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달린 드라큘라
브램 스토커 지음,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김일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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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운 한 여름밤의 더위를 한방에 날려보낼 수 있는 영화 한 편을 고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손에 꼽는 것이 바로 '드라큘라 백작' 아닐까 싶을 정도로 드라큘라는 그이 본연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우리에게 친근함마저 느낄 정도로 한켠에 우둑커니 자리잡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 동안 수 많은 판본(각종 타블리판과 요약본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읽혔던 다양한 형태의 드라큘라)과 영화(당시 좀 잘나간다고 여겨졌던 배우들이 드라큘라로 분하여 출연했더랬죠)를 통해서 전 세계인들의 뇌리 깊숙이 각인되어 있죠. 아마도 인종과 성별 그리고 종교등의 잣대를 떠나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드네요. 특히 섹시한 금발 미인의 목덜미를 깨물때의 장면은 가히 압권으로 기억에 남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자! 그럼 그 유명한 드라큘라에서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요? 음 우선 고향은 루마니아 혹은 헝가리 계곡 깊은곳의 城, 그리고 검은망토에 왠지 무도회장을 방불케 하는 나비넥타이 포스 여기에 포마드를 잔뜩발라 깔금하게 올백한 헤어스타일를 갖춘 젠틀한 복장의 신사 내지는 귀족 분위기, 항상 해가 지고 나서야 그 일상의 생활을 시작하는 야행성의 질주, 언제나 섹시하고 아리따운 금발의 미녀가 아슬아슬한 복장으로 파트너로 등장한다는 점. 참 한가지더 있네요. 십자가와 나무말뚝... 이렇게 드라큘라하면 가지고 있는 想은 극히 한정된 비쥬얼한 상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현상들이 드라큘라 본연의 모습이 아닌 흥행성 높은 자극적인 일부분이 확대재생산 되면서 불러 오는 진실의 오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얼만전 개봉했던 '레 미제라블' 의 경우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원작을 접하면서 깨닫게 되었지만요) 사실 이번 책을 접하기전까지만 해도 드라큘라의 원작가가 브람 스토커라는 사실도 몰랐을 정도로 드라큘라는 세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 같은면서도 실상 모르는 존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네요. 그만큼 우리는 드라큘라라는 허상에 익숙해 졌다는 말이겠죠.

 

 

   이번에 선보이는 <주석달린 드라큘라>바로 이러한 허상과 환상 그리고 오해와 왜곡으로 점철된(?) 드라큘라 본연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략하게 요약한다면 '드라큘라' 이전과 이후의 흡혈귀 문학과 그 영향력, 집필 당시의 시대상과 '드라큘라' 의 탄생 과정, 브람 스토커의 일생과 '드라큘라' 가 만들어낸 다양한 현대 문화 산업, 작품 속 등장인물과 실제 장소, 이동 경로와 지도, 실제 벌어졌던 사건 등 그야말로‘드라큘라’에 대한 역사적 논쟁과 연구들을 충실히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거의 논문과도 같은 느낌을 자아내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왠지 논픽션이라는 뉘양스를 가지게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방대한 주석과 참 요긴한 부록과 뒷담화들을 통해서 제대로된 드라큘라를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 올 것 같은 예감마저 들게 하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왠만한 책들은 빨리 읽는다고 자부하고 있는 저였지만도 이번 작품은 정말 오래 오래 걸려서 읽었습니다. 우선 본문보다 더 방대한 양의 주석들이 탑재되어 있어 정말 드라큘라의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뭐 한 10일정도 예상하고 이 책을 잡은 독자들이라면 왠만하면 한달정도 진득하게 일독하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로 많은 정보를 체득하게 된다는 거죠. 무엇보다 <주석달린 셜록홈즈> 로 유명한 레슬리 S.클링거가 주석을 달아서 그런지 정말 권위있고 신빙성이 높다는 것이 이번 작품을 처다보는 재미이기도 합니다. 요즘들어서 <레 미제라블>,<안나 카레니나>,<위대한 개츠비> 등 고전들이 새롭게 영상으로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만 보고 원작을 보지 않는다면 진정한 쾌감은 반감되리라 여겨집니다. 시간의 한계상 영화에서 표현할 수 있는 키는 원작의 특징적인 몇몇씬 밖에 없기에 필히 원작을 같이 보길 권하고 싶네요. <주석달린 드라큘라>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기존에 남아있던 잔상들과 한번 비교해 보면 그 가치가 배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영화보다 더 리얼하고 재미가 있더라구요. 우리가 알고 있는 혹은 알고 있었던 흡혈귀 드라큘라는 잊어버리는게 좋을 듯 합니다. 이번 <주석달린 드라큘라> 는 드라큘라의 진면모를 새롭게 재조명하고 있는 작품으로 '드라큘라의 모든 것' 을 알 수 있는 적지않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이네요. "드라큘라를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만드는 매력적인 책이다" 고 평한 스티븐 킹의 말을 전적으로 동감하게 되더라구요. 특히나 후반부에 수록된 부록편과 드라큘라의 뒷담화들이 이번 작품을 한층 더 빛나게 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는 점 독자들에겐 상당히 도움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어떻게 드라큘라가 세월을 거치면서 세인들에게 정형화되어 왔는지에 대한 논거들은 메니아를 떠나서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참 여러모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작품으로 책장에 두고 두고 찾아볼수 있는 백과사전같은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여겨질 정도로 자꾸 손이 가는 작품이네요.

 

 

   막상 책을 접하는 순간 아~! 라는 감탄사가 절로 입밖으로 세어나올 정도로 분량이 만만치 않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양한 검증자료와 꼼꼼한 주석(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올정도이며 심히 의심스러울 정도로 드랴큘라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나레이션을 볼 수 있네요. 그것도 구석구석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 같은)은 그 동안 독자들 뇌리속에 각인되어 있던 관념의 틀을 확 바꾸어 버릴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절로 손뼉을 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거 한방에 독파하겠다는 생각만 접으면 두고 두고 읽을거리를 제공하고는 있는 묘한 매력을 가진 작품으로 보여집니다(저 개인적으로는 후반부의 부록과 뒷담화를 다른 논거들이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구요). 이번 책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드라큘라를 보게 되는 시각이 180도 바뀌면서 드라큘라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뭐랄까요 단순하게 표지를 장식했던 드라큘라에서 생동감 넘치게 살아있는 존재를 확인했다는 느낌이 맞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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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꾼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밀수꾼들
발따사르 뽀르셀 지음, 조구호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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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밀수꾼들> 은 에두아르도 멘도사이후 처음 접하는 스페인 소설입니다. 스페인 소설을 접한 독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부분은 작품 전반을 감싸고 있는 정열적인 뉘양스 같은 살아 움직이는 필체를 느낄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밀수꾼들> 역시 이러한 범주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는 내러티브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네요. 스페인 내전을 겪고 황폐해진 분위기속에서 유일한 탈출구(배와 바다 그리고 밀수)일 수 밖에 없었던 일반 민중들의 삶을 적나라게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밀수선 보딱포호 선장 레오나르 주베라를 비롯한 선원들 각개인의 향수와 같은 회상과 밀수품을 건네기 위해 지중해 연안을 항해하는 현실이 오버랩 되는 약간은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목적지를 향해서 출발하는 배와 그 항해일정은 현재의 시점을 반영하고 배에 승선한 선원들의 회상은 비록 각 개인들의 삶을 추적하고 있는 구도를 지니고 있는 작품입니다. 특이할 점은 개인들의 회상에서 스페인의 근대사라는 거대한 담론과 이 과정에서 일반민중에게 미치는 삶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 일 것입니다. 내전과 세계전쟁을 거치면서 개인과 국가라는 가치관에 대한 어렴풋한 정립, 지중해 연안 국가들(스페인,그리스,이태리,프랑스,모로코,알제리)의 근현대사를 파노라마 형식으로 보여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현재와 과거사이를 조망하게 하는 구조가 상당히 무게감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딱포호에 승선한 선원들은 각기 다른 희망(일확천금을 꿈꾸는 자, 무너진 가족관계를 회복하고자하는 자, 국가라는 거부할 수 없는 조직에 의해 자신과 가족의 파멸을 겪을수 밖에 없는 자들이 그 지긋지긋한 국가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자 하는자등) 을 가지고 밀수라는 불법행위에 동참한 이들이지만 개인적인 회상으로 봤을때는 극히 평범한 일 개인들이라는 점에서 왠지 밀수라는 행위자체가 부도덕스럽게 비쳐지지 않을 만큼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 사뭇 인상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네요.

 

   역자는 그리스신화중의 하나인 아르고스호의 모험에서 모티프를 찾고 있지만 솔직한 표현으로 앞서 나갔다는 느낌이 드네요. 개인적으론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각 개인들의 처절한 삶이 밀수와 바다 그리고 각 개인의 희망으로 표출된 스페인 근현대사의 암영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소재를 각 챕터별로 현재와 과거를 연관시켜 현재 밀수라는 위법행위에 대한 면제부를 부여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면제부 발행에 근거를 받고자 하는 구도가 발따사르 뽀르셀의 의도된 행위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가져보게 되구요.

 

   전반적으로 스페인 근현대사에 대한 사전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 작품이 주는 느낌은 천차만별처럼 다양하게 국내 독자들에게 다가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바다를 배경으로 했다면 해양소설에서 주는 방대한 스케일 같은 맛도 보이지 않고(아마도 지리적인 우매함에 그 느낌이 더욱 더 반감되지 않았라는 생각이 들지만요) 그렇다고 내러티브 전반을 휘어 잡을수있는 뾰족한 모티프가 없다는 점에서 다소 지루한 점을 떨쳐버리기도 힘드네요. 가뜩이나 어려운 이름들이 '뽀,까,따,뻬' 등으로 번역되면서 가독성과 이해성을 낮추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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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아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눈의 아이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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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미 여사' 라는 애칭으로도 국내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미야베 미유키의 <눈의 아이> 를 대면했습니다. <화차> 나 <모방범> 등을 통해서 이미 국내에도 많은 매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이지만 그 동안 이런 저런 핑계 아닌 핑계로 그녀의 작품을 읽어보질 못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개인적인 선입관(여성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서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편협함이라 해야겠죠) 을 어느 정도 불식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우선 안도하게 되네요. 음 그리고 이번 작품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마거릿 애트우드에 비견할 대단한 여성작가를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큰 수확인 것 같고 앞으로 미미여사의 작품속에 빠져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추리스릴러소설이라 하면 먼저 떠오르는게 복잡한 사고의 실타래, 숨가쁘게 진행되는 내러티브의 향연, 다양한 복선과 부비트랩을 설치한 구조적 장치물, 그리고 상상치도 못할 대반전, 여기에 약간의 핏빛이 가미된 으스스한 색체감 뭐 이런 정형화된 일종의 공식이 머리속을 지배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룰이 추리스릴러의 제 맛임을 부인할 수 도 없는 것이고요. 뭐 그러다보니 요즘은 이런 정형적인 방식에 좀더 자극적인 충격파를 덧대어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기 위한 무리수를 두게 마련이고 독자들은 독자들 나름대로 좀더 자극적이고 극적인 소설들을 찾게 되는 것이 또 하나의 경향으로 비쳐지고 있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추리스릴러 소설류의 작품을 대하면서 요즘 같은 시류의 작품들이 오히려 추리스릴러 제맛을 떨어뜨리지 않나라는 생각도 가져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현실세계에 기반을 두고 사회적인 이슈를 생각게 하는 히가시노 게이고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더 눈에 들어오는 이유가 바로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면을 보여주기 때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러면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눈의 아이> 는 그녀의 명성에 걸맞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고 또한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거리를 던저 주는 작품입니다. 물론 상당한 재미도 동시에 선사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눈의 아이> 다섯편의 각기 다른 짧은 이야기를 모아놓은 단편집입니다. 다섯편의 스토리다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아 물론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처음 접하다 보니 그녀의 작품세계를 알 도리가 없다는 전제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인간의 기억과 추억를 모티프로 내러티브가 구성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다소 황당한 설정이기도 하지만 영혼(죽은자의 영혼에서 다양한 형태를 띈 형식으로)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섯편 다 사회성이 짙은 주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미야베 미유키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하던데요 특히 이번 작품들이 단편이라는 점에선 쉽게 작가의 사유를 펼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이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작가는 그 짧은 행간속에다 상당히 거대한 사유를 던져주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월이 변하는게 아니라 사람이 변한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본다" 등의 멘트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번 단편들은 하나같이 우리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감정들을 들어내어 현실세계에 접목시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서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왜곡되고 억눌렸던 감정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는 계기로 다가오기도 하구요.

 

   비록 단편이라 약간의 아쉬움은 남았지만. 그래도 작품전반에 걸쳐 다양한 소재와 내러티브의 깔끔한 맛 그리고 반전까지 결들어져 있어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요코' 처럼 갑자기 인형탈을 쓰고 세상을 한번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도 반짝 들게 하면서요, 그리고 아주 권선징악같은 뻔한 경구이지만 못된 짓 하게 되면 두고두고 가슴을 누른다는 말도 떠올리게 하네요. 이번 단편집을 계기로 미아베 미유키의 작품도 탐닉하고 싶어지는 충동을 억제할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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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 밀란 쿤데라 전집 8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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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름!~ 빠름!~ 빠름!~' 한때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모 통신회사의 광고 카피를 기억하실 겁니다. 아마도 현대 사회를 이 만큼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은 없으리라 여겨질 정도로 우리는(특히 대한민국에서는 거의 미덕이라고 해야겠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대의 모든 현상들이 리얼타임으로 빠르게 변화고 있고 그 '빠름' 에 조금이라도 쫒아가지 못하면 경쟁이라는 막차를 놓칠 것 같은 분위기가 지배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우리에게 '빠름' 은 일상적인 하나의 패턴으로 형성되었고 모든 가치관들과 성과물들의 잣대 같은 역활을 하게 되어버렸죠. 이런 시대에 '느림' 이라는 다소 진부한 단어, 시대발상에 현격히 뒤 떨어지는 사유를 불르짓는 한 사내가 있으니 바로 그가 밀란 쿤데라입니다. 모 다른 이가 이런 발칙한 사유를 들고 일어선다면 한마디 하겠는데 밀란 쿤데라라고 하니 어디 한번 그 '느림' 이 어떤것인지 사뭇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밀란 쿤데라의 <느림> 는 분량에 비해서 다소 복잡한 스트럭쳐를 지니고 있는 작품입니다. 맨 처음 접하게 되면 다소 아리송한 내러티브의 진행으로 페이지를 앞으로 그리고 뒤로 넘기면서 우왕좌왕하게 하죠. 화자와 작중 등장인물들의 매칭이 쉽게 이루어 지지 않은 듯한 뉘양스를 주면서 왠지 짧은 분량이라 다소 웃습게 여기고 도전한 독자들을 마냥 비웃기라도 하듯이 말이죠. 구조자체가 액자소설의 구도로 18세기 비방 드농의 '내일은 없다' 라는 정체불명의 소설에 등장하는 기사와 T부인의 사랑이야기 한번편과 20세기 망명한 체코학자와 춤꾼(정치색과 여론의 후광을 쫒는 무리들) 이야기라는 두개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여기에 작품 후반부에 가서 알게 되지만 20세기의 스토리를 작중 화자인 '나' 가 20세기 스토리을 써가는 형식을 가지고 있어 유니크한 스트럭쳐를 한층 더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작품의 독특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유니크한 점은 내러티브가 표방하고 있는 사유인 '느림' 을 외치는 밀란 쿤데라의 서사가 자칫 독자들에게 충분히 어필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는 것죠.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동안 발표된 밀란 쿤데라의 작품중에서 가장 독특한 구조와 사유를 지닌 작품을 손에 꼽을라면 단연코 이번 작품에 손을 들고 싶어질 정도로 <느림>은 밀란 쿤데라의 작품세계를 대변할 수 있는 작품으로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체코를 떠나 자유세계의 대변인격인 파리에 정착하면서 양 세계를 다 접해본 작가의 사유가 함축되어 녹아있는 작품이라는 것이죠. 그동안 체코에서 지성인의 갈등과 갈망을 모호성과 경계선이라는 사유로 분출했다면 이번 작품은 양 세계의 극단적인 이질감에서 오는 '속도감' 을 주제로 삼고 있지만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모호성과 경계의 사유는 여전히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작품입니다.

 

   "빠름과 망각 사이에는 어떤 내밀한 관계가 있다. 속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는 것" 이번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이자 파토스적인 경구처럼 다가오는 대목입니다. 이번 작품을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아마도 이 문구로 깔끔하게 정리될 정도로 작가 자신이 표방하는 사유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이 사유는 사랑이라는 개인적인 영역은 물론이고 대외적인 공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현대인들의 삶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여기서 밀란 쿤데라 자신의 고뇌가 묻어 있는데요. 망명한 체코 곤충학자라는 액자소설속의 인물을 투영해서 사회주의와는 또 다른 비애를 담아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베르크나 뱅상, 퐁트벵등의 인물들(춤꾼으로 묘사하죠)을 통해서 타인의 시선에 자유로울수 없는 현대 지성인들의 이율배반적인 행태와 이를 한꺼 조롱하는 밀란 쿤데라의 따가운 시선속에 또 다른 느림의 미학을 엿보게 하네요.

 

   '똥구멍', '음문' ,'자지' 등 원초적인 단어와 "너 하고 싶니?,나도 하고 싶어" 라는 도발적인 문구들을 접하면서 밀란 쿤데라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다소 황망한 마음을 감출수 없을 것 같이 이번 작품은 성애묘사의 클라이막스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 동안 여러작품(아니죠 모든 작품속에서 밀란 쿤데라는 성애의 묘사를 기가막히기 서사하고 있죠. 이 기막힘이란 대놓고 상영되는 포로노 같은 서사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내면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심리를 대변하고 있는 서사라는 점에서 낮을 붉히게 하지만 속이 시원한 느낌을 대리해주는 그런 기막힘이죠.)을 통해서 보여준 성애의 묘사와는 약간 차별화된 서사들(정말 대놓고 표현하고 있죠. 그 동안 뭔가에 억눌려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이 사정없이 쏟아붓고 있으며, 밀란 쿤레라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작심한듯이 서사하고 있다는 점이 기존의 작품들에서 볼수없는 대범함이라고 할까요)을 맛보게 됩니다. 뭐랄까 직설적인 성기등 은밀한 부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데도 왠지 격이 떨어지지 않는 서사들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죠. 인간 내면에 자리잡고 있던 뜨거운 욕망을 마그마가 분출하듯이 한방에 끌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야금 야금(느림에 해당되겠죠)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 잡으면서 그 효과를 극대화 시키는 서사의 결정판을 보여준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리라 생각됩니다. 오히려 이러한 직설적인 서사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빠름의 종교에 빠져들 수 있는 점을 경계하기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크게 세개의 액자가 전혀 연관성 없는 단독의 그림으로도 보여지고 있지만 城 (이 부분이 중요한데요. 성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왠지 '느림'을 대변하면서 이 장소에서 벌어지는 시대를 넘어선 두가지의 스토리가 서로 용화되면서 빠름에 대한 강박관념을 벗어나게 하는데 큰 몫을 한다는 것입니다)이라는 커다란 배경 화면에 유효적절하게 녹아들어 하나의 멋진 그림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남녀간의 사랑이야기, 정치성이 짙은 정치이야기라는 미시적요인과 거시적요인이 혼합되어 얼핏 간단명료하게 종결될 수 있는 것을 몇바퀴 꼬아버려 혼란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결말부분의 다소 어색한 설정이 거슬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밀란 쿤데라는 이러한 설정을 통해서 원심력이라는 물리학 법칙(일종의 빠름을 상징할 수 도 있겠네요) 에 반하여 서로 느긋하게 다가갈 수 있는 '느림' 에 대한 사유를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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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다른 곳에 밀란 쿤데라 전집 3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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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반쯤 열린 문틈 사이로 구름이 걸쳐져 있고 멀리 원경엔 푸른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수평선이 보이는 책 표지 자체가 <삶은 다른 곳에> 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보여지네요. 문 안쪽(야로밀의 정신과 육체를 지배할려고하는 엄마의 모성)과 문 밖(야로밀이 남성성을 확인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극복하면서 자신의 삶을 추구하고 싶은 곳) 양쪽의 경계선에 걸쳐 있는 구름(엄마의 사랑과 자신의 삶 사이에서 고뇌하는 야로밀 자신) 그리고 문 안쪽에 보이는 밝은 세상, 왠지 문안쪽은 어두침침 해야할 것 같지만 화사한 색깔로 도배된 사방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가 아니면 그냥 안주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상당히 망설여지게 하는듯 한 표지. 그 동안 출간된 밀란 쿤데라 전집 시리즈중에 이 표지만큼 작품을 대변하는 컷은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합니다. 아무리봐도 절묘하게 작품의 성격을 그대로 옮겨놓지 않았나는 생각이 들게 하네요. 새삼 문학작품에서 표지의 역활이 결정적인 팁을 제공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다시한번 가져보게 합니다.

 

   <삶은 다른 곳에> 는 詩人이 되고픈 아니 마치 운명처럼 시인으로 길러져야 했던 야로밀과 아들만을 위해서 모든 인생을 다 받쳐 사랑했던 엄마의 삶을 다룬 작품입니다.(물론 스토리자체가 가지고 있는 표면적인 내러티브이고 사실은 작가자신과 사회주의 체코 시스템을 우화한 표현이라 보여지는데요)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대하면서 늘 느끼는 생각중에 하나가 경계와 모호성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박탈 당한다고 할까요? 이 양반 작품들은 하나 같이 이러한 모호성과 경계선을 아쓸아쓸하게 왔다 갔다 하면서 그 개념성에 대한 논란의 여지 자체를 거부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이번 작품 역시 자신의 주 전공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사실 이번 작품의 스토리도 별반 특이한 점이 없는 그저 그런 내용들입니다. 막말로 '이게 모야'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뻔한 스토리라는 거죠. 한 여성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모성애와 이런 모성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주인공 많이 접해본 삼류판 소설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 것입니다. 근데 말이죠 이러한 뻔한 내러티브가 왜 밀란 쿤데라와 조우하게 되면 제목처럼 '삶은 다른 곳에' 라는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사유로 무장하게 되면서 독자들의 뇌리에 확 박혀버릴까요? 이 점에 대해선 그 동안 읽었던 밀란 쿤데라의 작품들을 회고해 보면 정말 변변한 스토리나 짜임새 있는 내러티브가 하나도 없었다는 점에 다시한번 놀라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이 양반의 작품에 끌리는 것은 다름 아닌 서두에서도 말한 모호성과 경계선에 대한 가장 명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류의 작품이나 작가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밀란 쿤데라만큼 독자들의 뇌리속에 깊이 각인된 경우는 찾기 드물죠. 그리고 독자들이 들어내 놓고 말하기 힘들었던 사유들을 과감하게 서사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작품으로 탈바꿈 시키므로서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여기 밀란 쿤데라의 사유에는 정답이나 보편타당한 결과치를 절대 이끌어 내지 않는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죠. 아마도 이러한 서사가 독자들의 가슴을 휘어잡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면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거울같은 역활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작가이기도 하죠. 간간히 생뚱맞은 서사들을 내러티브 중간에 슬그머니 밀어 넣기도 하는 구도를 왕왕 사용하고 있기도 한데요. 이 또한 자신이 표방하고 있는 모호성과 경계에 대한 하나의 에피타이저 같은 보너스 역활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절정기때에 자신의 문학과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는 경험을 겪은 밀란 쿤데라에게 모호성과 경계는 어쩌면 당연한 사유의 한 갈래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농밀하고 은밀하면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성애의 묘사나 심리묘사가 일품이라는 것입니다. 통속적인 연애소설에 대놓고 파격적으로 묘사되는 성애의 표현기법보다 밀란 쿤데라의 성애 묘사는 은근한 애로시티즘을 자극하면서 낯뜨겁게 한다는 것죠. 이러한 낮뜨거움은 아마도 자신속에 숨겨져있던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들어내고 싶지 않았던 죄의식 비슷한 감정들이 이 양반의 작품을 통해서 만천하에 공개된다는 부끄러움 혹은 민망함의 발현이랄까요. 그러면서도 막힌 부분이 확 뚫려버려 속이 다 시원해지는 일종의 쾌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공감이 가는 서사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아가씨가 혼자 옷을 벗고 싶어 하는 것에 심한게 마음이 언짢았다. 그가 생각하기에 사랑이 담긴 옷 벗는 행위와 그냥 보통 옷 벗는 행위 사이의 차이는 바로 여자의 옷이 연인에 의해 벗겨진다는 데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숨기고 싶었던 혼자만의 느낌을 사정없이 공론화 시키는 멘트가 아니겠습니까?

 

   전체적으로 잿빛 가득한 느낌을 자아내는 작품으로 다소 분위기 다운되는 작품입니다. 시인을 모티프로 사회주의 체코의 시대상을 대변하고 있으며 밀란 쿤데라 자신의 정체성과 고뇌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데올로기와 문학사이에서 절망을 삶이라는 확대된 영역으로 확장하면서 진정한 사랑과 자유 그리고 온전한 삶에 대한 갈망을 엿 볼 수 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현 시대에 대한 작가의 일종의 체념이라는 부분도 어느 정도 반영된 것 같구요. 시인들과의 토론회 장면에서 뜬금없이 등장하는 버스정류장의 이전과 설치에 대한 토론아닌 토론은 바로 당시 체코사회를 바라보는 밀란 쿤데라의 체념성 멘트가 아닌가라는 애잔한 마음도 드네요. 자유와 더불어 다른 삶을 추구하는 야로밀(밀란 쿤데라의 투영이겠죠)와 이런 야로밀을 화가, 시인을 만들기 위해 정열을 쏟아붓는 엄마(사회주의 체코를 상징할 것입니다) 사이의 모호성과 경계선에서 방황하는 지식인의 현주소를 대변하고 있는 작품으로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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