 몰입하게 되더라구요. 그러니까, 저건 연극이다, 가 아닌 저건 삶이다, 라는 느낌이 강하게 와 닿더라구요. 15년전쯤이던가요. 극단 이름이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마 전주 시립극단이었을 겁니다. 전국연극제 대상을 수상했던 작품이었거덩요. 전쟁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었는데 참 많이 웃고 많이 울었던 거 같습니다. 익산에선 그 때 극단 [토지]던가가 송 영의 작품 [황태자?]를 출품작으로 발표했던 걸로 알아요. 그런데 그닥 재미는 없었던 듯..히히.. 너무 오래되어서 제목이 좀... 황태자 모모모였던 거 같아요.

비로그인 2004-05-18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사실 희곡이란 쟝르에는 이상하게 손이 잘 가지 않아요. 쉽게 읽힐 것도 같은데 오히려 더 속도도 느려지고 그러던데요. 작년에 까뮈의 '계엄령'을 재밌게 읽긴 했지만 그런다고 희곡쪽으로 손이 가지진 않더라구요. 김태수님의 작품, 알겠어요. 읽어보구 리뷰 올릴게요.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메시지 2004-05-19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희곡에 관심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 희곡을 권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글이 너무 겉이야기만 해놓아서 막상 작품 안으로는 인도를 못하고 잇다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도 희곡에 대한 리뷰를 몇 편 올릴 계획인데 간단하게라도 작품의 내용에 대한 글도 담도록 해보겠습니다.
복돌님, 오래전 이야기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암튼 작년에 공주에서 열린 전국연극제에서도 전주의 "창작극회"가 전북 대표로 참가해서 "상봉"이라는 창작 작품으로 대통령상, 연출상, 연기상, 희곡상을 휩쓸었습니다. 북송 포로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공주까지 가서 봤는데 감동을 크게 먹어서 술 잔뜩먹고 잘 알지도 못하는 작가에게 전화해서 잘 봤다고 인사를 했죠. 한참 잠들어있을 시간에.... ㅋㅋㅋ

stella.K 2004-06-11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 크게 잡수시고 작가에게 한밤 중 전화를 거실 정도면 메시지님은 정말 연극을 사랑하시는 분이시군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도 작품 쓰면서 희곡 사서 읽기가 그렇게 안 되더라구요. 하지만 메시지님 추천하시는 작품은 믿음이 가요. 저도 이 책 찜했습니다.^^
 

어제 비로소 미학오디세이3을 다 읽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책을 읽고, 좋은 리뷰를 남기셨기에 쓸데없는 사족을 덧붙이는 것 같아 리뷰는 쓰지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읽는 책이 서양미술사입니다.

이 책은 어떤 시인이 희곡을 쓰겠다는 제게 꼭 읽어보라고 권해서 진즉에 사놓고는 그 두께와 무게에 눌려서 망설이고 있었죠. 600쪽이 넘는 책에대한 힘든 추억도 있었고 (600쪽이 넘는 책을 A4 한 장에 요약하라는 리포트를 몇 번 써 본 이후로...... 물론 공부는 엄청됩니다. 힘들어서 그렇지)

미술, 음악은 제가 학창 시절부터 피하고 싶은 과목이었습니다. 사실 요즘도 이 분야에 대해서는 피하고 싶어했습니다. (앗, 트라우마다!) 그런데 학교에서의 배움과는 달리 지금 접하는 미술과 음악은 점점 친숙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연극과 관련해서 필요한 분야이기에 정보를 얻을 목적으로 다가섰는데 조금씩 그 자체의 미에 빠지기 시작한거죠. (삐약삐약, 첫 봄나들이를 시작하는 병아리의 심정으로 이들 분야에 다가가고 있죠) 그래서 집어든 책이 서양미술사입니다. 읽는 속도나 양에 욕심부리지 않고 천천히 감상을 해 볼 계획입니다.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있으면 소개해주십시오. 당장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볼 계획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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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11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7개월간에 걸쳐 읽었숨돠.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를 2년 동안 읽었숨돠. [세계철학사1, 2, 3]권을 15년이 다 가도록 못 읽고 있슴돠. 크하하..개인적으로 [서양미술사]! 아주 빨리 읽은 검돠! 열띰히 보고, 그리고 읽으세욧!

메시지 2004-05-11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열띰히 일겠슴다. 끙끙~~~ 열띰~~~ 끙끙 ~~~열띰~~~ 무거운 책이라 힘도 좀 써야겠네요.ㅋㅋ

panda78 2004-05-15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술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명화를 보는 눈><명화로 읽는 성서>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르네상스의 초상화 또는 인간의 빛과 그늘><그레이트 아티스츠>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혹 기회되시면 한 번 보셔도 후회하진 않으실 듯. 재미도 있고 분량도 적당한 책들이라 금방 읽으실 수 있으실 거에요. ^^;;
 

후배의 결혼식이 있어서 순천에 다녀왔습니다. 순천에 가려면 여수행 기차인 전라선을 타야합니다. 전라선을 타야할 경우에는 그 여행의 목적과 상관없이  마음이 설레입니다. 창 밖의 풍경이 절경이거든요.

남원까지는 책을 보면서 갔습니다. 대체로 비슷비슷한 농촌 풍경에는 많이 익숙해진 터라 활자를 더듬느라 피곤해진 눈의 휴식을 위해 잠깐 처다보는 정도로도 충분하거든요.

그러나, 남원을 지나면서 전 책을 내려놓고 창 밖의 풍경으로 눈을 돌립니다. 지리산의 끝자락쯤이 될까싶은 푸른 산들이 짙은 안개를 품고 있는 평화로우면서도 장엄한 장면들이 계속 펼쳐집니다. 그러다 보면 기차는 긴 터널 몇 개를 치나 어느새 섬진강을 끼고 달립니다. 그 잔잔해 보이는, 크지도 넓지도 않은 편안한 섬진강의 흐름은 수수한 삶의 모습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다보면 기차는 강가에 새워진 괴목역을 지나 구례구역에 도착을 합니다. 求禮口. 예를 구하는 입구라고 풀이를 해야하나. 갑자기 옷매무새라도 잘 다듬어보게 하는 이름입니다. 산과 강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을 따라가는 전라선은 여수라는 바다에 이르러서야 마침표를 찍습니다. 순천에서 내려야 했기때문에 바다에 대한 그리움은 해소하지 못했지만 만족한 여행이었습니다.

전라선에 대한 몇 가지 특징을 소개합니다. (물론 저의 개인적 견해이며 꼭 전라선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

1. 섬진강의 풍경과 지리산 자락의 푸른 산을 볼 수 있습니다. 날씨에 따라서는 많은 안개를 만날 수 있습니다. 구름 속의 산책.

2. 맨 뒤 칸에 타면 자신이 타고가는 기차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기차가 산과 강을 피해가다보니 곡선이 많습니다. 기차가 둥근 곡선을 그리면서 달릴 때 창 밖으로 달려가는 기차의 앞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기차 안에서 내가 탄 기차가 달려가는 모습을 보는 그 느낌.

3. 유난히 긴 터널이 많습니다. 어두워짐과 밝음의 변화도 재미있습니다. 물론 개그프로에서처럼 기차 안이 몽땅 깜깜해지지는 않지만 긴 터널이 보여주는 창 밖의 긴 어둠은 산 속에 있다는 두려움과 신비감을 느끼게 해준답니다.

오래 전에는 일출을 보기 위해 문득 여수행 기차를 탄 적이 몇 번 있었죠. 그런데 단순히 여수만이 목적은 아니였던 것 같습니다. 현실에 매몰되어 살다가 오래간만에 탄 전라선때문에 기쁜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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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10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에 전라선을 타도 아늑하고 정겹고요, 지금 신록이 우거진 5월에 전라선을 타면 그 아름다운 절경에 마음을 뺏깁니다. 저도 늘 책을 읽으면서 출발하는데 고마 창밖 풍경 덕에 시선을 옮기게 되요. 창가에 기대 턱을 괴고 스쳐지나가는 나뭇잎 하나하나에서 미묘한 해방감과 설레임도 느끼게 되구요. 참 아름답고 정겨운 땅이라는 걸 새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지, 스쳐지나가는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이방인의 눈으로..물론, 풍경 속 안에는 담배 한 갑, 운동화 한 켤레, 조기 한 줄을 사려는 삶의 투쟁이 뜨겁겠지만..고속열차는 많은 우리의 것을 놓치게 할 거 같아 타지 않게 되더라고요. 엉덩이가 아프고 좀 지루하더라도 일반열차가 좋아요!

메시지 2004-05-10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님의 글을 보다가 제글에서 빠진 내용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기차가 남도지방에 가까와질수록 창 밖으로 밭에 놓여있는 무덤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동일한 공간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이죠. 제주도에서 밭사이에 자리잡은 무덤을 본 적이 있는데 남도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일생이 담겨있을 그 흙에 묻힌 그 분들의 삶이 세간의 주목을 끌지는 못했지만 아름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사실 그 안에 계신 분이 어떤 분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 외할머니의 무덤은 호남선을 타고가다보면 창 밖으로 보인답니다. 그래서 남다르죠.

비로그인 2004-05-10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라게요. 메시지님 야글 듣고 봉께 참말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구만요. 외할머님 무덤을 보실 때마다 애틋허시겄어요. 모진 고통속에서 뒤돌아보면 참으로 잔잔하게 흘렀을 듯 싶은 으른들의 삶일 거 같어요. 글고 봉께 저두 고향 밭머리에다 묻어달라고나 할까봐요. 사실 전 화장제도에 찬성하기 때문에 조카들한테 죽으면 꼭 화장시켜 달랬거덩요. 이미 남에게 넘어간 밭이지만 밭 근처로 강물이 흐르고 우거진 풀숲이 있는데 거그다 확 뿌려 달라고 해야지..아항, 알겠어요. 삶도 마찬가지지만 죽음이래두 미리미리 누울 자릴 준빌 해두어야겄구만요. 정직한 땅에 뿌려지는 긴데 그 땅에 부끄라븐 사람이 되선 안 될 거 같은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