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말들 - 사랑도 혐오도 아닌 몸 이야기 아르테 S 5
강혜영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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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느낌의, 하지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고 진작부터 논의됐어야 할 이야기들이었다. 다양한 작가의 '몸' 이야기가 있었고, 그 중에는 내가 좋게 봤던 영화 '아워 바디' 감독의 이야기도 있었다.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쓴 백세희 님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우리 엄마도 타인에 대한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외모에서 시작하는 편이다.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않은 몸으로 사회 표준치를 벗어난 채 살아오면서 받아온 스트레스가 있어서 난 그러지 않으려고 하고, 엄마에게도 제발 그러지 좀 말라고 말씀드리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그런 시선과 기준은 바꾸기 어려운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는 천천히 바꿔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또 이 책을 읽으며 내 몸(을 긍정하는 일)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몸의 영역에는 쉽거나 작은 실천이 없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을 상대하는 용기, 나이듦을 인정하는 것, 아픈 상태도 인생의 소중한 부분이라는 인식, 남의 몸에 대해 되도록 적게 말하기부터 시작하자.

내 몸을 미워하는 날보다 사랑하는 날이 훨씬 많아지기를 꿈꾸며 산다. 타인이 타인을 피부나 몸무게, 장애 등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게 당연한 세상을 꿈꾼다. 그래서 나부터 그렇게 하려고 한다.

몸, 즉 나 자신에 대한 적대감, 분노, 좌절, 비참함, 세상에 대한 원망, 기력 없음...... 나는 이 글을 쓰기 이전에, 우선 나(몸) 자신과 싸워야 했다. 나에게 몸은 절실히 바꾸고 싶은 그 무엇, 그러다 안 되면 버리고 싶은 것이다.

인생의 고통은 몸(자아)을 긍정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내 몸은 나의 것이다‘가 아니라 ‘내 몸이 나다‘. 우리의 정신이 몸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이 바로 나인 것이다. 정신은 몸에 속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몸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은 곧 자아관이 된다.

페미니즘이 낯설지 않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여성은 남성 사회가 만든 몸 이미지에 갇혀 있다. 남성의 존재성은 돈, 지식과 권력으로 평가되는 반면, 여성의 시민권은 외모로부터 시작된다.

‘사회적 약자‘는 평생 자신을 사랑하는 문제와 투쟁해야 하는 이들이다. 성별, 인종, 계급, 나이 등은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해석이다.

‘사회적 약자‘는 평생 자신을 사랑하는 문제와 투쟁해야 하는 이들이다. 성별, 인종, 계급, 나이 등은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해석이다. 몸의 영역에는 쉽거나 작은 실천이 없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을 상대하는 용기, 나이듦을 인정하는 것, 아픈 상태도 인생의 소중한 부분이라는 인식, 남의 몸에 대해 되도록 적게 말하기부터 시작하자.

아주 오랫동안 내 몸을 혐오했고 또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 사랑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라는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애초에 우리 삶이 그렇게 쉽게 온점을 찍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도 하고.

어제 술을 마셨다면 내 몸을 사랑하지 않는 날이 되고, 오늘 운동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면 내 몸을 사랑하는 날이 된다. 언제든지 나는 나를 사랑하거나 싫어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랑하지 못했다고 해서 나 자신을 통째로 부정하거나 자책할 이유도 없다.

책, 광고, 드라마, 영화 등 미디어에서는 늘 말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당신의 모습이 어떻든 당신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난 이 말이 완전 별로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날 사랑해야 한다는 마음 자체가 억압과 폭력이 된다.

내 몸을 아주 오랫동안 혐오했던 역사는 점점 더 깊고 진한 혐오의 세계를 항해하는 것과 같았다. 반대쪽에는 사랑이 있고, 나는 그곳으로 가기 위해 노를 힘껏 저어보지만 아주 작은 장애물에도 다시 저 멀리 밀려나고 만다.

내 몸이 싫은 날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상의 혐오 표현을 자제하려고 노력한다. 사랑하지는 못해도 혐오하지도 않는 내가 되고 싶어서.

사실 365일 내 몸이 마음에 들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게 더 이상하고 부적절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내 몸을 미워하는 날보다 사랑하는 날이 훨씬 많아지기를 꿈꾸며 산다. 타인이 타인을 피부나 몸무게, 장애 등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게 당연한 세상을 꿈꾼다. 그래서 나부터 그렇게 하려고 한다.

내 몸은 즐거움을 유지하기 위한 것, 내 몸에 대한 노력과 마음가짐은 즐거움을 연장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내 몸과 함께 즐겁게 살고 싶다.

섹스를 한다는 것, 누군가 내 몸 깊이 파고드는 것을 허락하는 것보다 벗은 몸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실이 더 두려웠다. ... 그리고 비슷한 경험이 축적되면서 성인이 되어서도 섹스는 왠지 부담스럽고 불편한 것으로 굳어져갔다.

잠잠하던 호수에 조약돌을 하나 던지면 물결이 소리 없이 천천히 넓게 퍼져나간다. 그러나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존재성을 부정하지 않는 것, 그 존재를 있는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작은 조약돌과 같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몸과 삶은 당사자 본인의 것이다."
참 쉽고 간단한 말인데도 다들 어려워하는 기본적인 것.

이제껏 사회가 만들어준 겉모습의 틀 가운데 정말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있을까. 화장, 옷, 행동거지...... 타인을 해치는 일도 아닌, 스스로 선택한 길에서 여성이라는 굴레에 매여 너무 겁을 먹고 있는 게 아닐까. 여성들이 어떤 일들에든 조금 더 용기를 내는 순간들이 많아지길 바라본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평균 여성으로 살면서 몸의 외형 때문에 시간적, 자본적 비용을 이미 치를 대로 치렀다. ... 내 가치를 몸의 겉껍질에 맡기는 건 단단한 반석이 아니라 흐물거리는 젤리 위에서 자기애라는 계란 한 바구니를 들고 불안정하게 서있는 것임을 깨닫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몸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이 쉴 새 없이 교차하는 사회에서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이다.

계속 살아야 하니까, 이왕이면 불행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니까, 타인의 시선을 벗어나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긍정적인 결말이 아닐까.

몸은 내가 지상에서 가지고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사적인 공간이면서 늘상 노출되어 있는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몸과 몸이 만나는 일은 쉽고도 어렵다. 신뢰가 없으면 연결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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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찌기만 하고 빠지지 않을 때 읽는 책 - 나잇살, 만성피로, 통증 잡는 최고의 체질 개선법
기무라 요코.니시자와 미카 지음, 장은주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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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을 때 (내게) 인상깊거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구절을 표기하며 읽고, 다 읽고 나면 표기한 부분을 일일이 입력해서 책 내용을 정리한다. 그 정리가 끝나고 나야 리뷰를 쓰는데,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꼭 하는 작업이다. 이런 습관을 들이고나니 책 내용을 조금도 놓치기 싶지 않아서 옮겨적을 양이 꽤 늘어나는 편이다. 이렇게 한다고 이 내용들을 모두 습득하는 것도 아니지만, 왠지 루틴이 되어버려서 이렇게 해야만 책 한권을 제대로 읽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 책도 보기에는 참 가볍고 쉬워 보였다. 실제로 그렇기도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아는 내용이더라도 실행을 잘 못하다보니 가볍게 넘길 수가 없었다. 특히 다른 다이어트 관련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은 한방에서의 관점으로 쓰여졌다. 소비하는 양(칼로리) 이상으로 먹었다고 살이 찐다는 간단한 논리가 아니라, 흔히 말해 진짜 '나잇살'이라고 부르는 살이 찌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 것 같다. 한방도 나름대로의 원칙과 효능 등이 있겠지만 '질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선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병이 생기기 전 몸(몸의 에너지,氣)을 다스리는 부분에서는 한방이 꽤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책 내용을 정리하며 중요하다고 표기한 부분을 다시 읽어보니 딱 저 한 문장이면 책의 핵심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몸의 오장육부를 잘 다스려야 나잇살도 물리칠 수 있고, 건강한 몸을 만드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개인적으로 씁쓸함을 달랠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지금, 이미 나는 오장 중 4개의 장이 망가져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병으로 인해 섭취 제한에 걸린 음식들도 많고 말이다. 책에선 좋다고 추천하지만 나는 먹을 수도 없는 상태...) 비단 살을 빼지 못할거라 생각해서가 아니라, 애초부터 건강한 몸, 최소한 보통의 몸으로 태어나지 못했다는 게 조금 슬퍼졌다.  


신장은 성장과 발육을 촉진하는 한편 노화와 여성 호르몬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오장 중의 하나다. 나이가 들어 신장 기능이 약해지면 하복부와 엉덩이, 허벅지 등 하반신을 중심으로 지방이 붙는다.

검정콩이나 검정깨같은 블랙 푸드, 꼬시래기와 다시마, 미역, 톳 같은 해조류의 적극적인 섭취는 신장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수비 방법이다.

비장과 간의 약화로 더 살찌는 몸이 된다.

35세부터는 신장(내분비), 비장(위), 간(자율신경)을 돌보는 것이 평생 다이어트가 필요 없는 몸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지방을 전혀 섭취하지 않으면 오히려 살이 찌기 쉽고, 잘 빠지지도 않는다.

오미의 관점에서 볼 때, 신맛이 단맛을 억제해 주기 때문이다.
신맛 식품으로는 매실 절임이나 식초, 자몽, 크랜베리, 자두, 버찌, 딸기, 리치 등이 대표적이다.

신장은 다리와 허리 등 하반신의 기능과 연관이 있다. 따라서 근육 트레이닝인 스쿼트 등으로 큰 근육이 있는 하반신을 단련하는 것이 신장 관리에 효과적이다.
또한 큰 근육은 작은 근육보다 소모하는 에너지의 양이 크고 에너지를 생산하는 힘도 강해서 큰 근육을 단련하면 지방을 효율적으로 연소 분해할 수 있다.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데 계속해서 위로 음식을 보내면 위가 쉬지 않고 작용하여 저절로 소화 흡수 능력이 떨어진다.
우선 매일 정해진 시간에만 식사하여(간식 아님) 배가 비어 있는 감각을 느껴 보기 바란다.

먹는 양이 많으면 잠자는 동안 위가 쉬지 못하고, 특히 단것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오히려 비장에 무리가 갈뿐더러 신장의 작용을 억제하여 신기가 줄어들므로 나잇살 대책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

* 소비보다 공급 에너지가 큰 유형 = 식독 체질

- 저녁은 작은 밥공기에 잡곡밥으로, ... 적어도 20~30회 씹어 포만감이 들게 한다.
- 채 썬 양배추나 초절임 등 섬유질이 풍부하고 포만감이 드는 음식을 맨 먼저 먹는다.
- 음식의 20%는 남긴다. ... 이런 식습관을 유지하여 배가 80%만 채워지는 감각을 몸에 익힌다.

* 혈액순환이 안 되어 노폐물이 쌓이는 유형 = 어혈 체질

- 순환이 잘되지 않으면 살찔 수밖에 없다.
근육 트레이닝으로 근육을 늘리는 것도 냉증 개선으로 이어져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다. ... 특히 여성은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근육량이 적어 몸이 차가워지기 쉬우므로 근육량을 늘려 몸을 따뜻이 해 대사가 원활하게 해 줘야 한다. ... 꽉 끼는 속옷을 입는 것은 금물이다.
- 단백질이 몸을 따뜻하게 한다.

* 몸속 물의 흐름이 나쁜 유형 = 수독 체질

- 잘 붓는 사람, 쉽게 피로해지는 사람은 이 유형 ... 수분을 섭취하는 다이어트는 절대 맞지 않는 체질이다. 살을 빼고 싶다면 오히려 위를 튼튼하게 하여 체내에서 남은 수분을 밖으로 배출할 필요가 있다. 체내에 수분이 남아 정체되면 몸이 차가워지기 쉬우므로 이 유형의 사람은 냉증을 앓는 경우가 흔하다. ... 물살 유형의 사람은 특히 지방을 주의해야 한다.
- 지방이 적은 고기를 소화하기 쉽게 조리할 것
수독 체질인 사람은 근육을 늘리려고 격렬한 운동에 몰두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 다음날 피로가 남지 않을 만큼의 운동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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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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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장류진 님의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작품을 통해 그녀를 안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분명하고도 확실한 느낌이 들었다. 이토록 현대적인 소설이 있을 수 있을까. 처음 서점에서 책을 후루룩 넘겨봤을 때, 이더리움이라는 단어와 그런 투자를 하는 듯한 분위기가 짐작되는 부분을 마주쳤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이럴 수 있다고? 소설이 이런 얘기를 담지 못할 거란 편견을 버려, 라며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 뒤로 많은 시간이 흘러 이 책을 읽게 되었지만, 재밌어서 하루도 안되서 금방 다 읽어버렸다. 책이 중반을 넘어갈 때는 이제 꺼질 일만 남았나 하며 조마조마했는데, 확실히 뭔가 다르긴 달랐다. 그렇지, 맞아, 요즘에는 이런 소설이 맞고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이 묻혀주신 설탕 맛은 그런 투자를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에게조차 기분 좋게, 작가님이 원하신대로, 좋은 소설이었다고 느낄만큼 충분히 맛있었다.  
 요란스러운 디자인과 다소 이상한 색채감이 맞물린 책의 표지 디자인도 책을 덮고 나니 모두 납득이 되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낌과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생각하게 하고, 동시에 나라면 어떨까 등의 상상의 여지를 풍부하게 남겨줘서 더 좋은 소설이었던 것 같다.

 

사람이 그렇게 "네네"만 반복하며 살다가는 뜨거운 증기를 가득 머금은 밀폐용기처럼 위험해진다는 것을, 그래서 열기가 비집고 나갈 숨구멍 같은 게 필요하다는 것을, 지난 3년 11개월간의 "네네" 끝에 스스로 깨우쳤다.

그냥, 인생 자체가 그랬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해가 지날수록, 한살 더 먹을수록 늘 전보다는 조금 나았고 또 동시에 조금 별로였다. 마치 서투른 박음질 같았다. 전진과 뒷걸음질을 반복했지만 그나마 앞으로 나아갈 땐 한땀, 뒤로 돌아갈 땐 반땀이어서 그래도 제자리걸음만은 아닌 그런 느낌으로. 그렇게 아주 조금씩..... 천천히..... 서서히..... 차츰차츰..... 매일매일..... 하루하루..... 그뿐이었다. 대체 무엇을 감히 더 바랄 수 있을까?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가 없던, 아니 그게 무엇인지조차 모르던 나날들.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라던 시간들. 그런 게 너무 당연해서 서글프지도 않고 억울하지도 않고 그저 일상이었던 매일과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묵고 묵은 얼룩 같은 초라한 마음들의 모양을.

"뭐랄까, 사실 그건 주문 같은 거였어. 그냥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될 거라고 믿어야만 했어. 잘되지 않을 수 있고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도 한쪽으로는 늘 날카롭게 의식하고 있어. 그래서 문득문득, 찌르듯 괴로웠어."

언제나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혹은 나 자신의 사소한 실수에도 순식간에 곤두박질쳐질 것만 같았다. 누가 툭 건드리거나 빗물에 미끄러져서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그길로 그대로 추락해버릴 것만 같았다.

두려움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깎여나가 떨어진 돌가루만큼, 딱 그만큼만 물러설 뿐이었다. 깎이면 깎이는 대로. 그때그때 조금씩 뒤로 비켜서면서. 추락의 시기를 기약 없이 유예하면서.

"돈도, 자기 좋다는 사람한테 가는 거야."

생각해보면 회사라는 공간이 싫은 건 사무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들 탓이었다. 내게 일을 주거나, 나를 못살게 굴거나,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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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전하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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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쌓인 책들이 많아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간 지금에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번에 수상한 작품들은 작년 수상작들보다 더 친밀하고 읽기 재밌는 작품들로 구성된 것 같다. 평론가들 사이에서 작품을 해석했을 때 훌륭한 작품보다 독자들에게 조금 더 다가가는 작품이 되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기도 해서 책을 읽을 때 꽤 즐거웠었다. 작품성, 작가의 이념과 말하고자 하는 말, 또 사회적 화두나 젠더 갈등이나 이슈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들에 너무 몰입되서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덜하게 해선 안될 테니까. 특히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다보니 매년 갈수록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도 있었고, 그래서 읽기마저 거북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문제들조차 소설의 매력 속에 녹아져있어 읽고 받아들이기가 훨씬 수월했다.

 내가 누군가의 부모는 아니지만, 또래 친구들을 보면서 '아이를 기르는 일'에 대해 생각할 때가 많다. 그렇게 감정이입이 되서 그런지 (그게 아니더라도 제일 재밌던 작품이기도 하지만)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이 아주 인상깊었다. 이를 테면 뒷통수를 아주 제대로 맞아서 슬픈 그런 작품이었다고나 할까. ;) 그 외에도 전하영 님의 작품은 역시 대상을 수상할 만하다고 느꼈고, 각각의 작품들이 모두 의미 있고 재미있었다. 매년 이렇게 좋은 작품들과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게 느껴진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상대를 찾는 일이 정말 드물어졌다.

"어린 사람들이 사랑이 많죠. 거의 심장을 내놓고 다니는 수준이랄까."

나의 우울과 상관없이 봄날은 아름답기만 했다. ... 항상 돌아올 것만 같은 이 계절들. 앞으로 몇 번이나 볼까. 운이 좋으면 삼사십 번쯤 더? 운이 안 좋으면...... 그건 아무도 모르지. 모르는 일이야. 아무것도. 정말. 모르는 일이지 않나? 인생이란 게 흐흐.

... 내 인생을 망치고 싶었다. 아무렇게나 내키는 대로 마음대로 살다가 서른 살 무렵에 죽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네가 모르는 게 뭔지 알아? 원하는 게 있으면 노력해야 돼. 사랑받으려면 정말 죽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연수와 다닐 때면 ‘다른 한 여자‘의 역할은 항상 내 차지였다. 사랑에 빠지는 여자와 혼자 남는 여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여자가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두 친구 중 더 아름다운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내내 분투했다. 연인의 탄생에는 항상 목격자가 있는 법이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야기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목격자 역을 맡은 여자에 대해 생각했다. 삭제된 분량의 삶. 나는 지난 삶의 대부분을 목격자로 살아왔으므로 남은 여자의 삶에 대해 항상 궁금해해왔다. ... 여자 주인공의 특별함을 돋보이게끔 하기 위해 평범함의 기준처럼 제시되는 삶.

우리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각자의 굴욕을 꿋꿋이 견디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요즘엔 집에 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옆에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거. 좀 망망대해에 혼자 떨어진 느낌인데, 그게 또 너무 행복한 거야."

(......) 여자는 두 종류라고 말하곤 했다. 매사에 분명한 여자와 미스터리를 남겨두는 여자. 그리고 이는 남자가 여자를 볼 때 가장 먼저 감지하는 것이자, 가장 먼저 그를 매료시키거나 그렇지 않게 하는 요소였다.

"그래도 평생 혼자 사는 건 너무 외로운 일이야. 마음 맞는 친구라도 찾아서 같이 살아."

"... 자식들에 대해 제일 모르는 사람이 부모라잖아?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원래 가족들은 서로서로 잘 몰라. 너무 잘 알아도 이상하지."

진심이라는 건 형식에 뒤따르기도 하는 법이니까.

가족들을 사랑하는 건 이미 주어진 일 같은 거였는데, 그 사랑을 이어가는 일, 계속해서 사랑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무조건적인 사랑 같은 건 없으니까.

우리는 매일 다른 사람이 되고 매일 사랑하는 일을 한다.

뭐든 남들보다 천천히 한다고 생각하면 돼. 아무 문제 없어요. 밥 잘 먹으면 그걸로 된 거야. 걱정할 거 없어.

좋은 일인지 아닌지도 살아봐야 알지. 좋은지 나쁜지 뭐든 당장 알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돈을 벌 때, 나는 종종 내 노동력을 파는 게 아니라 내 시간을 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글을 쓸 수도 있지만,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네가 하고 싶은 말을 찾아갈 수도 있는 거야.

각자의 영역을 지키면서도 서로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더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더 먼 길을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 전체를 사랑하는 것이지, 그 사람이 이렇게 돼주었으면 하는 것은 아니야." - 안나 카레니나 -

어딘가에 있을 나의 반쪽, 너는 나를 사랑해줄까. - 미네쿠라 카즈야, 『최유기』 중 오공의 대사

어쨌거나 어떤 것들은 또 여전했다. 그러나 하나의 물음이나 대답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게 또한 세상인 까닭에 어떤 것은 그토록 변하지 않아서 안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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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산책 말들의 흐름 4
한정원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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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산책.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더 좋았다.  
 시간의 흐름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출판중인 '말들의 흐름' 책을 두 번째로 읽었다. 첫번째 책은 유진목 님의 『산책과 연애』. 그것도 모두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들이었고, 유진목 시인도 좋아해서 제일 먼저 읽은 것이다. 『시와 산책』 저자인 한정원 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앞으로 이름을 기억하고 알아보게 될 것이다. 이 두 책 말고도 시리즈가 더 많이 나왔는데, 다음으로 뭘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커피와 담배』? 아니면 『연애와 술』을 읽어볼까?
 책을 읽으며 매번 느끼는 건 작가들이 자신의 글을 쓰는 것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글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었다. 내겐 책 취향이란 게 너무 뚜렷하고 좁은 영역으로 특징지어진 반면, 이 분들은 어찌나 이렇게 다양하고 폭넓게 많이 읽으셔서 내적 그릇을 키우시는지 매번 감탄을 하고야 만다. 진정한 산책가인 한정원 님도 '시'와 '산책'이라는 책 제목에 맞춰, 자신이 산책하는 일에 대해 쓰면서 또 내가 잘 알 수 없는 시인들이 쓴 시들도 짧게 옮겨와 다양한 시의 한 구절들을 느껴볼 수 있게 해주었다.
 오늘 읽은 책 두 권 모두 베스트 셀러다. 그런데 '시'는 다소 어렵다고 느끼거나 공감을 덜 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이 책의 평점은 7.5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 책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소수라는 뜻이겠지. 그래도 내겐 좋은 책이었다. 나는 8.2 정도의 점수를 주고 싶다.   


사랑하는 것을 잃었을 때, 사람의 마음은 가장 커진다. 너무 커서 거기에는 바다도 있고 벼랑도 있고 낮과 밤이 동시에 있다.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아무데도 아니라고 여기게 된다. 거대해서 오히려 하찮아진다.

위로의 말은 아무리 공들여 건네도 섣부르게만 느껴진다. 위로의 한계이자 말의 한계일 것이다.

내가 보는 것이 결국 나의 내면을 만든다. 내 몸, 내 걸음걸이, 내 눈빛을 빚는다(외면이란 사실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인간은 내면과 내면과 내면이 파문처럼 퍼지는 형상이고, 가장 바깥에 있는 내면이 외면이 되는 것일 뿐. 외모에 관한 칭찬이 곧잘 허무해지며 진실로 칭찬이 될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려면 이렇게. 네 귓바퀴는 아주 작은 소리도 담을 줄 아는구나, 네 눈빛은 나를 되비추는구나, 네 걸음은 벌레를 놀라게 하지 않을 만큼 사뿐하구나).

산책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 지혜로워지거나 선량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람‘은 시의 한 행에 다음 행이 입혀지는 것과 같다. 보이는 거리는 좁지만, 보이지 않는 거리는 우주만큼 멀 수 있다. ‘나‘라는 장시(長詩)는 나조차도 미리 짐작할 수 없는 행들을 붙이며 느리게 지어진다.

행복은 그렇게 빤하고 획일적이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고 설명하기도 어려우며 저마다 손금처럼 달라야 한다. 행복을 말하는 것은 서로에게 손바닥을 보여주는 일처럼 은밀해야 한다.

사랑은 단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지 영혼의 상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면 불행이 닥치는 순간 절망에 빠지게 된다. -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이것은 사랑에 관한 기록이지만, 나는 ‘사랑‘의 자리에 ‘행복‘을 넣어 다시 읽는다. "행복은 단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지 영혼의 상태가 아니다."
행복이 내가 가져야 하는 영혼의 상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토록 자주 절망한다.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 피동적으로 얻어지고 잃는 게 행불행이라고 규정하고 말면, 영영 그 얽매임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가지지 못한 것이 많고 훼손되기만 했다고 여겨지는 생에서도, 노래를 부르기로 선택하면 그 가슴에는 노래가 산다.

그러니 역시 ‘행복‘이라는 낱말은 없어도 될 것 같다. 나의 최선과 당신의 최선이 마주하면, 나의 최선과 나의 최선이 마주하면, 우리는 더는 ‘행복‘에 기댈 필요가 없다.
에른스트 얀들의 시에 "낱말들이 네게 행하는 것이 아닌 네가 낱말에 행하는 것, 그것이 무엇인가 된다"는 구절이 있다. ‘행복‘이 우리에게 가하는 영향력에 휘둘리는 대신, 우리가 ‘행복‘에 무언가를 행해야 한다.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그러나 뜨거운 가슴에 들뜨는 존재.
그저 하는 일이라곤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 세사르 바예호,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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