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소준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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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다. 내게 사회과학책은 어려워서 접근금지 영역이었는데, 이 책은 왠지 끌렸다. 내가 '가난한' 편에 속하기 때문이었을까? 이 책은 넓은 영역의 문제가 아닌, 딱 한 가지, '재활용품 수집하는 노인'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면서 깊이 와닿아 남일이 아닌 것처럼, 그저 책을 읽는 게 아닌 것처럼 함께 생각하며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을수록 작가가 지적하는 현실의 문제점도 명확하게 보였고, 작가가 하고픈 말이 뭔지도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이 문제를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사람이 셋 이상만 모여도 그들의 의견이나 취향을 통일시키는 게 어려운데,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을 한데 '노인'이라고 묶어서 그들이 겪는 문제를 타개할 방안을 공통적으로 마련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떤 위대한 정책가가 와서 최선의 해결책을 내놓아도, 그것을 다른 입장에서 보면 또 다른 문제가 보일 테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진 않지만, 정책을 펼치는 사람들은 사실 머리가 상당히 비상한 인물들인 것이다. 일 제대로 안하고 세금만 축낸다고 욕할 때도 많지만, 그 와중에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자들은 얼마나 머리가 아플지도 짐작이 간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간과했던 걸 깨달았다. 그동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국민연금, 노령(기초)연금 등으로 사회보장제도의 혜택도 많이 보시는 것 같단 생각이 있었는데, 실제로 지금 '노인'이 되셔서 '폐지를 수집하는' 일 등으로 생계를 연명하시는 분들은 그런 혜택이 생기기 전에 나이를 드셨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건 조금 충격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사회의 안전망에도 속하지 못하고 혜택도 받지 못해서 매번 끼니 걱정을 하며 어렵게 살아가시는 분들도 계시다는 거니까... 새삼 마음이 다시 아프면서, 나도 세상이 조금씩 더 나아져가도록 바른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환경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노인분들에 대한 기부활동도 하도록 작은 것에서부터 신경쓰려고 한다. (책에서는 노인에 대한 기부활동도 실상은 자신을 위한 거라고 그리 긍정적으로 보진 않았지만 말이다.)          


현재 가장 문제인 지점은 노인계층의 가난이다. ... 2017년을 기준으로, OECD 가입 국가 가운데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7.4%로, 미국의 17.8% 다음으로 높다. 게다가 65세 이상 노인만을 살펴볼 때,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43.8%였다. OECD 가입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여기에 65~69세의 고용률에서 한국(45.5%)은 아이슬란드(52.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고, 70~74세의 고용률은 33%로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가장 높았다. 즉 한국의 노인은 일을 많이 하는데도 빈곤하다는 뜻이며, 이는 현재 노인들에게 노후 생활의 경제적 기반이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노인이 하는 노동의 대부분은 질 낮은 일자리에서 이루어지며, 따라서 노인의 고용률이 상승한다 해도 빈곤율이 낮아지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적었지만, 의문이 든다. 노인이 꼭 일을 해야 할까? 정부는 일정 이상의 나이가 된 사람들을 ‘노인‘이라 부르며,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은퇴‘를 하게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노인‘의 ‘고용률‘을 계산한다. 이건 모순된 상황이 아닐까? 게다가 노인들의 가난 문제에 대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식을 택한다. ‘은퇴‘를 하게 해놓고, 질 낮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답은 은퇴를 재고하자는 것과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사회보장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으로 나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가난한 사람, 특히 가난한 노인에 대한 이야기는 ‘통계‘나 ‘가난한 장면‘을 통해 이루어지는 폭로와 경고의 형태가 많다. 더구나 ‘재활용품 수집 노인‘이란 가난의 표상으로 쓰이곤 한다. 노인의 동년배들은 연민을 표하고, 이보다 젊은 세대는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실패의 전형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사회적 대처는 미미하다. ... 정작 필요한 건, 노인의 생활을 개선할 실질적인 방편이다.

윤민석(2015)의 연구에 따르면, 서울에서 ‘피고용‘ 노인은 (대개) "근로조건과 고용기간에 대한 명확한 계약 없이 불투명하게 일을 시작하는 경향이 있으며, 근로시간은 길고, 임금은 낮으며, 여러 가지 차별을 겪는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고용불안을 겪으면서" 일을 한다.

사실 착취의 문제는 최초로 상품을 생산한 제조업자에게서 시작된다. 즉, 상품과 함께 포장재를 생산한 제조업자와 소비자에 포장재를 처리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데, 이를 노인들이 전용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노인들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틈을 타 재활용품을 낚아채는 것이다. 즉, "기술적 진보와 기업조직의 변화, (소비자의)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을 사용하는 습관, (불완전한) 도시 당국의 쓰레기 수거 시스템", 그리고 생산자가 생산품의 처리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상황이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을 존재하게 한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가난한 노인들에 대해 ‘열심히 살지 않은 젊은 날의 결과‘라거나 ‘부양해줄 자녀와의 어떤 문제‘가 있어 저렇게 사는 사람이라고 단언하고 만다. "역시 가난한 노인들은 가난한 이유가 있어."라며 혀를 차기도 한다.
그렇지만 노인들의 삶이 순전히 개인의 잘못 때문에 생겨나는 걸까? 가난하고 싶어 가난해진 사람은 없다.

비경제활동인구로 여겨지는 65세 이상 노인들을 다시 정부의 재정으로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은 노인들의 삶을 ‘매년 초‘에 열리는 일용직 채용시장에 밀어 넣는 일로, 그들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정책이다. 더구나 우리는 노인들이 일하지 않더라도, 사회서 보호받을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재활용품 수집 노인의 일을 다른 것으로 전환시킬 방법은 사실상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선해야 할 일이란 노인들이 일을 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일이며, 그를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 사회의 합의를 끌어낼 필요가 있다.

그녀는 늘 열심히 살았다. 풍족했던 젊은 시절엔 자녀들을 잘 키워보겠다며, 나이 든 지금엔 자신을 스스로 건사해보겠다며 말이다. 그녀의 노력은 언제 끝나게 되는 걸까. 이 질문 앞에 설 때마다 아득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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