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의 결혼식이 있어서 순천에 다녀왔습니다. 순천에 가려면 여수행 기차인 전라선을 타야합니다. 전라선을 타야할 경우에는 그 여행의 목적과 상관없이  마음이 설레입니다. 창 밖의 풍경이 절경이거든요.

남원까지는 책을 보면서 갔습니다. 대체로 비슷비슷한 농촌 풍경에는 많이 익숙해진 터라 활자를 더듬느라 피곤해진 눈의 휴식을 위해 잠깐 처다보는 정도로도 충분하거든요.

그러나, 남원을 지나면서 전 책을 내려놓고 창 밖의 풍경으로 눈을 돌립니다. 지리산의 끝자락쯤이 될까싶은 푸른 산들이 짙은 안개를 품고 있는 평화로우면서도 장엄한 장면들이 계속 펼쳐집니다. 그러다 보면 기차는 긴 터널 몇 개를 치나 어느새 섬진강을 끼고 달립니다. 그 잔잔해 보이는, 크지도 넓지도 않은 편안한 섬진강의 흐름은 수수한 삶의 모습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다보면 기차는 강가에 새워진 괴목역을 지나 구례구역에 도착을 합니다. 求禮口. 예를 구하는 입구라고 풀이를 해야하나. 갑자기 옷매무새라도 잘 다듬어보게 하는 이름입니다. 산과 강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을 따라가는 전라선은 여수라는 바다에 이르러서야 마침표를 찍습니다. 순천에서 내려야 했기때문에 바다에 대한 그리움은 해소하지 못했지만 만족한 여행이었습니다.

전라선에 대한 몇 가지 특징을 소개합니다. (물론 저의 개인적 견해이며 꼭 전라선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

1. 섬진강의 풍경과 지리산 자락의 푸른 산을 볼 수 있습니다. 날씨에 따라서는 많은 안개를 만날 수 있습니다. 구름 속의 산책.

2. 맨 뒤 칸에 타면 자신이 타고가는 기차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기차가 산과 강을 피해가다보니 곡선이 많습니다. 기차가 둥근 곡선을 그리면서 달릴 때 창 밖으로 달려가는 기차의 앞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기차 안에서 내가 탄 기차가 달려가는 모습을 보는 그 느낌.

3. 유난히 긴 터널이 많습니다. 어두워짐과 밝음의 변화도 재미있습니다. 물론 개그프로에서처럼 기차 안이 몽땅 깜깜해지지는 않지만 긴 터널이 보여주는 창 밖의 긴 어둠은 산 속에 있다는 두려움과 신비감을 느끼게 해준답니다.

오래 전에는 일출을 보기 위해 문득 여수행 기차를 탄 적이 몇 번 있었죠. 그런데 단순히 여수만이 목적은 아니였던 것 같습니다. 현실에 매몰되어 살다가 오래간만에 탄 전라선때문에 기쁜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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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10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에 전라선을 타도 아늑하고 정겹고요, 지금 신록이 우거진 5월에 전라선을 타면 그 아름다운 절경에 마음을 뺏깁니다. 저도 늘 책을 읽으면서 출발하는데 고마 창밖 풍경 덕에 시선을 옮기게 되요. 창가에 기대 턱을 괴고 스쳐지나가는 나뭇잎 하나하나에서 미묘한 해방감과 설레임도 느끼게 되구요. 참 아름답고 정겨운 땅이라는 걸 새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지, 스쳐지나가는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이방인의 눈으로..물론, 풍경 속 안에는 담배 한 갑, 운동화 한 켤레, 조기 한 줄을 사려는 삶의 투쟁이 뜨겁겠지만..고속열차는 많은 우리의 것을 놓치게 할 거 같아 타지 않게 되더라고요. 엉덩이가 아프고 좀 지루하더라도 일반열차가 좋아요!

메시지 2004-05-10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님의 글을 보다가 제글에서 빠진 내용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기차가 남도지방에 가까와질수록 창 밖으로 밭에 놓여있는 무덤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동일한 공간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이죠. 제주도에서 밭사이에 자리잡은 무덤을 본 적이 있는데 남도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일생이 담겨있을 그 흙에 묻힌 그 분들의 삶이 세간의 주목을 끌지는 못했지만 아름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사실 그 안에 계신 분이 어떤 분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 외할머니의 무덤은 호남선을 타고가다보면 창 밖으로 보인답니다. 그래서 남다르죠.

비로그인 2004-05-10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라게요. 메시지님 야글 듣고 봉께 참말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구만요. 외할머님 무덤을 보실 때마다 애틋허시겄어요. 모진 고통속에서 뒤돌아보면 참으로 잔잔하게 흘렀을 듯 싶은 으른들의 삶일 거 같어요. 글고 봉께 저두 고향 밭머리에다 묻어달라고나 할까봐요. 사실 전 화장제도에 찬성하기 때문에 조카들한테 죽으면 꼭 화장시켜 달랬거덩요. 이미 남에게 넘어간 밭이지만 밭 근처로 강물이 흐르고 우거진 풀숲이 있는데 거그다 확 뿌려 달라고 해야지..아항, 알겠어요. 삶도 마찬가지지만 죽음이래두 미리미리 누울 자릴 준빌 해두어야겄구만요. 정직한 땅에 뿌려지는 긴데 그 땅에 부끄라븐 사람이 되선 안 될 거 같은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