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이방인의 산책
다니엘 튜더 지음, 김재성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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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명에 불과하지만) 네이버 평점 10점 만점이라 놀랐다. 내가 느끼기에는 이야기에 중심 화제가 없고, 당연한 말, 아는 말,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한 말, 그런 것들 뿐이었다. 열심히 골라서 선택한 책이었는데 재미도 흥미도 없어서 읽기 포기할 뻔했다. 딱 지금 내가 읽을 만한 책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기대가 충족되지 못해 아쉽다.


외로움은 말하자면 내 기본 사양이다. 그런데 좀더 생각하고 읽고 대화할수록 현대세계의 너무 많은 부분이 인간에게 소외감과 불행한 느낌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결과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공동체 상실과 사람들 간의 단절임을 절감했다.

우리는 이렇게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이렇게 무력감을 느낀 적도 없었다. - 지그문트 바우만 -

만짐으로써 생명을 줄 수 있다. -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 -

접촉은 초기 유아기에 중대한 요소로 결핍될 경우 안정된 성인으로 발달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접촉이 불충분한 노인은 더 외로워하고 더 일찍 죽는다. 껴안거나 등을 토닥이면 맥박이 진정되고 혈압이 내려가서 유익하다. 경험을 통해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제는 그런 신체 접촉을 덜 주고받는다. 그래서 돈을 받고 순수한 접촉을 제공하는 서비스들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한 분야에서 크게 성공했거나 적어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삶에 냉소적인 사람은 하나도 없다.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믿는 것도 어리석지만,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 또한 어리석은 태도다.

우리 자신이 아닌 제3자를 상황에 대입시키면 훨씬 더 긍정적일 수 있다.

삶이란 결국 긍정적으로, 그리고 조금은 대담하게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잘돼야 한다, 너는 나를 잘 대우해야 한다, 세상은 수월해야 한다ㅡ이 세 가지 ‘머스트must‘가 우리를 방해한다. - 앨버트 엘리스 -

수석 바이올린 주자건 백만장자건 무엇인가가 ‘반드시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순간, 자진해서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는 셈이다. 상황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무척 어렵다. 하지만 건강한 정신을 지키고 싶다면 그래야 한다. 현재를 ‘반드시‘보다 중시해야 한다.
그렇다고 자신감을 버려야 한다거나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수동적이어서도 안 된다. 삶에 만족하려면 온 마음과 열정을 바칠 만한 것들을 찾아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만 "결과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냥 최선을 다하고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랄 뿐이지"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느리게 걷기가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는 속도와 생산성, 무엇보다 ‘바쁘기 being busy‘에 중독된 상태다.

지위는 사회에 의해 규정되고 우리가 지닌 것의 가치를 남들이 인정해줄 때 지탱된다. 그런데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무리 애쓴들 궁극적으로 통제할 수 없고, 애를 쓰면 쓸수록 한심해 보이기 쉽다. 스스로의 가치를 겉으로 드러나는 지위에 근거해 매긴다면 자기 잘못으로건 아니건 남들의 평가가 달라지는 순간 내면마저 황폐해질지 모른다.

자긍심self-worth은 내면에서 나와야 하고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나 세상의 평가와 무관하게 증대되어야 한다. 삶이 다 그렇듯 결과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누구보다 낮다는 식의 믿음이나 비교가 틈입하면 안 된다. 오만해지지 않고 남보다 낫다는 생각 없이도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인간은 스스로를 웃어넘기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런데 대외적 이미지나 타인과 차별화된 지위를 사수하려고 방어적인 자세로 살아간다면 그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별해야 한다는, 상대적인 지위를 획득해야 한다는 욕구를 버림으로써 우리 자신을 해방시켜야 한다.

욕 좀 먹어도 된다. 비난받지 않기를 바라며 평생 방어적인 자세로 살 수는 없다. 비난도 칭찬도 대체로 무시하는 게 좋다.

타인들의 평가는 예측 불가능하고 오해에 바탕을 둔 것이기 쉬워 그것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은 사람은 없다.

공동체란 본질적으로 좀 지저분하고 번거로운 법이다. 생활환경을 통제할 자본이 있을 때 우리가 먼저 하는 일은 타인들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의 소중한 생활공간에 접근하고 값비싼 자동차를 만지고 귀찮게 말걸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유대의 상실이다.

평소에 베풀며 살수록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감소하고 행복감은 증가하며, 혈압은 낮아지고 예상 수명이 늘어나는 등 건강 면에서 수많은 장기적 혜택을 누리게 된다는 점이다.

진심 없는 찬사를 남발하는 사람들은 피하게 되지만, 담백하고 간결한 칭찬은 멋질 수 있다.

무의미함은 긍정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귀감으로 삼을 어떤 커다란 본보기도 의무도 없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훨씬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근본적인 무의미함은 가벼운 해방감을 준다.

바보는 삶이 본질적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똑똑한 사람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무의미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름의 방식대로 살며 즐긴다.

머지않아 외로움은 우리 시대 최악의 사회문제로 손꼽힐 것이다. 통계가 이미 말해준다. 우리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외롭고, 우리가 지금 느끼는 외로움은 건강에 대단히 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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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백은선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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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내가 싫고 좋고' 해서 선택한 책이었는데, 책장을 열자마자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마치 이상의 작품, 입체파 작품같은 책이었다. 쉽게 말해 누군가 자신(글,인생)을 이해하길 바라면서 동시에 이해하지 않길 바라는 책이다. 공감받는 건 끔찍하다고 책에도 적혀있다. 쉬운 이해와 공감에서부터 멀어지기 위해 이 책은 1,2,3,4,...8,9,10 이야 라고 말하지 않고 7! 3!! 아니 2! 9-3! 이런 식으로 말하는 책 같았다. 편안하게 읽기에는 다소 어지럽고 우울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작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알고 고른 건 아니었다. 표지와 제목만 보고 골랐을 뿐인데, 페미니즘(에 가까운) 책이었다. 나도 그 부류에 속해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완벽하게 그렇다고도 못하겠지만, 아니라고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모든 글을 옮기기에는 (이미 많은 부분을 옮겨왔지만) 너무... 이건 너무하다 싶어서 옮길 수 없었다. 읽는 것조차 마음이 힘들었다. 여성은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 여성의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은선 작가님의 시는 아직 접해보지 못했지만, 앞으로 만나게 된다면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억해보려고 한다. 작가님이 더 힘을 내서 무탈하고 안온한 마음으로 살아가시길 응원해본다.  

 

 

나는 내가 싫다. 나는 내 삶이 싫으면서 좋다.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면서 안도한다.

실패의 요인은 방정맞음, 불성실함, 소모적인 생활, 우물쭈물하는 태도,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성질, 의지박약이었다. 열거하라면 더 열거할 수 있지만. 아무튼 나는 나를 파악하는 자질만은 제대로 갖추고 있었고 그러므로 빠르게 포기했다. 한강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을.

착하다기보다 걱정이 많은 것 같고 착한 거 빼면 진짜 별 볼 일 없는 인간이 될 것 같아서 열심히 착함을 훈련한 거 같다. 자기연민이 너무 심해서 이 문장 진짜 지우고 싶다.

당장 아무하고나 만나고 싶다. 만나서 재롱도 부리고 많은 헛된 얘기를 쏟아내고 후회하면서 집으로 돌아오고 싶다. 그럼 그 사람은 은선아 은선아, 하고 잘 들어갔어? 카톡하고 그럴 텐데. 뛰쳐나가고 싶다. 소리지르고 싶다.

괴롭다. 살아 있는 게 싫고 내일은 일요일이라서 좋은데 그다음은 월요일인 게 싫다.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껍데기가 된다는 말이 있다. 너무너무 끔찍하다. 내가 시인이라 망정이다. 확실히 나는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 숨이 막힐 때 내 이름이 적힌 책등을 들여다볼 수 있고 내가 발표한 지면들도 볼 수 있다. 진짜로 보진 않지만....... 그만큼 아이와는 독립된 영토를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의 친구 엄마들의 이름을 대부분 모른다. 그들도 내 이름을 모른다. 누구 엄마, 누구 엄마, 그게 다다. 나는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이렇게 되어버리는 게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진저리나게 싫다.

지금은 그냥 별생각 없다. 별생각 없다는 게 다행스럽기도 하고 사실 조금 창피하기도 하다. 왜냐면 내가 더이상 절치부심의 마음을 갖지 못하게 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조바심이 내게 어느 정도 동력이 되어주기도 하였는데, 나는 왜 점점 마음을 잃어버리게 된 것일까?

지금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참 좋겠다. 이름은 좋은 거니까.

혼인신고서에 애초에 부모 중 누구 성을 따를 건지 명시해야 혼인신고 가능한 거 아세요? 임신 출산 육아도 안 하는 남자의 성을 내 아이한테 주는 거 이상해.

나에게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는 걸 어디 가서 절대 말하지 말라고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말한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공적인 지면에 그 사실을 쓴 일이 있고 그후에 내 시가 피해지가 쓰는 시, 라는 식으로 납작하게 이야기되는 걸 목격하기도 했다. 성매매나 성폭력을 저지른 남성 시인의 시에서 성매매 혹은 성폭력의 흔적을 찾거나 가해자가 쓰는 시, 라는 식으로는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왜 나는 낙인을 짊어져야 하고, 그들은 남자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혹은 우리가 모르는 게 있을 거라고 옹호를 받는 건가?

나는 내가 끝없이 질문하면서 그 질문에 더 올바른 대답을 하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이런 삶이 싫다. 왜 싫으냐고? 남자들은 안 그럴 테니까. 무언가를 이해하고 스스로에게 대답을 돌려주려고 애쓰는 것은 왜 늘 약자의 일인가?

내가 이해한 페미니즘은 기성의 단일화된 목소리에서부터 여러 가지 목소리로의 이행이다. 그것은 기성에 대한 부정이나 남성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 단지 조화와 존재에 대한 인정을 원하는 것이다.

여성에게는 아직도 입이 없는 것 같다. 여성은 자신이 겪은 폭력과 수치를 발화하지 못하도록 평생 동안 교육받고 내면화하면서 살아왔다.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나는 아직도 주저한다. 나는 아직도 무섭다. 그렇지만 무서워만 하고 침묵해버린다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쏟아버린 말과 하고 싶었던 말 사이에는 늘 커다란 강이 있고. 수심은 헤아릴 수 없고.

바람이 많이 불었고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리는 어떤 순간에 대해 골몰했다. 이 년 전 절교한 친구에게서 긴 편지가 왔고 편지는 나를 감동시켰고 그 친구는 드디어 나를 이해했지만 나는 더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가 멀어지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나는 알지만 말할 수 없다. 말하고 싶지 않다.

내 꿈은 사랑받는 것이었다. ... 나는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다. 그런데 나를 사랑해주는 제대로 된 사람이 없었다. 왜 그럴까? 내가 이미 너무 많이 망가져버렸나. 나는 생각한다. 내가 엉망진창이 되어도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주면 좋겠다고.

이제 내 꿈은 내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앞으로 오십 년은 더 이렇게 살아야겠지. 생각하면 너무 까마득해서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엄마가 그랬다. 인생은 길지도 짧지도 않다고.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고 이해했다.

더 큰 포부와 야망을 갖기에 어울리는 나이였는데, 포기하는 법을 먼저 내면화하면서 자란 게 서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누군가 그때 내게 너는 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면 어땠을까. 남 탓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지지와 응원을 받고 꿈의 크기에 먼저 한계를 설정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면, 하고 상상해보는 것이다.

세상에는 참 여러 모양의 마음과 삶이 있는데 우리는 너무 ‘정상성‘만 보고 듣고 배우니까 그게 싫다. 정상이고 비정상이고를 누가 정하는데? 처음부터 그런 게 있었던 것도 아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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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ode 2021-05-01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돼고 이기적이고 이해돼고 많이 다르고 솔직하고 진부하고 그런건가요.. 옳은 말인데.. 저도 이제는 너무 오래살아 꼰대 세대가 돼어 버려서 페미도 인권도 약자도 강자도 잘 모르는 사람이 돼 버린걸까요ㅠ
잘 모르겠네요 . 시인의 말들이 집중돼면서 흩어지는 이중성의 소리 같아요.. 암튼 일주일이 이렇게 마무리 돼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뽕님..

milibbong 2021-05-01 01:27   좋아요 0 | URL
이중성의 소리라...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도 읽으면서도 많이 곤란하고(?) 당황스럽고 이게 무슨 소린가 싶고 이상했고 그러면서도 공감가는 부분도 있었어요.
이중성의 소리라면... 누구나 자기 안에 그런면이 있잖아요. 그런 부분을 솔직하게 드러낸 작가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벅찬 느낌이어서 읽는 느낌도 그리 ... 좋지만도 않았지만 그런데 책을 덮고 나니 구석구석 조밀조밀하게 공감간다고 밑줄 친 문장들이 그득한 걸 보면... 또... ㅎ 이상한 일이더라구요; ㅎ
고생 많으셨어요~ 두부님 ^^ 편안한 주말 보내시길요!
 
부자들은 이런 주식을 삽니다 - 861% 수익을 올린 젊은 투자자 김현준의 실전 투자법
김현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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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유튜브 채널에서도 핫하게 초대손님으로 모셔지고 있는 김현준 님의 책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처음 봤을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웃고 넘어갔는데, 이런 고수이실 줄이야.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방송과 방송클립으로 그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 분이 책을 출간한다고 해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어? 하며 다시 보게 됐다. 심지어 책 하단에 출연한 프로그램이 유퀴즈 외에 <정산회담>, <돈워리스쿨2>까지 적혀있어서 책 출간 안내만 뜬 상태에서 정산회담을 정주행했다. 프로그램까지 재밌게 보고 책을 읽고 나니 책의 내용, 유튜브에서 하는 말, 방송에서 했던 말 그리 크게 다르진 않아도 (내가 도달할 수 없는 분야에서 뛰어난 행보를 보이시니) 다시 한번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카페에서 디저트 사진과 함께 이 책 사진을 올려놓으니 다들 주식 공부하는거냐고 물어서 움찔했다. 사실 그냥 이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목적이었는데 말이다. 주식도 하고 있긴 하지만(정확히 이 분이 하지 말라는대로 100% 실천중^^) 사실 왕창 물려서 손절도 치지 못하고 담궈놓은 상태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공부도 하긴 해봤지만, 내 머리로는 주식 '투자'는 불가하다는 결론이 났다. 마치 복권처럼 내 돈으로 주식을 사서 랜덤으로 얻어 걸릴 수익률을 기대해보겠다는 마음으로야 할 수 있지만... '정석 투자'가 방법이라면 내게는 무엇보다 어려운 일라고 생각한다. 실패 내용을 복기해보며 내린 결론은 내가 투자에 적합한 기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든 그를 알아보고 서치하셨는지, 그에게 이런 책을 출간 제의한 위즈덤하우스도 놀랍다. 저평가 우량주를 발견하신 느낌이려나! (물론 동종업계에서는 이미 알아주셨겠지만) 닳고 닳도록 들은 말이기도 하지만 정말 잘 시행되지도 않고 매번 자극이 필요한 게 투자할 때의 마음이기도 한데, 이번에 한번 쉽고 정확하고 따끔하게 매질을 맞은 것 같다. :)   


항상 현재 기준에서 우량주를 골라내고 그 주식들의 과거를 돌아보면 아쉽기 그지없을 것이다. 이것은 대표적인 생존편향의 오류다. 생존편향의 오류란 살아남지 못한 사례들을 수집하기 어려운 탓에 해당 시점에 생존해 있는 사례만을 대상으로 분석하여 성공사례를 일반화해 낙관적으로 전망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한 건에 맛을 들이면 암수(暗手)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정수(正手)가 오히려 따분해질 수 있다. 줄기차게 이기려면 괴롭지만 정수가 최선이다." - 이창호 9단 -

경영학자들은 몇 가지 (매우 달성되기 어려운) 조건이 충족되면 어떤 투자자도 주식시장보다 높은 초과수익을 올릴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경제, 산업, 기업의 변화가 주가에 빠르게 반영된다고 했다. 어떤 정보를 가지고 투자하든 주식시장 전체의 수익률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할 수 없다는 뜻이다.

투자자들이 점점 현명해지고, 투자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이 늘어나면서 시장의 효율성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대강 투자해서는 돈을 벌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물며 별다른 분석 없이 무작정 기다리기만 해서 돈을 벌 수 있겠는가? 아마도 팔아버린 주식은 더 오르고, 꾸역꾸역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더 떨어진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부자들이 공통적으로 지키는 것이 하나 있다. ‘잡초는 뽑고 꽃은 심는다‘는 점이다. 주식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속칭 물타기가 아니라 불타기(물타기의 반대말로 자산 가격이 상승할 때 추가 매입해 절대 수익금을 높이는 행위를 이르는 신조어)로 돈을 번다.

어떤 사건이 기업의 가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시장 참여자들이 그 기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말 그대로 ‘숟가락 개수‘까지 꿰고 있어야 한다. 워런 버핏이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고 잘 지켜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단 경험적으로 볼 때 직업 펀드매니저의 경우에도 한 번에 대여섯 종목 이상을 추적하려면 힘에 부친다. 그러니 수십 종목씩 투자한다는 것은 "나는 이 종목들에 대해 잘 모르니 대충만 분석하겠습니다"라는 고백과도 같다.

실제로 공부하고 노력한 만큼 수익률이 더 좋아질 수 있는 곳이 주식시장이다. 그렇다면 변동성은 우리의 친구다. 조금이라도 더 싸게 매수할 수 있도록 또 조금이라도 더 비싸게 매도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자산의 변동성이 아니라 영구적인 자본 훼손이다. 다시 말해 기업의 가치가 크게 하락하거나, 기업의 가치는 하락하지 않더라도 내가 기업의 내재가치보다 훨씬 비싸게 주식을 매수하는 것이 위험이다.

우리는 보통 새로운 보금자리를 구할 때 정말 많은 요소를 고려한다. 직장과의 거리, 학군, 주변 편의 시설 등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요소가 없다. 그러나 주식투자를 할 때는 어떠한가?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무턱대고 주식투자에 임한다. 그러고는 하루빨리 주가가 폭등하기를 바란다. 이런 식의 투자는 ‘필패‘다. 맹목적인 주가 상승에 대한 기대 외에 기업의 성장 요인을 면밀히 점검할 수 있는 사람만이 부자가 될 수 있다.

"좋은 투자가가 되려면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인내심을 주가가 떨어졌을 때, 즉 ‘본전‘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에만 쓰고 있지는 않은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를 때 섣불리 팔지 않는 인내와 좋은 타이밍이 올 때까지 사지 않고 기다리는 인내다.

이론적으로는 알아도 강인한 투자자가 되기 전까지는 매뉴얼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군중 안에 있으면서도 ‘이번만은 다를 거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영적인 투자가 존 템플턴은 투자 세계에서 가장 비싼 것을 꼽으라면 "이번만은 다를 거야(This time is different)"라는 말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투자로만 세계적인 부자가 된 워런 버핏도 연 복리 수익률은 20% 내외다. 이 정도만 확실하게 벌어도 큰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반 투자자들은 투자할 때 ‘이것만 되면‘이라는 생각으로 대박을 좇는다. ‘그것이 안 되더라도‘라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한다.

투자 아이디어가 실패하더라도 잃지 않는 방법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기존의 사업 영역만으로도 기업가치를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쌀 때 사야 한다. 둘째, 해당 투자 아이디어나 종목에 대해 시장의 관심이 많지 않아야 한다. 사실 첫 번째 조건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두 번째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두 가지로 나눈 이유는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시기마다 천차만별이라 ‘충분히 싸다‘는 것을 주관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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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ode 2021-04-26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참 다양한 분야에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많죠. 모두 두각을 드러냏 기회를 얻는건 아니지만.. 저마다 빛을 발하진 옷하더라도 궁극적으로 행복해지는 길을 걸었으면 좋겠죠. 아름다운 봄 날들. 그런 주말이 지나갑니다

milibbong 2021-04-29 23:3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열심히, 잘, 한다고 해서 모두가 빛을 보는 것도 아니고 잘되는 것도 아니라... 그게 좀 그렇네요. 두부님 말씀처럼 각자 나름의 위치에서 행복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 이제 6시가 넘어도 7시가 넘어도 아직 초저녁 같아요. 4시가 되도 해가 강렬하고 말이죠. 여름이 다가오고 있나봐요... ㅎㅎ
 
결혼 고발 - 착한 남자, 안전한 결혼, 나쁜 가부장제
사월날씨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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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박제해야 한다. 우연히 알게 되서 읽게 됐는데, 200 페이지가 안되는 이 작고 얇은 책이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모르는 내용이 아니라 너무 잘 아는 내용을, 섬세한 언어들로 미세한 틈바구니에 끼일 수 있는 사소한 문제들까지 잘 표현해주신 것 같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고, 옮기고 싶은 구절을 다 적을 수도 없었다. 이 책이 전하는 내용을 전달받으려면 요약할 것도 없이 이 책 한 권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여자쪽에 치우친 의견 아닌가 하며 이 책에서 하는 말에 이의가 있는 남자가 있다면 누가 내게 납득이 가도록 설명을 해준다면 좋겠다. 감정적으로 화가 난다거나 단순히 남자에게 불공평하다는 식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옳고 그름에 대해 피력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길 바랄 뿐이다.
 페미니스트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도 모두 페미니스트라고 말한다면 나는 페미니스트가 맞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달고 여성에 대하여 부르짖기에는 나조차 가부장제에 익숙한 사고를 하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입밖에 내는 순간 온간 나쁜 말들로 부정당하기 쉬운 시대가 되었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바뀌어가는 방향이 맞는 것 같은데,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 그런 의미에서도 논리적인 반대 의견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시부모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은 며느리에게서 나온 걸로 쉽게 의심받는다. 근거는 없다.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자꾸만 허공의 며느리를 노려본다. 아들이 그러한 결정을 했을 리가 없다고 믿는다. ‘며느리는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들이 지금 이상한 소리를 하는 이유는 그 뒤에 숨어 있을 며느리 탓이다. 조종당하는 아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시부모는 당신들의 아들을 스스로 허수아비 취급하는 게 아무렇지 않은 것 같다.

작가 박완서는 산문집 『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 에서 탁월한 비유를 들어 이러한 여성의 처지를 설명한다. 즉, 좋은 주인을 만나 사람 대접받는 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단 한명이라도 종이라는 이유로 박해받는 게 정당한 사회라면 아무리 나머지 종들이 주인과 겸상을 하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사람 대접이 아니라 특혜를 받고 있을 뿐이며, 특혜란 권리가 아니기에 언제든 빼앗겨도 항의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팔자 좋은 여자도 팔자 사나운 여자의 고통에 동참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남자가 겉보기에 효자 노릇을 하는데 알고 보면 단지 갈등을 만들기 싫어서, 또는 갈등을 대면하고 처리해야 할 자신의 임무가 피곤하고 번거로워서 아내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 부모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자기의 편의가 목적인 비겁함. 부모의 안녕에 전보다 큰 관심이 생겼다기보다 부모를 설득하거나 이해시키기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조금도 쓰지 않은 채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 이것이 남편의 효였다.

남편의 효가 게으름과 비겁함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게 되자, 가부장제 안에서 ‘남자가 효자라서 아내를 힘들게 한다‘는 말의 맥락도 똑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남자가 효자라서 아내를 힘들게 한다는 것은 남편이 부모와 아내 사이를 조율할 의지가 없음을 뜻한다. 며느리로서 부여받은 부당한 요구들에 대해 부당하다는 인식이 희박하며 설령 있더라도 본인이 부모와 논쟁하고 설득할 생각까지는 없다. ‘남자가 효자라서‘란 부모에게는 착한 아들인 척, 아내에게는 효자인 것처럼 굴지만 실상 자신의 원가족과 새로운 가정을 위해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이기심이 본질이며, ‘아내를 힘들게 한다‘란 그에 따른 책임 전가와 며느리의 대리 효도를 의미한다. 이것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통용되는 효의 실체인 것이다.

이 사회는 서툴다는 이유로 남성들에게 돌봄노동의 책임을 부여하지 않으려 한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면 생기는 일‘이라며 아이를 방치하거나 학대하는 등 적절한 돌봄을 제공하지 않는 남성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전시한다.
이분법적으로 한쪽 성별은 단순하고 무심하게, 한쪽은 섬세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도록 타고난 게 아니다. 사회적으로 무심함을 용인받는 성별을 정해놓은 것뿐이다.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것도 권력이다. 남성은 무심해도 되는 특권을 가졌다. 남편이 나의 생활 방식이나 필요에 무심한 반면, 내가 남편의 사소한 호오까지 관찰하고 인지하는 것은 철저한 사회화와 학습의 결과이다.

"집안일은 여자 몫이지." 이렇게 노골적인 말은 이제 누구도 하지 않는다. 대신 상대에 따라 다르게 묻는다. 여자에게는 "남편이 집안일 잘 도와줘?"라고, 남자에게는 "와이프가 아침밥 차려줘?"라고. 혼자 사는 남자 방이 지저분하거나 냉동실에 인스턴트 식품이 가득한 걸 보고 사람들은 어서 장가가야겠다는 농담을 던진다. 반면 여자가 비슷한 농담을 듣는 순간은 요리를 좋아하거나 집을 잘 꾸미거나 과일을 능숙하게 깎을 때다.

여성은 개인적 야망이나 환경과 관계없이 언제든 일을 그만둘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퇴사자 취급을 받는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면 임시로, 재미로, 자아실현을 위해, 결혼할 때 직업이 있는 게 아무래도 좋아서 일하는 게 되고, 결혼한 상태라면 역시나 임시로, 가정의 추가 수입을 위해, 아이들의 간식비와 학원비에 보태려고, 용돈벌이로, 조금 더 악의적으로는 일 욕심이 많아서, 이기적이라서 일하는 게 된다. (가사, 돌봄, 육아노동을 해야 하는데 그것에 온 에너지를 쏟지 않고 임금노동을 하니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본분이 아니기에 여성의 일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게 된다.)

‘여자에게 좋은 직업‘은 정시퇴근이나 육아휴직이 가능해서 가사와 양육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고, 정년이 보장되어서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지만 그렇다고 너무 많은 돈을 벌어 남편을 기죽이지도 않는 직업을 말한다.
다시 말해 ‘여자에게 좋은‘ 게 아니라, ‘여자에게 돌봄노동과 임금노동을 이중으로 시키기에 좋은‘ 직업이 정확한 정의인 것이다.

여자로 산다는 건 어떤 행동을 해도 이기적이라는 딱지를 피할 수 없는 것만 같다. 여성은 아이를 낳고 커리어를 지속해도 이기적이고, 그렇다고 아이를 낳지 않고 커리어에 집중해도 이기적이며, 전업주부를 하면 남편 돈으로 놀고먹어서 이기적, 결혼을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어떤 선택을 내려도 비난받는, 모든 선택지가 벌칙인 삶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기혼은 기득권이 맞다. ... 결혼해서 얻는 것이라고 열거한 앞의 목록을 짚어보며 나는 오랜 의문을 풀 한 가지 힌트를 얻는다. 여성 작취의 긴 역사를 돌아보며 여성들이 왜 이토록 불리한 환경을 견뎌온 것인지 의문을 품곤 했다. 적어도 가부장적 결혼 제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답을 얻은 것 같다. 지금 이 사회는 안전과 경제력을 포함하여 결혼을 통해 얻는 이점들로 여성을 볼모 잡고 있는 모양새다. 애초에 삶과 생존에 필수적인 것들을 여성에게서 박탈해놓고 그것들을 줄 테니 결혼하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그렇게 여성이 부당함을 견디게끔, 결혼 제도로 걸어 들어가게끔 사회 제도가 설계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물어야 한다.
왜 반드시 결혼을 통해 얻어야 할까? 성인이 독립적으로 생활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 경제력, 주거 환경은 ‘성별에 관계없이’ ‘결혼이 아니어도‘ 보장받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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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ode 2021-04-12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돼었을지 모를 이 불평등 또는 차이는 어떤 단어로 표현하기도 버거운 지겅에 이른듯 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저는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공지능이든 뭐든 세상이 뒤집어지고 인간종이 개벽이 일어나지 않는한 이 차이는 없어지지도 바뀔수도 없지 않을까.. 이렇게 글을 통렬하게 쓴 그 작가의 표현이 날카로울수록 실은 그 자신의 논리들도 베이고 아파지지 않나 싶습니다. 저를 젠더 감수성이 없는 꼰대라고 할 수도 있을것 같은데.. 사회적으로 여성의 기본권과 차별을 없애는건 마땅하고 노력할 일인데.. 그 불공정이 차이로부터 삐죽 삐죽 솟아난 부작용들이고 뿌리깊은 것들이라면 어떻게하면 공정한 차이의 공감이 가능할까요. 그 표현과 그 달성을 위한 노력은 어디까지가 정당한 것일까요. 저 역시 이런 부분에서 한마디도 할 처지는 못돼지만 생각할 수록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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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나쁘지 않았지만, 다소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별점이다. 평화롭고 따스한 마음이 깃든 책이었다. 다만 다른 이를 통해 듣는 책 내용을 즐기지 않을 뿐더러, 내가 지독한 무감정과 고독, 회의 등 부정적 감정에 오래 노출된 상태라 작가님의 다정한 말들이 허공에 붕 뜬 말, 알맹이가 없는 말들처럼 느껴졌다. 본의 아니게 죄송하다. 내 취향의 글과 결이 다른 것 같아 작가님의 소설도 한번 읽지 못했는데, 어렵게 접한 에세이 책에서 평점을 낮게 드려서... ;(


이상하고 슬픈 일투성이인 세상이지만 당신의 매일매일이 조금은 다정해졌으면. 그래서 당신이 다른 이의 매일매일 또한 다정해지길 진심으로 빌어줄 수 있는 여유를 지녔으면.

행복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상을 괄호 안에 넣어두는 휴가가 삶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것처럼, 인간에게는 때로 진실을 괄호 안에 넣어두는 거짓말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인생이 그래서 그래.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더뎌도 비극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으니까.‘
- 필립 로스, 울분

네 마음의 집이 잘 보이지 않을 때 / 스러져 갈 때 /
마음의 방에 혼자 있을 때 / 창밖으로 비가 올 때라도 //
걱정하지 마. // 이 세상에는 다른 마음들이 아주 많거든. //
그 마음들이 네 마음을 도와줄 거야. / 언제나 너를 도와줄 거야.
- 김희경, 마음의 집

어느 한 가지를 깊이 있게 할 줄 몰라서, 여기저기만 기웃거리다가 그 무엇도 제대로 쌓아 올리지 못한 인생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소설이 삶을 닮은 것이라면, 한길로 꼿꼿이 가지 못하고 휘청휘청 비틀댄다 해도 뭐 어떤가. 내가 걷는 모든 걸음걸음이 결국엔 소설 쓰기의 일부가 될 텐데.

나의 말이 타인을 함부로 왜곡하거나 재단하지 않기를.
내가 타인의 삶에 대해 말하는 무시무시함에 압도되지 않기를.
나의 글에 아름다움이 깃들기를.
나의 글이 조금 더 가볍고 자유로워지기를.
그리하여 내가 마침내 나의 좁은 세계를 벗어나서 당신에게 가닿을 수 있기를.

가족이란 대체 뭘까? 잘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영영 이해할 수 없고, 서로를 가장 견딜 수 없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가장 친밀한 공동체인 가족.

병원이라는 곳은 참 이상한 장소다. 나를, 그리고 상대를 좀 더 밀도 있게 바라보게 하니까. 그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어쩌면 병원이 연약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하는 장소이기 때문인 것도 같다.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열정이나 도취를 쉽게 떠올리지만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청춘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한 게 아닐까 가만히 생각해본다. 넘치는 건 젊음뿐, 상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릴 여유는 조금도 갖지 못해 서로를 오독하는 시기를 지나야 우리는 사랑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해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고도. 공고한 ‘나‘의 성을 허물고 타인에게 자리를 내어줄 때, 마침내 사랑은 그 눈부신 폐허에서 시작할 테니까.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저 묵묵히, 하루와 하루 사이를 박음질하듯 이으며 살아갈 뿐이니까.

무한히 번져갈 때에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에 완성이 영원히 지연될 수밖에 없는, 사랑. 사랑의 속성이 그런 것이라면,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오늘도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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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ode 2021-04-11 0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토요일을 보내셨어요 뽕님
오늘 바깥을 좀 돌아다녔더니 살짝 피곤한 밤입니다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신것처럼, 때론 세상 다정한 말들이 의미없는 가벼움으로 들려올때가 있는 듯 해요
화자가 그러했을 수도 있지만 내게도 그런 맘이 있어서겠지요.. 흠. 편안힌 밤 돼세요^^..

milibbong 2021-04-11 20:27   좋아요 0 | URL
두부님은 외부 일정을 보셨군요. 계획한 일들은 잘 마치셨나요?
전 어제는 일을 하고 오늘 잠깐 나들이 겸 산책을 다녀왔더니
살짝 피곤하긴 하네요 ^^ 나들이 한 것 이상으로 앉아서 먹기 바빴는데 말이죠 ㅎ
오늘 나갔다온 일들 다 정리하고 씻고 빨래까지 하려고 했는데
리뷰 하나 올리기가 이렇게 벅차서야... ㅎㅎ 나머지는 다 .... ㅋㅋㅋ ㅠㅠ
이제 다시 한주가 시작되겠죠? ㅎ
내일 비온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은데... 맞다면 우산 잘 챙기시고
다시 새로운 힘 내시길 바랄게요 ㅎㅎ 오늘도 편안한 밤 하세요 두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