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 - 박노자의 한국적 근대 만들기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박노자, 이 이름을 듣게 된 건 꽤 오래 되었다. 하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한문교육과 출신이니만치 왠지 그의 이름을 들으며 '노자'가 생각났던 건 나 뿐이려나. 그냥 이런 저런 생각 때문에 읽을 기회가 여러번 있었으면서도 읽지 못했다. 하지만 점점 논객 진중권씨의 작품들을 읽게 되고, 현실 비판의 새로운 방향을 접하게 됨으로 그의 이름도 새롭게 들어오기 시작한 거다. 예전엔 비판 문학이라 하면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유토피아적 까발리기'정도로만 생각했다. 그건 내 스스로 현실을 아무 생각없이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판 자체를 좋게 보지 않았던 거다. 혹 물 속에 살던 물고기에게 물이 없는 삶을 상상도 할 수 없듯이, 나 또한 그 한계에 갇혀 살았던 거다. 하지만 손으로 해를 가릴 순 없다. 여러 군데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던 현실 고발의 소리들로 현재의 내 삶이 얼마나 부조리한 생각들을 당연시하며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런 깨달음의 결과 난 결국 박노자의 책을 집어들었다.

 근대로의 이행은 이미 고미숙 선생님의 '나비와 전사', 앙드레 수미드의 '제국 그 사이의 한국'을 보며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경찰 권력이 주도했던 위생과 검열, 기독교가 들어옴으로 정당화했던 제국주의의 실상 등등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근대는 우리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부조리한 모습이 많이 있으며, 그건 아직까지도 우리의 삶에 뿌리 내리고 있다. 과거를 잘 알지 못하면 현재의 삶의 부조리는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 될 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책이었나? 한마디로 근대로의 이행을 살펴보며 현대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의무징병제'에 대해 누구나 억지로 끌려간다는 부정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으면서, '군대는 다녀와야 인간이라 할 수 있지'라는 긍정적인 이야기도 한다. 바로 이런 알 수 없는 인식을 보며 박노자씨는 근대로의 이행기에 의무징병제가 생기게 된 계기, 그게 어떻게 우리 사회에 인식되게 되었는지를 따져본다. 이 책에는 이런 내용들이 수두룩하다. 현대 사회에 일어나는 여러 부조리를 보며 그걸 계보학적으로 근대로의 이행기로 내려가 따져보는 것이다. 근대로의 이행기에 생겼던 부조리한 힘, 박노자는 바로 그런 부조리한 힘을 고발하고 있고 그걸 최고의 힘으로 여기는 우리의 의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려주고 있다. 우선 맘에 들었던 건 그의 깊이 사색적 힘이었으며, 여러 자료에 충실한 해석이었다. 외국인이기에 그저 아무 생각없이 나쁜 점만 얘기한거겠지.. 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니라 깊이 있는 안목으로 잘못된 점을 알려준 것이다.

  왜 우린 지금에 이르러 그런 부조리를 봐야 하는 것인가? 그건 바로 알게 모르게 영향 받아 굳어진 나의 의식을 바로 잡기 위해서이다. 나의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양심적 병역 기피자인데도, 사회의 악인양 치부했던 게 그 대표적인 예이다. 바로 그런 깨달음을 통해 나의 시각을 넓히며 나의 삶을 바꾼다. 사회의 부조리는 결국 나 자신의 부조리일 수밖에 없다. 그건 강압적으로 타인에 대한 억압으로 나타난다. 그런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바로 이런 작은 깨달음들을 통해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