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삶을 만나다
강신주 지음 / 이학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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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철학에 관심은 있지만, 제대로 읽을만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또한 철학을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기며 가까이 하지 못했던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철학이 가진 난해함은 최대한 쉽게 풀어쓰고, 그 철학적 가치관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명쾌하게 풀어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에 관심이 있던 사람도, 삶의 문제로 인해 이런 저런 고민이 있는 사람도, 세상에 대해 실망했던 사람도 모두 읽을 만 하다.

  이 책을 아무 걱정없이 고르게 된 데에는 '강신주'라는 필자명이 한 몫을 했다. 이미 '장자'에 대한 그의 글들을 보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깊이 있는 사유에 흠껏 빠져있던 터였으니 말이다. 그런 까닭에 이 책도 그런 사유의 산물일테니 결코 실망시키진 않으리란 생각으로 집어들었던 거다. 막상 책을 받았을 땐 좀 실망이 되기도 했다. 아직도 난 책의 외형을 통해 책의 가치를 매기는 그런 인간이다^^. 책이 얇아서, 그리고 내용도 부실한 거 같아서 적잖이 실망했었다. 하지만 나의 그런 책에 대한 가치 매기기는 곧 허구임이 드러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데 도무지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쉽게 쓰여졌을 뿐더러, 그 내용은 어찌나 그리도 다채로운지 생각할 것도 많았으니 말이다. 책이 나를 읽는지, 내가 책을 읽는지 모를 정도로 그런 몰입된 상태로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이 쯤되면 이 책은 대중을 위해 쉽게 풀어쓴 철학책이지만, 그렇다고 가벼운 책은 아닌 복잡한 성격의 책이라 할 수 있다. 그건 곧 철학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읽을 만하며, 조금 알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이젠 제대로 나의 가치 매기는 습관을 고치기로 했다. 겉모습보단 내실이 더 중요하다.... 물론 사람도^^

  박노자씨의 책이나, 남경태씨의 '개념어 사전' 류의 책에서 펼쳐지던 내용이 여기에서 반복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친근감에 책을 더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곧 가정의 신화, 국가의 신화, 화폐의 신화를 깨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솔직히 그런 신화에 둘러싸여 사는 이상,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순 없다. 노예 아닌 노예, 매체(주체의 반대) 아닌 매체로 밖에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삶은 왜이리 꼬여 있는지 도무지 알지도 못한다. 한번이라도 자기의 삶을 제대로 생각해본적이 없으니, 그런 갑갑증은 당연하다. 바로 이 책에서도 그런 신화들을 뛰어넘을 것을 철학적 사유를 통해 풀어가고 있다. 또한 철학 사유는 만남을 통해 이뤄지며  알 수 없는 세상 사리가 얼마나 축복된 일인지를 알려준다. 누구나 자기의 삶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맘대로 되지 않는 삶을 경험하게 되면 실의에 빠지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거다. 하지만 과연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일이 다 된다면, 세상은 얼마나 무료할 것인가. 천국에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하기보다 지루할 수밖에 없는 논리와 같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무예측성으로 인해 여러 만남들이 가능하며 그런 만남들을 통해 나의 삶이 또한 바뀌어진다. 무한한 변이체인 나, 그걸 통해 전혀 다른 삶을 조성해갈 수 있는 가능성이 늘 열려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 책은 우리의 삶을 살찌울 책이다. 아니 나에게 어떠한 변화 가능성을 열어주는 책이다. 이 책을 만나기 전의 나의 모습과 만난 후의 나의 모습은 전혀 다를 것이다. 과연 어떻게 나의 모습이 변해 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책을 집어들고 맘껏 저자의 사유와 소통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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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만감일기 - 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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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질 싸움인 줄 뻔히 알고서, 자존심 때문에 싸움을 붙었다. 역시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흠씬 두들겨 맞았다. 그런데 그 녀석 막상 일어나고 하는 말이 가관이다. "내가 얼마나 평화주의자인데... 그래서 억지로 맞아준거야.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데...." 라고 옷에 묻은 흙을 털면서 말하는거다.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평소에 공부를 하지 않았다. 당연히 시험이라고 해서 공부를 할리 없다. 막상 시험을 본 결과가 나왔는데, 역시나 거의 바닥을 기고 있다. 그런데 그 때 "난 학교에서 정답 맞추기 위한 기계가 되기 싫어서 공부 안 하는거야. 너희들 몰라서 그러는데 내가 공부하기 시작하면 금방 선두권에 들어갈거라고..."라며 비웃듯 얘기하는 거다.

  위에서 이야기 한 사람들을 살면서 한 번 정도는 보았을 것이다. 과연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던가? 그건 말로 정의하기보다 가소로운 비웃음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런 모습이 결코 남의 모습만 아니다. 나의 모습에도 이런 모습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위에서 얘기한 것들은 한마디로 '자기합리화'라고 한다. 합리화는 자기가 그 상황을 받아들일 자세가 안 되어 있을 때, 자기 위주로 그 상황에 대한 해석을 바꾸는 것이다. 즉, 자기 스스로에 대한 거짓말이란 얘기다. 자기가 질 수밖에 없는 싸움실력을 가졌음을, 자기의 머리가 좋지 않음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그렇듯한 얘기로 넘어간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그와 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똑같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한심하지 않은가? 차라리 직면하여 자기의 나약함이나 무식함을 인정하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게 나을 것인데 말이다. 그런데 사람이란게 그렇다. 특히 자기존중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내 스스로의 환경이나, 나 자신을 객관화시켜 직면하려하기 보다 왜곡하여 그게 내 본모습인양 회피한다.

  이젠 그만 합리화하자. 내 자신을 그 모습 그대로 보고 그 모습 그대로 만족하며, 부족한 점들을 하나 하나 고쳐가도록 하자. 그럴 때에 진정한 자아 발전이 있다. 그럴 때에 나중에 날 때려줬던 녀석과 싸워 이길 수 있고, 시험을 봐서 상위권에 들 수 있다. 바로 그 정신일 때에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거다.

  박노자! 그의 글을 연거푸 읽게 됐다. 읽고난 소감은 역시 그의 글은 비판의 묘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건 나에게 새로운 지평을 준다. 내가 지금까지 유아론적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삶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합리화하며 이게 바로 세상이라고 느껴왔던 것을 뒤집어 다시 보게 해준다. 귀화한 한국인, 하지만 그의 사색의 깊이는 한국 사람 이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어쩌면 한국이란 테두리에 갇혀 사색을 쏟아내고 있는 지식인보다 여러 나라를 돌아보며 얻은 깨달음들을 풀어내는 그의 문장들이 더 객관적이며 사실적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만감일기'를 소개하며 서두를 길게 얘기한 까닭은 바로 이 일기에 지닌 함의를 바로 보기 위해서이다. 솔직히 만감일기를 읽으면서 복잡다단한 현안들에 대한 그의 비판의식들이 아니꼽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비판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너무 비판적인 게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즉, 기쁘게 읽을 사람보다 왠지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읽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혼란스러움을 거부하진 말자. 아니 회피하지 말자. 그런 거북스러운 마음 속엔 나 또한 은연 중에 느꼈을 사회에 대한 불만들이 녹아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명확한 사실은,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합리화 비슷한 착각에 빠져 살았다. 현실 왜곡은, 뭐 지시에 따라 살려는 사람에겐 하등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자아를 지닌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극악과도 같은 것이다. 어항이란 속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는 '그것만이 세상의 전부인지 알고 자기는 자유를 만끽한다'고 착각할 것이다. 그와 같이 현실을 왜곡하며 사는 삶도 갇혀 살면서 자기는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바로 그런 착각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바로 조금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 만감일기를 읽으며 현실에 대한 바른 인식을 지닐 수 있도록 해야한다.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사실에 직면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어떤가 마음의 준비가 되었나? 그렇다면 이제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나 자신을 좀더 객관화 해보며 사회를 제대로 보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집어들고 읽어보자. 바로 나를 제대로 아는 것을 시작으로 너와의 연대를 이루고, 그것마저도 초월하여 우리와의 연대, 세상과의 연대를 이뤄나가야한다. 내 스스로의 삶에 발전이 있고자 하는 자, 마음을 활짝 열고서 경계를 허물고 연대와 화합의 장으로 나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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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 - 박노자의 한국적 근대 만들기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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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자, 이 이름을 듣게 된 건 꽤 오래 되었다. 하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한문교육과 출신이니만치 왠지 그의 이름을 들으며 '노자'가 생각났던 건 나 뿐이려나. 그냥 이런 저런 생각 때문에 읽을 기회가 여러번 있었으면서도 읽지 못했다. 하지만 점점 논객 진중권씨의 작품들을 읽게 되고, 현실 비판의 새로운 방향을 접하게 됨으로 그의 이름도 새롭게 들어오기 시작한 거다. 예전엔 비판 문학이라 하면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유토피아적 까발리기'정도로만 생각했다. 그건 내 스스로 현실을 아무 생각없이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판 자체를 좋게 보지 않았던 거다. 혹 물 속에 살던 물고기에게 물이 없는 삶을 상상도 할 수 없듯이, 나 또한 그 한계에 갇혀 살았던 거다. 하지만 손으로 해를 가릴 순 없다. 여러 군데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던 현실 고발의 소리들로 현재의 내 삶이 얼마나 부조리한 생각들을 당연시하며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런 깨달음의 결과 난 결국 박노자의 책을 집어들었다.

 근대로의 이행은 이미 고미숙 선생님의 '나비와 전사', 앙드레 수미드의 '제국 그 사이의 한국'을 보며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경찰 권력이 주도했던 위생과 검열, 기독교가 들어옴으로 정당화했던 제국주의의 실상 등등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근대는 우리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부조리한 모습이 많이 있으며, 그건 아직까지도 우리의 삶에 뿌리 내리고 있다. 과거를 잘 알지 못하면 현재의 삶의 부조리는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 될 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책이었나? 한마디로 근대로의 이행을 살펴보며 현대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의무징병제'에 대해 누구나 억지로 끌려간다는 부정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으면서, '군대는 다녀와야 인간이라 할 수 있지'라는 긍정적인 이야기도 한다. 바로 이런 알 수 없는 인식을 보며 박노자씨는 근대로의 이행기에 의무징병제가 생기게 된 계기, 그게 어떻게 우리 사회에 인식되게 되었는지를 따져본다. 이 책에는 이런 내용들이 수두룩하다. 현대 사회에 일어나는 여러 부조리를 보며 그걸 계보학적으로 근대로의 이행기로 내려가 따져보는 것이다. 근대로의 이행기에 생겼던 부조리한 힘, 박노자는 바로 그런 부조리한 힘을 고발하고 있고 그걸 최고의 힘으로 여기는 우리의 의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려주고 있다. 우선 맘에 들었던 건 그의 깊이 사색적 힘이었으며, 여러 자료에 충실한 해석이었다. 외국인이기에 그저 아무 생각없이 나쁜 점만 얘기한거겠지.. 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니라 깊이 있는 안목으로 잘못된 점을 알려준 것이다.

  왜 우린 지금에 이르러 그런 부조리를 봐야 하는 것인가? 그건 바로 알게 모르게 영향 받아 굳어진 나의 의식을 바로 잡기 위해서이다. 나의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양심적 병역 기피자인데도, 사회의 악인양 치부했던 게 그 대표적인 예이다. 바로 그런 깨달음을 통해 나의 시각을 넓히며 나의 삶을 바꾼다. 사회의 부조리는 결국 나 자신의 부조리일 수밖에 없다. 그건 강압적으로 타인에 대한 억압으로 나타난다. 그런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바로 이런 작은 깨달음들을 통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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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친구와 동네 뒷산을 올랐다. 친구가 등산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도 쾌재를 불렀다. 늘 등산을 하고 싶어 근질근질하던 차였으니. 하지만 그 다음 대화에서 나의 한계는 여지없이 드러났다. 난 '등산=모악산 오르기'의 공식이 무의식중에 들어 있던 터라, 당연히 모악산에 가자는 이야기로 받아들였는데 친구는 어느 산이든 상관없다는 투였으니까. 더욱이 친구에게 있어서 모악산은 '정상에 다다라야 할 것만 같은 강박증을 주는 산'이었던 거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 있어서 모악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꼭 정복지에 서있는 정복자처럼 정상 탈환이란 목표를 위해 올랐으니까. 그런 목표주의의 삶에서는 과정이 중요하지 않다. 최대한 빨리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면 과정은 생략해도 그만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적인 길로 가려하기보다 지름길을 찾게 마련이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등산하게 되면 올라가는 길에 대하는 모든 풍경들과 인물은 그저 초점 바깥의 흐릿한 배경에 불과하게 된다. 그 까닭에 친구는 "모악산에 가면 길이 쭉 정해져 있어서 그냥 막 올라가게 되니깐 싫더라. 그냥 이렇게 천천히 구경하며 가는 게 더 좋아"라고 했다.


<뒷 산을 거닐다보니 이 곳에 이르렀다. 이렇게 멋진 곳이 집근처에 있었다니^^;; 대략 난감~>

  풍류란 무얼까? 풍류를 어떤 사람들은 "배따땃한 사람들의 호사취미"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사실 조선시대에 풍류를 즐기는 계층은 양반이었으니, 그런 비판이 나올 만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풍류의 가치를 깎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아이와 어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이는 자기중심으로 세상과 자기를 보지만, 어른은 너 중심으로, 거기서 더 진일보하여 제3자인 그의 입장에서 세상과 나를 본다는 거다. 이런 내적 성장은 단순히 나이만 먹었다고 해서 이뤄지는 건 아니다. 어떤 기술을 익히듯 노력하고 연마해야 비로소 얻어지는 거다. 바로 그런 연마하는 자세를 풍류에 비할 수 있다. 풍류란 자연 속의 나를 느끼는 것이며 어떤 목표를 위해 과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 시선을 두고 그걸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앙상한 나뭇가지, 멧돼지의 발자국, 얼어붙은 개울을 보며 그것 자체를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어른이 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정신적 행복이라 할 만하다.



<남고산성 정상에서 본 전주~ 시원한 산바람이 느껴진다.>

  현대엔 몸만 컸을 뿐,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돈의 하수인이 되어 돈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증식시켜 나가기에만 열중하며, 타인의 이목을 신경 쓰느라 자신의 삶을 소외시킨다. 또한 자기의 허한 마음을 어떻게든 내비치지 않기 위해 권위, 학력으로 자신을 교묘하게 위장한다. 그들에게 삶은 기쁨이기보다 슬픔이며 여유로움이기보다 조급함이다.('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처럼 그들의 삶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말도 없다.)

  이젠 그런 부족한 모습을 객관화하여 인정하고 나의 삶을 내 스스로 소외시킬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보다 우선적으로 나의 삶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젠 현실 그대로를 느끼고 즐기며 달을 희롱하고 바람을 읊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산을 가는 것이 아니라, 즐기며 한 걸음씩 오르다보니 정상에 다다르는 것, 그것이 바로 풍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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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진 2010-08-24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본 글을 읽으며 여러가지 생각을하였으며 또 공감을했어요. 아주 훌륭한 내용입니다.

leeza 2010-08-24 19:51   좋아요 0 | URL
어떤 생각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하네요. 뭐 이 글은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니깐요. 님이 느낀 생각은 또 다를 테지요~
 
네 멋대로 행복하라 - 꿈꾸는 사람들의 도시 뉴욕
박준 지음 / 삼성출판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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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멋대로 행복하라', 제목부터가 아주 도전적이다. 이를 테면 막 내 멋대로 살았더니, 어느 날 부모님께서 '그려 맘대로 그렇게 살어.' 라는 말처럼 반어적인 꾸짖음처럼 들린다. 물론 그런 느낌이 들었던 어디까지나 나의 자격지심이었을 뿐이다. 아마 그렇게 곡해하게 된데에는 '멋대로'에 어떠한 자격지심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산다고 하면 자기 생각만 하며 사는 것처럼 이기적으로 들린다. 바로 그것이다. 난 이미 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뿐이다. 내 스스로 그렇게 나에게 짜여진 틀에서 안주하고 있으니, 그걸 벗어나 생활하는 사람들이 좋아보일리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멋대로'는 당연히 '방종'쯤으로 생각되는 거다. 아이쿠~ 이러다가 나는 평생 이런 꼴을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내가 이 책을 집어들게 된데에는 작자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On The Road'를 통해 박준씨의 문학관에 동감하게 되었으며 그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들이 맘에 들었으니까. 그래서 이 책도 읽게 된 것이다. 어떤가 작자가 주는 신뢰는 선입견 따위도 넘어서는 것이다~

  이 책에서 박준은 뉴요커들을 만나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뉴욕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자기를 찾아 떠난 사람들이다. 어떤 틀에 맞춰 타인의 가치에 맞게 살아가는 것에 신물을 느끼고 진정 자신을 찾아 떠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 같이 구도자와 같은 삶의 철학을 지니고 있다. 신기했다. 그건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같았기 때문이다. 왜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물어볼 수 있었으며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삶을 생각하며 그걸 찾아갈 수 있었을까? 가장 주요한건 뉴욕이 가진 특성에 있었다. 뉴욕은 다인종, 다문화가 있는 도시였다. 우리 나라처럼 어딜가든 하나의 민족, 하나의 문화가 있는 곳이 아니란 얘기다. 모두 다른 사람들이 소통하며 지낼 수 있으려면 진정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바로 그런 문화 속에 자신에 대한 물음을 던질 수 밖에 없었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바를 찾아가게 된 것이다. 또한 뉴욕은 뭐든 도전적인 자세로 자신을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나에게 참견하는 사람들도 없고, 나에게 신경써주는 사람도 없다. 즉, 모든 건 내가 해나가야 하는 거다. 내 삶을 내가 책임지며, 이끌어갈 수 있는 열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처음은 가족의 참견이나 사회의 참견에서 벗어난 것 때문에 편하다고 생각할진 모르지만, 머지않아 그게 더 큰 어려움인 걸 알게 될거다. 진정 어려운 건, 누군가를 의지하지 않고 내 발로 서서 나의 의지에따라 앞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다. 내 삶을 타인의 가치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가치에 맞춰 즐기며 가는 거다. 바로 이런 얘기들이 이 책 한 권 가득 인터뷰 형식으로 담겨 있다.

  'On The Road'에서도 그랬지만, 이 책에서도 많은 걸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 세상은 한참이나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 그 사람들 중 참 자신의 '멋'을 알아 그 멋대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과연 난, 나의 그 '멋'을 알고 있었을까? 아직도 제대로 알지 못해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난 그들처럼 세상에 맞설 용기나 없나보다. 아직도 늘 있던 그 자리에서 안주하며 비바람 다 피할 수 있는 곳에서 편안히 생각하고 있으니까. 바로 그런 나의 한계를 다시 한번 느끼며 굳이 뉴욕이 아니더라도 나의 한계를 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젠 다른 사람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내 멋대로 살아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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