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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고발 - 착한 남자, 안전한 결혼, 나쁜 가부장제
사월날씨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평점 :
이 책은 박제해야 한다. 우연히 알게 되서 읽게 됐는데, 200 페이지가 안되는 이 작고 얇은 책이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모르는 내용이 아니라 너무 잘 아는 내용을, 섬세한 언어들로 미세한 틈바구니에 끼일 수 있는 사소한 문제들까지 잘 표현해주신 것 같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고, 옮기고 싶은 구절을 다 적을 수도 없었다. 이 책이 전하는 내용을 전달받으려면 요약할 것도 없이 이 책 한 권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여자쪽에 치우친 의견 아닌가 하며 이 책에서 하는 말에 이의가 있는 남자가 있다면 누가 내게 납득이 가도록 설명을 해준다면 좋겠다. 감정적으로 화가 난다거나 단순히 남자에게 불공평하다는 식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옳고 그름에 대해 피력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길 바랄 뿐이다.
페미니스트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도 모두 페미니스트라고 말한다면 나는 페미니스트가 맞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달고 여성에 대하여 부르짖기에는 나조차 가부장제에 익숙한 사고를 하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입밖에 내는 순간 온간 나쁜 말들로 부정당하기 쉬운 시대가 되었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바뀌어가는 방향이 맞는 것 같은데,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 그런 의미에서도 논리적인 반대 의견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시부모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은 며느리에게서 나온 걸로 쉽게 의심받는다. 근거는 없다.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자꾸만 허공의 며느리를 노려본다. 아들이 그러한 결정을 했을 리가 없다고 믿는다. ‘며느리는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들이 지금 이상한 소리를 하는 이유는 그 뒤에 숨어 있을 며느리 탓이다. 조종당하는 아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시부모는 당신들의 아들을 스스로 허수아비 취급하는 게 아무렇지 않은 것 같다.
작가 박완서는 산문집 『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 에서 탁월한 비유를 들어 이러한 여성의 처지를 설명한다. 즉, 좋은 주인을 만나 사람 대접받는 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단 한명이라도 종이라는 이유로 박해받는 게 정당한 사회라면 아무리 나머지 종들이 주인과 겸상을 하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사람 대접이 아니라 특혜를 받고 있을 뿐이며, 특혜란 권리가 아니기에 언제든 빼앗겨도 항의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팔자 좋은 여자도 팔자 사나운 여자의 고통에 동참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남자가 겉보기에 효자 노릇을 하는데 알고 보면 단지 갈등을 만들기 싫어서, 또는 갈등을 대면하고 처리해야 할 자신의 임무가 피곤하고 번거로워서 아내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 부모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자기의 편의가 목적인 비겁함. 부모의 안녕에 전보다 큰 관심이 생겼다기보다 부모를 설득하거나 이해시키기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조금도 쓰지 않은 채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 이것이 남편의 효였다.
남편의 효가 게으름과 비겁함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게 되자, 가부장제 안에서 ‘남자가 효자라서 아내를 힘들게 한다‘는 말의 맥락도 똑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남자가 효자라서 아내를 힘들게 한다는 것은 남편이 부모와 아내 사이를 조율할 의지가 없음을 뜻한다. 며느리로서 부여받은 부당한 요구들에 대해 부당하다는 인식이 희박하며 설령 있더라도 본인이 부모와 논쟁하고 설득할 생각까지는 없다. ‘남자가 효자라서‘란 부모에게는 착한 아들인 척, 아내에게는 효자인 것처럼 굴지만 실상 자신의 원가족과 새로운 가정을 위해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이기심이 본질이며, ‘아내를 힘들게 한다‘란 그에 따른 책임 전가와 며느리의 대리 효도를 의미한다. 이것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통용되는 효의 실체인 것이다.
이 사회는 서툴다는 이유로 남성들에게 돌봄노동의 책임을 부여하지 않으려 한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면 생기는 일‘이라며 아이를 방치하거나 학대하는 등 적절한 돌봄을 제공하지 않는 남성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전시한다. 이분법적으로 한쪽 성별은 단순하고 무심하게, 한쪽은 섬세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도록 타고난 게 아니다. 사회적으로 무심함을 용인받는 성별을 정해놓은 것뿐이다.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것도 권력이다. 남성은 무심해도 되는 특권을 가졌다. 남편이 나의 생활 방식이나 필요에 무심한 반면, 내가 남편의 사소한 호오까지 관찰하고 인지하는 것은 철저한 사회화와 학습의 결과이다.
"집안일은 여자 몫이지." 이렇게 노골적인 말은 이제 누구도 하지 않는다. 대신 상대에 따라 다르게 묻는다. 여자에게는 "남편이 집안일 잘 도와줘?"라고, 남자에게는 "와이프가 아침밥 차려줘?"라고. 혼자 사는 남자 방이 지저분하거나 냉동실에 인스턴트 식품이 가득한 걸 보고 사람들은 어서 장가가야겠다는 농담을 던진다. 반면 여자가 비슷한 농담을 듣는 순간은 요리를 좋아하거나 집을 잘 꾸미거나 과일을 능숙하게 깎을 때다.
여성은 개인적 야망이나 환경과 관계없이 언제든 일을 그만둘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퇴사자 취급을 받는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면 임시로, 재미로, 자아실현을 위해, 결혼할 때 직업이 있는 게 아무래도 좋아서 일하는 게 되고, 결혼한 상태라면 역시나 임시로, 가정의 추가 수입을 위해, 아이들의 간식비와 학원비에 보태려고, 용돈벌이로, 조금 더 악의적으로는 일 욕심이 많아서, 이기적이라서 일하는 게 된다. (가사, 돌봄, 육아노동을 해야 하는데 그것에 온 에너지를 쏟지 않고 임금노동을 하니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본분이 아니기에 여성의 일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게 된다.)
‘여자에게 좋은 직업‘은 정시퇴근이나 육아휴직이 가능해서 가사와 양육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고, 정년이 보장되어서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지만 그렇다고 너무 많은 돈을 벌어 남편을 기죽이지도 않는 직업을 말한다. 다시 말해 ‘여자에게 좋은‘ 게 아니라, ‘여자에게 돌봄노동과 임금노동을 이중으로 시키기에 좋은‘ 직업이 정확한 정의인 것이다.
여자로 산다는 건 어떤 행동을 해도 이기적이라는 딱지를 피할 수 없는 것만 같다. 여성은 아이를 낳고 커리어를 지속해도 이기적이고, 그렇다고 아이를 낳지 않고 커리어에 집중해도 이기적이며, 전업주부를 하면 남편 돈으로 놀고먹어서 이기적, 결혼을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어떤 선택을 내려도 비난받는, 모든 선택지가 벌칙인 삶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기혼은 기득권이 맞다. ... 결혼해서 얻는 것이라고 열거한 앞의 목록을 짚어보며 나는 오랜 의문을 풀 한 가지 힌트를 얻는다. 여성 작취의 긴 역사를 돌아보며 여성들이 왜 이토록 불리한 환경을 견뎌온 것인지 의문을 품곤 했다. 적어도 가부장적 결혼 제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답을 얻은 것 같다. 지금 이 사회는 안전과 경제력을 포함하여 결혼을 통해 얻는 이점들로 여성을 볼모 잡고 있는 모양새다. 애초에 삶과 생존에 필수적인 것들을 여성에게서 박탈해놓고 그것들을 줄 테니 결혼하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그렇게 여성이 부당함을 견디게끔, 결혼 제도로 걸어 들어가게끔 사회 제도가 설계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물어야 한다. 왜 반드시 결혼을 통해 얻어야 할까? 성인이 독립적으로 생활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 경제력, 주거 환경은 ‘성별에 관계없이’ ‘결혼이 아니어도‘ 보장받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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