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한 사랑 - 몸과 마음을 탐구하는 이슬아 글방
이슬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평점 :
품절


 

 11월부터 펴놓고 지난하게 읽은 책들을 12월이 끝나갈 무렵이 되서야 겨우 마무리하고 있다. 어쩌다보니 나의 단골 책, 이슬아 님의 책이다. 아이들 이야기로 꾸며졌다 해서 1차로 걸렀던 책. 글쓰기를 업으로 삼지 않기에 2차로 걸렀던 책. 3차에 못 이기고 결국 내 품으로 오게 되었다.
 나도 아이들을 가르쳤던 적이 있다. 사실 아이들이 아니라 다 큰 성인에 가까운 학생들이었다. 잠깐이지만 초딩들도 가르친 적이 있다. 다루는 언어가 다르고 아이들 나이가 달라 분위기는 무척 달랐지만 그때 생각이 조금 났다. 창의성 넘치고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 있다보면 내 마음까지도 함께 깨끗해지는 기분이 든다. (지도하면서 다시 흑화된다는 게 함정이지만 ;))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아이들의 글이 그대로 쓰여있어서 그런 느낌이 잘 전달되는 책이다.
 이슬아 님에게는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녀의 장점으로 꼽는 건 아마 대부분의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기본기 닦기의 어려움과 자신이 지닌 강점을 보다 자연스럽게 강조하며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점이 매력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나도 이렇게 정갈하고 군더더기 없는 글을 쓰고 싶다 느낀다. 내 글에는 남길 것보다 덜어낼 것이 훨씬 많아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꼭 한번 글쓰기 훈련을 최선을 대해 해보고 싶다. 

 

‘부지런히 쓸 체력과 부지런히 사랑할 체력. 이 부드러운 체력이 우리들 자신뿐만 아니라 세계를 수호한다고 나는 믿는다.‘

스물아홉 살인 지금은 더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

계속 쓰는데 나아지지 않는 애는 없었다.

얼마나 평범하거나 비범하든 간에 결국 계속 쓰는 아이만이 작가가 될 테니까.

내게 문학의 향기를 알려준 사람들. 사랑은 말과 몸을 버무려 완성하는 거라고 말해준 스승들.

글은 사실 머리도 가슴도 아닌 손으로 쓰는 것이라고. 쓰기를 반복적으로 훈련한 손만이 안정적이고 탄탄한 문장을 써낸다고.

‘아마도 너는 이제부터 더 깊고 좋은 글을 쓸 거야. 하지만 마음 아플 일이 더 많아질 거야. 더 많은 게 보이니까. 보이면 헤아리게 되니까.‘

‘생각나는 것을 죄다 말하지 않는 윤리에 대해 생각했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신중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사실 나는 글쓰기만큼 재능의 영향을 덜 받는 분야가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마음을 들여 반복하면 거의 무조건 나아지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신형철 평론가의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마음산책,2014)에 따르면 욕망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지만, 사랑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해진다. ... 어떤 사랑은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들기보다 내 안의 결여를 인지하도록 이끈다.

‘일기 같다‘는 피드백은 글쓴이를 부끄럽게 하는 말이었다. 그 말에는 자신과 거리를 둘 줄 모른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자위적인, 객관화에 게으른, 자기 세계 안에 갇힌, 오로지 본인을 위해서만 쓴 글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알게 되었다. 작가의 글은 일기 이상이어야 한다는 걸.

솔직함과 글의 완성도는 상관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솔직하지만 별로인 문장들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다. 내 일기장에서 쉽게 찾을 법한 문장들이었다. 어떤 솔직함은 끔찍했다. ... 위험하기도 했다. 모두가 서로의 마음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더 지옥 같을 게 분명했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쓰더라도 작가가 먼저 울어서는 안 된다고 나의 글쓰기 스승은 말하곤 했다. 그럼 독자는 울지 않게 될 테니까. 작가가 섣부른 호들갑을 떨수록 독자는 팔짱을 끼게 될 테니까.

나는 치유를 위해 글을 쓰지 않지만 글쓰기에는 분명 치유의 힘이 있다. 스스로를 멀리서 보는 연습이기 때문이다.

그 연습을 계속한 사람들은 자신을 지나치게 불쌍히 여기거나 지나치게 어여삐 여기지 않은 채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자기 연민의 늪과 자기애의 늪 중 어느 곳에도 빠지지 않고 이야기를 완성하여 독자와 관객에게 슬픔과 재미를 준다. 혹은 두 가지를 동시에 준다. 자신 말고 타인이 울고 웃을 자리를 남긴다. 그것은 사람들을 이야기로 초대하는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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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ode 2021-02-02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뽕님 덕분에 이슬아님이 친근하게 느껴지네요ㅎ 많은 문장들이 와닿지만.. 꾸준함. 결국 뭔가 결말을 맺어야 제목을 붙일 수 있단걸 다시 느껴봅니다. 뽕님두 많이 써 주세요^^

milibbong 2021-02-11 01:07   좋아요 0 | URL
^^ 제가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사실 이 책 읽으면서 엄청 뜨끔했거든요. 끔찍하게 솔직한 이야기.. 너저분한 낙서 혹은 일기 그즈음의 어떤 것들 같은 거... 너무 다 제 얘기잖아요...ㅎㅎ 두부님은 보살... 아니면 천사...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