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찌기만 하고 빠지지 않을 때 읽는 책 - 나잇살, 만성피로, 통증 잡는 최고의 체질 개선법
기무라 요코.니시자와 미카 지음, 장은주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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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을 때 (내게) 인상깊거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구절을 표기하며 읽고, 다 읽고 나면 표기한 부분을 일일이 입력해서 책 내용을 정리한다. 그 정리가 끝나고 나야 리뷰를 쓰는데,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꼭 하는 작업이다. 이런 습관을 들이고나니 책 내용을 조금도 놓치기 싶지 않아서 옮겨적을 양이 꽤 늘어나는 편이다. 이렇게 한다고 이 내용들을 모두 습득하는 것도 아니지만, 왠지 루틴이 되어버려서 이렇게 해야만 책 한권을 제대로 읽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 책도 보기에는 참 가볍고 쉬워 보였다. 실제로 그렇기도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아는 내용이더라도 실행을 잘 못하다보니 가볍게 넘길 수가 없었다. 특히 다른 다이어트 관련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은 한방에서의 관점으로 쓰여졌다. 소비하는 양(칼로리) 이상으로 먹었다고 살이 찐다는 간단한 논리가 아니라, 흔히 말해 진짜 '나잇살'이라고 부르는 살이 찌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 것 같다. 한방도 나름대로의 원칙과 효능 등이 있겠지만 '질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선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병이 생기기 전 몸(몸의 에너지,氣)을 다스리는 부분에서는 한방이 꽤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책 내용을 정리하며 중요하다고 표기한 부분을 다시 읽어보니 딱 저 한 문장이면 책의 핵심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몸의 오장육부를 잘 다스려야 나잇살도 물리칠 수 있고, 건강한 몸을 만드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개인적으로 씁쓸함을 달랠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지금, 이미 나는 오장 중 4개의 장이 망가져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병으로 인해 섭취 제한에 걸린 음식들도 많고 말이다. 책에선 좋다고 추천하지만 나는 먹을 수도 없는 상태...) 비단 살을 빼지 못할거라 생각해서가 아니라, 애초부터 건강한 몸, 최소한 보통의 몸으로 태어나지 못했다는 게 조금 슬퍼졌다.  


신장은 성장과 발육을 촉진하는 한편 노화와 여성 호르몬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오장 중의 하나다. 나이가 들어 신장 기능이 약해지면 하복부와 엉덩이, 허벅지 등 하반신을 중심으로 지방이 붙는다.

검정콩이나 검정깨같은 블랙 푸드, 꼬시래기와 다시마, 미역, 톳 같은 해조류의 적극적인 섭취는 신장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수비 방법이다.

비장과 간의 약화로 더 살찌는 몸이 된다.

35세부터는 신장(내분비), 비장(위), 간(자율신경)을 돌보는 것이 평생 다이어트가 필요 없는 몸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지방을 전혀 섭취하지 않으면 오히려 살이 찌기 쉽고, 잘 빠지지도 않는다.

오미의 관점에서 볼 때, 신맛이 단맛을 억제해 주기 때문이다.
신맛 식품으로는 매실 절임이나 식초, 자몽, 크랜베리, 자두, 버찌, 딸기, 리치 등이 대표적이다.

신장은 다리와 허리 등 하반신의 기능과 연관이 있다. 따라서 근육 트레이닝인 스쿼트 등으로 큰 근육이 있는 하반신을 단련하는 것이 신장 관리에 효과적이다.
또한 큰 근육은 작은 근육보다 소모하는 에너지의 양이 크고 에너지를 생산하는 힘도 강해서 큰 근육을 단련하면 지방을 효율적으로 연소 분해할 수 있다.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데 계속해서 위로 음식을 보내면 위가 쉬지 않고 작용하여 저절로 소화 흡수 능력이 떨어진다.
우선 매일 정해진 시간에만 식사하여(간식 아님) 배가 비어 있는 감각을 느껴 보기 바란다.

먹는 양이 많으면 잠자는 동안 위가 쉬지 못하고, 특히 단것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오히려 비장에 무리가 갈뿐더러 신장의 작용을 억제하여 신기가 줄어들므로 나잇살 대책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

* 소비보다 공급 에너지가 큰 유형 = 식독 체질

- 저녁은 작은 밥공기에 잡곡밥으로, ... 적어도 20~30회 씹어 포만감이 들게 한다.
- 채 썬 양배추나 초절임 등 섬유질이 풍부하고 포만감이 드는 음식을 맨 먼저 먹는다.
- 음식의 20%는 남긴다. ... 이런 식습관을 유지하여 배가 80%만 채워지는 감각을 몸에 익힌다.

* 혈액순환이 안 되어 노폐물이 쌓이는 유형 = 어혈 체질

- 순환이 잘되지 않으면 살찔 수밖에 없다.
근육 트레이닝으로 근육을 늘리는 것도 냉증 개선으로 이어져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다. ... 특히 여성은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근육량이 적어 몸이 차가워지기 쉬우므로 근육량을 늘려 몸을 따뜻이 해 대사가 원활하게 해 줘야 한다. ... 꽉 끼는 속옷을 입는 것은 금물이다.
- 단백질이 몸을 따뜻하게 한다.

* 몸속 물의 흐름이 나쁜 유형 = 수독 체질

- 잘 붓는 사람, 쉽게 피로해지는 사람은 이 유형 ... 수분을 섭취하는 다이어트는 절대 맞지 않는 체질이다. 살을 빼고 싶다면 오히려 위를 튼튼하게 하여 체내에서 남은 수분을 밖으로 배출할 필요가 있다. 체내에 수분이 남아 정체되면 몸이 차가워지기 쉬우므로 이 유형의 사람은 냉증을 앓는 경우가 흔하다. ... 물살 유형의 사람은 특히 지방을 주의해야 한다.
- 지방이 적은 고기를 소화하기 쉽게 조리할 것
수독 체질인 사람은 근육을 늘리려고 격렬한 운동에 몰두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 다음날 피로가 남지 않을 만큼의 운동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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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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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장류진 님의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작품을 통해 그녀를 안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분명하고도 확실한 느낌이 들었다. 이토록 현대적인 소설이 있을 수 있을까. 처음 서점에서 책을 후루룩 넘겨봤을 때, 이더리움이라는 단어와 그런 투자를 하는 듯한 분위기가 짐작되는 부분을 마주쳤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이럴 수 있다고? 소설이 이런 얘기를 담지 못할 거란 편견을 버려, 라며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 뒤로 많은 시간이 흘러 이 책을 읽게 되었지만, 재밌어서 하루도 안되서 금방 다 읽어버렸다. 책이 중반을 넘어갈 때는 이제 꺼질 일만 남았나 하며 조마조마했는데, 확실히 뭔가 다르긴 달랐다. 그렇지, 맞아, 요즘에는 이런 소설이 맞고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이 묻혀주신 설탕 맛은 그런 투자를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에게조차 기분 좋게, 작가님이 원하신대로, 좋은 소설이었다고 느낄만큼 충분히 맛있었다.  
 요란스러운 디자인과 다소 이상한 색채감이 맞물린 책의 표지 디자인도 책을 덮고 나니 모두 납득이 되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낌과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생각하게 하고, 동시에 나라면 어떨까 등의 상상의 여지를 풍부하게 남겨줘서 더 좋은 소설이었던 것 같다.

 

사람이 그렇게 "네네"만 반복하며 살다가는 뜨거운 증기를 가득 머금은 밀폐용기처럼 위험해진다는 것을, 그래서 열기가 비집고 나갈 숨구멍 같은 게 필요하다는 것을, 지난 3년 11개월간의 "네네" 끝에 스스로 깨우쳤다.

그냥, 인생 자체가 그랬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해가 지날수록, 한살 더 먹을수록 늘 전보다는 조금 나았고 또 동시에 조금 별로였다. 마치 서투른 박음질 같았다. 전진과 뒷걸음질을 반복했지만 그나마 앞으로 나아갈 땐 한땀, 뒤로 돌아갈 땐 반땀이어서 그래도 제자리걸음만은 아닌 그런 느낌으로. 그렇게 아주 조금씩..... 천천히..... 서서히..... 차츰차츰..... 매일매일..... 하루하루..... 그뿐이었다. 대체 무엇을 감히 더 바랄 수 있을까?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가 없던, 아니 그게 무엇인지조차 모르던 나날들.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라던 시간들. 그런 게 너무 당연해서 서글프지도 않고 억울하지도 않고 그저 일상이었던 매일과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묵고 묵은 얼룩 같은 초라한 마음들의 모양을.

"뭐랄까, 사실 그건 주문 같은 거였어. 그냥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될 거라고 믿어야만 했어. 잘되지 않을 수 있고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도 한쪽으로는 늘 날카롭게 의식하고 있어. 그래서 문득문득, 찌르듯 괴로웠어."

언제나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혹은 나 자신의 사소한 실수에도 순식간에 곤두박질쳐질 것만 같았다. 누가 툭 건드리거나 빗물에 미끄러져서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그길로 그대로 추락해버릴 것만 같았다.

두려움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깎여나가 떨어진 돌가루만큼, 딱 그만큼만 물러설 뿐이었다. 깎이면 깎이는 대로. 그때그때 조금씩 뒤로 비켜서면서. 추락의 시기를 기약 없이 유예하면서.

"돈도, 자기 좋다는 사람한테 가는 거야."

생각해보면 회사라는 공간이 싫은 건 사무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들 탓이었다. 내게 일을 주거나, 나를 못살게 굴거나,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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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전하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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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쌓인 책들이 많아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간 지금에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번에 수상한 작품들은 작년 수상작들보다 더 친밀하고 읽기 재밌는 작품들로 구성된 것 같다. 평론가들 사이에서 작품을 해석했을 때 훌륭한 작품보다 독자들에게 조금 더 다가가는 작품이 되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기도 해서 책을 읽을 때 꽤 즐거웠었다. 작품성, 작가의 이념과 말하고자 하는 말, 또 사회적 화두나 젠더 갈등이나 이슈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들에 너무 몰입되서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덜하게 해선 안될 테니까. 특히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다보니 매년 갈수록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도 있었고, 그래서 읽기마저 거북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문제들조차 소설의 매력 속에 녹아져있어 읽고 받아들이기가 훨씬 수월했다.

 내가 누군가의 부모는 아니지만, 또래 친구들을 보면서 '아이를 기르는 일'에 대해 생각할 때가 많다. 그렇게 감정이입이 되서 그런지 (그게 아니더라도 제일 재밌던 작품이기도 하지만)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이 아주 인상깊었다. 이를 테면 뒷통수를 아주 제대로 맞아서 슬픈 그런 작품이었다고나 할까. ;) 그 외에도 전하영 님의 작품은 역시 대상을 수상할 만하다고 느꼈고, 각각의 작품들이 모두 의미 있고 재미있었다. 매년 이렇게 좋은 작품들과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게 느껴진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상대를 찾는 일이 정말 드물어졌다.

"어린 사람들이 사랑이 많죠. 거의 심장을 내놓고 다니는 수준이랄까."

나의 우울과 상관없이 봄날은 아름답기만 했다. ... 항상 돌아올 것만 같은 이 계절들. 앞으로 몇 번이나 볼까. 운이 좋으면 삼사십 번쯤 더? 운이 안 좋으면...... 그건 아무도 모르지. 모르는 일이야. 아무것도. 정말. 모르는 일이지 않나? 인생이란 게 흐흐.

... 내 인생을 망치고 싶었다. 아무렇게나 내키는 대로 마음대로 살다가 서른 살 무렵에 죽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네가 모르는 게 뭔지 알아? 원하는 게 있으면 노력해야 돼. 사랑받으려면 정말 죽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연수와 다닐 때면 ‘다른 한 여자‘의 역할은 항상 내 차지였다. 사랑에 빠지는 여자와 혼자 남는 여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여자가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두 친구 중 더 아름다운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내내 분투했다. 연인의 탄생에는 항상 목격자가 있는 법이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야기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목격자 역을 맡은 여자에 대해 생각했다. 삭제된 분량의 삶. 나는 지난 삶의 대부분을 목격자로 살아왔으므로 남은 여자의 삶에 대해 항상 궁금해해왔다. ... 여자 주인공의 특별함을 돋보이게끔 하기 위해 평범함의 기준처럼 제시되는 삶.

우리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각자의 굴욕을 꿋꿋이 견디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요즘엔 집에 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옆에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거. 좀 망망대해에 혼자 떨어진 느낌인데, 그게 또 너무 행복한 거야."

(......) 여자는 두 종류라고 말하곤 했다. 매사에 분명한 여자와 미스터리를 남겨두는 여자. 그리고 이는 남자가 여자를 볼 때 가장 먼저 감지하는 것이자, 가장 먼저 그를 매료시키거나 그렇지 않게 하는 요소였다.

"그래도 평생 혼자 사는 건 너무 외로운 일이야. 마음 맞는 친구라도 찾아서 같이 살아."

"... 자식들에 대해 제일 모르는 사람이 부모라잖아?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원래 가족들은 서로서로 잘 몰라. 너무 잘 알아도 이상하지."

진심이라는 건 형식에 뒤따르기도 하는 법이니까.

가족들을 사랑하는 건 이미 주어진 일 같은 거였는데, 그 사랑을 이어가는 일, 계속해서 사랑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무조건적인 사랑 같은 건 없으니까.

우리는 매일 다른 사람이 되고 매일 사랑하는 일을 한다.

뭐든 남들보다 천천히 한다고 생각하면 돼. 아무 문제 없어요. 밥 잘 먹으면 그걸로 된 거야. 걱정할 거 없어.

좋은 일인지 아닌지도 살아봐야 알지. 좋은지 나쁜지 뭐든 당장 알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돈을 벌 때, 나는 종종 내 노동력을 파는 게 아니라 내 시간을 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글을 쓸 수도 있지만,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네가 하고 싶은 말을 찾아갈 수도 있는 거야.

각자의 영역을 지키면서도 서로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더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더 먼 길을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 전체를 사랑하는 것이지, 그 사람이 이렇게 돼주었으면 하는 것은 아니야." - 안나 카레니나 -

어딘가에 있을 나의 반쪽, 너는 나를 사랑해줄까. - 미네쿠라 카즈야, 『최유기』 중 오공의 대사

어쨌거나 어떤 것들은 또 여전했다. 그러나 하나의 물음이나 대답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게 또한 세상인 까닭에 어떤 것은 그토록 변하지 않아서 안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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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산책 말들의 흐름 4
한정원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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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산책.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더 좋았다.  
 시간의 흐름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출판중인 '말들의 흐름' 책을 두 번째로 읽었다. 첫번째 책은 유진목 님의 『산책과 연애』. 그것도 모두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들이었고, 유진목 시인도 좋아해서 제일 먼저 읽은 것이다. 『시와 산책』 저자인 한정원 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앞으로 이름을 기억하고 알아보게 될 것이다. 이 두 책 말고도 시리즈가 더 많이 나왔는데, 다음으로 뭘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커피와 담배』? 아니면 『연애와 술』을 읽어볼까?
 책을 읽으며 매번 느끼는 건 작가들이 자신의 글을 쓰는 것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글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었다. 내겐 책 취향이란 게 너무 뚜렷하고 좁은 영역으로 특징지어진 반면, 이 분들은 어찌나 이렇게 다양하고 폭넓게 많이 읽으셔서 내적 그릇을 키우시는지 매번 감탄을 하고야 만다. 진정한 산책가인 한정원 님도 '시'와 '산책'이라는 책 제목에 맞춰, 자신이 산책하는 일에 대해 쓰면서 또 내가 잘 알 수 없는 시인들이 쓴 시들도 짧게 옮겨와 다양한 시의 한 구절들을 느껴볼 수 있게 해주었다.
 오늘 읽은 책 두 권 모두 베스트 셀러다. 그런데 '시'는 다소 어렵다고 느끼거나 공감을 덜 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이 책의 평점은 7.5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 책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소수라는 뜻이겠지. 그래도 내겐 좋은 책이었다. 나는 8.2 정도의 점수를 주고 싶다.   


사랑하는 것을 잃었을 때, 사람의 마음은 가장 커진다. 너무 커서 거기에는 바다도 있고 벼랑도 있고 낮과 밤이 동시에 있다.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아무데도 아니라고 여기게 된다. 거대해서 오히려 하찮아진다.

위로의 말은 아무리 공들여 건네도 섣부르게만 느껴진다. 위로의 한계이자 말의 한계일 것이다.

내가 보는 것이 결국 나의 내면을 만든다. 내 몸, 내 걸음걸이, 내 눈빛을 빚는다(외면이란 사실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인간은 내면과 내면과 내면이 파문처럼 퍼지는 형상이고, 가장 바깥에 있는 내면이 외면이 되는 것일 뿐. 외모에 관한 칭찬이 곧잘 허무해지며 진실로 칭찬이 될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려면 이렇게. 네 귓바퀴는 아주 작은 소리도 담을 줄 아는구나, 네 눈빛은 나를 되비추는구나, 네 걸음은 벌레를 놀라게 하지 않을 만큼 사뿐하구나).

산책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 지혜로워지거나 선량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람‘은 시의 한 행에 다음 행이 입혀지는 것과 같다. 보이는 거리는 좁지만, 보이지 않는 거리는 우주만큼 멀 수 있다. ‘나‘라는 장시(長詩)는 나조차도 미리 짐작할 수 없는 행들을 붙이며 느리게 지어진다.

행복은 그렇게 빤하고 획일적이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고 설명하기도 어려우며 저마다 손금처럼 달라야 한다. 행복을 말하는 것은 서로에게 손바닥을 보여주는 일처럼 은밀해야 한다.

사랑은 단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지 영혼의 상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면 불행이 닥치는 순간 절망에 빠지게 된다. -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이것은 사랑에 관한 기록이지만, 나는 ‘사랑‘의 자리에 ‘행복‘을 넣어 다시 읽는다. "행복은 단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지 영혼의 상태가 아니다."
행복이 내가 가져야 하는 영혼의 상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토록 자주 절망한다.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 피동적으로 얻어지고 잃는 게 행불행이라고 규정하고 말면, 영영 그 얽매임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가지지 못한 것이 많고 훼손되기만 했다고 여겨지는 생에서도, 노래를 부르기로 선택하면 그 가슴에는 노래가 산다.

그러니 역시 ‘행복‘이라는 낱말은 없어도 될 것 같다. 나의 최선과 당신의 최선이 마주하면, 나의 최선과 나의 최선이 마주하면, 우리는 더는 ‘행복‘에 기댈 필요가 없다.
에른스트 얀들의 시에 "낱말들이 네게 행하는 것이 아닌 네가 낱말에 행하는 것, 그것이 무엇인가 된다"는 구절이 있다. ‘행복‘이 우리에게 가하는 영향력에 휘둘리는 대신, 우리가 ‘행복‘에 무언가를 행해야 한다.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그러나 뜨거운 가슴에 들뜨는 존재.
그저 하는 일이라곤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 세사르 바예호,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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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소준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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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다. 내게 사회과학책은 어려워서 접근금지 영역이었는데, 이 책은 왠지 끌렸다. 내가 '가난한' 편에 속하기 때문이었을까? 이 책은 넓은 영역의 문제가 아닌, 딱 한 가지, '재활용품 수집하는 노인'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면서 깊이 와닿아 남일이 아닌 것처럼, 그저 책을 읽는 게 아닌 것처럼 함께 생각하며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을수록 작가가 지적하는 현실의 문제점도 명확하게 보였고, 작가가 하고픈 말이 뭔지도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이 문제를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사람이 셋 이상만 모여도 그들의 의견이나 취향을 통일시키는 게 어려운데,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을 한데 '노인'이라고 묶어서 그들이 겪는 문제를 타개할 방안을 공통적으로 마련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떤 위대한 정책가가 와서 최선의 해결책을 내놓아도, 그것을 다른 입장에서 보면 또 다른 문제가 보일 테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진 않지만, 정책을 펼치는 사람들은 사실 머리가 상당히 비상한 인물들인 것이다. 일 제대로 안하고 세금만 축낸다고 욕할 때도 많지만, 그 와중에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자들은 얼마나 머리가 아플지도 짐작이 간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간과했던 걸 깨달았다. 그동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국민연금, 노령(기초)연금 등으로 사회보장제도의 혜택도 많이 보시는 것 같단 생각이 있었는데, 실제로 지금 '노인'이 되셔서 '폐지를 수집하는' 일 등으로 생계를 연명하시는 분들은 그런 혜택이 생기기 전에 나이를 드셨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건 조금 충격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사회의 안전망에도 속하지 못하고 혜택도 받지 못해서 매번 끼니 걱정을 하며 어렵게 살아가시는 분들도 계시다는 거니까... 새삼 마음이 다시 아프면서, 나도 세상이 조금씩 더 나아져가도록 바른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환경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노인분들에 대한 기부활동도 하도록 작은 것에서부터 신경쓰려고 한다. (책에서는 노인에 대한 기부활동도 실상은 자신을 위한 거라고 그리 긍정적으로 보진 않았지만 말이다.)          


현재 가장 문제인 지점은 노인계층의 가난이다. ... 2017년을 기준으로, OECD 가입 국가 가운데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7.4%로, 미국의 17.8% 다음으로 높다. 게다가 65세 이상 노인만을 살펴볼 때,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43.8%였다. OECD 가입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여기에 65~69세의 고용률에서 한국(45.5%)은 아이슬란드(52.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고, 70~74세의 고용률은 33%로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가장 높았다. 즉 한국의 노인은 일을 많이 하는데도 빈곤하다는 뜻이며, 이는 현재 노인들에게 노후 생활의 경제적 기반이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노인이 하는 노동의 대부분은 질 낮은 일자리에서 이루어지며, 따라서 노인의 고용률이 상승한다 해도 빈곤율이 낮아지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적었지만, 의문이 든다. 노인이 꼭 일을 해야 할까? 정부는 일정 이상의 나이가 된 사람들을 ‘노인‘이라 부르며,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은퇴‘를 하게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노인‘의 ‘고용률‘을 계산한다. 이건 모순된 상황이 아닐까? 게다가 노인들의 가난 문제에 대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식을 택한다. ‘은퇴‘를 하게 해놓고, 질 낮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답은 은퇴를 재고하자는 것과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사회보장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으로 나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가난한 사람, 특히 가난한 노인에 대한 이야기는 ‘통계‘나 ‘가난한 장면‘을 통해 이루어지는 폭로와 경고의 형태가 많다. 더구나 ‘재활용품 수집 노인‘이란 가난의 표상으로 쓰이곤 한다. 노인의 동년배들은 연민을 표하고, 이보다 젊은 세대는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실패의 전형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사회적 대처는 미미하다. ... 정작 필요한 건, 노인의 생활을 개선할 실질적인 방편이다.

윤민석(2015)의 연구에 따르면, 서울에서 ‘피고용‘ 노인은 (대개) "근로조건과 고용기간에 대한 명확한 계약 없이 불투명하게 일을 시작하는 경향이 있으며, 근로시간은 길고, 임금은 낮으며, 여러 가지 차별을 겪는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고용불안을 겪으면서" 일을 한다.

사실 착취의 문제는 최초로 상품을 생산한 제조업자에게서 시작된다. 즉, 상품과 함께 포장재를 생산한 제조업자와 소비자에 포장재를 처리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데, 이를 노인들이 전용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노인들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틈을 타 재활용품을 낚아채는 것이다. 즉, "기술적 진보와 기업조직의 변화, (소비자의)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을 사용하는 습관, (불완전한) 도시 당국의 쓰레기 수거 시스템", 그리고 생산자가 생산품의 처리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상황이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을 존재하게 한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가난한 노인들에 대해 ‘열심히 살지 않은 젊은 날의 결과‘라거나 ‘부양해줄 자녀와의 어떤 문제‘가 있어 저렇게 사는 사람이라고 단언하고 만다. "역시 가난한 노인들은 가난한 이유가 있어."라며 혀를 차기도 한다.
그렇지만 노인들의 삶이 순전히 개인의 잘못 때문에 생겨나는 걸까? 가난하고 싶어 가난해진 사람은 없다.

비경제활동인구로 여겨지는 65세 이상 노인들을 다시 정부의 재정으로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은 노인들의 삶을 ‘매년 초‘에 열리는 일용직 채용시장에 밀어 넣는 일로, 그들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정책이다. 더구나 우리는 노인들이 일하지 않더라도, 사회서 보호받을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재활용품 수집 노인의 일을 다른 것으로 전환시킬 방법은 사실상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선해야 할 일이란 노인들이 일을 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일이며, 그를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 사회의 합의를 끌어낼 필요가 있다.

그녀는 늘 열심히 살았다. 풍족했던 젊은 시절엔 자녀들을 잘 키워보겠다며, 나이 든 지금엔 자신을 스스로 건사해보겠다며 말이다. 그녀의 노력은 언제 끝나게 되는 걸까. 이 질문 앞에 설 때마다 아득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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