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전하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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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쌓인 책들이 많아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간 지금에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번에 수상한 작품들은 작년 수상작들보다 더 친밀하고 읽기 재밌는 작품들로 구성된 것 같다. 평론가들 사이에서 작품을 해석했을 때 훌륭한 작품보다 독자들에게 조금 더 다가가는 작품이 되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기도 해서 책을 읽을 때 꽤 즐거웠었다. 작품성, 작가의 이념과 말하고자 하는 말, 또 사회적 화두나 젠더 갈등이나 이슈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들에 너무 몰입되서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덜하게 해선 안될 테니까. 특히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다보니 매년 갈수록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도 있었고, 그래서 읽기마저 거북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문제들조차 소설의 매력 속에 녹아져있어 읽고 받아들이기가 훨씬 수월했다.

 내가 누군가의 부모는 아니지만, 또래 친구들을 보면서 '아이를 기르는 일'에 대해 생각할 때가 많다. 그렇게 감정이입이 되서 그런지 (그게 아니더라도 제일 재밌던 작품이기도 하지만)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이 아주 인상깊었다. 이를 테면 뒷통수를 아주 제대로 맞아서 슬픈 그런 작품이었다고나 할까. ;) 그 외에도 전하영 님의 작품은 역시 대상을 수상할 만하다고 느꼈고, 각각의 작품들이 모두 의미 있고 재미있었다. 매년 이렇게 좋은 작품들과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게 느껴진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상대를 찾는 일이 정말 드물어졌다.

"어린 사람들이 사랑이 많죠. 거의 심장을 내놓고 다니는 수준이랄까."

나의 우울과 상관없이 봄날은 아름답기만 했다. ... 항상 돌아올 것만 같은 이 계절들. 앞으로 몇 번이나 볼까. 운이 좋으면 삼사십 번쯤 더? 운이 안 좋으면...... 그건 아무도 모르지. 모르는 일이야. 아무것도. 정말. 모르는 일이지 않나? 인생이란 게 흐흐.

... 내 인생을 망치고 싶었다. 아무렇게나 내키는 대로 마음대로 살다가 서른 살 무렵에 죽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네가 모르는 게 뭔지 알아? 원하는 게 있으면 노력해야 돼. 사랑받으려면 정말 죽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연수와 다닐 때면 ‘다른 한 여자‘의 역할은 항상 내 차지였다. 사랑에 빠지는 여자와 혼자 남는 여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여자가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두 친구 중 더 아름다운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내내 분투했다. 연인의 탄생에는 항상 목격자가 있는 법이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야기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목격자 역을 맡은 여자에 대해 생각했다. 삭제된 분량의 삶. 나는 지난 삶의 대부분을 목격자로 살아왔으므로 남은 여자의 삶에 대해 항상 궁금해해왔다. ... 여자 주인공의 특별함을 돋보이게끔 하기 위해 평범함의 기준처럼 제시되는 삶.

우리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각자의 굴욕을 꿋꿋이 견디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요즘엔 집에 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옆에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거. 좀 망망대해에 혼자 떨어진 느낌인데, 그게 또 너무 행복한 거야."

(......) 여자는 두 종류라고 말하곤 했다. 매사에 분명한 여자와 미스터리를 남겨두는 여자. 그리고 이는 남자가 여자를 볼 때 가장 먼저 감지하는 것이자, 가장 먼저 그를 매료시키거나 그렇지 않게 하는 요소였다.

"그래도 평생 혼자 사는 건 너무 외로운 일이야. 마음 맞는 친구라도 찾아서 같이 살아."

"... 자식들에 대해 제일 모르는 사람이 부모라잖아?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원래 가족들은 서로서로 잘 몰라. 너무 잘 알아도 이상하지."

진심이라는 건 형식에 뒤따르기도 하는 법이니까.

가족들을 사랑하는 건 이미 주어진 일 같은 거였는데, 그 사랑을 이어가는 일, 계속해서 사랑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무조건적인 사랑 같은 건 없으니까.

우리는 매일 다른 사람이 되고 매일 사랑하는 일을 한다.

뭐든 남들보다 천천히 한다고 생각하면 돼. 아무 문제 없어요. 밥 잘 먹으면 그걸로 된 거야. 걱정할 거 없어.

좋은 일인지 아닌지도 살아봐야 알지. 좋은지 나쁜지 뭐든 당장 알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돈을 벌 때, 나는 종종 내 노동력을 파는 게 아니라 내 시간을 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글을 쓸 수도 있지만,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네가 하고 싶은 말을 찾아갈 수도 있는 거야.

각자의 영역을 지키면서도 서로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더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더 먼 길을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 전체를 사랑하는 것이지, 그 사람이 이렇게 돼주었으면 하는 것은 아니야." - 안나 카레니나 -

어딘가에 있을 나의 반쪽, 너는 나를 사랑해줄까. - 미네쿠라 카즈야, 『최유기』 중 오공의 대사

어쨌거나 어떤 것들은 또 여전했다. 그러나 하나의 물음이나 대답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게 또한 세상인 까닭에 어떤 것은 그토록 변하지 않아서 안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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