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도 있다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포레스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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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다 미리는 한국에서도 유명하다고 알고 있다. 그녀의 작품을 직접 접하진 않았지만 (대충 스쳐 봤던 것 같다) 유명하다고 느낄 정도니까. 굿즈에 홀려 어쩌다 구매해 읽었는데,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일러스트 작품도 그랬던 것 같다.
 우선 작가와 사는 국가가 다르면 사회문화적 감성 코드가 다른 게 꽤 크게 느껴진다. 서유럽쪽 작품이 많이 와닿지 않았을 때도 그랬지만, 비교적 가까운 나라인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 글 자체가 (신문에 연재했던 짧은 에세이라서 그런지) 너무 당연하면서도 허무하고 가벼운 일기나 중얼거림 같았다. 한국에서도 이 작가가 인기 있다면 왜 그런건지 궁금해진 순간이 많았달까.
 원래 제목은 '내일 일은 모릅니다'로 매일의 느낌, 깨달음을 간단하고 자유롭게 적은 작가 자신다운 글이라고 한다. 의도는 알겠지만, 내겐 너무 가볍고 공감이 안되서 아쉬웠던 게 사실이다. 


나이에 맞게, 남자답게, 여자 주제에, 이 얼마나 답답한 말인가. 굳이 답답함 속에 자신을 밀어 넣고 살 필요가 있을까.
적어도 나는 그런 말을 안 하면서 살고 싶다. 그러는 편이 즐겁게 살 수 있고 또 훨씬 멋있으니까.

느리더라도 자기 속도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묵묵히 갈 수 있다는 데 피트니스의 매력이 있다.
"어리석은 자가 그 어리석음을 고잡허더 보면 현명해진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처럼 말이다.

삶이 지루하다 해서 늘 익사이팅한 경험을 만들고 매일 여행을 떠날 순 없지 않은가. 살아가려면 늘 고만고만한 일상과 맞물려 돌아가는 소소한 성취에서 기쁨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피트니스의 지루함은 삶의 그런 모습과 닮아 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다정하게 배려해주거나 부드럽게 맞장구를 쳐주면 마음이 모락모락 따스해진다. 밤에 집에 돌아와서도 문득 그때의 따스함이 떠올라서, 그 사람과 또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언젠가, 언젠가는, 이라고 생각만 하다가 시간이 흐르는 것을 나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서른일곱 살은 아직 젊지, 이렇게 말하며 내 어깨를 두드리고 웃는 사람도 있지만, 서른일곱 살인 나 나름대로 늙어가는 불안이 있다.

쓸쓸함은 혼자서 어떻게든 해야지.

둘이 정한 것이 있다. 상대방이 해준 것에 반드시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다. "빨래해줘서 고마워", "쓰레기를 버려줘서 고마워", "차를 타줘서 고마워" 등등.
일부러 말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고맙다는 말을 듣고서 비로소 깨달았다.

그렇지만 내가 굳이 싫은 사람을 위해서 계속 상처받을 이유도 없다. 내게는 그런 강인함이 필요하다고,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웬만하면 다른 사람 앞에서 나를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 같은 건 어차피 안 돼요"라고 말하기 싫다. 그러면 내가 너무 불쌍하다. 굳이 작게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딱 적당한 정도가 좋은데~ 싶긴 하지만 그게 참 어렵습니다.

사람은 상처를 주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런 하루하루를 힘차게 극복하면서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 가끔은 ‘수고가 많아‘라고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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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피트니스 -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 아무튼 시리즈 1
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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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읽으려던 책이 아니었지만, 우연에 우연을 겹쳐 내게로 왔다. 헬스에 관한 답정너 결론도 별로지만, 운동하는 사람이면 당연히 언급할 수 밖에 없는 딱딱한 도구같은 트레이닝 이름과 방법도 싫었다. 당장 시작해야 하고 핑계 대지 말아야 하고 꾸준히 해야 하는 거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딱히 큰 재미는 못 느꼈지만, 그래도 글쓴이의 첫 시작이 나만큼이나 어렵지 않았을까, 어려운 첫 시작의 고단함을 노력으로 이겨내지 않았을까 하는 존경의 마음과 부러운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아마도 지금은 더 건강하게 활력 가득한 상태로 지내시겠지. 나도 무턱대고 뭐든 지르는 스타일이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원칙이 있다. 나의 원칙은 단 하나, ‘나에게 맞는대로 꾸준히‘다.

"나는 선천적으로 재능이 부족했지만 연습과 노력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을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적용했다." - 넬슨 만델라 -

내 전도의 요지는 일단은 운동하는 습관을 만들라는 것이다. 제대로 시작해보겠다고 미루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그냥‘ 시작하라고 한다.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일들을 일단 좀 끝내고 나면, 이것 좀 마쳐놓고 저것 좀 마련해놓고 나면, 이런 식으로라면 ‘그날‘은 오지 않는다.

당장 운동을 하지 못할 이유, 정말 많다. 그러나 이유와 핑계는 다르지 않을까. 우리가 어깨에 짊어진 것이 어디 한두 가지겠는가. 그 어깨에 운동 같은 걸 하나 더 얹으려면 분명 어깨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 또한 생기기 마련이다. 뭘 내려놓아야 할지는 사람마다 어깨에 얹힌 종류와 가짓수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리고 넣고 빼기는 저마다의 몫이다.

다른 일이 꼬였는데 운동만 잘 하는 건 불가능하다. 생활의 힘이 고루 안배되어야 운동도 해나갈 수 있다. 일상을 잘 유지하는 것, 그것이 잘 사는 것 아니겠는가.

몸을 쓰는 활동이 가장 필요한 청소년 시절에 하루 열 시간 넘도록 책상 앞에 묶여 있던 엉덩이, 엉덩이로 이름 쓰기 같은 굴욕적인 벌을 받아야 했던 엉덩이, 쪼그려 뛰기를 하거나 매찜질을 당해야 했던 엉덩이, 그 와중에 몸매 풍기 몸매 품평을 당할 때, 1순위가 되어온 엉덩이.... 이제 내 엉덩이에 평화를 주고 싶다.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내 몸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이 신호를 무시하고선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일 에너지 같은 건 생성되지 않는다.

늙지 않는 걸 바라는 대신 나이듦과 더불어 살아가자. 운동을 하면서 ‘성공적인‘ 나이듦 같은 걸 생각하지도 말자. 노화는 질병이 아니라 삶을 의미한다.

몸을 힘차게 움직이는 삶에서 누구도 스스로를 배제하거나 타인을 배제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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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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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의도가 궁금했다. 작가는 '완득이'로 작품 데뷔를 화려하게 했지만 아쉽게도 난 그녀의 작품 중 제일 유명한 작품을 읽지 않았다. 내가 읽은 그녀의 작품에서는 그녀만의 어두움과 우울감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 느낌을 좋아했었는데, 이 작품에선 작가의 목소리가 애매했다.
동의하는 것일까, 반대하는 것일까. 사실 그 모두가 맞는 이야기긴 하겠지만.
 그리 큰 각오가 없다해도 요즘은 함께보다 혼자가 자연스러운 시대이다. 함께여서 좋은 것보다 어려운 것들이 더 많은데, 글로써 그려지는 부분은 언제나 좋게만 보인다. 그들이 주인공일수록 더욱 더. 하지만 이 시기가 희망적이고 아름답고 잠깐 빛나는 시절일 수 있기에, '멋지고 딱 맞고 천생연분 같은' 이야기는 잘 믿지 않게 된다. 그래서 그녀의 어두운 분위기를 좋아했을 수도 있다.
 비록 이 작품은 내가 좋아하는 느낌이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호기심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이들은 앞으로 계속 행복할까. 그래도 고통 없는 행복은 없으니, 이전에 아팠던 것만큼 더 노력하기도 할테지. 고통 없는 행복은 없으니, 다투면서도 더 행복할 수 있겠지. 아마 그럴 것이다.  


‘고통을 품지 않은 행복은 없다.‘

‘누구는 늙으면 그래도 아내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젊어 미운 것이 늙는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미움에 늙음이 붙어 더 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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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곳으로 가자 - 능력에 요령을 더하면 멋지게 갈 수 있다
정문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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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작가 정문정 님의 차기작이다. 나오자마자 보고 싶었지만, 전작이 히트작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자 책의 수요가 올라가서 쉽게 빌리지 못하고 반년을 보낸 뒤에야 겨우 읽게 되었다. 책은 역시나 좋았다.
 작가님이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나와서 전작에 대한 내용을 짧게 전해주시며 강연하신 건 알고 있었는데, '정문정답'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활동도 하시면서 유용한 내용들도 전달해주시고 좋은 책도 소개해주시는 듯 했다.
 자기계발서도 아니고 에세이같이 편안한 형식이지만, 나보다 뒤에 따라올 후배들이 나만큼의 시행착오는 없었으면 해서 자기계발서와 에세이 사이 그 어딘가의 책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님. 이렇게 좋은 책으로 보답을 받게 되어 좋았다.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태어나면서부터 어느 정도 정해진 삶의 큰 틀을 변화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닐거라 본다. 가난하다가 가난하지 않게 된다든지, 지나치게 평범하던 사람이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을만큼 성공을 한다든지 말이다. 정문정 작가는 그 어려운 일들을 혼자서 해낸 듯 하고, 그동안의 시행착오들을 사람들이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요령을 알려주신다. 특별히 어렵게 쓰여진 책이 아니라서 그런지, 인생의 개선에 대해 큰 의지가 없던 나조차도 뭔가 조금이라도 더 노력해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힘이 느껴져서 좋았다. 세상에 대단한 사람들은 많고 많지만, 이렇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어른이 있다는 게 무엇보다 감사하게 느껴졌다.    


계획대로 삶을 꾸려나가는 걸 우리는 의지의 문제로만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계획적인 삶은 거시적 관점을 가질 수 있는 정신의 건강과 육체의 건강이 받쳐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정신적으로 황폐해지면 건강을 챙기기 어렵고, 건강하지 않으면 정서가 불안정해지기 쉬우며, 오늘 이 순간을 걱정하는 사람이 일 년 후를 내다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어쩌면 재능이란 영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로 돈을 못 벌 것 같으면 해야 하는 일로 돈을 벌어서라도 좋아하는 일을 놓지 않는 꾸준함에 깃드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성취에 대해 말할 때 개인의 의지를 주로 강조하지만, 그를 둘러싼 주변의 호의와 낙관성이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성인이 되며 알게 된 건, 내가 몰랐거나 고군분투해 알아낸 정보를 어떤 이는 쉽게 터득하고 있다는 거였다. 서로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 차이는 바로 사람 사이 사회(관계)자본이라고 하는 연결망에서 나왔다.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주변에 조언을 해줄 사람이 있는지의 여부와 역할 모델을 쉽게 찾을 수 있는지에 따라 꿈의 크기가 결정되기도 한다.

"깨어난 인간에게는 단 한 가지, 자기 자신을 탐색하고, 자기 안에서 더욱 확고해지고, 그것이 어디로 향하든 자신만의 길을 계속 더듬어 나가는 것 말고는 달리 그 어떤, 어떤, 어떤 의무도 없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면 권위에 속지 않고 가짜 어른을 구별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사람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어떤 상사를 만나고 어떤 정치인에게 투표하는지, 누구를 연인이나 친구로 두는지에 따라 인생은 궤도를 완전히 달리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선택하는 일로 이루어져 있고, 그처럼 크고 작은 선택을 하는 데는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가 매우 강력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이 달라 헷갈릴 때는 행동만 보자. 그럴싸하게 말하기는 쉽다. 말과 행동이 같기란 어렵다. 사람들은 말과 행동이 다를 경우, 자꾸 말을 믿으려 하지만 말은 그 사람이 아니고 행동이 바로 그 사람이다.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으로 해석하는 걸 멈추지 않으면, 과거와 싸우는 데 몰두하느라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로써 얻은 자기연민이 지나치면 그에게 사랑을 주던, 건강한 정서를 가진 주위의 사람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떠나간다.

어른이 된 후에는 자기 인생에 쓰인 기록을 더 나은 쪽으로 고쳐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 더 나은 사람을 주변에 두기 위해서. 더 나은 상황을 마주하기 위해서. 한참이나 남아있는 결말을 위해서. 나무도 상처가 깊을수록 옹이가 남아 결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그 자체로 개성 있는 멋이 되기도 한다. 이게 바로 상처가 우리에게 약속하는 위로다. ... 어떤 고난을 겪을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지만 그걸 대하는 자세만은 우리가 택할 수 있다.

나의 상태를 마지노선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게 관리하기, 적당히 이기적으로 나의 상태부터 챙긴 뒤에 다른 사람을 이타적으로 대할 수 있도록 해보기, 상처받은 자신을 보호하고자 자꾸만 모든 것에 무감해지려는 마음을 잘 다독여 생기있게 유지하기.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을 양손에 달걀처럼 들고서 오래 걷는 균형 감각이 인생에는 필요하니까.

"회사에서 힘들 때는 이거 하나만 기억해라. 어떤 상황도 삼 년은 안 간다." 교수님은 덧붙였다. 그러니 사람 때문에 그만두지는 말라고. 그 사람이 영원히 네 위에 있을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잊지마, 딱 삼 년이다, 삼 년."

상사 때문에 너무 괴로울 때, 협업하는 상대와 성향이 너무 맞지 않을 때, 언젠가 끝날 거라 생각해보자. 다시는 안 봐도 되는 사람에게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자. 안녕이라고 생각하면 언제나 약간 더 관대한 마음이 드니 이상한 일이다.

상사가 너무 힘들게 느껴질 때는, 상대를 너무 커다랗게 느끼는 마음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가 너무 작게 느껴지는 건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상사 또한 저마다 외로운 사람들이고, 사실은 그들도 잘 모르지만 부하 직원 앞에서는 아는 척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당신이나 내가 별로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하면 덜 주눅들 수 있고, 당신과도 곧 헤어질 거라 생각하면 덜 상처받을 수 있다.

인터뷰는 이처럼 몰랐던 사람에게서도 도움이 되는 말을 듣는 기쁨과 동시에, 대화의 고급 기술도 습득할 수 있어 실용적이다. 좋은 질문을 해야 좋은 답을 들을 수 있으며 좋은 질문을 하려면 구체적으로 물어야 한다는 것, 잘 짜인 질문도 중요하지만 경청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후배들이 일단 쉬고 싶어 퇴사를 생각한다고 면담을 청해오면 꼭 이 질문을 했다. "재취업이 바로 되지 않아도 일 년 정도는 버틸 돈이 있니?" 그렇지 않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우선 그 돈부터 모으고 다시 생각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예비비가 있으면 화각이 넓어지고 그렇게 되면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까지 아울러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다. ... 목돈이라고 생각되는 단위의 숫자를 통장에 한번 찍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처음이 어렵지 일단 그렇게 되면 돈 모으는 데 재미를 붙일 수 있어서 1000만 원을 만드는 과정보다 1000만 원에서 3000만 원을 만드는 과정이 더 쉽다. 이런 루틴이 빈곤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임을 알고 있기에 정부에서는 기준 소득 이하의 청년을 대상으로 저축 금액만큼 지원하는 ‘희망두배 청년통장‘ 같은 복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오늘만 사는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건 차분함을 기르는 연습이 아니라 잔고에 쫓기지 않는 환경부터 구축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하는 이유가 정말 현명하지 못해서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자유와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싫은 걸 덜 할 수 있는 자유.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용기. 돈이 생겨서 좋은 부분은 돈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확연히 줄어들었다는 거였다. 일상의 제약이 옅어졌다. 간당간당한 잔고를 외우고 있지 않아도 되니까.

돈에 대해 말하는 것이 속물처럼 보일까봐 검열하는 동안 돈은 너무 많이 오해받았다. 정당하게 지급받을 대가에 대해서라면 떳떳해지자. 자립한 어른으로 나를 지탱해주는 돈의 엄중함에 대하여 말하자. 내 힘으로 돈을 벌어 나와 주변을 책임지는 일상, 그것보다 더 큰 어른의 일이 어디 있을까.

시간의 운용이란 결국 어디에서 아끼고 어디에다 쓸 것인가의 문제인 듯하다. 무엇이 더 중요한 일인지 질문하고 순위를 조정하면서 덜 중요한 일에는 최대한 시간과 체력을 아끼는 것. 애초에 돈 버는 목적도, 사람이 태어난 목적도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아닌가.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선택해본 적 없는 사람, 고만고만한 선택지가 다인 줄 아는 사람, 일단 지금 뭐라도 택하지 않으면 다음 기회는 없을 거라 여기는 사람. 이런 사람은 상황에 자신을 맞추는 일이 습관이 된 경우가 많아, 그때 듣는 ‘착하다‘는 평가를 곧이곧대로 믿고 매번 지나치게 양보하다 결국 길을 잃곤 한다.

내가 어떤 사람과 함께할 때 더 나은 모습이 되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사랑을, 인정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한 번이라도 알게 되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행복은 모르니까 두렵지만 불행은 내가 잘 알기에 익숙하다고 여긴다. 불행이 습관이 되면 오래 입은 잠옷처럼 편안해진다. 불행한 사람들은 행복 앞에서도 좋은 건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하다가 가장 익숙한 불행을 꺼내 입는다.

자신의 인생을 두고 자꾸만 나쁜 예언을 하는 걸 그만두자. 불행한 아이였다고 해서 불행한 어른이 되란 법은 없다. 자기에겐 행복이 해당될 리 없다고 멀리하거나 행복 앞에서도 언제나 끝부터 생각하고 조바심을 내는 것. 이런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잘 아는 불행과 모르는 행복 사이에서 애써 후자를 고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불길한 예언은 그만두고, 좋아 보이는 새 옷을 입은 채로, 함께 있으면 기분 좋은 사람을 만나자. 그런 선택이 쌓이다보면 언젠가 행복이 맞춤복처럼 편안해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여기서 필요한 질문은 ‘나는 왜 을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을까‘ 혹은 ‘그럼에도 내가 이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가‘뿐이다. 감정의 평등에 집팍하면 결국 헤어짐이라는 결론밖에 없다.

연애를 할 때마다 감정적 약자가 된다면 먼저 내 세계의 나무가 다양하고 풍성한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연애는 잘 가꾼 서로의 정원에 놀러 가는 일과 비슷한데, 자기 정원이 척박하면 여긴 볼 게 없다며 자꾸 상대의 공간에만 있으려고만 하게 되어 상대에게 매달리게 된다. 혼자서도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나면 여유 있게 누군가를 내 정원에 초대할 수 있고, 내 정원이 정갈하면 누군가 먼저 내 공간에 관심을 보일 수도 있다.

운동이나 공부를 하든, 외모를 가꾸든, 새로운 취미를 갖든, 연애 외의 활동도 즐기면서 나의 세계를 넓히는 일부터 시작하자. ... 시간이 걸리지만 본질적인 해답은 나의 강점을 키우는 일뿐이다. 감정의 기울기를 받아들이고 안달하지 않는 것, 서로의 다른 속도를 이해해보는 것, 나의 세계를 매력적으로 가꾸어서 쉽게 절박해지지 않는 것. 성숙한 어른의 연애란 멀리 있지 않다.

서로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지점이 충돌할 때 우리는 자주 불화한다. 우리는 막연히 ‘상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나 사람마다 상식은 다를 때가 많다. 저 사람이 이상하거나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같은 상황을 보고도 우리는 전혀 다른 데서 출발하고 있다는 걸 아는 게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상대를 이미 잘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관계를 선순환으로 이끌며, 애초에 생각의 구조와 경험치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 해결책에 집중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단점은 이해받길 원하면서 타인의 단점은 너무 쉽게 바꾸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자칫 단점을 개선하려 애쓰다보면 고구마뿌리처럼 그와 연결된 장점마저 잘려나가게 된다. 장점을 볼 때 그에 파생되는 단점을 함께 바라보고, 뭔가 고치라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 생길 때는 그 또한 장점의 부산물이라 생각하면 관계에서 오는 괴로움을 줄일 수 있다. 덜 독촉하고 덜 미워하면서 최대한으로 사랑할 수 있다.

기성 세대는 탐욕을 조절해 양보해야 하고 청년들은 더 나은 걸 욕망해야 한다. 청년들이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거라 낙관할 수 있고 바라는 것을 조금씩이나마 이뤄갈 수 있는 세상에만 희망이 있다.

자존감을 키우려면 자기를 사랑해주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거기에 필요한 구체적 재료들을 제공하지 않으면 가냘픈 정신승리에서 끝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뛰어난 무언가가 되어야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그런 날은 오지 않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작더라도 노력해서 성과를 낸 일들에 대한 기억을 쌓아가는 일상이다. ...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본 기억이 있으면 다른 시도에도 겁을 덜 내고 스스로를 믿기 쉽다.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가 있다는 걸 기억하고 신세한탄만 하는 데서 벗어나기, 내가 특별한 존재여야 하고 세상이 내게 우호적일 거란 기대를 내려놓기, 자존감을 해치는 사람에게서 멀어지기, 나를 존중하기가 수월해지도록 작은 성취의 경험부터 쌓기.

자존감을 기르면 마음의 면역력이 높아져 잔병치레를 덜 하게 되고 마음의 기초대사량이 높아져 부정적 감정의 군살이 덜 들러붙는다.

부자이기만 하면, 좋은 직장을 갖기만 하면 열등감에서 벗어나리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는 언제나 나보다 좋은 조건의 사람들이 있어서 남을 비교 대상으로 삼으면 패배하는 일밖에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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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말들 - 사랑도 혐오도 아닌 몸 이야기 아르테 S 5
강혜영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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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느낌의, 하지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고 진작부터 논의됐어야 할 이야기들이었다. 다양한 작가의 '몸' 이야기가 있었고, 그 중에는 내가 좋게 봤던 영화 '아워 바디' 감독의 이야기도 있었다.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쓴 백세희 님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우리 엄마도 타인에 대한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외모에서 시작하는 편이다.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않은 몸으로 사회 표준치를 벗어난 채 살아오면서 받아온 스트레스가 있어서 난 그러지 않으려고 하고, 엄마에게도 제발 그러지 좀 말라고 말씀드리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그런 시선과 기준은 바꾸기 어려운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는 천천히 바꿔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또 이 책을 읽으며 내 몸(을 긍정하는 일)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몸의 영역에는 쉽거나 작은 실천이 없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을 상대하는 용기, 나이듦을 인정하는 것, 아픈 상태도 인생의 소중한 부분이라는 인식, 남의 몸에 대해 되도록 적게 말하기부터 시작하자.

내 몸을 미워하는 날보다 사랑하는 날이 훨씬 많아지기를 꿈꾸며 산다. 타인이 타인을 피부나 몸무게, 장애 등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게 당연한 세상을 꿈꾼다. 그래서 나부터 그렇게 하려고 한다.

몸, 즉 나 자신에 대한 적대감, 분노, 좌절, 비참함, 세상에 대한 원망, 기력 없음...... 나는 이 글을 쓰기 이전에, 우선 나(몸) 자신과 싸워야 했다. 나에게 몸은 절실히 바꾸고 싶은 그 무엇, 그러다 안 되면 버리고 싶은 것이다.

인생의 고통은 몸(자아)을 긍정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내 몸은 나의 것이다‘가 아니라 ‘내 몸이 나다‘. 우리의 정신이 몸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이 바로 나인 것이다. 정신은 몸에 속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몸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은 곧 자아관이 된다.

페미니즘이 낯설지 않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여성은 남성 사회가 만든 몸 이미지에 갇혀 있다. 남성의 존재성은 돈, 지식과 권력으로 평가되는 반면, 여성의 시민권은 외모로부터 시작된다.

‘사회적 약자‘는 평생 자신을 사랑하는 문제와 투쟁해야 하는 이들이다. 성별, 인종, 계급, 나이 등은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해석이다.

‘사회적 약자‘는 평생 자신을 사랑하는 문제와 투쟁해야 하는 이들이다. 성별, 인종, 계급, 나이 등은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해석이다. 몸의 영역에는 쉽거나 작은 실천이 없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을 상대하는 용기, 나이듦을 인정하는 것, 아픈 상태도 인생의 소중한 부분이라는 인식, 남의 몸에 대해 되도록 적게 말하기부터 시작하자.

아주 오랫동안 내 몸을 혐오했고 또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 사랑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라는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애초에 우리 삶이 그렇게 쉽게 온점을 찍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도 하고.

어제 술을 마셨다면 내 몸을 사랑하지 않는 날이 되고, 오늘 운동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면 내 몸을 사랑하는 날이 된다. 언제든지 나는 나를 사랑하거나 싫어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랑하지 못했다고 해서 나 자신을 통째로 부정하거나 자책할 이유도 없다.

책, 광고, 드라마, 영화 등 미디어에서는 늘 말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당신의 모습이 어떻든 당신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난 이 말이 완전 별로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날 사랑해야 한다는 마음 자체가 억압과 폭력이 된다.

내 몸을 아주 오랫동안 혐오했던 역사는 점점 더 깊고 진한 혐오의 세계를 항해하는 것과 같았다. 반대쪽에는 사랑이 있고, 나는 그곳으로 가기 위해 노를 힘껏 저어보지만 아주 작은 장애물에도 다시 저 멀리 밀려나고 만다.

내 몸이 싫은 날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상의 혐오 표현을 자제하려고 노력한다. 사랑하지는 못해도 혐오하지도 않는 내가 되고 싶어서.

사실 365일 내 몸이 마음에 들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게 더 이상하고 부적절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내 몸을 미워하는 날보다 사랑하는 날이 훨씬 많아지기를 꿈꾸며 산다. 타인이 타인을 피부나 몸무게, 장애 등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게 당연한 세상을 꿈꾼다. 그래서 나부터 그렇게 하려고 한다.

내 몸은 즐거움을 유지하기 위한 것, 내 몸에 대한 노력과 마음가짐은 즐거움을 연장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내 몸과 함께 즐겁게 살고 싶다.

섹스를 한다는 것, 누군가 내 몸 깊이 파고드는 것을 허락하는 것보다 벗은 몸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실이 더 두려웠다. ... 그리고 비슷한 경험이 축적되면서 성인이 되어서도 섹스는 왠지 부담스럽고 불편한 것으로 굳어져갔다.

잠잠하던 호수에 조약돌을 하나 던지면 물결이 소리 없이 천천히 넓게 퍼져나간다. 그러나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존재성을 부정하지 않는 것, 그 존재를 있는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작은 조약돌과 같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몸과 삶은 당사자 본인의 것이다."
참 쉽고 간단한 말인데도 다들 어려워하는 기본적인 것.

이제껏 사회가 만들어준 겉모습의 틀 가운데 정말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있을까. 화장, 옷, 행동거지...... 타인을 해치는 일도 아닌, 스스로 선택한 길에서 여성이라는 굴레에 매여 너무 겁을 먹고 있는 게 아닐까. 여성들이 어떤 일들에든 조금 더 용기를 내는 순간들이 많아지길 바라본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평균 여성으로 살면서 몸의 외형 때문에 시간적, 자본적 비용을 이미 치를 대로 치렀다. ... 내 가치를 몸의 겉껍질에 맡기는 건 단단한 반석이 아니라 흐물거리는 젤리 위에서 자기애라는 계란 한 바구니를 들고 불안정하게 서있는 것임을 깨닫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몸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이 쉴 새 없이 교차하는 사회에서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이다.

계속 살아야 하니까, 이왕이면 불행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니까, 타인의 시선을 벗어나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긍정적인 결말이 아닐까.

몸은 내가 지상에서 가지고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사적인 공간이면서 늘상 노출되어 있는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몸과 몸이 만나는 일은 쉽고도 어렵다. 신뢰가 없으면 연결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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