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 인생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위기철 지음 / 청년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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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비교적 풍족하게 자란 나에게 아홉 살인생은 이질적이고도 신기한 이야기였다. 아버지가 부산에서 잘 나가는 깡패이고, 어머니는 전쟁과부의 딸, 찢어지게 가난하여 9살이 되어서야 산동네 꼭대기에 비가 새는 판자집을 얻는 주인공네 집. 그런 가정환경 때문에 9살 여민이는 소위 밑바닥 인생들을 보며 자란다. 그러나 항상 적극적이고 남을 배려해주는 아버지와 고운 마음씨를 가진 어머니 덕분에 여민이는 성격이 삐뚤어지지 않고 자신이 가난함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9살이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기에는 조금 어린 나이여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아홉 살인생에는 산동네에서의 다양한 인간상이 등장한다. 누나와 단둘이 사는 지저분한 기종이, 골방철학자, 토굴할매, 검은제비 등등. 이들은 처음에는 각기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보여준다.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라든지, 자기 아버지를 죽여버리겠다든지 하는 행동등은 그 자체만으로 보면 이해하기 힘들지만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이 그런 행동을 취하게 만든 원인들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여민은 9살의 나이에도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여민이 숲에서 뛰노는 장면들은 비록 도시에서 자란 나에게도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백마를 타고 왕자가 되어 내가 좋아하던 여자애를 구하러 가는 상상을 하는 것이나, 어린시절에 갖는 자신이나 가족의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등이 아홉 살인생에는 너무나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살짝 엿보이는 사랑에 대한 감정, 성장함에 따라 자기의 환경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 힘든 삶의 단편들에 대한 아이나름의 이해 등이 소설전체에 골고루 그려지고 있다. 또한 세상에 막 눈을 뜨기 시작하는 9살짜리 꼬마가 추잡하고도 험한 어른들의 삶을 조금씩 엿보고 의문을 가지며 이해해가는 과정이 아기자기하면서도 가볍지 않게 그려진다. 아직 세상에 완전히 찌들었다고 하기에는 나이를 덜 먹었지만, 어느정도 순수함을 잃어버린 지금, 아홉 살인생에서 느껴지는 9살짜리의 풋풋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린시절의 순수함을 되새기게 한다. 29살이 되어서 9살때의 기억과 생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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겅호!
켄 블랜차드,셀든 보울즈 지음, 조천제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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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겅호가 경호나 다른 단어의 오타인줄 알았다. 그리고 겅호란 말이 미국에서 비교적 넓게 쓰인다는 사실조차 전혀 알지 못했다. 머리말에서 나오듯이 겅호란 ‘화이팅’이란 말과 유사하게 투지와 열정을 불어넣는 구호나 인사로 사용되며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다. 겅호 정신, 겅호조직, 겅호...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보복적인 인사조치로 말미암아 폐쇄직전의 공장에 발령받은 한 여 공장장이 신비하고 유능한 인디언 직원을 만나 그로부터 겅호정신을 배움으로써 함께 공장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켜 기적을 일구어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말이나 사고방식이 무척 신비로운 인디언인 앤디(서양인에게는 더욱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는 조각가인 할아버지로부터 겅호를 배운다. 구체적으로 겅호는 다람쥐의 정신, 비버의 방식, 기러기의 선물로 구성되어 있고, 앤디는 여 공장장인 페기에게 직접 자연에서의 다람쥐, 비버, 기러기를 보여줌으로써 그녀가 진정한 겅호정신을 깨닫게 하고 이를 공장의 경영에 접목시키게 도와준다.

이 이야기가 실화이고 페기의 공장이 너무나도 기적적인 성과를 이루어내 그녀가 백악관에까지 초대되고 그녀의 성공담이 유명해진 것을 보면 분명 겅호에는 모두가 이미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음에 틀림없다. 다만 이 책을 읽고 나서도 겅호를 느끼는 것보다 팀원 개개인에 그것을 심어주고 생활의 일부분으로 승화시키게 하는 것이 더욱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직접 다람쥐와 비버와 기러기를 보고 느끼지 못했고, 직접 그들을 보고 느낀 페기는 달랐으리란 생각도 든다.

겅호가 누구나 알고 있고 어찌보면 당연한 가치를 나열해 놓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며 그런 면에서 앤디와 페기는, 특히 앤디는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너무 겅호 그 자체의 의미 전달에 치중하다 보니 직원들이 변해과는 과정이나 겅호가 정착되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생략되어 있어 책을 읽으면서도 겅호에 대해 추상적인 이미지밖에 형성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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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와 사랑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35
헤르만 헤세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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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그녀가 나에게 지와 사랑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내가 이 소설을 좋아할 것이라고 하면서 한참 곰곰이 생각하더니 나는 나르치스와 유사하다고 했다. 그리고 소설을 읽고나서 골드문트와 나르치스중에 누가 더 마음에 드는지 말해달라고 했다.

지금 그녀에게 연락을 할 수는 없지만, 소설을 막 읽은 지금도 그녀가 소설에 관해 나에게 남긴 물음에 나는 단정적으로 대답할 수가 없다. 내가 나르치스와 유사하다는 그녀의 지적에는 대체로 동감한다. 나에게 골드문트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을 골드문트로 대표되는 감성, 자유로움, 예술성, 방랑자적 이미지, 체험적 생활 등과 나르치스로 대표되는 지성과 사색, 구도자적 삶의 자세, 날카로운 직관 등의 특성으로 나누어 판단하자면 나는 분명히 나르치스적인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다. 물론 나르치스만큼 훌륭하게 내 자신을 성장시키지 못했지만,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고 가능한 위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행동하기전에 생각부터 하는 나는 자유롭게 발 닿는대로 길을 떠나 수많은 여자들과 무수한 경험을 하고 숲과 들판에서 수많은 밤을 보내면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골드문트와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나르치스와 같이 내 삶의 방향을 이끌어주는 친구를 만나지 못해 나의 본성과 다르게 일상생활과 사회가 짜놓은 틀에 따라 잘못된 길을 추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수도원에 학생으로 들어온 소년 골드문트와 그 수도원의 젊은 교사인 나르치스간에는 학생과 교사인 지위의 차이만 있을 뿐, 근본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존재하지만 그러한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르치스가 골드문트의 본성을 꿰뚫어 본 후 그에게 그가 가야할 길을 알려주어 골드문트가 수도원을 나와 방랑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둘의 삶의 모습은 크게 달라진다. 각자가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열거하지 않더라도 세월이 흐른뒤, 감옥에서 교수형을 기다리는 죄수가 되어있는 골드문트와 참회를 들어주러온 신부인 나르치스가 재회하는 장면만으로도 골드문트와 나르치스의 서로 다른 삶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골드문트가 욕정에 사로잡혀 수많은 여인들과 관계를 맺고 살인까지도 했다고 해서 골드문트가 천하의 죄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성직자인 나르치스가 성자로 그려지는 것도 아니다. 난잡한 정교나 살인 그 자체만으로 보면 죄가 될 수도 있겠지만, 골드문트는 자기 마음, 즉 사랑이 이끄는대로 자유롭게 생활하면서 그 나름의 삶의 의미를 찾아간 것이며 결국은 진정한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나르치스는 그런 골드문트의 죄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기도나 성사를 게을리한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나르치스 또한 구도자적 삶의 태도를 견지하면서 스스로 삶의 의미를 발견해나간다. 수도원에서의 이별이후 둘은 각자 서로 다르지만 정말로 충실하게 자신의 본성에 맞게 삶을 개척해나간 것이다.

골드문트와 나르치스, 둘 중 누구의 삶이 더 올바른 것인가 하는 평가는 내릴 수 없다. 오히려 헤르만 헤세는 양자의 융합을 진정한 가치로 제시하는 것 같다. 그녀의 물음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아니지만, 그녀에게 답을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나는 좀더 골드문트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나의 나르치스적인 특질이 내가 골드문트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을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지만, 양자의 융합이 반드시 불가능하지 않다는 전제가 있다면 나는 정말로 골드문트처럼 내 마음이 이끄는대로 자유롭게, 사랑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그렇게 그녀에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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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개정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 외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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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선배의 추천을 통해서였다. 읽기 전에는 막연히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문학이 탄생하게된 시대적 배경 등을 써놓은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책을 접하고 나면, 이 책은 그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과거 대학생들의 필독서이자 이름있는 예술사가들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책 중의 하나로 꼽은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광범위한 시대와 그에 따른 문학과 예술작품을 일관되게 날카로운 분석으로 그들이 특수한 조류나 형태를 띠게 된 사회사적 원인을 탐구해 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은 정말로 대단한 업적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역사가들이 말하듯이 ~시대가 칼로 썰어내듯이 명확히 나뉘는 것은 아니겠지만 하우저는 한 시대 또는 그 시대에 따른 특정한 예술 조류가 다음 단계로 이전되는 과정의 연결고리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또한 하우저는 무척 논리적이다. 특정 사회현상이 나오기까지의 인과관계를 계층간의 경제적 이해관계, 토지문제, 사회적 계층구조 등을 통해서 명확하게 풀어내고 있다. 또한 하우저는 이른바 낭만파라고 하는 학자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데 반대견해의 주장도 일견은 수긍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논증하는 것이 무척 세련된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이제껏 교과서에서 무비판적으로 배워왔던 것들중 많은 부분이-역사적 사실이 언제나 그렇듯이-반드시 확립된 진리는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도시가 발달했었다가 중세 초기에 쇠퇴한 후 다시 재현되었다는 사실은 시대가 진행될수록 도시가 발달한다는 소박한 믿음을 가졌던 나에게는 신선했으며 기사계급의 몰락이 반드시 화약의 발명으로 대표되는 전쟁기술의 변화에만 전적으로 기인한 것은 아니었다는 하우저의 주장이나 우리가 민중문학이라고 별생각없이 받아들이는 많은 작품들이 사실은 귀족적이고 민중들의 의식과는 요원한 것이었다는 점 등은 새롭게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 책은 쉽게 잃히는 책은 아니다. 약간은 전공서적을 읽듯이 정신을 집중해서 정독을 해야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일단 책의 흐름에 익숙해지다 보면 하우저의 광범위한 예술사에 대한 논리적인 분석에 혀를 내두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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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아프가 본 세상 1
존 어빙 지음, 안정효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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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무척 독창적이고 발칙하기도 하면서도 읽는동안 통쾌하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가아프가 본 세상'은 우리 삶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일단 무척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어나갈 수 있다. 출생자체도 이제껏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기이한 방법으로 태어난 주인공 가아프, 그리고 그가 성장하면서 겪는 갖가지 에피소드들.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가 본 세상’에서 헬렌과 마이클 밀튼이 탄 차와 가아프와 그의 아이들이 탄 차가 충돌한 장면이었다. 누가 과연 그런 상황에서의 그와 같은 충돌, 그리고 그에 따른 참담한 결과를 예측했겠는가?

작가인 존 어빙의 발칙한 상상력은 이제껏 보아왔던 소설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힐 만하다. 이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은 성적이고 불경스럽다고까지 할 수도 있으나 결코 저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항상 자기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사고나 범죄를 당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않고 사는 소설가인 괴팍한 주인공 가아프와 유명한 여권운동가인 가아프의 어머니 제니 필즈, 그밖의 너무도 개성적인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소설적 장치들이 이 책에 나오는 자극적인 에피소드들 속에 약간은 과장되어 표현되어 있는 우리 삶의 한 단편들을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작가가 밝히고 있듯이 어빙은 플롯의 구성에 상당한 노력을 들인 것 같다. 그래서 정말 영화속에서도 일어나기 힘든만큼의 기괴하면서도 우연적인 일들이 소설속에서는 개연성 있는 사건으로 느껴진다. 어빙이 ‘가아프가 본 세상에서는, 저녁에 허리를 잡고 웃다가도 이튿날 아침은 살인적일 수도 있다.’고 한 말은 이 소설이 던지는 수많은 물음 중 핵심적인 것에 대한 훌륭한 대답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과연 가아프가 본 세상과 얼마나 다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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