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같은 장편소설이다. 단편인 줄 알았지만,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실로 얽혀져 있었고 그렇게 얽힌 전체의 인물들은 정세랑 작가가 구축한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어느 장면에서 카메라가 줌인(zoom-in)되며 한 인물, 혹은 한 가족을 비춘 뒤 서서히 옆으로 이동하면서 다른 인물, 혹은 다른 가족,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는 듯 했다. 즉 단편처럼 보이는 어느 한 세계도 단독적이지 않고 어딘가에 이어진 세계로써 존재하는 듯 했다. 그렇게 신기하고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A의 가족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면, 그 다음엔 B, 그 다음에는 C 이렇게 이어지지 않는다. 피프티피플 세계 속 이야기는 병원 응급실에서 시작되는데 처음에서는 D라는 사건이 서술되지만 다음엔 D라는 사건을 해결한 E의 이야기, 그리고 E의 동료 혹은 교수인 F의 이야기가 나오고, 다시 F의 아내 이야기가 한참 뒤에 다시 나오는 식이다. 다시 D라는 사건이 벌어질 때 함께 응급실에 있었던 G의 이야기가 나오고, G의 친구의 동생인 H가 어딘가 뒤에서 다시 서술되는 식이다. 그렇게 얽히고 섥혀서 마치 거미줄처럼 약하지만 강한 하나의 촘촘하고 강한 세계가 구축되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는 인물의 관계도를 그려보고 싶단 마음이 굴뚝처럼 일어났다. 하지만 이미 읽은 부분이 절반이라서, 대충이라도 다시 읽기엔 부담스러웠고 또 주인공 외 잠깐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나올 것 같아 섣불리 시도할 수도 없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인물 관계도가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간절해지긴 했지만, 어찌저찌 잘 참아내고 글을 마저 읽었다.

작가의 말을 통해 더 감동받기도 한다. 작가들의 마음은 늘 어찌 이리 고울까, 항상 생각한다. 마음을 잘 쓰고 마음의 소리를 잘 듣고 그 마음을 내어서 표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이야기와 아픔에, 나와 너의 이야기와 아픔에 쉽게 공감하고 위로하는 사람들이라 더 고맙고 감사하다.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도 애잔한 마음을 전해서 사람을 울리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아파하는 마음을 혼자 간직하지 않고 글로 써서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강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인 것 같다.

"... 늘 지고 있다는 느낌이 어렵습니다."

모든 곳이 어찌나 엉망인지, 엉망진창인지, 그 진창 속에서 변화를 만들려는 시도는 또 얼마나 잦게 좌절되는지, 노력은 닿지 않는지, 한계를 마주치는지, 실망하는지, 느리고 느리게 나아지다가 다시 퇴보하는 걸 참아내면서 어떻게 하면 지치지 않을 수 있을지 현재는 토로하며 물었다. 압축이 쉽지 않았다.

나는 작가가 구현해놓은 이 세계를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앞을 살짝 넘겨보니 익숙한 이름들이 나와서 그제야 조금 더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책을 다 읽은 이후에도 다 읽은 것 같지 않고 더 읽어야만 할 것 같은, 나의 부족한 기억력이 안타까워지는 소설이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다양한 시각, 다양한 생각들과 직업과 가정형편 등의 사정이 나오면서 내가 몰랐던 세계에 대해서도 한층 더 알 수 있게 되었다. 단편보다 더 단편같은 짧은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 장면들과 상황이 너무 선명히 그려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감동적이고 너무 거대한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열심히 다 읽어도 차마 다 이해할 수는 없는 그런 작품.

서른은 사실 기꺼이 맞았다. 도무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20대가 너무 힘들어서 서른은 좋았다. 마흔은, 마흔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삶이 지나치게 고정되었다는 느낌. 좋은 수가 나오지 않게 조작된 주사위를 매일 던지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게 있다. 아직 중년처럼 보이진 않지만 중년인 것이다.

작품 배경이 뉴스에 나올만한 커다란 사건이면서 병원 응급실에서 마주할 수 있는 사건과 사람들의 이야기다보니 죽음에 연관된 이야기들이 종종 나왔다. 살면서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죽음이지만, 미처 그 생각을 해보기도 전에 사고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게 되는 사람, 서서히 죽음에 점점 더 가까워지는 사람,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행동하는 사람의 경우도 나와서 마음이 아파질 때도 있었다.

죽음은 너무 가깝다. 언제나 너무 가깝다. 전철에서 지나치게 몸을 밀착하는 기분나쁜 남자처럼 가깝다.

MRI 기계에 들어가는건 관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죽는 건 이렇게 춥고 좁은거겠지. 숨이 막히는 거겠지.

내가 개인적으로 공감을 많이 했던 이야기는 '김의진'의 이야기였다. 가장 마음에 남는 장소는 '베이글 가게', 중요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거미줄의 중심부 실 같은 역할을 하던 소재인 '도마뱀', 마음이 시리고 울컥했던 이야기는 '정다운'의 이야기, 왠지 등장할 때마다 유쾌하고 시원한 기분이 들었던 이야기는 '진선미'씨의 이야기였다. 51명이 등장하면서 각 사람의 이야기는 아주 짧게 펼쳐질 뿐인데 이런 놀라운 서사를 전하고 그것들을 엮고 엮어서 하나의 큰 세계를 만들며 인상깊은 글을 쓰신 정세랑 작가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이번 책은 대여를 해서 봐서 다시 한번 읽진 못하겠지만, 나중에 시간을 내서 꼭 다시 한번, 또 다시 한번 읽으면서 진지하게 감상을 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고, 내 곁의 좋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며 소개해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하나도 기억 못하겠지? 네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랑의 기간들이 얼마나 길까....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랑의 기간들이 얼마나 길까.

호감. 가벼운 호감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일들이 시작되는지.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결혼식을 가장한 장례식이었다. 근사한 장례식이었다.

... 승희에게 고함을 질러댔다. 이혼하고 올 테니 제발 헤어기지 말아달라고 매달리듯 윽박질렀다. 유부남이었다니. 이런 남자들은 뚜껑 열린 맨홀처럼 인생에 잠복하여 어린 여자들을 삼킨다. 어리고 똑똑지 못한 여자들을 삼킨다.

고장 난 트렁크를 친절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집에 가면 자기 가족에게 어떤 얼굴을 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거짓말 너머를 알고 싶지 않다. 이면의 이경(異) 따위, 표면과 표면만 있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

나빠지는 것만 가득, 그런 생각이 들어 윤나는 속이 상했다. 완만하게 나빠지는 게 아니라 구덩이가 발밑에서 열리듯이 갑작스럽게, 격하게 나빠지고 있었다.

삶의 불공평함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뚱뚱한 여자아이에게 친절한 나라는 별로 없지만 한국은 그중에서도 가장 혹독한 곳이 아닐까.

"있잖아, 마음에 갈증 같은 게 있는 사람은 힘들다?"
영린과 함께 산 지 얼마 안 되어 새엄마가 말했었다.
"네?"
"그런 사람은 항상 져. 내가 보기엔 네가 힘든 게 몸무게 때문도 아냐. 마음 때문이야."

어째서 고르는 족족, 혹은 영린에게 먼저 다가오는 족족 좋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영린은 스스로의 형편없음이 다른 사람의 형편없음을 끌어당기기도 하고 증폭시키기도 한다는 걸 깨달았다. 짧거나 긴 연애가 끝날 때마다 생활이 무너졌다.

괜찮아, 예뻐.
스스로 말해본 건 처음이었다.

결혼은 그 나름대로의 노력이 계속 들어가지만, 매일 안도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마음을 다 맡길 수 있는 사람과 더이상 얕은 계산 없이 팀을 이루어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어둡고 어색했던 소개팅의 나날을 지나왔다는 점이 무엇보다 가장 큰 안도였다.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사람에 대한 기준을 각자 세우게 되잖아요? 제 기준은 단순해요.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마음의 마개가 잘 닫혀 있느냐 덜컥거리며 쏟아지느냐. 상대방을 고려 않고 감정을 폭주시키는 걸 너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선하면서 스스로를 다잡는 사람, 드물고 귀해요."

그러고 있다보면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욕구가 참을 수 없는 갈증처럼 들곤 했다. 몸의 욕구라기보다는 친밀감에 대한 욕구였다.

우리도 그렇게 변하면 어쩌지? 엉뚱한 대상에게 화내는사람으로? 세상은 불공평하고 불공정하고 불합리하고 그속에서 우리가 지쳐서 변하면 어쩌지?

그 젊음. 기억나지 않는 젊음.

"눈이 닮았네요."

"안 닮았는데요."
"닮았어요. 눈 안에 심지가 있어요. 가장 의지했던 딸인거 알지요?"
듣기 좋은 말을 잘하는 할아버지네, 승화는 웃었다. 오래된 상처를 그 말들이 연고처럼 덮었다. 승화는 한마디도 믿지 않고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고마웠다.

"젊은 사람들은 착각을 해요. 노인들이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믿지. 별거 없어요."

"그냥……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 내 말 이해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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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ode 2022-06-20 0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뽕님 이렇게 서재에도 끊임없이 글을 쓰구 계셨군요ㅎ. 책도 일과 관련된것, 편중된 것만 읽다가 이리 뽕님 블로그나 서재에 들르면 눈 동그랗게 뜨고 글을 공유하며 즐겁게 읽어요^^ 이 책두 주문해서 읽어봐야겠어요. 오늘도 감사해요ㅎ. 뽕님 나름의 힘듦을 이리 늘 덤덤하게 항상 글로 서평으로 나눠주고 계신데 제가 늘 받고만 가네요ㅎ 지난 블로그에서 뽕님이 물어봐주신 소소한 행복.. 전 아마도 그냥 이리 이 모양대로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서 안도를 찾으려하는게 아닐까.. 그리고 조금 욕심을 품는다면 늘 생각하고 있는 작은 바람 원래 염세적이면서 본질적인 제가 가진 작은 기대.그런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뽕님 항상 평안한 모습이시길. 이번주도 응원합니다^^

milibbong 2022-06-26 21:35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와주셨네요.. ^^ 두부님 오시기를 고대하며 천천히 천천히 저도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글을 옮겨적고 있었답니다. ㅎㅎ 오늘도 아주 오랜만에 이 곳을 방문해서 한참 글을 적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책 리뷰를 남기러 왔어요 ^^ 하루하루의 삶과 안정과 안도... 저로서는 너무 부러울 뿐인걸요 ^^ 두부님 답고 너무 좋네요 ㅎㅎ 커피 한잔과 잠깐의 시간이 허락되는 주말에 아주 가끔씩 들러서 글귀 한구절씩 읽고서 기분전환 하고 가시면 그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좋습니다. ^^ 장마철 이제 시작인 것 같아요. 우산 잘 챙기시고~ 뜨거운 여름, 화이팅하세요~^^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작가 : 서유미

    출판사 : 창비

    출판년도 : 2018. 7. 20

 

 

 

 

 

 

 

  벌써 서유미 작가의 책을 들은지 세 번째다. 한 편의 책을 출간했다면, 젊은 작가에게 그 이후의 길은 그다지 잘 보장되지 않을 터. 그녀는 그 멀고 거친 길을 꾿꾿이 걸어온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책에서는 정말 전작과는 다른 느낌의 깊은 감동도 느꼈던 것 같다. 훌륭한 작가로 거듭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오셨고, 그 결과물이 좋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너무 행복해졌었다.

  나는 슬프고 소시민적인 절망에 공감하며, 그런 이야기들을 통해 위로를 많이 받는다. 그래서 김애란 작가도 좋아하고, 그런 통찰력을 가진 작가들을 사랑한다. 서유미 작가님도 이번 작품에선, 마치 김애란 님이 그랬던 것처럼, 묵직하면서도 무심하게 사람을 툭 건드리는 감동을 전달해주셨다. 너무 좋았다. 


  이야기를 집중해서 읽지 못하고 읽고 나서도 바로 잊어버리는 나에게 무라카미 하루키란 작가는 처음으로 작품의 느낌을 이미지로 전달해준 사람이었다. 책을 덮은 이후에도 꾸준히 책의 이미지와 느낌이 생각나는 것. 강렬함을 선사한다는 것이 훌륭한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구나, 를 그때 깨달았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도 (비록 단편이지만) 읽고 바로 흘러나가는 이야기들이 아니라 하나하나 다 기억에 남고 느낌이 남는 이야기들이었다. 

  달콤한 향과 기분좋은 느낌이 전달될 것 같지만 쇼윈도에서 바라만 보는 케익, 혹은 사자마자 바로 떨어뜨려 망가져버린 케익같은 삶을 이야기해주는 '에트르', 생존을 위해 개가 된 것 같은, 담배불로 짓이겨져도 다시 음식을 눈앞에서 흔드는 사람에게 달려갈 수 밖에 없는 삶이 그려진 '개의 나날', 너무 일상적이어서 일상적인지 일상적이지 않은건지 구별도 어려운, 은근한 균열이 조금씩 벌어지는 그 일상을 그려낸 '휴가', 삶의 갑작스런 추락, 변화, 삶이 내던지는 뒷모습을 갑자기 맞닥들이게 된 당혹감이 그대로 실려있는 '뒷모습의 발견', 일부러 상상할 필요 없었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행복과 평화와는 다른 모습의 삶, 그리고 그런 삶이 일상적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게 지나감을 그려낸 '이후의 삶',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딸에서, 엄마로, 딸이자 엄마로 그 간극 속에서 변화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그려진 '변해가네'


  어느 한 작품 하나 버릴 만한 것이 없었다. 참 재밌게 읽었고, 우울하고 어두웠던 삶의 한 편에서 짧게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모두 이렇게 살아, 이런 모습들도 있어, 그렇지만 모두 무너지는 건 아니야, 다시 일어설 수 있어, 마치 그런 얘기를 해주는 것 같았다. 읽으면서 내내 고마웠다. 좋았다.         

 


  책을 읽는 동안에만 잘못 살아왔고 잘못 살고 있다는 자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책 속의 인물만이 현실의 나를 소리 없이 다독거렸다.

  여기 너와 같은 사람이 있어. 이게 나의 실패고 진짜 얼굴이야.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게 내가 책을 읽는 이유였다.
                                                                   - 「변해가네」

 


그러나 밤의 결심은 아침의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낮의 후회만을 몰고 왔다. 밤의 나는 아침의 나를 증오했고 낮의 나를 겨우 견뎠고 밤을 두려워했다. 시간은 의미 없이 흘러가 해는 금세 저물었고 쉽게 밤이 되었다.

"돈이 뭔지 모르겠어요."
나는 돈이 많아 넓은 집에서 편하게 살 수 있는 남자가 부러웠다.
"많은 걸 편하게 만들지요. 사람을 외롭게 만들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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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ode 2019-03-14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뽕님 덕분에 찾아 읽게된 소설입니다.
서유미님의 다른 소설도 찾아서 읽어봤어요ㅎ. 워낙 소설을 잘 안읽기도 하고 저에게는 딱히 스탈이랄게 없지만.. 뽕님 덕분에 조금씩 범위가 넓어지는 것 같아요ㅎ

milibbong 2019-03-14 23:15   좋아요 0 | URL
너무 감사한 말씀이네요. ^^ 저도 좋아요...
 
이기적 섹스 - 그놈들의 섹스는 잘못됐다
은하선 지음 / 동녘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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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페미니즘에 대해 궁금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알아본다거나 할 마음은 없이, 그냥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그 부분에 대해 불평등하다고 느끼고 있구나, 당연하다고 인지하는 사람들보다는 조금 화를 내고 있구나, 내 안에 페미니스트 기질이 조금 있는 건가, 정도로만 인지하고 있었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주문한 책이었다. '이기적 섹스'까지는 하지 못하더라도 '그놈들의 섹스는 잘못됐다'라는 어구에서는 분명히 확 와 닿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겐 여러모로 충격적인 책이었다. 읽기 어려운 책은 전혀 아니었지만, 그녀의 이야기가 조금 충격적이긴 했다. 사실 누구라도 겪을 수 있고, 특별히 이상한 부분이 아닐 수 있다. 그저 조금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뿐인데, 이것으로 인해 그녀가 얼마나 많은 따가운 시선들과 비난을 받아왔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어감을 좋지 않게 느낄 수 있지만, 그녀가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여성들이 얼마나 알게 모르게 남성주의 사회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으며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여자라면 누구라도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를 내느냐 아니면 참고 사느냐에 따라 페미니스트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 같기도 하다. 조금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그래서 종종 좋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하는 페미니스트들도 있고, 소극적인 페미니스트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후자인 편인데, 내가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척박한 환경에서 이만큼이나 여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끔 이 사회를 바꿔온 것에 있어서는 그들의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성 평등주의라, 얼마나 좋은가.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이 바뀌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으로서 살아가기가 녹록지 않다. 특히 그것이 성과 관련되어 있을 땐 더욱 그럴 것이다.

 

 

"오로지 섹스만을 즐길 줄 아는 여자는 쉽게 다리 벌리고 다니는 년이라고 욕먹고, 섹스하고 싶은데 '허락'해 주지 않는 여자는 비싸게 군다고 욕먹으며, 버리려는데 자꾸 눈치 없게 들러붙는 여자는 구질구질하다고 욕먹는다. 그 어디에도 '여자'들의 욕망과 생각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남자들 비위 맞추는 법만이 침대에서 남자에게 사랑받는 법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돼 여자들을 현혹시킬 뿐이다.

 

'남자는 질투의 동물이기 때문에 섹스를 했어도 안 한 척 최대한 경험이 없는 것처럼 보여야 된다. ... 남자는 의외로 섬세한 동물이니 섹스가 불만족스러워도 잘 돌려서 말해야 한다. 남자의 자존심을 죽이면 발기부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조금만 바꿔 생각해 보면 전부 모든 일의 책임을 여자에게 돌리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발기부전도 남자 자존심 못 세워 준 여자 탓, 침대 분위기가 시들해도 섹시하지 못한 여자 탓, 싫증 나서 바람나도 여자 탓, 쉬운 여자 취급받아도 다리 벌린 여자 탓." _85p

 

 
'세상의 모든 답은 남자들이 정한다. 여자들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남자들이 정해 놓은 틀에 몸을 끼워 맞춰야지만 개념 있는 여자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_266p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들먹일 필요까지도 없이, 그저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 번 읽어보시길. 섹스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거나, 이런 부분에 특히 흥미가 많다거나, 그 이유가 어찌 됐든 각자 읽고서 받아들일 부분이다. 책 선택에 도움이 될지 모르니 작가 소개를 잠시 읊어드리도록 하겠다.

 

 

  은하선 : 섹스를 좋아하는 페미니스트. 섹스샵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블로그에 다양한 섹스토이 리뷰를 연재해왔을 만큼 섹스와 섹스토이를 좋아한다. ... 10대 여성들의 즐겁고 안전한 섹스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이 작가 소개에 다 나와있다. 책을 읽기 전 앞표지, 뒤표지, 작가 소개까지 분명 다 읽고 시작을 했는데도 왜 본격적인 책 내용을 읽을 땐 더 새롭고 충격적인지. ㅋ 섹스토이에 관한 부분은 충격이자 동시에 다른 세상에 입문한 느낌이었고,-나같은 애가 어디 가서 섹스토이 이야기를 들어 보고 섹스토이를 보기나 해보겠는가. 성인이면서도 왠지 성인용품이라는 간판을 똑바로 쳐다보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볼 것만 같아서 멀리 도망 다니기만 했었다.- 10대 때부터 시작한 성 경험은 충격과 혼돈 그 자체였다. 그녀가 주장하는 것처럼 10대들의 건전하고 안전한 성문화를 조장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어려운 책은 어려운 단어들이 많다거나 어렵게 읽히는 어려운 내용에 대한 책이 아니라,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한없이 가볍게 읽을 수도 또 한없이 깊게 생각할 수도 있는 책인 것 같다. 고민은 자신의 몫일 거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뒤, 내 몸이 원하는 섹스를 찾으라고 말하는 그녀. 나는 섹스가 좋다는 그녀가 이해가 너무 안 되면서도 이해해보고 싶어서 이 책을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는 않겠지만, 어느 면에 있어서든지 자신의 소중한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목소리를 내는 일은 참 중요한 것 같다.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표현하고 그 방향으로 이루어 나간 그녀가 조금 멋있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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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



    작가 김 경

    출판사 달

    출판일 2013년 4월 18일


 

 

 

 

 

 

 


"취향이란 인간 그 자체다."  - 톨스토이 -

 

 

 

 

  먼저 샛노란 표지에 끌렸던 것 같다. 그리고 왠지 끌리는 제목.

이렇듯 나는 늘 충동적이다. 평소에는 가지도 않던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이 책을 만났던 건 정말 행운이었다. 늘 그렇듯 흔해서 일반적인 이야기,

별다를 것 없는 이야기지만, 이 작가의 글은 뭔가 독특하고 매력적이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이 책은 내게로 왔다.

사실 책을 읽으며 늘 메모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읽는 속도도 느리고 편독이 심해

세상에 많고 많은 책들에 손을 댈 수 없다는 한계를 알아차린 이후부터,

그리고 가슴에 절절히 다가오는 문장들을 계속 가지고 있길 원할 때부터 

책을 읽으며 메모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첫 표지를 넘기자마자 적을 것들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왔다.

한 문장을 읽고 감탄하고 적고 다시 감탄을 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잘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정말 그런 듯 싶었다. 내 취향이 곧 나이고, 나를 나답다고

드러낼 수 있는 것들은 결국 나의 취향인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톨스토이의 말을 인용하여) '취향'을 강조한다. 나는 '영혼'이란

말을 좋아하는데 -나의 영혼은 나와 닮은 영혼을 찾아낸다고 믿고 있다-,

그녀는 '자아'라는 말은 부담스럽고, '영혼'이라는 말은 

부정하지 못하겠다고 하며 말한다. '내 영혼의 풍향계'가

'아무 계산도 없이 즉흥적으로' '선택'하는 어떤 것이 있고,

'한 인간의 인생이란 그런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고.

고로 이 책도 곧 그녀의 생각과 '취향'의 산물이었다.

 


 '설사 패배자처럼 보일지라도 세상의 기준과는 다른

  자기만의 가치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내 눈에는

  훨씬 더 재밌고 멋져 보였다.'

 


 

  그녀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리는 독특한 여자이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취향'이 지금 그녀 곁의 '그'를 찾아냈다고 밝히며,

아름다운 그녀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도 좋아하는 걸 서로

공유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이 바람직하다고 믿어왔고,

그래서 취미나 여가활동을 함께 즐기면서 자신의 짝을 만나는 

사람들의 인연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같은 취향을 지닌 사람들의 만남이니까. 그래서 그녀가

더욱 부러울 수 밖에 없었다. 패션지 에디터로 15년 동안 도시의 중심에서

떠돌던 마흔 즈음의 여자와 시골에서 6년째 은둔생활을 하며

그림을 그리는 무명 화가의 사랑. 겉보기엔 전혀 안어울리지만,

그녀 자신만의 취향이 그를 찾아내었다고 그렇게 고백하고 있다.


 

  내가 특히 열정적으로 읽었던 부분은 사랑과 결혼에 관한 부분,

그리고 더 크게 와닿아서 책의 거의 모든 글자를 다 옮겨 적었던 부분은

'울지마, 폭탄' 이라는 소제목이 달린 부분이었다.

지금 다시 읽으니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도

많은 공감이 가고 생각할 부분이 있는 부분이어서 페이스북에 책

내용을 발췌해서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평소 같았으면 한 글자를

가져다 적어도 작가 이름과 책 제목을 다 명시하는 편인데,

이번엔 왜 그렇게 창피하던지. 이 망할 놈의 책 제목. 마치 내가

패배자이고, 이 책에서 그것에 대한 치유를 얻은 듯한 느낌을

받은 것 같다는 께름직함이 계속 남는 것이다.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고 말이다. 어쨌든 나는 ''외모 지상주의'가

폭력화된' 사회에서 그 외모 기준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써 적잖이 공감할 수 밖에 없었고 때론

뒤통수를 후려 맞는 듯한 느낌도 받곤 했다.

 

 

 이렇게 그녀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아름답지 않은

사람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명품을 갈구하는 여자들과 이런

사회 구조에 대해 쓴소리를 하며, 돈, 학벌, 명예 등 세상적으로

요구하는 것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오히려 그에 반해서

살아가는 것이 멋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가진자가 아니라

가지지 못한 자에 마음이 가는 사람, 예쁜 사람이 아니라 예쁘지

않은 사람에게 눈길이 가는 사람, 강자가 아니라 약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사람. 실제로 작가가 그런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우리는 소박하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못난 것이 아니고, 내가 옳은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위안도 받을 수 있다.

예쁘다거나 잘났다거나 많이 배웠다거나 못 배웠다거나,

사실 모든 사람들의 인생을 우리가 어떻게 한 가지 기준점에 맞춰

서열을 매길 수 있으며 부족하다거나 아니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모두가 각각 고유한 빛을 띄고 있는데, 사회에서는

종종 번호를 매기고 등수를 매기고 기준점을 정해서 획일화시키곤 한다.

중요한 건 나만의 가치관과 취향, 생각, 태도를 가지고서

내 자신만의 멋진 인생, 행복한 삶을 꾸려가면 되는데 

요즘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조금 더 매력적이었고, 읽으면서 왠지 통쾌하기까지 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책이 몇 가지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초반엔 이런 저런 글쓴이의 생각과 가치관을 정리해놓은 부분이라

흥미로웠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공감이 덜 되는 부분이 많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초반에 적었듯이 이 책도 작가의 취향일 수 밖에 없기에

-특히 PEOPLE 영역에서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또 패션지 에디터인

그녀의 관심 영역이 나의 관심 분야와는 상이해서 그 쪽 분야의

전문가 이야기가 많이 나올 땐 조금 동떨어진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아주 괜찮았던 책이다.

발췌해 놓은 부분들이 꽤 많은데,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시라고

긴 글은 굳이 인용하지 않기로 했다.


 

 아, 그리고 나도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영월의 별마로 천문대를 가보고 싶어졌다. -애인이 별에 문외한이라면

굳이 갈 필요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호젓한 밤에 연인과 함께 

'이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하며 별콩달콩한 밤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도 꽤 좋을 것 같다.- 또 달리는 차 안에서 글자 많은

책을 읽으면 멀미한다며 시집을 선물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발견해낼 수 있길 바라고 있다.

내 '영혼의 풍향계'야, 너 지금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거 맞니? ;D  

 


 

 '만유인력이란 서로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 다나카와 슌타로, <이십억 광년의 고독> 중 

                             (작가의 '그 남자'가 선물해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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