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kleinsusun >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김윤식 선생님의 특강 마지막 날,
<일제말기 학병 세대의 체험적 글쓰기론>을 강의하시며
이가형의 <버마전선 패전기>, <분노의 강>을 읽으시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시적 진실"(일면적 진실)과 "산문적 진실"(전면적 진실)에 대해 말씀하셨다.

우리가 소설을 읽고 눈물을 흘리는 건
시적 진실(일면적 진실)에 속았기(?) 때문이라고.

아무리 남루하고 구차한 삶을 사는 사람도
그 사람 인생의 어떤 순간은 너무도 아름답고 행복하다고!

다만 길게 펼쳐 놓았을 때
구질구질하고 비루할 뿐!

강의를 들으며 성석제의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이 생각났다.
성석제는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의 "저자의 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은 순간(瞬間)이라는 돌로 쌓은 성벽이다. 어느 순간은 노다지처럼 귀하고 어느 벽돌은 없는 것으로 하고 싶고 잊어버리고도 싶지만 엄연히 내 인생의 한 순간이다. 나는 안다. 모든 순간이 번쩍거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인생의 황홀한 어느 한 순간은 인생을 여는 열쇠구멍 같은 것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

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

잘은 모르겠지만....
인생의 황홀한 어느 한 순간은 인생 그 자체(전면적 진실)가 아니라
"일면적 진실"이라는 말인 것 같다.

내가 성석제나 아사다 지로를 좋아하는 건
남루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아무리 노력해도, 어떻게 해도 꼬인 인생이 달라질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번쩍거리는 황홀한 순간"을 잡아내기 때문이다.
가슴이 먹먹하게!

어쨌거나...
"번쩍거리는 황홀한 순간"이 조금 더 많아야
누구건 그 삶이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번쩍거리는 황홀한 순간"을 보면
정말,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 주겠다고!
최소한 초는 치지 않겠다고!

누군가의 "번쩍거리는 황홀한 순간"에
쏴~한 말 한마디로 초를 치는 사람들이 은근 너무 많다.

"번쩍거리는 황홀한 순간"은 상대적인 거다.
기쁨의 질량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걸 자기의 잣대에 대서
"그만한 일에 뭘 그렇게 호들갑이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근 너무 많다.

난 나의 주특기인 온갖 오버를 다해서
주위 사람들의 "번쩍거리는 황홀한 순간"을 함께 기뻐해 주고 싶다.

그래서...
그들이 그 "번쩍거리는 황홀한 순간"을 조금 더 기뻐할 수 있도록,
조금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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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거탑'이 화제의 중심에 선 이유
[스타뉴스 2007-01-15 10:42]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이규창 기자]
MBC 주말미니시리즈 '하얀거탑'(극본 이기원ㆍ연출 안판석)이 방송계에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시청률만 놓고 보면 전국 시청률이 14.7%(14일. TNS)에 불과하지만 시청률 40%대의 '주몽'이나 이보다 시청률이 높은 타 드라마에 못지않은 화제가 되고 있다.

△ '완성도' 찬반 팽팽.. 해외 시리즈물 팬들도 관심

전문 메디컬 드라마를 표방한 '하얀거탑'은 시작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다. 'CSI' 'ER' 등 해외 시리즈물에 익숙한 20~30대 젊은 시청자들은 물론 오직 '연애질'에만 몰두하는 기존 한국의 미니시리즈에 식상해있던 시청자들에게도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 6일 첫 방송 이후 인터넷에서는 '하얀거탑'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게 진행됐다. 오랜만에 보는 굵은 선의 전문직 드라마라는 찬사와 함께 해외 시리즈물 못지않을 거라는 기대를 했는데 실망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또한 의사라는 직업을 다룬 '메디컬 드라마'라기 보다 권력 투쟁에 집중하는 '기업 극화'에 가깝다는 지적도 있다.

이 처럼 '하얀거탑'이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그만큼 완성도가 높고 개성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우선 수술장면은 긴박한 분위기와 사람의 내부 장기를 그대로 재현한 특수효과가 어우러져 기존 한국의 메디컬 드라마보다 한 발 앞서 있다.

그러나 'CSI' 등 해외 시리즈물의 화려한 CG(컴퓨터 그래픽)에 익숙한 팬들에게는 뭔가 부족해 보이고, 기존 한국 드라마와 해외 시리즈물의 중간쯤 되는 '하얀거탑'의 비주얼이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반면 10% 초반대의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서 그토록 뜨겁게 논쟁이 불붙은 것은, 해외 시리즈물의 팬들을 비롯해 인터넷에 익숙한 20~30대 시청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서울 신촌의 한 PC방에서 커플석에 앉은 3쌍의 남녀를 지켜봤다. 한 커플은 남녀가 컴퓨터 한 대에 MBC '무한도전'의 VOD 다시보기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고, 또 다른 두 커플은 여성이 '무한도전'을 남성이 '하얀거탑'을 각각 시청하고 있었다. 각자 '무한도전'과 '하얀거탑'을 시청하던 두 커플은 인터넷 파일공유 사이트에서 불법 동영상을 다운받아 보고 있었다.

'동영상을 다운받는 방법'을 알아보려는 듯 접근해 불법 동영상을 이용하는 이유를 묻자 "토요일은 약속이 많아 방송 시간에 챙겨 볼 수가 없다. 또 VOD 서비스가 유료라는 점도 부담이지만, (불법 동영상)파일을 USB메모리에 저장해두면 언제든 원할 때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들 3쌍 중 한 커플은 각자 '무한도전'과 '하얀거탑'의 홈페이지에 접속하고 있는 상태였다. 드라마를 보다 뭔가 떠오르는 생각을 즉석에서 시청자 게시판에 풀어놓기도 하고, 현장 사진이나 다음주 예고 등을 챙겨보기도 했다.

이처럼 인터넷 사용에 익숙하고 의견 개진이 활발한 젊은 시청자들은 비록 시청률로는 그 존재를 확인하기 어렵지만, 드라마 홈페이지 게시판 등에서 그 존재감이 여실히 드러난다. 20대 여성들을 열광시켰던 '환상의 커플'과 같이 '하얀거탑' 역시 폐인문화를 양산하고 이는 결국 드라마의 시청률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 한국형 전문직 드라마의 모델

'하얀거탑'의 또 다른 논란은 소위 본격 메디컬 드라마이냐, 아니면 종합병원을 배경으로 한 기업 드라마이냐 하는 것이다. 천재 외과의사답게 장준혁(김명민 분)은 첫 회부터 화려한 실력을 뽐내는 수술을 선보였지만, 드라마 초반의 주된 내용은 병원 내에서의 권력 다툼이다.

이 때문에 "의학 드라마가 아니라 병원을 배경으로 권력투쟁을 그린 기업 극화에 가깝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의 원작을 옮겨왔다고는 해도, 이만큼 한국의 현실에 적합한 전문직 드라마는 보기 어려웠다.

그동안 한국에서 전문직 드라마를 흉내낸 작품들을 보면 주인공은 실력도 있고 착하며, 그의 경쟁자는 실력도 부족한 데다 악하다. 경쟁자가 온갖 모략과 음모 그리고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지만 결말은 주인공의 승리로 끝나며 "착한 자는 복을 받는다"는 교훈을 남긴다.

반면 '하얀거탑'은 직업 혹은 직장에서의 성공과 선악을 무리하게 연결짓지 않는다. 또한 실력과 착한 마음만 있으면 성공한다는 '아름답지만 비현실적인' 직장 따위는 없다. 일반인들은 병을 치료해주는 곳으로만 알고있는 병원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과 이권 등은 직업 세계 어느 곳도 '한국 직장의 현실'에서 예외가 없다는 걸 보여준다.

뛰어난 실력을 갖췄지만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한 의사 장준혁이 견제를 받으며 출세에 제동이 걸리는 것은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도 얼마나 흔한 일인가. 또한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실력있는 의사 최도영(이선균 분) 역시 직장 내에서 주목을 받지 못한다. 이 역시 묵묵히 열심히 일해도 연봉협상에는 아무런 반영이 없는 한국의 직장 현실과 다르지 않다. 특히 남자들의 직장 내 권력관계와 그대로 이어지는 부인들의 사교관계 역시 얼마나 한국적인가.

'줄'을 잡고 '빽'을 동원하고 적당히 타협을 하고 경쟁자는 제거하면서 '실력'을 인정받고 출세하는 것이 어느 조직에서나 볼 수 있는 권력의 속성이다. 장준혁과 최도영은 어쩌면 당연히 대접받고 출세해야 마땅한 실력자임에도 그리 순탄치 않은 과정을 겪는다. 'CSI'처럼 일만 열심히 하기에는 현실이 녹녹치 않으니, 한국형 전문직 드라마 '하얀거탑'은 훨씬 고난도의 직업 세계를 다루는 셈이다.

'대장금'과 '상도'가 사극의 틀 안에 전문직 드라마의 내용을 담았다면, '하얀거탑'은 일본 원작을 가져왔지만 한국의 조직과 기업문화를 잘 반영한 새로운 형태의 전문직 드라마를 제시하고 있다. 악역인 부원장 우용길(김창완 분)이 주인공보다 더욱 화제가 되는 것도 '리얼리티' 때문이다.

오늘도 '줄서기'와 '관계'를 강요받는 한국의 직장인들에게 '하얀거탑'은 우리의 자화상을 통해 새로운 종류의 카타르시스를 주고 있다.

모바일로 보는 스타뉴스 "342 누르고 NATE/magicⓝ/e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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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1-15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드라마를 멀리한 지 오랜 어느날 인터넷에서 우연히 접한 하얀거탑...그렇게 4회까지 본 지금 소감은 '약간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훌륭하다.'는 것이다. 사랑에 빠질 것이 뻔한 두 남녀, 출생의 비밀, 고부간 갈등, 갑작스런 죽음, 드라마 나오는 인물 모두가 2다리만 걸치면 모두 아는 사이인 엽기적 관계설정에 우리 드라마를 최근엔 거의 보지 않았다. 그런데 하얀거탑은 조금 달랐다. 일단, 사랑이야기가 아직까지 없다는 것, 그리고 주인공이 혼자 정의롭고 착한척은 다 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만으로도 만족이다. 제작경험이나 비용문제로 인해 미국 드라마물에 비하면 부족함이 없을 수 없겠지만, 아직까진 만족이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만족하며 시청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심층진단] 단독개업은 ‘멀고도 험난한 길’ [조인스]
부와 명예의 상징은 ‘옛말’ 전문성 없으면 밥그릇 챙기기도 어렵다
[달라진 위상! 한국의 노블리스 직업연구 ①] 변호사 上
월간중앙

■ 하늘의 별이 된 ‘로펌 변호사’
■ 사무실 유지비 월 평균 1,000만 원 마련 급급
■ 변호사 세계도 심한 양극화
■ 브로커 유혹 뿌리치기 어려운 구조가 문제
■ 대기업 사내 변호사제도 늘고 채용도 급증


우리 사회의 변화 속도는 가히 초고속이다. 직업의 세계도 변화의 물결로 요동치고 있다. 전통적인 우리 사회 主流 직업의 현재는 과거와 현저히 달라졌다. 그 외양과 속내를 샅샅이 해부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그 첫 번째, 변호사!
“내가 이러고 있을 때인가?”

T(40) 변호사는 가슴까지 답답해졌다. 검사로 근무하던 2006년 9월 어느 날의 일이다. 날마다 일에 파묻혀 있다 모처럼 집에서 쉬어 보는 휴일 오전이었다. 느지막하게 일어났지만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머릿속은 마치 실타래가 제멋대로 뒤엉켜 있는 느낌이었다. 검사를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밤새 뒤척인 까닭이다.

고민의 근원은 돈 문제였다. T검사의 월급은 300만 원대. 검사 경력 10년이 다 돼가지만 그 수준이었다. 가족 생활비로도 빠듯했다. 중학생인 딸과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이 둘이 크는 만큼 과외비가 늘었다. 가계부에는 점차 빨간색이 짙어졌다.

그는 아직 집이 없다. 법원·검찰청이 가까운 서울 서초동 32평형 아파트를 보증금 2억5,000만 원에 전세를 얻어 살고 있다. 다 알려진 대로 최근 몇 년 동안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검사 월급으로는 지금 사는 동네에서 도저히 집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절망스럽다.

T검사는 그로부터 한 달쯤 뒤인 10월 중순께 결국 옷을 벗었다. 돈 걱정에서 해방되려면 그 길밖에 없었다. 그리고 직전까지 근무하던 서울 시내 한 지원 앞에 곧 변호사 간판을 내걸었다. 변호사로 성공하려면 유능한 사무장이 꼭 필요하다는 충고를 여러 선배 변호사로부터 들었지만 변호사 업계에서 소문난 ‘베테랑’은 쓰지 못했다. 월급이 예상보다 ‘셌기’ 때문이었다.

▶8,400여 명에 달하는 한국 변호사들의 심장부인 서울 서초동 대한변호사협회.

2006년 11월 초 ‘영업 준비’는 그런대로 마쳤지만 여전히 걱정이 태산이다. 이제부터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한 달에 최소 2,000만 원은 벌어야 한다. 20평대 사무실 월세에 사무장과 여직원 인건비, 기타 잡비를 합해 한 달 사무실 유지비만 대략 1,000만 원 선이다. 생활비와 자신의 용돈까지 합치면 또 그만한 액수의 돈이 필요하다.

개업 후 1주일여 동안 T변호사는 그야말로 책상을 지키고 앉아 파리만 날렸다. 주변의 선배 변호사들이 이런 모습을 보기가 안 됐던지 가끔 위로 겸 덕담(?)을 건넨다. 대체로 “검사 출신이어서 ‘전관예우’를 기대하는 의뢰인이 적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조금 겁나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전관예우도 같이 근무하는 검사가 남아 있을 때 통한다.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평생 먹고살 돈을 벌어야 한다. 그것도 현직 판·검사가 뒤따라 옷을 벗지 않았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T변호사는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관할 법원과 검찰에서 부장급 이상 판사 1명과 검사 2명이 ‘더 이상 승진을 기대하기 어려워’ 옷을 벗는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어서다. 그것이 현실화하면 평검사 출신인 T변호사는 그들에게 ‘끗발’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검사 옷 벗어던진 T변호사의 고뇌

T변호사는 사건 수임을 위해 사무장의 조언을 얻어 직접 발로 뛰고 있다. 명색이 범죄를 다스리던 검사 출신으로서 ‘브로커 활용’이라는 불법은 저지르고 싶지 않아서다. 개업 후 한 달여 동안 브로커로 보이는 네댓 명이 제 발로 찾아왔지만 일단은 다 물리쳤다. 자신의 능력으로 버틸 때까지는 버텨 보자는 심산이다.

그러나 짧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결코 만만찮은’ 변호사시장의 냉엄한 현실을 깨닫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브로커의 유혹에 넘어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점점 커지고 있다. T변호사는 지금 검사 시절보다 더 깊은 고뇌의 바다에 빠져 있다.

T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5년 전에만 변호사 개업을 했어도 현재 하고 있는 고민은 거의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막상 세상 밖으로 나와 보니 청사 안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변호사를 해서 돈을 번다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기왕 벗을 검사 옷이었다면 왜 이렇게 늦었는지 지금은 후회가 된다. 한마디로 현재 우리나라 변호사시장은 수요와 공급 모두 포화 상태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인근 지하철 교대역 4거리를 중심으로 변호사 사무실이 밀집해 있다. 사진 속의 변호사 이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그의 말대로 우리나라의 변호사는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현재 한국의 변호사는 총 8,402명이다. 2006년 6월9일 현재 대한변호사협회에 회원으로 등록된 수가 그것이다. 국내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려면 반드시 대한변협에 회원 등록을 해야 하므로 국내 전체 변호사 현황이라고 봐도 좋다.

대부분 개인회원(7,623명)이고 준회원(779명)이 이 안에 포함돼 있다. 준회원은 변호사 자격은 있으나 일시 휴업 중이거나 판·검사 등 공직에 근무 중이어서 변호사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경우다.

또 실제 변호사 활동을 하는 개인회원 중에는 법무법인 구성원(2,255명)이나 소속 변호사(951명)로, 또는 공증·합동법률사무소 구성원(306명)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46%로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그 나머지(4,111명)가 혼자 사무실을 운영하는 ‘단독개업’ 또는 ‘고용’ 형태로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다.

변호사의 급증은 2001년 시작된 사법시험 합격자 1,000명 시대와 함께 본격화했다. 2006년 994명을 포함해 지난 6년 동안 사시 합격자만 5,899명에 달한다. 2년 동안의 사법연수원 수료 후 곧바로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 수가 해마다 400~500명에 이른다. 한마디로 최근 들어 변호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변호사가 많다 보니 진로를 놓고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경쟁이 시작된다. 진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성적이다. 특히 사법시험 성적에 2학기 기말고사 성적, 4학기 기말고사 성적을 합산한 결과가 사법연수원생들의 진로를 결정한다.

‘단독개업 싫어!’ 예비 변호사 Q씨의 도전

사법연수원 김종민(부장검사) 교수는 최근 수료생들의 진로 선택에 대한 새로운 경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공공기관·기업체와 같은 비법조 직역에 대한 진출자와 진출 기관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대형 로펌으로 진로를 선택하는 성적 상위권자가 늘어난 것도 달라진 현상이다. 2007년 2월 제대를 앞둔 군 법무관들도 대부분 판·검사를 지망했던 과거 경향과 달리 대형 로펌 진출을 선호하고 있다. 최근 사법시험 합격자가 늘면서 법률 전문가 저변이 확대되고, 그 결과 법률 서비스 영역이 다변화하는 현상의 반영으로 본다.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변화로 생각한다.”


2007년 2월 사법연수원 수료를 앞둔 예비 변호사 Q(여·26)씨. 그가 요즘 벌이고 있는 취업 도전기는 신참 변호사들의 달라진 생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2006년 10월 말 사법연수원 4학기 기말시험이 끝난 후 자신의 성적이 판·검사를 지원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신입 변호사를 뽑는 이른바 ‘대형’ 법무법인 13곳을 취업 목표로 삼아 모두 지원서를 냈다. “일을 많이 배울 수 있는 큰 로펌에 가는 것이 길게 볼 때 변호사로서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12월 중순까지 모두 7곳으로부터 ‘거절’ 응답을 이메일로 받았다. 그때까지 단 1곳에서 면접시험을 봤지만 취업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그가 지원했던 나머지 법무법인에서는 지금껏 아무런 연락이 없어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성적이 로펌에서 원하는 기준에 못 미치고, 영어도 내세울 만큼 능통하지 못한 보통 수준이어서 불합격한 것 같다”고 나름대로 진단하고 있다.

그 뒤로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회계법인을 상대로 취업 도전을 하고 있다. 그는 2006년 12월 말부터 오는 3월 말 사이에 변호사를 뽑는 공공기관 취업에 더 큰 희망을 걸고 있다. 사법연수원생들 사이에서는 공공기관 중에서는 헌법재판소·감사원·재정경제부·금융감독원·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인기 직장이다. “일의 전문성이 높고, 어디에서나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으며, 지방 근무가 없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고 그는 말했다.

단독개업에 대해 그는 “지금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경험이 부족해 성공에 자신이 없는데다 아직 더 배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지금 생각으로는 가능하다면 가장 피하고 싶은 진로”로 여긴다.


변호사의 활동 형태는 크게 단독개업·법무법인·고용 등으로 나뉜다. ‘단독개업’은 말 그대로 변호사 혼자 사무실을 열고 혼자 활동하는 것이다. 흔히 로펌으로 불리는 ‘법무법인’은 말 그대로 회사다. 소속 변호사는 회사 내 지위와 하는 일에 따라 일정한 보수를 받고 회사를 위해 일한다.

‘고용’은 단독개업 변호사로부터 월급을 받는 변호사로, 업계에서는 흔히 ‘새끼 변호사’로 불린다. 합동법률사무소는 여러 명의 변호사가 비용 절감, 정보 공유 등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사무실을 함께 쓰는 것일 뿐 변호사들의 활동은 단독개업과 다를 바 없다.

하늘의 별이 된 로펌 변호사

Q씨의 도전기에서도 나타나듯 요즘 변호사들에게 로펌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사법연수원 수료자 중 2006년(35기) 181명, 2005년(34기)에는 178명이 로펌으로 향했다. 특히 2006년에는 단독개업보다 69명이 많은 역전 현상을 나타내 그 인기를 실감케 하고 있다. 이는 젊은 변호사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이른바 전관예우를 받을 위치에 있는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줄줄이 로펌행을 택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변호사가 20명 이상인 16개 대형 로펌에 소속된 판·검사 출신 변호사는 무려 347명에 이른다. 그중 국내 최대 법률사무소로 꼽히는 ‘김&장’에만 가장 많은 79명이 포진해 있고, 화우(45명)·태평양(34명)·바른(34명)이 그 뒤를 이었다. 이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2006년 11월21일 발표한 ‘로펌의 지배와 사법감시’ 자료에서 드러난 것이다.

이에 따르면 로펌행 판·검사 출신 변호사는 16명(2004년), 44명(2005년), 48명(2006년 8월 현재) 등으로 해를 거듭하며 급증해 최근 5년 사이에만 161명에 달했다. 그들의 재조 시절 직급도 무척 화려한 편이다. 법관 출신 변호사 98명 중 대법관급 이상 8명, 법원장급 12명, 고법 부장급 5명, 지법 부장급 31명이었고 일반 판사급은 41명이었다. 검사 출신 변호사도 마찬가지로 42명 중 검사장급 이상 13명, 고등검사급 25명, 평검사급 26명 등으로 집계됐다.

한마디로 ‘잘나가는 변호사’는 대부분 로펌에 모여 있는 셈이다. 로펌에서 그들에 대한 예우는 연봉으로 따져 6억~27억 원 수준으로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2006년 국회 법사위원인 김동철(열린우리당 광주 광산) 의원이 국정감사 과정에서 공개한 것이다. 그들의 월평균 급여는 구체적으로 대법관 출신은 8,000만~2억 원, 법원장급 7,000여 만 원, 부장판사급 6,500여 만 원, 일반 판사급 5,000여 만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대체 로펌이 어떤 곳이기에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한국에서 성공적인 로펌 변호사로서 한 전형을 보여주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형석(40) 변호사를 통해 그 내부를 한번 들여다보자.

▶예비 법조인들의 산실인 경기도 일산 사법연수원. 2001년 사시 합격자 1,000명 시대 이후 1년에 400~500명의 변호사가 양산되고 있다.


그는 현재 태평양 내에서 ‘구성원(파트너) 변호사’다. 태평양에서 구성원은 회사 내 거의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소득도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거해 나눠 갖는 로펌의 주인이다. 반면 ‘소속(어소시에이트) 변호사’는 구성원 변호사에게 고용된 월급쟁이다.

그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이듬해인 1988년 사법시험(제31회)에 합격했다. 공군 법무관을 제대하던 해인 1995년 태평양에 입사했다. 그는 애초에 판사를 희망했고, 성적도 판사로 임용될 수 있을 만큼 우수했다. 그러나 그는 공군 법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생각이 바뀌어 진로를 로펌으로 급선회했다. 그때 ‘바뀐 생각’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법조 직업도 전문가가 돼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로펌으로 가야 내가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사회의 지배체제가 관에서 민으로 전환하는 현실에서 로펌 변호사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업무와 교육으로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여겨졌다. 태평양은 판·검사로 임용될 수 있는 성적과 능력을 요구하는데, 그 관문을 통과해 입사했다.”

사내 변호사도 인기 짱!

태평양에는 현재 업무영역별로 20개 팀이 있다. 입사 1년차와 2년차 때 자신이 원하는 2개 부서를 경험하게 한 후 자신의 전문 영역을 결정하도록 한다. 그 역시 그 과정을 거쳐 기업 전문가로 성장해 기업 일반, 기업 인수합병 분야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그는 또 태평양의 해외연수제도를 한껏 활용해 2001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기회에 그는 미 캘리포니아주 웨스턴대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동시에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따내 전문성을 높였다.

“로펌에서 성공하려면 업무 능력이 뛰어나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태평양에서는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일을 잘해야 한다. 로펌이 윤리나 애국심을 저버리고 돈만 좇는다는 비판이 있지만, 클라이언트의 정당한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태평양에서 업무는 혼자가 아니라 팀을 이뤄 추진한다. 그래서 태평양에서는 내부 구성원 간 ‘인화’를 중시한다. 그리고 구성원 변호사가 되려면 소속 변호사의 업무 능력 제고를 위해 교육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로펌은 업무 강도가 높기로도 유명하다. 이 변호사는 태평양을 예로 들어 “밤 12시를 넘기는 것이 다반사일 만큼 일이 많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가정에 소홀하지 않도록 배려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대형 로펌이 변호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이 변호사의 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변호사의 기업체 진출 또한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다. 사내 변호사제도가 그것이다. 사내 변호사는 기업체에서 직원으로 상근하는 변호사를 말한다. 사내 변호사제도는 국내에서는 삼성그룹이 1990년대 말에 처음 도입했고, 그 영향으로 2000년대 들어 여러 기업체에서 경쟁적으로 이 제도를 받아들였다는 것이 변호사 사회의 정설이다.

사내 변호사는 법률만능사회인 미국에서 발달한 제도다. 미국 씨티그룹은 1,500여 명, 제너럴일렉트릭(GE)은 1,000여 명에 이를 만큼 미국에서는 사내 변호사제도가 거의 일반화돼 있다. 미국사회에서는 사내 변호사가 ‘회사 권리 보호의 최후 보루’라는 인식이 강하고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국내 기업체에서도 법무실·법무팀·법제팀 등의 이름으로 사내 변호사 조직을 공식적으로 설치·운영하는 것이 낯설지 않은 현상이 됐다.

물론 삼성그룹을 비롯한 사내 변호사의 주력은 판·검사를 역임한 이른바 재조(在曹) 출신들이다. 이종왕 법률고문 겸 법무실장으로 대표되는 삼성그룹 법무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1999년 2월 사법연수원 수료자(28기)를 대상으로 처음 공채를 실시해 사내 변호사 7명을 뽑은 곳도 삼성그룹이었다. 그 이후 삼성그룹은 연수원 수료 변호사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2~9명씩 뽑고 있다.

사법연수원 수료자 중 기업체 진출자가 35기(2006년 2월 수료)만 하더라도 895명 중 총 47명에 이른다. 사법연수원 집계에 따르면 기업체 진출자가 2002년 2월 수료생인 31기 때는 17명이었지만 25명(32기), 38명(33기), 52명(34기) 등 해마다 단위가 달라질 만큼 많이 증가하고 있다. 진출 기업체도 13개(31기), 15개(32기), 23개(33기), 41개(34기), 33개(35기) 등으로 대폭 확산하는 추세는 마찬가지다.

이 통계에서 보듯 사내 변호사제도가 진로를 고민하던 신참 변호사들에게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변호사들은 자신들의 활동 무대가 기업체로까지 넓어졌다는 점에서 이 현상을 ‘직역 확대’로 받아들이고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것은 분명 변호사 사회의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다.

기업체 입장에서는 “투명경영 시대에 법률을 잘 몰라 회사가 떠안지 않아도 될 부담을 사전에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예방 강화 차원에서 사내 변호사를 받아들이는 데 매우 적극적이다. 과거 기업의 변호사 활용은 고문 변호사나 로펌 변호사들에게 사건이 발생한 후 뒤처리를 위임하는 수준에 그쳤다.

사내 변호사는 단순히 각종 수사나 소송에 대응하는 송무 업무를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CEO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법률적 조언자’ 역할을 하거나 핵심 사업의 경우 추진 초기 단계부터 관여해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 사내 변호사들의 주장이다.

한화그룹 구조조정본부 정상식 변호사는 사내 변호사의 임무를 “회사의 제반 경영과 관련한 법적 위험을 방지하거나 최소화하고, 상업적 기회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단순한 법률 서비스는 외부 변호사들이 더 잘할 수 있다. 그러나 사내 변호사는 소속 기업의 일반 현황과 생리 등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훨씬 효율적이고 구체적인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변호사에 대한 기업체의 대우는 판·검사 경험 유무, 변호사 경력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기업체의 변호사 대우는 그 전문성을 인정해 대체로 후한 편이다. 갓 연수원을 마친 변호사도 대기업에 입사하면 최소한 과장 대우는 받는다. 앞에서 말한 정상식 변호사는 2005년 9월 한화그룹에 입사해 현재 직급이 상무이사다. 1993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정 변호사는 1996년부터 만 10년간 검사로 근무한 경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계속>

윤석진 월간중앙 기자 [gr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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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1-14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시패스로 신분이 바뀐다는 것은 점점 옛말이 되고 있다...물론 아직도 시험 하나 통과한 것 치고는 많은 혜택이 있지만, 이제는 정말 더 큰 가능성을 열어주는 하나의 관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중·동의 이율배반적 ‘부동산 선동’
공급 확대론, 규제 완화론, 세금 폭탄론…종부세 이의신청 촉구·납세거부·부추기기
뜯어보면 부동산 투기적 수요에 눈감고 상위1% 대변을 마치 국민여론인 양 호도
한겨레
» 서민들이 꿈도 꿀 수 없는 초고가 아파트 타워팰리스가 바라다 보이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가난한 구룡마을. 민언련과 토지정의연대는 지난 9일 이른바 유력지 조·중·동의 사설과 칼럼들이 소수의 투기이익을 위해 절대다수 국민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모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며, 그들이 “시장 근본주의자의 이론이 옳다고 믿는 ‘확신범’이거나”, “건설사에서 부동산 광고를 받으면서 담대하게 정론직필을 하고 있다고 믿는 ‘자기최면’의 상황”에 빠져 있는 게 아니냐고 비판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안과 밖 /

“내 집 꿈 더 멀어졌다.” 9월 4일자, <조선일보> 기사 제목이다. 이 신문은 주택보급률이 105%가 넘는데도 무주택자가 전체 40%에 이른다며 주택담보대출과 같은 금융규제를 완화하고 재건축을 자유롭게 풀어주고 보유세와 양도세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이 신문뿐만 아니라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서도 숱하게 발견된다. 이른바 공급확대론이다.

이 신문들은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는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주택공급을 더 늘려야 한다는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주택공급이 늘어나면 건설경기가 살아나고 고용이 늘어나고 경제도 살아난다는 주장을 곁들인다. 공급확대론과 경기부양론의 기묘한 결합이다. 더 많은 집을 짓고 더 많은 대출을 받아 더 많이 사고 팔게 하자는 이야기다. 그러면 내 집 마련도 쉬워지고 경제도 살아난다고 한다.

9월14일자 <동아일보> 칼럼은 부동산을 사과에 비교한다. 사과 값이 지나치게 높으면 사과 수입을 늘리거나 사과의 대체재인 감이나 배의 공급을 늘려서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처럼 부동산도 공급확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 신문은 사과는 안 먹어도 되지만 부동산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부동산에 대체재가 없다는 상식적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부동산 시장의 투기적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다.

최근 민주언론시민연합과 토지정의시민연대가 올해 1월1일부터 11월30일까지 이른바 ‘조·중·동’의 부동산 관련 사설과 칼럼을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 신문들은 줄기차게 공급확대와 규제완화를 외치면서 ‘세금폭탄’을 비판해왔다. 천문학적인 불로소득과 투기적 수요를 방치하면서 공급을 확대할 경우 어떤 끔찍한 재앙이 닥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중앙일보>는 9월26일자 칼럼에서 정부의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정책이 부동산 가격을 올렸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공급이 탄력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함으로써 주거선호 지역의 주택가격을 더욱 치솟게 할 뿐”이라는 이야기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 칼럼에서 “결국 해답은 시장”이라면서 “부동산 정책을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보지 말고 거시경제를 이루는 하나의 시장으로 간주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토지연대 등 모니터 결과 발표

조중동은 투기적 수요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규제완화와 공급확대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신도시 건설을 확대하고 재건축 규제를 완화해서 공급을 늘리면 당장은 집값이 올라 고통스럽겠지만 언젠가는 시장이 안정된다는 논리에서다. 특히 부유세 등 불로소득 환수정책이 주거선호지역의 공급을 제한해서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킨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중앙일보>는 7월19일자 시론에서 국내 부동자금이 해외로 빠져 나가 미국 맨해턴 등에서 부동산 투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와 관련된 자본유출은 부분적으로 노무현 정부가 가진 자들을 향해 쏘아올린 ‘세금폭탄’이 가져온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보유세와 양도세를 낮추고 해외로 빠져 나간 불로소득을 국내로 불러들여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다. 해외투기 대신에 국내투기를 장려하라는 이야기일까.

<동아일보>는 종합부동산세를 노골적으로 반대해왔다. 이 신문은 11월27일 사설에서 “종부세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며 그럴 경우를 대비해 지금 이의신청을 내놓으면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종부세 납부 거부를 선동하기도 했다. 이의 신청이 확산되고 있으며 2만여 가구가 참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종부세 대상 주택의 92.3%가 1가구 다주택자 소유분이라는 사실을 이 신문은 지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앙일보>는 3주택 이상 보유자가 40.1%라며 “투기억제를 위해 도입된 세금인데 투기혐의자는 납세대상자의 절반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머지않아 평균적인 서울 아파트가 종부세 대상이 될 것”이라는 경고도 빠뜨리지 않았다. 종부세 탓에 민간소비가 위축된다는 주장도 어처구니가 없다. 종부세가 소득 상위 20% 가구의 월평균 지출액의 1.5배에 이른다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정작 종부세 대상이 전체가구의 1.3%라는 사실은 빠뜨렸다.

<동아일보>는 한나라당이 종부세 대상을 축소하는 안건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도 “‘부자 비호당’이라는 소리를 듣는 게 두려워 문제를 덮은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무리한 종부세 과세가 서민층에게 부작용을 파급시킨다”는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늘어놓았다. 우리나라 주택보유세 실효세율이 평균 0.2%, 종부세 대상자의 경우도 최대 0.6%, 미국의 3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는 사실도 지적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또 31평 아파트에 12년째 살고 있는 안 아무개씨의 재산세가 50%나 늘어났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구체적으로 세액이 얼마나 늘어났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안씨의 아파트는 공시가격이 6억4600만원에 시세는 8억원, 이 경우 보유세는 200만원이 넘지 않는다. 동아일보의 9월12일자 사설 제목은 “한국엔 ‘6억 넘는 죄’ 있다”였다. 보유세 실효세율이 2017년에 가서야 0.61%, 선진국의 절반 수준이 된다는 사실도 빠뜨렸다.

일부 기사에서는 자가당착적인 주장도 눈에 띤다. <동아일보>는 10월3일자 사설에서 지방 건설경기가 위축돼 올해 7월 현재 전국의 미분양 주택이 7년 만에 가장 많은 7만여채가 됐다고 지적하면서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투기적 수요가 무분별한 공급확대로 이어지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공급확대를 주장하면서 공급확대가 가져온 폐해는 정부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9월28일 기사에서는 “주택을 사려던 사람들이 높은 보유세 부담 때문에 구입을 미루고 있다”며 “높은 보유세 부담 때문에 구입을 미뤄 전월세 수요가 늘어났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역시 종부세 과세 대상 주택이 1.2% 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상위 1.2%에게 부과되는 종부세가 전월세 수요를 늘리고 전세금을 올렸다는 이야기다. 이 신문은 “서민과 중산층이 울고 있는데도 정부는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도 9월28일 사설에서 “서민형 신도시를 만들겠다고 큰소리치다가 강남 중대형 아파트 가격만 올려놓은 판교의 실패에서 값비싼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훈계를 늘어놓았다. 수요가 큰 중대형 규모를 줄이고 서민을 위한 중소형 주택을 짓겠다고 하는 바람에 서울 강남의 40평형대 이상 주택가격이 치솟았다는 이야기다. <조선일보>는 심지어 “임대주택이 주거의 하향 평준화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정부정책 뒤흔들어

이번 조사 결과 조중동의 부동산 관련 사설과 칼럼은 크게 9가지로 분류됐다. 신도시 건설을 늘리고 건설 공급을 확대하자는 공급확대론, 재건축 규제 등을 완화하자는 규제완화론, 보유세 강화 정책을 비판하는 세금폭탄론,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청와대의 코드 맞추기라는 코드론, 좌파정책으로 몰아붙이는 색깔론, 그리고 포퓰리즘론, 그리고 금융정책을 비판하거나 정부의 무능력을 비판하거나 기타 외국 사례를 비교하는 경우 등이 있었다.

특히 세금폭탄론이 전체 부동산 관련 사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2.9%에 이를만큼 압도적으로 많았다. 칼럼에서는 50.8%로 나타났다. 이들 신문은 5·31 지방선거 패배의 원인을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몰아붙였고 정부는 보유세 실효세율을 1%로 높이겠다는 정책을 철회하기도 했다. 상위 1.2%를 대변하는 논리가 전체 국민들의 여론으로 호도되고 정부의 정책을 뒤흔들고 있는 상황이다.

토지정의연대는 불로소득을 환수하고 투기적 수요를 잡는 것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는 최선의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남기업 사무처장은 “시장이 완전경쟁 상황이라면 공급을 늘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대책이 될 수도 있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거의 독과점에 가깝게 왜곡된 시장”이라며 “투기적 가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공급을 확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했다.

민언련과 토지정의연대는 논평에서 “부동산 광고를 수주하기 위해 언론사와 건설사의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상식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이들이 시장 근본주의자의 이론이 옳다고 믿는 ‘확신범’이거나 최악의 경우는 건설사에서 부동산 광고를 받으면서 담대하게 정론직필을 하고 있다고 믿는 ‘자기최면’의 상황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정환 <이코노미21> 기자 cool@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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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12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무지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은 믿을 수가 없네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요.

외로운 발바닥 2007-01-13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주류 언론들의 말처럼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에 충실하지 않고 지나치게 규제 위주의 정책을 짰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부동산의 재화로서의 특수성, 건설사들의 폭리실태 등을 고려하면 반드시 '시장'에 맡기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장 우선주의, 시장 만능주의가 정말 우리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후세인 처형과 인혁당 사형
이라크 침공 정당화, 유신독재 강화 위해 31년 터울 두고 황급히 집행한 ‘정치재판’
사건의 실체가 있고 없는 차이 있지만 진실 덮은 ‘승자의 재판’이란 점에서 같아
한겨레
» 지난 2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115㎞ 떨어진 티크리트 지역 오우자에 묻힌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무덤을 에워산 조문객들. 무덤 위에 엎드려 울고 있는 사람도 있다. 후세인은 미국이 주도한 후세인 재판에서 최종 사형판결이 난 뒤 서둘러 처형당했다. 바그다드/ AP 연합
안과 밖 /

후세인과 ‘인혁당’ 처형, 같은 점과 다른 점

“억! 그렇게 빨리!” 법정에서 형이 확정된 지 나흘 만에 사담 후세인이 처형됐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소리다. 바로 그때 후세인 얼굴에 겹쳐 ‘인혁당’ 재판(1975년)으로 대법원 판결 확정 바로 다음날 처형됐던 8명의 피고인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1980년대 말 ‘유신독재의 제물 인혁당 사건’이란 기사를 쓰기 위해 만났던 유가족들의 눈물어린 얼굴들이 떠올랐다.

술 한잔 먹고 박정희 욕하다 파출소로 끌려가면 순경이 “너! 빨갱이지?”라며 거칠게 묻던 1970년대를 살다 간 희생자들과 21세기의 후세인을 잇는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무려 31년의 터울을 둔 두 재판엔 무서운 정치적 계산들이 깔려 있다. 유신독재체제 강화(박정희)와 이라크 침공 정당화(조지 부시)에 재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선전한 세력들이 진실을 덮겠다는 일념 아래 서둘러 피고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인혁당’ 사건 조작지시 총책은 대통령 박정희, 조작의 실무주역은 중앙정보부장 신직수와 6국장 이용택, 유신독재의 허수아비 법원 총수는 대법원장 민복기였다. 박정희는 인혁당사건에 집요할 만큼의 관심을 보였다. 1989년 국회의원으로 금배지를 달고 있던 이용택을 만났더니, “한창 수사가 진행중일 때, 나는 1주일에 두 번꼴로 청와대로 가서 직접 보고를 드렸다. 물론 신직수 부장과 함께 갔다.”고 했다. 물론 그는 “내가 고문을 지시한 일도, 고문 하는 것을 본 적도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사단법인, 1975년 4월의 학살>174~5쪽, 천주교인권위원회 엮음)

후세인 사형판결은 1982년 시아파 밀집 거주지역인 두자일을 방문했던 후세인이 공격을 받은 뒤 그곳 주민 148명을 재판에 넘겨 처형한 데서 비롯됐다. 밉든 곱든 한 국가의 최고 지도자를 암살하려 했다면 중죄다. 다만 148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는 것은 지나쳤다고 지적된다. 수니파 출신 독재자 후세인은 “나를 거스르면 이렇게 된다”는 메시지를 시아파에게 전하려 했을 것이다.

두자일 사건과 인혁당 사건엔 큰 차이가 있다. 두자일 사건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고, 인혁당 사건은 조작된 일이다. 두자일 사건을 지휘한 바르잔 이브라힘 알-티크리티 전 정보국장(후세인의 배다른 동생), 재판을 맡았던 아와드 알-반다르 전 혁명재판소장도 후세인과 함께 지난 12월26일 사형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 두 사람도 곧 처형될 운명이다. 그런데 인혁당 사건 조작자들은 전혀 아니다. 법정 단죄는커녕 “내가 그때 지나쳤소” 또는 “죽을 죄를 졌소”라는 유감이나 반성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가리고 싶은 부끄러운 미국의 과거사

 

유신독재의 서슬 푸른 법정에서 형 확정 판결이 내려진 다음날 처형된 ‘인혁당’ 피고인들이 할 말을 못하고 갔다면, 후세인은 미국인들이 교육시킨 이라크 판사가 진행하는 비공개로 진행된 법정에서 진실을 제대로 못 밝히고 갔다. 그렇다면 후세인에 관련된 진실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국가이익을 위해서라면 독재자와 기꺼이 손을 잡았던 미국의 부끄러운 과거사가 얽혀 있다.

이란-이라크전쟁(1980-8년)에서 미국이 행한 역할은 중동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미국은 1979년 호메이니 혁명이 있기 전까지 이란의 석유 이권 40%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란 혁명으로 하루아침에 석유이권을 빼앗긴 미국, 페르시아 만의 강자를 꿈꾸던 후세인의 기묘한 결합이 이뤄졌다. 1983년 11월26일 레이건 행정부 고위관계자들은 ‘국가안보 결정지침(NSDD) 114’ 문건으로 이란-이라크전쟁과 관련한 미국의 중동정책을 새롭게 정비했다.

이에 따라 1983년 12월20일 도널드 럼스펠드(전 국방장관)는 이라크의 바그다드 대통령궁에서 후세인을 만나 90분 동안 밀담을 나누었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럼스펠드 특사에게 “미국은 이란의 승리를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점을 후세인에게 밝히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 무렵 이라크는 이란군의 공세에 밀려 마즈눈 유전지대를 빼앗기는 등 고전하고 있었다. 미국은 국토 면적에서나 인구에서 이라크보다 훨씬 덩치가 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대국인 이란과의 소모적인 전쟁을 후세인이 8년 동안이나 질질 끌도록, 군사정보와 화학원료를 비롯한 물자로 후세인 정권을 지원했다. 그 규모는 무려 297억달러 어치다. 미 백악관과 국무부는 국제금융기관들에게 압력을 가해 이라크에 전쟁비용을 대 주도록 했다.

이라크는 이란-이라크전쟁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함으로써 국제법을 잇달아 어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미국은 후세인 지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21세기 들어 미국의 석유갈증이 심해지자, 2003년 이라크 침공 때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를 침공명분 가운데 하나로 삼았던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할랍자 주민 5천명 누가 죽였나

후세인은 그에게 사형이 언도된 두자일 사건말고 다른 재판도 진행 중이었다. 1980년대 이라크 북부 쿠르드 족을 화학무기로 죽였다는 사건들에 대한 재판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 정권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명분의 하나로 기회 있을 때마다 “자국 국민을 화학무기로 죽였다”이란 주장을 해왔다. 그 대표적 근거로 꼽아온 것이 1988년3월 이라크 북부 할랍자 마을에서 쿠르드족 주민 5천명을 화학무기 공격으로 무참하게 죽인 사건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 관한 한 후세인은 할 말이 있다. 그가 처형당하지 않고 쿠르드 족 학살사건을 다루는 법정에 나섰더라면, “당시 할랍자 마을의 쿠르드족 주민들을 화학무기로 죽인 것은 이란군이었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미 해병이 1990년 12월, 걸프전쟁 작전 참고자료로서 작성한 <이란-이라크 전쟁의 교훈>이란 제목의 기밀문서, 다른 하나는 미 국방정보국(DIA) 기밀보고서다.

해병대 기밀문서(FMFRP 3-203)는 부록 항목에서 이란-이라크 양쪽의 화학무기들을 분석했다. 문서는 “(5천명에 이르는) 할랍자 마을 쿠르드족을 죽인 문제의 화학무기는 혈액제재로 보인다. 이라크 군은 이런 종류의 화학무기를 사용한 적이 없다. 이란군이 쿠르드족을 공격했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라 적었다.

할랍자 전투 뒤 미 국방부는 DIA 요원들 하여금 현장조사에 나서도록 했다. 희생된 쿠르드족의 신체 상태를 살펴본 DIA 요원들은 그들이 ‘청산칼리를 주원료로 한 혈액제재’로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라크 군의 화학무기는 겨자가스였다. 청산칼리를 주원료로 한 혈액제재는 이란군의 화학무기였다. 이로써 진실이 드러난다. 쿠르드족 주민들은 양쪽 군대가 벌이는 치열한 전투의 한가운데에 끼여 있다가 이란군이 쏜 화학무기에 변을 당했다.

부시 미 행정부는 사담 후세인을 악의 존재로 그려왔다. 할랍자 마을의 쿠르드족 학살설도 그 주요근거로 제시돼 왔었다. 만일 후세인이 서둘러 처형되지 않고 쿠르드족 학살과 관련된 다른 재판으로 법정에 나선다면, 부시 대통령은 곤혹스런 처지에 빠지게 될 것이다. 2003년 이라크 침공 전에 퍼뜨렸던 후세인-빈 라덴 연루설처럼 “아니면 말고….“로 얼버무리기도 어렵다. 그런데 이제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쿠르드족 학살재판의 핵심 당사자인 후세인을 없애버린 것이다.

» 김재명/국민대·성공회대 강사 kimsphoto@hanmail.net
이라크 현지취재 때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기 바로 직전까지 바드다드대 법대학장을 지냈던 수헬 파틀라위를 만났었다. 전쟁법 전문가인 파틀라위는 “유엔안보리 결의를 거치지 않은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은 뚜렷한 국제법 위반이며, 아부그라이브 감옥에서의 수감자 학대는 전쟁범죄 행위로서 1949년 제네바협정을 어긴 사건”이라 지적했다.

따라서 파틀라위는 영미 정치지도자들과 군사령관들이 1998년 로마협정에 따라 출범한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전범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했다. ‘세기의 재판’으로 기록될 후세인 재판은 ‘승자의 재판’ 성격이 짙다. 훗날의 역사가들은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미국이 졌다면, 법정에 설 사람은 후세인이 아니라 부시였을지도 모른다고 기록할 것이다.

김재명, 국민대-성공회대 강사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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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12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혁당 사건은 정말로 억울한 사건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후세인 아저씨는 사람을 너무 많이 죽어서 사형당해도 저는 사형에도 괜찮다고 보는데......

외로운 발바닥 2007-01-13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후세인 자체는 정말 나쁜 사람이지요. 그리고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사형판결도 결코 과하다고 할 수 없지요. 하지만, 후세인 한명을 사형시키는 것과 예컨대 무기징역으로 전범재판소에서 처벌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을까요. 더 나아가 부시와 후세인 간에도 승자와 패자와의 차이만 있을 뿐 근본적으로는 차이가 없다는 점이죠. 후세인의 행위 자체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후세인과 별 차이 없는 부시가 주도하여 후세인을 재빨리 처형하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