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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말들 - 사랑도 혐오도 아닌 몸 이야기 ㅣ 아르테 S 5
강혜영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평점 :
새로운 느낌의, 하지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고 진작부터 논의됐어야 할 이야기들이었다. 다양한 작가의 '몸' 이야기가 있었고, 그 중에는 내가 좋게 봤던 영화 '아워 바디' 감독의 이야기도 있었다.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쓴 백세희 님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우리 엄마도 타인에 대한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외모에서 시작하는 편이다.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않은 몸으로 사회 표준치를 벗어난 채 살아오면서 받아온 스트레스가 있어서 난 그러지 않으려고 하고, 엄마에게도 제발 그러지 좀 말라고 말씀드리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그런 시선과 기준은 바꾸기 어려운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는 천천히 바꿔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또 이 책을 읽으며 내 몸(을 긍정하는 일)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몸의 영역에는 쉽거나 작은 실천이 없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을 상대하는 용기, 나이듦을 인정하는 것, 아픈 상태도 인생의 소중한 부분이라는 인식, 남의 몸에 대해 되도록 적게 말하기부터 시작하자.
내 몸을 미워하는 날보다 사랑하는 날이 훨씬 많아지기를 꿈꾸며 산다. 타인이 타인을 피부나 몸무게, 장애 등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게 당연한 세상을 꿈꾼다. 그래서 나부터 그렇게 하려고 한다.
몸, 즉 나 자신에 대한 적대감, 분노, 좌절, 비참함, 세상에 대한 원망, 기력 없음...... 나는 이 글을 쓰기 이전에, 우선 나(몸) 자신과 싸워야 했다. 나에게 몸은 절실히 바꾸고 싶은 그 무엇, 그러다 안 되면 버리고 싶은 것이다.
인생의 고통은 몸(자아)을 긍정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내 몸은 나의 것이다‘가 아니라 ‘내 몸이 나다‘. 우리의 정신이 몸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이 바로 나인 것이다. 정신은 몸에 속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몸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은 곧 자아관이 된다.
페미니즘이 낯설지 않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여성은 남성 사회가 만든 몸 이미지에 갇혀 있다. 남성의 존재성은 돈, 지식과 권력으로 평가되는 반면, 여성의 시민권은 외모로부터 시작된다.
‘사회적 약자‘는 평생 자신을 사랑하는 문제와 투쟁해야 하는 이들이다. 성별, 인종, 계급, 나이 등은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해석이다.
‘사회적 약자‘는 평생 자신을 사랑하는 문제와 투쟁해야 하는 이들이다. 성별, 인종, 계급, 나이 등은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해석이다. 몸의 영역에는 쉽거나 작은 실천이 없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을 상대하는 용기, 나이듦을 인정하는 것, 아픈 상태도 인생의 소중한 부분이라는 인식, 남의 몸에 대해 되도록 적게 말하기부터 시작하자.
아주 오랫동안 내 몸을 혐오했고 또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 사랑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라는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애초에 우리 삶이 그렇게 쉽게 온점을 찍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도 하고.
어제 술을 마셨다면 내 몸을 사랑하지 않는 날이 되고, 오늘 운동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면 내 몸을 사랑하는 날이 된다. 언제든지 나는 나를 사랑하거나 싫어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랑하지 못했다고 해서 나 자신을 통째로 부정하거나 자책할 이유도 없다.
책, 광고, 드라마, 영화 등 미디어에서는 늘 말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당신의 모습이 어떻든 당신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난 이 말이 완전 별로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날 사랑해야 한다는 마음 자체가 억압과 폭력이 된다.
내 몸을 아주 오랫동안 혐오했던 역사는 점점 더 깊고 진한 혐오의 세계를 항해하는 것과 같았다. 반대쪽에는 사랑이 있고, 나는 그곳으로 가기 위해 노를 힘껏 저어보지만 아주 작은 장애물에도 다시 저 멀리 밀려나고 만다.
내 몸이 싫은 날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상의 혐오 표현을 자제하려고 노력한다. 사랑하지는 못해도 혐오하지도 않는 내가 되고 싶어서.
사실 365일 내 몸이 마음에 들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게 더 이상하고 부적절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내 몸을 미워하는 날보다 사랑하는 날이 훨씬 많아지기를 꿈꾸며 산다. 타인이 타인을 피부나 몸무게, 장애 등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게 당연한 세상을 꿈꾼다. 그래서 나부터 그렇게 하려고 한다.
내 몸은 즐거움을 유지하기 위한 것, 내 몸에 대한 노력과 마음가짐은 즐거움을 연장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내 몸과 함께 즐겁게 살고 싶다.
섹스를 한다는 것, 누군가 내 몸 깊이 파고드는 것을 허락하는 것보다 벗은 몸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실이 더 두려웠다. ... 그리고 비슷한 경험이 축적되면서 성인이 되어서도 섹스는 왠지 부담스럽고 불편한 것으로 굳어져갔다.
잠잠하던 호수에 조약돌을 하나 던지면 물결이 소리 없이 천천히 넓게 퍼져나간다. 그러나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존재성을 부정하지 않는 것, 그 존재를 있는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작은 조약돌과 같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몸과 삶은 당사자 본인의 것이다." 참 쉽고 간단한 말인데도 다들 어려워하는 기본적인 것.
이제껏 사회가 만들어준 겉모습의 틀 가운데 정말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있을까. 화장, 옷, 행동거지...... 타인을 해치는 일도 아닌, 스스로 선택한 길에서 여성이라는 굴레에 매여 너무 겁을 먹고 있는 게 아닐까. 여성들이 어떤 일들에든 조금 더 용기를 내는 순간들이 많아지길 바라본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평균 여성으로 살면서 몸의 외형 때문에 시간적, 자본적 비용을 이미 치를 대로 치렀다. ... 내 가치를 몸의 겉껍질에 맡기는 건 단단한 반석이 아니라 흐물거리는 젤리 위에서 자기애라는 계란 한 바구니를 들고 불안정하게 서있는 것임을 깨닫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몸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이 쉴 새 없이 교차하는 사회에서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이다.
계속 살아야 하니까, 이왕이면 불행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니까, 타인의 시선을 벗어나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긍정적인 결말이 아닐까.
몸은 내가 지상에서 가지고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사적인 공간이면서 늘상 노출되어 있는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몸과 몸이 만나는 일은 쉽고도 어렵다. 신뢰가 없으면 연결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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