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
작가 김 경
출판사 달
출판일 2013년 4월 18일
"취향이란 인간 그 자체다." -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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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샛노란 표지에 끌렸던 것 같다. 그리고 왠지 끌리는 제목.
이렇듯 나는 늘 충동적이다. 평소에는 가지도 않던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이 책을 만났던 건 정말 행운이었다. 늘 그렇듯 흔해서 일반적인 이야기,
별다를 것 없는 이야기지만, 이 작가의 글은 뭔가 독특하고 매력적이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이 책은 내게로 왔다.
사실 책을 읽으며 늘 메모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읽는 속도도 느리고 편독이 심해
세상에 많고 많은 책들에 손을 댈 수 없다는 한계를 알아차린 이후부터,
그리고 가슴에 절절히 다가오는 문장들을 계속 가지고 있길 원할 때부터
책을 읽으며 메모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첫 표지를 넘기자마자 적을 것들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왔다.
한 문장을 읽고 감탄하고 적고 다시 감탄을 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잘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정말 그런 듯 싶었다. 내 취향이 곧 나이고, 나를 나답다고
드러낼 수 있는 것들은 결국 나의 취향인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톨스토이의 말을 인용하여) '취향'을 강조한다. 나는 '영혼'이란
말을 좋아하는데 -나의 영혼은 나와 닮은 영혼을 찾아낸다고 믿고 있다-,
그녀는 '자아'라는 말은 부담스럽고, '영혼'이라는 말은
부정하지 못하겠다고 하며 말한다. '내 영혼의 풍향계'가
'아무 계산도 없이 즉흥적으로' '선택'하는 어떤 것이 있고,
'한 인간의 인생이란 그런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고.
고로 이 책도 곧 그녀의 생각과 '취향'의 산물이었다.
'설사 패배자처럼 보일지라도 세상의 기준과는 다른
자기만의 가치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내 눈에는
훨씬 더 재밌고 멋져 보였다.'
그녀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리는 독특한 여자이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취향'이 지금 그녀 곁의 '그'를 찾아냈다고 밝히며,
아름다운 그녀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도 좋아하는 걸 서로
공유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이 바람직하다고 믿어왔고,
그래서 취미나 여가활동을 함께 즐기면서 자신의 짝을 만나는
사람들의 인연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같은 취향을 지닌 사람들의 만남이니까. 그래서 그녀가
더욱 부러울 수 밖에 없었다. 패션지 에디터로 15년 동안 도시의 중심에서
떠돌던 마흔 즈음의 여자와 시골에서 6년째 은둔생활을 하며
그림을 그리는 무명 화가의 사랑. 겉보기엔 전혀 안어울리지만,
그녀 자신만의 취향이 그를 찾아내었다고 그렇게 고백하고 있다.
내가 특히 열정적으로 읽었던 부분은 사랑과 결혼에 관한 부분,
그리고 더 크게 와닿아서 책의 거의 모든 글자를 다 옮겨 적었던 부분은
'울지마, 폭탄' 이라는 소제목이 달린 부분이었다.
지금 다시 읽으니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도
많은 공감이 가고 생각할 부분이 있는 부분이어서 페이스북에 책
내용을 발췌해서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평소 같았으면 한 글자를
가져다 적어도 작가 이름과 책 제목을 다 명시하는 편인데,
이번엔 왜 그렇게 창피하던지. 이 망할 놈의 책 제목. 마치 내가
패배자이고, 이 책에서 그것에 대한 치유를 얻은 듯한 느낌을
받은 것 같다는 께름직함이 계속 남는 것이다.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고 말이다. 어쨌든 나는 ''외모 지상주의'가
폭력화된' 사회에서 그 외모 기준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써 적잖이 공감할 수 밖에 없었고 때론
뒤통수를 후려 맞는 듯한 느낌도 받곤 했다.
이렇게 그녀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아름답지 않은
사람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명품을 갈구하는 여자들과 이런
사회 구조에 대해 쓴소리를 하며, 돈, 학벌, 명예 등 세상적으로
요구하는 것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오히려 그에 반해서
살아가는 것이 멋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가진자가 아니라
가지지 못한 자에 마음이 가는 사람, 예쁜 사람이 아니라 예쁘지
않은 사람에게 눈길이 가는 사람, 강자가 아니라 약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사람. 실제로 작가가 그런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우리는 소박하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못난 것이 아니고, 내가 옳은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위안도 받을 수 있다.
예쁘다거나 잘났다거나 많이 배웠다거나 못 배웠다거나,
사실 모든 사람들의 인생을 우리가 어떻게 한 가지 기준점에 맞춰
서열을 매길 수 있으며 부족하다거나 아니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모두가 각각 고유한 빛을 띄고 있는데, 사회에서는
종종 번호를 매기고 등수를 매기고 기준점을 정해서 획일화시키곤 한다.
중요한 건 나만의 가치관과 취향, 생각, 태도를 가지고서
내 자신만의 멋진 인생, 행복한 삶을 꾸려가면 되는데
요즘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조금 더 매력적이었고, 읽으면서 왠지 통쾌하기까지 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책이 몇 가지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초반엔 이런 저런 글쓴이의 생각과 가치관을 정리해놓은 부분이라
흥미로웠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공감이 덜 되는 부분이 많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초반에 적었듯이 이 책도 작가의 취향일 수 밖에 없기에
-특히 PEOPLE 영역에서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또 패션지 에디터인
그녀의 관심 영역이 나의 관심 분야와는 상이해서 그 쪽 분야의
전문가 이야기가 많이 나올 땐 조금 동떨어진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아주 괜찮았던 책이다.
발췌해 놓은 부분들이 꽤 많은데,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시라고
긴 글은 굳이 인용하지 않기로 했다.
아, 그리고 나도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영월의 별마로 천문대를 가보고 싶어졌다. -애인이 별에 문외한이라면
굳이 갈 필요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호젓한 밤에 연인과 함께
'이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하며 별콩달콩한 밤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도 꽤 좋을 것 같다.- 또 달리는 차 안에서 글자 많은
책을 읽으면 멀미한다며 시집을 선물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발견해낼 수 있길 바라고 있다.
내 '영혼의 풍향계'야, 너 지금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거 맞니? ;D
'만유인력이란 서로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 다나카와 슌타로, <이십억 광년의 고독>
중
(작가의 '그 남자'가 선물해준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