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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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장류진 님의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작품을 통해 그녀를 안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분명하고도 확실한 느낌이 들었다. 이토록 현대적인 소설이 있을 수 있을까. 처음 서점에서 책을 후루룩 넘겨봤을 때, 이더리움이라는 단어와 그런 투자를 하는 듯한 분위기가 짐작되는 부분을 마주쳤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이럴 수 있다고? 소설이 이런 얘기를 담지 못할 거란 편견을 버려, 라며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 뒤로 많은 시간이 흘러 이 책을 읽게 되었지만, 재밌어서 하루도 안되서 금방 다 읽어버렸다. 책이 중반을 넘어갈 때는 이제 꺼질 일만 남았나 하며 조마조마했는데, 확실히 뭔가 다르긴 달랐다. 그렇지, 맞아, 요즘에는 이런 소설이 맞고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이 묻혀주신 설탕 맛은 그런 투자를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에게조차 기분 좋게, 작가님이 원하신대로, 좋은 소설이었다고 느낄만큼 충분히 맛있었다.  
 요란스러운 디자인과 다소 이상한 색채감이 맞물린 책의 표지 디자인도 책을 덮고 나니 모두 납득이 되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낌과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생각하게 하고, 동시에 나라면 어떨까 등의 상상의 여지를 풍부하게 남겨줘서 더 좋은 소설이었던 것 같다.

 

사람이 그렇게 "네네"만 반복하며 살다가는 뜨거운 증기를 가득 머금은 밀폐용기처럼 위험해진다는 것을, 그래서 열기가 비집고 나갈 숨구멍 같은 게 필요하다는 것을, 지난 3년 11개월간의 "네네" 끝에 스스로 깨우쳤다.

그냥, 인생 자체가 그랬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해가 지날수록, 한살 더 먹을수록 늘 전보다는 조금 나았고 또 동시에 조금 별로였다. 마치 서투른 박음질 같았다. 전진과 뒷걸음질을 반복했지만 그나마 앞으로 나아갈 땐 한땀, 뒤로 돌아갈 땐 반땀이어서 그래도 제자리걸음만은 아닌 그런 느낌으로. 그렇게 아주 조금씩..... 천천히..... 서서히..... 차츰차츰..... 매일매일..... 하루하루..... 그뿐이었다. 대체 무엇을 감히 더 바랄 수 있을까?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가 없던, 아니 그게 무엇인지조차 모르던 나날들.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라던 시간들. 그런 게 너무 당연해서 서글프지도 않고 억울하지도 않고 그저 일상이었던 매일과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묵고 묵은 얼룩 같은 초라한 마음들의 모양을.

"뭐랄까, 사실 그건 주문 같은 거였어. 그냥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될 거라고 믿어야만 했어. 잘되지 않을 수 있고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도 한쪽으로는 늘 날카롭게 의식하고 있어. 그래서 문득문득, 찌르듯 괴로웠어."

언제나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혹은 나 자신의 사소한 실수에도 순식간에 곤두박질쳐질 것만 같았다. 누가 툭 건드리거나 빗물에 미끄러져서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그길로 그대로 추락해버릴 것만 같았다.

두려움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깎여나가 떨어진 돌가루만큼, 딱 그만큼만 물러설 뿐이었다. 깎이면 깎이는 대로. 그때그때 조금씩 뒤로 비켜서면서. 추락의 시기를 기약 없이 유예하면서.

"돈도, 자기 좋다는 사람한테 가는 거야."

생각해보면 회사라는 공간이 싫은 건 사무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들 탓이었다. 내게 일을 주거나, 나를 못살게 굴거나,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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